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원은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꽃다발 속에는 빨간색의 작은 선물 상자도 있었다. 선물 상자를 열어보자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가 보였다. 진여훈이 그 새로 반지까지 준비할 줄은 몰랐는지라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너 혼자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사실 하정원은 아직 진여훈과 재혼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진여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지난번에 결혼할 때 반지 하나 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었어. 그래서 이건 지난번의 결혼반지라고 생각하면 돼.""지난번의 결혼반지라고?"진여훈은 상자 속에서 반지를 빼내더니 하정원의 앞으로 걸어갔다."사이즈가 맞는지 껴보자."진여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하정원은 그렇게 어리둥절한 채로 반지를 꼈다.하정원은 한참 지난 후에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진여훈이 웃음을 참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의 수에 넘어간 게 틀림없었다."너 이거 사기야!"진여훈은 하정원을 안아 올려 자기 무릎을 내려놓더니 뻔뻔하게 말했다."사기 아니야. 난 얼마나 진지한데.""이거 사기 결혼이라고!"진여훈은 그녀가 바둥거리지 못하게 꼭 잡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기 결혼이라니, 재혼이라고 해야지."진여훈은 그녀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지금 당장 답을 달라는 뜻은 아니야. 천천히 생각해 보고 네 마음을 알려줘. 거절한다고 해도, 그게 네 마음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어.""내가 거절하면 포기하겠다는 뜻이야?"진여훈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정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니, 네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이야. 계속 연애를 하는 것도 난 나쁘지 않거든."청혼하다 보니 예전 생각이 나기 마련이었다. 과거의 진여훈은 자신이 하정원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두 사람이 정략결혼으로 인해 묶였을 때, 진여훈은 하정원을 피하기에 바빴다. 두 사람 다 이 결혼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서로에 대한 편견도 풀 새 없이 점점 커져가기만 했
김경원 덕분에 천지현은 완전히 웃음거리로 전락하였다. 하정원이 자신의 감정사에 개입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더니, 정작 타인의 감정사에 개입한 사람은 그녀 본인이었으니 말이다.천지현이 김경원에게 속은 것은 동정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경원이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끈질기게 들러붙은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더구나 김경원에게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과 재혼하기를 요구했으니 말이다.하정원이 파티에 참석한 것을 보고 수많은 사람이 인사하러 다가갔다. 하정원은 그들의 열정이 약간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응해줬다."정원 씨, 진여훈 씨랑 다시 데이트를 시작했다면서요? 너무 로맨틱해.""그러게요. 소문으로는 정원 씨한테 흠뻑 빠졌다고 하던데요."파티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입에 발린 소리에 하정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재혼을 결정하지도 않은 마당에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재계는 인맥 관계가 복잡해서 작은 실수도 크게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하정원이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진여훈이 인파를 뚫고 나타났다."혹시 제 얘기를 하셨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저한테 직접 물어봐요."재벌 2세들은 술잔을 들고 진여훈을 에워쌌다."여훈 씨한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있어서요. 그거 진짜예요?"진여훈은 그들 중 한 명이 건네는 와인잔을 받아 들며 하정원을 바라봤다."아니에요, 저 아직 답변 못 받았어요."진여훈과 하정원의 결혼 소식이 처음으로 퍼졌을 때, 대부분 사람이 진여훈을 안타까워했다. '방탕한' 여자와 정략결혼의 명의로 억지로 묶였으니 말이다.그 와중에 혹시 자신에게도 기회가 남아있지는 않을까 이혼 소식만 호시탐탐 노리는 여자도 있었다. 돈 많은 남자는 아무리 돌싱이라고 해도 여자 없을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진여훈 같은 돈과 권력이 다 있는 남자는 더욱 그랬다.요즘 뉴스는 진여훈과 하정원의 재혼 소식으로 도배 되었다. 그중에는 진여훈이 하정원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는
원하지만 분수를 지키는 진여훈은 뻔히 보이는 데도 아닌 척하는 남자보다 훨씬 나았다. 게다가 그는 단 한 번도 지나친 행동을 한 적 없었다. 어쩌면 이게 밀당의 최고 경지가 아닌가 싶다.진여훈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하정원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같은 마음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이든 그녀가 먼저 말하고 행동하기를 기다렸다.하정원은 심란한 마음으로 고민했다. 이 와중에 누가 지나가다가 두 사람을 발견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결국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우리 이만 돌아가자."진여훈은 그녀와 이마를 맞대며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어디로?""다, 당연히 집이지..."하정원의 머릿속은 창백해진 지 오래였다. 진여훈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우리 집?"하정원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멈췄다. 진여훈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집으로 가고 싶으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두 사람이 타고 있는 차는 신해동에 위치한 한축 별장에 도착했다. 이는 진여훈의 명의로 되어 있는 별장이었는데 비워 둔 지는 한참 되었다.하정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진씨 저택으로 가는 게 아니었어?""우리 집이 어떻게 진씨 저택이야.""야, 이 사기꾼아!"진여훈은 하정원을 안고 방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책상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사기꾼 아니라니까."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었던 하정원은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나 샤워...""이따가 같이 씻자."진여훈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머리 숙여 키스했다....저녁, 진씨 저택.한창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집사가 진철의 곁으로 와서 무언가 말했다. 진철은 잠깐 흠칫하더니 금세 미소를 지으며 집사를 내보냈다.호기심이 많았던 강유이가 먼저 물었다."삼촌은 또 안 돌아온대요?""
강시언이 물었다."무슨 방법?"강해신은 턱을 괴며 대답했다."우리가 군오에 있을 때 오지 못하도록 바쁘게 만들어 주는 거지."한축 별장.정원의 가로등 불빛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침실의 어두운 조명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하정원은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때 진여훈이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혹시 후회해?""후회할 게 뭐가 있어."하정원은 머리를 숙였다. 지금의 복잡미묘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절대 후회는 아니었다.이는 마치 꿈과 같았다. 꿈에서 그녀는 탈피하고 새롭게 태어났다. 새로운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니 막연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너 지금 자책하고 있지?"진여훈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 넘기며 짧게 뽀뽀했다."더 이상 후회할 여지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하정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여훈이 그녀의 입술을 쓰다듬으며 물었다."내가 밉지는 않아?""아니, 미워해도 나를 미워해야지. 유혹을 견디지 못한 사람은 나잖아."하정원은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이불을 꼭 끌어안았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 진여훈은 소리 내 웃었다.저녁 8시, 두 사람은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낸 도우미는 식탁 앞에 서 있었다."내려오셨어요."하정원이 식탁 앞으로 가서 앉으려고 할 때, 진여훈이 먼저 그 자리에 앉아서 그녀를 자기 무릎에 앉혔다. 도우미는 눈치껏 물러갔다. 하정원은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때렸다. 타격감 제로인 공격은 그의 눈에 귀엽게 보이기만 했다."네가 뻔뻔한 건 잘 알겠어. 근데 앞으로는 내 생각 좀 해주면 안 돼?"진여훈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뭐 어때, 우리는 부부잖아.""전 부부거든."진여훈은 그녀의 머리를 홱 돌려 키스하더니 뜨거운 눈빛으로 물었다."전 뭐?""협박할 생각 하지 마."하정원이 머리를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투덜대는 것
강해신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내가 왜? 내가 아무리 심심해도 그렇지, 한씨 집안을 건드릴 이유는 없거든."강유이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 듯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가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할 때, 강시언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가로챘다."유이야, 삼촌이랑 숙모가 화해 했으니, 우리는 이만 서울로 돌아가자."강시언의 화제 전환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강유이는 벌써 자신이 하려고 했던 말을 잊은 듯 얼굴을 긁적였다."오늘?""내일.""그래, 그럼 난 숙모랑 인사하러 가야겠어."강유이는 몸을 돌려 저택 안으로 돌아갔다.강해신에 비해 신중한 편이었던 강시언은 그제야 머리를 돌리며 물었다."들키지는 않겠지?""당연하지. 한씨 집안에서는 기껏해야 해킹이 군오에서 이뤄졌다는 것밖에 모를 거야. 우리가 서울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문제 없어."강해신은 자기 기술에 아주 자신만만했다. 서울로 돌아가기만 하면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강시언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다행이고."같은 시각, Y국의 한씨 저택.집사와 비서는 불안한 표정으로 서재에 서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소년은 노트북을 켜고 데이터를 손보고 있었다. 길쭉한 손가락이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오갈 때마다 화면에는 파란색 코드가 줄줄이 나타났다.약 한 시간 후, 모든 데이터를 회복하고 난 소년은 덤덤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돌렸다."다 됐어요."간단하게 살펴보고 난 비서는 드디어 시름을 놓은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도련님."오늘 회사 시스템이 예고 없이 해킹을 당했다. 다행히 외부로 새어 나간 기밀은 없었다. 안 그러면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의 손해가 생길 것이다. 도대체 누가 해킹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악의를 품은 공격보다는 단순한 장난에 가까웠다.한태군은 이마를 짚었다. 잔잔한 호수 같은 눈동자에는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남들과 다른 유년기를 보낸 그는 어린 나이에 벌써 냉혹하고 차분한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진여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좋으면 직접 낳아."하정원은 미소를 지우고 그의 손을 내팽개쳤다."왜 또 헛소리야?!"진여훈은 소리 내어 웃으며 이미 몸을 돌려버린 그녀를 따라갔다.약 두 시간 후, 비행기는 마침내 서울 공항에 착륙했다. 연희승은 벌써 도착해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쌍둥이가 짐을 밀고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바로 트렁크를 열어 짐을 옮겼다."군오에서 재밌게 놀았어?"강유이는 조수석에 앉으며 물었다."네, 아빠랑 엄마는요?""두 분은 군오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고 계셔."연희승은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강유이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갑자기 그의 목에 빨간색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러 옷깃으로 가리기는 했지만, 그냥 무시하기에 너무 선명한 흔적이었다."아저씨, 목은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혹시 모기한테 물렸어요?"강시언과 강해신은 바로 연희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연희승은 약간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척추가 아파서 마사지하다가 이렇게 됐어."강유이는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누군가에게 물린 듯한 흔적은 반지훈과 강성연의 목에서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강유이가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을 보고 연희승은 몰래 한숨 돌렸다.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똑똑한 세쌍둥이를 속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AM그룹.한재욱의 전화를 받은 반지훈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먼저 전화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 했다.한재욱이 Z국에 온다는 것을 듣고 반지훈은 결재마저 멈추고 물었다." Z국에 와서 얼마 정도 있을 거예요?""꽤 오래 있을 거야."한재욱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태군이도 같이."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재욱의 말을 듣고 있다가 그는 가늘게 눈을 뜨며 되물었다."해커요?""내가 보기에는 그냥 장난 같아. IP 주소가 Z국 군오에 있던데, 혹시 네가 조사해 줄 수 있을까 해서 연락했어."반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지윤이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망설이다 물었다.“혹시 이상한가요?”강성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상하긴요. 지윤 씨 마음에 들면 되는 거죠.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기 위해 입은 것도 아니잖아요. 여자가 예쁘게 화장하고, 차려입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지, 다른 사람 보기 좋아하라고 꾸미는 게 아니잖아요.”치마를 입으니, 지윤도 제법 소녀같이 보였다.그녀는 본바탕이 나쁘지 않았다. 시원시원하게 생긴 이목구비에, 정갈한 눈썹. 남장을 해도 핸섬했을 외모였다.그런 그녀가 머리를 풀고, 치마까지 입으니 더욱 색다르게 느껴졌다.강성연은 지윤의 스타일이 왜 갑자기 이렇게 돌변한 건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굳이 아는 척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지윤은 서류를 건네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어가던 그녀는 마침 희승과 마주쳤다.고개를 들고 지윤을 바라본 희승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순간 몇초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번뜩 정신을 차린 그가 빠르게 지윤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녀를 비상계단으로 잡아끌었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옷이 왜 이래요?”그녀가 되물었다.“전 이렇게 입으면 안 돼요?”희승이 당황하더니 시선을 피했다.“당연히 그건 아니죠. 그냥… 별일도 없는데 회사에서 이런 차림은 적합하지 않잖아요.”지윤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당신이 치마 입은 여자가 좋다면서요.”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그저께 밤에요.”“내가 그렇게 말했다고요?”“술에 취해서 그렇게 말했잖아요.”술에 취했다는 그녀의 말에 희승은 곧바로 후회했다. 그가 한 손으로 자기 이마를 짚었다. 역시 술이 원수였다.“난 정말 그날에 내가 뭘 했던지 기억이 안 나요. 그런 말을 했던 건 더더욱 생각 안 나고요.”보통 술에 완전히 취한 상태였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쯤 취해있었다면 자신이 뭘 했는지 정도는 당연히 인상이 남을 것이고.그런데 어쩐
여자한테 마음이 있으면, 남자도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남자가 만약 명품 감정사를 한다면 여자보다 더 안목이 뛰어날 것이다.희승은 반지훈 곁에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수많은 유혹적인 여자들을 보아왔었다. 애초에 그는 강미현한테도 호감이 가지 않았다.단지 그녀가 반지훈한테 은혜를 베풀었다고 오해해서 마지못해 존경했던 것뿐이었다.하지만 지윤의 청순은 거짓이 아니었다. 청순을 떠나서 너무 정직하고 솔직했다. 그녀는 무슨 말이든 생각나는 대로 직설적으로 뱉어냈다.만약 그렇다면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그날 지윤을 건드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만취 상태였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윤은 아마 남녀가 함께 밤을 보낸다는 그 말 자체를 오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그날 밤, 나랑 지윤 씨 같이 잤어요?”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희승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뭘 더 했나요?”지윤이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의 목을 빤히 쳐다보았다.“내가 당신을 물었어요.”그가 웃으면서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이거 말이죠?”그녀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책임질 것 없네요. 우린 아무것도 안 했으니깐요.”“하지만 같이 잤잖아요.”“하지는 않았죠.”지윤이 잠깐 침묵하다가 물었다.“뭘 더 해야 해요?”희승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당연히 아이를 만들만한 행동이죠.”“짝!”지윤이 그의 뺨을 때렸다.“변태.”그러더니 몸을 휙 돌리고 밖으로 나가버렸다.희승이 그녀가 때린 뺨을 매만졌다.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았지만 어이없고 서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그저 그녀한테 설명을 해줬을 뿐인데, 순식간에 변태로 내몰리다니?-이틀 후.한재욱과 한태군이 탄 비행기가 군오에 도착했다. 진철이 직접 그들을 마중하러 나갔다.진철과 한재욱이 마주 보며 한참 동안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진철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한태군의 시선이 마주쳤다.진철은 순간 그를 알아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