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걸이 다행히 살인충동을 잘 참아낸 것인지 다음 날, 원유희는 무사히 눈을 뜰 수 있었다.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일어난 원유희는 자신이 계단 근처의 카펫 위에서 자고 있었음을 눈치챘다.마치 버려진 쓰레기처럼 말이다…….뭐 누구 짓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이 됐다.자리에서 일어선 원유희가 익숙한 인테리어를 둘러보았다.‘어전원이네. 역시…… 하늘이 날 아직 완전히 버린 건 아니야.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셨으니까!”욕실에서 엉망진창인 얼굴을 대충 정리한 원유희가 1층으로 내려갔다.그녀를 발견한 해림이 다가왔다.“아가씨 식사 준비 다 됐습니다.”“김신걸은요?”“대표님은 나가셨어요.”고개를 끄덕인 원유희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음식물을 씹으면서도 그녀의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김신걸이라면 내 여권을 어디에 숨겼을까? 방? 아니면 서재? 운에 맡겨보는 수밖에.’식사를 마친 원유희는 주방에서 나온 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서재로 향했다.다행히 문은 열려있는 상태였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연 원유희는 쏙 하고 안으로 들어간 뒤 급히 문을 닫았다.심플한 분위기의 큰 서재는 어딘가 차갑고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김신걸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에 원유희는 숨이 턱턱 막혔다.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멍하니 서 있을 시간은 없었다.원유희는 숨을 죽이고 조심조심 걸어가 책상 위의 파일이며 서랍을 전부 뒤졌지만 그 어디에도 여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살짝 실망하던 원유희는 책장으로 시선을 옮겼다.책들을 하나하나 뒤져보던 그때, 두터운 책 한켠에 짙은 푸른색 작은 수첩이 그녀의 시선을 끌어당겼다.‘역시…….’뭐에 홀린 듯 꺼낸 수첩의 정체는 여권이었다. 신분증까지 여권 사이에 끼어있는 걸 발견한 원유희는 기쁨의 환호를 내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휴대폰은 버리고 도망치는 거야. 휴대폰 위치 추적이 없으면 아무리 김신걸이라도 날 잡을 순 없을 걸…….여
‘12살일 때는 3일…… 이번에도 3일일까? 아니, 이젠 성인이니까 더 오래 가두려나? 한 1주일 정도?’마지막 희망의 불씨까지 꺼져버리고 원유희는 발버둥 칠 힘마저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다.또다시 이렇게 비참한 처지가 된 자신의 팔자가 원통했다.지하실에는 침대는 물론, 먹을 것도 심지어 물도 없었다.기나긴 어둠을 견뎌내기 위해 잠을 청하려 해도 문이나 벽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아침을 먹어서일까 첫날은 나름 견딜만 했다.하지만 두 번째 날부터 원유희는 온몸의 수분이 전부 증발하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세 번째 날. 입술이 전부 말라비틀어진 원유희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구석쪽에 웅크리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원유희가 감금되어 있는 동안 김명화는 미친 듯이 그녀를 찾고 있었다.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니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어 원수정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까지 찾아갔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실종이라도 된 듯 이틀째 성형외과에 출근도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자 김명화는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바로 드래곤 그룹으로 달려갔다.잠시 후, 드래곤 그룹 대표 사무실.고건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명화님께서 오셨습니다.”“하, 꽤 적극적이네. 안 볼 거니까 돌아가라고 해.”코웃음을 치던 김신걸이 말했다.“네.”한편, 한참을 기다려도 김신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해진 김명화는 그의 앞을 막아서는 비서들을 밀치며 무작정 안으로 달려들었다.“들어가게 해줘! 형 만나야 하니까!”경호원을 밀던 김명화가 소리쳤다.하지만 무선 이어폰을 낀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은 바로 제압용 스틱을 꺼내며 소리쳤다.“대표님은 뵙고 싶다고 마음대로 봴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예약부터 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쫓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경호원까지 기고만장한 모습에 김명화는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정말 억지로 밀어붙였다가 괜히 김신걸의 화를 돋군다면 뒤처리가 귀찮아지니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일단은 유희부터 찾아
해림의 말에 김명화의 얼굴도 차가워졌다.“그쪽도 어차피 이 집안에서 일하는 직원 아닌가? 우린 형 가족이에요.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말문이 막힌 해림이 멈칫하는 사이 김명화가 안쪽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상황 보고를 위해 해림이 휴대폰을 꺼냈지만 그마저도 김영이 막아나섰다.“유희 여기 갇혀있는 거 맞습니까?”김영의 젠틀한 목소리에도 해림은 여전히 경계 가득한 시선을 보내왔다.“대표님께서 원하시는 건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어서 여기서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한편, 문에 기대 정신을 잃어가던 원유희는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기분에 눈을 번쩍 떴다.‘착각인가? 명화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유희야! 유희야 너 어디 있어?”목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김명화가 지하실 문을 두드렸다.“유희야, 안에 있어?”오랜 어둠 끝에 드디어 새벽을 맞이한 듯한 기분에 원유희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나…… 나 여기 있어.”원유희의 미약한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고 김명화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유희야, 겁 먹지 마. 내가 구하러 왔으니까!”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원유희는 인체의 신비로움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온몸에 수분이 다 말라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아직도 흐를 눈물이 남아있네…….“유희야, 문에서 멀리 떨어져. 내가 차서 열 거니까.”“응.”짧은 대답과 함께 원유희는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잠시 후, 김명화가 있는 힘껏 문을 걷어차고 문이 열리는 순간, 무기력한 얼굴로 벽에 웅크려있는 원유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를 향해 다가가는 발걸음이 살짝 떨려왔다.“유희야?”사흘내내 캄캄하기만 했던 지하실에 드디어 빛이 들어오고 원유희가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여긴 어떻게 왔어…….”“너랑 연락이 안 돼서. 병원에도 안 왔다고 하고…… 집에도 안 들어오고 무슨 일 생겼다 싶어서.”원유희를 번쩍 들어올린 김명화가 말했다.“여기서 나가자.”하지만, 거실로 나간 그는
사흘 내내 물 한 모금 못 마신 원유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침대에 살짝 몸을 기댔다.‘그래. 내가 팔자가 사나워서 그래…… 내가 운이 나빠서…… 그게 아니라면 김신걸한테 이렇게까지 괴롭힘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행여라도 데리고 나갈 생각 같은 건 하지 마. 이 총에 맞아 죽어서 영혼으로라도 남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든가.”말을 마친 김신걸은 자신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듯 권총으로 멀리 있는 꽃병을 향해 총을 한 발 발사했다.총알이 정확히 화병을 명중하고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화병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으악!”처음 듣는 총소리에 깜짝 놀란 원유희는 비명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잠시 후,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김영과 김명화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친 데는 없는 것 같으니까 다행이야…….’“들어와!”김신걸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경호원으로 보이는 장정 여러 명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김영과 김명화를 노려보았다.“지금 바로 움직일까요?”순식간에 불리해진 상황에 김영은 몰래 주먹에 힘을 주었다.딱 봐도 이쪽이 불리하니 대놓고 맞설 수도 없는데다 부자끼리 서로 싸운다는 패륜이 일어나는 건 눈 뜨고 볼 수 없었다.한편 김명화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대로 원유희를 두고 가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만 같았으니까.하지만 고개를 돌린 순간, 원유희의 눈동자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너라도 얼른 가…….’김명화가 여전히 망설이자 원유희가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날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말없이 한참을 고민하던 김명화는 결국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며 집을 나가버렸다.김영은 이제 정말 악마처럼 변해버린 아들을 향해 한 발 다가갔다.가족들 사이에 있었던 일이니 대화로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신걸아,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그 죗값은 내가 갚을게.”아버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김신걸은 마치 악귀에 빙의라도 된 듯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아버지, 너
본능적인 두려움에 원유희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총 쏠 줄은 알면서 빼앗은 거야? 내가 가르쳐줄까?”그리고 다음 순간, 김신걸이 그녀의 이마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탕!”“으악!”깜짝 놀란 원유희가 머리를 끌어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뭐지?’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몸에서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를 향해 쏜 게 아니었으니까.“이번에는 정말 널 겨낭 할 거야. 그러니까 당장 꺼져.”김신걸이 차가운 목소리에 바로 반응한 그녀가 미친 듯이 거실을 뛰어나갔다.애초에 풀어주기로 마음을 먹은 건지 밖에는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잠시 후, 차는 한참을 달려 집과 꽤 멀어졌음에도 그녀의 몸은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잠시 후, 아파트로 돌아온 그녀는 문을 닫은 뒤 소리를 지르고 의자를 부수며 참고 참았던 분노를 분출해냈다.“김신걸, 이 미친 놈! 이 미친 자식아!!”12살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적어도 총은 없었으니까.그런데 칼도 아니고 총이라니…….‘그딴 건 왜 가지고 있는 거지? 왜? 사람이라도 죽이려고? 하긴…… 김신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야. 마음만 먹으면 경찰에서 눈치 못 채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겠지. 아니…… 경찰에서 안다 해도 누가 감히 김신걸을 조사하겠어…….’뭔가 떠오른 원유희는 집에 두고 갔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3일 사이 이미 배터리가 다 나간 상태였다.휴대폰에 충전을 하고 켜보니 통화기록은 고모와 김명화가 걸어온 부재중 전화로 가득 차 있었다.아마 연락이 안 되니 미친 듯이 전화를 한 거겠지.날짜를 확인한 원유희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임시 주민등록증도 지금쯤 다 됐을 테고…… 일단 그것부터 발급받고 바로 여권 새로 받는 거야. 속전속결로 움직이는 거야…… 사흘내내 갇혀있다가 나와서 바로 이런 짓을 저지를 거라곤 김신걸도 에상하지 못할 거야. 오늘 마침 출근도 안 하겠다. 오늘이 최적의 기회야.’생각을 마친 원유희는 아파트
다음 날, 원유희는 고모와 김명화에게 무사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전했다. 그녀가 실종되었을 때 가장 걱정해 준 사람들이었으니까.사실 집으로 돌아온 뒤로 원유희는 더 이상 성형외과로 출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보름 뒤면 이곳을 떠날 테고 제대로 된 사직 절차를 밟을 것도 아니니 이번 달 월급도 못 받을 테니까 말이다.하지만 바로 병원을 그만두면 바로 김신걸의 의심을 사게 될 터…….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한 그녀의 곁으로 장인영이 다가왔다.“하, 드디어 출근했네요. 생리는 다 끝났어요?”“네.”장인영의 비아냥거림에도 원유희는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하여간 연약한 척은.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며칠씩 잠적할 셈이에요? 도대체 왜 원유희 씨를 안 자르는 지 이해가 안 되네요. 원유희 씨 때문에 팀장님은…… 재수없게.”말을 마친 장인영이 그녀를 흘겨보더니 자리를 떴다.혼자 남은 원유희가 눈살을 찌푸렸다.‘하, 아예 대놓고 시비를 거네.’하지만 장인영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한 사람이라도 휴가를 내면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기 마련. 정말 장인영 말대로 다들 생리통 때문에 매달 3-4일간 휴가를 낸다면 그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억울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저녁, 퇴근 후.원유희의 아파트 앞에 도착한 김명화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지금 집 앞이야. 보고 싶어.”“여기가 어디라고 와. 아파트 단지 곳곳에 전부 CCTV야. 김신걸한테 들킬 수도 있다고.”원유희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떨려왔다.‘명화는 왜 여기까지 온 거야. 김신걸이 무섭지도 않나…….’“네가 너무 걱정돼서 그래. 유희야, 얼굴 좀 보자. 잠깐이면 돼.”진심어린 그의 목소리에 망설이던 원유희가 대답했다.“그래. 그럼 아파트 뒤쪽으로 와. 그쪽엔 CCTV 없으니까. 지금 바로 내려갈게.”“그래.”잠시 후, 복도에서 나온 원유희의 눈에 익숙한 포르쉐와 차문에
계단을 내려오던 원유희는 과일을 든 중년 여성 행인과 스쳐지났다.별생각 없이 몇 계단 더 내려가던 원유희가 고개를 홱 돌렸다.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저 사람은…… 엄마? 그럴 리가.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잖아. 하지만 방금 그 사람은 분명…… 내가 잘못 본 건가?”여자가 마지막 계단을 오르던 그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유희가 부랴부랴 그 뒤를 따랐다.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여자의 뒤를 따라가던 원유희는 낯선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제대로 된 경비 한 명 없는 아파트를 둘러보던 그때.문을 열려던 중년 여자가 그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원유희의 얼굴을 확인한 중년 여자는 급격히 당황하더니 들고 있던 짐을 툭 떨어트렸다.장바구니에 들었던 과일들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원유희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정말…… 엄마였네요.”바로 정신을 차린 여채아가 허리를 숙여 과일을 줍더니 단호하게 부정했다.“사람 잘못 보셨어요!”“제가 제 엄마도 못 알아볼 것 같아요?”원유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과일을 주우려던 여채아의 손이 살짝 떨렸다.“의사들도 아빠도 엄마가 다 죽었다고 했어요. 근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어요?”원유희는 아주 오래 묻어두었던 추억을 꺼냈다.초등학교 때, 평소처럼 집에 돌아온 원유희는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미친 듯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의사도, 아빠도 전부 엄마가 죽었다고 말할 뿐, 엄마의 마지막 모습마저 확인하지 못했었다.시신이라도 확인하겠다며 난리를 피우는 원유희는 결국 아빠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왔고 슬프지만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아무리 부정해도 소용없다는 걸 눈치챈 걸까? 여채아는 용기를 내 딸의 얼굴을 마주했다.여채아가 눈물을 글썽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아빠랑…… 난 그때 이미 끝난 사이였어. 그 교통사고 이후로 난 도망치 듯 너희 두 사람을 떠나버렸어. 그 뒤에
“아니야. 엄마는 무조건 올 거야!”“우리 같이 엄마 기다리자.”하지만 유담은 핑크색 입술을 쑥 내밀며 구시렁댔다.“정말? 하지만…… 아직 남은 시간이 너무 많잖아…….”여동생의 불평에 오빠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몇 번을 세어봐도 오늘이 겨우 4일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그나마 맏형인 조한이 뭔가 떠오른 듯 진지한 얼굴로 두 눈을 반짝였다.“엄마가 안 오시면 우리가 직접 엄마한테로 가는 거야!”형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듯 표정으로 고민하던 상우의 얼굴도 기대감으로 상기되었다.유담도 잔뜩 흥분한 얼굴로 이불을 젖히더니 큰 눈을 깜박였다.“정말? 그런데…… 엄마는 우리랑 되게 뭔 곳에 있잖아……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더라? 한국…….”“제성시!”조한이 바로 덧붙였다.“비행기도 타야 한다고 했어!”잠깐 빛났던 유담의 눈동자가 바로 어두워졌다.“우리끼리 비행기 어떻게 타?”여동생의 날카로운 질문에 두 오빠가 잠깐 동안 침묵했다.먼저 입을 연 건 상우였다.“일단 공항으로 가서 어른들 따라가면 어떻게든 될 거야!”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이 세 아이의 눈이 샛별처럼 반짝였다.고개를 모은 세 아이는 펜과 종이를 들고 제성시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다음 날 오후. 영희 이모는 아이들이 낮잠에 빠진 사이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철컥.”하지만 영희 이모가 문을 나서는 순간, 가만히 누워있던 세 아이들이 눈을 번쩍 뜨더니 바로 작전을 시작했다.유담이는 귀여운 책가방을, 조한이는 호신용 장난감 칼을, 상우는 가장 아끼는 모자를. 이렇게 각자의 보물을 챙긴 세 남매는 인생 최대 모험을 시작했다.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영희 이모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침대 위에 A4용지가 보였다. 종이에는 사람 모양 그림과 수많은 선들이 뒤엉켜있었는데 어른인 영희 이모가 이걸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이게 뭐야?”종이를 내려놓은 영희 이모는 아이들이 자주 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