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는 향긋한 술향기가 풍겼고 온심동은 자리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낙청연은 살짝 의아했다.온심동은 낙청연이 오자 살짝 긴장했다.“대제사장.”낙청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온심동의 표정은 한껏 누그러졌다. 예전처럼 차갑지는 않았다.“앉으시지요.”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 앉았고 온심동은 술 두 잔을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온심동은 진지한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제 사저입니까?”“그렇다면 당시 사저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왜 갑자기 사라진 겁니까? 시체까지 말입니다.”“누가 사저를 해쳤습니까?”그 말에 낙청연은 살짝 흠칫했다.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나도 누가 날 죽였는지 모른다. 그 사람의 얼굴을 잘 보지 못했다.”낙청연은 진심이 담긴 눈길로 온심동을 바라보았다.“또 무슨 의문이 있느냐?”“사실 내게 물건 하나가 더 있다. 이걸 본다면 너도 믿을 것이다.”낙청연은 미소를 띠었다.그 말에 온심동은 의아한 듯 미간을 구겼다.“무엇입니까?”낙청연은 살짝 긴장햇다.여국에서 온 뒤로 그녀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 앞에서 그 물건을 꺼낸 적이 없었다.나침반을 꺼내는 순간, 온심동의 눈이 빛났다.이어진 건 놀라움이었다.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나침반을 보다가 낙청연을 바라보았다.“사저!”“정말 제 사저였군요!”천명나침반은 낙요가 어릴 때부터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온심동은 그 물건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천명 나침반이 어떻게 생긴 건지도 잘 알고 있었다.그것은 천명나침반이 맞았다.사저의 나침반이었다!낙청연은 싱긋 웃었다.“드디어 믿는구나.”온심동은 낙청연을 보자 코끝이 찡해졌고 이내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릿해졌다.“사저...”온심동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억울한 듯 낙청연에게 안겼다.그 순간, 낙청연도 심장이 저릿해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낙청연은 온심동을 꽉 끌어안았다.“사저, 죽지 않았으면서 왜 일찍 돌아
낙청연은 온심동의 표정을 보자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난 천기당에서 죽었다. 그곳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어쩌면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그게 아니더라도 내 기억을 되짚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언가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하지만 그곳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날 데려가 줄 수 있겠느냐?”온심동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이번 달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3일 뒤 함께 들어가시지요.”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좋다.”곧이어 온심동은 신난 얼굴로 그녀에게 음식을 집어줬다.“얼른 드세요, 사저.”“이번에는 절대 절 떠나지 못하게 할 겁니다.”“사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낸다면 대제사장의 자리를 돌려드리겠습니다.”“제게는 이 자리에 앉아있는 매일이 고통입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릇을 들었다.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낙청연은 푹 빠졌다.온심동은 대제사장이 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고생도 많이 했을 것이다.“네가 예전에 자꾸 게으름을 부려서 그런 것이지. 이번에 내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네가 이렇게 대제사장을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온심동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사저가 침서와 같이 돌아왔는데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그것보다 왜 침서와 같이 있는 겁니까?”낙청연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말하자면 길다.”“침서가 아니었다면 당분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온심동은 깜짝 놀랐다.“설마 침서랑 친우가 된 겁니까? 예전에는 그를 가장 미워하지 않았습니까?”“그럴 리는 없다. 우리는 영원히 친우가 되지 못할 것이다.”낙청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히 말했다.온심동은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다행입니다.”“저도 침서와 같은 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야망이 너무 큰 사람입니다.”“저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불안해집니다.”낙청연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침서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원수가 적은 건 아니었지만 그녀를 죽도록 미워할 사람은 없는 듯했다.범위가 너무 넓어서 아무것도 조사해 낼 수 없었다.낙청연은 천기당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온심동이 물었다.“뭘 하시는 겁니까?”“이곳에 기관이나 밀실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당시 시체를 그곳에 숨긴 뒤 시간이 지나서 시체를 옮겼을 수도 있다.”온심동은 살짝 놀랐다.“그럴 수도 있겠습니다.”온심동의 눈빛이 가라앉았다.“하지만 저도 사저도 천기당에 밀실도, 기관도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이곳은 사저에게 가장 익숙한 곳입니다.”낙청연은 온심동의 눈빛이 변한 걸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진지하게 벽과 탁자, 궤를 살펴볼 뿐이었다.“우리가 대제사장이 되기 전에 천기당은 이미 존재했다.”“기관이 있는데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낙청연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었다. 온심동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찾고 계세요. 전 옆방에 가서 찾아보겠습니다.”낙청연은 열심히 찾을 뿐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래.”곧이어 온심동은 방에서 나와 방문을 닫았다.낙청연은 한 바퀴 쭉 둘러보았지만 기관을 찾지 못했다.대신 탁자 위의 바둑판이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그 위에 놓인 바둑판은 그녀가 기억하던 그것이 아니었다.이곳은 일반적으로 대제사장 한 사람만 왔다.낙청연은 혼자 바둑을 둔 적이 없었으니 판을 바꾼 적이 없었다.그것이 인상 깊었다.그러나 지금은 예전과 판이 달랐다.온심동이 누군가와 이곳에서 바둑을 둔 것일까?낙청연은 고민하면서 바둑을 두기 시작했고 그것이 몹시 어려운 형국이라는 걸 눈치챘다.그녀가 아는 온심동은 이렇게 바둑 수준이 높지 않았다.그것을 한번 깨보고 싶었던 낙청연은 거기에 깊이 빠져들었다.그렇게 낙청연은 온종일 바둑을 뒀다.도중에 온심동이 음식을 가져왔고 두 사람은 낮은 탁자 앞에 앉아 같이 밥을 먹었다.온심동은 그리운 듯 말했다.“예전에
낙청연은 방문에 기대어 힘없이 주저앉았다.낙청연의 마음은 아프기 그지없었다.“아동……”낙청연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렀다.문 하나를 사이 두고 밖에서 온심동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친절하게 부르지 말거라.”“너는 자격이 없다.”낙청연은 믿을 수 없었다. “왜?”온심동은 차갑게 웃더니 말했다. “왜? 물어보는 네가 우습지 않으냐?”“네가 자기 발로 죽으러 찾아 들어왔으니, 오늘 내가 여기서 너를 죽여도 나를 탓하지 말거라.”낙청연은 괴로워하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 뿌연 연기가 자욱이 들어와 낙청연은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마음은 또 더욱 아팠다.낙청연은 그녀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천명 나침반을 꺼내는 그 순간, 낙청연도 한순간은 의심한 적이 있다.혹시 온심동이 자신을 죽였을 가능성을!만약 정말 대제사장 자리 때문이라면, 낙요를 죽이는 게 대제사장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낙청연은 여전히 사매 간의 정을 선택했고 온심동을 믿기로 선택했다.하지만 천기당으로 다시 돌아오니, 또다시 전생의 죽기 전의 상황과 똑같은 장면과 맞닥뜨렸다.“아동…… 왜 이렇게 변한 것이냐? 네가 원하는 건 나는 너에게 다 줄 수 있다. 대제사장 자리를 원하면 그것도 너에게 줄 수 있다.”지금의 낙청연은, 자신이 두 번이나 배신을 당했다는 걸 의식했다.갑자기, 온심동은 방문을 열었다. 그 문을 밀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낙청연은 그저 보고 있었다. 그 뿌연 안개 속에서 약간 희미한 그림자가 그녀의 앞으로 걸어오더니, 허리를 굽히며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그 두 손은 선의적인 게 아니라……품속의 물건을 빼앗으려는 것이었다!“천명 나침반을 나에게 줘!”“어서 줘!”낙청연은 몹시 긴장했다. 품속의 나침반을 필사적으로 눌렀다.그러나 그 두 손은, 죽을힘을 다해 그녀 품속으로 뻗었다. 마치 손톱은 예리한 발톱이 되어 그녀의 몸을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오래된 악몽이 갑자기 낙청연의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그 날카
낙청연은 신속하게 뛰어 들어가 숨었다.이곳은 확실히 밀실이었다. 문 뒤에 바로 기계장치가 있었다.기계장치를 움직이자, 석문이 서서히 닫혔다.낙청연은 자세히 관찰하였다. 석문 아래 틈새로 연기가 들어올 수 있었지만, 아주 적었다.그러니 이곳은 안전할 것이다.그제야 낙청연은 뒤돌아보았다. 이 밀실의 등도 어느새 모두 켜져 있었다.낙청연은 몸을 돌리는 순간, 눈앞의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텅 빈 밀실에는 오직 바닥에 마루만 깔려 있었다.그 외 아무것도 없었다.그러나 바닥에는 아직도 짙은 색상의 핏자국이 남겨져 있었다.낙청연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낙청연은 즉시 앞으로 다가가 확인해 보니, 바닥에 남은 핏자국은 끌려간 흔적이었다.그리고 핏자국이 가장 많은 곳은 시신을 두었던 곳으로 추정되었다……낙청연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문득, 그녀의 추측이 정확하다는 것을 의식했다.낙청연은 죽임을 당한 후, 밀실로 끌려갔을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발견했을 때, 아무도 그녀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잠잠해지자, 시신은 다시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천기당 안의 이 밀실은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을 발견한 사람은 제사장 일족일 가능성밖에 없다!예전에는 의심하기 싫었지만, 지금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온심동!온심동이 확실하다!낙청연의 마음은 무언가에 의해 산산이 부서진 것 같았고 몹시 아팠다.벽에 기대어, 낙청연은 천명 나침반을 꺼냈고, 예전에 자신이 꿨던 그 꿈을 떠올렸다.꿈속의 그 사람도 그녀의 천명 나침반을 빼앗으려고 했다.오늘의 느낌과 너무 똑같았다.그때, 천명 나침반은 이미 낙청연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문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온심동은 시간을 계산해 보더니 지금쯤 낙청연은 이미 혼절했겠다고 생각했다.온심동은 일어나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방문을 열고 짙은 안개 속을 천천히 걸으며 낙청연의 그림자를 찾아 헤맸다.하지만 주위를 다 찾아본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낙청연이 사라졌다!
침서는 대제사장도 죽일 기세였다.온심동은 속으로 몹시 분했지만, 감히 이 미치광이 침서는 건드리지 못했다.“낙청연!” 침서는 낙청연의 이름을 부르며 곧바로 방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밀실 안에서, 낙청연은 침서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뒤이어 낙청연은 바로 일어나 밀실에서 걸어 나왔다.방안의 안개는 점점 걷혔다. 밀실에서 걸어 나오는 낙청연을 보고 침서는 약간 의아했다.“네가 어떻게……”“저는 괜찮습니다. 갑시다.”낙청연은 문밖으로 걸어갔다.온심동은 낙청연과 침서가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녀의 두 눈은 살의로 가득 넘쳤다.그 흉악한 눈빛은 마치 낙청연을 산산이 부숴버릴 것 같았다.낙청연은 너무 많은 혼무를 들이마셨기에 힘없이 비틀거리더니,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침서가 낙청연을 부축하더니, 바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침서는 단번에 지금 낙청연의 몸 상태를 알아차렸다.순식간에 두 눈에 살의가 번졌다.침서는 매섭게 온심동의 뺨을 후려갈겼다. 온심동은 그 강한 힘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그러나 넘어지기도 전에, 침서의 손은 그녀의 목을 덥석 조르더니, 바로 온심동을 벽에 갔다 눌렀다.그는 흉악한 눈빛으로 온심동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요!”“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오.”“그렇지 않으면, 나는 반드시 당신을 죽은 것 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할 것이오.”이 말을 끝내고 침서는 온심동을 냉정하게 풀어주었다.온심동은 분통이 터져 침서를 노려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침서를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어쩔 수 없이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침서는 낙청연을 부축하여 천기당에서 나갔다.천기당에서 나온 낙청연은 걸음을 멈추고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은은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침서는 낙청연을 확 끌어당기며 말했다. “뭘 보느냐? 내가 온심동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둔 것만 해도 다행이다.”이 말을 마치고, 바로 낙청연의 팔을 자기 어깨 위에 올려놓더니 과감하게 낙청연을
”우유가 달려와 대제사장이 너를 천기당으로 데려갔다며 좀 이상하다고 나를 찾아왔다고 하더구나.”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런 거였구나!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우유에게 감사해야 하겠구나!“돌아가십시오. 저도 쉬겠습니다.”낙청연은 방문을 닫아버렸다.침서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지만 삼켜버렸다. 닫힌 문을 보며 그의 마음은 다소 무거웠다.곧이어 방안의 등불이 꺼졌다.하지만 침서는 떠나지 않았다. 온심동이 다시 낙청연을 찾아올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낙청연은 너무 많은 혼무를 흡입했기 때문에 오늘 밤은 분명 몇 시진은 깊게 잠들 것이다.침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는 바로 지붕 위에 날아올라가 앉았다.온 밤을 그곳에 앉아 있었다.--낙청연은 눕자마자 바로 깊은 잠이 들었다.잠을 잘 때도 불안해하며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죽을힘을 다해 천명 나침반을 안고 있었다.낙청연은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밤에 나침반은 일월정화를 흡수하여 몸 안의 혼무를 점차 사라지게 했다.방금 일어났는데 우유가 들어왔다.“몸은 좀 괜찮으냐? 내가 약을 달여 왔으니, 어서 마시거라.”낙청연은 약사발을 건네받아 한 모금 마시더니 약간 놀랐다.“이건 혼무를 없애는 약인데 네가 어떻게……”우유가 대답했다. “침서가 말해줬다.”“오늘 아침에 일부러 나를 찾아와 나에게 말해주더구나. 그래서 내가 약을 달여왔어.”낙청연은 약간 놀랐다. “침서는 날이 밝을 때까지 궁에 있었던 것이냐?”우유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래, 보아하니 출궁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낙청연은 순간 넋을 잃고 생각했다. 설마 침서가 어젯밤 여기서 밤새도록 지켰단 말인가?“왜 그러느냐? 약이 식기 전에 어서 마시거라.”낙청연은 정신을 차리고 약을 깨끗이 비웠다.“대제사장은 소식이 있느냐?” 낙청연이 물었다.우유가 대답했다. “대제사장은 어젯밤에 출궁했는데, 뭐 하러 갔는지 모르겠구나.”“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어.”낙청연은 생각했다. 온심동은 지금 아마 그녀
그 순간, 낙청연의 마음은 쿵 내려앉았다.“모원원?!” 구십칠은 놀라서 소리쳤다.구십칠도 한눈에 모원원을 알아보았다.세 사람은 다급히 강가로 달려갔다. 구십칠은 강물에 뛰어들어 시신을 건져냈다.가슴에 입은 치명상은 바로 몸을 뚫고 지나갔다.보기에 장검에 의한 상처 같았지만 어떤 검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보통 장검인 듯했다.“보아하니,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십칠의 표정은 어두웠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빨리 모원원을 찾으러 왔을 걸 그랬습니다. 그럼, 어쩌면 그녀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낙청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성을 나올 때 돌아가는 온심동을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온심동도 어젯밤에 출궁했다. 그럼, 그녀가 모원원을 죽인 건 아닐까?여기까지 생각한 낙청연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낙청연은 즉시 취혼부를 그렸다. 그러나 모원원의 혼은 모이지 않았다. 모원원의 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낙청연은 안색이 확 변했다.그는 즉시 천명 나침반을 꺼내 점쳐보았다.일월경에 길이 나타났다.낙청연은 서둘러 달려갔다.“구십칠, 모원원의 시신을 잘 묻어 두거라. 나는 일단 모원원의 혼을 찾으러 가겠다.”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조심하십시오.”곧이어 낙청연은 우유와 함께 말을 타고 계속하여 길을 재촉했다.낙청연은 천명 나침반을 들고 가는 길 내내 방향을 점치며 말을 타고 찾아갔다.대략 반 시진이 지난 후 그들은 흑룡산(黑龍山)에 도착했다.말을 타고 산에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낙청연과 우유는 어쩔 수 없이 도보로 산을 올랐다.“흑룡산에 고수들이 밀집해 있다던데, 우리 이렇게 바로 산으로 올라가도 될까?” 우유는 걱정스레 물었다.낙청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산에 사람을 찾으러 간 것이지 문제를 일으키려는 것이 아닌데 두려울 게 뭐 있어?”낙청연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산으로 올라갔다.흑룡산에 대단한 고수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들은 무리를 지어 있지 않고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