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야가 없어도, 태풍상사가 없어도 장사를 할 수 있지 않느냐. 네 재주로는 반드시 잘될 것이다.”“언니는 집에서 밥을 해주고, 잡일을 거들어줄게.”“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세상은 넓으니 네 인연도 반드시 있는 법, 왕야보다 좋은 분이 계실 거다.”심녕은 눈물을 흘리며 미안한 듯 심부설의 손을 꽉 잡았다.“약속하겠습니다. 함께 경도를 떠납시다.”심부설의 창백한 얼굴에 마침내 기쁨의 미소가 보였다.심녕은 울먹이며 고개를 숙이고 자책했다.“언니, 죄송합니다.”“낙운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약을 바꿔서 지금껏 몸이 좋아지지 않은 겁니다.”“해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언니 병이 더디게 나으면 왕부에 더 오래 있을 수 있어 왕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말을 마친 심녕은 어두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하지만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심부설은 탄식했다.“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늦지 않았다.”“준비하고 바로 출성하자.”심녕은 의아했다.“이렇게 빨리요? 하지만 상처가…”“괜찮다. 천천히 가면 된다.”심부설은 기쁘면서도 불안했다.심부설은 서둘러 경도를 떠나고 싶었다. 한시라도 더 있으면 엊저녁의 굴욕적인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렇게 체면을 구기고 남자에게 구걸하다니, 다시 떠올려도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심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심녕은 곧바로 마차를 준비해 심부설과 함께 성 밖으로 향했다.성문을 나선 후, 심부설은 문발을 열고 뒤를 돌아보며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종일 바삐 움직이느라 경도성을 잘 돌아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심부설은 갑자기 심녕의 손을 덥석 잡았다.심녕은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너무 큰 대가를 치른 일이라 다시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오후가 되어서야 양행주는 부에서 나갔다
낙요는 이곳에 오자, 황상께서 여기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황상.”류 공공이 공손하게 침궁 안에 대고 외쳤다.곧바로 부운주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마신다.”류 공공은 어쩔 수 없다는 어투로 말했다.“태상황께서 보낸 의녀입니다. 그래도 한번 뵙는 게 어떻습니까? 태상황의 노여움을 사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이 말을 듣자, 황상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들어와라.”낙요는 류 공공께 인사를 올린 후, 침궁 안으로 들어갔다.주위는 어두컴컴했다. 낙요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한참 있어서야 부운주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았다.“황상, 태상황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이제는 약도 안 드신다고 하시던데…”부운주는 눈을 감고 서늘한 어투로 답했다.“태상황으로 짐을 협박하는 것이냐?”“짐이 약을 마시면 낫는 거냐?”부운주는 불만 가득한 어투로 눈을 떴다.그러나 낙요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너는…”“노옥도를 따라다니던 그 의녀구나.”“태상황께서 어찌 너를 보낸 것이냐?”낙요는 신중하게 문밖을 바라보았다.류 공공이 지키고 있어 낙요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태상황께서 황상의 옥체가 걱정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황상은 천궐국의 운명이 달린 몸이니, 옥체를 보존하셔야지요.”낙요는 겉치레로 말을 하면서 몰래 부운주에게 환약 하나를 건넸다.부운주는 멈칫하더니 환약을 받았다.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다 입에 넣었다.“하지만 짐은 약을 먹기 싫구나. 약을 먹으라고 설득할 거라면 나가라.”낙요는 잠시 생각하다 다급히 말했다.“황상, 저는 침을 놓을 줄도 압니다. 혈 자리를 안마하면 피로가 풀릴 텐데, 한번 해보시겠습니까?”“그럼 해보자구나.”낙요는 곧바로 앞으로 다가가 부운주의 어깨와 머리를 눌러주었다.처음에는 아팠으나, 곧바로 매우 편안하고 시원했다.부운주는 시원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태상황이 널 보낸 건 다 이유가 있구나. 넌 확실히 다른 태의와 다르다.”낙요는 미소를 지었다.안마를 거의 다 하자
낙요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부운주를 바라보았다.부운주가 손을 들자, 소복자는 공손하게 물러가며 방문을 닫았다.낙요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저, 낙청연입니다.”말을 내뱉은 순간, 부운주는 의자를 꽉 잡고 마음속의 흥분과 충격을 가라앉히려고 인간힘을 썼다.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얼굴을 좀 보자꾸나.”낙요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원래 모습이 아니라서 봐도 소용이 없습니다.”“이 가면을 벗으면 류 공공이 돌아올 때까지 수리할 수 없어 정체가 발각됩니다.”낙요의 덤덤한 어투를 듣자, 부운주는 더욱 확신했다.이 여인이 바로 낙청연이다!“정녕 너인 것이냐?”“어찌 돌아온 것이냐?”“짐을 위해 돌아온 것이냐?”부운주는 낮은 목소리로 떨림을 억눌렀다.낙요는 부운주가 오해할까 봐 직설적으로 말했다.“저는 부진환 때문에 돌아온 겁니다.”“천궐국의 일을 오랫동안 처리하지 못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와본 겁니다.”“그리고 병을 너무 오래 끌어 입궁해 병을 치료해 주라고 하여 왔습니다.”이 말을 듣자, 부운주는 저도 모르게 손에 더 힘을 주었다.마음이 시큰하면서도 시샘이 났다.부운주는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누구보다도 내 병은 마음의 병이라는 걸 잘 알 텐데 말이다.”부운주는 말을 하며 복잡한 눈빛으로 낙요를 바라보았다.“마음의 병은 그 사람만 풀 수 있는 법이지.”“아니냐?”“너를 이곳에 보낸 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느냐?”이 말을 들은 낙요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부운주의 말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당연히 알죠. 하루빨리 몸이 좋아져서 책임을 다하길 바라는 겁니다.”“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지만, 천궐국을 그대로 둘 수 없어 돌아온 겁니다.”“대체 어찌 협조도 안 해주고 오히려 부진환을 경계하는 겁니까?”“이제 원하는 걸 다 얻은 거 아닙니까?”낙요는 이 말로 부운주가 정신을 차릴지 몰랐지만, 그래도 내뱉었다.모두가 부운주를
“방비도 하지 않은 겁니까?”그러나 부운주는 고개를 돌려 낙요를 보며 말했다.“이번에 왔으니 다시 돌아갈 것이냐?”“여기에 남는 건 어떠냐.”“태의원 장원 자리를 넘겨주겠다.”“짐은 네 의술을 믿는다.”낙요는 차가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그딴 자리는 필요 없습니다.”“저는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떠날 겁니다.”“제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곧바로 눈앞에서 사라질 겁니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습니다.”낙요는 더이상 말씨름하기 싫어 요점을 말했다.부운주는 급히 말했다.“약을 마시면 될 거 아니냐.”“그렇다면 오늘은 어찌 밥을 적게 드신 겁니까? 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았습니까?”부운주는 웃으며 말했다.“짐이 밥을 먹는 것도 지켜봤구나.”“네가 와서 같이 먹으면 많이 먹을 수 있다.”낙요는 할 말을 잃었다.부운주의 목적은 분명 낙요를 궁에 남겨두는 것이었다.하지만 부운주의 몸을 치료해 주기 위해 낙요는 입을 열었다.“제가 매일 입궁하여 밥을 같이 먹겠습니다.”“어떻습니까?”부운주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약욕을 한 후, 부운주 체내의 독은 또 줄어들었다.부운주만 협조한다면 이 속도로 한두 달이면 충분히 나을 수 있었다.경도를 떠난 지 수일째지만, 심녕과 심부설은 멀리 떠나지 못했다.둘은 쉬엄쉬엄 길을 재촉했고, 이날은 어느 외진 농갓집에서 잠시 쉬었다.저녁이 되자, 정원에 돌아온 심녕은 심부설이 보이지 않자 손에 든 약 바구니를 떨어뜨리며 빠른 걸음으로 방에 들어갔다.“언니, 언니!”방에는 심부설이 보이지 않았다.심녕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마침 탁자의 서신이 보이자, 심녕은 서신을 열어보았다.“근처 시내에 채소를 사러 갔다 올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이 서신을 본 심녕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그러고는 정원에 흩어진 약재를 줍기 시작했다.그러나 고개를 든 순간, 신발 하나가 시선에 놓였다.순간, 심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개를 들어보니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양 의관!”심녕은
이 말을 들은 양행주는 망설이더니 곧바로 심녕을 풀어주었다.심녕은 창백한 안색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말해보아라.”심녕은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양 의관은 왕야를 항상 신경 쓰시니 왕야의 일도 모두 알고 싶어할 겁니다.”비록 지금까지 이유는 몰랐지만, 확실히 그랬다.양행주는 누구보다 왕야의 몸을 신경 썼고, 왕야의 생사를 신경 썼다.왕야에 관한 일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았다.“허튼소리 하지 말거라.”양행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인내심이 바닥난 듯 말했다.심녕은 협상을 시도했다.“알려줄 테니 저희를 풀어주십시오!”“저희는 경도를 떠나 왕야께 어떤 피해도 위협도 끼치지 않을 겁니다.”양행주는 덤덤하게 말했다.“우선 무슨 비밀인지 말해보거라.”“듣고 풀어줄지 아닐지 결정하겠다.”감히 부진환에게 약을 타다니.이 둘을 남기면 반드시 화를 부를 것이다!하지만 이 비밀은 꼭 들어야 한다.심녕은 다른 선택지가 없어 서서히 입을 열었다.“왕야 옆에 있는 낙운, 그 여인의 신분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까?”양행주는 미간을 찌푸렸다.“태의원에서 온 태상황의 사람 아니냐.”심녕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아닙니다!”“계양에 있을 때부터 만났습니다!”“처음부터 궁의 사람이 아닙니다.”“그리고 입궁 전에 왕야께 연락도 했는데, 서신을 제가 가로챘습니다.”“낙운은 이전부터 왕야와 아는 사이입니다!”“또한 며칠 부에 없는 사이에 왕야께서 낙운에게만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까? 왕야는 종래로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는데 유독 낙운만 가까이합니다.”“낙운이 대체 왜! 출신도 생김새도 출중하지 않고 의술을 아는 것뿐인데, 어찌 왕야를 그렇게 홀린 겁니까?”“저는 낙운의 신분이 가짜인 것 같습니다!”“왕야를 접근한 건 분명 음모가 있는 겁니다!”이 말을 들은 양행주는 생각에 잠긴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추측일 뿐인데 너를 어찌 믿느냐?”심녕은 다급히 말했다.“조사해 보십시오!”“당신의 능력으로 낙운의 정체를 조
양행주가 쫓아오지 않자, 심녕은 조심스럽게 연못에서 나와 창가 옆에 붙었다.주위는 매우 어두컴컴하니, 창가 아래의 풀숲에 숨어 소리만 내지 않으면 들키지 않을 것이다.심녕은 긴장한 듯 숨을 참고 고개를 내밀었다.그러나 양행주는 줄곧 방에 있었다!양행주는 방에 앉아 그 화상을 자세히 바라보았다.양행주는 한참 동안 보다가 그제야 생각났다.이 낭자는 몸에 냄새가 수상해 무슨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다.그러나 낭자는 오지 않았다.이 낭자와 낙운이 아는 사이라고?양행주는 의문을 품은 채 화상을 접어 품에 넣었다.창밖의 심녕은 매우 초조했다. 양행주는 어찌 가지 않는 걸까!언니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양행주와 마주치면 큰일이다!한참 지나자 심녕은 몰래 움직여 정원 앞에서 말을 타고 도망쳐 언니를 데리러 갈려고 했다.그러나 풀숲을 나서자마자 발소리가 들려왔다.심녕은 바짝 긴장하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심녕? 오래 기다리진 않았느냐? 닭 두 마리를 사 왔으니 많이 먹거라.”심부설이 웃으며 말했다.심녕은 주먹을 꽉 쥐고 말을 하려 했으나,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방에서, 양행주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심부설은 방에 들어서며 양행주를 보자 깜짝 놀랐지만, 곧바로 웃으며 물었다.“양 의관은 어찌 오신 겁니까?”“저희가 여기에 있는 건 어찌 아시고…”심부설은 위험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양행주는 덤덤한 표정으로 심부설 손의 바구니를 보며 물었다.“닭을 샀소?”“그렇습니다. 양 의관, 앉아서 같이 먹읍시다.”“저희 동생을 보셨습니까?”심부설은 앞으로 다가가 닭을 꺼내며 물었다.“나가는 것 같았소.”“그렇다면 양 의관 먼저 드십시오. 이 한 마리는 동생에게 남겨주겠습니다.”심부설은 웃으며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양행주는 고개를 숙이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먼저 드시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하지 않았소.”이 말을 듣자, 창밖의 심녕은 주먹을 꽉 쥐었다.심부설도 멈칫하더니 양행주를 바라보았다.“양 의관, 그게
심부설이 마당에서 빠져나가기도 전에 양행주에게 붙잡혔다.“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차갑게 말하는 양행주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그는 심부설의 목을 조이며 들어 올렸다.심부설은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며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상대는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결국 두 손이 힘없이 축 드리워졌다.그렇게 숨이 끊겼다.그제야 양행주는 아무런 동요 없이 심부설을 놓아주었다.심부설은 바닥에 쓰러졌다.창밖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심녕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러나 주먹을 꼭 쥔 채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양행주는 바닥에 쓰러진 심부설의 시체를 보며 한탄했다.“동생이란 작자는 당신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도망쳤군.”마당으로 나온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이곳은 온통 숲이었고 산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심녕을 쫓는다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몰라 쉽지 않을 것 같았다.고민 끝에 그는 마음을 바꿨다.그 초상화를 꺼내 다시 확인한 그는 눈빛이 짙어졌다.“그럼, 너부터 찾아보자.”“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초상화를 챙긴 양행주는 자리를 떠났다.양행주가 떠났지만 심녕은 그가 근처에 매복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 자리에 웅크리고 감히 나가지 못했다.그 상태로 아침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양행주는 이미 떠난 것이 확실했다.그녀는 뻣뻣한 몸을 이끌고 풀밭을 벗어나 대문으로 향했다.마당에 들어선 그녀는 심부설의 시신을 보았다.심녕은 비틀거리며 뛰어가 심부설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언니...”“내가 꼭 복수해 줄게요!”-궁.막 의원에서 약을 받아오는 길인 심녕은 갑자기 눈꺼풀이 떨려 눈을 비볐다.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그때 궁전에서 컵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안 마신다고 하지 않았냐! 썩 꺼져라!”류공공과 몇 명의 간신들은 왕에게 쫓겨났다.류공공은 여전히 자신의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무슨 일이냐?”젊은 내시는 심각한 표정을
“내일 또 보러 오겠습니다.”말을 마친 낙요는 자리를 떠났다.부운주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반드시 그날이 올 겁니다.”-그날 이후.낙요는 매일 부운주에게 약을 올렸고 그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부운주도 약 복용에 매우 협조적이었다.비록 탕약은 마시지 않았지만, 낙요가 그를 위해 약을 특제했고 해독 작용도 뛰어났다.이날 그녀가 왕부로 돌아오니 부진환이 서재에서 공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하여 작은 간식거리를 준비해 서재로 향했다.“배가 고프지 않다.”부진환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낙요는 그의 입에 음식을 밀어 넣었다.“배가 고프지 않아도 내 손맛은 보셔야죠.”깜짝 놀란 부진환이 고개를 들어보니 낙요였다.그제야 진지하게 한입 베어 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맛도 좋고 향긋하오.”낙요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요 며칠 왜 양행주가 보이지 않지요?”“전에도 갑자기 사라진 적 있는지요?”그녀는 양행주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생각에 잠기던 부진환은 고개를 저었다.“전에는 이러지 않았소.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긴 하오.”낙요는 눈을 반짝이며 추측했다.“황후에 대해 알아보다 문제에 봉착한 걸까요?”“하지만 그 실력이라면 무사해야 하지 않을까요?”곰곰이 생각하던 부진환이 말했다.“그럼 내가 소소를 시켜 양행주의 행방을 알아보게 하겠소.”낙요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뒤로 양행주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낙요는 조금 불안했다.낙요가 막 천명 나침판의 힘을 빌어보려던 그때 소소가 헐레벌떡 서재로 들어왔다.“전하, 큰일 났습니다!”부진환은 고개를 들었다.“뭐냐?”소소는 머뭇거리며 옆에 있는 낙요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러자 부진환이 덧붙였다.“괜찮다. 말하거라!”그제야 소소가 입을 열었다.“청주원이 당했습니다!”“흔자는?”“납치되었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