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의 뒤를 쫓던 낙월영은 떨어진 약상자를 보았다. 그것은 고 신의가 외상을 치료하는 데 쓰라며 준 약이었고 전부 비싼 약초들만 쓰였다. 낙월영은 그 환약을 먹어 얼굴에 흉터가 남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어찌 제 약을 훔치십니까?”낙월영은 낙청연이 자신의 환약을 훔쳐 미천한 노비인 지초에게 주려 한다고 생각했다.빌어먹을! 내 물건을 감히 노비에게 주려 하다니?낙청연은 낙월영이 자신의 수를 꿰뚫어 보자 더욱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다급히 약상자를 들고 앞으로 달려갔고, 낙월영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뒤쫓았다.“멈추세요!”낙청연은 도둑처럼 황급하게 도망갔지만 곧 힘이 빠지고 숨이 차올랐다. 낙월영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뒤쫓아 두 사람은 화원에까지 도착하게 됐다.낙청연은 하마터면 자빠질 뻔하면서 지초의 앞에 당도했다. 그녀는 부랴부랴 약상자를 열면서 조급한 어조로 말했다.“빨리, 빨리 이 약을 먹거라. 지초야!”지초는 환약을 받고서는 입을 열어 재빨리 그것을 삼키려 했으나 부리나케 달려온 낙월영이 지초의 뺨을 내리쳤고 그 바람에 지초가 손에 들고 있던 환약이 저 멀리 날아갔다.바닥에서 나뒹구는 환약을 보고 낙청연은 그것을 잡으려 몸을 날렸지만 낙월영이 잽싸게 환약을 주워 한입에 삼켰다.“망할, 제 물건을 감히 노비 따위에게 주려 하신 겁니까?”환약을 삼킨 낙월영은 턱을 쳐들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낙청연은 그녀가 환약을 삼키는 것을 보았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느긋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낙월영을 보면서 말했다.“낙월영, 너 혹시 어디 아픈 것이냐?”낙청연은 소매 안에서 색이 선명한 월계화를 꺼내더니 넘어져서 망가진 꽃잎을 뜯어내며 여유롭게 말했다.“네 정원에 가서 꽃 한 송이 꺾은 것뿐인데 이렇게 끈질기게 쫓아올 필요가 있었느냐? 게다가 내 계집종의 약까지 빼앗아 먹다니, 낙씨 가문의 둘째 아씨가 언제 이렇게 초라해진 것이냐?”낙월영은 그 자리에서 몸이 굳었다.낙청연이 들고 있는 월계화를 바라보며 낙청연은
화원에 있던 등 어멈은 넋을 놓았다. 왕비가 말한 방법이란 낙월영이 직접 약을 빼앗아서 먹게 하는 것이었다.낙월영의 상처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은 왕비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낙월영은 사람이 가득한 곳에서 낙청연의 것을 빼앗아 먹었기 때문이다.자신이 몹시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일을 왕비는 손쉽게 해결했고 낙월영을 골탕 먹이기까지 했다. 목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화풀이도 했으니 속이 후련했다.등 어멈은 왕비를 더욱더 존경하게 됐다. 이곳이 얘기를 나누기 껄끄러운 곳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왕비를 입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을 것이다.화원 밖의 복도에서 부운주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고 그의 옆에 있던 서동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저는 왕비 마마께서 둘째 아씨께 쫓기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왕비 마마께서 둘째 아씨를 골탕 먹이신 거군요.”부운주의 평온하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고 무언가 그의 눈동자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왕비의 목적은 둘째 아씨를 골탕 먹이는 게 아닐 것이다.”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적녀가 이렇게 많이 변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너무 많이 변해서 사람을 홀릴 정도였다.“왕비 마마, 둘째 아씨께서 왕야에게 고자질하는 것은 아니겠지요?”지초는 걱정스레 물었고 낙청연은 웃는 얼굴로 과일을 먹으며 대꾸했다.“그렇게 창피한 일을 당했는데 고자질할 수 있겠느냐? 아마도 지금쯤 방에 숨어서 울고 있을 것이다.”그녀의 머릿속에 어쩐지 부진환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하던 모습과 살기를 품은 눈빛을 생각하면 어딘가 이상했다.하지만 그녀도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 맥을 짚어본 건 아니기에 알 수 없었다.낙청연은 이런 걸 쓸데없이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부진환이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등 뒤에서 온화하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렇지요. 오늘 둘째 아씨는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궁중연회가 열린 날 밤에 있었던 일의 화풀이를 한 셈
낙청연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덕망이 높으시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시니 선물의 값어치를 따지시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 중요한 건 마음입니다. 낙태부께서 기뻐하시길 원하신다면 그분께서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 갖지 못한 것을 드리면 되지요.”낙청연은 생신 잔치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중이었다.어쩌면 출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현재 낙청연은 모든 기대를 부진환에게 걸 수 없었다.그 순간 저 멀리서 욕지거리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낙월영이 한 여인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두꺼비가 자기 주제도 모르고 높은 가지에 앉으려고 하는 걸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군요. 월영 낭자는 성정이 유약하여 괴롭힘을 당한 것입니다. 저였으면 그 두꺼비의 껍질을 벗겨서 기름에 튀겼을 것입니다.”“높은 가지에 앉았다고 해도 두꺼비가 아니겠습니까? 기껏해야 날개 두 짝이 생긴 두꺼비일 뿐, 그런다고 해서 봉황이 될 수는 없지요.”그들은 얘기를 나누면서 화원 안으로 들어왔다.귀엽고 활기 넘치는 분홍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비아냥거리면서 경멸하는 눈빛으로 낙청연을 바라봤다.그들은 분명 낙청연을 욕하고 있는 것이었다.그 여인은 무척 익숙했는데 그녀를 보는 순간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샘솟았다.아마도 몸의 원래 주인이 그녀를 굉장히 무서워한 듯했다.“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 더러운 눈깔로 보지 마시지요. 징그럽습니다.”분홍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낙청연을 흘겨보며 말했다.그러고는 낙월영과 함께 자리에 앉더니 계속해서 낙청연을 비꼬았다.“정말 얼마나 낯짝이 두꺼우면 저럴 수 있는 것입니까? 저도 저런 사람을 본 적이 있지요. 억지를 부려 혼인해놓고 시동생과 시시덕거리더군요. 저런 인간은 돼지우리에 처넣어야 하는데 말입니다.”그 말은 분명 낙청연을 욕하고 있는 것이었다.부운주 또한 그 얘기를 듣고 안색이 나빠졌다. 그는 그들을 말리려 입을 열려고 했는데 돌연 사레가 들려서 큰 소리로 기침하기 시작했다.“켁켁…”
“사악한 기운은 이 집안에 있겠지요!”그 말을 끝으로 낙운희는 씩씩거리면서 도망쳤다.마치 화가 나서 간 것으로 보이지만 낙청연은 낙운희가 두려움에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운희야! 운희야!”낙월영은 당황한 듯 보였다. 낙운희마저도 낙청연을 어찌할 수 없다니.낙월영은 낙청연을 째려보고는 다급히 낙운희를 따라갔다.낙청연은 천천히 자리에 앉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 사색에 잠겼다.말 몇 마디에 낙운희가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고 저 정도로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그녀의 집안에 진짜 큰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몰랐다. “켁켁… 왕비, 조금 전 한 말이 사실입니까? 저 사람은 왕비의 둘째 할아버지 낙태부의 손녀 아닙니까? 그럼 낙태부의 집안에…”부운주는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그의 말대로 낙운희는 낙태부의 손녀딸이었고 그녀의 사촌 동생이었다.그렇기에 낙청연은 태부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근심스러웠다.낙운희의 몸에는 음기가 있었다.낙청연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뭘 그렇게 진지하게 구십니까? 일부러 겁을 주려고 한 말일 뿐입니다. 운희의 어머니께서는 엄격한 분이시라 이미 몇 년 전에 혼처를 물색했었지요. 다들 아는 일이라 그저 때려 맞춘 것뿐입니다.”낙운희에게 도화살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앞으로 큰 사건이 일어날지도 몰랐다.부운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 그 말이 이렇게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전 설명을 통해 그녀의 말에 반박하려 했군요.”낙청연은 웃으며 답했다.“마음이 급하시면 기침을 세게 하시는 것 같은데 평소에는 최대한 마음을 편히 하세요. 절대 조급해하시면 안 됩니다.”부운주는 낙청연이 그 점도 보아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알겠습니다.”사실 낙청연은 그 사실을 오래전에 눈치챘다. 기침하는 이유가 폐 때문인지 인후 때문인지 그녀는 소리를 통해 구별할 수 있었다. 부운주는 폐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으니 흥분으로 인해서 기침하는 것이었다.물을 급하게 마시면 사레가 들리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낙청연은 등 어멈을 데리고 외출했고 지초는 저택에 남았다.“왕비 마마, 낙태부의 생신 선물을 고르시는 것이라면 너무 초라해서는 아니 됩니다. 천진각(天珍閣)에 가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왕부의 장부에 적으면 됩니다.”“아니다. 내가 드릴 선물인데 부진환의 돈을 써서는 아니 되지.”그녀는 이 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우선 태부부에 가보자꾸나.”만약 태부부에 지독한 것이 붙었으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천진각에서 산 선물보다 훨씬 더 값졌다.활기 넘치는 시가를 지나 조용한 서계길(徐溪街)에 도착한 그들은 기백 넘치는 태부부를 단번에 알아봤다.낙청연의 아버지는 때마침 태부부의 문 앞에 서 있었고 그의 뒤에는 도포(道袍)를 입은 도사 한 명이 서 있었다.“한번 시도해보려무나. 절대 사기꾼이 아니다. 저택에서 이상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난다면 진짜 사악한 무언가가 집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낙해평은 구구절절 얘기하면서 상대를 설득하려 했다.문가에 단정하게 서 있는 부인은 온몸으로 거센 기운을 내뿜으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승상 대감, 이만 돌아가시지요. 이것은 저희 집안일입니다. 승상 대감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지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승상 대감이 찾아오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으시니 굳이 여기서 큰 소리로 싸우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낙운희의 어머니이자 낙태부의 독녀인 낙용(洛榕)이었다.“난 정말 다른 뜻이 없다. 그저 저택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을 해결하고 싶은 것뿐이란다. 이런 일은 나도 경험해 본 적이 있으니 한 번만 믿어다오.”낙해평은 몹시 다급했는지 낙용이 문을 닫기라도 할까 봐 손으로 문을 잡고 있었다.낙청연은 자신의 위엄 넘치던 승상인 아버지가 이토록 비참하게 자세를 낮추면서까지 간곡히 부탁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낙용은 짜증 난 얼굴로 대꾸했다.“승상 대감, 본인 집안일에나 신경 쓰세요. 저희 태부부의 일에는 관여하지 마시고요.”그 말을 끝으로 낙용
“내 체면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그렇게 내 체면을 구겼으면서 아직도 부족한 것이냐?”원망스러운 어조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낙청연의 심장을 파고들었다.익숙했고 이미 습관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낙청연은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마치 진짜 낙청연이 되어 그녀의 모든 감정과 아픔을 겪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아픔은 잠시뿐이었다.낙해평에게 있어 낙청연은 자신의 체면을 구기게 하는 존재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딸이라면 그녀도 미련을 둘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낙해평은 원래도 홀로 고독하게 살 관상이었고 자녀의 연이 없는 사람이었다.낙해평이 떠나고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낙청연은 위엄과 기개가 넘쳐흐르는 태부부로 시선을 돌렸다.낙청연의 눈동자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반드시 생신 잔치에 참여할 생각이었다.그는 고개를 들어 태부부의 상공을 바라봤다. 확실히 음기가 있었으나 많지는 않았고 보아낼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우선은 태부부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볼 셈이었다.“등 어멈, 최근 태부부에 어떤 이상한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거라.”“알겠습니다.”등 어멈이 떠나고 난 뒤 낙청연은 소매 안에서 나침반을 꺼내 앞으로 걸었다.태부부의 뒷문 쪽에 도착해보니 하인들이 검은색의 나무 상자를 들고 뒷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상자는 부적으로 봉인되어 있었고 부적 아래에는 영원당(靈元堂)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그곳은 장례식을 도와주는 점포였다.뒤이어 낙용이 뒷문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물건은 다 준비됐겠지?”“준비 마쳤습니다, 부인!”낙용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운희는 왜 아직도 오지 않은 것이냐? 얼른 사람을 보내 데려오너라!”“알겠사옵니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침반의 움직임을 느끼며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짐작했다.음기가 아주 강한 물건이었다.낙청연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떴고 길가의 찻집에 앉아서 등 어멈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등 어멈이 돌아왔고 비
“영원당.”영원당은 장례식을 돕는 점포가 들어선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보통 집안의 사람이거나 큰 집안의 종복이었다.낙청연은 자신의 옷차림이 비교적 눈에 띈다고 생각해 등 어멈과 함께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얼굴을 면사포로 가린 채 그곳으로 향했다.그들은 대량의 종이 인형들이 쌓여있는 점포로 들어갔다.구석 쪽에는 종이 인형 뒤로 빨간색의 나무 의자가 흔들거리면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누군가 그 위에 누워있었다.뒤이어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손님께서는 쉬고 가시렵니까? 아니면 점포에 하룻밤 묵고 가시렵니까?”그 말에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쉬다니 뭘…”등 어멈도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들이 찾은 곳은 객사가 아니었다.낙청연은 등 어멈의 팔을 잡으면서 미소 띤 얼굴로 붉은 의자에 앉은 사람을 향해 말했다.“농담이 과하십니다. 이 점포에 묵는다고 하면 관에서 잠을 자겠습니까?”흔들리던 붉은 의자가 돌연 멈췄고 그 순간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밖에서 바람이 불어와 점포 안의 종이 인형들이 소리를 냈는데 마치 음산한 웃음소리처럼 들렸다.등 어멈은 저도 모르게 온몸이 오싹했다.그곳은 아주 으스스한 곳이었다.“주인장?”낙청연은 다시 한번 불렀고 그러자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은 마치 금방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죄송합니다. 잠이 들었군요. 오래 기다리지는 않으셨겠죠?”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주인장을 보니 온몸에 검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주인장, 저는 태부부의 사람입니다. 오늘 여기서 가져간 물건이 있는데 부인께서 수량이 맞지 않는다고 저더러 주인장과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낙청연의 말에 주인장은 미간을 찌푸렸다.“수량이 맞지 않는다니요? 그럴 리가요. 모두 제가 직접 넣은 것입니다.”그 말과 함께 주인장은 장부를 꺼내 뒤져봤고 자세히 살펴보면서 중얼거렸다.“수량은 정확한데…”낙청연은 재빨리 그 장부를 곁눈질했고 초혼번(招魂幡)이라는 글자를
등 어멈이 종이 인형 앞에 서기도 전에 누군가 벌떡 몸을 일으켰고 그 위에 쌓여있던 종이 인형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등 어멈은 깜짝 놀랐다.그리고 그 사람이 낙청연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등 어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왕비 마마, 괜찮으십니까?”낙청연은 손뼉을 치더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내가 괜찮지 않을 게 뭐가 있느냐?”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진 주인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등 어멈과 함께 힘들게 그를 꺼냈다.주인장은 혼절한 상태였는데 이마에는 붉게 부어오른 흔적과 그 위에 남겨진 각종 부문이 보였다.그것은 천명 나침반이 남긴 흔적이었다.낙청연은 계산대로 가서 그의 장부를 뒤적이면서 세세히 내용을 살폈다.초혼번, 인혼등(引魂燈), 제혈반(祭血盤), 생진부(生辰符)…수량이 적지 않았다.이 물건들은 혼을 불러들이는 데 쓰이는 것이었다.태부부에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들이 혼을 부른 걸지도 몰랐다.사악한 것을 물리치려 한 것이라면 이런 것들을 써서는 절대 안 됐다.바로 그때, 주인장은 정신을 차렸고 얼굴이 창백해서는 아직도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종이 인형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조금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이렇게 많은 초혼번이라니, 미쳤느냐?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낙청연은 장부를 덮으면서 고개를 돌려 주인장을 바라봤다.주인장은 깜짝 놀라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낙청연을 바라봤다.“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너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네가 건드린 그것은 내가 해결해줬다. 그러니 태부부의 일에 관해 솔직히 얘기해보거라.”낙청연은 평온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주인장은 미간을 잔뜩 좁힌 채로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저는 그저 돈을 받고 일하는 것뿐입니다. 혼을 불러들이는 것은 그들이 원한 일이지요. 이 일을 밖에 알리지 않는 걸 조건으로 거액의 은자를 받았는데…”’하지만 오늘 그는 큰일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