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저택은 옆에 있는 점포 장궤에게 대신 팔아달라고 부탁한 저택이었소. 그리고 이사하는 날이 됐는데 그 집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지. 그래서 저녁쯤에 사람들이 들어갔소. 그런데 들어가 보니 온 가족이 물항아리 안에 잠겨 있더군.”그 말에 낙청연은 적지 않게 놀랐다. 그녀는 린부설이 말할 때 한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그 집 가족들이 물에서 죽었다니, 어쩐지 관련이 있는 듯했다.“아저씨, 구체적인 정황을 아십니까?”낙청연의 질문에 남자는 주전자를 들어 차 두 잔을 따르고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그 집 주인은 타지의 객상(客商)이었소. 이 집도 장사하기 편하여지려고 산 것이었지. 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이 원외(李員外)라고 불렀소. 그는 청루의 한 무회에게 한눈에 반해 큰돈을 몸값으로 지급했었지.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아주 굉장한 혼례식을 치렀소. 그때는 그의 부인이 저택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지. 그런데 이 원외는 사실 고향에 처가 있는 상태였소. 그의 부인은 그가 몇 달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자 그 저택을 찾았고 결국 한바탕 큰 소란이 일었지. 그 뒤에 그의 부인은 수도로 이사해왔고 어떻게 협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부인은 청루의 무희를 첩실의 신분으로 저택에 머무는 것을 동의했소. 그런데 첩실이 임신했고 이 원외가 보름 동안 타지로 장사하러 갔다가 돌아와 보니 첩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 아니겠소? 이 원외는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찾았지만 결국 빙굴(冰窟) 안에서 언 시체로 발견되었지. 이 원외는 원래 관청에 신고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처가가 꽤 명망 있는 집안이라 앞으로 장사할 때 인맥에 영향을 줄까 그냥 참았다고 하오. 대외적으로는 그 무희가 우연히 빙굴에 갇혀 죽게 되었다고 했지. 하지만 그 뒤로 그 저택에서 밤만 되면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소. 얼마나 섬뜩한지, 그 저택의 하인들이 겁을 먹고 다들 도망갔지. 이 원외는 자신의 첩실이 억울하게 죽어 복수하려는 걸까 두
“휴, 운명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오.”벽해각이 성행할 때 낙청연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에 전혀 기억이 없었다.하지만 남자의 말과 그의 뜨거운 눈빛을 보면 당시 이 거리가 얼마나 시끌벅적하고 번화했는지 상상이 갔다.낙청연은 남자와 함께 마당에 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그와 얘기를 나눴고 벽해각에 관한 많은 얘기를 들었다.그와의 얘기를 통해 낙청연은 남자의 성이 범씨라는 것과 당시 그가 린부설을 연모해 먼 곳에서부터 수도로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어렵사리 점포를 구입해 린부설과 가까워졌는데 린부설은 사고를 당해 죽게 되었다.당시 이 거리에는 매일 호화로운 마차가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낭자들을 데려갔다.그래서 린부설이 갈 때도 이상함을 느낀 사람이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범 아저씨는 누군가 우연히 그 저택에 들어간다면 직접 사람을 구할 정도로 마음씨가 착했다.지금껏 아무런 사고도 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조차 의아함을 느꼈다.낙청연은 그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린부설이 그를 알아봐서 지금껏 다치지 않은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범 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그 안에서 춤을 추는 사수가 바로 린부설이라는 걸 모르는 듯했다.—아침 햇살이 옅은 안개를 꿰뚫었고 닭이 우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그제야 두 사람은 날이 밝았음을 인지했고 범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차를 마시며 말했다.“그 저택을 200냥에 샀다고 들었소. 그 돈으로 교훈을 샀다고 생각하고 저택은 남에게 팔지 말고 남겨두시오.”그런 저택을 판다는 것은 사람을 해치는 것과 다름없었다.낙청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팔지 않을 것입니다.”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범 아저씨는 깜짝 놀랐다.“그곳에 살 생각이거든요.”범 아저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거기에서 살겠단 말이오? 그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소? 그런데 살겠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오?”낙청연은 피식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해결
그날, 낙청연은 일꾼들을 저택으로 불러들여 깨끗하게 청소했고 문 앞과 마당에 등롱을 달았다. 환술(幻術)을 쓰지 않고 어젯밤 그녀가 봤던 저택의 모습과 같이 기풍이 넘치는 모습으로 꾸몄다.기척이 꽤 컸기에 온 거리가 그 일을 알게 됐다.낮에 저택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낙청연이 한 바퀴 쭉 둘러봤지만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밤이 되고 낙청연은 다시 한번 저택 대문 밖에 섰다. 이번에 그녀는 송천초가 겁을 먹을까 봐 그녀를 데려오지 않았다.살짝 쌀쌀한 밤바람이 불어오면서 대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마치 그녀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말이다.낙청연은 침착하게 걸음을 내디디며 마당 안으로 들어섰고 역시나 내원에서 린부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낙청연은 서서히 걸음을 옮겨 그곳으로 향했다.어제와 마찬가지로 둥근 무대 위, 린부설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몰두해 있었다.낙청연은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지만 이내 등허리가 서늘해지면서 싸늘한 손가락이 그녀의 어깨를 따라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귓가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공자, 함께 추시지요.”그녀의 섬섬옥수가 낙청연의 가슴께에 닿는 순간, 창백한 손가락이 움찔했다.“여인인가?”귓가에서 들리던 음산한 목소리에서 돌연 유쾌함이 느껴졌다.린부설은 낙청연의 손을 잡더니 경쾌한 움직임으로 그녀의 앞에 서면서 말했다.“나와 인연인 듯하니 나와 여기서 함께 하겠느냐? 내 벗이 돼줬으면 좋겠는데.”은방울 굴러가는 듯한 맑은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적의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미소였지만 낙청연은 한기가 그물처럼 그녀의 사지를 옭아매며 미친 듯이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들려는 걸 느꼈다.낙청연이 고개를 숙이자 붉은색의 핏줄 같은 것이 경락처럼 그녀의 체내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그 순간 낙청연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녀는 침착하게 부문을 꺼내 태운 뒤 그것을 날렸고 그 순간 화염이 치솟으며 핏줄들을 물리쳤다.“당신의 춤
그녀에게서 싸우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자 큰 뱀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주위에서 느껴지던 압박감이 줄어들자 린부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경계에 찬 얼굴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렇게 어린 여인에게 저토록 강한 자가 도움을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눈앞의 낙청연이 어떻게 저렇게 큰 뱀을 조종하는지가 의아할 따름이었다.낙청연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고 린부설은 경계하듯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사군때문에 겁을 단단히 먹은 듯한 모양이었다.사실 정상이었다. 린부설도 좀 오래됐다고 하지만 사군에게는 전혀 비할 바가 되지 못했고 공력 또한 완전히 그녀를 압살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낙청연은 더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낭자, 두려워하지 마시지요.”낙청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말하자 린부설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오늘 밤 바로 떠나겠다. 이 저택은 필요 없다.”린부설은 그 말과 함께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저택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낙청연이 자신을 내쫓을 거로 생각한 듯했다. 낙청연은 그 말에 웃으며 대꾸했다.“낭자, 전 낭자를 쫓을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는 예전에 벽해각이었고 당신이 살던 곳이었지요. 여기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됩니다.”린부설은 깜짝 놀랐다.“정말이냐? 내가 너의 몸에 빙의할까 두렵지 않은 것이냐?”린부설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낙청연은 태연하게 웃으며 대꾸했다.“낭자는 제가 어설픈 솜씨로 사군을 불렀다고 생각하십니까?”그 말에 린부설의 안색이 돌변했다.린부설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낙청연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소에 문득 두려움이 생겼다.곧이어 린부설은 다시 무대 위에 올라가더니 변두리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바람에 살랑이는 치맛자락을 보니 참으로 요염해 보였다.린부설은 웃음기 있는 얼굴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날 이곳에 남기려는 건 따로 쓸 일이 있어서겠지?”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과 요염한
낙청연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기억은 열세 살 때부터 시작이라 그전의 기억은 없었다.그리고 어머니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그녀는 심지어 낙용 고고와 그녀의 어머니를 알만한 사람들에게 전부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낙청연 어머니의 이름을 아는 자는 없었다.그녀는 승상 부인이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낙 부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들 그녀를 낙 부인이라고 불렀지. 낙해평의 부인이었으니까.”린부설은 그녀의 말에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왜 그자의 일을 묻는 것이냐?”낙청연은 놀랐다.“그 사람을 아는 것입니까?”린부설은 눈썹을 들썩이며 웃어 보였다.“알지. 알 뿐만 아니라 아주 친했었지.”낙청연은 심장이 옥죄었다. 어쩌면 어머니에 대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낙청연의 어머니가 그녀의 사부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었다.“그러면…”낙청연은 당장 묻고 싶었는데 린부설이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내게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대가로 줘야지.”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무엇을 원합니까?”린부설은 가볍게 바닥을 밟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두 팔로 낙청연의 의자를 잡더니 그녀에게 몸을 가까이했다.더없이 가까운 거리에 낙청연은 긴장한 얼굴로 뒤로 몸을 물렸다.그런데 린부설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대답했다.“너의 몸에 빙의하고 싶다. 난 사람들의 앞에 다시 나타나 춤을 추고 싶어. 나 린부설이 다시 세상에 나타나 수도를 휩쓰는 것이다! 나는 모두가 나에게 미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린부설의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흥분이 느껴졌고 그녀의 눈빛은 미치광이처럼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낙청연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린부설의 집념은 대단했다.“정말 미쳤군요. 이미 죽었으면서 명성이 그리도 중요합니까?”낙청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러나 린부설은 화난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이 몸을 일으켜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난 춤을 위해 태
“당신의 말을 들어보니 저희 어머니와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군요. 그런데 왜 알려주지 않는 겁니까? 어머니께서 어떻게 죽게 됐는지 알고 싶지 않은 겁니까?”린부설은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더니 말했다.“나도 지금은 죽은 사람이지. 하하하하.”“우리 어머니도 혹시…”낙청연은 심장이 쫄깃했다. 린부설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집념이 강하면 나처럼 되기 마련이지. 하지만 네 어머니의 집념은 어쩌면 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사는 것이 아니라고요?”낙청연은 미간을 구기며 다급히 물었다.“그럼 뭡니까? 어머니께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린부설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난 거래를 원한다. 나한테서 원하는 걸 얻고 싶다면 대가를 치르거라.”낙청연은 가슴이 답답했다.그녀의 사부는 죽었고 사부의 딸 또한 죽었다. 그리고 그녀는 사부의 딸의 몸으로 환생했다.이 모든 것이 운명일까?사부는 대체 어쩌다 죽은 걸까?반드시 알아내야 했다!“그래요. 제게 빙의하세요! 미리 말하지만 제 몸을 완전히 통제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매번 한 시진만 빙의할 수 있습니다. 춤은 춰도 되지만 반드시 가면을 써야 하고 제 신분을 완벽히 숨겨야 합니다!”낙청연이 승낙하자 린부설은 신난 얼굴로 말했다.“그래! 그렇게 하마!”린부설은 무대 위로 올라서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신산, 일찍 이사와야 할 것이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앞으로 달렸고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낙청연은 복잡한 심경을 안고 저택에서 나왔고 때마침 밖에서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고 있는 범 아저씨를 만났다.“저 공자! 괜찮소?”범 아저씨가 다급히 다가왔다.“전 괜찮습니다. 여기서 절 기다리고 계셨습니까?”범 아저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혹시나 사고를 당할까 걱정했소. 정말 담도 크군. 그녀가 난처하게 만들지는 않던가?”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요 며칠 물건을 마련해야겠으니 범 아저씨
낙청연은 살짝 놀랐다.“왕야, 아침 일찍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부진환은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은 송 낭자를 보러 온 것이오.”“송 낭자는 아직 깨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낙청연의 질문에 부진환은 미간을 구기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약을 사고 싶소! 송 낭자에게는 진귀한 약재들이 많지. 본왕은 지금 백 년 된 선삼으로 사람의 목숨을 구해야 하오. 송 낭자에게 그것이 있다면 그것의 열 배가 되는 가격으로 사겠소!”다른 사람이었다면 낙청연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열 배라는 높은 가격에 팔았을 것이다.하지만 부진환이 갑자기 열 배가 되는 고가로 영약을 사려 하니 보통 일에 쓰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낙해평의 병이 심각하니 설마 낙해평을 구하려고 그러는 것일까?저번 생신 연회에서 한 뿌리 준 것으로 부족한 것일까?소리를 듣고 송천초가 나왔다.“열 배의 가격으로 사시겠다고요? 어디에 쓰시려고 그럽니까?”부진환이 대답했다.“그건 대답할 수 없소. 송 낭자, 백 년 된 선삼이 또 있소?”송천초는 주저하는 얼굴로 낙청연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없습니다. 저번에 왕비와 왕야의 치료에 쓰인 것이 마지막 남은 것이었습니다.”열 배라는 가격에 혹하기는 했지만 부진환이 필요하다는 데 마구 팔 수는 없었다.부진환은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하나도 없소?”송천초는 고개를 저었다.“없습니다.”“그러면 더 구해올 수 있겠소? 가격이 어떻든 다 사겠소!”“구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반년은 걸릴 것입니다.”그 말에 부진환은 더 캐묻지 않고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알겠소.”뒤이어 부진환은 화두를 돌리며 물었다.“그럼 얼굴을 치료하는 약은 있소?”송천초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얼굴이요? 어떤 상처입니까?”부진환은 미간을 구기며 고민하다가 말했다.“아마 독사에게 물려서 생긴 상처일 것이오!”부진환은 낙청연의 상처가 어떠한지는 몰랐으나 독사에 물려 생긴 것이라 전해 들었다.그의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부진환은
“저 신산, 언제 시간 나면 한잔하지.”말을 마친 뒤 부진환은 몸을 돌려 떠났고 두 사람은 처마 밑에서 멀어지는 부진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송천초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대에게 주려고 약을 사려는 걸까요? 뱀에게 물렸다는 핑계를 댔다면서요?”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백 년 된 선삼은 내게 주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 낙해평을 구하려는 것이겠지.”“절대 안 줄 겁니다!”송천초는 눈썹을 까딱였다.“당연히 줄 수 없지요! 낙해평을 상대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썼는데요! 그런데 낙해평을 치료하게 된다면 돈을 낭비한 셈이 되지요.”뒤이어 낙청연은 입은 적 없던 사내 옷으로 갈아입고 쓴 적 없던 가면을 쓰고 점포를 나섰다.그녀는 우선 저택으로 가서 린부설을 찾았다.그녀는 작은 인형을 향낭 안에 넣고 린부설에게 건네줬다.“신산, 나한테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이렇게 작다니, 날 숨 막혀 죽게 만들 셈인가?”향낭 안에서 린부설이 원망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낙청연은 느긋하게 걸으며 대꾸했다.“제 손재간이 이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조금만 견디세요.”린부설은 한숨을 쉬었다.“네 어머니가 네가 날 이렇게 대한다는 걸 알면 슬퍼할 것이다.”“우리 어머니 얘기를 꺼내시다니요? 정말 저희 어머니와 친한 사이였다면 친한 친구의 딸인 저를 잘 보살펴야지 않습니까? 그런데 친한 친구의 딸의 몸에 빙의해 춤을 추고 과시할 생각 아니십니까?”린부설은 콧방귀를 꼈다.“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네 어머니가 여기 있었다고 해도 난 똑같은 조건을 내걸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한쪽만 희생할 수는 없다. 서로 주고받는 게 있어야 오래갈 수 있는 법이지. 우리는 협력하는 관계고 서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으니 이런 관계야말로 더없이 친밀하다고 할 수 있지. 이건 다 널 위해서다. 어떠냐, 내 말에 일리가 있지 않으냐?”낙청연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린부설의 말에 설득당했다.“그래요. 옳은 말씀이십니다.”낙청연은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