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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원유희는 시선을 떨구며 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듣기로는……. 형도 큰아버지 결혼기념일 잔치에 갔었다는데, 너한테 무슨 짓 안했지?”

김명화가 물었다.

“……별 거 없었어, 나는 오래 있지 않고 떠났거든…….”

원유희는 김신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화살에 놀란 새 처럼, 그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그녀를 두렵게 하고 질식시킬 수 있었다.

“만약 형이 너를 귀찮게 한다면, 나에게 말해, 내가 너를 도울게.”

김명화가 말했다.

원유희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줄곧 그녀가 도움이 필요할 때, 김명화는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렇기에 몇 년이 지났어도 그녀는 한 번에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지금 그녀가 김신걸에게서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을 때도, 또 다시 김명화를 만났다. 그는 그녀가 성형외과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심지어 더 많은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동했다.

인간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무의식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게 된다던데…….

“김신걸은 왜 제성으로 돌아간거야?”

원유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잘 모르겠어, 김가쪽에도 아는 사람이 없어.”

김명화가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

원유희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너 그 사람이랑 연락한 적 있어?”

“그가 김씨 집안과 인연을 끊은 뒤로는 연락이 없고, 내가 연락하고 싶어도 연줄이 없어” 김명화는 뭔가를 떠올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 네가 우리 형을 본다면, 반드시 피할 방법을 찾아야해.”

“알아…….”

원유희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예전에 김명화는 가끔 김영의 집에 김신걸을 찾아갔는데, 둘 사이는 괜찮았다.

김신걸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차갑고 냉정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사람이 능력이 좋다.

악마는 무섭지 않다. 무서운 것은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악마다!

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길 건너편 검은 롤스로이스 한 대가 천천히 멈춰서 식당 쪽을 향하고 있었다.

김신걸의 날카로운 시선은 검은 차창을 뚫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두 사람에게 차갑게 다가왔다.

원유희는 먹다가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을 느꼈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돌려 바깥 거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거리는 붐볐고,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럼 아까 그 감시당하는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은 어디에서 온 걸까…….

“왜그래?” 김명화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데려다 줄게” 김명화가 말했다.

“아니야, 나 혼자 가는 게 편해.”

“지금 혼자 살아?” 김명화가 물었다.

“응, 세 들어 살아.”

김명화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지금 남자친구가 없는건가?

“먼저 가볼게.” 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김명화는 종종걸음으로 가는 가녀린 모습을 보았다. 눈빛은 온화했다. 그녀는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았다. 멀어지는 그림자까지도 그대로였다…….

교통수단으로 원유희는 가장 싼 지하철을 선택했다.

그래도 어전원에 바로 갈 수 없어 그녀는 지하철에서 내려 걸었다.

한 시간을 걸어서야 어전원 대문 앞에 이르렀다.

만약 가능하다면, 영원히 다다르지 않기를…….

문 밖에 서 있는 검은 롤스로이스를 보았을 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저건 김신걸의 자동차…….

어전원 곳곳의 나무와 관목숲은 밤하늘에 어슴푸레한 것이 마치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휘두르는 악마 같았다.

원유희는 긴장하여 침을 삼키고 억지로 계단을 올라 로비로 들어갔다.

그 깊고 예리한 어두운 그림자에 시선이 닿자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어디 갔어?” 김신걸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어디 안 갔어…… 오늘은 직장을 구했어. 성형외과에서 일해…….”

원유희는 숨기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신걸은 조사할 필요도 없이 알 수 있다.

김신걸은 냉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앞에서 말해.”

원유희는 김신걸로부터 뼛속까지 파고드는 공포를 느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망설이다가 1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 섰다.

“……진짜야, 못 믿겠으면 가서 찾아봐.”

“그게 다야?” 신걸의 검은 눈이 보이지 않았다.

원유희는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알아볼까?” 김신걸의 목소리가 음침하다.

“아니야” 원유희가 다급하게 말했다.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 오늘 성형외과에서 김명화를 만났어. 또 한 명의 여자가 있었는데 여자친구였나 봐, 잘 모르겠어. 그리고……. 김명화와 함께 저녁을 먹고 바로 돌아왔어.”

“남자를 그렇게 급하게 꼬셔? 몇 명 찾아줄까?”

“아니야, 당신이 오해했어. 그냥 밥만 먹고 아무것도 없어!”

원유희는 자신을 변명했다.

“내 기억으로 걔는 예전부터 여색을 좋아했어. 너 걔한테 넘어간거 아니야?” 김신걸이 냉소했다.

원유희가 시선을 떨궜다.

“나도 내 분수는 알아”

“김가네 남자와 거리를 둬!”

김신걸이 침착하게 위압했다.

“알았어…….”

원유희는 순종했다. 두려움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어 말했다.

“성형외과 근처에 방을 얻어 살 수 있을까? 퇴근하고 너무 늦게 돌아와서 지하철을 타고 어전원까지 한 시간 걸어야 해. 괜찮을까?”

텅 빈 로비는 죽은 듯 고요했고, 강한 압박감이 감돌았다.

원유희는 숨쉬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김신걸이 동의하지 않을 까봐 덧붙였습니다.

“제성 전체가 네 것이야. 내가 여기 살지 않더라도, 여기 사는 것과 다르지 않아…….”

말을 마치자, 김신걸의 긴 다리가 움직이며 일어나 내려왔다. 기세가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원유희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두려움이 극에 달아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통제된 것 같았다.

눈앞의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내려앉으며 짙은 공포와함께.

이내 턱을 꽉 조이고 강한 손가락에 쥐어졌다.

김신걸은 차갑고 매서운 얼굴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해.”

동의를 받은 원유희는 눈빛이 떨렸다. 김신걸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검은 눈동자에서 움츠리고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전제 조건은, 하라는 대로 따르는 거.”

“알았어…….”

원유희가 대답했다. 김신걸의 오랜 시선에 뒤로 물러서며 김신걸의 '추궁'에서 벗어났다.

“나 먼저 방으로 갈게.”

말을 마치자 조심스레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김신걸은 몸을 옆으로 돌렸다. 검은 눈이 날카롭고 무서웠다.

맹수는 멀어지는 사냥감이 통제에서 벗어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2년 전에 그녀를 도망치게 했으니 이번에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방으로 돌아온 원유희는 침대 끝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김신걸을 떠나지 않는 한 방심할 수 없다.

그녀는 매사 살얼음을 밟는듯 자신을 억제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끝없는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다음날, 원유희는 일을 하면서 인터넷으로 집을 구했다.

적당한 집을 찾아 점심 시간에 가보았다.

원룸 아파트인데, 3평 정도에 70만원이었다. 좀 비싸긴 했지만, 서둘러 어전원을 나서려는 원유희에게는 그렇게 많은 선택지와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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