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이의 말을 들은 진예은이 멍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숙소를 가득 채웠던 적막함은 결국 웃음소리에 사라지고 말았다."왜 웃는 거야?"강유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방금 완전 양아치 같았어."진예은이 웃다가 강유이를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그렇다고 해서 뭐, 룸메이트가 내 사생활까지 관여할 의무는…""내가 네 신분 다 공개할 거야.""…"강유이의 말을 들은 진예은이 몸을 일으켰다."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응, 협박하는 거야. 그리고 학교에 있는 사람들한테 네 그 아이 사실은 네 오빠가 버린 아이라는 것도 말할 거야, 네가 지금 키우고 있는 아이 네 오빠 아이라고 다 말할 거야.""진찬이 너 찾아갈까 봐 걱정되지도 않아?"강유이의 말을 들은 진예은이 웃으며 물었다.그러자 강유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럼 찾아오라고 하지 뭐, 나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워, 하루 이틀 겪는 것도 아니고."진예은은 계속 강유이를 무시하며 그녀를 쫓아 보낼 생각이었다.하지만 강유이는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웃기는 데까지 성공했다. "너 이렇게 뻔뻔하다는 거 이제 알았다.""진찬이 도대체 뭐라고 협박한 거야?"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다가가 물었다.강유이의 말을 들은 진예은이 한참을 망설이다 강유이를 보며 입을 뗐다."만약 진찬이 나한테 일부러 너랑 친해지라고 했다면?"진예은의 말을 들은 강유이가 멈칫했다.그런 강유이를 본 진예은이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정 씨 집안도 너를 건드려서 진찬에게 이용당할 가치를 잃었으니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사람이야. 만약 내가 네 믿음을 얻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네 피를 빨아먹었을 거야. 심지어 네가 자기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오라고 했을 수도 있어."강유이는 반 씨 집안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있는 공주님이었기에 그녀가 입만 연다면 반 씨 집안에서 절대적으로 따랐을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지금 내가 이용당할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거야
그가 눈을 내리뜨고 살짝 멈칫거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나였어?”그가 허리를 굽히며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럼 유이가 좀 알려줄래? 내가 어쩌다 우리 유이의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강유이가 그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그러니까 리사가 어젯밤에… 너를 유혹했다면서.”한태군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가 그 이유로 토라졌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지금 강유이는 누가 봐도 질투하는 게 분명했다.그가 웃었다.“신경 쓰여?”“신경 안 쓰이게 생겼어? 넌 내 남자친구잖아. 그런데 걔가 막 그랬다면서? 나도 아직 못…”강유이는 하마터면 내뱉을 뻔한 말을 급하게 삼켰다. 그녀는 자신도 그와 그런 일을 못해봤는데라는 말을 뱉을 뻔한 것이다.어떻게 자신이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을 수가 있단 말인가?만약 이 뒷말을 한태군이 듣게 된다면, 분명 그녀를 변태라고 생각할 것이다.한태군이 흥미진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직 뭐?”그녀가 서둘러 말을 바꿨다.“아직 못… 못 들어가 본 네 침실을 걔가 먼저 들어갔다고!”“아.”한태군이 눈초리를 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웃음기가 더욱 진해졌다.“유이 너 내 침실이 그렇게 들어와 보고 싶었어?”“난… 난 그냥 구경하려고. 왜 그것도 안돼?”강유이가 급하게 그를 밀어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어쨌든 어젯밤 리사가 너한테 그런 짓을 했다며. 그럼 너 분명 걔 알몸을 다 봤을 거 아니야!”그녀가 열성을 내며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태군은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너 지금 웃어?”강유이가 더욱 성을 냈다.그가 팔을 뻗어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안 봤어.”“거짓말.”“거짓말 아니야.”한태군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녀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다.“벗은 건 걔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꼭 내가 그걸 봐야 해? 괜히 못 볼 걸 보고 내일 예정에도 없던 안과에 갈 생각은 없어.”“하지만… 예은
병원.리사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검은 형체가 병실 앞에 멈춰 섰다.레이린 정은 침대의 가장 자리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어두웠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그녀가 잔뜩 경계하며 고개를 돌렸다.“누구야.”남자가 씩 미소 지었다.“한태군 도련님의 말씀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그분께서 레이린 정 씨를 한번 봐드릴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레이린 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곧바로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지금 그런 게 필요할 것 같아? 이제 나한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난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어.”맨발인 사람은 구두 신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현재 모든 걸 잃은 그녀는 더욱 두려울 것이 없었다.남자가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갔다.“레이린 정 씨, 데이비 씨를 아십니까?”데이비 렌지. 그 이름을 레이린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Y 국 여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데이비는 예전에 몇 번인가 그녀에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초청했었지만 그녀는 번번이 거절했었다. 데이비가 그녀와 식사를 함께 할 목적이 무엇인지 그녀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의 그녀는 가문도, 신분도 든든했기에 데이비도 함부로 그녀를 협박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그녀의 얼굴이 구겨졌다.“무슨 뜻이야.”“데이비 씨께서는 레이린 정 씨의 얼굴이 망가졌어도 개의치 않으시답니다.”레이린이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남자가 이어서 말했다.“레이린 정 씨도 데이비 씨에 대해서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분 손에 들어간 여자는 하나같이 좋은 결말을 맞지 못했죠. 설마 그렇게 되길 원하십니까?”그녀가 더욱 몸을 세게 떨었다.“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협박이 아닙니다. 기회를 드리는 거죠.”남자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리사의 사진을 그녀의 눈앞에 내밀었다.“이 여자에 대해서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레이린 정이 순간 침묵했다.사진 속 여자는 두 번이나 그녀를 찾
레이린 정은 붕대로 감싼 한쪽 얼굴을 거의 다 가릴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의 상처는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다. 퇴원할 때까지도 얼굴 부기가 내려가지 않은 상태였다. 화려하게 꾸민 리사와 비교했을 때 레이린 정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예전의 그녀였다면 자기보다 예쁜 여자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더 못생기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웨이터가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다. 방문을 지키고 있던 두 남자가 그녀들을 대신하여 문을 열어주었다.방안에는 파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굵직하게 생긴 남자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전형적인 매부리코가 오뚝하게 솟아있었고, 검푸른 눈동자가 날카로움을 더해주고 있었다.그가 와인을 잔에 붓더니 코로 향을 맡았다.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전에 제가 꽤 많이 초대장을 보냈었는데. 오늘에야 이렇게 레이린 정 씨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레이린 정은 그의 말속에 담긴 비아냥거림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눈 딱 감고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데이비가 리사를 훑어보았다.“레이린 씨께서 친구분을 데려오셨네요. 동양인 얼굴의 미인이군요.”레이린이 답하기도 전에 리사가 수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안녕하세요. 리사라고 해요.”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에 레이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여자의 속은 여자가 가장 잘 아는 법이었다.“리사 씨가 입은 드레스가 참 예쁘네요.”그가 자신한테 관심을 보이자 리사가 시선을 내리며 애써 기쁜 마음을 감췄다.“칭찬 고마워요. 이 드레스도 레이린 씨가 선물해 준 거예요.”데이비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지자 레이린이 서둘러 해명했다.“아무리 예쁜 드레스라도 전 더 이상 입을 수 없으니까요.”그녀가 의식적으로 자기 얼굴을 쓰다듬으며 은근한 뜻을 내비쳤다.데이비는 의심이 많은 남자였다. 만약 그에게 그녀가 일부러 리사를 데리고
그때 웬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그들이 앉아있는 식탁 위에 식판을 둔탁하게 내려놓았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놀랄만한 소리였다. 세 사람이 고개를 들고 태연하게 자리에 앉는 반재신을 쳐다보았다.깜짝 놀란 강유이가 테이블 아래에 숨기고 있던 손을 빠르게 원상 복귀시켰다.“오빠…”반재신과 한태군이 허공에서 시선을 부딪혔다. 각자 꿍꿍이가 많은 두 남자가 속을 알 수 없는 시선을 주고받았다.강유이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당장 둘째 오빠와 한태군이 싸우기라도 할 것만 같았다.결국 한태군이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깨며 입을 열었다.“어쩌다 식당에서 밥을 다 먹네.”빅토리아대학교의 식당은 요리 가짓수가 많았다. 다만 대부분이 양식이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식당을 제외하고도 학교 내부에는 한식을 포함한 다른 레스토랑도 있었다.많은 부잣집 자제들은 산해진미를 먹기 좋아했기에 가격대가 높은 레스토랑을 많이 찾았다. 반재신 역시 평소에 한식을 즐겨 먹었기에 식당에는 자주 들르지 않았었다.반재신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너도 오는데. 나라고 못 올까.”그가 담담하게 웃었다.“그건 모르는 일이지.”반재신은 한태군이 허장성세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리사가 너를 유혹했다며? 쯧, 정말 상상도 못할 장면이군.”강유이가 무의식적으로 바짝 긴장했다.“오빠!”하필이면 지금 가장 예민한 그 주제를 건드리다니!한태군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피식 웃기 시작했다.“내가 보내줬었잖아. 동영상. 설마 그거 안 봤어?”반재신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를 악물었다.“동영상과 실물이 어떻게 같겠어. 난 기껏해야 눈 좀 더러워졌을 뿐이고. 넌 껍질이라도 한 꺼풀 벗겨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강유이가 의아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두 사람 지금 무슨 동영상 말하는 거야?”반재신과 한태군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야.”“……”그때 진예은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막 호텔에서 나오자 백이령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리사가 입술을 깨물더니 통화 버튼을 눌렀다.“이령 언니.”한편, 어두운 골목에서 아무도 모르게 보디가드가 몸을 숨긴 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어슴푸레하던 하늘에 어느새 검은 장막이 드리워졌다.검은색 세단 한 대가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한 씨 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뒷좌석에 앉은 한태군은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휴대전화 잠금 화면에는 강유이가 인어 분장을 한 채 모델로 찍었던 향수 광고 사진이 걸려있었다.사진 속 그녀는 나른한 표정으로 암초 위에 엎드려있었다. 눈처럼 하얀 그녀의 피부 위로 물방울이 송공송골 맺혀있었다. 사슴처럼 동그란 그녀의 눈은 청정수보다도 깨끗하고 맑았다.이런 눈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을 눈으로 보고, 가슴 따뜻하거나 또는 시린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성장을 하면서 예전의 천진난만함을 조금씩 잃어간다.강유이가 갖고 있는 천진무구하고, 세상의 찌든 때에 물들지 않은 정신은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너무나 귀하여 그는 그녀의 그 천진난만함을 영원히 지켜주고 싶었다.가는 길에 보디가드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그가 전화를 받았다. 보디가드는 어젯밤 리사가 확실히 데이비와 함께 호텔에 묵었고, 오늘 그녀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그녀한테 연락을 해왔다고 회보했다.한태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리염의 소식은 퍼뜨렸나요.”“이미 퍼뜨려두었습니다. 아마 리염의 일 때문에 연락한듯합니다. 그쪽에서 의도적으로 리사를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당시 그녀가 한 씨 가문에 들어올 때 배후에 있던 누군가도 한몫을 챙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리사가 권력에 오르기만 하면 그녀의 배후에서 그녀를 도와 계획을 주도했던 누군가도 이득을 얻게 된다.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도와 나설 이유가 없었다. 이용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진작 버렸을 것이다
하나를 틀어쥐고 다른 하나를 상대하는 것이다. 차라리 이 방법이 두 화근이 손을 잡고 강유이를 상대하여 위험에 빠뜨리는 것보다 훨씬 안전했다.이제 리사는 굳이 그가 손을 쓰지 않아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같은 시각, 리사가 택시에 앉아 메모지에 적혀있는 별장 주소로 향하고 있었다.그녀는 한 씨 가문에서 쫓겨난 일을 차마 백이령에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이 남자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만 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 백이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다짐했다.택시가 길옆에 멈춰 섰다. 리사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주위가 온통 어두컴컴했다. 그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화려한 별장이 아니라 버려진 폐공장 같았다.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길게 드리워져있었고 사방이 황폐하고 어두웠다.당황한 그녀가 운전기사에게 물었다.“기사님, 혹시 주소를 착각하신 거 아니세요?”운전기사가 대답은 하지 않고 갑자기 시동을 껐다.순간 위험을 감지한 리사가 급하게 손잡이를 잡아당겨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하지만 얼마 달리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몇몇 장정들에게 길을 가로막혔다.남자가 리사를 불빛이 환한 판잣집으로 끌고 갔다. 리사가 울며 발버둥 치자 남자가 그녀의 뺨을 세게 내려치며 바닥에 내팽개쳤다.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남자가 서서히 자신한테 다가오는 모습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보다가 소리 질렀다.“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난… 난 데이비 씨의 여자라고요!”선두에 선 남자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데이비 씨의 여자라고? 나 참 웃기지도 않아서. 왜, 너 설마 어젯밤 네가 정말 데이비 사장님과 잤다고 생각하는 거야?”리사의 표정이 굳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남자가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움켜잡고 히쭉 웃었다.“데이비 사장님께서 아무 여자나 상대하시는 줄 알아? 특히 자기 구역에 속한 여자는 절대 건드리지 않아. 한 씨 가문에서 버림받고 암시장에 팔려간 여자를 그분이?
그녀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지난번 그녀가 달려나가 한태군을 찾으러 갔을 때 보디가드는 이미 한태군의 모습을 기억했었다.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문뜩 뭔가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빼꼼 내밀고 한태군에게 물었다.“저기 도련님께서는 아침을 드셨나요?”한태군이 싱긋 미소 지었다.“번거로우시겠지만 제 몫까지 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너 아침 안 먹었어?”그가 나른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너한테서 밥 한 끼 얻어먹으려고 했지.”그녀가 양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말했다.“밥을 먹으려면 돈을 내야지.”한태군이 갑자기 손을 내밀더니 그녀를 끌어당겨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깜짝 놀란 그녀가 서둘러 주방을 힐끗 바라보았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아침 준비를 하느라 거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잔뜩 긴장한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뭐 하는 거야.”“돈 내라며.”그가 그녀의 턱을 붙잡더니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일단 이자부터 줄게.”“무슨 이자… 읍!”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태군이 예고도 없이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그녀가 호흡을 멈추며 그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실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초리가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곡선을 그렸다.따듯하고 부드러운 그의 입술이 마치 그녀의 영혼까지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순간 아직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다는 것을 떠올린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를 밀어냈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뾰로통하게 중얼거렸다.“너랑 말 안 해.”한태군이 낮게 쿡쿡 웃었다. 그가 그녀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그래도 결국엔 나랑 말해줄 거잖아”화가 난 유이가 입을 살짝 벌리고 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그는 전혀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았다. 손가락 위로 보이는 작은 이빨을 보고 그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며 말했다.“토끼도 급하면 진짜 사람을 무는구나.”아침 준비를 마친 도우미 아주머니가 거실을 내다보았다. 두 사람은 진작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