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요는 눈가가 빨갰지만 눈빛만은 의연하고 차가웠다.방문을 닫은 뒤 그녀는 아직도 쑤시듯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침상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이 몸으로 환생해서인지 무력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그녀가 여국에서 모두가 우러러보는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풍수와 관상을 보고 점을 치는 능력이 출중한 것도 있지만 혼자서 백여 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무공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거기까지 생각하니 그녀는 자기 몸이 못내 그리워졌다. 어릴 때부터 무공을 배워서 경맥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강인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괴롭힐 수 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몸은 이미 좌골양회(挫骨揚灰: 원한이 깊거나 중죄를 저지른 사람이 죽은 후 그 뼈를 갈아서 뿌리는 것)를 당했다.서방(書房)으로 돌아온 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마음도 심란했다.소유(蘇游)가 그의 방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왕야, 오늘 밤도 그 사람들을 불러 큰아씨께 겁을 줄까요?”그의 말에 부진환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아니, 오늘은 됐다.”어젯밤 그녀를 단단히 혼냈으니 다시 한번 그런 일을 겪는다면 또 자결하겠다고 난리를 칠 게 뻔했고, 혹시라도 진짜 죽기라도 한다면 승상부 쪽에 얘기하기가 껄끄러워진다.소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고 희미한 광선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있었다.젊고 예쁘장한 계집종이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오만한 태도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왕비 마마께서는 신선이라도 되려고 그러십니까?”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낙청연이 눈을 떴다.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고 날카로웠고 그 눈빛에 맹금우(孟錦雨)는 순간 겁을 먹었다.그녀는 손을 휘저으며 밖에 있는 사람을 불러들이더니 일부러 거드름을 피우면서 느긋하게 얘기했다.“왕비 마마께서 온종일 음식을 드시지 않았으니 배가 많이 고플 것이라 하여 왕야께서 자비를 베풀어 이것들을 하사해주셨습니다.”계집종들이
“구했으면 구한 거지 이유가 필요하더냐?”낙청연은 담담하게 대꾸하고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녀가 저 멀리 걸어가자 등 어멈은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죄책감이 들었고, 결국 참지 못하고 낙청연을 불러 세웠다.“왕비 마마!”낙청연이 발걸음을 멈추자 등 어멈은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오늘 아침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왕비 마마의 시중을 드는 일만 아니었다면 전 이미 저택에서 나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비 마마를 원망하고 분풀이하였습니다.”등 어멈은 고개를 숙인 채로 미안한 듯 얘기했다.그녀는 왕비가 자신을 도와줄 줄 몰랐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아마도 맹금우에게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게다가 낙청연은 그녀의 빠진 팔을 치료해주었고 소문처럼 그렇게 독살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등 어멈의 말에 낙청연은 그제야 연유를 깨달았고 등 어멈은 그녀에게 충고를 해주었다.“왕비 마마, 이 섭정왕부에서 계속 지내고 싶으시다면 맹금우와는 척을 지지 마셔야 합니다. 맹금우는 저택의 일등 계집종입니다. 내원 관사(內院管事)의 친딸이거든요.”“이미 척을 지지 않았더냐.”이제 와서 얘기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등 어멈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낙청연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서는 목소리를 낮추며 얘기했다.“제가 무심코 들은 얘기가 있는데, 둘째 아씨께서 맹금우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둘째 아씨께서 왕비 마마가 되면 건강이 좋지 않아 왕야의 시중을 들 수 없으니 맹금우를 통방으로 삼아 그녀더러 왕야의 시중을 들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씨와 왕야의 혼례가 성사되지 않았으니 왕비 마마께서 맹금우를 구슬리시려면 맹금우더러 왕야의 시중을 들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왕비 마마께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겠지요.”등 어멈은 낙청연의 도움에 감사했고 그래서 자신도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기에 그녀 대신에 방도를 생각했다.등 어멈의 말에 낙청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낙월영은 맹금우와 통방을 조건으로 거래를 한 것이었고, 맹
낙청연은 벽 구석 쪽에 놓인 몽둥이를 휘둘러 맹금우를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소매 안에서 찐빵을 꺼내서 그녀의 입안에 쑤셔 넣어 그녀가 삼키게 만들었다.사내들은 창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낙청연이 창문 쪽으로 도망치려는 줄로 알았다.“여기 있었군. 감히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그중 한 명이 맹금우의 뺨을 내리쳤고 낙청연은 내친김에 맹금우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사내들은 기절한 맹금우를 낙청연으로 여겼고 그녀를 침상 위로 옮겼다.낙청연은 벽에 귀를 딱 붙이고 안쪽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일이 확실히 진행되고 있자 낙청연은 그제야 유유히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밤이 깊어진 틈을 타 낙청연은 몰래 부엌으로 가서 먹을 것을 찾았지만 부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결국 낙청연은 부엌 구석 쪽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공무를 마친 부진환은 서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낙월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왕야! 주무시고 계십니까?”그녀의 황급한 목소리에 부진환은 얼른 문을 열었다.“왜 그러느냐?”낙월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조금 전 눈물을 흘린 것처럼 그렁그렁한 눈으로 부진환을 바라보았다.“왕야, 제가 아까… 사내 여럿이 언니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왕야, 제발 언니를 용서해주세요.”그녀의 말에 부진환의 안색이 돌변했다.사내 여럿이 낙청연의 방으로 들어갔다니? 그는 소유에게 분명 그 짓을 그만하라고 분부했었다.“왕야, 저한테 언니는 한 명뿐입니다. 언니가 무슨 짓을 저질렀든 언니가 제 언니인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낙월영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부진환은 미간을 좁히더니 얼른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나와 함께 가보자꾸나.”“그…”낙월영은 고개를 숙이면서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부진환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낙청연이 대체 무슨 짓을 꾸민 것인지, 왜 지금에 와서도 포기하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낙월영이 그가 무슨 짓을 했다고 오해까지 하게 만들
맹금우와 하인들은 본디 낙청연의 방에 있지 말아야 했는데 하필 오늘 밤 이 모든 사람이 낙청연의 방에 모여들었고 정작 그녀는 방 안에 없었기에 부진환은 낙청연이 일을 꾸민 것으로 생각했다.낙청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미간을 좁히면서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왕야, 지금 죄인을 문초하시는 겁니까?”그 모습에 낙월영이 얼른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그녀의 팔뚝을 잡았다. 그녀는 작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왕야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 밤 무엇을 하셨는지 솔직하게 왕야께 말씀드리세요. 제가 있으니 왕야께서는 언니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낙월영의 행동을 보면 오늘 밤 일이 진짜 낙청연이 꾸민 일 같아 보였다.낙청연의 눈동자에 티 나지 않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녀는 무언가 켕기는 게 있다는 듯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뜨리면서 목소리를 낮췄다.“사실 오늘 내가 체면을 구기는 일을 하기는 했지…”그 말에 낙월영은 일부러 놀란 표정을 해 보이면서 목청을 높였다.“뭐라고요? 언니, 왜 이렇게 어리석습니까?”낙월영은 낙청연을 끌고 앞으로 나서면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언니, 왕야께 잘못했다고 비세요. 제가 있으니 괜찮습니다.”낙월영은 낙청연의 표정을 살피더니 예전과 똑같이 멍청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이 기회를 틈타서 그녀가 자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부진환이 화가 나서 그녀에게 곤장형을 내리기를 바랐다.부진환은 미간을 좁혔고 표정을 굳혔다.주위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모든 이의 이목이 낙청연에게로 집중되었고 모두 그녀가 자신의 죄를 털어놓기를 바랐다.맹금우는 맹 관사의 친딸로 섭정왕부의 일등 계집종이었다. 어찌 보면 왕야의 측근이기도 했기 때문에 낙청연이 맹금우를 해친 것이면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이었다.낙청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자신의 납작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늘 밤 부엌에 먹을 것을 훔치러 갔는데 찾아보니 쌀 한 톨 없더군요
낙청연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있는 하인들에게 다가가서 차분하고 느긋하게 물었다.“내가 시킨 일이라고 했느냐? 그럼 말해보거라. 내가 언제 어디서 너희들더러 여기로 오라고 했느냐? 언제 내 처소로 들어오라 어떻게 얘기했느냐? 게다가 이건 왕비의 처소다. 감히 이곳에 들어갈 생각을 했느냐? 내가 무슨 조건을 약속했길래 죽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냐?”그녀의 연이은 질문에 무릎을 꿇고 있던 하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맹금우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도움을 바랐다.부진환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조용히 그 모습들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고 낙청연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홀로 이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조리 있게 얘기했다. 낙청연은 생각보다 똑똑한 사람이었다.“말해보거라. 내가 시킨 일이라 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얘기했는지 다시 말하는 것도 못 하겠느냐?”낙청연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맹금우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들은 그 문제에 관해서 말을 맞춘 적이 없었기에 계획이 틀어지게 된 것이다. 맹금우는 무언가 기억난 듯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약입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저에게 약을 쓰셨습니다. 왕야께서도 왕비 마마께 당한 적이 있으시지요. 왕비 마마께서 약을 쓴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부진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낙청연은 부진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는 얼른 먼저 입을 열었다.“왕야, 제가 왕야께 이 약을 썼다면 혼인날 왕야께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가져온 미정향은 그날 다 써버렸습니다. 전 이곳에 올 때 몸만 왔습니다. 제가 또 어디서 약을 구한다는 말입니까?”낙청연이 그날 썼던 약은 미정향이었고 그 약은 극락산보다 효과가 훨씬 떨어졌다. 맹금우는 정원 바닥에 내쳐지고도 정신을 아예 못 차렸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었으니 약효가 몹시 강하다는 건 아주 명백한 사실이었
부진환의 미간에 있던 불길한 기운이 더 강해졌고 눈가는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낙청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그에게 충고했다.“왕야, 자꾸 그렇게 한쪽 말만 믿으시면 정말 큰일 나실 것입니다. 요 며칠간은 외출하지 마세요.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부진환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지 경고하며 말했다.“저택 안에서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거나, 월영의 월자라도 꺼내는 날엔 네 혀를 잘라버릴 것이다.”낙청연은 코웃음을 쳤다.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부진환은 그녀가 낙월영을 모함하려 한다고 생각했다.사람의 호의를 이렇게나 받아들이지 못하니, 낙월영은 그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부진환이 죽으면 수세를 써달라고 할 필요도 없으니 더 좋았다.낙청연은 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에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낙월영은 승상부의 큰아씨였으니 부진환은 그녀를 죽일 수 없지만, 그녀가 편히 살지 못하게 할 수는 있었다. 낙월영은 부진환이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 없을지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의 몸에는 용의 기운이 있으므로 어쩌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몰랐고, 만약 그가 위기를 이겨낸다면 낙청연은 그때 가서 다시 방도를 생각해 볼 셈이었다.처소로 돌아온 낙청연은 직접 이불을 새로 바꿨고 일을 마치니 이미 자시(子時: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의 사이)였다.그녀는 벽에 몸을 붙인 채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예전에 배운 적이 있었던 내공 심법(內功心法)으로 기운을 다스리고 호흡을 가다듬을 생각이었다. 그녀의 몸은 살이 많아 묵직했고 다시 무예를 익히려면 우선은 경맥을 뚫어야 했다. 그래서 낙청연은 매일 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 심법을 수련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무예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평소였다면 그녀의 정력으로는 날이 밝을 때까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왜인지 모르게 두 시진 정도 지나니 스
거울에 비친 등 어멈은 기쁨에 가득 차서 말했다.“네, 네. 기억했습니다. 정말 어떻게 왕비 마마께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오늘부터는 제가 왕비 마마를 모시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등 어멈은 그 말과 함께 비녀를 손에 들고 낙청연의 머리에 꽂아주려 했다.바로 그 순간, 낙청연의 눈빛이 번뜩였고 그녀는 잽싸게 등 어멈의 손을 잡고서는 그녀와 마주 보고 섰다.등 어멈은 깜짝 놀라더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물었다.“왕비 마마, 왜 그러십니까?”낙청연이 손에 힘을 주자 등 어멈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손에 힘을 풀었고 비녀가 바닥에 떨어졌다.상대는 낙청연의 뜻을 알아채고는 살벌한 눈빛을 하며 재빨리 탁자 위에 있는 다른 비녀를 들어 낙청연을 찌르려 했다.등 어멈은 힘이 아주 셌고 낙청연은 버티지 못하고 그녀에게 밀쳐져 바닥에 쓰러졌다. 서늘한 빛이 감도는 비녀는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그녀의 눈동자 위에서 번쩍이고 있었다.등 어멈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비녀로 그녀의 눈알을 찌르려 했다.액살을 구분해내는 것은 풍수사(風水師)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낙청연은 등 어멈의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빛나는 걸 보고는 곧바로 상대가 무엇인지 알아챘다.“몹쓸 놈, 죽어라!”낙청연은 등 어멈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서 갑자기 힘을 풀었고, 그 바람에 뾰족한 비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낙청연은 날렵한 몸짓으로 고개를 한쪽으로 피했고 동시에 등 어멈의 복부를 주먹으로 치고 그녀를 걷어찼다.그리고는 벌떡 몸을 일으켜 등 어멈의 몸 위로 올라타서는 손가락을 씹어서 피를 낸 뒤에 등 어멈의 이마에 부적을 적기 시작했다.부적이 완성되는 순간 등 어멈의 이마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등 어멈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었다. 등 어멈은 얼굴은 사정없이 찡그리면서 끊임없이 비명을 내질렀다.정원에 있던 하인들은 그 처참한 비명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들은 한데 모여서 수군덕거리기 시작했다.“왕비 마마께서 학대하시는 건 아
낙청연의 말을 들은 지초는 그 자리가 과분한 자리라 생각해 더듬거리며 말했다.“왕… 왕비 마마, 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차를 따르고 물을 받아 올 줄은 알겠지. 머리를 빗는 것도 할 줄 알 테고. 그것만 알면 되니 여기 남거라.”낙청연은 곧바로 지초를 일으켜 세웠고 지초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낙청연은 그녀의 앞에 그릇과 젓가락을 놓아주며 말했다.“양이 많아서 혼자 다 먹지 못하겠으니 너도 앉아서 먹거라.”지초는 깜짝 놀라더니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감히 거절할 수도 없어서 얌전히 그릇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녀의 어리바리한 모습에 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스승님이 사매를 데리고 왔을 때 사매도 지금의 지초처럼 굴었었다.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지초가 떠나고 나서야 낙청연은 혼자 남아 천명 나침반을 꺼냈다. 그녀는 조심스레 나침반을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침반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낙청연은 조금 놀랐다. 나침반을 들고 방문을 나서서 정원으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그녀는 그제야 섭정왕부의 풍수를 보았다. 왕부의 뒤쪽에는 산이 있었는데 수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왼쪽에 유수(流水)가 있으니 청룡의 기운이 있고 오른쪽에는 장도(長道)가 있어 백호의 기운이 있었다. 앞에는 연못이 있어 주작의 기운이 있고 뒤에는 군산(群山)이 있어 현무의 기운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귀한 땅이었다. 그러니 이런 곳에 지어진 왕부 또한 길택(吉宅)임이 분명했다.그러나 저택 안에는 악기(惡氣)가 감춰져 있었다. 낙청연은 나침반을 들고 긴 회랑에서 갔다 왔다 했으나 악기의 근원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비 때문에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기에 비가 멈춘 뒤 다시 살펴볼 생각이었다.비가 줄기차게 쏟아졌으나 공기는 후덥지근했고 몸이 찌뿌둥했다.밤이 되자 왕부의 대문 쪽에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
“왜 계속 당신을 남겨두었는지 알고 있소?”부진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강해는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동하국 왕자이기 때문에 남겨 두면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소.”“하지만 동하국 사람이 당신을 죽이려 할 줄은 생각지 못했소.”고강해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자네는 이젠 아무런 가치가 없소.”고강해는 자신의 처지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고 답했다.“사실 난 잡힌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었소.”“동하국에는 황자가 많으니, 나 하나 없다고 문제 될 것 없소.”“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나를 죽이려 할 줄은 몰랐소. 도망가는 와중에도 나를 쏘려고 했소.”“하지만 우리는 형제 사이의 정이 없었소. 그저 경쟁과 싸움뿐이었소.”부진환은 그가 많은 말을 하자, 계속 물었다.“그저 싸우는 사이라면 어찌 자네를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오? 구하지 않는 것도 망정이지, 왜 죽이려 하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그들은 나한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오.”“만약 그것을 얻는다면 새로운 왕자가 될 수 있소.”부진환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옥서가 고옥언을 구할 때, 그는 옆 방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고강해 시체에서 뭔가를 갖고 가겠다는 것을 들었다.“그게 무엇이오?”고강해는 대답하지 않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우리 동하국에는 존경받는 약사가 있소.”“하지만 과거 그녀는 동하국의 제압을 받던 일반 의원이었소. 독을 만들 줄 알기에 우리의 핍박을 받고 독을 만들었소.”“그녀는 여국인이지만 진법으로 인해 밖으로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소. 그렇게 떠돌다 그녀는 동하국으로 왔고 늘 여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소.”“그녀의 계획은 줄곧 실패했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홀로 바다에 갔소. 그날 그녀는 파도 때문에 배가 뒤집혔지만, 마침 바다 밑에서 보물을 발견했소.”“오래된 침몰선이 해저에서 거대한 궁전이 된 듯한 모습이었고, 그녀는 그 안에서 많은 보물을 얻었고 특
고강해는 절망에 휩싸여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하지만 이때, 옆에서 화살이 날아가 정확히 고옥서가 쏜 화살을 떨구었다.고옥서는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며 활을 내던지고 재빨리 마차를 이끌고 그곳을 떠났다.이내 그 마차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병사들도 신속히 그들의 뒤를 쫓았고 성문에 걸린 고강해도 내려져 감옥으로 데려갔다.고옥서와 고옥언은 바닷가로 도망쳐 작은 배를 찾아 먼저 숨을 곳을 찾기로 했다.하지만 너무 빨리 쫓아온 병사들 때문에 두 사람은 숨을 곳 없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은 힘껏 노를 저어 떠나려 했다.바다에서 힘에 부쳐 곧 쫓기려는 그때, 눈앞에 동하국의 배 한 척이 나타났다.그리고 배 위에는 동하국 깃발이 달려 있었다. 고옥서는 미리 계획한 배가 마침 인근에 왔다고 추측했다.두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본 듯이 배 위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고 곧 배에 올랐다.“어서 돌아가거라! 병사가 쫓아왔다!”고옥서가 다급히 명을 내렸다.하지만 배는 바다에 멈춰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옥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배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무엇들 하는 게냐? 귀가 먹은 것이냐?”비록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하국 병사였지만 이상하게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의 말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옥서는 병사들이 곧 쫓아올 것 같아 조바심을 내며 그들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으며 배도 움직이지 않았다.고옥서는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고옥언을 끌고 배에서 뛰어내리려 했다.하지만 그때, 선실에서 청주군 병사들이 뛰어나와 단번에 그들을 포위했다.배에서 뛰어 내리려 해도 이젠 뛸 수 없었다.그리고 추격하던 병사들도 가까이 도착해 그들의 배를 겹겹이 에워쌌다. 그리고 배 위에는 부소가 서 있었다!그녀는 놀란 나머지 절망스러웠다. 고옥서는 화를 내며 동하국 사람을 붙잡았다.“적들을 도와 우리에게 함정을 파놓은 것이냐?”상대는 울먹이는 말
결국 다들 시선을 부소에게로 옮겼다.부소는 멍하니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나한테 가라는 것이오?”“그것도 아니지 않소?”부진환이 말했다.“주락과 계진 둘 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미인계에 넘어가게 생겼소?”“자네의 연기가 비슷할 것 같소.”부소가 다급히 말했다.“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소?”“다른 사람은 마음이 놓이지 않소.”부소는 한참 고민하다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다 마셨다.“가면 될 것 아니오!”“좋은 소식 기다리시오!”부소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부진환이 그를 불러 세웠다.“오늘 이미 심문을 받았으니, 지금 가는 것은 너무 티가 날 것이오. 급할 것 없이, 내일 다시 가시오.”-다음 날 저녁.부소는 부진환이 말한 대로 고옥서를 심문하러 갔다.부 태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옥서는 전쟁 때문에 그가 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역시 부진환의 추측대로 고옥서의 계략 중 하나가 바로 미인계였다.부 태사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부소는 다르다.한바탕 유혹하고 난 후, 고옥서는 기회를 잡아 부소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고옥언이 갇힌 위치를 알아내고 부소가 방심한 틈을 타서 독 가루를 뿌려 그를 쓰러트렸고 감옥 문 열쇠를 훔쳐냈다.그리고 그녀는 독으로 감옥을 지키고 있던 옥졸을 쓰러트리고 고옥언이 갇힏 곳을 찾아 고옥언을 구출했다.“누나!”고옥언은 감격에 겨웠다.“어찌 온 것입니까? 동하국이 청주성을 뚫은 것입니까?”고옥서는 사방을 경계하며 말했다.“아니다. 홀로 너를 구하려 들어온 것이다.”“일단 이곳을 떠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두 사람은 조용히 감옥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감옥 끝에 있는 철문을 보고 고옥언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누나. 고강해가 저곳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데리고 가실 겁니까?”고옥서는 바로 거절했다.“안 된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우리도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누나. 저는 그저 고강해가 지니고 있는 열쇠를 말한 것입니다.”그 말을 듣고
“정말인 것이냐? 동하국에는 나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동하국 사람들이 워낙 적으니, 그럴만하다.”고옥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정말 단호하구나.”말을 마치고 고옥서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옷을 입었다.부 태사에게 미인계가 통하지 않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인내심이 없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거라.”부진환이 천천히 몸을 돌려 불쾌한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고옥서는 어쩔 수 없이 답했다.“내 동생을 구하러 왔다.”“동하국 왕자, 고강해.”“너에게 잡힌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것이냐?”부진환은 놀라지 않았다.“얼마 전에 그를 구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다들 실패했는데, 너라고 성공할 거라 생각한 것이냐?”고옥서가 가볍게 웃었다.“확신이 없다면 어찌 왔겠느냐? 청주성에서 순찰하는 청주군도 많지 않은 듯한데, 다들 바닷가로 갔나 보구나.”“동하국의 배가 부담을 준 것이냐?”부진환이 담담하게 그녀를 힐긋 보고 답했다.“쓸데없는 걱정이구나.”말을 마치고 부진환은 몸을 돌려 떠났다.부진환의 반응을 본 고옥서는 전쟁의 상황이 부 태사에게 큰 부담이 되었고 막사마저 사라졌을 것이라 추측했다.그렇지 않으면 부 태사가 어찌 안색을 바꾸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한 고옥서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철문을 바라보았다.감옥에서 나간 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부소가 와서 그를 부른 것도 듣지 못할 정도였다.부소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왜 그리 넋을 놓고 있소? 여러 번 불러도 도통 반응이 없었소.”“심문하러 간 동하국 여인은 어떻게 되었소? 안색이 좋지 않소.”부진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청주성에 들어와 동하국 왕자이자 그녀의 동생 고강해를 구하러 왔다고 순순히 말했소.”부소가 깜짝 놀랐다.“고강해 말이오?”“그런 뜻으로 말했소. 하지만 고옥서라는 이름을 들으니, 고옥언과의 관계가 궁금해졌소.”“나이를 보니
“모든 것이 예전처럼 회복될 것입니다.”차강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황량한 이한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다 잘될 것이다.”그는 이한도를 예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시간문제일 것이라 믿는다.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저녁이 되자 바닷가의 막사는 고요함을 되찾았다. 전쟁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깨끗이 청소되었다.옥에 갇힌 고옥서는 아직도 동하국의 병사들이 매복을 당해 전쟁에서 지고 도망친 것을 모르고 있다.그녀는 옥에 끌려간 후 동생의 모습을 보고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계속 그를 찾지 못했다.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는 철문이 하나 있었다.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죄수를 수감하는 곳 같았다.그녀는 철문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옥에 갇혀 있었다.위치가 적합하니, 기회만 생기면 동생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그녀는 늦게까지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하지만 감옥에 온 사람은 부진환이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다.“부 태사?”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바로 동하국의 공주구나.”“몇 번 교전할 때, 네가 지휘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용기에 비해 계략이 부족하더구나.”“홀로 청주성에 들어오다니. 정말 청주군의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옥서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문 앞까지 걸어가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는 역시 대단하구먼.”“중독된 사람들과 달리 아직도 멀쩡하게 기운이 남아도는구먼.”“바깥 상황은 어떠하냐? 부 태사의 막사는 지켜낸 것이냐?”고옥서는 일부러 그를 비웃으려 득의양양하게 비꼬았다.하지만 부진환은 표정 변화 없이 그냥 싸늘하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하지만 고옥서는 그의 뜻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해했다.하지만 청주성은 아직 뚫리지 않은듯하다.“이름이 무엇이냐? 동하국에 내세울 사람이 없는 것이냐? 어찌 여인을 보내 전쟁을 지휘하게 하는 것이냐?”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소식을 누설한 지 3일이 지나자 동하국에서 다시 대거 공격을 퍼부었다.그들은 배를 타고 해안가로 접근해 막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단숨에 청주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명을 따르라. 청주군의 주의를 끌면, 내가 작은 배를 타고 사람을 구하러 갈 것이다!”고옥서는 매서운 눈빛으로 막사를 바라보았다.“예!”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국의 배는 점점 해안가에 가까워졌고 청주를 단번에 공격하려는 기세로 다가왔다.적군이 가까이 오자 몰래 숨어있는 청주군은 저도 몰래 손에 든 무기를 꽉 틀어잡고 장군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부진환은 조급해 하지 않고 암암리에서 관찰하고 있었다.이내 적군이 폭발을 일으켰고 막사에 이따금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막사는 공격을 받아 폭파되었고 허공에는 날아가는 돌멩이와 먼지가 자욱했다.막사에 남아 있던 일부 병사들이 황급히 도망쳤다. 그들은 적군의 배가 해안가에 곧 도착한 것을 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돌려 도망쳤다.청주군이 사방으로 뿔뿔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고옥서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녀는 줄곧 이 독이 여국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고 말했었다.곧 막사는 텅 비었고 동하국 사람도 배를 세운 후 잇달아 배에서 내렸다.고옥서는 작은 배를 타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향해 조용히 뭍으로 올라갔다.그녀의 계획에 따라 7일 후 누군가 이곳에 데리러 올 것이다. 오늘 청주를 공격하지 못하더라도 먼저 사람을 구해야 한다.그녀는 배도 암초 뒤에 숨기고 조심스레 육지로 올라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감시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고옥서는 육지로 올라온 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일반 백성 차림으로 가장해 청주성으로 들어갔다.청주성에 들어가는 순간 그녀는 잡히고 말았다.많은 동하국 사람이 배에서 내리자,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청주군은 부진환의 명에 따라 어두운 곳에서 뛰쳐나와 살기를 내뿜으며 적을 찔렀다.이미 7~8척의
“청주로 가는 동안 풍경을 구경할 수도 있으니, 급해하지 마시오.”“어쩌다 여국으로 왔는데 여국의 여제로서 잘 챙겨줘야지 않겠소? 어찌 오자부터 전쟁터로 내민다는 말이오?”“일단 궁에 며칠 묵으시오.”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저희도 오랜만에 얘기를 나누어야지 않겠습니까? 하고 싶은 재밌는 이야기들이 아주 많습니다.”-청주.병사들은 모두 해독하였지만 동하국은 또 바다에 새로운 독을 넣기 시작했다.바다에 갑작스레 떠다니는 시체가 늘어났고 해안가로 떠밀려와 악취를 풍겼다.시체 주위의 바닷물은 검은색을 띠고 있었고 끈적끈적한 액체도 묻어 있었다.그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바다 위의 참혹한 광경에 다들 마음이 무겁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들은 바로 동하국을 없애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태사, 공격합시다! 저 자식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더 비열한 짓을 할 것입니다!”부진환은 사색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칠 동안 맑던 하늘에도 이날 밤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가 쳤다.방 안의 촛불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부진환은 문과 창문을 굳게 닫고 다시 촛불을 켜서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비추었다.“하늘이 노하고 백성들이 노하니, 동하국은 분명 죽음을 자초할 것이오.”부진환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이번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계속 독을 쓰는 것으로 보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오.”“이미 해독한 일을 오랫동안 숨겼으니, 이젠 이 점을 이용해야 할 때오.”“다시 독을 썼으니, 중독으로 인해 전투력을 잃었다고 상대를 속여 전력을 다해 공격하도록 유도해야 하오.”“박가는 기관선을 이끌고 인근 해역에 기관을 설치하시오. 일단 그들이 오기만 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해야 하오.”“그와 동시에 부소는 천궁도와 제사장족 제자를 데리고 여국 대진을 찾아 대진을 복구할수 있는지 확인하시오.”“부 대인은 향 장군과 함께 사람을 데리고 지도의 길에 따라 동하국의 구체적인 위치를 찾으십시오.”“주로 적
또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서월 일행은 독약과 해독약을 만들어 바닷가 막사에 있던 청주군이 먼저 복용하게 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바로 궁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중요한 일이니, 절대 누설될 수 없기에 낙요에게만 편지를 전했다.겨울이 추워지자, 낙요는 푹신푹신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뜨거운 차를 마시며 편지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우유가 상황을 보고 궁금한 듯 물었다.“부 태사의 편지냐?”“청주에서 좋은 소식이 온 것이냐?”낙요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다의 독을 억제할 법을 찾았다.”“다만 동하국에서 알게 되면 대응을 할 수도 있으니, 일단 이 소식은 발설하지 않았다.”그 말을 듣고 우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정말 다행이구나.”“지난번 동하국에서 전쟁에서 패한 후, 여태껏 잠잠한 것으로 보아 제사장족의 술법을 두려워하는 것 같구나. 보아하니 동하국은 겨울이 지난 후 다시 공격하려는 것 같구나.”낙요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겨울에 전쟁하는 것은 본디 우리의 열세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우세가 되었다.”우유가 웃으며 말했다.“그 아이들이 이번에 큰 공을 세웠구나.”낙요가 웃으며 답했다.“아이들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 의외였다.”“그들이 돌아오면 상을 줘야겠구나.”-시간이 흘러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더니 어느덧 봄이 찾아왔다.날씨가 따뜻해지자, 낙요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옛 벗을 만났다.송천초와 초경이 여국에 찾아왔다.게다가 특별히 많은 약재를 갖고 왔다.“동하국과 싸운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아프셔서 산장의 일로 바빠 줄곧 올 수 없었습니다.”“요즘 한가해지자마자 이렇게 약재를 주러 왔습니다. 이 약재는 제가 오랫동안 모은 약재로, 전부 해독에 좋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재들입니다. 아주 넉넉히 준비했습니다!”송천초가 흥미진진하게 말했다.낙요가 관심 어리게 물었다.“아버지의 건강은 어떻소? 무슨 병인 것이오? 심각하오?”송천초가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오래된 병입니다.”
책자에는 이미 그녀가 복용한 수백 가지가 넘는 해독 약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부진환은 못내 그 내용을 보고 감탄했다.“백여 종의 독이 있는 것이냐?”서월이 설명했다.“짧은 시일 내에 만들어낸 독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독인 듯하옵니다.”“독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잔여물들을 모아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독은 흔히 볼 수 있는 경증을 동반하고 있고 치명적이지 않지만, 전투력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게다가 해독에 필요한 시일도 오래 걸려 완쾌하기 어렵습니다. 보아하니 동하국에 독을 쓰는 고수가 있는 듯합니다.”“하지만 독에 강한 고수가 있는 데에 불과하고 왜 치명적인 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독을 섞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부진환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일은 동하국을 공격한 후에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정신을 차린 후 부진환이 물었다.“그러면 지금 얼마나 걸려야 해독약을 만들 수 있는 것이냐?”서월은 대답할 수 없었다.“이미 수백 가지가 되는 해독약을 복용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해독법으로는 해독약을 만들어낼 가망이 없을 것입니다.”“저에게 위험한 생각이 있습니다.”“바로 독으로 독을 물리치는 것입니다.”“저는 항상 독을 만들며 독을 다루기 때문에 이미 저에게 효능을 잃은 독도 많습니다. 그런 독은 저에게 영향을 그다지 미치지 않고 증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만약 더 강한 독을 복용한 후 일정량의 해독약으로 통제한다면 동하국의 독을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서월이 자세히 설명했다.담 신의는 옆에서 그 말을 듣고 다소 의아했다.“그렇습니다. 독으로 독을 물리치는 방법은 저도 생각한 적 있지만 독에 정통하지 않으니,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아가씨의 방법은 아마 효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담 신의도 그 말에 동의하는 것을 듣고 부진환이 답했다.“좋다. 일단 네가 말한 대로 작은 범위에서 시도해 보거라.”서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