손을 안 씻은 사람은 나와 강진혁이었다.나는 아무래도 괜찮았지만 강진혁은 머쓱한 듯했다.“뭐 어차피 내 배 속으로 들어가는 데 문제없으면 그만이죠.”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먼저 말을 꺼냈다.다가오는 진정우 손에는 물티슈가 있었다.강진혁은 받으려 했지만 진정우는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받으면서 한 장을 꺼내 강진혁에게 건네곤 나도 손을 닦았다.“지원아, 이분은 누구야?”강진혁은 불쾌한 티를 팍팍 내는 진정우가 누군지 아주 궁금했다.“이분은 진정우 씨, 조명 기사님이세요.”나는 강진혁에게 소개했다.나를 보는 진정우의 눈빛에선 압박감이 느껴졌고 결국 진정우에게도 강진혁을 소개하는 수밖에 없었다.“이분은 제... 오빠 강진혁이에요.”“안녕하세요.”강진혁은 진정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진정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소희가 바로 입을 열었다.“진 기사님은 결벽증이 있어요.”강진혁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렸다.“얼른 앉아서 먹어. 식으면 맛없으니까.”이소희는 입맛을 다셨다.“저도 하나 먹어도 돼요?”“물론이죠.”강진혁은 이내 진정우에게도 말했다.“진 기사님도 먹어봐요.”“아니요. 전 죽을 먹을 거예요.”진정우는 차갑게 거절한 뒤 자리를 떴다.이소희는 만두를 먹다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나를 보았다.“언니, 진 기사님 혹시 생리하는 건 아니겠죠?”나는 그런 이소희를 향해 엄지를 척 들었다.“정말 그런가 보네요.”강진혁은 나와 이소희의 대화에 웃음을 터뜨렸다.“진 기사님 성격이 좀 까칠하네요.”“아니에요. 사실 성격이 나쁘진 않아요. 조금 쌀쌀맞긴 하지만 이 정도로 까칠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이소희의 입은 음식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이때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다만 녹두차와 만두를 먹은 나는 더는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이소희와 진정우가 전부 먹어치웠다.이소희는 당연히 진정우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진정우는 먼저 이소희에게 먹으라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다음 생에요. 다음 생에 전 두 분의 딸로 태어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오빠랑 저는 진짜 남매가 될 수 있겠죠.”강진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만두를 보며 말했다.“더 먹어. 너 요즘 살 많이 빠졌어.”“네.”나는 다시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강진혁은 내가 먹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결국 배가 부른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녹두차를 마셨다.“유형이는 여전히 널 걱정하고 있나 보네. 어머니가 만들었다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너에게 녹두차를 만들어준 것을 보면 말이야.”강진혁이 말했다.나는 바로 입꼬리를 올리며 픽 웃었다.“있을 때 잘하지 않고 이러는 건 문제 아닌가요?”구내염은 여전히 내 식욕을 방해하고 있었다. 나는 먹은 것을 정리한 뒤 말했다.“고마워요, 오빠. 이 먼 곳까지 와줘서요. 그리고 돌아가면 아저씨랑 아주머니께도 말씀드려주세요. 일 끝나면 바로 찾아뵐 거라고요.”나는 이 놀이공원을 가리켰다.“여긴 아마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아직 조명 조절 완벽하게 못 했거든요. 그래서 요즘 많이 바빠요.”“그래, 유형이한테서 들었어. 그래도 몸 챙겨가면서 해.”강진혁이 당부했다.“네, 알겠어요.”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바쁘게 일하는 진정우를 가리켰다.“저 이젠 일하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그래, 조심히 해.”강진혁은 또 걱정 어린 말로 말했다.진정우는 결국 점심을 먹지 않았다. 오후 내내 나와 거의 말도 섞지 않은 것을 보아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나는 정말 그 이유를 몰랐다. 대체 그가 왜 화가 난 것인지를.연이은 며칠, 진정우는 전보다 더 말수가 없었고 차가웠으며 그저 묵묵히 일만 할 뿐이다.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나도 최선을 다해 협조했다. 다만 매일 물 마시며 쉬는 시간이 정해졌다.자기 몸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지 모를 휴식 시간이었다.일주일 동안 진도는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었고 뜻밖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
진정우가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노트북 앞에서 기절한 듯 자고 있었다. 은은한 호텔 방 불빛이 내 얼굴에 비치고 그의 시선도 내 얼굴에 닿았다.나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으나 눈이 떠지지 않았다.한참 지나자 그가 나직하게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다윤아...”‘다윤아?!'‘지금 날 부른 거야?'‘맞네, 날 부른 거네.'강씨 가문으로 들어가기 전 나의 이름은 다윤이었다. 지원이가 아니라.하지만 그동안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오빠, 난 다윤이라고 해...”그 순간 머릿속에 작은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여자아이는 양 갈래로 두 개의 만두 머리를 했고 포동포동한 볼살로 귀엽게 어떤 한 남자아이를 보며 말했다.남자아이는 무뚝뚝한 성격이었던지라 말수가 적었다.곧이어 내가 그 여자아이가 되었고 남자아이는 진정우가 되었다. 나는 어느새 진정우의 등에 업혀 있었다.“오빠, 냄새가 너무 좋아...”“오빠 목 뒤에 까만 콩이 있어. 내가 뜯어줄게.”“다윤아, 그만. 아파.”“다윤아, 오빠 힘든데 그만 뛰면 안 될까?”...“엄마, 난 오빠가 좋아. 크면 오빠랑 결혼할 거야...”“하하...”“엄마, 아빠! 웃지만 말고. 다윤이는 커서 오빠랑 결혼할 거라고!”“다윤아, 넌 오빠랑 결혼할 수 없어. 너한테는 이미 약혼자가 있단다...”“싫어! 약혼자랑 결혼 안 해! 싫어!”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게 되었고 숨을 몰아쉬었다.조금 이상했다. 왜 갑자기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게다가 몸이 아주 작은 것을 보아 네 살쯤 되는 것 같았다.침대에 누운 나는 멍하니 천장을 30초간 보다가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이 방은 내 방이 아니었다.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어젯밤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폈지만 진정우는 없었다.나는 이내 고개를 숙여 몸을 보았다. 다행히 옷은 그대로 있었다.놀란 가슴을 달래며 밖으로 나가니 소파에서 자는 진정우가 보였
안리영이 지금 이 시간에 답장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대화창에서 나와 SNS를 열었다. 그러자 신지태가 올린 여유로운 사진을 보게 되었다.사진 속 신지태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엔 다른 사람도 있었고 몇 명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그중 아주 익숙한 손이 보였다. 그것은 강유형의 손이었다.그의 손가락에 끼어 있는 싸구려 반지는 내가 선물한 것이기 때문이다.지금 그 반지를 다시 보니 너무도 유치하고 창피했다.그 반지는 한 쌍이었다. 남은 하나는 나에게 있었고 내가 18살 때 생일 선물로 산 것이다. 가격고 기껏해야 19만 9천 원이었다.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여성 사이즈였고 남성 사이즈는 강유형이 끼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강유형은 이 반지를 보며 목줄을 채우는 것이냐며 놀리기도 했었다.그러다 나중엔 그는 더는 이 반지를 끼고 다니지 않았다. 궁금했던 나는 떠보듯 물었지만 들려온 대답은 다른 사람들이 비웃을까 봐 뺐다는 것이다.너무 싸구려라서.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고귀한 몸인 강유형이 고작 20만 원 하는 반지를 끼고 다니기엔 체면을 구기지 않겠는가?하지만 그 반지는 내가 처음으로 가정 교사 아르바이트하면서 번 돈이었다.그날 이후로 나는 더는 이 반지에 관해 묻지 않았고 그도 끼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 속 강유형은 반지를 끼고 있었다.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나도 이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다만 그 반지는 확실히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도 모르게 항상 강유형의 앞에서 주눅 들어 눈치만 살피며 비위를 맞추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안리영의 답장이 오면서 나는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누구랑 잤는데?]안리영은 직설적이었다.나는 이 문자를 보고도 바로 답장하지 않았다. 강유형이 낀 반지 때문에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다.[강유형?]안리영이 또 문자를 보냈다.[아니, 걔는 아닐 거야.][혹시 정우 오빠?]안리영은 진정우임을 알아맞
정말이지 너무 민망했다.당사자인 이소희보다 내가 더 민망함을 느꼈다.이소희도 물론 민망해하고 있었지만 강철 멘탈인 이소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헤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이소희는 내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고 빠르게 내 곁으로 다가와 찰싹 붙었다. 그리곤 걸으면서 말했다.“진 기사님 정말로 생리 중인 거죠? 오늘도 뭔가 히스테리가 심하네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소희는 진정우가 짜증을 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내가 힘들까 봐 진정우가 이소희에게 직접 음식을 가져올 것을 권하는 것으로 들렸다.‘정말로 날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이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며 얼른 생각을 지웠다. 날이 가면 갈수록 착각만 심해지는 것 같았다.“이따가 우리 그냥 따로 앉아요.”음식을 받은 뒤 어젯밤 진정우의 방에서 잔 일이 떠오른 나는 더는 그를 마주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이소희에게 말했다.“왜 따로 앉아요? 아는 사이인데 같이 앉아야죠. 게다가 방금 오늘 할 일도 정해야 한다면서요.”이소희는 일 핑계로 말했기에 나는 더는 반박할 수 없었다.다만 나는 그녀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다.“소희 씨는 잘생긴 얼굴 조금이라도 더 구경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아니에요?”“언니, 어쩜 날 그렇게 잘 알아요?!”이소희는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결국 진정우와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괜히 이소희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이소희는 엉뚱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머리가 좋았다.음식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마자 누군가 다가왔다.“어머, 소희야. 정말 너구나?”아주 예쁜 여자가 손에 음식 그릇을 들고 있었다.이소희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반겨주었다.“뭐야, 반장!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나야 출장 왔지. 정말 오랜만이네. 우리 같이 먹을까?”여자는 이소희에게 아침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이소희의 반응은 나를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우를 힐끗 보더
“팀장님은 모르시겠지만 저 연애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저는 팀장님처럼 경험이 많지도 못해요. 파혼한 약혼남에, 친한 오빠에, 그냥 아는 남자에... 팀장님처럼 알고 지내는 이성도 별로 없어요.”진정우는 나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소리를 내기도 전에 그가 고개를 숙이며 먼저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두려워해야 하는 사람은 저예요. 어젯밤 저희가 같은 방에 있었던 게 소문이라도 난다면,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제가 진 기사님의 명성에 먹칠했다는 거예요?”나는 약간 화가 난 말투로 물었다.“그런 뜻은 아니에요. 팀장님 어젯밤은 그냥 잠만 잤잖아요.”진정우의 말을 듣고 있자면 내가 변태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고단수였다.나는 속으로만 씩씩댈 뿐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손에 들린 빵만 애꿎은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명성을 지키려면 저한테서 멀어져야겠네요.”빵을 다 먹고 난 나는 소심하게 반격했다.“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저희같이 일하고 있잖아요.”진정우는 티슈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내가 아침 식사를 끝냈을 때 이소희도 끝냈다. 그녀는 동창들과 인사했다. 다음에는 꼭 오기 전에 연락하겠다면서 말이다.동창들이 차에 탄 다음 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봤다.“언니, 진 기사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요? 둘이 한참 얘기하던데?”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동창들과 밥 먹을 때에도 나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별 얘기 안 했어요.”나는 짧은 말로 둘러댔다. 이소희는 당연히 믿지 않고 계속 말하라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나는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그냥 일 얘기예요. 저희 앞으로 야근이 더 잦아질 것 같다고요.”“네?”이소희는 급 울상이 되었다.“기사님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못됐어요, 정말!”나는 말없이 그녀와 함께 놀이동산에 갔다. 진정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가 차에서 내릴 때야 그는 따릉이를 타고 왔다.“언니,
“이게 무슨 말이에요? 쉰다니요?”나는 황급히 진정우에게 가서 물었다.“일주일에 두 번은 쉬도록 국가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요. 요즘은 일이 바쁘니 하루 정도 쉬는 건 문제 없죠?”진정우의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대답했다.“맞아요. 근데 저희 시간이 별로 없어요. 진 기사님도 알잖아요. 휴식은 후에 하면 안 될까요? 추가 수당도 줄게요.”진정우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이건 돈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은 기계가 아니고 휴식이 필요해요. 쉬어야 일도 더 잘하죠.”전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무지 쉴 수 있을 때가 아니다.나는 숨을 고르고 나서 다시 말했다.“그래서 오늘 꼭 쉬어야겠다고요?”“네.”말을 마친 진정우는 몸을 돌려서 떠나려고 했다. 그러다가 또 한 마디 덧붙였다.“다른 분들도 쉬게 해줘요.”나는 화가 치밀어서 그를 보며 외쳤다.“진 기사님은 푹 쉬세요! 저희가 일하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요!”한쪽에서 이소희는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았다. 진정우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다가 팀장님도 일 못해요. 어젯밤...”“진정우 씨!”나는 소리 내어 그의 말을 끊었다. 손바닥에는 땀이 한층 배었다.어젯밤 일을 비밀로 하자고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언급될 뻔했다. 나는 그를 노려봤지만 결국 기세에 밀려나서 타협했다.“알았어요. 저희도 쉬면 되잖아요. 소희 씨, 이만 돌아가요.”나는 이소희를 불러서 가려고 했다.“팀장님.”이때 진정우가 다시 나를 불러세웠다.“저 부탁할 일이 있어요.”가슴에서는 또다시 불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화를 가까스로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왜요, 쉬는 시간에 마사지라도 해줄까요?”“그건 됐고, 사야 할 물건이 있어요. 팀장님이 안내해 줬으면 하는데.”진정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소희 씨랑 같이 가요.”“저는 팀장님이랑 가고 싶은데요.”“풉!”이소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실
“진 기사님, 이게 무슨 뜻이에요? 어제 일로 저를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아뇨.”진정우는 내 눈을 피하며 말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를 패버리고 싶다는 충동까지 생기고 있었다.“저 진짜 이 동네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요. 조금 도와주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저도 팀장님 도와준 적 있고...”진정우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마치 내가 안 도와주면 나쁜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역시 진 빚은 갚아야 한다. 그게 돈 빚이든, 인정 빚이든 말이다.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좋아요, 오늘 어디 가고 싶어요? 뭘 사야 하는지 알려주면 안내해 줄게요.”“집 보고 싶어요.”그의 대답에 나는 또 말문이 막혔다.“집이요? 이쪽 일 끝나고 나면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요?”“안 돌아갈 것 같아요. 그래서 미리 봐두려고요.”진정우의 말에 나는 목구멍이 탁 막히는 것 같았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는 몰랐다. 아무튼 이상했다.“기사님 회사 다른 곳에 있잖아요.”“사직하면 돼요.”“...”“참, 저 월세로 알아보고 싶어요. 아직 집 살 능력은 없어서요.”진정우는 지나치게 태연하게 지갑 상황까지 밝혀버렸다.이 점은 약간 놀라웠다. 요즘은 돈이 없어도 있는 척, 할부로 명품을 사며 체면을 차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진정우는 솔직한 편이었다.“그런데 왜 사직해요?”진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못 들은 것 같았다.그가 한 말 때문인지 나는 약간의 동정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를 차에 태우고 시내로 향했다.“시내는 집값이 비싸지 않을까요?”“교외보다는 비싸겠지만 출퇴근이 어려워요.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여기 사는 게 나아요. 기사님 같은 분이라면 적어도 CBD 쪽 회사에 다닐 거잖아요.”나의 제안에도 진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정이 많이 어려운가 싶어서 나는 말을 보탰다.“돈이 모자라면 제가 빌려줄게요. 돈이 생긴 다음 천천히 갚아요.”“어쩐지 몸으로 갚으라는 말로
나는 용은서를 품에 안고 눈앞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그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호시탐탐 나를 노려보았다. 곧이어 발자국 소리와 함께 애타는 외침이 들려왔다.“은서야, 두려워 마. 엄마가 왔어.”이 말을 듣고 나는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함소은은 내 품에서 아이를 빼앗고 나를 밀쳐 버렸다.그녀는 연기를 정말 잘했다.함소은은 용은서를 안고 뽀뽀하며 달래더니 나를 노려보았다.“내가 지원 씨를 그렇게 믿고 은서랑 친구도 하게 해줬는데, 지원 씨는 어떻게 우리 모녀의 믿음과 사랑을 이용해 우리를 해쳐요?”“언니는 나를 해치지 않았어.”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용은서가 말했다.용은서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진 함소은은 딸을 안고 울기 시작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함소은이 용은서를 데려가기 위해 그들과 함께 연기하러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용은서의 이 납치극 함소은에 의해 끝났지만 나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용진표가 나를 찾아왔다.“지원 씨는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을 거야.”용진표는 직접적으로 말했다.나는 그를 보며 함소은이 계획한 이 연극 같은 상황이 생각났다. 사람은 평생 총명하다가도 어리석을 때가 있다고 하더니 지금의 용진표가 그랬다.그는 자신의 여자에게 놀아났다.“용 대표님은 제가 왜 은서를 납치했는지 알고 싶으신 거예요?”나는 용진표에게 물었다.그는 사람을 시켜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나를 여기로 초대했다. 함소은의 예측대로 나에게 빚진 것이 있었기에 너그럽게 나를 대했다.그래도 그는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용 대표님은 모르시나요?”나는 웃으면서 말했다.그는 손으로 짐볼을 굴리면서 말했다.“지원 씨는 단순히 복수만 하고 싶은 것이 아닐 거야. 그리고 복수를 한다고 해도 어린아이한테 손댈 사람은 아니야.”‘잔인한 그가 나를 이렇게 떳떳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니!’“지원 씨는 나에게 원인을 말해주지 않아도 돼. 우리 앉아서 얘기 나누면서 지원 씨가 원하
“네, 장소를 알려주세요.”그녀는 흔쾌히 대답했다.나는 사방을 둘러보다 카페 이름을 말했다. 반 시간쯤 기다리자 캐주얼차림에 오토바이를 탄 멋지고 훤칠한 외모를 가진 용설아가 왔다.진정우와 용설아는 취향이 서로 같았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진정우가 오토바이를 타던 모습이 떠올랐다.심지어 나는 진정우가 먼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의 옆에는 내가 아니라 용설아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죄송해요. 오래 기다렸죠?”용설아는 먼저 나에게 사과부터 했다.비록 그녀도 용씨 가문의 사람이었고 진정우와도 갈등이 있었지만 나는 그녀가 싫지 않았다.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제가 당돌했어요, 설아 씨 휴식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해요.”아까 그녀가 전화 받을 때 분명 자다 깬 목소리였다.“네, 요즘 잠을 못 자서 모처럼 오늘 좀 자고 있었는데 방해를 받았네요.”그녀는 직설적이었다.나는 그녀가 요즘 왜 잠을 못 잤는지 궁금했지만 그녀와 친하지 않아서 묻기가 어려웠기에 그녀에게 용건만 말했다.“오늘 설아 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요.”“정우 때문이에요?”용설아도 시치미를 떼지 않았다.“아니에요.”말을 마치고 나는 머뭇거리며 계속 말했다.“제 남자는 제가 알아 할게요.”“하하”용설아는 해맑게 웃었다.“나에게 이 말 해주려고 만나자고 한 거예요?”나도 웃었다.“저는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오늘 다른 부탁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요.”“뭔데요?”나는 몇 초간 고민하다 말했다.“용준호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용설아는 몇 초간 멈칫하더니 말했다.“약점을 손에 잡고 준호를 협박하려고요?”“네, 저는 준호 씨가 제 친구를 괴롭힐까 봐 걱정돼서요. 만약 그가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저도 이 수법을 쓰지 않을 거예요.”나는 용설아에게 설명했다.용설아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나의 조카인 준호를 배신하란 거예요?”“당신들의 관계를 알아요. 하지만 설아 씨도 준호 씨가 하는 짓
나는 용준호가 이 요구를 제시한 것이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살던 집 주소지로 안리영에게 택배를 보낸 것은 나를 끌어들이기 위함이다.정말 청춘어람이라고 그의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잘 이어받았다.“먼저 무슨 일이신지 말씀해 보세요.”나는 그가 마음대로 나의 약점을 가지고 나를 협박하지 못하게 했다.그가 나를 마음대로 협박하는 것도 나의 약점이 안리영이라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나는 그를 눈치채게 하면 안 되었다.“지원 씨, 정우가 준 물건을 내놔.”용준호는 직접적으로 말했다.나는 웃으면서 말했다.“정우 씨가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면 믿으실 수 있어요?”용준호는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지원 씨, 이러면 재미가 없어.”나는 조롱 하며 말했다.“믿지 않으셔도 말할게요. 전에 휴링턴에 있을 때 정우 씨와 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직접 두 눈으로 보셨죠? 그러다 정우 씨가 사고 난 후 그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용씨 가문 딸인 설아 씨가 화장해 버렸어요. 정우 씨를 접촉하지도 못했는데 나에게 준 것이 뭐가 있겠어요?”용준호는 턱을 어루만지며 나를 바라보았다.용준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하게 나도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정말 정우 씨에게 뭐가 있다고 생각되면 준호 씨의 고모를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정우 씨를 제일 마지막으로 접촉한 사람이 설아 씨에요.”나는 모든 것을 용씨 가문에 떠넘겼다. 용설아가 지금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그녀가 떠안는 것이 내가 떠안는 것보다 낫다.“지원 씨의 속내를 모를 줄 알아? 나의 고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 보지?”용준호도 바보는 아니었다.“그건 준호 씨와 고모 사이의 일이고요. 아무튼 정우 씨는 저에게 준 것이 없어요.만약 있다고 해도...”나는 일부러 머뭇거리며 말했다.“그건 바로 정우 씨가 저에게 남긴 상처뿐이죠.”나는 손으로 가슴을 찔렀다.“여기요, 칼로 한번 갈라 볼래요?”
그녀가 온라인 쇼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었다.나는 하루 종일 수술만 한 안리영을 대신해 택배를 받아 받는 사람 이름을 확인했더니 확실히 그녀에게 온 택배였다.“설마 또 너를 애모하는 누군가가 보낸 거 아니야?”나는 택배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안리영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책상 위의 커터 칼로 택배를 열어보았다.나도 그녀처럼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쳐다보았지만 택배의 외부 포장을 뜯어 내부 상자를 열자 그녀와 나는 동시에 돼지를 잡는듯한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이 비명은 계속 되였다...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달려 들어와 여기저기 기어다니는 뱀을 잡을 때까지 말이다.나와 안리영은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방금 택배를 여는 순간 뱀이 툭 튀어나왔고 심지어 그 뱀이 나와 안리영의 얼굴을 스쳐지났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와 안리영은 연체동물을 제일 무서워한다. 심지어 뱀뿐만 아니라 애벌레도 무서워한다.이는 분명히 일부러 안리영이 겁먹게 하려고 협박하는 것이다.송장에 있는 배송지를 확인해 보니 내가 전에 살던 동네였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철거된 상태이기에 협박 소포를 보낸 사람은 나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이 사람은 나를 알고 있고 지금 또 안리영도 협박한 걸 보니 나는 바로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었다.안리영이 피해를 본 여자들의 일을 조사하는 것을 도운 것이 발각된 것이다. 이는 그녀더러 더 이상 참견하지 말라는 경고이다.“리영아, 미안해. 결국엔 너도 이 일에 연루됐어.”새하얗게 질린 안리영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나는 그녀에게 사과했다.내가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엔 일어나고 말았다.“리영아, 이 일은 여기서 그만하자. 너는 더 이상 참견하지 마. 뱀을 보낸 것을 보면 그냥 너에게 참견하지 말라는 경고야. 앞으로 더 이상 너에게 허튼짓하지는 않을 거야.”나는 안리영에게 말했다.안리영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협박 같은 거 나는 두렵지 않아.”안리영은 고집이 센
그가 나에게 할 말이란 자신의 후사에 관한 일이었다.“삼촌, 이런 말씀 하실 필요 없어요. 삼촌은 괜찮으실 거예요.”나는 그를 위로했다.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자산과 부동산 그리고 세상 물정들을 나에게 당부했다.그는 유언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와 비록 감정이 깊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별의 아픔을 느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슬퍼하는 나를 위로했다.“지원아, 누구나 다 죽게 돼 있어.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슬퍼할 필요 없어, 나와 외숙모는 희연이와 재회하러 간 거야, 우리 가족이 다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함께 살 수 있어.”이제야 그가 딸을 잃은 후 얼마나 슬프고 외로웠으며 그에게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그는 유희연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있었고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삼촌한테는 제가 있잖아요, 이젠 저한테도 가족이 삼촌밖에 없어요.”나와 그는 혈연이 있으나 늦게 만난 탓에 정이 깊지 않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고 나는 그가 삶에 대한 욕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그의 가족이지만 친딸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그는 딸을 찾으러 가려는 것이다.지금까지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무사하길 원한다면 외숙모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리영아, 구 교수님을 만나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봐 줄 수 있어?”나는 안리영을 찾아 그녀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외숙모가 넘어져 이렇게 된 후 의사는 심근경색이라고 했다. 이 분야는 구안석전문이었다.“알았어, 마침 요 며칠 사이에 선배가 돌아올 거야.”안리영이 흔쾌히 대답해서 나는 그녀의 안색이 어둡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잘됐네.”나는 흥분해서 말했다.심장 분야 전문인 구안석이 진소영의 심장 이식도 성공했기에 외숙모의 일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안리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용은서를 언급했다.“은서가 너무 불쌍해. 집으로 일찍
“아니에요, 저는 단지 은서가 나에게로 빨리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에요.”함소은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다.하지만 나는 그녀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소은 씨, 며칠도 참았는데 사흘만 더 참으세요.”나의 말을 들은 함소은은 화를 냈다.“지원 씨, 지금 무슨 뜻이에요?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죠?”“전 소은 씨에게 이삼일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는 거예요.”나는 그녀에게 설명했다.“왜 기다려야 하는데요? 뭘 하려고 그래요?”그녀는 머리가 좋았다.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누군가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려고요.”함소은은 나를 붙잡고 말했다.“은서로 성재 씨를 맞바꾸려고 그러는 거죠?”함소은도 배성재가 무엇을 하러 갔는지 알고 있다. 나도 대범하게 인정했다.“네.”“지원 씨!”함소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어떻게 이렇게 비열할 수가 있어요, 은서는 아직 아이일 뿐이에요.”“네, 맞아요. 은서는 당신이 딸이기도 하죠. 그런데 당신도 은서를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나요?”나는 그녀에게 거침없이 말했다.게다가 윤은서도 함소은이 직접 나한테 보내온 도구였기에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던 함소은은 몇 초 후 김빠진 공처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오직 자신뿐이네요.”나는 그녀의 인생을 꿰뚫어 본 듯한 발언을 무시한 채 차분하게 말했다.“은서는 무사할 거예요, 며칠 소은 씨와 늦게 만날 뿐이에요.”함소은은 더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를 데려다준 후 함소은은 떠났다.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음식을 주문했다. 배불리 먹고 물건을 사서 유희연의 집으로 갔다.그곳에 갇혀있는 동안 나는 꿈에서 유희연을 보았다. 비록 꿈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지만 나는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암시해 주는 것이라고 느껴졌다.유희연이 세상에서 가족은 오직 부모뿐이었기에 나는 그녀의 걱정도 그들이라고 생각
“뭔데요?”그녀의 말을 들은 안리영은 놀라지 않았다.누구든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나도 그에게 보답을 원한다. 이른바 오는 것이 있어야 가는 것이 있는 법이다.“지원 씨는 제 딸을 납치한 죄를 뒤집어써야 해요.”함소은의 말을 들은 안리영은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소은 씨는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하기 힘들죠?”그녀의 마음을 간파한 안리영이 말했다.함소은도 숨기지 않고 말했다.“진표 그 개자식은 은서를 매우 사랑하는 것 같지만 이 상황이 되도록 그는 조급해하지 않아요.”그녀는 자신이 딸 용은서로 용진표에게서 돈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는 속지 않았다. 게다가 며칠 동안 갇혀 있던 딸은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 보러 가고 싶었으나 노출이 될 것이 두려웠고 그녀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납치당한 아이를 돌아오게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들은 바에 의하면 용진표는 누가 자신의 딸을 납치했는지 조사 하라고 시켰고 그녀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최대한 빨리 은서를 무사히 돌아오게 해야 했다, 그러면 용진표도 조사를 멈출 것이다.“그러나 지원이가 죄를 뒤집어쓴다면 용 대표님이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안리영이 말했다.“진표 씨는 지원 씨 부모님께 목숨값 두 개를 빚진 것이 있기에 지원 씨가 그의 딸을 납치했다고 해도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은서가 다치지 않았기에 진표 씨는 지원 씨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함소은의 분석이 매우 정확했다.안리영은 웃으면서 말했다.“소은 씨는 얼굴이 이쁠 뿐만 아니라 지능도 좋아요.”함소은은 조롱하듯 웃었다. 만약 용진표가 그녀의 외모에 반해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의 숨겨둔 애인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정태성과 함께 연수해서 회사원이나 성공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모든 것을 용진표가 망가뜨렸다. 이쁜 얼굴이 싫었던 그녀는 누가 그녀를 이쁘다고 칭찬하면 화를 냈다.누군가는 아름다운 외모를 밑천으로 생각하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함소은은 안리영의 말을 확신하는 듯 그녀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만약 태성 씨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말을 마친 안리영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저 말고 지원이가 도울 수 있어요.”안리영을 본 함소은은 첫눈에 그녀를 보낸 것이 윤지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윤지원의 상황을 생각한 함소은은 비웃으며 말했다.“지금 지원 씨 자신도 돌볼 수 없는 상황인데 나를 도울 수 있다고요?”“지원이 이 보살이 그곳에 들어가 나랏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기회를 만들어준 소은 씨에게 감사드려야죠.”안리영은 힌트를 주었다.함소은은 안리영의 눈길을 피해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뭔 상관이에요?”안리영은 직설적으로 말했다.“소은 씨, 여기까지 말했으면 더 이상 시치미를 떼지 마세요. 사실 은서는 소은 씨가 사람을 시켜 데려간 거죠?”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함소은은 화를 내며 소파를 내리쳤다.“무슨 헛소리에요? 제가 왜 제 딸을 납치해요. 저...”“소은 씨는 딸로 정태성을 맞바꾸려고 그러는 거잖아요.”안리영은 그녀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얼굴을 돌린 함소은은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아니에요.”“제가 용 대표님에게는 말하지 않을게요. 두려워 마세요.”안리영은 그녀를 안심시켰다.“그럼, 이 말을 저에게 한 이유가 뭐예요?”함소은은 직접적으로 안리영에게 물었다.안리영은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지원이가 저를 보낸 게 맞아요. 지원이는 지금 그곳에서 너무 불편해서 나오고 싶어 해요.”“나오고 싶으면 경찰을 찾으면 될 것을 저를 찾아 뭐 해요?”함소은은 콧방귀를 뀌었다.안리영은 가볍게 웃었다.“소은 씨가 지원이를 그곳에서 꺼내준다면 정태성을 만나게 도와줄 거예요.”안리영의 말을 들은 함소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함소은의 모습을 본 안리영은 그녀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었다.“지원 씨가 나오려고 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함소은은 웃으면서 안리영에게
‘위선적이야!’그냥 거절하면 될 것을 방금까지 그녀와 여자 친구가 없다고 부정하던 조시언은 지금 또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못 믿겠으면 물어봐요.”조시언은 안리영을 가리키며 말했다.안리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나랑 뭔 상관이야?’사실 이쯤 되면 여인은 조시언에게 거절을 당했기에 즉시 떠나는 것이 맞으나 여인은 대답을 요구하듯 안리영을 바라보았다.안리영은 그런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조시언을 노려봤다. 이어서 안리영이 대답하려는데 조시언이 먼저 말했다.“조금 전 여자 친구랑 산부인과에 갔던 일을 물어봤어요.”안리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놀란 여인은 얼굴이 빨개서 뒤돌아 도망갔다.“삼촌은 여인들의 고백을 거절하는 법도 다양하네요.”안리영은 조시언을 조롱하며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조시언이 말했다.“쌀국수 왔어.”조시언이 말을 마치자 복무원이 쌀국수를 들고 왔다. 조용하게 앉아서 쌀국수를 먹던 안리영은 열심히 먹는 조시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도 열심히 먹었다.역시 장사가 잘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쌀국수가 정말 맛있었다. 얼큰하게 먹었던 안리영은 코끝에 땀이 났다.반면 우아하고 차분한 조시언의 모습은 마치 프랑스 파스타를 먹는 것 같았다.쌀국수를 먹은 후 조시언이 그녀와 할 말 도 다 했기에 안리영은 그와 작별했다.“삼촌, 나 먼저 갈게, 다음에 봐.”“리영아.”조시언이 귀국 후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어릴 적 그는 그녀를 항상 이렇게 불렀기에 안리영은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조시언을 바라본 그녀는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나중에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직접 물어봐, 스스로 추측하지 말고.”조시언의 말을 들은 안리영은 난감했다.다시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나중은 없을 것이다.조시언과 헤어진 후 함소은을 찾아온 안리영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안리영은 전혀 놀라지 않고 그녀를 거절한 사람에게 말했다.“태성 씨가 보냈다고 소은 씨에게 전해주세요.”이 말은 확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