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카메라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서은아에게 집중되었다."네? 저한테 달렸다고요?”서은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서가네는 비록 이번 정상회의의 최대 후원자였지만 솔직히 전자업계와 잘 어울리지 않았고 서은아가 정상회의에서의 존재감도 돈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 그녀도 큰 성취감은 없었다.정상회의의 순조로운 개최 여부가 본인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네, 서은아 씨. KCL 신임 대표님이 은아 씨를 콕 집어 말씀하셨는데요...”"제가 뭘 하면 될까요, 회장님의 말씀이라면 제가 받아들여야죠. 이 또한 제 영광 아니겠어요?”서은아는 내로라하는 KCL 신임 대표가 직접 자신을 호명하자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앉을 뻔했다.어찌 됐든 그녀가 KCL의 신임 회장과 친하게 지낸다면 그녀는 전자 기술 업계에서 큰 관심을 받게 될 것이고, 그 거물들은 KCL과 협력하기 위해 반드시 그녀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었다.그렇게 되면 성도윤의 마음속에서의 그녀의 지위는 더욱 높아지게 되고 성도윤은 더욱 그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어, 그니까 그게...”단혁은 안경을 밀면서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KCL 신임 회장이 해안을 좋아하시는데 이곳에서 양녀를 만들고 싶대요. 그래서 은아 씨가 전 세계로 방송되는 카메라 앵글을 보며 ‘아버지, 이 딸이 잘못했어요. 노여움 푸시고 회의에 참석해주세요’라고 하시라고...”이 말이 나오자 현장은 발칵 뒤집혔다.서은아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회장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너무 유머 감각이 있으신걸요...”회의실의 일곱 멤버 중, 여섯 명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히가시노무라 카즈요시: "하하하, 이 새로운 회장 마음에 들어, 너무 개성이 있는걸. 반드시 그와 협력해야겠어!”성도윤만이 무관심한 듯하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고 그는 짙은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왜 이런 조작이 좀 익숙하다고 생각되는 걸까? 설마...서은아는 한바탕 생각을 하더니 인츰 표정
"성 대표님, 공교롭게도 우리가 다시 만났군요.”차설아는 성도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는데 입꼬리는 올라갔고 표정에는 그녀의 한껏 흥분된 기분이 다 드러나 있었다."그래, 또 만났네. 계획한 지 오래됐겠네, 대단한걸.”역시 그녀였어!이 순간, 성도윤은 놀라움이 아니라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기쁨의 표정이 서렸다.역시 차설아야, 이렇게 큰 판을 짜다니 그도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여자의 대응 방식 또한 그를 더욱 안심시켰다.적어도 'KCL 회장'이라는 신분이 있으니 그녀가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는 염려가 없어졌고 적어도 앞으로 그녀부터 3대까지는 돈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단혁,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이 여자가 정말 KCL의 신임 회장이야?”"그러니까. KCL 그룹이 우리를 가지고 노는 거야?”라운드 테이블의 다른 멤버들은 앞다투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그들은 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여자가 업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분명 무슨 오해가 있었거나 KCL 그룹이 일부러 그들을 조롱하는 것일 거다.밖에서 서은아는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당장 들여보내 줘, 당장! 그렇지 않으면 서가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녀의 현재의 난폭함과 방금의 조신함은 강렬한 대조를 이루었다.다만, 그녀가 지금 얼마나 날뛰던 이미 서씨 집안 전체가 체면을 구겼고 전 세계에 망신을 당했다는 거다!단혁은 사람들에게 급급히 해명에 나섰다."여러분, 흥분하지 마세요, 차설아 씨는 확실히 KCL의 신임 회장이자 G6 칩의 최종 개발자입니다. 기술 지분 참여 방식으로 KCL 그룹의 최대 주주가 되었고 한 사람의 힘으로 전체 업계의 프로세스를 거의 10년이나 앞당겼습니다. 우리 업계의 영웅과도 같은 존재이니 여러분 모두 존중하고 지지해 주세요!”오직 단혁의 설명만으로는 이 늙은이들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이 여자는 분명 부적절한 방법으로 KCL 회장 자리에 앉은 걸 거야. KCL
모두들 일제히 성도윤을 쳐다보았는데 순간 조용해졌고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차설아도 성도윤을 주시했는데 그녀의 예쁜 눈망울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그의 '동의'는 그녀의 예상에 있었기도 예상을 벗어나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다소 의외였다."우리는 경력뿐만 아니라 능력도 봅니다. 여러분은 모두 업계 최고의 인물입니다. 차설아 씨가 도대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여러분은 4년 전에 이미 검증받지 않으셨습니까...”성도윤은 냉랭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다소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4년 전 시험을 통과해 하이 테크협회 회장에 당선된 것만으로도 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고 지금은 G6칩을 개발했으니 이번 회의의 8대 멤버 중 한 명으로 선출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저도 차설아 씨가 존경스럽다고 생각되는데요.”히가시노무라는 차설아한테 손을 뻗으며 90도로 절을 했는데 얼굴에는 작위적인 미소를 띠고 있었다."차설아 씨, 어서 오세요. 우리 회의는 진작에 좀 다른 풍채를 더했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리가도!”단혁은 두 사람의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다른 분들의 의견은요?”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거물이 모두 환영의 뜻을 표하자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더 이상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차설아를 받들기 시작했다."우리는 당연히 환영이죠. 업계는 이런 인재가 필요합니다!”"차설아 대표는 정말 젊고 재능이 뛰어납니다. 여자라고 전혀 뒤지지 않죠. 미래의 하이 테크 분야는 당신들이 선도할 것이라 믿습니다. 앞날이 창창합니다!”차설아도 이들의 말에 허위적으로 응대를 했다."천만에요. 저는 아직 어리고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요. 이 업계에 여러분들이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성도윤은 옆에서 듣다가 참지 못하고 입술을 오므리고 피식 웃어버렸다.여자가 갑자기 진지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정말 웃기는군...차설아는 능구렁이들과 얘기를 하는 틈
"그렇다면 G6 칩이 곧 시장에 출시되어 사용될 것인데 KCL 그룹은 도대체 누구와 협력할 것인지 알려줄 수 있습니까? 이 결정이 미래 10년에서 누가 이 업계의 선두가 될 것인가를 좌우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단혁은 또 모두가 더욱 궁금해하는 질문을 했다."차 대표님, 고민하지 마시고 저희 히가시노 그룹과 협력하시죠. 저희는 이미 인공지능 분야에서 거의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매년 이윤 또한 셀 수 없이 많습니다. KCL 그룹이 저희와 협력할 의향이 있다면 제가 회사 20%의 지분을 나눠 드리겠습니다.”흥분한 히가시노무라는 적극적으로 히가시노 그룹을 홍보했다.그룹의 지분 20%를 내놓는다는 건 듣기에 매우 대범한 결정 같지만 만약 이 계약이 성사되기만 한다면 지분 20%가 가져오는 이윤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차 대표님, 저희 이스트소프트 그룹과 협력하시는 건 어때요? 저희 이스트소프트 그룹은 지금 수익률이 아주 좋아요. 저희와 협력하신다면 주식의 50%를 드리겠습니다...”다른 몇몇 거물들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더 큰 성의를 보였다.“…”차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성도윤의 답을 기다리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사람들도 눈치를 챘는데 두 사람의 옛 부부라는 친분이 있으니 KCL은 여전히 성대 그룹과 협력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성대 그룹의 업계 1위의 지위는 누구도 흔들 수 없었다.이때 서은아가 기세등등하게 뛰어 들어왔고 경비원이 그 뒤를 쫓았다."서은아 씨, 죄송하지만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우리 서가 후원하는 곳이니 내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까 닥쳐!”서은아는 몇몇 경비원들을 돌아보며 으름장을 놓았다."누가 또 입을 놀리면 각오해!”경비원들은 하나같이 난감한 표정으로 더 이상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무사히 회의의 가장 중심 자리에 온 서은아는 노기등등하게 차설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감히 나를 이렇게 모욕하다니, 죽여버릴 거야!”말을 마치고 그녀는 미친개처럼 차설아를 향해 머리를 처
”차설아,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서은아는 얼굴을 붉히며 한 마리의 사나운 짐승 개처럼 온몸의 힘을 다해 차설아를 향해 뛰어들었다.“네가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해? 내 손에는 너의 모든 걸 망가뜨릴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하는 데 나 건드리지 마. 아니면...””그만해!”성도윤이 호통을 쳐 서은아가 계속 말을 해내러 가는 것을 막았다. 그는 긴 팔로 서은아의 몸을 잡고는 냉랭한 눈빛으로 경고를 날렸다.“이미 많이 쪽팔려. 그러니까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아니면 서가 전체를 팔아도 모자라니까.”남자의 말이 떨어지자 서은아는 순간 온순해졌고 한마디도 더 내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하지만 차설아는 이미 두 사람 사이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고 일부러 서은아의 화를 돋우며 말했다.“날 망가뜨릴 물건이란 게 뭐야? 우리 딸, 아빠한테 얘기해봐. 화 안 낼게. 아니면 그냥 허세 부리는 거야?””...”서은아는 성도윤의 품에 숨어서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는데 눈빛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듯했다.“당신도 그만 해요. 원래 이런 성격이어서 그래요, 내가 대신 사과하죠.”성도윤은 가볍게 차설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는데 이렇게 예절을 차리는 모습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멀게 해버린 것 같았다.차설아는 순간 김빠진 공처럼 풀이 죽었고 가슴이 답답해 났다.이런 태도는 남자가 직접 그녀와 화를 내고 다투는 것보다 더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두 사람 무슨 사인데 그쪽이 대신 사과를 하는 거죠?”차설아는 냉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서은아는 순간 기운이 났는지 성도윤을 툭툭 치며 의기양양해서 말했다.“도윤아, 차 대표님이 물으셨으니까 대답해야지. 마침 여러분께 우리의 사이도 밝히고.”성도윤은 서은아의 어깨를 감쌌는데 마치 일종의 무언의 방식으로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 같았다.이 장면은 차설아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는데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나랑 은아는...””잠깐!”성도윤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차설아가 그의 말을 끊었다.그녀
”쓰읍.”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누구 하나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모두들 성도윤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왔다.특히 오가미 히가시노무라 이치는 무의식적으로 작은 거울을 꺼내 들고는 자신의 외모를 다잡으며 서은아와 차설아를 바라보았다.“지금 성형하러 가도 괜찮을까요?”하늘 아래 그 어떤 남자가 돈 많은 여자의 눈에 들어 놀고먹는 상상을 해보지 않았던가? 심지어 차설아와 서은아와 같은 절세미인 부자라니...성도윤 정말 너무 행운다운 거 아닌가? 이미 능력에 외모에 다 갖추었는데 외모만으로 두 미녀가 집안 사업을 포기하고 오직 그를 위해 싸우다니... 이런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모두들 성도윤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냉담하게 말했다.“내 선택은 항상 같았어, 나랑 은아는 어릴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앞에서 밝히려고요. 저와 은아는 연인 사이입니다.”서은아의 마음속의 큰 돌이 끝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들었지? 이게 바로 도윤이의 선택이야. 네가 나보다 돈이 더 많다고 하더라도 도윤이는 나를 선택할 거라고. 이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야.”“진정한 사랑? 하하하, 웃기고 있네.”차설아는 성도윤의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그녀가 성도윤에 대한 요해로 볼 때 이렇게 딱딱하고 진정성 없는 선고는 이미 전에 짜놓은 연기가 아니라면 손에 장을 지질 거다.다만 왜 이런 일을 꾸몄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성도윤, 납치당했다면 눈 두 번 깜빡여, 그런 어정쩡한 연기를 내가 믿을 것 같아?”차설아는 심지어 성도윤의 약점이 서은아 손에 잡혔다는 상상까지 했다.“혹시 벌거벗은 사진이 서은아 손에 있는 거야? 그거로 협박해? 몸도 좋은 사람이 뭐 어때, 인터넷에 올리라고 해. 이럴 필요 없잖아.”성도윤은 별다른 말 없이 서은아의 손을 잡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회의가 끝났으니 저와 여자친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리고 두 사람은 차설아를 넘어 회의실을 나섰다.차설아는
성진은 두 팔을 몸 앞에 감고는 나른하게 회의실 문 앞에 기대 차설아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회장님, 잘 숨겼네? 또 한 번 놀랬잖아.”그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차설아를 보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본과랑 대학원에서도 계속 이 부분을 전공했어. 다만 네가 나에 대한 요해가 부족한 것뿐이야.”차설아는 한 손에는 문건을,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정리했는데 그 모습이 은근 지적이고 멋있었다.그녀는 전형적인 미모와 지성을 다 갖춘 여인이었다. 다만 평소에 평범한 여인의 탈을 쓰고 살뿐, 이 탈을 벗는다면 항상 세인들을 놀래켰다.“그래, 내가 아직 잘 모르지. 성도윤도 마찬가지야, 남편이라면서 하나도 모르잖아. 쌤통이야 아주.”성진은 방금 회의실 밖에서 라이브를 보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차설아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성도윤이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속이 후련했다. 마치 본인도 그 싸움에 참여한 듯 말이다.“그만해, 내가... 더 쪽팔렸는걸...”차설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이렇게 큰 실패를 겪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전, 성도윤의 배신을 당했을 때보다 더 굴욕적이다.4년 전의 그녀는 내세울 것 없는 아가씨였으니 그가 자신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손에 쥐고 있는 게 얼마인데 심지어 그를 구해줄 능력도 있는데 그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지 않는다니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성진, 솔직하게 말해. 내가 그렇게 별로야? 왜 계속 내 손을 놓는 거지?”그녀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녀의 목은 메었고 단 한 순간도 지금처럼 자신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성진의 표정은 잠시 흔들렸는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별로인 게 아니라 성도윤이 보는 눈이 없는 거야. 부정하지 마.”“그럴 리가... 아무리 보는 눈이 없다고 해도 돈을 마다 할 리 없잖아?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KCL 그룹을 선택할 건데... 아니야?”“그럼 눈도 없고 멍청하
성진은 보기 드물게 정상적이고 다정한 어투로 부부에게 말했다."아, 이분은...”부부는 차설아와 성진을 번갈아 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진아, 네놈이 드디어 마음을 접었구나, 너무 기쁘네.”"아가씨, 정말 아름다워요, 이러니 우리 진이를 사로잡을 수 있었군요, 아가씨는 우리 진이가 데리고 온 유일한 사람이에요. 이곳은 진이의 아지트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인데 얘는 항상 고기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했죠. 아가씨도 우리 집 고기를 먹고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네요.”성진은 지금 뜻밖에도 수줍은 표정을 드러내며 부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아이고, 그만 물어보시고 얼른 가서 식자재를 준비하셔요!”두 사람은 창가 쪽 자리에 앉았는데 차설아는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으로 양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슬퍼하지 마. 오늘 이렇게 멋지게 이겼으니 우리 먼저 한잔하자고요.”성진은 맥주 두 병을 '쾅쾅' 따고 자신과 차설아의 잔을 가득 채운 뒤 여자의 잔을 부딪쳤다."나는 슬프지 않아, 그냥 이해가 안 될 뿐이야...”차설아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왜 성도윤이 갑자기 변했는지 이해가 안 가, 성대 그룹의 미래를 걸고 서은아를 택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성진은 담담하게 반박했다."이해가 안 갈 게 뭐가 있어. 찐 사랑이라니까.”"진정한 사랑이라면 진작에 함께 있어야 하지. 여기까지 끌고 오지도 않았을 텐데, 오히려 성도윤과 서은아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고 그 합의를 내가 아직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설사 그렇다고 해도 뭐가 달라져요?”"아무리 고충이 많았어도 당신을 해칠 선택을 한 것만으로 용서할 수 없어요.”"만약 그가 낸 '상처'가 결국엔 나에 대한 '보호'가 목적이라면요?”“...”성진은 침묵을 택했다."봐, 내 생각이 맞았어. 날 보호하기 위해 날 해치는 거야!”"너 분명히 무엇을 알고 있을 거야. 나에게 알려줄 수 있어?”"난 아무것도 모르니 묻지 마.”성진은 시무룩해져서 고기 굽기에 몰두
배경윤은 반짝이는 두 눈을 하고서 진찬영을 바라보았다.“찬영 오빠!”그러고는 진찬영 쪽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길 맞은편에 서 있는 진찬영은 누구보다도 더 멋있어 보였다. 길을 건너던 배경윤은 빠르게 지나가는 자전거와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조심해요!”진찬영은 잔뜩 긴장한 채 달려갔고 배경윤을 와락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빠르게 지나가는 자전거를 간신히 피했고 같이 바닥에 넘어졌다. 누가 보아도 애틋한 커플인 것 같았다. 시간이 갑자기 멈춘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배경윤은 진찬영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전류가 온몸을 뚫고 흐르는 듯한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배경윤과 진찬영은 한참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머쓱하게 웃었다.“찬영 오빠, 정말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까지 다칠 뻔했어요.”배경윤은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횡설수설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좋아하는 연예인 앞에서 배경윤은 수줍은 소녀가 된 것 같았다.“내가 길을 건넜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예요. 전부 제 탓이에요.”진찬영이 부드럽게 말했다. 하늘색 셔츠에 카키색 청바지를 입은 진찬영은 특유의 분위기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타고난 매력이었다.길을 걷고 있어도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여자도 진찬영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길 건너에서 걸어오는 배경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결국 사과해야 할 사람은 진찬영이었다.“곧 커플로 촬영할 사이인데 편하게 말 놓아도 돼요. 제가 오빠보다 어리잖아요.”진찬영이 진지하게 사과하자 배경윤은 마음이 불편해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아, 그러네요. 나의 여자 친구, 앞으로 잘 부탁해요.”진찬영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애틋하게 쳐다보았다. 진찬영의 행동 하나가 배경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흠! 얼른 회사로 가요. 장 감독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요.”말을 마친 배경윤은 뒤돌아
반대로 사도현은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 손으로 턱을 괴고는 배경윤을 쳐다보았다.“급한 일도 없잖아.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서 커피나 마시면 얼마나 좋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기도 해.”“사도현, 너는 정말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너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바빠.”배경윤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사도현이 끌어당기면 질질 끌려갔고 기세로 사도현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뻔뻔스러운 사도현을 어쩌지 못하기에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왜 할 일이 없겠어? 너를 만나는 게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일이야.”사도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배경윤을 바라보았다.“이 멍청한 놈!”배경윤은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면서 욕했다. 사도현이 능글맞은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사도현은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차가운 눈빛을 하고서 말했다.“듣기로는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결정했다더라? 진찬영이랑 커플로 연기하는 대본도 받았지?”“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아니야.”배경윤이 부정하자 사도현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배경윤은 놀라운 말을 내뱉었다.“나랑 찬영 오빠는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커플이야. 그런 대본 따위 필요 없어.”“배경윤!”사도현은 배경윤의 도발에 휘말린 듯한 느낌을 받아서 이름 석 자를 불렀다. 사도현의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왜? 내가 기뻐하니까 오히려 화가 나?”배경윤은 늘 싸움에서 기세에 눌렸지만 사도현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이번에 드디어 이기게 되었음을 직감했다. 배경윤은 신이 나서 환하게 웃었다.“내가 화가 나서 쓰러져야 네 속이 시원하지? 그런 거야?”사도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커플이라면 싸울 때도 있을 거야. 작은 다툼은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면 이건 상대의 마음에 칼을 꽂는 거나 마찬가지야.”“이게 커플 사이에 싸우는 거로 보여?”배경윤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피식 웃었다.“내가 네 여자 친구라는 거야, 아니면
“누가 네 전 여자 친구라는 거야? 나는 너랑 모르는 사이야. 친한 척하지 마!”배경윤은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사도현한테 아주 실망했기에 다정하게 인사할 수가 없었다.“경윤아, 아무리 그래도 같은 침대에서 자던 사이였는데 너무 차가운 거 아니야? 우리가 어떻게 모르는 사이야.”사도현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일부러 장난을 쳤다. 배경윤이 차갑게 구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서 놀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앞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고는 배경윤과 눈을 마주쳤다.“다 잊어버려서 그런 거라면 이해할게. 내가 몇 번이고 너한테 말해주면 되거든.”“뭐, 뭐 어떻게 말해줄 건데?”배경윤은 갑자기 얼굴을 들이미는 사도현을 피하려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나의 전 여자 친구는 내가 벽에 밀치고 키스하는 걸 제일 좋아했어. 기억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다시 알려줄 수도 있어.”사도현은 천천히 배경윤을 구석으로 몰아넣었고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배경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사도현, 너는 정말 나쁜 놈이야!”배경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민망해서 사도현의 뺨을 후려갈기려고 했다. 이때 사도현이 배경윤의 손목을 잡더니 품 안으로 끌어당기면서 속삭였다.“이제는 우리가 친한 사이였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겠어?”“나는...”배경윤은 거칠게 뛰는 심장 때문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서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인정할 수 없어. 우리는 친한 사이가 아니야.”“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마.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잖아.”사도현은 배경윤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손끝으로 배경윤의 코를 쓰다듬었다.배경윤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고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 사도현이 미웠지만 제일 미운 건 자신이었다. 사도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이 우스웠다.사도현이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배경윤은 반격하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했다.배경윤은 사랑의 싸움에서 사도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도현이 잡아당기면 끌려가고 밀
차설아는 해바라기 꽃을 바라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옛 친구가 보낸 선물이야.”“어느 친구가 보낸 거야? 너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친구라면 내가 아는 사람일 텐데 말이야.”배경윤은 해바라기 꽃의 내음을 맡으면서 싱글벙글 웃었다.“네가 아는 사람이야.”차설아를 고개를 끄덕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때 갑자기 불안해 난 선우시원이 그 꽃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다급히 물었다.“설마 나도 아는 사람이야?”“네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확신하지는 못하겠어.”차설아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선우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럼 적어도 성도윤은 아니라는 거네? 누가 꽃을 보냈는지 몰라도 참 좋은 친구인 것 같아. 성도윤만 아니면 돼.”“왜 성도윤만 아니면 된다는 건데?”차설아는 선우시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성도윤이 보낸 것이 아니라면 누가 보냈든 상관없어. 나의 라이벌은 성도윤 한 명뿐이잖아.”차설아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평소에는 총명해 보였던 선우시원이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해서 의외였다.만약 선우시원이 밤마다 성도윤이 찾아와서 차설아한테 디저트를 먹여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댈 것이다.“누가 보낸 선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설아가 좋아하는 꽃을 보냈으니 좋은 사람 같아.”배경윤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차설아를 관심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이 전생에 차설아의 엄마였다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내 얘기는 그만하고 네 얘기나 해줘. 어떻게 되었어?”차설아는 배경윤이 걱정되어 계속해서 물었다.“그 사람이랑 화해한 거야? 나 때문에 괜히 너도 그 사람이랑 싸운 건 아니지?”“내가 그놈이랑 싸울 게 뭐가 있다고 그래. 더 이상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야.”배경윤은 다른 사람의 말을 할 때면 신이 났다가 자신의 감정사를 얘기하려고 하면 잔뜩 긴장했다. 배경윤은 말을 버벅거렸다.“나는
일주일 뒤, 병원에서 정밀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차설아의 허리가 심하게 다친 건 맞지만 치료를 제때 받고 푹 쉬어서 생각보다 빨리 나았다. 그러기에 반신불수가 될 거라는 의심을 거두어도 되었다.그 소식을 알게 된 뭇사람들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복 받은 사람들은 내가 딱 알아본다고 했잖아. 우리 설아가 복 받아서 빨리 나은 거야.”배경윤은 차설아를 끌어안고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배경윤은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해서 살이 많이 빠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배경윤이 다친 줄 알 것이다.“앞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는 운동은 절대 하면 안 돼! 암벽 등반, 등산은 절대 안 되고 계단을 오를 때는 꼭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해.”차성철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진지하게 말했다. 한 번 큰 사고를 당했기에 차설아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더 신경 쓰고 싶었다.“성철 형,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옆에 붙어있으면서 스파크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할게요.”선우시원은 차설아를 힐끗 쳐다보면서 사뭇 엄숙하게 말했다.“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한 달 정도 입원하면 거의 다 나을 거래. 병실에만 있어서 답답하겠지만 참아. 오빠가 병원에 퇴원 신청을 하면 예정일보다 더 빨리 퇴원해서 집에 데려갈 거야. 간병인을 미리 알아보았으니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차성철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차설아를 바라보면서 울상을 지었다.“그러지 않아도 돼.”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나는 병원에 있는 게 좋아. VIP 병실이라 편하게 지낼 수 있잖아. 미리 퇴원 신청을 하지 않아도 돼. 귀찮고 복잡한 건 딱 질색이야.”“설아야, 너를 위해서라면 귀찮은 일도 다 해줄 수 있어. 너는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퇴원 예정일을 앞당기는 건 복잡한 절차도 아니야.”차성철은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오빠가 다 해놓을 테니 그날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자. 설아야, 오빠 믿지?”“아...”차설아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차설아가
사실 차성철은 최근 들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차설아의 병실에 긴급 신고 버튼을 설치해 주었다. 버튼만 누르면 병원의 긴급 벨이 울리면서 차성철이 배치한 보디가드가 병실로 달려올 것이다.차설아는 성도윤과 같이 있는 것이 좋아서 차성철한테 아무 일도 없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성도윤을 향한 마음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선을 지키지 못했다. 성도윤은 차설아를 떠보다가 결국 그 선을 넘어왔다.“나는 그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게 행복할 뿐이야. 그래서 당신의 입도 닦아준 건데 싫으면 얘기해. 내일 밤부터 다시 오지 않을게. 케이크를 사던 가게의 파티시에를 스카우트해서 매일 케이크를 만들게 했지만 이제는 필요 없겠지...”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을 이었다.“내일 메뉴는 헤이즐넛 케이크라고 했어. 아쉽지만...”“잠시만요!”차설아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차설아가 제일 기대하던 메뉴가 바로 헤이즐넛 케이크였기에 성도윤을 내쫓을 수 없었다.“파티시에도 일하느라 고생했는데 어떻게 함부로 자르겠어요. 내일도 와주면 고맙겠지만 앞으로는 뭐가 묻어도 도와주지 말아요. 손은 멀쩡하니까 내가 직접 닦을게요.”“그래. 당신이 이토록 애원하니 한 번 고려해 볼게.”성도윤은 피식 웃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눈빛은 여우처럼 교활하기 그지없었다.“휴...”차설아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후회하기 시작했다. 성도윤은 예전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차설아를 부드럽게 다가가면 마음을 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맛있는 케이크로 경계심을 무너뜨렸다.성도윤의 존재가 습관 되어갈 때쯤 차설아는 이미 함정에 빠진 것이다.성도윤은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오늘 밤의 성과는 그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웠다.“이제는 병실로 돌아갈 테니 푹 쉬어. 내일 밤에도 올 테니까 기다려. 잘자.”차설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했다. 머릿속은 두 사람이 뜨겁게 키스를 퍼붓던 화면으로 가득 차서 얼굴이 화끈
차설아는 병실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도 못했다. 그러기에 성도윤이 늦은 밤에 가져다주는 야식이 유일한 낙이었다. 차설아는 누워서 입을 벌리고 성도윤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애틋한 커플 같아서 오글거렸지만 케이크를 먹기 위해 꾹 참았다.“역시 다크 초콜릿 케이크는 정말 맛있어요. 어떻게 이런 맛을...”크림과 초콜릿이 조화를 이루어서 입안에 가득 퍼졌다. 차설아는 케이크를 먹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내일도 가져올 테니까 천천히 먹어. 체하면 어쩌려고 그래.”성도윤은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하면서 허겁지겁 먹는 차설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차설아는 성도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먹다가 의도치 않게 성도윤의 손가락을 물게 되었다.긴 손가락이 차설아의 입에 들어가자 성도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했고 닭살이 돋았다.“어머. 정말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급하게 먹다보니...”차설아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면서 성도윤한테 사과했다.“더 먹을래?”성도윤은 뜨거운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아, 아니요!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차설아는 민망해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성도윤을 쳐다볼 수가 없었고 더 이상 케이크를 먹을 분위기도 아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었다면 당장 숨을 기세였다.“안 먹으면 입부터 닦아. 다 묻히고 먹었잖아.”성도윤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차설아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차설아의 입가에 크림이 묻어있었는데 그 모습은 음식을 몰래 훔쳐먹은 고양이 같아서 더 귀여웠다.“그럼 티슈 좀 주세요. 입에 묻은 줄도 몰랐어요.”차설아는 혀로 입가를 날름거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성도윤은 내가 며칠 굶은 줄 알겠어. 아, 손가락까지 물어버릴 생각은 없었는데 왜 그랬지?’“그럴 필요 없어.”성도윤이 덤덤하게 말했다.“뭐가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티슈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뜻이야.”“왜요? 다 썼어요?”“아니. 내가 닦아
박서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뉴스에서 차설아 씨가 허리를 다쳤다고 했어요...”성진의 심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성진은 심호흡하고는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그 병원으로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정확히 어쩌다가 다쳤고 상황이 어떤지 알아내서 보고해.”“하지만 제가 성진 도련님의 곁을 떠나면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걱정이 되어서 그래요.”“나는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설아한테 가봐. 설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거야.”성진은 잔뜩 긴장한 채 박서영을 재촉했다.“알겠어요. 준비하고 바로 갈게요.”박서영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성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기 전에 뒷마당에 있는 해바라기 꽃을 가져가. 해바라기 꽃을 보면 설아도 좋아할 거야.”“네. 그렇게 할게요.”박서영은 성진을 바라보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사람은 감정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동물이었다. 이득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여도 눈 깜빡이지 않던 성진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순애보가 되어있었다.한편, 병원.성도윤은 늦은 시간마다 차설아의 병실에 들어가서 앉아 있었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얘기를 나누면서 웃기도 했다.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성도윤의 존재가 습관이 된 차설아는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가끔 성도윤을 만나기 위해 차성철 혹은 병문안을 온 사람들을 일부러 내보내기도 했다.성도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던 차설아는 어쩐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성도윤이 찾아오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내가 허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당신을 제일 먼저 내쫓았을 거예요.”어느 조용한 밤, 차설아는 성도윤이 몰래 가져온 다크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러자 성도윤은 차갑게 대꾸했다.“말로만 그러지 말고 직접 날 내쫓아 봐. 얼른 나아서 나를 내쫓기를 바랄게.”“딱
“그럴 필요 없어!”성진이 부르짖는 소리가 어둠 속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귀신 같은 몰골로 도저히 차설아를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성진은 긴 한숨을 내어 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내가 차설아를 두고 떠난 건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서였어. 나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이야.”성진은 차설아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차설아한테 평생 책임지라고 말하면 차설아는 주저 없이 승낙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반년 전에 어렵게 상봉한 차성철과 귀여운 아이들, 겨우 이어가고 있던 사업을 내팽개치고 성진과 함께 멀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차설아는 반년 동안 성진을 아기처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힘들다고 투정 부린 적이 없었다. 성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두 눈과 피를 기부함으로써 사랑하는 여자와 반년 동안 같이 살았기에 이번 생에 여한이 없었다. 성진은 평생 그 나날들을 기억할 것이고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하지만 박서영은 성진을 이해하지 못했다. 총명하고 이득을 위해 기회를 쟁취하던 성진이 도대체 왜 소극적으로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성진 도련님, 차설아 씨를 잊지 못했으면서 왜 만나러 가지 않는 거예요? 성진 도련님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때 갑자기 나타나면 감동해서 성진 도련님과 결혼하려고 할 수도 있어요.”박서영은 굳은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성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설아가 그러자고 해도 내가 거절할 거야.”성진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자존심이 있는 남자라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할 거야.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감히...”성진은 고상한 품격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험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성진은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지만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성진 도련님, 다른 사람들이 도련님을 나쁘고 간사한 사람이라고 욕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