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찬의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예은! 당장 돌아와서 앉아!"진예은은 잠깐 멈칫하기는 했지만 결국 강유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진찬의 어머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을 구겼다."반씨 집안의 계집애와 가까이 지내더니 간이 커진 모양이구나."오늘은 진예은을 통해 강유이를 설득하기 위해 만난 것인데, 진예은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방해만 했다.진찬은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강유이가 예은이에 대한 믿음은 변함없으니까요.""믿음이 있으면 뭐 하니? 예은이가 우리를 도와주지도 않는데."진찬의 어머니는 진작에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예은과 같은 자식은 낳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진찬은 천천히 머리를 들며 말했다."제가 해결할게요. 예은이도 주제를 알고 있다면 순순히 제 말을 따를 거예요."진찬의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반씨 집안의 계집애는 쉬운 상대가 아니야. 한태군도 그 계집애 편에 있잖아.""인간의 감정 중에서 사랑만큼 파괴하기 쉬운 것도 없어요. 게다가 한태군은 본인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처지인걸요."정 회장이 죽자마자 사람들은 데이비 렌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만약 데이비 렌지가 한태군과 레이린이 만난 적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꽤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진찬의 어머니는 약간 멈칫하며 물었다."어떻게 하려고 그러니?"진찬은 자신만만한 자태로 싱긋 웃으며 답했다."강유이의 마음을 다른 사람한테 돌리려고요. 후보는 제가 이미 찾아놨어요."같은 시각, 식당 밖에서."예은아, 우리 진짜 이렇게 나와도 돼? 너 어머니한테 혼나는 거 아니야?"진예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협박을 하루 이틀 당하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 기껏해야 강제적으로 결혼하는 것뿐이겠지.""결혼?"강유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진예은의 앞으로 가서 물었다."너 결혼으로 협박당했어?"진예은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강유이는 진예은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누구랑?""누가 도
데이비 렌지는 시가를 재떨이에 걸쳐 두고 카드를 뽑았다."정 회장님의 죽음을 예상했던 거예요?""아니요, 그건 예상 밖의 일이었어요."한태군은 느긋하게 말했다."그나저나 누군가는 저희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겠네요. 저희 사이의 충돌을 기대하면서요."데이비 렌지는 멈칫하며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한태군은 덤덤하게 그를 바라보며 이어서 말했다."정 회장님을 죽인 사람은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 하고 있어요. 하지만 데이비 씨는 레이린을 건드린 적 없으니, 매체의 관심은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데이비 렌지는 레이린을 건드린 적 없다. 그러므로 정 회장과 충돌이 생긴 적 없고, 살인 동기도 존재하지 않는다.어떤 사람은 레이린에게 거절당한 데이비 렌지가 화를 참지 못하고 정 회장에게 복수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레이린과 데이비 렌지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면 이런 소문 또한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번은 한태군이 우연히 데이비 렌지를 구한 셈이었다.데이비 렌지는 한태군의 말을 곰곰이 곱씹더니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한태군 씨한테 이번 일을 해결할 만한 능력이 있는 것 같으니, 일단은 믿고 있을게요."데이비 렌지는 카드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리사도 저한테 꽤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덕분에 좋은 장기 말 하나 얻었네요."데이비 렌지는 사람들을 데리고 멀어져갔다.전유준은 한태군의 곁으로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다. 한태군은 눈살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함께 차 안으로 돌아간 후, 한태군은 넥타이를 풀며 물었다."레이린은 누가 데려갔어요?""정 회장님의 장례식에 진찬 씨가 온 다음 레이린 씨가 사라졌어요. 제가 보기에는 진찬 씨가 데려간 것 같아요."한태군의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갔다."정 회장님의 죽음도 진찬 씨와 연관 있는 것 같네요.""진찬 씨는 정 회장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회장님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도 못했을 사람이 왜 회장님을
레이린의 옷은 전부 명품 한정판 오트 쿠튀르였다. 예전에는 남이 살짝 건드리는 것도 참지 않았고, 시상식 같은 곳에서 누가 실수로 밟기라도 한다면 대놓고 망신을 주기도 했다.하지만 지금은 옷이 찢어졌는데도 개의치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본인이 가장 신이 나서 찢어대고는 했다.진찬은 몸을 일으키며 메이드를 불렀다."레이린을 데려가서 샤워시켜요."메이드가 곧바로 다가가서 일으키려고 하자, 레이린은 미친 듯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이거 놔! 꺼져!"메이드는 도무지 레이린을 붙잡지 못하고 진찬을 바라봤다. 그러자 진찬은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수영장으로 끌고 가더니 물속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레이린이 몸을 버둥거리며 반항하기는 했지만, 감히 도와주려는 사람은 없었다.얼마 후 레이린이 드디어 잠잠해지자, 진찬은 그녀를 확 건져 올렸다. 레이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끊임없이 기침했다.진찬은 레이린의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더니 턱을 꽉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친 척 연기하고 싶다면 끝까지 잘해. 괜히 들키지 말고."레이린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어두운 눈빛에는 아무런 빛도 없었다."그래도 너는 죽이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지."진찬은 미소를 지으며 화상 자국으로 뒤덮인 레이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역겹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모습이었다.레이린이 무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하자 진찬은 손에 힘을 주며 계속해서 말했다."집안 망하고, 얼굴 망가진 여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약혼자라니... 엄청 아름다운 이야기 같지 않아?"아름다운 이야기는 포장일 뿐이고 현실에는 잔혹한 감금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찬의 '성의'를 봐서라도 그가 정씨 가문의 재산을 독차지하는 것을 부당하게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레이린은 진찬을 노려보며 말했다."네 거짓말도 조만간 까발려질 거야!"진찬은 덤덤하게 눈웃음을 지었다."네가 나서 봤자 쓸모없다는 것만 알고 있어. 하기야 누가 미친 여자의 말을 믿겠어?"레이
기숙사.강유이는 침대에 엎드려 한태군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참 지났는데도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서는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잠깐 헤어져 있었다고 벌써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두 손 가득 포장 음식을 들고 기숙사로 돌아간 진예은은 강유이의 방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너 기숙사에 있었어?"강유이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서는 또 포장 음식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밤 케이크 샀는데 같이 먹을래?"두 사람은 함께 소파로 가서 밤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강유이가 무언가 생각난 듯 돌연 머리를 들며 물었다."태군이 요즘 많이 바빠?""직접 물어보면 될 걸 왜 나한테 물어?""문자에 답장이 없길래..."진예은은 케이크를 한 입 떼어먹으며 말했다."에잇, 망할 커플 같으니라고. 너 오후 공강이지 않아? 그렇게 궁금하면 회사로 가봐. 언제까지 태군 오빠가 먼저 찾아오기만을 기다릴래?""그래도 될까...?"강유이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진예은은 피식 웃었다."사모님이 남편을 만나겠다는 게 누가 감히 말리겠어?"강유이는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아직 그 정도 아니거든...""그래도 곧 이뤄질 일인 건 맞잖아. 오빠가 너를 놓칠 일은 절대 없다고 본다."강유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지경까지 이른다고 해도 한태군은 식장까지 쫓아갈 사람이라고 진예은은 생각했다.강유이는 발그레한 얼굴로 머리를 숙였다.같은 날 오후, 강유이는 진짜 한태군을 만나러 회사로 갔다. 그녀는 대문 밖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리고 나서야 로비에 들어섰다.안내 데스크로 걸어가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저... 한태군을 만나러 왔어요.""네? 도련님을요?"직원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묻는 것을 보고 강유이는 쑥스러운 듯 머뭇거렸다. 하지만 '여자친구'라는 말은 결국 뱉지 못했다."저는 태군이 친구인데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직원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잠깐 얘기하더니 다시 강유이의
비서는 얼굴을 긁적이며 대답했다."그건 말씀 안 하셔서 모르겠지만 기다리신 지 한참 됐어요."한태군은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비서와 전유준도 빠르게 뒤따라갔다.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유이는 노곤노곤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다가와 강유이를 끌어당겼다. 강유이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강유이는 넋이 나간 얼굴로 머리를 들었다. 한태군은 급하게 달려왔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왜 전화 안 했어?""문자에 답장이 없길래... 그리고 너 회의하고 있었다며?"강유이는 머리를 숙이며 이어서 말했다."바쁜데 귀찮게 하고 싶..."강유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태군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손등에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말이다.강유이는 한태군을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숨 막혀."한태군은 그제야 힘을 풀었다. 하지만 강유이를 안고 있는 손은 풀지 않았다."바보야, 문자에 답이 없으면 전화해야지. 나한테 직접 물어보지 않고 바쁜지 안 바쁜지 어떻게 알아?""회의 때문에 답장 못 하겠거니 했지. 회의가 그렇게 많은데 안 바쁠 리가 없잖아.""바쁘긴 하지."한태군은 강유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네 전화가 언제나 일 순위야."강유이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슬슬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쑥스러운 듯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나 이만 돌아갈래."한태군은 강유이의 손목을 잡았다."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내가 퇴근할 때까지 같이 있자."강유이는 일부러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싫어, 심심하단 말이야.""안겨서 갈래? 걸어서 갈래?"한태군은 미소를 지으면서 강유이의 허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강유이가 가볍게 피하자 다른 손으로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도망은 어림도 없지."강유이는 설사 누가 자신들을 볼까 봐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따라갈 테니
"그래?"한태군이 머리를 숙여 사과처럼 빨개진 강유이의 귀를 바라봤다."강한 부정은 오히려 긍정 같은데?"강유이는 몸을 올려 한태군의 가슴을 밀어냈다. 시선은 어디에 둘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너 바쁘다며..."한태군은 강유이와 이마를 맞댔다. 그의 따듯한 숨결이 그녀의 얼굴을 맴돌며 간지럽혔다.강유이의 눈초리는 파르르 떨렸다. 심장은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재촉했다."얼른 일하러 가."한태군은 여전히 강유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은 아주 순수했다. 그러기에 더욱 놀리고 싶었고 덩달아 설레기도 했다."유이야..."한태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강유이를 불렀다. 강유이는 짧게 대답하며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의 말이 아닌 따듯한 입술이었다.강유이는 호흡하는 법도 잊은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또다시 한태군에게 주동권을 뺏기고 말았다.한태군의 키스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사람을 취하게 했다. 이는 알코올의 작용하에 취하는 것과 완전히 달랐다. 그에게는 사람을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니 말이다.한태군은 강유이가 곧 질식할 때가 되어서야 서서히 풀어줬다. 그리고 여운에 잠긴 듯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바보야, 숨은 쉬어야지."강유이는 한태군의 품에 기대며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나 좀 그만 괴롭혀.""하하, 이것도 괴롭히는 거면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래?"강유이는 순진한 표정으로 머리를 들며 물었다."앞으로 뭐?""궁금해?"한태군은 강유이를 향해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다.강유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녀는 황급히 한태군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그만 말해!"한태군은 미소를 지었다. 당장이라도 겁먹고 도망갈 강유이의 모습에 그는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난 일하러 갈게."한태군은 책상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금세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강유이는
한태군은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래."한태군은 전유준에게 입장권을 사도록 지시하고 강유이를 데리고 관람차 위로 올라탔다.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은 관람차가 상승함과 동시에 점점 더 많이 보였다. 강유이는 창가에 기댄 채 반짝이는 눈으로 야경을 바라봤다. 반면 한태군의 시선은 시종일관 강유이에게 집중 되어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을 단 1초라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말이다."관람차를 같이 탄 커플은 무조건 헤어지게 되어 있는데, 오직 꼭짓점에서 키스해야만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강유이는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은 드디어 한데 마주쳤다.한태군은 관람차의 전설을 믿지 않았다. 꼭짓점에서 키스를 하든 안 하든 강유이와 영원히 함께 할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대로 가득한 강유이의 순진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한태군은 손을 뻗어 강유이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이렇게?"관람차가 어느샌가 꼭짓점에 도착하고 한태군은 머리를 숙여 강유이와 입술을 겹쳤다. 전보다 훨씬 격렬한 키스에 그녀는 힘이 풀린 채로 가만히 안겨만 있었다. 심장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저릿저릿했다.잠깐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 지나가고 두 사람은 관람차에서 내렸다. 관람차의 화려한 불빛을 등진 덕분에 다행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릴 수 있었다.강유이는 발을 헛디디고 휘청거렸다. 그러자 한태군이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며 미소를 지었다."다리에 힘 풀렸어?""아니거든!"'남들이 듣고 오해하면 어떡하려고...!'전유준은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두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고 대신 문을 열어줬다. 강유이가 먼저 올라타고 한태군은 신턴 빌라로 가자고 말하고는 뒤따라 올라탔다.차는 신턴 빌라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이 차 안을 간간히 밝혔다.강유이는 살짝 머리를 돌려 한태군을 바라봤다. 한태군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창문에 기대어 있었다. 살짝 풀어헤친 셔츠 덕분에
"진찬이 유이를 노리고 있다고?"반재신의 질문에 한태군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무래도 정씨 집안 대신 다른 집안을 이용할 생각인 것 같아. 여준우는 쉽게 속을 사람이 아니니 유이를 속여 반씨 집안의 도움을 받을 작정이겠지."여준우는 진찬의 수단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찬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외국에 있는 반지훈이라면 설득할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진찬의 입장에서 황실의 사생아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진정한 귀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진예은을 이용해 강유이를 꽉 잡고 있어야 했다.반재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멍청한 데다가 주제도 모르네."반씨 집안에는 강유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재신도 있고, 반재언도 있고, 반지훈도 있었다. 그의 옅은 수로는 그들 모두를 속일 수 있을 리 절대 없었다.한태군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그래도 너무 얕보지는 마. 겉으로 보기에는 멍청해 보여도 사람 뒤통수치는 실력이 장난 아니야. 너희 형제와 지훈 아저씨는 쉬운 상대가 아니지만 유이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해. 아마 갖은 수를 써가며 유이한테 다가가려고 할 거야."반재신은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아안 헤리스 때문에 위기감이 생긴 건 아니지? 그러면 너한테 실망할 것 같은데.""나의 위기감은 너의 태도에 달렸어. 만약 네가 우리 사이를 반대한다는 걸 아안 헤리스가 알면 아마 더 대놓고 들이댈걸?"한태군의 궤변에 반재신은 피식 웃었다."말은 참 잘해.""부디 정확한 선택을 하길 바랄게."한태군은 반재신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한태군의 차가 멀어진 후에도 반재신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화단 뒤에서 인기척을 듣고 몸을 돌리며 심호흡했다."강유이, 나와."반재신에게 제대로 들킨 강유이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화단 밖으로 나갔다."언제부터 들었어?""그게... 한 몇 분 전부터?"강유이는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다 반재신이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