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여와 기옥이 깨우기도 전에 낙요는 정신을 차렸다.푹 자고 나니 정신이 말짱했다.막사에서 나와 보니 이미 밤이었다.“스승님!”강여가 쪼르르 달려갔다.“이제 주둔지를 떠나실 거지요?”“도주성으로 가실 겁니까? 말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낙요는 덤덤히 말했다.“어디든 가지 않아도 된다. 너희 둘은 돌아가거라. 날 지키지 말고.”“상안은 무사할 것이다.”말을 마친 뒤 낙요는 걸음을 옮겨 옥으로 향했다.기옥은 그녀를 따라갈 생각이었으나 강여가 기옥을 붙잡고 위로했다.“스승님이 말씀한 대로 하시지요. 스승님은 절대 상안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스승님은 대제사장이지 않습니까? 저희가 가면 괜히 방해만 될 것입니다.”기옥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여가 제의했다.“저희는 상녕을 찾아갈까요? 상녕은 저희보다 더 걱정될 것입니다.”“좋소.”낙요는 홀로 어둠을 뚫고 더 깜깜한 옥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이번에는 상안이 아니라 허계지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낙요는 감옥 문밖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벽에 기대어 안을 힐끗 봤을 뿐이다. 허계지는 벽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누군가 가까이 왔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낙요는 촛불을 밝혔다.연기가 감옥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뒤 허계지는 깊은 잠에 빠져 벽에 기댄 몸이 힘없이 스르륵 쓰러졌다.낙요는 문을 열고 들어간 뒤 천명 나침반을 꺼냈다.밖에 나가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 바로 허계지에게서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허계지가 깨어있을 때는 사람을 속일 수 있겠지만 그의 기억은 사람을 속일 수 없었다. 물론 낙요도 속일 수 없었다.낙요는 눈을 감았고, 눈앞에 장면들이 떠올랐다.상금루의 별각 안에서, 허계지는 상안을 붙잡고 술을 마시며 하소연했고 상안에게 큰일을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그리고 그는 상안에게 방치당한 주둔지를 빌려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술에 취한 상안은 흥분한 상태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허계지의 상황을
침서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이 일은 상안이 한 짓이라는 게 밝혀져 그를 처형했다. 감옥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놓아주거라.”“네!”곧이어 허계지 등 사람들이 끌려 나왔다.소식을 접한 허군한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상안이 확실히 처형당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어머니!”낙요가 다가오자, 상녕은 분노에 가득 차서 낙요의 멱살을 덥석 쥐었다.“절 속인 것입니까? 상안이 무사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진실을 밝히겠노라 하지 않았습니까?”“왜! 왜 절 속인 것입니까?”상녕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두 눈이 벌게져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멀지 않은 곳, 허계지는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이따금 그들을 힐끗댔다.가족들 모두 큰 충격을 받은 건지 상안이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허계지는 내심 우쭐했다.그는 자신의 준비가 완벽해서 아무도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자신했다.그러니 상씨 일가가 누명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허계지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사람들을 따라 주둔지를 나섰다.낙요는 멀찍이 서서 허계지가 주둔지를 벗어나는 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어두운 곳에 서 있는 부진환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았고 부진환은 이내 소리 없이 주둔지를 벗어나 허계지를 따라갔다.허계지는 말을 타고 도주성으로 돌아갔고 부진환도 그를 따라 도주성으로 향했다.별원에 도착한 허계지는 곧장 서신을 써서 비둘기에게 묶어 날려 보냈다.부진환은 고개를 들어 날아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다가 활을 손에 쥐고 말을 타서 비둘기를 쫓아갔다.도주성을 벗어나서야 부진환은 활을 들어 비둘기를 쏘았다.하지만 화살은 비둘기의 몸을 관통하지 못했다. 비둘기는 깃털이 몇 개 떨어졌고 부진환은 다급히 비둘기를 잡은 뒤 서신을 떼어냈다.그는 빠른 속도로 도주영으로 돌아갔다.낙요는 상녕의 질타와 분노를 마주했지만, 침묵을 고수했다.상씨 일가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 상안의 시체를 수
“다들 비키십시오! 전 당신들을 죽일 생각이 없습니다!”“계속 절 막을 생각이라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노기등등하게 낙요가 있는 막사로 걸어갔다.“낙청연! 잘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만약 당신이 진심으로 저희 둘째 오라버니를 위해 진실을 밝히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 미처 밝히지 못한 거라면, 또는 침서를 설득하지 못해 침서가 저희 둘째 오라버니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거라면 봐주겠습니다!”“그러나 당신이 일부러 저를 속이고, 저희 가족이 진실을 밝히는 걸 막았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희 오빠가 처형당하기를 기다린 거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상녕은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손등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장검을 세게 쥐고 있었고 두 눈은 벌게서 살기등등했다.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원망과 분노가 흘러넘쳤다.낙요는 막사 밖으로 나가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상안은 죽지 않았습니다.”그녀의 덤덤한 말에 상녕은 곧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몸 전체를 휘감았던 노기가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뭐라고요?”상녕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절 따라오세요.”낙요는 그녀를 데리고 주둔지를 나섰다.다른 사람들도 뒤따랐다.그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숲속으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상안이 처형당했다던 그곳이었다.그곳에 도착했을 때 상안은 여전히 나무에 묶여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힌 상태였다.그들이 다가오는 걸 본 상안은 무척 흥분했다.상녕은 대경실색하더니 이내 화색을 드러내며 곧바로 그를 묶은 밧줄을 풀면서 상안의 목을 만져보았다.“정말 죽지 않으셨군요.”상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날 데리고 와서 묶었을 뿐 날 죽이지는 않았다.”“그럼 검에 묻은 피는 어떻게 된 겁니까?”상안이 손바닥을 펴 보였다.“살짝 벴을 뿐이다.”“별거 아니다.”상녕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상안을 와락 끌어안았다.“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전 오라버니가 죽은 줄로 알았습니다.”상안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의 등을
말을 마친 뒤 상녕은 일부러 장난스레 말했다.“만약 제게서 뭔가 이득을 보실 생각이라면 마음껏 그러세요.”“전 상관없습니다.”낙요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렇게나 진솔하고 솔직하게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낙요는 코끝이 찡해나 눈물을 떨구었다.그녀는 다가가 상안을 안았다.“고맙습니다.”옆에 있던 상안이 그들을 일깨웠다.“그만하고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제 부모님은 아직 제가 살아있다는 걸 모르니 말입니다.”“그렇네요. 얼른 돌아가자고요.”그렇게 그들은 주둔지로 돌아갔다.상안이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본 그의 가족들은 전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허군한은 하룻밤 사이에 크게 슬퍼했다가 또 기뻐하다 보니 결국 피곤해서 깊은 잠에 빠졌다.그러나 상승 세 남매는 낙요의 막사로 향했다.상승이 말했다.“대제사장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희에게 명령을 내려주세요!”상녕도 고개를 끄덕였다.“저희는 허계지를 친삼촌처럼 대했습니다. 둘째 오라버니는 심지어 큰 위험을 무릅쓰고 그에게 주둔지를 빌려줬는데 그는 도리어 우리 가족을 전부 죽이려 했습니다! 이번에는 저희가 직접 저희 두 손으로 그를 잡아 오겠습니다!”낙요는 잠깐 생각한 뒤 말했다.“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 무공이 뛰어나니 상승은 사람을 데리고 십리정에 매복하고 있으세요. 누군가 십리정으로 향한다면 다 잡아들이세요.”“상안과 상녕은 허계지를 감시하세요. 어쩌면 누군가 그를 죽이려 할지도 모르니 꼭 허계지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던 사람까지 전부 잡아 와야 합니다. 산 채로 말입니다.”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이내 막사를 떠났다.막사 밖, 상 장군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낙요가 나오자 물었다.“대제사장, 난 뭘 하면 되오?”낙요는 잠깐 생각한 뒤 말했다.“장군께서는 부인의 곁을 지키시지요.”“내일 부인께서 몸 상태가 좋으시다면 성주부에 잠깐 들리시지요.”낙요의 말에 상 장군은 눈을 빛내며 곧바로 그녀의 말뜻을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모든 이들이 거의 포기하려고 할 때쯤에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마차 한 대가 지나갔다. 마차를 탄 사람은 립모를 쓰고 있었는데 정자를 힐끗 쳐다봤다.낙요는 단번에 그가 배후임을 확신했다.“손 쓰시오!”이내 상승이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들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에워쌌다.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마차를 탄 사람은 곧바로 차를 버리고 도망치려 했으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잡혔다.그러나 그는 잡혔을 때까지도 저항하면서 호통을 쳤다.“왜 날 잡는 것이오? 난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소. 무슨 근거로 날 잡는 것이오?”낙요는 곧바로 다가가 마차의 발을 걷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낙요는 버둥거리는 사내를 향해 다가가더니 그의 립모를 벗기고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매서운 눈매와 살기를 보니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약속을 지키러 온 것이오?”낙요가 물었고 그는 화를 냈다.“무슨 약속 말이오? 난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소! 날 왜 잡는 것이오?”“이렇게 늦은 밤에 이곳을 지나가던 길이라고? 아마도 길을 에둘러 왔겠지? 데려가서 천천히 심문해 봐야겠소!”같은 시각, 도주성 안, 허계지의 뒤를 밟고 있던 상안, 상녕 남매도 수확이 있었다.그들은 허계지를 죽이려던 암살자 세 명을 잡았다.그들은 암살자 세 명과 허계지를 묶어서 도주영으로 데려왔다.도주영으로 끌려갈 때 허계지는 버럭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감히 날 해치려 하다니!”상안이 죽지 않은 걸 본 허계지는 이것이 함정임을 곧바로 눈치챘다.하지만 그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 했다.그는 그들이 절대 자신의 약점을 잡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뻔뻔하게 화를 냈다.“무슨 근거로 날 잡는 것이냐?”허계지는 쉬지 않고 욕지거리했다.낙요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당신에게 죄가 없다면 당연히 잡지 않았을 것입니다.”허계지가 당황하며 입을 열려던 그때, 십리정에서 잡혀 온 암살자가 묶였다.그리고 허계지를 암살하려던 세 명까지 더해
왜 자신이 잡혀 온 건지, 그들이 대체 무슨 증거를 장악한 건지, 허계지는 알지 못했다.-막사에 들어서자, 그 사내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오늘 당신들이 어떤 고문을 하든 난 절대...”사내는 그때까지도 당당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낙요는 낡은 천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낙요는 곧바로 나침반을 꺼낸 뒤 사내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눈을 감자 어떠한 장면들이 떠올랐다.놀랍게도 그 사내는 정말로 우두머리였고 지위도 낮지 않았다.그들 조직은 왕생방(往生坊)이라고 불렸고 줄곧 허계지와 연락하던 사람도 그였다.낙요는 다른 걸 더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그녀는 가장 깊은 기억 중 일부만 볼 수 있었다.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낙요는 손을 거두어들인 뒤 그의 입을 막았던 낡은 천을 뺐다. 사내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류축(劉蓄), 당신은 왕생방의 루주(樓主)가 되고 싶은 모양이오?”그녀는 영혼 속 기억을 들여다볼 때 상대방의 집념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그의 집념은 더욱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사내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낙요의 미소를 바라보자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어떻게...”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낙요가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누군가 보고했다.“성주부 허 부인께서 오셨습니다.”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곧이어 허서화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차가운 표정에서 언짢음이 보였다. 그들에게로 걸어가던 허서화는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이들을 보게 되었을 때,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그것을 숨겼다.허계지는 허서화가 오자 다급히 입을 열었다.“누이.”허서화는 미간을 찡그리고 옆에 있던 상 장군을 바라보았다.“이건 무슨 뜻입니까?”“왜 허계지를 잡은 겁니까?”허서화는 불쾌함을 내비쳤다.상 장군은 친척이
허서화는 깜짝 놀랐다.그러나 고개를 돌려 낙요의 곁에서 따라 나오는 사내를 본 순간,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다행히도 다른 이들의 이목이 낙요에게 집중된 탓에 아무도 허서화의 충격받은 표정을 보지 못했다.허서화는 이내 평소대로 돌아왔다.낙요는 앞으로 걸어가 쪽지 하나를 허서화에게 건넸다.“부인께선 허계지가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아마 모르시겠지요. 도주영에 최근 소란이 일었는데 조사해 보니 허계지가 꾸민 짓이었습니다. 심지어 상씨 일가를 모함해서 그들을 죽게 할 뻔했습니다.”“그는 다른 사람과 서신을 주고받았다가 덜미를 잡혔습니다.”허서화는 쪽지 속 내용을 본 순간, 안색이 급변하며 고개를 돌려 놀란 표정으로 허계지를 바라봤다.허계지 역시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낙요가 그 서신을 손에 넣었을 줄은 몰랐다.역시나 함정이 맞았다!“무슨 짓을 한 것이냐!”허서화는 화를 내며 허계지를 노려보았다.허계지는 켕기는 게 있었지만,여전히 변명했다.“누이, 아닙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어쩌면 상씨 일가가 저를 모함하려는 걸지도 모르지요.”“누이, 저자들은 줄곧 우리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저희를 겨냥한 겁니다. 저희 성주부를 해치기 위해서 말입니다.”낙요는 차갑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아직도 변명이라니.”“그러면 이자의 말을 들어봐야겠군요.”말하면서 낙요는 옆에 있던 류축을 걷어찼다.류축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순순히 대답했다.“저와 계속 연락하던 자는 허계지였습니다.”“제가 그에게 약재를 사서 그것들을 도주영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도주영을 모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허계지는 줄곧 압박받고 있었고 큰일을 하고 싶어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그래서 제가 그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큰돈을 벌 기회를 말입니다.”그 말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상씨 일가는 낙요의 수단에 탄복했다. 류축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고 안색도
곧이어 낙요는 계속해 류축을 심문했다.그녀가 물었다.“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었소?”류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예전에 난 노예곡 사람과 연락했었소. 그런데 노예곡이 사라지고 그 뒤로 사람도 달라졌지. 서신은 도성에서 날아온 것이오.”“난 상대가 누군지 알지 못하오.”“이건 내가 사적으로 한 거래요. 위에 보고한 적이 없소.”“왕생방과는 상관없소.”“난 모든 걸 실토했으니 날 놓아주겠소? 난 윗분들에게 발각당하고 싶지 않소. 발각당한다면 난 죽을 것이오.”그 말에 낙요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류축을 관찰했다.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그러면 왕생방의 우두머리가 누군지 알고 있소?”류축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왕생방의 규칙이 바로 단순히 연락하는 것이오.”“위에서는 임무가 있을 때만 먼저 내게 연락해서 소식을 전달하오.”“우리는 윗분들과 만날 수 없소.”낙요는 잠깐 생각한 뒤 물었다.“당신은 언제부터 이 일을 한 것이오? 오성의 사람들과 연락할 때 암호 같은 것은 없소?”류축은 고민하다가 말했다.“2, 3년쯤 되었소. 노예곡에서 정기적으로 사람을 보내오면 난 그자들을 가둬놓고 훈련하오.”“처음에는 단순히 정예 병사들을 키우려는 줄로 알았소.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일반 백성이라 아무리 몸이 강하다고 해도 오랜 시간 훈련하지 않으면 고수가 될 수 없소.”“그래서 작년에 그들은 나더러 아주 큰 땅을 찾아 그 사람들을 약 안에 담가놓고, 수혼인지 뭔지 하는 것을 쓰라고 했소.”“난 잘 몰라 그들 쪽 사람들이 직접 그 일을 책임졌소.”“난 그저 약재와 장소를 제공할 뿐이오.”류축은 순순히 대답했다.그는 잠깐 생각한 뒤 말을 이어갔다.“예전에 노예곡과 연락할 땐 특별한 날개 기호를 썼었소.”“도성의 사람이 나와 연락할 때도 그 기호를 썼소.”낙요는 잠깐 고민한 뒤 물었다.“예전에 약을 만들던 사람은 누구요? 그를 본 적이 있소?”류축이 대답했다.“여인이었소. 항상 복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