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금이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성진의 집으로 쳐들어왔다.그녀는 성가에 시집올 때부터 단사란과 여러 해 동안 싸웠는데 며느리 이 일에서 진 것 외에는 진 적이 없었다.지금은 며느리도 출세해 사업이 잘될 뿐만 아니라 한 번에 성가에 쌍둥이를 낳아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단사란의 콧대를 누르기에 충분했다."단사란, 아침부터 무슨 일인데? 우리 집에 무슨 큰 경사가 있어서 또 네 눈에 거슬리는 거야?”하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영금은 곧장 1층 거실로 뛰어들어 전투를 시작했는데 화력이 폭발했다.단사란은 성진의 방에서 나와 계단 어귀에 서서 빈정거렸다."큰형수님네는 최근에 경사가 겹쳐서 정말 부럽군요. 이렇게 뻔뻔한 며느리가 있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요!”며느리?소영금은 얼굴을 찡그리며 반박했다."내 며느리는 사업과 가정 모두 잘 경영해나가는 똑똑한 아인데 질투하는 거야?”하지만 여인의 의기양양은 차설아와 성진이 나란히 방에서 나오자 뚝 그쳤다."이.....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가, 왜 성진의 침실에서 나오는 거야? 너도 그들 가족이 눈에 거슬려서 혼내주러 온 거야?”“...”차설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떨궜다."하하하, 형수님, 나이가 드셨더니 너무 순진하시군요. 남자와 여자가 한 방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뭘 할 수 있겠어요?”단사란은 마침내 득의양양해서 말했다."어떻게 며느리를 가르쳤는지 모르겠네요. 시동생까지 꼬시다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윗사람이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아랫사람이 좋은 걸 보고 따라 배우죠!”"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반드시 어르신을 찾아 정의를 구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진이가 이번 생에 어떻게 머리를 들고 사람이 되겠습니까?”"우리 진이는 성도윤이랑은 달라요. 우리 진이는 깨끗한 여자를 찾을 거라고요...”"그만해, 단사란, 그 입 닥쳐!”소영금은 참다못해 재잘거리는 단사란을 향해 소리쳤다.별장 전체가 흔들리는 듯싶었다."당신 아들이 무슨 명성이 있는데?
”해외시장 확장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 우리 며느리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G6 칩을 만들어낸 과학자라고, 당신 아들이랑은 비교도 안 된단 이 말씀이지.”두 사람이 정신없이 다투는 것을 본 차설아와 성진은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성진,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가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차설아는 남자의 팔을 툭툭 치며 성진에게 압력을 가했다.더 이렇게 다투다간 소영금이 그녀의 옛이야기를 다 들춰낼까 봐 두려웠다.뭐, 그래도 눈앞의 이전 시어머니가 본인을 이렇게 감싸 안아줄 줄은 몰랐다.그녀가 어떤 연구를 했고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어떤 실적을 얻었는지 소영금은 아주 익숙했는데 하나하나 읊으며 어깨가 하늘로 치솟았다.“걱정 말고 이 일은 내게 맡겨요.”성진은 차설아에게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고 그리고는 소영금과 단신란 사이에 껴 들어갔다.“두 분, 그만 싸우시죠? 두 분 계속 저랑 형수가 서로를 어떻게 했다고 하시는데 어쩌면 저랑 형수가 서로 마음이 맞아서 함께 하는 거일 수도 있잖아요?”성진은 소영금과 단신란을 번갈아 쳐다보며 태연자약하게 말했다.“그건...”소영금과 단신란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더는 다투지 못했다.그러니까 말이다... 어찌 이 가능성을 빼놓고 있었단 말인가?차설아는 분에 겨워 세 사람 앞으로 뛰쳐나왔는데 성진을 보며 따져 물었다.“일부러 그러는 거지? 말하면 할수록 왜 더 이상해지는 건데!”해명을 안 했으면 그만인데 이렇게 해명하고 나니 일이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 버렸다.“형수가 조용하게 만들라면서요? 지금 얼마나 조용해?”성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당당하게 말했다.소영금은 단번에 차설아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가야, 무슨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하지?””알아, 지금 분명 도윤이 때문에 화가 많이 났을 거야. 어제 그 라이브 나도 봤어, 확실히 도윤이가 잘못했더구나. 하지만 날 믿어, 도윤이는 절대 너에 대한 마음이 변할 일이 없으니까, 지금은
소영금은 성도윤이 진짜 오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성진과 단신란에게 일정한 위협을 주기 위해서였다.필경 전반 성가에서 성도윤은 미래의 가문을 이끌어갈 사람이나 다름없으니 누구도 감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과연 단신란의 기가 죽었는데 목소리도 한층 낮아졌다.“이런 쪽팔리는 일은 우리끼리 알아서 해결하면 되지 굳이 다른 사람한테 알릴 필요까지 있을까? 그리고 도윤이도 지금 서은아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을 텐데 무슨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런 작은 일까지 신경 쓰겠어?”“작은 일? 아까는 경찰에 신고하자며?”소영금은 냉랭하게 단신란을 쳐다보며 도도하게 말했다.“내 아들과 서은아는 그저 연기일 뿐이야, 우리 며느리랑 진짜 사랑이라고. 이번에 우리 아들의 여자를 건드렸으니 도윤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단신란은 걱정스러운 듯 침을 삼켰는데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그녀는 옆에 서 있는 성진을 툭툭 치며 냉랭하게 말했다.“너 이 자식아, 주동적이든 피동적이든 잘못은 잘못이야. 얼른 뉴욕 교회당으로 튀어가서 속죄하지 못해?”그녀는 성진보고 자리를 피하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그녀 일가가 자리를 박차려고 했을 때부터 성도윤과 성진의 관계는 이미 팽팽했었다.성도윤이 성진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것도 이미 큰 아량을 베푼 것인데 오늘 성진이 또 이런 짓까지 저질렀으니 성도윤이 만약 진짜 온다면 성진은 죽을 목숨일 것이다.“왜 가? 아까는 엄청 당당했잖아, 지금 이러는 거 보니 뭐 찔리는 게 있나 보지?”소영금이 성진의 앞에 막아서며 허를 찌르는 말을 했다.성진은 덜렁대며 웃으며 말했다.고모님, 전 갈 생각 없어요. 도윤이가 얼른 오기를 바라는걸요. 제가 잘 설명할게요. 도윤이가 너그럽게 저희를 이해해줄 거예요.”“닥쳐!”단신란은 본인 아들의 기고만장한 태도에 화가 나 펄쩍 뛰었다.“이 자식이 내가 화가 나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래? 얼른 가라면 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아들이 목숨만 붙어있다면 앞으
그는 천천히 여자의 앞으로 걸어왔다. 각이 선명한 그의 얼굴에는 한 층의 서리가 덮여있었는데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솔직하게 말해, 진짜 잤어?”차설아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잤는지 안 잤는지 정말 궁금하긴 한 거야?”“한 번만 더 물을게, 잤어?”성도윤의 목소리는 한층 더 냉랭해졌는데 여인의 어깨를 잡고 감정이 격해졌다.차설아 입가의 미소도 점차 사그라지었고 계속해서 되물었다.“그럼 넌 서은아랑 잤어? 어제 그 일이 있고 난 뒤 어디 갔는데?””차설아, 내 한계를 건들지 마. 내 화를 돋우면 어떤 결과인지 잘 알 텐데?””무슨 결과? 우리 두 사람이 전에 안 싸워본 것도 아니고... 전에도 안 두려워했는데 지금이라고 무서울까?”차설아는 성도윤의 손을 뿌리치고는 성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너가 바람을 피웠으니 나도 필 수 있잖아, 안 그래?””미치겠네.”성도윤은 미칠 것만 같았는데 분노의 눈길로 차설아를 째려보았다.“그렇게 외로움을 타는 거야? 이렇게 해서 나한테 복수할 생각이라면 큰 오산이야. 정말 잘못 생각한 거야. 이렇게 하면 상처받는 건 너라고!”“내가 외로움을 타?”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랑 비기면 난 아무것도 아닐 텐데? 난 적어도 당당해, 혼내 바람을 피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도덕도 없는 거야.””나랑 서은아가 어떻든 적어도 나랑 그 여인은 감정이 있잖아, 그렇지만 성진이 어떤 사람인지 너도 잘 알잖아. 나한테 보복하려고 이런 새끼랑 잔다니... 역겹지도 않아?”성도윤의 분노는 차설아의 배신 때문이 아니라 성진 이 자식이 정말 더러운 새끼라는 것에 있다.그가 애지중지하는 여인이 그리 쉽게 성진의 손에 들어가다니, 안 미치고 어디 살겠는가?“도윤아, 이건 말이 좀 심하잖아. 난...”성진이 막말을 하려고 하는데 성도윤이 한주먹에 그의 콧대를 부러뜨려 버렸다.“아, 죽네! 사람 죽어!”단신란은 성진의 앞을 막아서며 아랫사람들한테 소리쳤다.“멀뚱멀뚱 서서 뭐해? 얼
차설아는 그 집을 빠져나와 망연히 길거리를 거닐었는데 순간 어디로 가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그녀는 4년의 세월을 들여 G 6 칩을 연구개발해냈고 KCL 그룹의 대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주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그녀였지만 어째서인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결국은 그녀와 성도윤의 관계로 그녀가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 아닐까?그래서 차설아는 묵묵히 주먹을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 성도윤이 얼마나 큰 고충이 있었다 할지라도 더는 그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이때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차설아는 풀이 죽어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모르는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녀의 처음 반응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는데 상대방은 아주 끈질겼다.“누구신데 아까부터 계속 전화를 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원래도 기분이 나빴는데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며 화풀이를 했다.“설아야, 집에 들어와. 내가 바로 너가 여태 찾던 사람이야.”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다정했고 낯설었으며 말 못 할 친근감이 들었다.차설아의 기분이 순간 한줄기 산들바람이 분 것처럼 평정심을 되찾았다.“죄송해요, 방금은 제 기분이 안 좋아서. 누구세요? 저희 아는 사인가요?””그럼요. 아주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죠.”남자는 가볍게 웃은 후 말을 이었다.“차가 저택에서 기다릴게.”차설아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택시를 잡아타고는 제일 빠른 속도로 차가로 향했다.오늘의 차가는 전처럼 누추하지는 않았다. 일전에 폐수처리공장을 주변에 짓겠다 하는 것을 차설아가 막는 바람에 공사를 중지했고 온 하늘에 휘날리는 먼지와 공사 일군들이 없으니 전보다 공기도 훨씬 좋아진 듯싶었다.차설아는 차가의 현관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청신한 향기가 그녀를 반겼고 탁 트인 정원의 홰나무는 이미 많이 커 있었다. 무성한 잎사귀는 초록의 큰 양산처럼 햇빛이 가지 사이를 비춰 들어와 바닥에 아롱한 얼룩을 남겨놓았다. 나무 그림자 밑에 키가 훤칠한 남자가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
”내가 진짜 미스터 Q야, 전에 그는 짝퉁이라고.”남자의 목소리는 갑자기 험악해졌다.“근 년 내 단 한순간도 그를 죽이고 싶지 않은 적이 없어.”“나한테 이런 걸 말하는 이유가 뭐죠?”차설아는 침을 삼키며 뒤로 점점 물러섰다.눈앞의 남자는 비록 그녀한테는 다정했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포스는 감출 수 없었는데 등골이 서늘했다.“설아야, 무서워하지 마. 난 널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뎠으니 드디어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어...”남자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왔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뉴스를 보니 KCL 그룹 신임 대표가 됐다던데... 차가 사람들이 모두 널 자랑으로 여길 거야. 미래의 해안은 우리 차가의 것이야.”“우리 차가?”차설아는 남자에게 따져 물었다.“당신이 미스터 Q라고 해도 내가 전에 만났던 사람은 당신이 아니잖아... 그러니 내가 당신이랑 무슨 사이... 아니 우리 차가랑 당신이 무슨 사이지?””하하, 역시 총명해. 누가 내 차성철의 동생 아니랄까 봐. 우리 두 사람 역시 마음이 맞네.”남자는 호탕하게 웃었는데 퍽 자랑스러운 듯했다.차설아는 미칠 것 같았다. 누가 머리를 치는 것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잠깐만, 뭐라고요? 내가 당신 동생이라고요? 우리 둘이?””침착해, 이 소식이 너한테 큰 충격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날 믿어줘, 다 진짜라고.”차성철은 울컥했다.28년, 장장 28년 만에 그는 드디어 차성철이란 이름으로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고 동생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오빠?”차설아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복잡한 감정이 그녀를 감쌌다.차가가 쇠퇴해진 후 그녀는 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지금 자신과 피를 나눈 오빠가 눈앞에 서 있다니 그녀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하지만 차설아도 경계를 늦출순 없었다.“무슨 증거가 있죠?”그녀도 얼마 전에 우연히 본인에게 오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만약 나쁜 사람들이 이 소식을
차설아와 남자의 DNA는 99.1%로 일치했는데 두 사람은 확실한 친남매였다."와... 너무 신기한데!”감정서를 든 그녀는 가늘고 긴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고 심장은 너무 설레서 두근두근 뛰었다."동생아, 이제 믿어야지? 나는 정말 너의 오빠야. 친오빠라고.”차성철은 비교적 평온한 모습으로 차설아 앞에 다가와 두 손으로 여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드디어 우리가 서로를 만났어! 얼굴이나 자세히 보자.”그는 부드러운 눈매로 차설아를 유심히 바라보며 마치 또 다른 자신을 바라보는 듯했는데 금방이라도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오.. 오빠."차설아는 고개를 살짝 들고 남자를 바라보며 어색하지만 다정한 호칭을 불렀다.그 순간, 그녀는 덜 외로워졌고 막막한 천지간에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뒤에 마침내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들었다.이것이 바로 가족애의 신기한 힘일 것이다.차성철의 요청으로 차설아는 남자를 따라 성심 전당포로 돌아왔다.이곳을 포함한 전체 낙수 부두는 모두 차성철이 관여하는 지역이었다.모두가 그를 두려워했고 그를 피하기 바빴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자정 살인마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다만 이 땅을 다시 밟은 차설아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이곳에 대해 의문이 너무 많았다.예를 들어 만약 차성철이 미스터 Q라면 그동안 이를 사칭한 사람은 누구일까.차성철이 성심 전당포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중벌에 처했던 사람은 바로 그가 일찍이 가장 믿었던 부하 장재혁이다."생각 없는 놈, 짝퉁이랑 꼬박 4년 동안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니, 내가 보기에 너는 일부러 모른 척했던 것 같은데!”차성철은 용 문양이 새겨져 있는 의자 앞에 서서 장재혁의 가슴을 발로 차며 격노했다."형님, 제가 눈이 멀었었습니다. 중벌을 내리십시오.”장재혁은 자신이 큰 죄를 범한 것을 알고 꼿꼿이 무릎을 꿇고 벌을 달게 받았다."눈이 멀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 눈 그냥 버리는
차설아는 차성철 옆에 앉아 침을 삼키며 "오빠, '장기방'이 뭐야?"라고 물었다.차성철의 태도는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는데 차근차근 설명했다."'장기방'은 다른 보물 방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람의 오장육부를 채취하는 데 사용되고 있어. 이곳에 장기를 맡기는 사람들도 항상 적지는 않았지. 우리 전당포에서 가장 잘 되는 장사였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년 동안 그 짝퉁이 이 장사를 중단했고 성심 전당포는 어쩔 수 없이 유명무실한 일반 전당포로 전락했어!”남자는 마치 가장 평범한 것에 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차설아는 그 말에 소름이 돋았는데 조심스레 물었다."오빠, 이건 장기 매매야, 불법이겠지?”"설아야, 낙수 부두는 삼국의 접경지역이야. 여기는 법을 어기고 안 어기고가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단다. 아니면 성심 전당포가 왜 성심 전당포겠어?”“전당포로 부자가 된 것은 산 사람의 붉은 심장 덕분이지... 커터칼이 뛰고 있는 심장을...”"그만해!"차설아는 차성철의 흥미진진한 묘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는데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토할 것 같았다.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많이 봤지만 이런 순수한 학살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차성철은 차설아의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적당히 마음을 다잡고 위로했다."설아야, 이 세계에는 많은 차원이 있어. 서로 다른 차원에는 또 서로 다른 생존 기준이 있지. 너는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의 보살핌 속에서 생활했으니 바깥 세계의 잔혹함을 알지 못했을 거야. 이 오빠가 좀 더 독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오늘을 살 수 없었을 거야...”차설아도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그녀도 세상 물정에 어두운 온실 안의 화초가 아니다. 어찌 세상의 잔혹함을 보지 못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차성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오빠, 난 오빠의 과거에 관여할 생각 없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고 있으니 어떤 일들은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 같네...”"뭘 하려고? 말해
배경윤은 반짝이는 두 눈을 하고서 진찬영을 바라보았다.“찬영 오빠!”그러고는 진찬영 쪽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길 맞은편에 서 있는 진찬영은 누구보다도 더 멋있어 보였다. 길을 건너던 배경윤은 빠르게 지나가는 자전거와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조심해요!”진찬영은 잔뜩 긴장한 채 달려갔고 배경윤을 와락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빠르게 지나가는 자전거를 간신히 피했고 같이 바닥에 넘어졌다. 누가 보아도 애틋한 커플인 것 같았다. 시간이 갑자기 멈춘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배경윤은 진찬영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전류가 온몸을 뚫고 흐르는 듯한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배경윤과 진찬영은 한참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머쓱하게 웃었다.“찬영 오빠, 정말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까지 다칠 뻔했어요.”배경윤은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횡설수설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좋아하는 연예인 앞에서 배경윤은 수줍은 소녀가 된 것 같았다.“내가 길을 건넜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예요. 전부 제 탓이에요.”진찬영이 부드럽게 말했다. 하늘색 셔츠에 카키색 청바지를 입은 진찬영은 특유의 분위기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타고난 매력이었다.길을 걷고 있어도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여자도 진찬영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길 건너에서 걸어오는 배경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결국 사과해야 할 사람은 진찬영이었다.“곧 커플로 촬영할 사이인데 편하게 말 놓아도 돼요. 제가 오빠보다 어리잖아요.”진찬영이 진지하게 사과하자 배경윤은 마음이 불편해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아, 그러네요. 나의 여자 친구, 앞으로 잘 부탁해요.”진찬영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애틋하게 쳐다보았다. 진찬영의 행동 하나가 배경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흠! 얼른 회사로 가요. 장 감독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요.”말을 마친 배경윤은 뒤돌아
반대로 사도현은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 손으로 턱을 괴고는 배경윤을 쳐다보았다.“급한 일도 없잖아.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서 커피나 마시면 얼마나 좋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기도 해.”“사도현, 너는 정말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너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바빠.”배경윤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사도현이 끌어당기면 질질 끌려갔고 기세로 사도현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뻔뻔스러운 사도현을 어쩌지 못하기에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왜 할 일이 없겠어? 너를 만나는 게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일이야.”사도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배경윤을 바라보았다.“이 멍청한 놈!”배경윤은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면서 욕했다. 사도현이 능글맞은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사도현은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차가운 눈빛을 하고서 말했다.“듣기로는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결정했다더라? 진찬영이랑 커플로 연기하는 대본도 받았지?”“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아니야.”배경윤이 부정하자 사도현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배경윤은 놀라운 말을 내뱉었다.“나랑 찬영 오빠는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커플이야. 그런 대본 따위 필요 없어.”“배경윤!”사도현은 배경윤의 도발에 휘말린 듯한 느낌을 받아서 이름 석 자를 불렀다. 사도현의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왜? 내가 기뻐하니까 오히려 화가 나?”배경윤은 늘 싸움에서 기세에 눌렸지만 사도현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이번에 드디어 이기게 되었음을 직감했다. 배경윤은 신이 나서 환하게 웃었다.“내가 화가 나서 쓰러져야 네 속이 시원하지? 그런 거야?”사도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커플이라면 싸울 때도 있을 거야. 작은 다툼은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면 이건 상대의 마음에 칼을 꽂는 거나 마찬가지야.”“이게 커플 사이에 싸우는 거로 보여?”배경윤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피식 웃었다.“내가 네 여자 친구라는 거야, 아니면
“누가 네 전 여자 친구라는 거야? 나는 너랑 모르는 사이야. 친한 척하지 마!”배경윤은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사도현한테 아주 실망했기에 다정하게 인사할 수가 없었다.“경윤아, 아무리 그래도 같은 침대에서 자던 사이였는데 너무 차가운 거 아니야? 우리가 어떻게 모르는 사이야.”사도현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일부러 장난을 쳤다. 배경윤이 차갑게 구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서 놀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앞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고는 배경윤과 눈을 마주쳤다.“다 잊어버려서 그런 거라면 이해할게. 내가 몇 번이고 너한테 말해주면 되거든.”“뭐, 뭐 어떻게 말해줄 건데?”배경윤은 갑자기 얼굴을 들이미는 사도현을 피하려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나의 전 여자 친구는 내가 벽에 밀치고 키스하는 걸 제일 좋아했어. 기억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다시 알려줄 수도 있어.”사도현은 천천히 배경윤을 구석으로 몰아넣었고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배경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사도현, 너는 정말 나쁜 놈이야!”배경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민망해서 사도현의 뺨을 후려갈기려고 했다. 이때 사도현이 배경윤의 손목을 잡더니 품 안으로 끌어당기면서 속삭였다.“이제는 우리가 친한 사이였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겠어?”“나는...”배경윤은 거칠게 뛰는 심장 때문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서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인정할 수 없어. 우리는 친한 사이가 아니야.”“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마.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잖아.”사도현은 배경윤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손끝으로 배경윤의 코를 쓰다듬었다.배경윤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고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 사도현이 미웠지만 제일 미운 건 자신이었다. 사도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이 우스웠다.사도현이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배경윤은 반격하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했다.배경윤은 사랑의 싸움에서 사도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도현이 잡아당기면 끌려가고 밀
차설아는 해바라기 꽃을 바라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옛 친구가 보낸 선물이야.”“어느 친구가 보낸 거야? 너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친구라면 내가 아는 사람일 텐데 말이야.”배경윤은 해바라기 꽃의 내음을 맡으면서 싱글벙글 웃었다.“네가 아는 사람이야.”차설아를 고개를 끄덕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때 갑자기 불안해 난 선우시원이 그 꽃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다급히 물었다.“설마 나도 아는 사람이야?”“네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확신하지는 못하겠어.”차설아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선우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럼 적어도 성도윤은 아니라는 거네? 누가 꽃을 보냈는지 몰라도 참 좋은 친구인 것 같아. 성도윤만 아니면 돼.”“왜 성도윤만 아니면 된다는 건데?”차설아는 선우시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성도윤이 보낸 것이 아니라면 누가 보냈든 상관없어. 나의 라이벌은 성도윤 한 명뿐이잖아.”차설아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평소에는 총명해 보였던 선우시원이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해서 의외였다.만약 선우시원이 밤마다 성도윤이 찾아와서 차설아한테 디저트를 먹여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댈 것이다.“누가 보낸 선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설아가 좋아하는 꽃을 보냈으니 좋은 사람 같아.”배경윤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차설아를 관심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이 전생에 차설아의 엄마였다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내 얘기는 그만하고 네 얘기나 해줘. 어떻게 되었어?”차설아는 배경윤이 걱정되어 계속해서 물었다.“그 사람이랑 화해한 거야? 나 때문에 괜히 너도 그 사람이랑 싸운 건 아니지?”“내가 그놈이랑 싸울 게 뭐가 있다고 그래. 더 이상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야.”배경윤은 다른 사람의 말을 할 때면 신이 났다가 자신의 감정사를 얘기하려고 하면 잔뜩 긴장했다. 배경윤은 말을 버벅거렸다.“나는
일주일 뒤, 병원에서 정밀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차설아의 허리가 심하게 다친 건 맞지만 치료를 제때 받고 푹 쉬어서 생각보다 빨리 나았다. 그러기에 반신불수가 될 거라는 의심을 거두어도 되었다.그 소식을 알게 된 뭇사람들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복 받은 사람들은 내가 딱 알아본다고 했잖아. 우리 설아가 복 받아서 빨리 나은 거야.”배경윤은 차설아를 끌어안고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배경윤은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해서 살이 많이 빠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배경윤이 다친 줄 알 것이다.“앞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는 운동은 절대 하면 안 돼! 암벽 등반, 등산은 절대 안 되고 계단을 오를 때는 꼭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해.”차성철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진지하게 말했다. 한 번 큰 사고를 당했기에 차설아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더 신경 쓰고 싶었다.“성철 형,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옆에 붙어있으면서 스파크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할게요.”선우시원은 차설아를 힐끗 쳐다보면서 사뭇 엄숙하게 말했다.“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한 달 정도 입원하면 거의 다 나을 거래. 병실에만 있어서 답답하겠지만 참아. 오빠가 병원에 퇴원 신청을 하면 예정일보다 더 빨리 퇴원해서 집에 데려갈 거야. 간병인을 미리 알아보았으니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차성철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차설아를 바라보면서 울상을 지었다.“그러지 않아도 돼.”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나는 병원에 있는 게 좋아. VIP 병실이라 편하게 지낼 수 있잖아. 미리 퇴원 신청을 하지 않아도 돼. 귀찮고 복잡한 건 딱 질색이야.”“설아야, 너를 위해서라면 귀찮은 일도 다 해줄 수 있어. 너는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퇴원 예정일을 앞당기는 건 복잡한 절차도 아니야.”차성철은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오빠가 다 해놓을 테니 그날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자. 설아야, 오빠 믿지?”“아...”차설아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차설아가
사실 차성철은 최근 들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차설아의 병실에 긴급 신고 버튼을 설치해 주었다. 버튼만 누르면 병원의 긴급 벨이 울리면서 차성철이 배치한 보디가드가 병실로 달려올 것이다.차설아는 성도윤과 같이 있는 것이 좋아서 차성철한테 아무 일도 없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성도윤을 향한 마음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선을 지키지 못했다. 성도윤은 차설아를 떠보다가 결국 그 선을 넘어왔다.“나는 그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게 행복할 뿐이야. 그래서 당신의 입도 닦아준 건데 싫으면 얘기해. 내일 밤부터 다시 오지 않을게. 케이크를 사던 가게의 파티시에를 스카우트해서 매일 케이크를 만들게 했지만 이제는 필요 없겠지...”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을 이었다.“내일 메뉴는 헤이즐넛 케이크라고 했어. 아쉽지만...”“잠시만요!”차설아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차설아가 제일 기대하던 메뉴가 바로 헤이즐넛 케이크였기에 성도윤을 내쫓을 수 없었다.“파티시에도 일하느라 고생했는데 어떻게 함부로 자르겠어요. 내일도 와주면 고맙겠지만 앞으로는 뭐가 묻어도 도와주지 말아요. 손은 멀쩡하니까 내가 직접 닦을게요.”“그래. 당신이 이토록 애원하니 한 번 고려해 볼게.”성도윤은 피식 웃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눈빛은 여우처럼 교활하기 그지없었다.“휴...”차설아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후회하기 시작했다. 성도윤은 예전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차설아를 부드럽게 다가가면 마음을 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맛있는 케이크로 경계심을 무너뜨렸다.성도윤의 존재가 습관 되어갈 때쯤 차설아는 이미 함정에 빠진 것이다.성도윤은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오늘 밤의 성과는 그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웠다.“이제는 병실로 돌아갈 테니 푹 쉬어. 내일 밤에도 올 테니까 기다려. 잘자.”차설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했다. 머릿속은 두 사람이 뜨겁게 키스를 퍼붓던 화면으로 가득 차서 얼굴이 화끈
차설아는 병실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도 못했다. 그러기에 성도윤이 늦은 밤에 가져다주는 야식이 유일한 낙이었다. 차설아는 누워서 입을 벌리고 성도윤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애틋한 커플 같아서 오글거렸지만 케이크를 먹기 위해 꾹 참았다.“역시 다크 초콜릿 케이크는 정말 맛있어요. 어떻게 이런 맛을...”크림과 초콜릿이 조화를 이루어서 입안에 가득 퍼졌다. 차설아는 케이크를 먹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내일도 가져올 테니까 천천히 먹어. 체하면 어쩌려고 그래.”성도윤은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하면서 허겁지겁 먹는 차설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차설아는 성도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먹다가 의도치 않게 성도윤의 손가락을 물게 되었다.긴 손가락이 차설아의 입에 들어가자 성도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했고 닭살이 돋았다.“어머. 정말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급하게 먹다보니...”차설아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면서 성도윤한테 사과했다.“더 먹을래?”성도윤은 뜨거운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아, 아니요!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차설아는 민망해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성도윤을 쳐다볼 수가 없었고 더 이상 케이크를 먹을 분위기도 아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었다면 당장 숨을 기세였다.“안 먹으면 입부터 닦아. 다 묻히고 먹었잖아.”성도윤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차설아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차설아의 입가에 크림이 묻어있었는데 그 모습은 음식을 몰래 훔쳐먹은 고양이 같아서 더 귀여웠다.“그럼 티슈 좀 주세요. 입에 묻은 줄도 몰랐어요.”차설아는 혀로 입가를 날름거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성도윤은 내가 며칠 굶은 줄 알겠어. 아, 손가락까지 물어버릴 생각은 없었는데 왜 그랬지?’“그럴 필요 없어.”성도윤이 덤덤하게 말했다.“뭐가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티슈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뜻이야.”“왜요? 다 썼어요?”“아니. 내가 닦아
박서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뉴스에서 차설아 씨가 허리를 다쳤다고 했어요...”성진의 심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성진은 심호흡하고는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그 병원으로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정확히 어쩌다가 다쳤고 상황이 어떤지 알아내서 보고해.”“하지만 제가 성진 도련님의 곁을 떠나면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걱정이 되어서 그래요.”“나는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설아한테 가봐. 설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거야.”성진은 잔뜩 긴장한 채 박서영을 재촉했다.“알겠어요. 준비하고 바로 갈게요.”박서영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성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기 전에 뒷마당에 있는 해바라기 꽃을 가져가. 해바라기 꽃을 보면 설아도 좋아할 거야.”“네. 그렇게 할게요.”박서영은 성진을 바라보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사람은 감정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동물이었다. 이득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여도 눈 깜빡이지 않던 성진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순애보가 되어있었다.한편, 병원.성도윤은 늦은 시간마다 차설아의 병실에 들어가서 앉아 있었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얘기를 나누면서 웃기도 했다.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성도윤의 존재가 습관이 된 차설아는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가끔 성도윤을 만나기 위해 차성철 혹은 병문안을 온 사람들을 일부러 내보내기도 했다.성도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던 차설아는 어쩐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성도윤이 찾아오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내가 허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당신을 제일 먼저 내쫓았을 거예요.”어느 조용한 밤, 차설아는 성도윤이 몰래 가져온 다크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러자 성도윤은 차갑게 대꾸했다.“말로만 그러지 말고 직접 날 내쫓아 봐. 얼른 나아서 나를 내쫓기를 바랄게.”“딱
“그럴 필요 없어!”성진이 부르짖는 소리가 어둠 속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귀신 같은 몰골로 도저히 차설아를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성진은 긴 한숨을 내어 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내가 차설아를 두고 떠난 건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서였어. 나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이야.”성진은 차설아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차설아한테 평생 책임지라고 말하면 차설아는 주저 없이 승낙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반년 전에 어렵게 상봉한 차성철과 귀여운 아이들, 겨우 이어가고 있던 사업을 내팽개치고 성진과 함께 멀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차설아는 반년 동안 성진을 아기처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힘들다고 투정 부린 적이 없었다. 성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두 눈과 피를 기부함으로써 사랑하는 여자와 반년 동안 같이 살았기에 이번 생에 여한이 없었다. 성진은 평생 그 나날들을 기억할 것이고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하지만 박서영은 성진을 이해하지 못했다. 총명하고 이득을 위해 기회를 쟁취하던 성진이 도대체 왜 소극적으로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성진 도련님, 차설아 씨를 잊지 못했으면서 왜 만나러 가지 않는 거예요? 성진 도련님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때 갑자기 나타나면 감동해서 성진 도련님과 결혼하려고 할 수도 있어요.”박서영은 굳은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성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설아가 그러자고 해도 내가 거절할 거야.”성진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자존심이 있는 남자라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할 거야.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감히...”성진은 고상한 품격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험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성진은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지만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성진 도련님, 다른 사람들이 도련님을 나쁘고 간사한 사람이라고 욕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