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색 유리병이요?”“네, 조형이 아주 정교하고, 적주황녹청남자의 7가지 색유리로 만들어졌어요. 면마다 진귀한 새와 이수가 조각되어 있어 진귀한 물건으로 유명해요. 그 난세에 만성 백 년의 안정을 유지해 소문에는 칠색 유리병이 재운을 형통하고,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소원을 이뤄준다고 해서 제가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차설아는 계속 눈을 희번덕거리며 속으로는 어이가 없었다.“그럼 인성 씨의 뜻은 저보고 그 보물을 찾아달라는 거네요?”“역시 설아 씨는 머리가 좋아요. 역시 내가 한눈에 마음에 든 절친다워요.”차설아는 속으로 으르릉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건 일부러 절 곤란하게 하시려는 건가요? 어쩌면 그 보물은 민간 전설일 뿐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 아닐까요? 그럼 제가 어디 가서 찾겠어요?”“그 어려운 걸 해내야 설아 씨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요?”조인성은 웃으며 말했다.“그 보물은 분명 존재하니 걱정 마세요. 열심히 찾다 보면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설아 씨가 그 보물을 찾아오면 저도 바로 땅을 내어드리도록 하죠. 물론 제시간도 소중하니 일주일을 넘지 않기를 바랄게요.”“하지만...”차설아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데 조인성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빌어먹을, 다 하나 같이 미친 자식들 아니야?”차설아는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현재로서는 차씨 저택을 되찾는 데 가장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었다. 어쩌면 그 칠색 유리병을 진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차설아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이 물건의 출처를 잘 조사하기로 했다. 찾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그녀는 문을 열고 아파트로 들어섰고, 두 녀석은 얌전히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어제 달이의 천식이 발작했기 때문에, 차설아는 오늘 함부로 뛰어다니지 못하게 했다. 특히 성심 전당포는 더더욱 갈 수 없었다.“달아, 오늘 좀 어때? 호흡 불편하지 않아?”차설아는 달이를 안고 뽀뽀를 하며 걱정스레
“벌써 찾았어? 우리 원이 짱이네!”차설아는 반색하여 급히 소파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갔다.“엄마, 이것 좀 봐봐요.”원이는 컴퓨터 화면에 있는 아름다운 칠색 유리병을 가리키며 포동포동한 작은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제가 추적한 최신 정보에 의하면 이 물건은 지금 성심 전당포에 보관되어 있어요. 엄마가 갖고 싶다면 바로 미스터 Q에게 보내 달라고 하면 되겠네요. 엄마는 어차피 자기 아내가 될 것이니, 미스터 Q의 물건은 곧 엄마의 것이라고 했어요.”“어떻게... 이럴 수가.”차설아는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기뻐해야 할지 난처해야 할지 몰랐다.어떻게 마침 이 물건이 그에게 있단 말인가? 직접 달라고 말을 꺼내기도, 말을 꺼내지 않기도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만약 직접 말을 꺼낸다면, 그녀가 정말 그의 재산을 노린 줄 알 것이다.하지만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조인성이 준 일주일 시간 안에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초인종이 울리더니, 더 공교로운 일이 발생했다.미스터 Q는 캐주얼한 복장에 고급 식재료를 들고 직접 집으로 찾아왔다.“Q 아빠, Q 아빠. 진짜 왔어요? 저랑 오빠, 그리고 엄마는 아빠가 보고 싶었어요!”달이는 입을 헤벌리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걸어갔다. 그야말로 슈퍼 스위트 걸이였다.차설아는 갑자기 나타난 키 큰 남자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경각심을 세우더니 차갑게 물었다.“우리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어요? 누가 여기 오라고 했어요?”“설아 씨 남편으로서, 아이들 아빠로서, 어떻게 집 주소를 모를 수 있죠?”남자는 강한 아우라를 풍기더니, 자연스럽게 요리 재료를 민이 이모에게 건넸다. 마치 집안의 주인인 듯싶었다.“오늘 식재료를 사놓고 요리 솜씨를 뽐내려 했는데, 애들이 설아 씨가 아직 집에 안 들어왔고, 요즘 전당포에 올 수도 없다고 하더군요. 전당포는 어지러운 부둣가에 있고, 감히 설아 씨와 아이들을 해치지는 못한다고 하나, 아이들이 오래 있
차설아는 난처해서 얼른 두 아이를 노려보았다.“너희 둘 정도껏 해. 아무리 아저씨가 너희들을 이뻐하신다고 해도 어른이야. 버릇없이 이래라저래라하면 어떡해?”원이는 고개를 돌려 진지하게 말했다.“엄마도 참,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정식 부부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남편을 감싸는 거예요? 못 말리는 사랑꾼이라니까요.”“...”차설아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배신자가 다 있나. 이렇게 날 난처하게 만들다니!’“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 애들이에요. 버릇없이 말해도 이해해주세요!”차설아는 남자를 힐끗 쳐다보며 난처함이 극에 달했다.비록 미스터 Q가 낯선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분이 두터운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기 미안했다.하지만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심지어 약간 즐기는 듯, 긴 팔로 다정하게 여자의 어깨를 잡더니 웃었다.“별말씀을요. 남편이 아내를 위해 봉사하는 건 당연한 거죠. 오늘 누구한테 괴롭힘당했어요? 어서 말해봐요, 제가 혼내줄게요.”차설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뭐 하는 짓이에요? 철없는 애들 장단에 맞춰주면 어떡해요?”남자는 여전히 미소를 짓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차피 연기하는 거 더 그럴듯하게 해야죠. 아니면 애들이 어떻게 믿겠어요?”“뭐 먹고 싶어요? 예비 남편인 제가 만들어주죠.”배고팠던 차설아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더는 숨기지 않았다.“혹시 스테이크 할 줄 알아요? 오늘 갑자기 서양식이 먹고 싶네요.”“잘됐네요. 마침 고급 등심을 사 왔어요.”“등심이요?”차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머릿속에는 성도윤이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이 떠올랐다.‘헐,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다고?’하지만, 서은아와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성도윤에 해, 자신은 미스터 Q가 직접 만든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레스토랑의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누군가 직접 만들어준 것보다 귀중할 수 없었다.“참
차설아는 다가가 호기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뭘요?”미스터 Q는 양손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소스로 스테이크를 재우고 있었다.“앞치마 좀 묶어주시겠어요? 보시다시피 손이 없어서...”그는 부엌 궤짝에 걸려 있는 앞치마를 턱으로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말했다.“앞치마를... 둘러달라고요?”차설아는 어색해서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건 보통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하는 애정행각이 아닌가?남자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뭐 문제 있어요? 혹시.. 부끄러워요?”“당연히 아니죠!”차설아는 남자에게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할 수 없이 앞치마를 챙겨 남자 뒤에 섰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그의 머리에 앞치마를 넣었고 일부러 소탈하게 말했다.“이혼 경험이 있는 제가 고작 이런 행동에 부끄러워하다니요.”여자의 가느다란 팔뚝은 남자의 허리를 둘러, 깔끔하게 리본을 묶고는 자기도 모르게 남자의 등을 툭툭 쳤다.“오, 괜찮네요! 그럴듯한 살림남 같아요!”‘쯧쯧, 얼굴은 망가졌지만 몸매는 일품이라니까. 넓은 어깨, 좁은 허리, 근육도 단단한 것이 성도윤 못지않네!’‘역시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아. 너무 작은 세상에 갇혀 살아서 그동안 성도윤 하나만 보고 살았어!’차설아가 이혼한 후 만난 남자들, 심지어 술집에서 얼굴로 생계를 유지하는 택이도 성도윤과 막상막하였다.미스터 Q는 스테이크를 재운 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다렸다.그는 비닐장갑을 벗고 과일 요구르트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키위를 꺼냈다.“이것 좀 맛봐요, 어때요?”남자는 숟가락으로 과일 요구르트를 저으면서 시리얼을 부었다. 그러고는 한 숟가락을 떠서 차설아의 입 앞에 내밀었다.“음...”차설아는 몸을 뒤로 젖히며 남자와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게 숟가락을 받았다.“제가 직접 먹을게요.”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이혼 경험이 있는 여자라며 왜 이렇게 보수적이에요?”“보수적이라니요? 이건 거리를 두는 거죠. 남녀
“누구 손에 있는데요?”차설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체없이 물었다.“설아 씨도 잘 아는 사람이에요...”미스터 Q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바로 설아 씨 전남편, 성도윤이요.”“...”또 성도윤이라니!‘아주 미치겠네. 왜 어디를 가든 성도윤, 성도윤이냐고!’“거짓말이죠? 제가 조사한 결과, 칠색 유리병은 분명 성심 전당포에 있었어요.”차설아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남자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그녀와 미스터 Q의 사이는 적어도 성도윤보다 나은 것 같았다.성도윤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미스터 Q에게 부탁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외부에서는 그런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사실 칠색 유리병은 아직 성도윤 손에 있어요. 당시 성도윤과 한바탕 싸웠을 때, 칠색 유리병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참패했어요... 그 후로 우리는 휴전하고 서로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않았어요.”미스터 Q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서술하듯 덤덤하게 말했다.전설에 따르면, 모두가 두려워하던 자정 살인마는 그 전쟁 이후, 피비린내 나는 잔학한 본성을 버리고 강호 분쟁에 참여하지 않고, 신비로운 신분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차설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진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더니. 어쩜 칠색 유리병이 그 인간 손에 있죠? 망했네요.”“설아 씨 전남편이잖아요. 이 정도는 당연히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차설아는 차갑게 웃었다.“맞아요, 분명 도와주겠죠. 다른 사람을 도와 저를 짓밟겠죠.”그녀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오늘 밤 성도윤과 그렇게 싸워놓고, 다시 달려가 귀중한 보물을 달라고 요구한다면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미스터 Q는 스테이크를 아주 잘 구웠다. 지글지글 기름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구웠고, 후추를 뿌리고 나니 그 향기는 차설아의 고민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1분만 기다려요.”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그녀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자, 차설아는 마음이 왠지 따뜻해졌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
성도윤은 앞에 놓인 라떼 한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좋아, 5분 남았어.”“...”‘젠장, 진짜 미쳐버리겠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 진짜 한대 패주고 싶네!’“할 말 없어?”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도도하게 말했다.“2분 남았어. 나 그만 가봐도 될 것 같은데?”“성도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차설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화를 분출했다.“당신이 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데, 나한테 커피 한 잔의 시간도 안 줘? 뭐가 그렇게 바빠? 환생이라도 계획하는 거야?”성도윤은 그제서야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더니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좋아. 이래야 차설아지.”카페에는 오고 가는 직장인들이 꽤 많았다.성도윤과 차설아는 모두 알아주는 인물이라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차설아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빙빙 돌려 말했다.“그래도 한 때 부부로 살았잖아. 내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낀 적 없어? 나한테 미안해서, 보상하고 싶었던 적 없어?”성도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러게, 부부로 지내는 동안 난 확실히 좋은 남편이 아니었던 것 같아. 남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도 다하지 못했어. 확실히 미안하고 당신에게 보상하고 싶어. 당신만 원한다면.”“맞아, 맞아. 확실히 보상해줘야지. 난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차설아는 눈을 반짝였다.‘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이 냉혈인간이 왜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거지?’“그래서, 난 말이야...”차설아가 막 자신의 요구를 말하려는데, 성도윤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탁자 위에 놓인 여자의 손을 잡더니 신비롭게 말했다.“그러니까, 우리 지금부터 시작해. 내가 보상해 줄게.”차설아는 몸이 굳어지면서 손을 거둬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뭘 시작해? 뭘 보상해?”“내가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남편의 의무를 다해서 당신 마음속의 한을 풀어줄게.”남자는 짙은 눈으로 차설아의 눈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차
성도윤은 앞에 놓인 라떼 한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좋아, 5분 남았어.”“...”‘젠장, 진짜 미쳐버리겠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 진짜 한대 패주고 싶네!’“할 말 없어?”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도도하게 말했다.“2분 남았어. 나 그만 가봐도 될 것 같은데?”“성도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차설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화를 분출했다.“당신이 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데, 나한테 커피 한 잔의 시간도 안 줘? 뭐가 그렇게 바빠? 환생이라도 계획하는 거야?”성도윤은 그제서야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더니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좋아. 이래야 차설아지.”카페에는 오고 가는 직장인들이 꽤 많았다.성도윤과 차설아는 모두 알아주는 인물이라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차설아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빙빙 돌려 말했다.“그래도 한 때 부부로 살았잖아. 내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낀 적 없어? 나한테 미안해서, 보상하고 싶었던 적 없어?”성도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러게, 부부로 지내는 동안 난 확실히 좋은 남편이 아니었던 것 같아. 남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도 다하지 못했어. 확실히 미안하고 당신에게 보상하고 싶어. 당신만 원한다면.”“맞아, 맞아. 확실히 보상해줘야지. 난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차설아는 눈을 반짝였다.‘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이 냉혈인간이 왜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거지?’“그래서, 난 말이야...”차설아가 막 자신의 요구를 말하려는데, 성도윤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탁자 위에 놓인 여자의 손을 잡더니 신비롭게 말했다.“그러니까, 우리 지금부터 시작해. 내가 보상해 줄게.”차설아는 몸이 굳어지면서 손을 거둬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뭘 시작해? 뭘 보상해?”“내가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남편의 의무를 다해서 당신 마음속의 한을 풀어줄게.”남자는 짙은 눈으로 차설아의 눈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차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던 성도윤은 갑자기 엄숙해지더니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칠색 유리병이 나한테 있다고 누가 그래?”“그건 당신이 몰라도 돼.”차설아는 당연히 미스터 Q의 이름을 언급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고, 턱을 치켜들고는 당당하게 말했다.“빌려줄 건지 말 건지, 그것만 말해.”성도윤은 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더니 물었다.“칠색 유리병은 왜 필요해?”“그것도 몰라도 돼!”차설아는 조인성과의 거래를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성도윤과는 최대한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약 칠색 유리병이 하필 그의 손에 있지 않았다면, 죽어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당신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데, 난 왜 당신을 도와야 하지?”성도윤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지고, 말투도 만년 빙산의 이미지에 맞게 차가웠다.어느새 공기 중에는 보이지 않는 얼음이 응결되었고, 주위의 사람들도 얼음창고처럼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차설아는 주먹을 꽉 쥐더니 심호흡을 하고 애써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당신과 이혼할 때 난 당신 명의로 된 성운 법률사무소만 받았어. 자산으로 따진다면 그 사무소는 거의 마이너스 자산이지. 그러니 난 맨몸으로 이혼한 셈이야. 내가 만약 공동재산을 평등하게 나누자고 주장한다면 당신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칠색 유리병보다 훨씬 클 거야. 그러니... 잘 생각해봐.”“이건 협박이야?”성도윤은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 동작을 멈추더니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으로 차설아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는 차갑고 오만한 미소가 번졌다.“돈이라면 전혀 부족하지 않아. 당신이 얼마를 원하든 말만 해.”“...”‘열 받아 죽겠네. 이건 분명 날 난처하게 하려는 수작이잖아!’“당신 말대로라면, 전혀 상의의 여지가 없다는 거네?”차설아는 노기등등해서 물었다.“꼭 그렇지만은 않아.”성도윤의 차가운 눈동자는 갑자기 깊고 복잡해졌다.“방금 결혼생활 동안 내가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당신도 아내의 의무를 다하지
예상치 못한 성도윤의 반응에 박성훈은 진지하게 물었다.“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성도윤은 입을 꾹 다문 채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종업원이 다른 술잔을 가지고 달려오더니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정말 모르고 있었던 거야?”박성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그럴 리 없었을 텐데... 너랑 차설아 씨는 특별한 사이잖아. 차설아 씨의 오빠한테 그런 일이 생겼으면 제일 먼저 너한테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니야?”“특별한 사이 아닌데요.”성도윤은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뭘 또 부정하고 그래! 누가 봐도 두 사람은 서로 미칠 듯이 사랑하는데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어.”박성훈은 한 도시에 정착하지 않고 여행 다녀서 해안시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성도윤과 차설아가 원래 부부였다는 것을 모른 채 지켜보아도 성도윤과 차설아 사이의 기류가 미묘하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예전에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차설아와 어떤 사이였고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은 차설아가 나를 해치려고 했다고 말했고 차설아도 인정하는 눈치였어요. 차설아는 내가 하마터면 차설아의 손에 죽을 뻔했고 그 일로 인해 머리를 다쳤다고 했지만 나는...”성도윤은 격동된 어조로 말하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술만 들이켰다. 박성훈은 반짝이는 두 눈을 하고서 성도윤을 지그시 바라보았고 계속해서 물었다.“다쳤다고 했지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아무것도 아니에요.”성도윤은 술을 연거푸 마시면서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봐. 내가 너한테 도움이 될지 누가 알아? 나 이래봬도 신경외과 의사야. 네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줄 수도 있어.”“정말이에요?”성도윤은 고개를 쳐들고는 활짝 웃었다. 여태껏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성도윤이 처음으로 마음을 연 순간이었다.“기억을 되찾게 해줄 수 있다고요?”사실 성도윤은 지난번 수술 뒤로 실력 있는 의사를 찾아 다시 치료하고 싶은 마음이
차설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도윤이 맞나보네. 스파크, 내 말이 맞지?”바람은 지난 일을 떠올리더니 차설아가 걱정하는 것이 무언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하지만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만약 성도윤이 성철 형을 죽이려고 했다면 박성훈을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잖아. 성도윤이 벌인 짓이라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글쎄, 박성훈을 데려오면 내가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 그리고 더 잔인한 방법으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거야. 오빠만 죽인다면 차씨 가문과 영흥 부둣가에 배치한 세력은 성도윤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차설아는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차설아는 사람을 쉽게 믿었었지만 극악무도한 사람한테 여러 번 배신당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성도윤이 나쁜 사람처럼 느껴진 것이다.“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물어보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성도윤은 솔직한 사람이라 거짓말하지는 않을 거야. 직접 만나서 물어봐.”차설아는 바람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너 오늘 좀 이상한 거 알아?”“진심으로 한 말인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아서 이상하다는 거지.”차설아는 날이 갈수록 바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계산적인 사람인 것 같았지만 바람은 의외로 단순하고 착한 사람이었다.“선우 가문과 성씨 가문은 늘 사이가 좋지 않았어. 이 기회에 나랑 성도윤을 완전히 갈라놓을 수도 있었는데 오해일 수도 있다면서 직접 물어보라고 부추겼잖아. 오해라는 것이 밝혀지면 더더욱 갈라놓을 수 없을 거야.”“난 이간질하는 사람이 아니야. 비열한 수법으로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고 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거라고...”바람은 반짝이는 두 눈을 하고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난 네가 지금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복수할 용기도 없고 이번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어서 매일 마음 아파하고 있었잖아. 공원에서 6시간 동안 앉아 있을 바에는 직접 찾아가서 물
바람은 얇은 셔츠를 입고 서 있었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네가 여기에 앉았을 때부터 뒤에 숨어있었어.”“너 바보야? 6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차설아는 투덜거리면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람은 차설아의 곁에 앉으면서 미소를 지었다.“힘든 줄 모르니까 이 시간까지 앉아 있었던 거겠지.”“난 생각할 것이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나도 똑같아. 네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재밌어서 계속 쳐다보고 싶었어. 6시간이나 지난 줄 몰랐거든.”“그런 장난도 지긋지긋하다.”차설아는 바람을 주먹으로 때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오후에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오빠 생각에 미쳐서 주변 사람들을 전부 의심했던 것 같아.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랬을 거야. 그러니까 마음에 두지 말았으면 좋겠어...”차설아의 말에 바람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사과하지 않아도 돼. 난 신비한 컨셉이라 의심받은 적이 셀 수 없을 만큼 많거든.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 네가 속상해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거든...”바람은 차설아가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바람은 누구한테 의심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바람의 유일한 목표는 차설아와 결혼해서 선우 가문을 빛내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쁜 짓을 하든 암암리에 손을 쓰든 중요하지 않았다. 차설아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바람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누가 자책했다고 그래. 넌 여우처럼 교활하니까 당연히 의심받지. 아무도 너의 속내를 꿰뚫어 보지 못하잖아.”차설아는 바람의 이마를 툭 치면서 말을 이었다.“우리 둘이 그저 해커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합에 참가해서 상금을 타고 돈이나 벌었으면 복잡한 가문의 일을 해결하지 않아도 되잖아. 복수할 것도 없으니 해커 활동이나 하면서 편안하게 지냈으면 되었을 텐데 말이야.”“생각해 보면 너랑 같이 시합에 참가해서 겨루던 날들이 제일 재밌었어.”바람은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
병실을 나선 배경윤은 차설아를 데리고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그 반지... 성도윤이 끼고 있던 거지?”“맞아.”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저번부터 표정이 안 좋더라.”“그, 그러니까...”배경윤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성철 오빠가 수술을 받고 의식을 잃은 뒤에 누군가가 일부러 손을 쓴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성형 병원으로 다시 찾아갔고 간호사한테서 단서를 찾은 거야.”“단서라니?”차설아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성철 오빠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가 윤설이랑 통화했다는 거야. 깔끔하게 처리하라고 했대. 그래서 나는 윤설이 촬영하는 곳까지 찾아가서 따졌고 윤설은 성도윤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더라고...”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윤설이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렸을까 봐 증거를 더 모은 뒤에 너한테 알려주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성도윤의 반지를 발견했으니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경윤아, 고마워. 사실 네가 알려주기 전부터 나는 줄곧 의심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성도윤이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거야.”“설아야, 너랑 성도윤은 아무 잘못도 없어. 성도윤은 너를 완전히 잊었으니 나처럼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인 거야. 성도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배경윤은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해 주었다.“나, 나도 알아... 성도윤은 진작에 날 잊었지만 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랐어. 전부 내 탓이야!”차설아는 심호흡하면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삼켰다.“그럼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성도윤과 맞서려고?”배경윤의 말에 차설아는 벽에 기대 한숨을 내쉬고는 차갑게 웃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오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