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 갑작스럽게 원유희를 부르자 다른 직원들이 바로 수군대기 시작했다.“유희 씨는 갑자기 왜 부른 거지?”“모르겠네요.”“왜겠어요. 해고하려는 거겠죠. 맨날 울상으로 있는 직원 뭐가 이쁘다고 남겨두겠어요?”안가희가 비아냥거렸다.임원의 안내에 따라 복도를 걷는 원유희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떨리는 손으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익숙하면서도 끔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사무실 의자에 앉은 김신걸과 시선을 마주한 원유희가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저 눈빛……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 같아…….“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원유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몸 빨리 회복했네?”순간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원유희가 몸을 움찔했다.‘설마…… 그거 하나 물으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이쪽으로 와봐.”반박할 여지 따위 느껴지지 않는 강압적인 말투에 원유희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의 심정이 이런 걸까 싶었다.다음 순간, 김신걸의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홱 잡아당겼다.“으악!”중심이 앞으로 확 쏠린 원유희의 두 팔이 탄탄한 김신걸의 허벅지에 닿았다.정장 바지를 사이에 두고도 허벅지의 근육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다.뜨거운 것을 만진 듯 기겁하던 원유희가 손을 떼어내려던 그때, 김신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가만히 있어.”허리는 숙이고 두 손은 그의 허벅지에 올린 묘한 자세를 유지하던 원유희가 고개를 돌렸다.“도대체 뭐…….”하지만 다음 순간, 김신걸이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어디서 많이 본 휴대폰이지?”김신걸의 질문에 당황한 원유희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이건 어떻게 찾은 거지? 명화가 준 건가? 아니야. 이 와중에 어떻게 찾은 건지가 뭐가 중요해…… 이것 때문에 온 거구나…….’“네 입으로 말해. 널 어떻게 죽이면 좋을까?”김신걸의 입술이 그녀의 귀에 키스라도 할 듯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날 밤
“대표님, 커피 드세요.”익숙한 목소리에 원유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안가희? 안가희가 직접 커피를 내온다고?고개를 돌린 그녀가 김신걸의 표정을 살폈다.한편, 문 밖에 있는 안가희는 최대한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려 애썼다.안가희가 직접 상사에게 부탁해 얻어낸 기회다.김신걸과 잘 된다면 무조건 끌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말이다.안가희는 누가 봐도 뛰어난 미인이었으니 상사도 김 대표가 그녀에게 반했다는 주장에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살짝 당황한 듯한 원유희의 표정을 살펴보던 김신걸이 말했다.“들어와요!”‘뭐? 이렇게 들어오라고 하면 난 어쩌라고!”깜짝 놀란 원유희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이 모습을 동료에게 들킨다면 앞으로 직장 생활이 더 힘들어질 게 더 뻔했다.이렇게 생각한 원유희가 순간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의자에 앉은 김신걸을 본 순간, 안가희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요염한 발걸음으로 걸어온 안가희가 커피잔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대표님, 제가 직접 내린 커피예요. 마음이 드셨으면 좋겠네요.”커피를 힐끗 바라보던 김신걸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이름이 뭐죠?”““가희, 안가희라고 해요.”안가희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커피는 누가 내오라고 한 겁니까?”“진 이사님께서…….”“정말 커피만 주려고 온 거 맞습니까?”김신걸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안가희를 훑어보았다.“그게…… 오늘 처음 뵙긴 했지만 절 좋게 봐주신 것 같아서요. 들어오실 때 절 뚫어져라 보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먼저 가겠다고 했어요. 절 어떻게 하든…… 대표님 마음대로 하세요.”책상 아래에 몸을 숨긴 원유희는 안가희의 당돌한 목소리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세상에…… 저런 말을 대놓고 한다고? 김신걸은 미친 자식이라고. 아니지. 정말 안가희가 마음에 든 건가? 안가희…… 얼굴은 괜찮으니까…….”“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래요?”원하던 질문이 들리고 안가희는 또각또각 더 앞으로 다
한편, 이 상황이 난처한 건 원유희도 마찬가지였다.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여유롭게 상황을 살피던 김신걸이 원유희의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윽!”원유희가 자연스럽게 김신걸의 가슴 위로 쓰러지고 김신걸이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훔쳐보니까 재밌어?”원유희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이 상황에서 반항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의 스킨십을 지켜보던 안가희가 부들거렸다.‘안가희…… 저 여우 같은 계집애가 언제…….’하지만 분노를 분출하기도 전에 차가운 김신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더러운 커피 들고 당장 꺼져!”얼굴이 창백해진 안가희가 한 손으로는 옷섶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커피잔을 든 채 도망치 듯 사무실을 나섰다.당황한 나머지 셔츠를 풀어헤친 모습을 다른 직원들에게 들키면 어쩌지 생각도 안 되는 모양이었다.“이러면…… 나 직장 생활 더 힘들어져.”억울하다는 듯한 원유희의 목소리가 그녀의 턱을 들어 시선을 마췬 김신걸이 말했다.“너 똑똑하잖아. 너라면 잘 해결할 거라 믿어.”‘새 휴대폰을 숨긴 것에 대한 벌이구나…… 다행이야. 이 정도로 끝나서…… 정말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는데…….’김신걸의 악마 같은 모습을 이미 알고 있는 원유희는 이마저도 다행이다 싶었다.잠시 후, 김신걸이 회사를 나서고 안가희는 잔뜩 화난 발걸음으로 탈의실로 향했다.왠지 불안한 기분에 그 뒤를 따라들어가보니 안가희가 미친 듯이 그녀의 락커에 든 물건을 내던지고 있었다.“안가희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다급하게 다가간 원유희가 바로 그 앞을 막아섰지만 그 순간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휴대폰 액정이 처참하게 깨지고 원유희가 안가희를 노려보았다.“미쳤어요?”분노로 목까지 빨개진 안가희가 고래고래 소리쳤다.“하, 정말 이렇게 천박한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대표님은 언제 꼬신 거예요? 하, 두 사람 오늘 처음 만난 거 아니죠? 아, 어쩐지. 사직서까지 내고도 다시 돌아와서 이상하다 싶었어!
“뭐 하세요?”원유희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여채아가 계란후라이를 작은 동물 모양으로 데코까지 하는 걸 본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어차피 걔네들 먹는 데 정신 팔려서 이런 데는 관심도 없을 테니까.”“애들이 뭐든 잘 먹는 건 맞지. 그래도 이쁘게 만들어주면 좋아하잖아. 그거 보려고 이렇게 하는 거지.”아이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모습에 원유희의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엄마랑 화해서 다행이야…….’이 세상에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있을까? 피붙이를 떼어놓고 가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게다가 원유희의 아빠는 좋은 아빠도, 좋은 남편도 아니었다. 집안일과 육아를 엄마에게 전부 맡기는 건 그 시대 아버지들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모자라 도박에, 음주, 그리고 폭력까지…….원유희의 머릿속에 오래 전 일이 떠올랐다. 그날, 또 도박에서 진 아빠는 다음 날 쌀을 살 돈까지 훔쳐 다시 도박판으로 달려가려 했다.그런 그의 앞을 막아선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눈덩이가 퍼렇게 되어버린 엄마를 보며 어린 원유희가 할 수 있는 건 살짝 떨리는 손을 잡아주는 것뿐이었다.‘이제 나도 성인이야. 효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원유희가 등 뒤로 엄마를 꼭 껴안았다.“엄마, 살아계셔서 정말 고마워요.”원유희의 말에 여채아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식탁 앞에 모인 세 귀요미가 정성스레 만든 계란후라이를 허겁지겁 먹고 있다.입 안 가득 음식을 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에 원유희의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할미 진짜 대단해! 계란 너무 귀여워요!”유담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조한이, 상우, 유담이가 먹는 거니까 이 할미가 신경 좀 썼다. 귀여운 거 먹고 더 귀엽게 커야지?”“이렇게요?”포크를 내려놓은 유담이 통통한 두 손을 턱에 괴며 꽃 모양을 만들어냈다.“그래. 그렇게.”딸의 어린 시절과 꼭 닮은 유담의
“난 수정 씨랑 할 말 없어요. 끊을게요.”“원찬식 그 인간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해?”금방이라도 전화를 끊을 것 같은 기세에 원수정이 다급하게 물었다.순간, 당황하던 여채아가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끝을 꽉 부여잡았다.“그…… 그 사람 죽었어요? 전 몰랐는데요.”“그날, 유난히 어둡고 바람이 세게 불던 날이었지. 양일산 꼭대기에서…… 정말 기억 안 나?”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까지 말하는 원수정의 목소리에 여채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당신…….”“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날…… 나 다 봤어.”“원…… 원하는 게 뭐예요?”“몰라서 물어? 유희한테서 떨어져. 멀리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여채아, 3일 줄게. 떠날 건지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갈 건지 잘 생각해 봐.”통화를 마친 여채아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마음속 저편에 묻어둔 기억이 스멀스멀 다시 떠올랐다.‘목격자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게다가 그 사람이 하필 원수정이라니…… 어떻게 하지? 떠나야 하나?’세상 모르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던 여채아가 눈시울이 붉어졌다.‘하느님, 왜 이 정도 행복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건가요?’오후, 퇴근 시간을 앞둔 원유희가 탈의실로 들어왔다.휴대폰을 확인한 원유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엄마가 전화했었네…… 그것도 두 번이나?’깜짝 놀란 원유희가 바로 전화를 했다.“엄마, 무슨 일 있어요?”“괜찮아. 애들 다 잘 있어.”안도의 한숨을 내쉰 원유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아이들이 생긴 뒤로 호들갑만 늘어나는 것 같아요.”“엄마들은 다 그래…….”망설이던 여채아가 말을 이어갔다.“유희야, 요즘에는 기숙 어린이집도 좋은 데 많다던데. 애들 거기에 맡기는 게 어떻겠니? 계속 집에만 가둬두는 것도 안 좋아…….”‘설마…… 애들 케어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러시는 건가? 영희 이모님도 그렇고…… 엄마가 돼서는 내가 너무 나몰라라 했나?’“네. 알겠어요. 좋은 데 있나 어디 한 번 알아볼게요.”기숙 어린이집은 제
이연이 선물 상자를 받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두었지만 안경을 치켜올린 표원식이 단호하게 대답했다.“저는 뇌물 같은 거 안 받습니다.”“뇌물이 모예요?”조한이 높은 소리로 묻자 원유희가 낮은 목소리로 아이들을 다그쳤다.“교장 선생님한테 인사드려야지…….”“선생님 안녕하세요!”세 쌍둥이가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친한 척도 안 통합니다.”손으로 턱을 괸 표찬식이 들고 있던 펜을 천천히 돌렸다.“학부모님 학벌은 어떻게 되시죠? 직장은 어디에 다니세요? 연수입은 어떻게 되십니까?”연이은 질문 3종 세트에 당황한 원유희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전…… 대학교 중퇴했어요. 지금은 퍼펙트 성형외과에서 일하고 있고 월수입은 250만원 정도입니다……”자신의 스펙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는 원유희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면접이라는 게 부모님 면접이었어?’살짝 미간을 찌푸린 표찬식이 질문을 이어갔다.“아이 아버지는요?”“아이 아빠는…… 죽었어요…….”“중퇴하기 전엔 어느 대학을 다니셨죠?”“스탠포드요.”‘스탠포드? 그렇게 좋은 학교에서 중퇴했다고? 거짓말 아니야?’잠시 고민하던 표찬식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죄송하지만 어머님 조건으로는 저희 어린이집에 입원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 어린이집 학비도 그렇고…… 적어도 중산층 정도는 되어야 하거든요.”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원유희가 고개를 숙였다.‘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걸 해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현실의 벽이라는 게 생각보다 더 높구나…….’“아…… 알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표찬식과 원유희를 번갈아 바라보던 세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비록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분위기가 무겁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원유희가 세 쌍둥이를 데리고 사무실을 나서고 표찬식의 시선이 책상 위에 올려둔 선물로 향했다.손가락으로 상자를 연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돈이나 명품이 들어있을 줄 알았던 상자에는 어린 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이 있었다.“존경하는 선생님
“엄마, 엄마가 가시면 아이들은 누가 케어해요…….”“네가 말했잖아. 기숙사형 어린이집이라 괜찮을 거라고.”힘이 풀린 원유희가 벽에 몸을 기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몸에 힘이 풀릴 것 같았으니까…….“왜요? 제가 부담스러우세요?”“유희야, 미안해…….”이 말을 마지막으로 여채아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왜…… 왜 갑자기 떠나시는 거지? 왜…….’혼란스럽던 그때 갑자기 어젯밤 엄마가 건네던 통장이 떠올랐다.‘설마 돈 때문에……?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아이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렇게 떠나실 순 없어.’잠시 후, 원유희는 반차를 내고 여채아의 집으로 달려갔다.텅 빈 집을 둘러보던 원유희가 부랴부랴 안방으로 달려갔다.옷들은 그대로였지만 다시 전화를 걸어봐도 여채아는 묵묵부답이었다.‘뭐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건가……?’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원유희는 아이들 픽업을 위해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기숙사가 있다곤 하지만 일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전까진 집에서 오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엄마를 만난 세 쌍둥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재잘거렸지만 원유희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대충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집으로 돌아온 유담이 물었다.“엄마, 할미는요?”‘엄마도 알고 싶다…… 도대체 어디 가신 거야…….’“할머니 볼일 보러 나가셨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잠깐만…….”주방으로 들어간 원유희가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차가운 연결음만 들릴 뿐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시작하려던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부리나케 휴대폰을 집어든 원유희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기다리던 여채아가 아니라 김신걸의 전화였으니까.아이들이 정신없이 거실에서 놀고 있는 걸 확인한 원유희가 전화를 받았다.“나 지금 엄마 집이야.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지금 요리해 드리고 있어.”동시에 원유희는 일부러 요리 소리를 더 크게 냈다.“나와.”“지금 어떻게 나가? 엄마
“악!”자동차 좌석에 털썩 주저앉은 원유희의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내가 부르면 바로바로 나오라고 했지.”검은 그림자가 그녀에게 드리웠다.김신걸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느낀 원유희가 다급하게 물었다.“뭐 하는 짓이야?”“알면서 뭘 물어?”“안 돼…….”원유희의 눈길이 앞좌석에 앉은 운전기사에게로 향했다.그녀의 시선을 따라 기사를 힐끗 바라보던 김신걸이 말했다.“이 기사.”그의 목소리에 운전기사가 바로 차에서 내린 뒤 차에서 최대한 멀어졌다.더 이상 피할 수도 없는 상항에 원유희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그녀를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는 것 같고…… 집에 남겨진 아이들은 어쩌면 좋지.눈을 번쩍 뜬 원유희가 김신걸의 어깨를 부여잡은 채 그녀의 입술로 돌진했다.갑작스러운 뽀뽀에 살짝 당황하던 김신걸이 바로 주도권을 되찾았다.끈적한 키스가 끝나고 김신걸이 피식 웃었다.“허접한 수 쓰지 마.”자신의 얕은 수를 들켰다는 생각에 원유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난 그냥…… 이런 데서 함부로 대해지는 게 싫어서…….”하지만 그녀의 의견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듯 진한 키스와 무감정한 관계가 시작되었다.잠시 후, 원유희가 차에서 내리려던 그때, 김신걸의 낮은 중저음이 그녀의 귀를 자극했다.“피임 제대로 해.”원유희가 살짝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만약 임신하면?”“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원유희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후끈 달아온 차안 온도에 가슴이 답답해진 김신걸이 창문을 열었다.입에 담배를 문 김신걸이 가녀린 원유희의 그림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원유희, 아직도 편하게 살길 바라는 거야? 꿈깨…… 난 너 평생 괴롭힐 거니까…….’잠시 후 차에 탄 이 기사가 물었다.“출발해도 되겠습니까?”“그래.”김신걸이 몇 모금 빤 담배 꽁초를 창밖으로 던졌다.한편, 원유희는 계단을 오르며 김신걸에 대한 온갖 욕설을 중얼거렸다.“미친 자식. 뭐든 다 자기 마음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