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밥이나 들자꾸나.”말을 마친 그는 낙요의 접시에 반찬을 챙겨주었다.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시선을 심부설이 있는 방 쪽으로 돌렸다.한편, 방 안의 심부설은 이미 눈물범벅이 된 상태였다.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낙요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었다.식사를 마친 뒤, 낙요는 다시 심부설의 방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부진환이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아마 조금 이따가 사람이 올 거야. 넌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부진환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기에 낙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왕부로 돌아간 뒤, 부진화는 남은 공문을 처리하기 시작했다.그후로 하루가 지나도록 낙요는 심부설과 심녕을 만나지 못했다.그날 밤, 궁에서 심부름꾼이 왕부에 방문했다. 태상황이 낙요를 궁으로 불렀다는 내용이었다.“나랑 함께 가겠느냐? 태상황께서 네가 많이 보고 싶나 보구나.”낙요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별일은 없는 듯하니 혼자 가겠습니다. 별일 있었으면 왕야를 호출했겠지요.”“처리할 공문도 많으니 저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습니다. 되도록 일찍 돌아오겠습니다.”부진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둘은 서재 앞에서 한참을 부둥켜 안고 있었다.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태감이 재촉해서야 낙요는 밖으로 나갔다.그들이 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시각이었다.태상황은 한가롭게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바둑을 두고 있었다.낙요를 본 그는 반갑게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어서 오너라. 혼자 하루종일 바둑알만 만지고 있었느니라. 너랑 같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불렀다.”낙요는 공손하게 다가가서 태상황의 앞에 마주앉았다.“급한 일로 부르셨다더니 같이 바둑을 두려고 부르신 거였습니까?”“짐과 바둑을 두는 일인데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더냐?”태상황이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낙요는 잠깐 침묵하다가 바둑알을 집어들었다.몇 수가 오간 뒤, 태상황이 입을 열었다.“요
태상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짐은 그럴 생각이다만 네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서 불렀다. 다만 녀석이 필요한 건 의원이 아니라 너야. 그 녀석에게 살아갈 의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낙요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폐하께 제가 누군지 밝히고 낙청요의 신분으로 치료를 해드리라는 뜻이옵니까.”태상황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지. 물론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다.”낙요는 잠깐 고민했다. 사실 맨 처음에 입궁하여 부운주를 치료하자고 마음먹었을 때는 진짜 신분을 밝힐 생각이었다.그래야만 부운주가 치료에 협조적으로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근본적인 치료 방법은 부운주 자신이 살아갈 의지를 가지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자신을 향한 부운주의 집념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녀는 그 집념에 아무런 응답도 줄 수 없었다.부운주의 병을 치료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나, 마음의 병까지 치유해 줄 수는 없었다.“돌아가서 왕야와 상의해 보겠습니다.”태상황도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섭정왕부.깊은 밤, 시종이 서신을 들고 서재를 찾았다.“왕야, 심녕 낭자의 서신이옵니다.”부진환은 서신을 받아 봉투를 뜯었다.여태 돌봐준 것에 감사하다는 것과 언니와 함께 날이 밝으면 경성을 떠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심부설에게 여한이 남지 않게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라도 함께 하고 싶으니 일품루로 와달라는 내용도 같이 적혀 있었다.서신을 확인한 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어찌됐건 가서 얘기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일품루에 도착했더니 내각은 이미 다른 손님을 물린 상태였다.그는 심부름꾼의 안내에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에서 기다리던 둘은 부진환을 보자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었다.“왕야, 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심부설이 기쁨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부진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고는 담담히 말했다.“어디로 갈지는 정했느냐? 내일에 사람을
부진환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본왕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심부설은 살짝 멍해 있더니 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마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이 왕야와의 마지막일 거 같아서 마시겠습니다.”이 말을 끝내더니 바로 머리를 뒤로 젖히고 한숨에 들이켰다.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앞에 놓인 잔을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잔을 들어 마셔버렸다.“또 볼일이 있느냐?”심부설은 웃더니 아쉬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왕야, 그동안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일 왕야가 없었더라면, 저는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인정합니다. 왕야께서 저를 살려준 그날부터 저의 마음은 이미 왕야의 것이 되었습니다.”“또한 천진난만하게 아름다운 꿈도 꿨지만, 어제서야 완전히 단념했습니다.”“다만 저는 여전히 너무 궁금합니다. 왕야, 낙운은 도대체 누구입니까?”심부설은 약간 억울했다.자신이 왜 이렇게 철저하게 패배했는지 알 수 없었다.만일 왕야와 낙운 사이에 옛정이 없었다면 왕야는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하지만 부진환은 그저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그녀가 누구든지 네가 신경 쓸 바 아니다.”“물어볼 필요 없다.”심부설은 웃으며 말했다. “대답을 못 들을 줄 알았습니다.”“왕야께서 어제 얘기한 조건을 저와 심녕은 이미 상의했습니다.”“왕야 덕분에 저와 동생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색다른 인생을 체험해 본 걸로 이미 만족합니다.”“태풍상사는 처음부터 왕야의 돈으로 설립한 것이고, 저와 동생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태풍상사를 독차지할 이유는 없습니다.”이 말을 하며 심부설은 일어나 궤짝 안에 넣어두었던 나무 상자를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이것은 태풍상사의 모든 장부 및 금고 열쇠와 전장의 은표입니다.”“모든 물건은 여기에 다 있습니다. 모두 정리되었습니다.”“요 며칠 심녕이 번 돈도 우리가 생활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태풍상사의 돈은 한 푼도 가져가지 않겠습니다.”“왕야께서 확인해 보십시오.”부진환은 이
심부설은 괴로워하며 옷깃을 잡아당겼고 뺨은 붉어지기 시작했으며 눈빛도 흐려졌고 정신도 흐리멍덩했다.“왕야, 너무 괴롭습니다… 저 죽는 거 아닙니까… “그 순간 부지환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렸다.누군가 약을 먹인 것이다.부진환도 괴로웠지만, 정신은 차릴 수 있었다.하지만 심부설은 힘들었다.심부설이 그의 옷소매를 잡자, 그는 의식적으로 팔을 확 뺐다.심부설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허약한 심부설은 이 힘에 곧바로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왕야… “심부설은 아파서 소리쳤다.부진환의 눈빛은 매서웠고 안색은 더욱 어두웠다. “스스로 잘 처신하거라.”이 말을 끝내고 바로 앞으로 다가가더니 한발로 방문을 걷어차려고 했다.하지만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하지만 심부설은 괴로워하며 또다시 땅 위에서 기어 일어나더니 뒤에서 부진환을 와락 껴안았다.“왕야, 도와주세요. 제발요.”심부설은 울먹이며 비열한 자태로 간절히 애원했다.그러나 부진환은 눈빛이 돌연 차가워지더니 그녀를 밀쳐버렸다.“또다시 나를 접근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이 약은 네 짓이 아니면 네 동생 짓을 거다. 제때 해독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지만 본왕은 절대 너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니 체념하거라.”이 말은 칼날처럼 심부설의 마음에 꽂혔다.그녀는 저도 몰래 눈시울을 붉히며 놀라운 표정으로 부진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왕야 죽을 수도 있습니다.”부진환은 다소 역겨운 눈빛으로 말했다. “본왕이 죽든 살든 너와 무슨 상관이냐?”심부설은 마치 한 대야의 찬물을 맞은 듯 온몸이 흠뻑 젖었다.--궁에서 나와서부터 낙요는 마음이 줄곧 불안했다.다급히 섭정왕부로 돌아와 시위에게 묻자, 부진환이 일품루(壹品樓) 약속 장소로 갔다고 했다.그래서 다급히 일품루로 달려갔다.이곳에 와서 대문을 열자, 상 앞에 앉아 술을 마시는 심녕을 보았다.심녕 외에 아무도 없었다.두 사람의 눈길이 부딪히는 순간 심녕의 눈가에 약간의 살기가 생겼다.“너란 여자 정말 망령처럼 사라지지도 않는
”정말 당신 말대로 왕야와 당신 언니가 지금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다면 당신은 동생으로서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요? 한데 어찌하여 여기서 괴로움을 술로 달래고 있다는 말이오?”“넘볼 수 없는 걸 넘보는 당신의 그 하찮은 속셈은 욕망이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꿈일 뿐이요. 그래서 당신은 모든 걸 당신 언니에게 걸었소. 내 말이 맞소?”이에 관해 낙요는 일찍이 짐작했다.낙요는 심부설과 몇 차례 접촉했는데 그녀는 전혀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심녕은 그랬다.그녀는 고집이 너무 세고 심지어 언니의 병이 낫지 않고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게다가 이 상 위에 가득한 술병을 더해 이미 낙요의 추측을 확실하게 증명했다.기쁘면 적당하게 마실 수 있지만 이 정도로 마신 걸 보면 분명 괴로움을 술로 달랜 것이다.심녕은 안색이 무척 좋지 않았다.원래 술에 취해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는데 지금은 얼굴에 분노로 가득했으며 살기등등했고 유달리 흉악해 보였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오늘 만약 당신이 언니의 좋은 일을 망친다면 당신을 산산조각 낼 것입니다.”낙요는 심녕이 이미 몹시 화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 불이 켜져 있는 방을 쳐다보았다.아무런 동정이 없으니, 약간 걱정됐다.“쳐들어갈 것이다. 너는 나를 막지 못한다.”낙요의 눈빛이 돌연 차가워지더니, 갑자기 걸상을 한 발로 걷어차 버렸다.걸상은 심녕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심녕은 안색이 확 변하더니 즉시 몸을 피했다.걸상은 책상을 내리쳐 바로 두 동강이 났다.심녕도 즉시 낙요를 향해 공격해 왔다.몸놀림이 민첩했고 살기등등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치고받고 열 번을 넘기지 못하고 낙요는 심녕의 목을 졸랐다.“너!” 심녕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낙요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의 목을 꽉 조르며 말했다. “너는 내 상대가 아니야.”“헛수고하지 말거라.”“왕야가 너희들에게 살아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이 말을
얼마 지나지 않아 심부설은 해독환이 효과를 발하여 약간 정신이 들었다.낙요를 힐끗 쳐다보더니, 또 그녀 등 뒤의 부진환을 쳐다보더니 굴욕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한순간 무너져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그 순간, 낙요는 심부설의 미간에서 한 줄기의 흑기를 보았다.죽음은 숨결이었다.“당신 독은 이미 해독했습니다. 오늘 일은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경도를 떠나면 당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이 일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포기하지 마십시오.”이 밖에 낙요는 어떻게 심부설을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심부설의 비통하고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낙요는 이 약이 심부설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수치심 때문에 굴욕을 느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약을 타는 그런 짓은 못한다.아마 심녕 짓일 것이다.심부설은 놀라운 표정으로 낙요를 쳐보았다.왜 자신이 자결하려는 던 것까지 낙운이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내가 충고하는데 심녕과 왕래를 끊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는 당신을 언니로 생각하지 않습니다.”이 말을 끝내고 낙요는 방 안에서 나왔다.고개를 돌리니 심녕이 이미 계단을 올라 복도까지 왔다.“왕야, 어찌 언니한테 이럴 수 있습니까?” 심녕은 눈시울을 붉히며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억울하다는 듯 부진환을 쳐다보았다.“언니에게 오직 왕야뿐입니다. 정녕 언니를 버린다는 말입니까? 언니를 남겨두십시오!”심녕은 이런 결과가 억울했다.이게 다 천박한 계집 낙운 탓이다.낙운이 나타나서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어쩌면 왕야와 언니는 이미 성사됐을 것이다!그런데 심녕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부진환이 살기가 가득한 두 눈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그는 심녕의 목을 확 졸랐다.강렬한 질식감이 엄습해 오고, 심녕의 몸은 그대로 들렸으며 죽음의 공포가 덮쳐왔다.심녕은 발버둥 치며 말을 할 수 없었고, 절망의 눈빛으로 방안의 심부설을 쳐다볼 뿐이었다.심부설은 기어 일어나 비틀거리며 부진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
낙요는 사실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낙요의 말을 듣고 난 양행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이 자매를 남겨두지 않았을 거요. 말썽만 피운다니까!”부진환의 어투는 담담했다. “됐소, 나는 괜찮으니 이 일은 더 이상 따지지 마시오.”“그녀들은 경도를 떠날 것이오”양행주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왕부로 돌아온 후, 양행주는 부진환의 독을 없애고 있었기 때문에 낙요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지금 그녀는 양행주 앞에 적게 얼씬거리는 편이 좋다.혹여라도 그녀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다음날이 밝자마자 객잔 침상 위의 심녕이 서서히 눈을 떴다.어제 언제 잠들었지 알 수 없었다.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아, 괴로운 듯 가슴을 눌렀다. 상처를 치료하는 약을 사러 가야 한다.방안을 훑어보았지만,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언니! 언니!”심녕은 다급히 일어나 밖으로 찾으러 나갔다.객잔을 전세 냈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각 객잔은 여전히 어젯밤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아무도 들어온 적 없었다.“언니!” 심녕이 소리쳤다.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옆방 문틈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심녕의 미간이 흔들렸다.그녀는 즉시 방안으로 쳐들어갔다.문 뒤에 기대앉아 있던 심부설이 쓰러졌다.흰색 옷은 온통 선혈로 물들었고 창백한 안색으로 피바다 속에 쓰러져 있었다.심녕의 안색은 확 변했다. “언니!”그녀는 앞으로 달려가 심부설을 끌어안았다.심부설의 손목은 도자기 조각으로 손목을 그었다.심녕은 다급히 손수건을 꺼내 심부설의 손목을 감았다.몹시 애가 탔고 당황했다.“언니! 언니 왜 이러십니까?”“언니, 죽으면 안 됩니다!”심녕은 다급히 심부설을 안고 객잔에서 달려 나가 의관으로 달려갔다.의관에서 무려 반 시진이나 기다리자, 의원이 말했다. “제때 데려오셔서 다행입니다!”심녕의 그제야 한시름 놓았고 다급히 방안으로 달려 들어갔다.깨어난 심부설을 보고 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으며 감히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심부설의 가냘프게
“왕야가 없어도, 태풍상사가 없어도 장사를 할 수 있지 않느냐. 네 재주로는 반드시 잘될 것이다.”“언니는 집에서 밥을 해주고, 잡일을 거들어줄게.”“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세상은 넓으니 네 인연도 반드시 있는 법, 왕야보다 좋은 분이 계실 거다.”심녕은 눈물을 흘리며 미안한 듯 심부설의 손을 꽉 잡았다.“약속하겠습니다. 함께 경도를 떠납시다.”심부설의 창백한 얼굴에 마침내 기쁨의 미소가 보였다.심녕은 울먹이며 고개를 숙이고 자책했다.“언니, 죄송합니다.”“낙운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약을 바꿔서 지금껏 몸이 좋아지지 않은 겁니다.”“해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언니 병이 더디게 나으면 왕부에 더 오래 있을 수 있어 왕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말을 마친 심녕은 어두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하지만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심부설은 탄식했다.“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늦지 않았다.”“준비하고 바로 출성하자.”심녕은 의아했다.“이렇게 빨리요? 하지만 상처가…”“괜찮다. 천천히 가면 된다.”심부설은 기쁘면서도 불안했다.심부설은 서둘러 경도를 떠나고 싶었다. 한시라도 더 있으면 엊저녁의 굴욕적인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렇게 체면을 구기고 남자에게 구걸하다니, 다시 떠올려도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심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심녕은 곧바로 마차를 준비해 심부설과 함께 성 밖으로 향했다.성문을 나선 후, 심부설은 문발을 열고 뒤를 돌아보며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종일 바삐 움직이느라 경도성을 잘 돌아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심부설은 갑자기 심녕의 손을 덥석 잡았다.심녕은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너무 큰 대가를 치른 일이라 다시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오후가 되어서야 양행주는 부에서 나갔다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