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읍.”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누구 하나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모두들 성도윤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왔다.특히 오가미 히가시노무라 이치는 무의식적으로 작은 거울을 꺼내 들고는 자신의 외모를 다잡으며 서은아와 차설아를 바라보았다.“지금 성형하러 가도 괜찮을까요?”하늘 아래 그 어떤 남자가 돈 많은 여자의 눈에 들어 놀고먹는 상상을 해보지 않았던가? 심지어 차설아와 서은아와 같은 절세미인 부자라니...성도윤 정말 너무 행운다운 거 아닌가? 이미 능력에 외모에 다 갖추었는데 외모만으로 두 미녀가 집안 사업을 포기하고 오직 그를 위해 싸우다니... 이런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모두들 성도윤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냉담하게 말했다.“내 선택은 항상 같았어, 나랑 은아는 어릴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앞에서 밝히려고요. 저와 은아는 연인 사이입니다.”서은아의 마음속의 큰 돌이 끝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들었지? 이게 바로 도윤이의 선택이야. 네가 나보다 돈이 더 많다고 하더라도 도윤이는 나를 선택할 거라고. 이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야.”“진정한 사랑? 하하하, 웃기고 있네.”차설아는 성도윤의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그녀가 성도윤에 대한 요해로 볼 때 이렇게 딱딱하고 진정성 없는 선고는 이미 전에 짜놓은 연기가 아니라면 손에 장을 지질 거다.다만 왜 이런 일을 꾸몄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성도윤, 납치당했다면 눈 두 번 깜빡여, 그런 어정쩡한 연기를 내가 믿을 것 같아?”차설아는 심지어 성도윤의 약점이 서은아 손에 잡혔다는 상상까지 했다.“혹시 벌거벗은 사진이 서은아 손에 있는 거야? 그거로 협박해? 몸도 좋은 사람이 뭐 어때, 인터넷에 올리라고 해. 이럴 필요 없잖아.”성도윤은 별다른 말 없이 서은아의 손을 잡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회의가 끝났으니 저와 여자친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리고 두 사람은 차설아를 넘어 회의실을 나섰다.차설아는
성진은 두 팔을 몸 앞에 감고는 나른하게 회의실 문 앞에 기대 차설아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회장님, 잘 숨겼네? 또 한 번 놀랬잖아.”그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차설아를 보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본과랑 대학원에서도 계속 이 부분을 전공했어. 다만 네가 나에 대한 요해가 부족한 것뿐이야.”차설아는 한 손에는 문건을,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정리했는데 그 모습이 은근 지적이고 멋있었다.그녀는 전형적인 미모와 지성을 다 갖춘 여인이었다. 다만 평소에 평범한 여인의 탈을 쓰고 살뿐, 이 탈을 벗는다면 항상 세인들을 놀래켰다.“그래, 내가 아직 잘 모르지. 성도윤도 마찬가지야, 남편이라면서 하나도 모르잖아. 쌤통이야 아주.”성진은 방금 회의실 밖에서 라이브를 보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차설아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성도윤이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속이 후련했다. 마치 본인도 그 싸움에 참여한 듯 말이다.“그만해, 내가... 더 쪽팔렸는걸...”차설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이렇게 큰 실패를 겪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전, 성도윤의 배신을 당했을 때보다 더 굴욕적이다.4년 전의 그녀는 내세울 것 없는 아가씨였으니 그가 자신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손에 쥐고 있는 게 얼마인데 심지어 그를 구해줄 능력도 있는데 그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지 않는다니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성진, 솔직하게 말해. 내가 그렇게 별로야? 왜 계속 내 손을 놓는 거지?”그녀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녀의 목은 메었고 단 한 순간도 지금처럼 자신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성진의 표정은 잠시 흔들렸는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별로인 게 아니라 성도윤이 보는 눈이 없는 거야. 부정하지 마.”“그럴 리가... 아무리 보는 눈이 없다고 해도 돈을 마다 할 리 없잖아?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KCL 그룹을 선택할 건데... 아니야?”“그럼 눈도 없고 멍청하
성진은 보기 드물게 정상적이고 다정한 어투로 부부에게 말했다."아, 이분은...”부부는 차설아와 성진을 번갈아 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진아, 네놈이 드디어 마음을 접었구나, 너무 기쁘네.”"아가씨, 정말 아름다워요, 이러니 우리 진이를 사로잡을 수 있었군요, 아가씨는 우리 진이가 데리고 온 유일한 사람이에요. 이곳은 진이의 아지트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인데 얘는 항상 고기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했죠. 아가씨도 우리 집 고기를 먹고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네요.”성진은 지금 뜻밖에도 수줍은 표정을 드러내며 부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아이고, 그만 물어보시고 얼른 가서 식자재를 준비하셔요!”두 사람은 창가 쪽 자리에 앉았는데 차설아는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으로 양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슬퍼하지 마. 오늘 이렇게 멋지게 이겼으니 우리 먼저 한잔하자고요.”성진은 맥주 두 병을 '쾅쾅' 따고 자신과 차설아의 잔을 가득 채운 뒤 여자의 잔을 부딪쳤다."나는 슬프지 않아, 그냥 이해가 안 될 뿐이야...”차설아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왜 성도윤이 갑자기 변했는지 이해가 안 가, 성대 그룹의 미래를 걸고 서은아를 택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성진은 담담하게 반박했다."이해가 안 갈 게 뭐가 있어. 찐 사랑이라니까.”"진정한 사랑이라면 진작에 함께 있어야 하지. 여기까지 끌고 오지도 않았을 텐데, 오히려 성도윤과 서은아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고 그 합의를 내가 아직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설사 그렇다고 해도 뭐가 달라져요?”"아무리 고충이 많았어도 당신을 해칠 선택을 한 것만으로 용서할 수 없어요.”"만약 그가 낸 '상처'가 결국엔 나에 대한 '보호'가 목적이라면요?”“...”성진은 침묵을 택했다."봐, 내 생각이 맞았어. 날 보호하기 위해 날 해치는 거야!”"너 분명히 무엇을 알고 있을 거야. 나에게 알려줄 수 있어?”"난 아무것도 모르니 묻지 마.”성진은 시무룩해져서 고기 굽기에 몰두
“???”차설아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방금 그녀가 오가미 히가시노무라 이치한테 무엇을 도와 달라고 했더니 이젠 성진이 자기더러 도와달라고 하니...아무것도 제대로 건진 게 없네?"뭐? 합리한 지 보고 너무 이상한 거면 안 도와줄 거야!”차설아는 재삼 고민하다가 타협을 택했다.성도윤 덕분에 차설아의 한계는 점점 더 치솟고 있었다."긴장하지 마요, 내가 어떻게 감히 당신을 협박해, 내가 그런 사람처럼 보여요?”"어, 평소에도 정상인 같지는 않아.”차설아는 이 녀석이 예전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잊지 않았다.지금은 잠시 한배를 탔으니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뿐이지 그녀가 그를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다.성진은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었다."보아하니 당신 마음속에서 나의 이미지는 씻을 수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오늘 정말 나쁜 마음이 없어요...”"그럼 말해 봐, 나한테 뭘 바라는 거야?”"아무 생각 말고 나랑 고기 한 끼만 잘 먹으면 돼.”여기까지 말한 성진은 잘 구운 고기 한 조각을 소스에 찍어 차설아 앞에 놓인 작은 그릇에 담으며 물었다."먹어봐, 정말 맛있어.”"그게 다야?”"어, 다야.”"그래, 그럼 해볼게.”차설아는 마침내 젓가락을 들어 남자가 집어 준 소고기를 입에 넣었다.그 한입에 그녀는 마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것 같았다."와, 이거, 이거 너무 맛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을 수가 있어. 내가 먹어본 고기 중 가장 맛있어!”차설아는 바로 또 다른 고기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이 국이 더 기가 막히네, 카스도 있었으면 더 대박이었겠는데.”성진은 차설아의 반응에 만족해하며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추천했다."흑흑, 맛있네, 맛있어!”차설아는 이미 그칠 줄 모르고 고기와 맥주를 번갈아 마시며 말할 틈도 없었는데 자연히 성도윤의 그 하찮은 일들도 까맣게 잊어버렸다."고기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없다니깐, 한 끼로 해결할 수 없으면 두 끼를 먹으면 되지!”성진은 조용히 차설아를 즐겁게 바라보며 입가에 자신
차설아는 턱을 괴고 '끼끼'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제자리에 달라붙어 더 마시자고 아우성이다."가자, 가자, 더 이상 마실 수 없어, 안 그러면 집에 못 갈 거야.”성진은 차설아의 술병을 빼앗아 더는 마시지 못 하게 말렸다."성진, 너...말해봐, 오늘 저녁 나 실컷 먹었어?”차설아는 남자의 손을 잡고 눈빛이 흐릿해서는 혀를 꼬부라뜨렸다."물론이지, 창고를 다 비울 판이야!”"그럼, 그럼 나 실컷 마셨어?”"더 마시면 위가 뚫릴 거야.”"그럼 성도윤이 도대체 왜 나를 안 뽑아줬는지 말해줄 수 있겠네, 도대체 그에게 무슨 고충이 있는 것일까?”차설아가 비틀거리며 남자의 멱살을 손으로 움켜쥔 채 집요한 표정으로 물었다.성진은 원래 흐리멍덩했는데 갑자기 정신이 좀 맑아졌고 표정도 약간 차가워졌다."어떻게 아직도 이걸 기억하는 거야?”"쓸데없는 소리, 갑자기 차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차설아는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너희 남자들은 왜 다 그래, 나한테 결혼하자고 해놓고, 남은 인생 나랑 살겠다고 해놓고... 나 왜 이래?”"네가 한 나무에 목을 매려고 하는데 난들 어쩔 수 있을까.”성진은 비틀거리는 차설아를 잡고 가게를 나온 뒤 길가에 서서 대리운전 기사를 기다렸다."아니야, 아니야, 다 떠났어...”차설아는 손을 흔들며 그녀가 어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눴는지 세어 보았다."성도윤도 가고, 배경수도 가고, 미스터 Q도 가고... 나는 분명 저주받은 거야, 분명 그랬을 거라고!”"알았어, 알았어, 약속할게. 난 안 떠날 거야, 알았지?”"나는 너 싫어, 나는 성도윤을 원한다고... 빨리 말해, 왜 날 떠났는지. 이유를 알잖아, 똑바로 말해, 나 오늘 짜증 나 죽겠어!”성진은 차설아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프고 질투가 났고 마음속에는 사악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왜 성도윤은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걸까.그는 어떤 원망도 후회도 없이 부드럽게 지켜주는 서브남주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튿날차설아는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팠다.전혀 생소한 방, 차갑고 현대적인 장식에 다른 아무런 장식도 없이 간결하게 꾸며진 방이었다."나는 누구고 어디에 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지?”차설아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세 개가 떠올랐는데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이불을 젖히고 보니 자신의 옷은 몸에 잘 맞지 않는 잠옷으로 바뀌었고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망했다, 망했어!여자는 머리를 쿵 하고 부딪쳐 죽고 싶었다."형수님, 깼어요, 굿모닝.”성진은 커피를 들고 편한 복장을 하고는 문에 비스듬히 기대어 피식 웃으며 차설아와 인사를 나눴다."아!"차설아는 이 남자가 언제 나타났는지 전혀 몰랐고, 깜짝 놀라서 머리가 더 터질 것 같았다."성진, 이... 이게 웬일이야, 내가 어떻게... 너, 나?”그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혀가 굳어져서 온전한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성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긴장하지 마, 어젯밤에 우리 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내가 너를 탐낸 지 오래되었지만 난 군자니까.”"정말?"차설아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어쨌든 이 남자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물론 정말이지, 나는 우리 둘의 처음이 아름답고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되새길 가치가 있기를 바라거든...”"입 닥쳐!"차설아는 베개를 집어 들고 남자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그럼 그렇지, 네 입에서 무슨 좋은 말이 나오겠어. 적어도 양심은 있네.”만약 성진이 정말로 그녀를 만졌다면 그녀는 반드시 그를 고자로 만들 것이다!"내가 양심이 있는 게 아니라 술 취한 남자는 그럴 생각이 있어도 그럴 컨디션이 안 된다는 거 몰라요?”"그런 얘기가 있다고? 다 술을 마셔서 그렇고 그런 거 아니야?”예를 들면 그녀와 성도윤의 처음, 사도현과 배경윤... 그들 모두 술김에 한 것 아닌가?물론 사도현과 배경윤이 과연 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그녀와 성도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감개무량할 뿐이야, 온 정원에 봄빛이 감돌고 있는데 붉은 살구 한 그루가 담 밖으로 나왔으니...”"쯧쯧, 도윤이는 복이 너무 많아. 오늘 실검을 보고 선택을 후회할지는 모르겠네.”"실검, 무슨 실검?”"휴대전화를 켜봐.”불길한 예감이 든 차설아는 얼른 자신의 휴대전화를 풀고 각종 뉴스 앱을 뒤졌다.그녀가 어젯밤에 성진과 껴안고 차에 탔을 때부터 그녀가 성진네 차에서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의 전 과정을 파파라치가 따라붙어 촬영했고 영상은 이미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검색어 제목은 하나같이 야릇했는데 [성진 오밤중 전 형수와 만나], [성도윤 전처, 시동생과 밤새 격전] 등등 하나같이 보기 흉했다."이 사람들 미쳤지, 내가 언제 너와 격전을 벌였다고. 정말 어이가 없네!”차설아는 화가 나서 피를 토할 것 같았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고소할 거야, 전 재산을 다 탕진하게 만들 거라고.”"진정해, 이런 가짜 뉴스는 매달 있어, 신경 쓰지 마. 열기는 저절로 가라앉을 거야. 오히려 네가 매달릴수록 열기는 더 뜨거워질 거야. 가짜도 사실이 될 거라고.”성진은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넌 명성이 오래전에 이미 망가졌지만, 난 다르다고, 난 여자니까 이런 찌라시는 내 평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차설아도 물론 고루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명성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썼고 외부에 함부로 퍼지는 것을 원치 않았는데 만약 성도윤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서두르지 마. 이런 일은 내가 경험이 풍부하지 않겠어? 나만 믿어.”"정말이야? 무슨 방법이 있는지 말해 봐.”"아주 간단해. 내가 당신과 결혼을 한다면 헛소문은 사실이 되는 거지. 아무도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거야.”"성진, 이 미친놈아, 나를 화나게 하려고 작정한 거야? 내가 보기에 이 소식은 네가 내보낸 것 같은데!”차설아는 미칠 것 같았고 사내에게 달려들어 그를 몸 밑에 깔고 사정없이 때렸다."너 솔직히 말해, 파파라치 다 네가 부른 거지, 뉴
소영금이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성진의 집으로 쳐들어왔다.그녀는 성가에 시집올 때부터 단사란과 여러 해 동안 싸웠는데 며느리 이 일에서 진 것 외에는 진 적이 없었다.지금은 며느리도 출세해 사업이 잘될 뿐만 아니라 한 번에 성가에 쌍둥이를 낳아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단사란의 콧대를 누르기에 충분했다."단사란, 아침부터 무슨 일인데? 우리 집에 무슨 큰 경사가 있어서 또 네 눈에 거슬리는 거야?”하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영금은 곧장 1층 거실로 뛰어들어 전투를 시작했는데 화력이 폭발했다.단사란은 성진의 방에서 나와 계단 어귀에 서서 빈정거렸다."큰형수님네는 최근에 경사가 겹쳐서 정말 부럽군요. 이렇게 뻔뻔한 며느리가 있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요!”며느리?소영금은 얼굴을 찡그리며 반박했다."내 며느리는 사업과 가정 모두 잘 경영해나가는 똑똑한 아인데 질투하는 거야?”하지만 여인의 의기양양은 차설아와 성진이 나란히 방에서 나오자 뚝 그쳤다."이.....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가, 왜 성진의 침실에서 나오는 거야? 너도 그들 가족이 눈에 거슬려서 혼내주러 온 거야?”“...”차설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떨궜다."하하하, 형수님, 나이가 드셨더니 너무 순진하시군요. 남자와 여자가 한 방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뭘 할 수 있겠어요?”단사란은 마침내 득의양양해서 말했다."어떻게 며느리를 가르쳤는지 모르겠네요. 시동생까지 꼬시다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윗사람이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아랫사람이 좋은 걸 보고 따라 배우죠!”"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반드시 어르신을 찾아 정의를 구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진이가 이번 생에 어떻게 머리를 들고 사람이 되겠습니까?”"우리 진이는 성도윤이랑은 달라요. 우리 진이는 깨끗한 여자를 찾을 거라고요...”"그만해, 단사란, 그 입 닥쳐!”소영금은 참다못해 재잘거리는 단사란을 향해 소리쳤다.별장 전체가 흔들리는 듯싶었다."당신 아들이 무슨 명성이 있는데?
민이 이모가 원이를 데리고 차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차설아는 원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문 앞에서 맴돌면서 안절부절못했다.일찍 자야 할 달이는 혼자 쉬기가 미안해서 차설아 곁에 꼭 붙어있었다.“엄마, 앞이 보이지 않으면 무섭지 않아요? 배고프면 과자를 가져다줄게요. 아니면 물이라도 마실래요?”달이는 주방으로 달려가서 따뜻한 물을 컵에 받았고 좋아하는 간식을 한 아름 안고 와서 책상 위에 놓았다.“우리 달이는 참 착해. 엄마는 배고프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날이 이미 어두워진 거 아니야? 먼저 방에 들어가서 자.”차설아는 허공에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달이를 발견하고는 꼭 껴안았다.달이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차설아를 올려다보면서 울먹였다.“엄마, 정말 곧 낫는 거 맞아요? 만약 엄마가 달이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되면 어떡해요?”“걱정하지 마. 엄마처럼 강한 사람은 빨리 나을 거야. 그리고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엄마한테는 너랑 원이가 있잖아. 달이는 엄마의 눈이 되어줄 거야?”“좋아요! 제가 엄마의 오른쪽 눈이 될게요.”달이는 작은 손으로 차설아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달이는 오늘부터 엄마의 눈이에요. 엄마가 가고 싶은 곳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엄마의 곁에 꼭 붙어있을 거예요. 엄마가 원하는 건 전부 가져다줄 거예요!”“고마워, 우리 달이가 최고야.”차설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차설아는 달이를 꼭 안고 흐느꼈다.의사는 수술받은 뒤에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눈물을 흘리거나 자극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덧나서 더 아플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울지 않을 엄마는 없을 것이다.이때 원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엄마, 드디어 돌아왔네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원이는 차설아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달려갔다.“원, 원이야?”차설아는 원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원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
서은아는 손으로 얼굴을 막고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발이 미끄러져서 물에 빠졌다든지, 도윤이를 너무 그리워하다가 쓰러져서 입원했다든지... 지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많잖아요. 왜 하필 그 아이를 언급한 거예요? 그 아이는 성씨 가문의 보물이라고요. 감동적인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면 나를 용서해 줄지도 모르는데, 그 아이를 언급했으니 어떻게 기회가 차려지겠어요? 아주머니와 도윤이는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이제는 전부 끝이에요...”마음 아파하던 서태원은 서은아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은아야, 진정하고 아빠 말 잘 들어. 성도윤과 결혼할 방법은 그것 하나뿐인 게 아니잖아. 아빠가 생각해 놓은 게 있는데 좀 극단적이긴 해. 하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 한번 들어볼래?”“그게 정말이에요?”서은아는 붉어진 두 눈으로 서태원을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연하지. 아빠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한 적 있어?”“어떤 방법인지 어서 알려주세요. 도윤이를 못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미칠 것 같단 말이에요.”“성도윤은 성씨 가문의 도련님이라 바로 만날 수가 없어. 하지만 거만하던 도련님이 비굴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지.”서태원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비굴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지난번에 성대 그룹이 위기에 놓였을 때, 우리 가문이 투자금을 내어준 덕분에 해결했잖아. 문제가 해결되니 성도윤은 여유가 생겼고 은혜도 모르고 너를 차갑게 대했지. 내 생각에는 더 큰 위기를 조성해서 성대 그룹을 날려버리는 거야. 완전히 추락해서 밑바닥에 떨어지면 서씨 가문에 기대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네가 성도윤이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줘. 그럼 너랑 결혼할 수밖에 없을 거야.”서태원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대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강한 자는 선택권을 얻고 약한 자는 탈락하거나 강한 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우리 은아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못
서태원은 소영금을 한바탕 욕한 뒤, 서은아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서은아는 물에 빠져서 의식을 잃고 쇼크 상태가 이어졌다가 다시 회복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입원하면서 계속 지켜봐야 했다.“아빠, 어떻게 되었어요? 아주머니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이제는 도윤이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서은아는 서태원이 오기 전까지 병실에서 안절부절못하면서 손을 덜덜 떨었다. 서은아가 입원한 뒤부터 매일 서태원한테 울면서 성도윤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서은아는 서태원의 힘을 빌려 성도윤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이제는 만날 수 없을 거야. 성씨 가문과의 협력은 더 이상 없어! 진작에 그래야 했는데 말이야.”서태원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실 서태원은 예전부터 성씨 가문을 완전히 끊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서은아의 체면을 생각해서 지금까지 꾹 참았던 것이다.앞으로 성씨 가문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뭐, 뭐라고요? 가서 성도윤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성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지하면 어떡하냐고요!”“은아야, 정신 좀 차려. 성도윤을 비롯한 성씨 가문 사람들은 서씨 가문을 업신여겼어. 무시당하면서 그 가문과 혼약을 맺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서씨 가문의 사업 규모가 성씨 가문보다는 작아도 괜찮아. 혼약을 파기하면서 성씨 가문은 해안시의 웃음거리가 될 테니 말이야. 그동안 너 때문에 참았었는데 이제는 끊어내는 게 맞아. 우리 가문이 왜 성씨 가문의 시종처럼 끌려다녀야 해? 너는 평생 그렇게 살고 싶어?”서씨 가문은 이 혼약을 위해 굽신거리면서 부르면 달려가는 강아지 노릇을 했다. 서태원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불만이 아주 많았다.그러면서 성씨 가문에 악감정이 생겼고 성씨 가문이 파산하길 바랐다.“아빠,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다른 남자를 마음에 담은 적이 없어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남자는 성도윤뿐이라고요. 도윤이랑 겨우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성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지하면 나는 어쩌라고요? 내
진무열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물었다.“나는 괜찮아. 이 바닥에 저런 미친놈이 한둘이야? 하도 봐서 이제는 신경 쓰지도 않아.”소영금은 흩어진 머리를 정리했고 우아한 사모님의 자태를 뽐냈다. 미친개가 달려들면 같이 물어뜯지만 해결한 후에는 여전히 해안시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서 품위를 유지했다.“서씨 가문이 처음부터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우리 가문과 혼약을 맺기 위해 막대한 투자금을 선뜻 내놓았지만 이제는 두 아이가 결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거지. 그래서 발을 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이제라도 발을 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소영금은 서태원 때문에 화난 것보다 성도윤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도윤이가 성대 그룹의 자금에 대해서 말한 적 없었어? 분명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 말이야.”성도윤은 2년 동안 성대 그룹의 투자 영역을 몇 배 넓혔다. 투자금이 몇십 배 더 늘어났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수익이 아주 적었다.그리고 많은 일이 벌어지면서 경쟁자들의 실력이 늘었고 회사 경영은 점점 힘들어졌다.“자금이 부족하긴 해요. 성대 그룹에서 맡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줄어들면서 다른 경쟁자들한테 시장을 빼앗겼어요. 대표님은 인공지능 영역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어 하지만 신흥산업이라 연구개발 비용만 해도 몇억, 몇십억이 필요해요. 하지만 다른 사업의 수익은 계속 줄어드니 경영이 어려워진 상태예요.”진무열은 성도윤의 유능한 오른팔로서 성대 그룹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영역을 계속 확장한 바람에 관리가 힘들어졌고 자금이 부족해서 언제든지 파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도윤은 소영금이 걱정할까 봐 회사의 상황을 비밀에 부쳤다.“그동안 도윤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나도 잘 알아. 게다가 감정 문제마저 도윤이를 힘들게 하니 기댈 곳도 없이 혼자서 버텼겠지. 불쌍한 우리 도윤이를 어쩌면 좋아...”소영금은 울먹이면서 말했다.성도현이 살아있었을 때, 성도윤은 그저 관심이 있는 영역만 책임지면서 편하게 지냈었다.“내가
서태원의 말을 들은 소영금은 원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원이의 성격은 차설아와 소영금을 닮아서 똑똑하고 과감했다. 성도윤처럼 답답한 성격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나중에 원이가 성대 그룹을 이어받는 것이 소영금의 소원이었다.원이는 성도윤보다 훨씬 멋진 어른으로 자라서 성대 그룹을 이끌 것이다.“지, 지금 말 다 했어요? 우리 은아가 당신 손주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요.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웃음이 나와요?”서태원은 소영금을 궁지로 몰고 나서 성도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소영금은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놓고 비웃으면서 서태원의 심기를 건드렸다.소영금은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이렇게 웃긴 상황에 울어야 하나요? 성인이 5살 된 어린아이한테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래요.”소영금은 서태원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그리고 내 손주가 어떤 아이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누군가가 위협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아무 이유 없이 먼저 다른 사람을 공격할 아이가 아니에요. 당신 딸이 왜 내 손주한테 밀려서 호수에 빠졌는지 직접 물어보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피해자인 척하지 말고요.”“소영금 씨! 지금 말 다 했어요?”서태원은 소영금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씩씩거렸다.“예전부터 당신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었던 내가 더 우스워요. 당신은 생각보다 더 미친 여자였군요. 우리 은아가 성도윤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바쳤지만 결국 이렇게 버려졌네요.”“아무도 당신 딸을 버린 적 없어요. 만약 억울하다면 알아서 다른 남자를 찾으라고 전하세요. 도윤의 곁에 계속 남아있다는 건 얻을 게 있다는 뜻이겠죠.”소영금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이제는 서씨 가문이 안중에도 없다는 거네요. 오늘부터 우리 서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협력은 여기까지예요. 혼약대로 결혼할 수 없다면 원수 사이로 지내는 게 맞아요!”서태원은 독기 서린 눈으로 소영금을 바라보았다.사실 서태원은 진작에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러
성씨 가문은 여전히 해안시 8대 가문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서씨 가문이 아무리 사업을 발전시켜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고 해도 성씨 가문에 밉보이면 안 되었다.“이렇게 소란을 피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소영금은 차갑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태원 씨, 한밤중에 부하들을 데리고 온 건 나를 겁주기 위함이 아니었어요? 갑자기 불쌍한 척하는 건 태원 씨답지 않아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우리 은아가 자꾸 도윤이를 보고 싶어 해서 그러죠. 두 가문에서 혼담이 오가고 결혼 날짜까지 정해서 청첩장을 돌렸는데... 은아는 도윤의 약혼녀잖아요. 적어도 은아는 도윤이를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은아가 도윤이를 얼마나 걱정하고 그리워하는지 아세요?”서태원은 차분하게 말했지만 솟구쳐 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 주먹을 꽉 잡았다.“그건 그렇지만 예전과 상황이 달라요. 은아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나 보죠? 은아는 도윤이가 수술받지 못하게 하려고 주치의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은아가 기어코 수술을 받은 도윤이를 만나면 심정이 어떻겠어요? 도윤이한테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아냐고요.”소영금은 서태원의 체면이 구겨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서은아의 만행을 떠들어댔다.반년 동안 서은아가 성도윤을 정성껏 보살피고 사랑해 주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소영금은 서은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이대로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면 두 가문의 혼약대로 결혼하게 할 생각이었다.서은아와 성도윤은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였기에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두 가문의 실력 차이도 크지 않았으니 이 혼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래였다.그러나 고분고분 말을 듣던 서은아는 아무도 모르게 음험한 짓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소영금은 더 이상 서은아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우리 은아가 그럴 리 없어요.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조금 더 조사해 보는 게 어
소영금은 손을 내저으면서 성도윤의 말을 끊어버렸다.“됐어! 수술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애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엄마가 생각이 짧았어.”소영금은 성도윤이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있었다. 성도윤이 무슨 말을 하든 차설아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소용없었다.“만약 너랑 차설아의 사주가 상극이라서 걱정이 된다면 당장 사주를 봐준 사람을 찾아갈게. 그분이라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기운을 없애줄 수 있을 거야.”소영금의 말에 진무열이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면서 말했다.“역시 모성애는 위대해요. 너무 멋지세요.”진무열은 성도윤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대표님,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세요. 차설아 씨에 관한 일이든 회사 일이든 저희가 해결할게요. 대표님한테 가장 중요한 건 얼른 낫는 거예요.”이때 보디가드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다급히 말했다.“저... 말씀을 나누는 중에 죄송하지만 보고할 것이 있어서요. 나오시면 따로 보고드릴게요.”소영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보디가드를 노려보고는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도윤아, 먼저 쉬고 있어. 무슨 일이기에 호들갑을 떠는지 직접 나가봐야겠어.”보디가드는 소영금이 병실을 나서자마자 재빨리 보고했다.“서씨 가문에서 부하들을 모아 이곳으로 왔어요. 병실 앞까지 오겠다는 걸 겨우 말렸더니 사모님과 대표님이 직접 해명하라면서 협박했고요. 사모님이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서씨 가문이라고?”소영금은 별생각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당장 한 대 칠 기세였고 씩씩대면서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환자들과 의사는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갔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영금 씨, 드디어 나를 만나주러 내려왔군요. 계속 내려오지 않으면 병실을 쳐들어갈 생각이었거든요.”인파속에서 씩씩대던 서태원은 소영금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태원 씨,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건 선을 넘은 거 아닌가요? 도윤이가 수술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온 거예요?”소영금도
소영금은 기쁜 마음을 감추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네. 기억났어요...”성도윤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정확히 말하면 행복한 기억만 떠올랐어요. 슬프고 아팠던 기억은 흐릿해져서 잘 생각나지 않아요.”불행한 기억은 흐릿해진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잊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성도윤과 차설아는 많은 일을 함께 겪었다. 행복한 추억, 잔인한 장면과 복잡한 기억이 머릿속에 축적되면서 과부하가 되었다.그래서 성도윤은 스스로 슬프고 아팠던 기억을 잊고 행복한 기억만 간직하려고 했다.“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소영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성도윤이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어보지 않으려 했지만 원이를 만나게 되어 기뻤던 소영금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소영금은 성도윤이 차설아의 마음을 얻게 되면 매일 원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성도윤은 차분하게 대답했다.“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차설아랑 화해할 마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 네 아이가 다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는 걸 지켜만 볼 셈이야? 너는 원래 정이 없어서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어!”소영금은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성도윤은 아버지처럼 어설프고 여자의 마음을 하나도 몰랐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고 시간만 끌면서 여자를 괴롭혔다.‘도윤이가 나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닮았다면 진작에 차설아랑 화해하고 셋째, 넷째까지 낳았을 거야. 차설아가 그동안 먼저 다가와 주었으니 이제는 도윤이가 나설 차례인데 어쩌려고 그러는지...’“대표님이 차설아 씨와 화해하고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세요?”곁에 있던 진무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연한 걸 왜 물어?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것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잖아.”소영금은 팔짱을 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하지만 예전에 차설아 씨와 대표님의 사주가 상극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두 분이 함께 있으면 불행한 일만 생긴다면서 엮이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진무열은 계
성도윤의 말을 들은 원이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어린아이 특유의 순진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약속대로 꼭 와야 해요. 저랑 엄마를 보러 오지 않으면 또 100점을 깎을 거예요.”“걱정하지 마. 이제부터 아빠는 너랑 한 약속을 지킬 거야. 이리 와,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성도윤도 웃으면서 손가락을 내밀었다.“흥! 손가락 걸고 약속하는 건 어린아이들이 하는 짓이거든요? 정말 유치해서 못 봐주겠어요.”원이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거렸지만 재빨리 달려가서 성도윤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이렇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다음에 손바닥을 이마에 대면 도장을 찍는 거예요.”원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손바닥을 이마에 갖다 댔다. 민이 이모는 원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 그 뒤로 소영금이 따라오면서 말했다.“벌써 가시는 거예요? 조금 더 얘기를 나누다가 가시지 그래요. 원이는 아빠랑 잘 얘기했어? 원이를 기억해 냈대?”소영금은 어렵게 만난 원이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일초라도 더 눈에 담고 싶어서 두 사람의 뒤를 계속 따라왔다.“네! 그래서 1점을 주기로 했어요.”원이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실 소영금과 같이 있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게다가 차설아의 편에 서면서 소영금과 성도윤을 전부 적이라고 생각했었다.소영금과 성도윤이 차설아를 괴롭혔기에 점수를 많이 깎였고 점수를 더하려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정말 다행이야. 너한테 말하지 않았지만 네 아빠는 예전부터 아팠었어. 그래서 너랑 네 엄마를 잊은 것이니 네 아빠를 탓하지 말아 주렴. 네 아빠를 용서해 줄 수 있겠어?”소영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도윤과 원이가 잘 지내게 되면 소영금은 앞으로 원이를 더 자주 볼 수 있었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용서할지 말지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용서한다고 하면 저도 생각해 볼게요. 그리고 마이너스 99점에서 점수를 더 깎을지 아니면 더할지는 그분이 알아서 할 거예요.”원이는 팔짱을 낀 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