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계속 전화기를 꺼놓을 수 없어 저녁에 다시 켰다.원유희의 그 번호로 다시 전화할 수 없다면 새 휴대폰은?여채아는 이것도 위험하다고 판단했다.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원유희가 전화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그러니 집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점심이 지나자 도우미가 방에 들어가 상황을 살펴보았다.침실에 들어가 침대 위의 광경을 본 도우미는 놀라 소리를 지를 뻔하다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마음을 추스르고 난 후에야 겨우 입에서 손을 뗐다.어수선한 침대 위에는 여자 한 명이 누워 있었다.비참한 몰골을 한 여자는 이미 생기를 잃어갔다.밖으로 드러난 팔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빨간 자국이 나 있었는데 뽀얀 피부에 특별히 눈에 띄었다.도우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펴보았다.김 대표님이 어젯밤에 여기를 떠났는데 여자가 여기에서 자고 있을 줄은 몰랐다.아예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이런 상황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해 해림에게 보고했고 해림은 송욱에게 전화를 해 빨리 오라고 했다.방에 들어선 송욱도 침대 위에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얼굴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보니 얼굴색은 그저 잠을 자는 것으로 보였다.침대 머리 옆에 놓인 탁자 위에는 하얀 알약이 있었다.이것은 잠자리에 복용하는 약(피임약)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하지만 침대 위에 있는 여자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기에 미처 먹지 못한 것이다.송욱은 원유희에게 검사를 한 후 몸에 있는 흔적을 제외하고는 혼수상태에 빠질만한 부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그녀는 단지 잠을 자고 있는 듯 숨결마저 고르게 들려왔다.아주 많이 피곤한 뒤에야 나타나는 그런 수면 증세였다. 몸이 거덜 나 당장 휴식이 필요한 그런 수면 증세였다.송욱은 방에서 나와 말했다.“괜찮아요. 자고 있는 것 뿐이에요.”“잔다고요? 24시간이 지나가는데요?”해림은 김 대표님이 떠난 시간으로 계산해서 말했다.“알아요. 좀 더 기다려 봐요. 도우미에게 지켜보라고 하고요. 내일 아
힘겹게 몸을 일으킨 원유희가 거울을 등지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바닥에 떨어진 이불, 그녀의 갸녀린 등에 남겨진 온갖 흔적들…….어젯밤 김신걸이 얼마나 미쳐날뛰었는지 엿볼 수 있었다.휴…….깊은 한숨을 내쉰 원유희가 어전원을 나섰다.김신걸이 미리 당부한 걸까? 기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휴, 여긴 택시 잡기도 힘든데 다행이다…….’잠시 후, 차량이 아파트 앞에 멈춰서고 원유희는 비틀거리며 차에 내렸다.“유희야!”차에서 내린 원수정이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고모.”“김신걸 그 자식이 너한테 뭐 어떻게 한 거 아니지?”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던 원유희가 물었다.“너 목은 왜 그래? 김신걸이 이런 거야? 걔 정말 미친 거 아니니?”“괜찮아요.”그녀의 눈동자가 눈물로 반짝였다.‘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힌 사실을 고모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하지만 그녀의 몸과 마음을 처참히 짓밟은 김신걸의 잔인한 징벌에 대해서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무사하니까 다행이다. 고모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아?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고민까지 했었어.”‘고모…… 경찰에 신고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예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곳에서 그 누가 김신걸을 건드릴 수 있을까?창백한 안색의 원유희를 바라보던 원수정이 말했다.“많이 힘들지? 일단 집으로 들어가자.”잠시 후, 원유희의 아파트.테이블 위에 있는 휴대폰을 들어 통화내역을 살피던 원유희가 미간을 찌푸렸다.‘이때는 어전원에 있을 때인데 누가 전화를 받은 거지?”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원수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엄마랑은 언제부터 연락하기 시작한 거니?”“그게…….”날카로운 원수정과 시선을 마주친 그녀가 솔직하게 대답했다.“얼마 전에 우연히 만났어요.”“유희야, 넌 속도 없어? 그런 여자랑 왜 다시 연락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널 버린 여자야!”원수정의 언짢은 목소리에 원유희가 엄마의 편을 들었다.“그…
저녁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원유희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파트를 나섰다.길가에서 택시를 잡는 그녀의 모습을 차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원수정이 말했다.“얼른 따라가요.”‘유희를 설득할 수 없다면 여채아를 떼어놓을 수밖에.”잠시 후, 여채아 집 앞에서 내린 원유희가 부랴부랴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었다.마침 방에서 나온 여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유희야?”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원유희가 현관문을 닫았다.“엄마, 괜찮아요?”“괜찮지 그럼. 애들 방금 잠 들었어. 너야말로 왜 연락이 안 돼? 무슨 일 있었던 거니?”원유희는 대답 대신 종종걸음으로 아이들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침대에 누워 새근새근 잠 든 아이들의 뺨을 쓰다듬고 익숙한 체취를 맡은 뒤에야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살았다는 안도감과 결국 탈출에 실패했다는 절망감이 같이 밀려들며 원유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김신걸한테 들켰어요.”“도와주는 사람 있다면서?”여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하, 김명화요? 그 자식이…… 날 배신하고 김신걸한테 다 알려줬어요.”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지 원유희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김명화 그 자식만 아니었다면…… 정말 성공했을지도 모르는데…….’“그럼 이제 어떡하니?”유담의 통통한 볼에 입을 맞춘 원유희가 말했다.“모르겠어요. 주민등록증도 여권도 다 다시 빼앗겼어요…….”답답한 마음에 여채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제성에 살면서 김신걸에게 아이들 존재를 들키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원유희가 중얼거리듯 물었다.엄마에게 묻는 건지 그녀 자신에게 묻는 건지 원유희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더 조심해야겠지…….”잠시 후, 두 사람이 아이들 방에서 나오고 원유희가 물었다.“어제…… 오래 기다렸어요? 애들 실망 많이 했죠?”“아니. 실망보다는 걱정이 더 컸지 뭐. 그리고 3시간 안에 네가 안 오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잖니. 별로 애 안 먹었어.”“다행이네요. 저 여기 오래 못 있어요. 밤에 다시 올게요.”“
“왜요? 내가 비밀을 전부 까밝히기라도 할까 봐 무서워요?”당장 여채아의 뺨이라도 날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원수정은 한때 올케였던 여자를 노려보았다.‘비밀? 무슨 비밀?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수정 씨.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정도는 나도 알고있으니까.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까 내쫓지만 말아줘요.”여채아가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애원했다.“안 돼! 당장 유희한테서 떠나!”“하…… 그럼 어쩔 수 없죠. 더 이상 대화는 의미 없을 것 같네요.”여채아가 단호하게 돌아서고 혼자 남겨진 원수정은 부들부들 떨다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퍽 차버렸다.뚜껑이 덜렁거리며 역겨운 쓰레기 냄새가 원수정의 코끝을 찔렀다.“우욱…….”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원수정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지 씩식거리는 모습이었다.‘도대체 무슨 염치로 다시 돌아온 거야. 뻔뻔하게…… 그 여자가 계속 유희랑 연락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어!”원유희는 12시가 넘은 뒤에야 다시 여채아의 집으로 돌아왔고 바로 잠에 들었다.이른 아침, 커다란 눈을 번쩍 뜬 유담이 바로 눈앞에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엄마…….”깊은 잠에 빠진 원유희는 유담의 목소리에도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이어 잠에서 깬 조한과 상우 또한 원유희에게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엄마 품속으로 파고들었다.원유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유담이 말했다.“엄마랑 뽀뽀한 지도 오래 돼쪄…….”말을 마친 유담이 엄마의 얼굴에 쪽 뽀뽀를 하더니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감싸쥐었다.“나도 할래!”“나도 엄마랑 뽀뽀할래!”이에 조한과 상우 또한 그녀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음…….”숨이 막히는 기분에 부스스 눈을 뜬 원유희는 세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둘러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깼어?”“엄마!”아이들이 다시 우르르 몰려들자 원유희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귀엽긴…….’이때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의 조한이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방문을
드래곤 그룹의 최고층, 김신걸의 사무실.사무실로 들어온 고건이 휴대폰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명화 도련님 포르쉐 조수석에서 발견한 겁니다.”휴대폰을 훑어보던 김신걸의 눈동자가 번뜩였지만 미리 예상했다는 듯 별로 놀라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다른 휴대폰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건 어떻게 예상하셨습니까?”김신걸의 표정을 살피던 고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휴대폰은 현대인들에겐 거의 필수품이야. 그런데 만날 때마다 집에 두고 왔다라…… 위치 추적 장치를 달았다는 걸 들킨 거겠지.”김신걸의 매서운 눈빛은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날카로웠다.‘원유희, 생각보다 똑똑하잖아?”고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듯 김신걸이 말을 이어갔다.“원유희, 생각보다 영악한 여자니까 방심하지 마.”“그럼…… 어전원에 다시 들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고건의 질문에 잠깐 침묵하던 김신걸이 말했다.“고 비서, 사냥의 재미는 도망치는 사냥감을 잡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거야. 우리에 가둬둔 동물은 너무 시시하잖아? 퍼펙트 성형외과…… 인수하고 아직 안 가봤지?”“네.”“오늘 한번 가봐야겠어.”자리에서 일어선 김신걸이 재킷을 챙겼다.“네.”잠시 후, 오너가 곧 방문한다는 소식에 퍼펙트 성형외과가 발칵 뒤집혔다.허둥지둥 움직이는 직원들 사이에서 원유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왜 멍하니 있어요? 얼른 가요!”장인영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쪽으로 향했다.잠시 후, 퍼펙트 성형외과의 모든 직원들이 문 양쪽에 자리를 잡고 공손한 태도로 김신걸을 기다리기 시작했다.김신걸이 온다는 소식만으로도 왠지 공기가 무거워진 듯한 기분이었다.‘정말…… 단순한 방문인 걸까?’밀려드는 불안감에 원유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드래곤 그룹의 방대한 규모 중 퍼펙트 성형외과는 그저 티끌과도 같은 존재.그런데 직접 방문이라니…… 어불성설이었다.잠시 후, 도로에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모든 이들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임원이 갑작스럽게 원유희를 부르자 다른 직원들이 바로 수군대기 시작했다.“유희 씨는 갑자기 왜 부른 거지?”“모르겠네요.”“왜겠어요. 해고하려는 거겠죠. 맨날 울상으로 있는 직원 뭐가 이쁘다고 남겨두겠어요?”안가희가 비아냥거렸다.임원의 안내에 따라 복도를 걷는 원유희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떨리는 손으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익숙하면서도 끔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사무실 의자에 앉은 김신걸과 시선을 마주한 원유희가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저 눈빛……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 같아…….“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원유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몸 빨리 회복했네?”순간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원유희가 몸을 움찔했다.‘설마…… 그거 하나 물으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이쪽으로 와봐.”반박할 여지 따위 느껴지지 않는 강압적인 말투에 원유희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의 심정이 이런 걸까 싶었다.다음 순간, 김신걸의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홱 잡아당겼다.“으악!”중심이 앞으로 확 쏠린 원유희의 두 팔이 탄탄한 김신걸의 허벅지에 닿았다.정장 바지를 사이에 두고도 허벅지의 근육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다.뜨거운 것을 만진 듯 기겁하던 원유희가 손을 떼어내려던 그때, 김신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가만히 있어.”허리는 숙이고 두 손은 그의 허벅지에 올린 묘한 자세를 유지하던 원유희가 고개를 돌렸다.“도대체 뭐…….”하지만 다음 순간, 김신걸이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어디서 많이 본 휴대폰이지?”김신걸의 질문에 당황한 원유희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이건 어떻게 찾은 거지? 명화가 준 건가? 아니야. 이 와중에 어떻게 찾은 건지가 뭐가 중요해…… 이것 때문에 온 거구나…….’“네 입으로 말해. 널 어떻게 죽이면 좋을까?”김신걸의 입술이 그녀의 귀에 키스라도 할 듯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날 밤
“대표님, 커피 드세요.”익숙한 목소리에 원유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안가희? 안가희가 직접 커피를 내온다고?고개를 돌린 그녀가 김신걸의 표정을 살폈다.한편, 문 밖에 있는 안가희는 최대한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려 애썼다.안가희가 직접 상사에게 부탁해 얻어낸 기회다.김신걸과 잘 된다면 무조건 끌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말이다.안가희는 누가 봐도 뛰어난 미인이었으니 상사도 김 대표가 그녀에게 반했다는 주장에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살짝 당황한 듯한 원유희의 표정을 살펴보던 김신걸이 말했다.“들어와요!”‘뭐? 이렇게 들어오라고 하면 난 어쩌라고!”깜짝 놀란 원유희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이 모습을 동료에게 들킨다면 앞으로 직장 생활이 더 힘들어질 게 더 뻔했다.이렇게 생각한 원유희가 순간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의자에 앉은 김신걸을 본 순간, 안가희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요염한 발걸음으로 걸어온 안가희가 커피잔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대표님, 제가 직접 내린 커피예요. 마음이 드셨으면 좋겠네요.”커피를 힐끗 바라보던 김신걸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이름이 뭐죠?”““가희, 안가희라고 해요.”안가희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커피는 누가 내오라고 한 겁니까?”“진 이사님께서…….”“정말 커피만 주려고 온 거 맞습니까?”김신걸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안가희를 훑어보았다.“그게…… 오늘 처음 뵙긴 했지만 절 좋게 봐주신 것 같아서요. 들어오실 때 절 뚫어져라 보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먼저 가겠다고 했어요. 절 어떻게 하든…… 대표님 마음대로 하세요.”책상 아래에 몸을 숨긴 원유희는 안가희의 당돌한 목소리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세상에…… 저런 말을 대놓고 한다고? 김신걸은 미친 자식이라고. 아니지. 정말 안가희가 마음에 든 건가? 안가희…… 얼굴은 괜찮으니까…….”“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래요?”원하던 질문이 들리고 안가희는 또각또각 더 앞으로 다
한편, 이 상황이 난처한 건 원유희도 마찬가지였다.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여유롭게 상황을 살피던 김신걸이 원유희의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윽!”원유희가 자연스럽게 김신걸의 가슴 위로 쓰러지고 김신걸이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훔쳐보니까 재밌어?”원유희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이 상황에서 반항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의 스킨십을 지켜보던 안가희가 부들거렸다.‘안가희…… 저 여우 같은 계집애가 언제…….’하지만 분노를 분출하기도 전에 차가운 김신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더러운 커피 들고 당장 꺼져!”얼굴이 창백해진 안가희가 한 손으로는 옷섶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커피잔을 든 채 도망치 듯 사무실을 나섰다.당황한 나머지 셔츠를 풀어헤친 모습을 다른 직원들에게 들키면 어쩌지 생각도 안 되는 모양이었다.“이러면…… 나 직장 생활 더 힘들어져.”억울하다는 듯한 원유희의 목소리가 그녀의 턱을 들어 시선을 마췬 김신걸이 말했다.“너 똑똑하잖아. 너라면 잘 해결할 거라 믿어.”‘새 휴대폰을 숨긴 것에 대한 벌이구나…… 다행이야. 이 정도로 끝나서…… 정말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는데…….’김신걸의 악마 같은 모습을 이미 알고 있는 원유희는 이마저도 다행이다 싶었다.잠시 후, 김신걸이 회사를 나서고 안가희는 잔뜩 화난 발걸음으로 탈의실로 향했다.왠지 불안한 기분에 그 뒤를 따라들어가보니 안가희가 미친 듯이 그녀의 락커에 든 물건을 내던지고 있었다.“안가희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다급하게 다가간 원유희가 바로 그 앞을 막아섰지만 그 순간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휴대폰 액정이 처참하게 깨지고 원유희가 안가희를 노려보았다.“미쳤어요?”분노로 목까지 빨개진 안가희가 고래고래 소리쳤다.“하, 정말 이렇게 천박한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대표님은 언제 꼬신 거예요? 하, 두 사람 오늘 처음 만난 거 아니죠? 아, 어쩐지. 사직서까지 내고도 다시 돌아와서 이상하다 싶었어!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