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녕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왕야, 어찌하여 이리도 냉정하십니까? 저희는 왕야를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큰 공은 못 세웠더라도 저희가 고생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부진환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하거라. 무례를 범하고도 감히 이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빗줄기가 가녀린 심녕의 몸을 내리치고 차가운 밤바람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몸이 시린 것에 비해 시린 마음이 더 아팠다.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뒤돌아섰다.심녕은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뒷문을 통해 저택을 나갔다.그리고 비를 맞으며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낙요는 그녀가 떠난 것을 확인하고는 문을 잠그고 방으로 돌아갔다.“심녕이 떠났습니다. 아마 충격이 큰가 봅니다.”낙요가 말했다.부진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양반다리를 하고 침상에 앉아 있었다. 다만 몸에 맞지 않는 의복차림을 하고 있어서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사람을 그렇게 귀찮게 할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들 자매를 찾지도 않았을 거다.”낙요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앉았다.“좀 귀찮긴 하네요.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말이죠.”부진환은 안쓰러운 얼굴로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속상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오늘은 너랑만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완벽했던 계획이 일그러진 탓에 부진환의 기분도 좋지 않았다.“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 아무도 우리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자꾸나.”부진환은 지금 당장 낙요를 데리고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만족의 영토에 가보고 싶습니다. 그곳 경치가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너무 멀어요. 지금 떠나도 아마 몇 달이 걸릴 거라고 하더군요.”“그럼 일정을 조정해서 시간 날 때 한번 가보자꾸나.”“예.”날이 밝기 시작하면서 비가 그치고 화창한 날씨가 도래했다.낙요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때는 밤새 내린 비가 다 마른 뒤였다.그녀는 눈을 감고 시원
심부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결국 그녀는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분부대로 하겠습니다.”“그래.”그 말을 끝으로 부진환은 뒤돌아서 방을 나갔다.방문이 닫히는 순간 심부설의 공허한 두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낙요는 조심스럽게 방 문을 열었다.부진환은 여전히 침상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그녀는 소리를 죽이고 침상으로 다가가서 잠든 듯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주무시고 계신가요?”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커다란 손이 뻗어나오더니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침상 위의 사내는 언제 잠들었나 싶게 몸을 뒤집어 일으키더니 두 팔로 낙요를 감싸 안았다.“왜 이리 늦게 왔느냐? 조금만 더 기다리다가 이대로 밖에 나갈 뻔했다.”잠기가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낙요는 생긋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그렇게 급하면 그대로 입고 나가시지 그러셨습니까. 어차피 수치는 왕야의 몫이니까요.”부진환은 그대로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웃으며 말했다.“난 네 사람이니 수치도 응당 너의 몫이지 않겠느냐.”둘은 침상에서 한참이나 뒤척이다가 의복을 입고 아침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식탁에 마주앉은 낙요가 입을 열었다.“참, 심부설은 아직 자고 있을까요? 제가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입에 먹다 만 만두를 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부진환이 그녀의 팔목을 잡고 말했다.“자고 있으니까 아직도 방에 있는 거겠지. 일단 밥부터 먹자꾸나.”낙요는 조용한 그녀의 방 문을 한참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았다.“그럼 먹을 것을 따로 남겨야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새 접시를 가져다가 만두를 따로 담았다.부진환은 진지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화도 안 나느냐?”낙요는 멈칫하며 고개를 들고 의뭉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어서 밥이나 들자꾸나.”말을 마친 그는 낙요의 접시에 반찬을 챙겨주었다.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시선을 심부설이 있는 방 쪽으로 돌렸다.한편, 방 안의 심부설은 이미 눈물범벅이 된 상태였다.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낙요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었다.식사를 마친 뒤, 낙요는 다시 심부설의 방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부진환이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아마 조금 이따가 사람이 올 거야. 넌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부진환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기에 낙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왕부로 돌아간 뒤, 부진화는 남은 공문을 처리하기 시작했다.그후로 하루가 지나도록 낙요는 심부설과 심녕을 만나지 못했다.그날 밤, 궁에서 심부름꾼이 왕부에 방문했다. 태상황이 낙요를 궁으로 불렀다는 내용이었다.“나랑 함께 가겠느냐? 태상황께서 네가 많이 보고 싶나 보구나.”낙요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별일은 없는 듯하니 혼자 가겠습니다. 별일 있었으면 왕야를 호출했겠지요.”“처리할 공문도 많으니 저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습니다. 되도록 일찍 돌아오겠습니다.”부진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둘은 서재 앞에서 한참을 부둥켜 안고 있었다.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태감이 재촉해서야 낙요는 밖으로 나갔다.그들이 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시각이었다.태상황은 한가롭게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바둑을 두고 있었다.낙요를 본 그는 반갑게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어서 오너라. 혼자 하루종일 바둑알만 만지고 있었느니라. 너랑 같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불렀다.”낙요는 공손하게 다가가서 태상황의 앞에 마주앉았다.“급한 일로 부르셨다더니 같이 바둑을 두려고 부르신 거였습니까?”“짐과 바둑을 두는 일인데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더냐?”태상황이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낙요는 잠깐 침묵하다가 바둑알을 집어들었다.몇 수가 오간 뒤, 태상황이 입을 열었다.“요
태상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짐은 그럴 생각이다만 네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서 불렀다. 다만 녀석이 필요한 건 의원이 아니라 너야. 그 녀석에게 살아갈 의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낙요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폐하께 제가 누군지 밝히고 낙청요의 신분으로 치료를 해드리라는 뜻이옵니까.”태상황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지. 물론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다.”낙요는 잠깐 고민했다. 사실 맨 처음에 입궁하여 부운주를 치료하자고 마음먹었을 때는 진짜 신분을 밝힐 생각이었다.그래야만 부운주가 치료에 협조적으로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근본적인 치료 방법은 부운주 자신이 살아갈 의지를 가지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자신을 향한 부운주의 집념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녀는 그 집념에 아무런 응답도 줄 수 없었다.부운주의 병을 치료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나, 마음의 병까지 치유해 줄 수는 없었다.“돌아가서 왕야와 상의해 보겠습니다.”태상황도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섭정왕부.깊은 밤, 시종이 서신을 들고 서재를 찾았다.“왕야, 심녕 낭자의 서신이옵니다.”부진환은 서신을 받아 봉투를 뜯었다.여태 돌봐준 것에 감사하다는 것과 언니와 함께 날이 밝으면 경성을 떠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심부설에게 여한이 남지 않게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라도 함께 하고 싶으니 일품루로 와달라는 내용도 같이 적혀 있었다.서신을 확인한 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어찌됐건 가서 얘기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일품루에 도착했더니 내각은 이미 다른 손님을 물린 상태였다.그는 심부름꾼의 안내에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에서 기다리던 둘은 부진환을 보자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었다.“왕야, 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심부설이 기쁨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부진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고는 담담히 말했다.“어디로 갈지는 정했느냐? 내일에 사람을
부진환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본왕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심부설은 살짝 멍해 있더니 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마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이 왕야와의 마지막일 거 같아서 마시겠습니다.”이 말을 끝내더니 바로 머리를 뒤로 젖히고 한숨에 들이켰다.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앞에 놓인 잔을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잔을 들어 마셔버렸다.“또 볼일이 있느냐?”심부설은 웃더니 아쉬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왕야, 그동안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일 왕야가 없었더라면, 저는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인정합니다. 왕야께서 저를 살려준 그날부터 저의 마음은 이미 왕야의 것이 되었습니다.”“또한 천진난만하게 아름다운 꿈도 꿨지만, 어제서야 완전히 단념했습니다.”“다만 저는 여전히 너무 궁금합니다. 왕야, 낙운은 도대체 누구입니까?”심부설은 약간 억울했다.자신이 왜 이렇게 철저하게 패배했는지 알 수 없었다.만일 왕야와 낙운 사이에 옛정이 없었다면 왕야는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하지만 부진환은 그저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그녀가 누구든지 네가 신경 쓸 바 아니다.”“물어볼 필요 없다.”심부설은 웃으며 말했다. “대답을 못 들을 줄 알았습니다.”“왕야께서 어제 얘기한 조건을 저와 심녕은 이미 상의했습니다.”“왕야 덕분에 저와 동생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색다른 인생을 체험해 본 걸로 이미 만족합니다.”“태풍상사는 처음부터 왕야의 돈으로 설립한 것이고, 저와 동생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태풍상사를 독차지할 이유는 없습니다.”이 말을 하며 심부설은 일어나 궤짝 안에 넣어두었던 나무 상자를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이것은 태풍상사의 모든 장부 및 금고 열쇠와 전장의 은표입니다.”“모든 물건은 여기에 다 있습니다. 모두 정리되었습니다.”“요 며칠 심녕이 번 돈도 우리가 생활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태풍상사의 돈은 한 푼도 가져가지 않겠습니다.”“왕야께서 확인해 보십시오.”부진환은 이
심부설은 괴로워하며 옷깃을 잡아당겼고 뺨은 붉어지기 시작했으며 눈빛도 흐려졌고 정신도 흐리멍덩했다.“왕야, 너무 괴롭습니다… 저 죽는 거 아닙니까… “그 순간 부지환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렸다.누군가 약을 먹인 것이다.부진환도 괴로웠지만, 정신은 차릴 수 있었다.하지만 심부설은 힘들었다.심부설이 그의 옷소매를 잡자, 그는 의식적으로 팔을 확 뺐다.심부설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허약한 심부설은 이 힘에 곧바로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왕야… “심부설은 아파서 소리쳤다.부진환의 눈빛은 매서웠고 안색은 더욱 어두웠다. “스스로 잘 처신하거라.”이 말을 끝내고 바로 앞으로 다가가더니 한발로 방문을 걷어차려고 했다.하지만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하지만 심부설은 괴로워하며 또다시 땅 위에서 기어 일어나더니 뒤에서 부진환을 와락 껴안았다.“왕야, 도와주세요. 제발요.”심부설은 울먹이며 비열한 자태로 간절히 애원했다.그러나 부진환은 눈빛이 돌연 차가워지더니 그녀를 밀쳐버렸다.“또다시 나를 접근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이 약은 네 짓이 아니면 네 동생 짓을 거다. 제때 해독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지만 본왕은 절대 너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니 체념하거라.”이 말은 칼날처럼 심부설의 마음에 꽂혔다.그녀는 저도 몰래 눈시울을 붉히며 놀라운 표정으로 부진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왕야 죽을 수도 있습니다.”부진환은 다소 역겨운 눈빛으로 말했다. “본왕이 죽든 살든 너와 무슨 상관이냐?”심부설은 마치 한 대야의 찬물을 맞은 듯 온몸이 흠뻑 젖었다.--궁에서 나와서부터 낙요는 마음이 줄곧 불안했다.다급히 섭정왕부로 돌아와 시위에게 묻자, 부진환이 일품루(壹品樓) 약속 장소로 갔다고 했다.그래서 다급히 일품루로 달려갔다.이곳에 와서 대문을 열자, 상 앞에 앉아 술을 마시는 심녕을 보았다.심녕 외에 아무도 없었다.두 사람의 눈길이 부딪히는 순간 심녕의 눈가에 약간의 살기가 생겼다.“너란 여자 정말 망령처럼 사라지지도 않는
”정말 당신 말대로 왕야와 당신 언니가 지금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다면 당신은 동생으로서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요? 한데 어찌하여 여기서 괴로움을 술로 달래고 있다는 말이오?”“넘볼 수 없는 걸 넘보는 당신의 그 하찮은 속셈은 욕망이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꿈일 뿐이요. 그래서 당신은 모든 걸 당신 언니에게 걸었소. 내 말이 맞소?”이에 관해 낙요는 일찍이 짐작했다.낙요는 심부설과 몇 차례 접촉했는데 그녀는 전혀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심녕은 그랬다.그녀는 고집이 너무 세고 심지어 언니의 병이 낫지 않고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게다가 이 상 위에 가득한 술병을 더해 이미 낙요의 추측을 확실하게 증명했다.기쁘면 적당하게 마실 수 있지만 이 정도로 마신 걸 보면 분명 괴로움을 술로 달랜 것이다.심녕은 안색이 무척 좋지 않았다.원래 술에 취해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는데 지금은 얼굴에 분노로 가득했으며 살기등등했고 유달리 흉악해 보였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오늘 만약 당신이 언니의 좋은 일을 망친다면 당신을 산산조각 낼 것입니다.”낙요는 심녕이 이미 몹시 화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 불이 켜져 있는 방을 쳐다보았다.아무런 동정이 없으니, 약간 걱정됐다.“쳐들어갈 것이다. 너는 나를 막지 못한다.”낙요의 눈빛이 돌연 차가워지더니, 갑자기 걸상을 한 발로 걷어차 버렸다.걸상은 심녕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심녕은 안색이 확 변하더니 즉시 몸을 피했다.걸상은 책상을 내리쳐 바로 두 동강이 났다.심녕도 즉시 낙요를 향해 공격해 왔다.몸놀림이 민첩했고 살기등등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치고받고 열 번을 넘기지 못하고 낙요는 심녕의 목을 졸랐다.“너!” 심녕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낙요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의 목을 꽉 조르며 말했다. “너는 내 상대가 아니야.”“헛수고하지 말거라.”“왕야가 너희들에게 살아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이 말을
얼마 지나지 않아 심부설은 해독환이 효과를 발하여 약간 정신이 들었다.낙요를 힐끗 쳐다보더니, 또 그녀 등 뒤의 부진환을 쳐다보더니 굴욕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한순간 무너져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그 순간, 낙요는 심부설의 미간에서 한 줄기의 흑기를 보았다.죽음은 숨결이었다.“당신 독은 이미 해독했습니다. 오늘 일은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경도를 떠나면 당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이 일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포기하지 마십시오.”이 밖에 낙요는 어떻게 심부설을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심부설의 비통하고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낙요는 이 약이 심부설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수치심 때문에 굴욕을 느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약을 타는 그런 짓은 못한다.아마 심녕 짓일 것이다.심부설은 놀라운 표정으로 낙요를 쳐보았다.왜 자신이 자결하려는 던 것까지 낙운이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내가 충고하는데 심녕과 왕래를 끊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는 당신을 언니로 생각하지 않습니다.”이 말을 끝내고 낙요는 방 안에서 나왔다.고개를 돌리니 심녕이 이미 계단을 올라 복도까지 왔다.“왕야, 어찌 언니한테 이럴 수 있습니까?” 심녕은 눈시울을 붉히며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억울하다는 듯 부진환을 쳐다보았다.“언니에게 오직 왕야뿐입니다. 정녕 언니를 버린다는 말입니까? 언니를 남겨두십시오!”심녕은 이런 결과가 억울했다.이게 다 천박한 계집 낙운 탓이다.낙운이 나타나서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어쩌면 왕야와 언니는 이미 성사됐을 것이다!그런데 심녕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부진환이 살기가 가득한 두 눈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그는 심녕의 목을 확 졸랐다.강렬한 질식감이 엄습해 오고, 심녕의 몸은 그대로 들렸으며 죽음의 공포가 덮쳐왔다.심녕은 발버둥 치며 말을 할 수 없었고, 절망의 눈빛으로 방안의 심부설을 쳐다볼 뿐이었다.심부설은 기어 일어나 비틀거리며 부진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