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금이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성진의 집으로 쳐들어왔다.그녀는 성가에 시집올 때부터 단사란과 여러 해 동안 싸웠는데 며느리 이 일에서 진 것 외에는 진 적이 없었다.지금은 며느리도 출세해 사업이 잘될 뿐만 아니라 한 번에 성가에 쌍둥이를 낳아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단사란의 콧대를 누르기에 충분했다."단사란, 아침부터 무슨 일인데? 우리 집에 무슨 큰 경사가 있어서 또 네 눈에 거슬리는 거야?”하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영금은 곧장 1층 거실로 뛰어들어 전투를 시작했는데 화력이 폭발했다.단사란은 성진의 방에서 나와 계단 어귀에 서서 빈정거렸다."큰형수님네는 최근에 경사가 겹쳐서 정말 부럽군요. 이렇게 뻔뻔한 며느리가 있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요!”며느리?소영금은 얼굴을 찡그리며 반박했다."내 며느리는 사업과 가정 모두 잘 경영해나가는 똑똑한 아인데 질투하는 거야?”하지만 여인의 의기양양은 차설아와 성진이 나란히 방에서 나오자 뚝 그쳤다."이.....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가, 왜 성진의 침실에서 나오는 거야? 너도 그들 가족이 눈에 거슬려서 혼내주러 온 거야?”“...”차설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떨궜다."하하하, 형수님, 나이가 드셨더니 너무 순진하시군요. 남자와 여자가 한 방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뭘 할 수 있겠어요?”단사란은 마침내 득의양양해서 말했다."어떻게 며느리를 가르쳤는지 모르겠네요. 시동생까지 꼬시다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윗사람이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아랫사람이 좋은 걸 보고 따라 배우죠!”"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반드시 어르신을 찾아 정의를 구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진이가 이번 생에 어떻게 머리를 들고 사람이 되겠습니까?”"우리 진이는 성도윤이랑은 달라요. 우리 진이는 깨끗한 여자를 찾을 거라고요...”"그만해, 단사란, 그 입 닥쳐!”소영금은 참다못해 재잘거리는 단사란을 향해 소리쳤다.별장 전체가 흔들리는 듯싶었다."당신 아들이 무슨 명성이 있는데?
”해외시장 확장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 우리 며느리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G6 칩을 만들어낸 과학자라고, 당신 아들이랑은 비교도 안 된단 이 말씀이지.”두 사람이 정신없이 다투는 것을 본 차설아와 성진은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성진,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가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차설아는 남자의 팔을 툭툭 치며 성진에게 압력을 가했다.더 이렇게 다투다간 소영금이 그녀의 옛이야기를 다 들춰낼까 봐 두려웠다.뭐, 그래도 눈앞의 이전 시어머니가 본인을 이렇게 감싸 안아줄 줄은 몰랐다.그녀가 어떤 연구를 했고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어떤 실적을 얻었는지 소영금은 아주 익숙했는데 하나하나 읊으며 어깨가 하늘로 치솟았다.“걱정 말고 이 일은 내게 맡겨요.”성진은 차설아에게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고 그리고는 소영금과 단신란 사이에 껴 들어갔다.“두 분, 그만 싸우시죠? 두 분 계속 저랑 형수가 서로를 어떻게 했다고 하시는데 어쩌면 저랑 형수가 서로 마음이 맞아서 함께 하는 거일 수도 있잖아요?”성진은 소영금과 단신란을 번갈아 쳐다보며 태연자약하게 말했다.“그건...”소영금과 단신란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더는 다투지 못했다.그러니까 말이다... 어찌 이 가능성을 빼놓고 있었단 말인가?차설아는 분에 겨워 세 사람 앞으로 뛰쳐나왔는데 성진을 보며 따져 물었다.“일부러 그러는 거지? 말하면 할수록 왜 더 이상해지는 건데!”해명을 안 했으면 그만인데 이렇게 해명하고 나니 일이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 버렸다.“형수가 조용하게 만들라면서요? 지금 얼마나 조용해?”성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당당하게 말했다.소영금은 단번에 차설아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가야, 무슨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하지?””알아, 지금 분명 도윤이 때문에 화가 많이 났을 거야. 어제 그 라이브 나도 봤어, 확실히 도윤이가 잘못했더구나. 하지만 날 믿어, 도윤이는 절대 너에 대한 마음이 변할 일이 없으니까, 지금은
소영금은 성도윤이 진짜 오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성진과 단신란에게 일정한 위협을 주기 위해서였다.필경 전반 성가에서 성도윤은 미래의 가문을 이끌어갈 사람이나 다름없으니 누구도 감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과연 단신란의 기가 죽었는데 목소리도 한층 낮아졌다.“이런 쪽팔리는 일은 우리끼리 알아서 해결하면 되지 굳이 다른 사람한테 알릴 필요까지 있을까? 그리고 도윤이도 지금 서은아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을 텐데 무슨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런 작은 일까지 신경 쓰겠어?”“작은 일? 아까는 경찰에 신고하자며?”소영금은 냉랭하게 단신란을 쳐다보며 도도하게 말했다.“내 아들과 서은아는 그저 연기일 뿐이야, 우리 며느리랑 진짜 사랑이라고. 이번에 우리 아들의 여자를 건드렸으니 도윤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단신란은 걱정스러운 듯 침을 삼켰는데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그녀는 옆에 서 있는 성진을 툭툭 치며 냉랭하게 말했다.“너 이 자식아, 주동적이든 피동적이든 잘못은 잘못이야. 얼른 뉴욕 교회당으로 튀어가서 속죄하지 못해?”그녀는 성진보고 자리를 피하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그녀 일가가 자리를 박차려고 했을 때부터 성도윤과 성진의 관계는 이미 팽팽했었다.성도윤이 성진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것도 이미 큰 아량을 베푼 것인데 오늘 성진이 또 이런 짓까지 저질렀으니 성도윤이 만약 진짜 온다면 성진은 죽을 목숨일 것이다.“왜 가? 아까는 엄청 당당했잖아, 지금 이러는 거 보니 뭐 찔리는 게 있나 보지?”소영금이 성진의 앞에 막아서며 허를 찌르는 말을 했다.성진은 덜렁대며 웃으며 말했다.고모님, 전 갈 생각 없어요. 도윤이가 얼른 오기를 바라는걸요. 제가 잘 설명할게요. 도윤이가 너그럽게 저희를 이해해줄 거예요.”“닥쳐!”단신란은 본인 아들의 기고만장한 태도에 화가 나 펄쩍 뛰었다.“이 자식이 내가 화가 나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래? 얼른 가라면 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아들이 목숨만 붙어있다면 앞으
그는 천천히 여자의 앞으로 걸어왔다. 각이 선명한 그의 얼굴에는 한 층의 서리가 덮여있었는데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솔직하게 말해, 진짜 잤어?”차설아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잤는지 안 잤는지 정말 궁금하긴 한 거야?”“한 번만 더 물을게, 잤어?”성도윤의 목소리는 한층 더 냉랭해졌는데 여인의 어깨를 잡고 감정이 격해졌다.차설아 입가의 미소도 점차 사그라지었고 계속해서 되물었다.“그럼 넌 서은아랑 잤어? 어제 그 일이 있고 난 뒤 어디 갔는데?””차설아, 내 한계를 건들지 마. 내 화를 돋우면 어떤 결과인지 잘 알 텐데?””무슨 결과? 우리 두 사람이 전에 안 싸워본 것도 아니고... 전에도 안 두려워했는데 지금이라고 무서울까?”차설아는 성도윤의 손을 뿌리치고는 성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너가 바람을 피웠으니 나도 필 수 있잖아, 안 그래?””미치겠네.”성도윤은 미칠 것만 같았는데 분노의 눈길로 차설아를 째려보았다.“그렇게 외로움을 타는 거야? 이렇게 해서 나한테 복수할 생각이라면 큰 오산이야. 정말 잘못 생각한 거야. 이렇게 하면 상처받는 건 너라고!”“내가 외로움을 타?”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랑 비기면 난 아무것도 아닐 텐데? 난 적어도 당당해, 혼내 바람을 피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도덕도 없는 거야.””나랑 서은아가 어떻든 적어도 나랑 그 여인은 감정이 있잖아, 그렇지만 성진이 어떤 사람인지 너도 잘 알잖아. 나한테 보복하려고 이런 새끼랑 잔다니... 역겹지도 않아?”성도윤의 분노는 차설아의 배신 때문이 아니라 성진 이 자식이 정말 더러운 새끼라는 것에 있다.그가 애지중지하는 여인이 그리 쉽게 성진의 손에 들어가다니, 안 미치고 어디 살겠는가?“도윤아, 이건 말이 좀 심하잖아. 난...”성진이 막말을 하려고 하는데 성도윤이 한주먹에 그의 콧대를 부러뜨려 버렸다.“아, 죽네! 사람 죽어!”단신란은 성진의 앞을 막아서며 아랫사람들한테 소리쳤다.“멀뚱멀뚱 서서 뭐해? 얼
차설아는 그 집을 빠져나와 망연히 길거리를 거닐었는데 순간 어디로 가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그녀는 4년의 세월을 들여 G 6 칩을 연구개발해냈고 KCL 그룹의 대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주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그녀였지만 어째서인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결국은 그녀와 성도윤의 관계로 그녀가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 아닐까?그래서 차설아는 묵묵히 주먹을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 성도윤이 얼마나 큰 고충이 있었다 할지라도 더는 그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이때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차설아는 풀이 죽어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모르는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녀의 처음 반응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는데 상대방은 아주 끈질겼다.“누구신데 아까부터 계속 전화를 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원래도 기분이 나빴는데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며 화풀이를 했다.“설아야, 집에 들어와. 내가 바로 너가 여태 찾던 사람이야.”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다정했고 낯설었으며 말 못 할 친근감이 들었다.차설아의 기분이 순간 한줄기 산들바람이 분 것처럼 평정심을 되찾았다.“죄송해요, 방금은 제 기분이 안 좋아서. 누구세요? 저희 아는 사인가요?””그럼요. 아주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죠.”남자는 가볍게 웃은 후 말을 이었다.“차가 저택에서 기다릴게.”차설아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택시를 잡아타고는 제일 빠른 속도로 차가로 향했다.오늘의 차가는 전처럼 누추하지는 않았다. 일전에 폐수처리공장을 주변에 짓겠다 하는 것을 차설아가 막는 바람에 공사를 중지했고 온 하늘에 휘날리는 먼지와 공사 일군들이 없으니 전보다 공기도 훨씬 좋아진 듯싶었다.차설아는 차가의 현관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청신한 향기가 그녀를 반겼고 탁 트인 정원의 홰나무는 이미 많이 커 있었다. 무성한 잎사귀는 초록의 큰 양산처럼 햇빛이 가지 사이를 비춰 들어와 바닥에 아롱한 얼룩을 남겨놓았다. 나무 그림자 밑에 키가 훤칠한 남자가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
”내가 진짜 미스터 Q야, 전에 그는 짝퉁이라고.”남자의 목소리는 갑자기 험악해졌다.“근 년 내 단 한순간도 그를 죽이고 싶지 않은 적이 없어.”“나한테 이런 걸 말하는 이유가 뭐죠?”차설아는 침을 삼키며 뒤로 점점 물러섰다.눈앞의 남자는 비록 그녀한테는 다정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포스는 감출 수 없었는데 등골이 서늘했다.“설아야, 무서워하지 마. 난 널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뎠으니 드디어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어...”남자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왔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뉴스를 보니 KCL 그룹 신임 대표가 됐다던데... 차가 사람들이 모두 널 자랑으로 여길 거야. 미래의 해안은 우리 차가의 것이야.”“우리 차가?”차설아는 남자에게 따져 물었다.“당신이 미스터 Q라고 해도 내가 전에 만났던 사람은 당신이 아니잖아... 그러니 내가 당신이랑 무슨 사이... 아니 우리 차가랑 당신이 무슨 사이지?””하하, 역시 총명해. 누가 내 차성철의 동생 아니랄까 봐. 우리 두 사람 역시 마음이 맞네.”남자는 호탕하게 웃었는데 퍽 자랑스러운 듯했다.차설아는 미칠 것 같았다. 누가 머리를 치는 것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잠깐만, 뭐라고요? 내가 당신 동생이라고요? 우리 둘이?””침착해, 이 소식이 너한테 큰 충격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날 믿어줘, 다 진짜라고.”차성철은 울컥했다.28년, 장장 28년 만에 그는 드디어 차성철이란 이름으로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고 동생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오빠?”차설아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복잡한 감정이 그녀를 감쌌다.차가가 쇠퇴해진 후 그녀는 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지금 자신과 피를 나눈 오빠가 눈앞에 서 있다니 그녀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하지만 차설아도 경계를 늦출순 없었다.“무슨 증거가 있죠?”그녀도 얼마 전에 우연히 본인에게 오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만약 나쁜 사람들이 이 소식을
차설아와 남자의 DNA는 99.1%로 일치했는데 두 사람은 확실한 친남매였다."와... 너무 신기한데!”감정서를 든 그녀는 가늘고 긴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고 심장은 너무 설레서 두근두근 뛰었다."동생아, 이제 믿어야지? 나는 정말 너의 오빠야. 친오빠라고.”차성철은 비교적 평온한 모습으로 차설아 앞에 다가와 두 손으로 여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드디어 우리가 서로를 만났어! 얼굴이나 자세히 보자.”그는 부드러운 눈매로 차설아를 유심히 바라보며 마치 또 다른 자신을 바라보는 듯했는데 금방이라도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오.. 오빠."차설아는 고개를 살짝 들고 남자를 바라보며 어색하지만 다정한 호칭을 불렀다.그 순간, 그녀는 덜 외로워졌고 막막한 천지간에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뒤에 마침내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들었다.이것이 바로 가족애의 신기한 힘일 것이다.차성철의 요청으로 차설아는 남자를 따라 성심 전당포로 돌아왔다.이곳을 포함한 전체 낙수 부두는 모두 차성철이 관여하는 지역이었다.모두가 그를 두려워했고 그를 피하기 바빴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자정 살인마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다만 이 땅을 다시 밟은 차설아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이곳에 대해 의문이 너무 많았다.예를 들어 만약 차성철이 미스터 Q라면 그동안 이를 사칭한 사람은 누구일까.차성철이 성심 전당포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중벌에 처했던 사람은 바로 그가 일찍이 가장 믿었던 부하 장재혁이다."생각 없는 놈, 짝퉁이랑 꼬박 4년 동안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니, 내가 보기에 너는 일부러 모른 척했던 것 같은데!”차성철은 용 문양이 새겨져 있는 의자 앞에 서서 장재혁의 가슴을 발로 차며 격노했다."형님, 제가 눈이 멀었었습니다. 중벌을 내리십시오.”장재혁은 자신이 큰 죄를 범한 것을 알고 꼿꼿이 무릎을 꿇고 벌을 달게 받았다."눈이 멀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 눈 그냥 버리는
차설아는 차성철 옆에 앉아 침을 삼키며 "오빠, '장기방'이 뭐야?"라고 물었다.차성철의 태도는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는데 차근차근 설명했다."'장기방'은 다른 보물 방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람의 오장육부를 채취하는 데 사용되고 있어. 이곳에 장기를 맡기는 사람들도 항상 적지는 않았지. 우리 전당포에서 가장 잘 되는 장사였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년 동안 그 짝퉁이 이 장사를 중단했고 성심 전당포는 어쩔 수 없이 유명무실한 일반 전당포로 전락했어!”남자는 마치 가장 평범한 것에 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차설아는 그 말에 소름이 돋았는데 조심스레 물었다."오빠, 이건 장기 매매야, 불법이겠지?”"설아야, 낙수 부두는 삼국의 접경지역이야. 여기는 법을 어기고 안 어기고가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단다. 아니면 성심 전당포가 왜 성심 전당포겠어?”“전당포로 부자가 된 것은 산 사람의 붉은 심장 덕분이지... 커터칼이 뛰고 있는 심장을...”"그만해!"차설아는 차성철의 흥미진진한 묘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는데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토할 것 같았다.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많이 봤지만 이런 순수한 학살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차성철은 차설아의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적당히 마음을 다잡고 위로했다."설아야, 이 세계에는 많은 차원이 있어. 서로 다른 차원에는 또 서로 다른 생존 기준이 있지. 너는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의 보살핌 속에서 생활했으니 바깥 세계의 잔혹함을 알지 못했을 거야. 이 오빠가 좀 더 독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오늘을 살 수 없었을 거야...”차설아도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그녀도 세상 물정에 어두운 온실 안의 화초가 아니다. 어찌 세상의 잔혹함을 보지 못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차성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오빠, 난 오빠의 과거에 관여할 생각 없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고 있으니 어떤 일들은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 같네...”"뭘 하려고? 말해
배경윤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사도현과 진찬영 사이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도대체 왜 온 세상이 이 문제로 싸우고 있는 거야?’그때 마침 택시가 도착했고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빨리 차에 올랐다.운전사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백미러로 계속해서 배경윤을 쳐다보더니 말을 걸었다.“>에 나온 배경윤 씨 맞죠? 그 프로그램 진짜 재밌게 봤는데... 갑자기 폐지돼서 아쉬웠어요. 해외 촬영 가셨다가 뱀에게 물렸다면서요? 이제 다 회복하신 거예요?”그 말에 배경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당장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세상에... 연애 프로그램이 이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다 이 얘기뿐이야. 이거 트루먼 쇼 아니지?’“저는 도현 씨가 제일 좋았어요. 볼 때마다 빵 터지는 장면이 있었거든요!”“근데 배경윤 씨는 도대체 누구를 더 좋아해요? 최종 선택에 누굴 골랐어요? 저는 사도현 씨랑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던데...”운전사는 신나게 떠들며 >의 각종 명장면을 줄줄 읊어댔다.배경윤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니, 못 했다고 하는 게 맞나?’그녀는 그저 빨리 차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배경윤은 차설아의 집에 도착했다....한편, 지금 그 넓은 저택에는 차설아와 현이만 남아 있었다.원이와 달이는 학교로 갔고 김정민은 장을 보러 나간 데다가 성도윤은 아침 일찍 출근했기 때문이었다.현이는 차설아의 커피에 무언가를 넣은 후, 그녀에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설아 씨, 커피 드세요.”“고마워요.”차설아는 음악을 튼 채 정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그녀는 하루하루가 편안했지만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 자꾸 졸음이 쏟아지고 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왜 이렇게 잠이 오지?”커피를 마시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경윤이?”배경윤에게서 나
일주일 잘 회복한 배경윤은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었다. 지금 그녀가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절친인 차설아였다. 하지만 아직 목이 완전히 낫지 않아서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계속 차설아와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았다.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아무리 문자를 보내도 차설아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퇴원하자마자 배경윤은 먼저 차설아네 집으로 가보려 했다.진찬영이 그녀와 같이 갔고 예상대로 사도현도 나타났다.그는 자연스럽게 배경윤의 여행 가방을 받아서 들며 남자 친구처럼 굴었다.“가자. 나도 마침 사랑스러운 여왕님 찾으러 가려고 했거든. 같이 가면 딱 좋겠네?”[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나한테서 떨어지라고 말이야. 너 같은 거 보고 싶지 않거든.]배경윤은 일부러 그를 멀리하며 휴대폰에 타자를 했다. 그리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사도현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보고 싶지 않으면 눈 감으면 되잖아.”사도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던 진찬영을 힐끗 바라보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찬영 씨는 안 가도 되지 않나요? 저희 친구들이랑 친한 것도 아니고... 괜히 따라가서 분위기 갈지 말지는 그냥 빠지세요.”“제가 가는지 마는지는 경윤 씨가 정할 문제 아닌가요? 사도현 씨가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진찬영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두 사람이 또다시 싸우기 시작하자 배경윤은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둘 다 오지 말라고 입력한 후, 가방을 끌고 병원을 빠져나갔다.사실 배경윤의 목적은 차설아와 단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두 사람이 따라붙으면 또 서로 신경전을 벌이며 싸울 게 뻔했기에 그 민망한 꼴을 그녀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그렇게 혼자 길을 나선 배경윤은 도로 옆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병원 근처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다.“배경윤 씨... 맞죠?”갑자기 뒤에서 낯선 목소리
배경윤은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급히 휴대폰을 꺼내 몇 글자를 입력했다.[제가 듣기로는 다들 전신마취에서 깨어날 때,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던데...혹시 제가 실수라도 했나요? 기억이 안 나서 그래요.]“정말 알고 싶어요?”진찬영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묻자 배경윤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걸요? 알고 나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진찬영은 배경윤의 반응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날의 모습을 영상으로 몰래 기록해 뒀었다.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 왔었다. 배경윤처럼 순수하게 사랑스러운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그날 귀여운 그녀의 모습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해도 진찬영은 영원히 기록해두고 싶었다.[빨리 말해줘요! 저도 알고 싶어요!]배경윤은 계속해서 그에게 졸랐다.사실 그녀도 인터넷에서 비슷한 영상을 본 적이 있었기에 알고 있었다. 의식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황당한 행동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또 다른 숨겨진 성격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요. 그럼 직접 봐요.”진찬영은 휴대폰을 꺼내 그날 촬영해 둔 영상을 보여주었다.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영상 속 장면을 보는 순간, 그녀는 숨이 턱 막혀 기절할 뻔했다.그 영상 내용은 이러했다.전신마취에서 깨어나 수술대에서 밀려 나올 때, 사도현과 진찬영이 양쪽에서 배경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배경윤이 갑자기 사도현의 손을 덥석 잡더니 울다가 또 웃으며 그의 목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사도현에게 입을 맞추더니 또 한바탕 대성통곡을 했다. 마지막에는 사도현의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며 뭔가를 찾는 듯했다.[저 도대체 뭘 찾고 있었던 거래요?]배경윤은 당황한 나머지 급히 영상을 꺼버리고 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감싸 쥔 채 진찬영에게 물었다.“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마취에서 막
사도현의 말에 병실 안이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사실 요즘 늘 이런 분위기가 반복되고 있었다.진찬영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사도현이 뭐라 비꼬는 것의 반복이었다배경윤은 마치 인형처럼 두 남자 사이에서 양쪽으로 잡아당겨지는 기분이었다.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피곤했다.신중히 고민한 끝에 그녀는 결국 화가 치밀어 올라서 핸드폰을 꺼내 이렇게 적었다.[두 사람 다 내일부터 오지 마.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배경윤은 이렇게 적어서 각각 사도현과 진찬영, 두 사람에게 각각 보여주었다.그러자 진찬영이 바로 사과했다.“미안해요, 경윤 씨. 제 잘못이에요. 제가 강요하지 말아야 했어요.”그는 깨끗하고 맑은 얼굴에 마치 대학교 남학생 같은 순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든 그의 순진한 표정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사도현 같은 사람에게 놓고 말해서 진찬영처럼 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그래서 그는 이를 악물고 진찬영을 노려보며 이를 갈며 말했다.“여우 같은 놈.”하지만 진찬영은 그 말을 듣고도 전혀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눈을 살짝 내리깔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도현 씨, 미안해요. 사실 저도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경윤 씨가 너무 좋아서 어쩔 수 없나 봐요. 소유욕 때문에 말이 거칠어졌어요. 제가 떠날게요. 경윤 씨만 행복할 수 있다면 저는 상관없어요.”“진찬영 씨,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제가 못 알아볼 줄 아세요?”사도현이 버럭 소리쳤지만 진찬영은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경윤 씨, 전 경윤 씨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에요. 만약 제 존재가 부담스럽다면 더 이상 여기 있지 않을게요. 잘 지내요.”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 했다.하지만 그 순간, 배경윤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배경윤은 핸드폰을 들어 차분한 표
병실 밖에서 우연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사도현은 코웃음을 쳤다.그러곤 갓 사 온 레드벨벳 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다.“사과 같은 거 먹어서 뭐 해? 차갑기만 하고 이가 시려서 고생한다고... 케이크 사 왔으니까 이거 먹어. 이거 사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 사이에 떡하니 자리 잡더니 작고 정교한 케이크를 배경윤에게 건넸다.배경윤은 평소 사도현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이 레드벨벳 케이크만큼은 예전부터 너무나도 먹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바로 받아 들었다.이 케이크 가게의 사장은 굉장히 까다로운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하루에 딱 세 개만 만들었고 돈이 많다고 해서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 사장이 진심이 느껴지는 손님에게만 케이크를 파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배경윤도 몇 번이나 줄을 서서 사장에게 간절히 부탁했지만 끝내 사지 못했었다.그런 케이크를 사도현이 어떻게든 구해 왔으니 사느라 엄청 고생했다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다.그런데 바로 그때, 진찬영이 차가운 표정으로 배경윤에게 손을 내밀었다.“사과에는 비타민이 풍부하지만 케이크에는 당분이 너무 많아요. 지금은 회복하는 중이라서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안 돼요.”“경윤 씨, 자제해야죠? 빨리 회복해야 일찍 퇴원하고 목도 나을 수 있잖아요.”배경윤은 케이크를 한번 내려다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갑자기 먹기가 두려워졌던 것이다.“그깟 조각 케이크 하나가 무슨 대수라고 그래요. 의사도 안 된다고 안 했잖아요. 게다가 케이크가 주는 행복은 그쪽이 하는 아재 개그보다 훨씬 크다고요.”사도현 역시 싸늘하게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만약 정말 경윤 씨를 위한다면 건강부터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은 행복보다 회복이 더 중요해요.”진찬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끝까지 반대할 작정이었다.“경윤이 인생이니까 제가 책임져요. 우리는 연인 사이예요. 앞으로도 결혼할 사이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그쪽이 참
한편, 뱀에게 물린 배경윤은 일시적인 쇼크 상태에 빠졌다가 구조된 뒤로 줄곧 병원에서 요양 중이었다.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프로그램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녀와 사도현, 진찬영 사이에서 벌어진 삼각관계로 인해 그녀를 둘러싼 논란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네티즌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뉘었는데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머지는 중립적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또 사도현을 좋아하는 사람, 진찬영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배경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그들 사이의 논쟁은 끊이질 않았고 결국 이 세 사람은 인기가 많아져서 배경윤 같은 일반인조차 연예인처럼 주목받게 되었다.배경윤은 목숨을 건졌지만 부작용으로 목소리를 잃게 되었다.병원에 있는 동안, 사도현과 진찬영이 번갈아 가며 그녀를 돌봤다. 그 덕분에 병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격한 신경전이 벌어지게 되었다.그날도 사도현은 회사 일을 마치자마자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찬영이 더 먼저 도착해 있었다.늘 조용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과일을 깎으면서도 배경윤을 웃겨주려고 그녀에게 장난을 쳤다. 그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배경윤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경윤 씨, 사과 먹으면 하나 더 들려줄게요.”진찬영은 깎은 사과를 한입 크기로 잘라서 그녀에게 건넸고 배경윤은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활발하고 털털한 성격을 가졌기에 평소와 달리 아무 말 없이 웃는 모습은 뜻밖의 차분함과 부드러움을 풍기고 있었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저 예전에 도사를 만난 적 있는데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매주 일요일 밤 12시 이후가 귀신들한테 제일 위험한 시간이라고 말이에요. 왜 그런지 알아요?”진찬영은 일부러 신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배경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핸드폰으로 타자를 했다.[왜요? 왜요? 빨리 말해봐요!]그녀는 평소 점을 치는 거나 미신 같은 걸 꽤 좋아했다. 그래
하지만 차설아는 현이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오후가 되자 김정민이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현이는 퇴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그녀는 가방을 메고 텅 빈 거리를 걸었다. 마음이 무겁고 복잡해서인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걸음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거의 집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한 그림자가 나타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내가 시킨 일은 제대로 했어?”검은 옷을 입고 커다란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여자였다. 얼굴에는 깊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고 눈빛은 싸늘했다.“말씀하신 대로 다 했어요. 제발 엄마를 놓아주세요.”현이는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애원했다.“계속해. 열흘 뒤에야 풀어줄 거야.”여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현이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었다.“헛짓거리할 생각은 마. 날 속이거나, 하루라도 늦거나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네 엄마는 죽는 거야. 알아?”“네, 알겠어요.”현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몸을 살짝 떨었다. 감히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그제야 그 여자는 현이를 놓아주고 뒤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했다.그 순간, 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그 여자는 걸음을 멈췄다.“뭔데?”“그냥 궁금해서요. 설아 씨랑 무슨 원한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설아 씨는 정말 착한 분이에요. 앞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미 충분히 힘들어하시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죠?”현이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그녀는 이 여자에게 조종당해 차설아를 해치는 일이 너무 괴로웠다. 그런데 만약 이유조차 모르고 있으면 그녀는 언젠가 그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질 것만 같았다.그러자 그 모자를 쓴 여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착하다고?”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모자 아래서 반짝이는 두 눈은 마치 독을 품은 뱀과도 같았다.“차설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해? 그 여자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 여자가 누굴 해쳤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할걸?”“그럴
“현이 씨?”차설아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이 시간대에 집에 있는 사람이라면 현이 뿐이었으니 말이다.하지만 현이는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차설아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그녀는 즉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그쪽... 현이 씨 아니죠?”“설아 씨, 저 맞아요.”현이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활기차고 상냥한 말투와 달랐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라도 있어요?”“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집에 일이 좀 있어서요.”현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최대한 평소처럼 행동하려 애썼다.“설아 씨, 아까 뭐라고 하셨어요?”“아, 옷 좀 가져다 달라고 했어요. 옷장 맨 왼쪽에 있는 니트 한 벌이면 돼요.”차설아가 또렷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장으로 가 그녀가 원하는 옷을 꺼냈다. 니트를 받아 든 차설아는 능숙하게 옷을 입기 시작했다.비록 그녀는 앞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자립심이 강했기에 일상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오히려 현이 입장에서는 여느 고용인들보다 차설아를 돌보는 게 훨씬 수월했다. 그래서 그녀는 진심으로 차설아를 좋아했다.하지만...아름답고 따뜻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현이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아침 식사 시간이 되자 현이는 평소처럼 우유 한 잔에 통밀 토스트, 그리고 과일 몇 조각을 준비했다.차설아는 식탁에 앉아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토스트를 씹으며 현이에게 말했다.“혹시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어려운 일이라도 있으면 말해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요.”“아, 아니에요.”현이는 입술을 꼭 깨물며 망설였다.“그냥... 가족끼리 또 싸웠을 뿐이에요. 사실 맨날 싸워서 이제 익숙하지만요. 그래도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뭘 그렇게까지 격식을 차려요? 앞을 못 보고 나서 지금까지 현이 씨가 절 도와주고 있잖아요. 오히려 제가 현이 씨한테 고마워해야 하는데...”차
성도윤은 남자로서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것도, 눈물을 흘리는 것도 싫어했었다. 하지만 차설아는 그로 하여금 닭살 돋는 말을 하게 만들었고 눈물도 흘리게 했다.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그는 평생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기분이었다.“알면 됐어요. 제가 얼마나 좋은 아내인데요! 그러니까 평생 저만 사랑해 주세요.”차설아는 그렇게 말하며 성도윤의 목을 감싸안고 입을 맞췄다.술이란 참 좋은 것이었다. 완전히 긴장을 풀어 주고 가장 솔직한 자신을 드러내게 해 줬으니 말이다.사실 차설아는 오래전부터 성도윤과 진하게 키스하고 싶었다. 그저 자존심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술기운을 빌려 그동안 부족했던 만큼 한꺼번에 채울 생각이었다.“너, 너... 취한 거 아냐?”성도윤은 갑자기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차설아를 보고 당황했다. 평소에 그녀가 이러는 건 꿈이거나 아니면 술에 취했을 때뿐이었으니 말이다.그는 어찌할 바 몰랐다. 괜히 진하게 키스했다가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취했든 안 취했든 상관없어요. 오늘은 그냥 키스하고 싶을 뿐이에요.”그녀는 두 손으로 성도윤의 얼굴을 감싸 쥐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입술을 포갰다. 차설아가 워낙 격렬하게 덤벼드는 바람에 두 사람은 그대로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아니면... 위층으로 올라갈까?”성도윤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살짝 쉬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그것도 괜찮은 선택인 것 같은데요?”그녀는 장난스럽게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그를 자기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위층으로 가면 단순히 키스만 하는 게 아닐 텐데 괜찮아요?”“상관없어. 오늘 밤, 난 주인님의 말씀만 잘 따를 테니까.”그렇게 말한 성도윤은 차설아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는 긴 다리로 망설임 없이 계단을 올랐고 단숨에 침실까지 도착했다.아이들이 캠프를 떠난 타이밍이 이렇게 절묘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토록 완벽한 둘만의 시간을 두 사람은 너무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