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다가가 호기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뭘요?”미스터 Q는 양손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소스로 스테이크를 재우고 있었다.“앞치마 좀 묶어주시겠어요? 보시다시피 손이 없어서...”그는 부엌 궤짝에 걸려 있는 앞치마를 턱으로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말했다.“앞치마를... 둘러달라고요?”차설아는 어색해서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건 보통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하는 애정행각이 아닌가?남자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뭐 문제 있어요? 혹시.. 부끄러워요?”“당연히 아니죠!”차설아는 남자에게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할 수 없이 앞치마를 챙겨 남자 뒤에 섰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그의 머리에 앞치마를 넣었고 일부러 소탈하게 말했다.“이혼 경험이 있는 제가 고작 이런 행동에 부끄러워하다니요.”여자의 가느다란 팔뚝은 남자의 허리를 둘러, 깔끔하게 리본을 묶고는 자기도 모르게 남자의 등을 툭툭 쳤다.“오, 괜찮네요! 그럴듯한 살림남 같아요!”‘쯧쯧, 얼굴은 망가졌지만 몸매는 일품이라니까. 넓은 어깨, 좁은 허리, 근육도 단단한 것이 성도윤 못지않네!’‘역시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아. 너무 작은 세상에 갇혀 살아서 그동안 성도윤 하나만 보고 살았어!’차설아가 이혼한 후 만난 남자들, 심지어 술집에서 얼굴로 생계를 유지하는 택이도 성도윤과 막상막하였다.미스터 Q는 스테이크를 재운 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다렸다.그는 비닐장갑을 벗고 과일 요구르트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키위를 꺼냈다.“이것 좀 맛봐요, 어때요?”남자는 숟가락으로 과일 요구르트를 저으면서 시리얼을 부었다. 그러고는 한 숟가락을 떠서 차설아의 입 앞에 내밀었다.“음...”차설아는 몸을 뒤로 젖히며 남자와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게 숟가락을 받았다.“제가 직접 먹을게요.”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이혼 경험이 있는 여자라며 왜 이렇게 보수적이에요?”“보수적이라니요? 이건 거리를 두는 거죠. 남녀
“누구 손에 있는데요?”차설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체없이 물었다.“설아 씨도 잘 아는 사람이에요...”미스터 Q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바로 설아 씨 전남편, 성도윤이요.”“...”또 성도윤이라니!‘아주 미치겠네. 왜 어디를 가든 성도윤, 성도윤이냐고!’“거짓말이죠? 제가 조사한 결과, 칠색 유리병은 분명 성심 전당포에 있었어요.”차설아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남자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그녀와 미스터 Q의 사이는 적어도 성도윤보다 나은 것 같았다.성도윤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미스터 Q에게 부탁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외부에서는 그런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사실 칠색 유리병은 아직 성도윤 손에 있어요. 당시 성도윤과 한바탕 싸웠을 때, 칠색 유리병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참패했어요... 그 후로 우리는 휴전하고 서로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않았어요.”미스터 Q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서술하듯 덤덤하게 말했다.전설에 따르면, 모두가 두려워하던 자정 살인마는 그 전쟁 이후, 피비린내 나는 잔학한 본성을 버리고 강호 분쟁에 참여하지 않고, 신비로운 신분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차설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진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더니. 어쩜 칠색 유리병이 그 인간 손에 있죠? 망했네요.”“설아 씨 전남편이잖아요. 이 정도는 당연히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차설아는 차갑게 웃었다.“맞아요, 분명 도와주겠죠. 다른 사람을 도와 저를 짓밟겠죠.”그녀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오늘 밤 성도윤과 그렇게 싸워놓고, 다시 달려가 귀중한 보물을 달라고 요구한다면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미스터 Q는 스테이크를 아주 잘 구웠다. 지글지글 기름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구웠고, 후추를 뿌리고 나니 그 향기는 차설아의 고민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1분만 기다려요.”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그녀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자, 차설아는 마음이 왠지 따뜻해졌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
성도윤은 앞에 놓인 라떼 한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좋아, 5분 남았어.”“...”‘젠장, 진짜 미쳐버리겠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 진짜 한대 패주고 싶네!’“할 말 없어?”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도도하게 말했다.“2분 남았어. 나 그만 가봐도 될 것 같은데?”“성도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차설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화를 분출했다.“당신이 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데, 나한테 커피 한 잔의 시간도 안 줘? 뭐가 그렇게 바빠? 환생이라도 계획하는 거야?”성도윤은 그제서야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더니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좋아. 이래야 차설아지.”카페에는 오고 가는 직장인들이 꽤 많았다.성도윤과 차설아는 모두 알아주는 인물이라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차설아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빙빙 돌려 말했다.“그래도 한 때 부부로 살았잖아. 내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낀 적 없어? 나한테 미안해서, 보상하고 싶었던 적 없어?”성도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러게, 부부로 지내는 동안 난 확실히 좋은 남편이 아니었던 것 같아. 남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도 다하지 못했어. 확실히 미안하고 당신에게 보상하고 싶어. 당신만 원한다면.”“맞아, 맞아. 확실히 보상해줘야지. 난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차설아는 눈을 반짝였다.‘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이 냉혈인간이 왜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거지?’“그래서, 난 말이야...”차설아가 막 자신의 요구를 말하려는데, 성도윤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탁자 위에 놓인 여자의 손을 잡더니 신비롭게 말했다.“그러니까, 우리 지금부터 시작해. 내가 보상해 줄게.”차설아는 몸이 굳어지면서 손을 거둬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뭘 시작해? 뭘 보상해?”“내가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남편의 의무를 다해서 당신 마음속의 한을 풀어줄게.”남자는 짙은 눈으로 차설아의 눈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차
성도윤은 앞에 놓인 라떼 한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좋아, 5분 남았어.”“...”‘젠장, 진짜 미쳐버리겠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 진짜 한대 패주고 싶네!’“할 말 없어?”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도도하게 말했다.“2분 남았어. 나 그만 가봐도 될 것 같은데?”“성도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차설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화를 분출했다.“당신이 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데, 나한테 커피 한 잔의 시간도 안 줘? 뭐가 그렇게 바빠? 환생이라도 계획하는 거야?”성도윤은 그제서야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더니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좋아. 이래야 차설아지.”카페에는 오고 가는 직장인들이 꽤 많았다.성도윤과 차설아는 모두 알아주는 인물이라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차설아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빙빙 돌려 말했다.“그래도 한 때 부부로 살았잖아. 내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낀 적 없어? 나한테 미안해서, 보상하고 싶었던 적 없어?”성도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러게, 부부로 지내는 동안 난 확실히 좋은 남편이 아니었던 것 같아. 남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도 다하지 못했어. 확실히 미안하고 당신에게 보상하고 싶어. 당신만 원한다면.”“맞아, 맞아. 확실히 보상해줘야지. 난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차설아는 눈을 반짝였다.‘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이 냉혈인간이 왜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거지?’“그래서, 난 말이야...”차설아가 막 자신의 요구를 말하려는데, 성도윤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탁자 위에 놓인 여자의 손을 잡더니 신비롭게 말했다.“그러니까, 우리 지금부터 시작해. 내가 보상해 줄게.”차설아는 몸이 굳어지면서 손을 거둬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뭘 시작해? 뭘 보상해?”“내가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남편의 의무를 다해서 당신 마음속의 한을 풀어줄게.”남자는 짙은 눈으로 차설아의 눈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차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던 성도윤은 갑자기 엄숙해지더니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칠색 유리병이 나한테 있다고 누가 그래?”“그건 당신이 몰라도 돼.”차설아는 당연히 미스터 Q의 이름을 언급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고, 턱을 치켜들고는 당당하게 말했다.“빌려줄 건지 말 건지, 그것만 말해.”성도윤은 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더니 물었다.“칠색 유리병은 왜 필요해?”“그것도 몰라도 돼!”차설아는 조인성과의 거래를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성도윤과는 최대한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약 칠색 유리병이 하필 그의 손에 있지 않았다면, 죽어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당신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데, 난 왜 당신을 도와야 하지?”성도윤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지고, 말투도 만년 빙산의 이미지에 맞게 차가웠다.어느새 공기 중에는 보이지 않는 얼음이 응결되었고, 주위의 사람들도 얼음창고처럼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차설아는 주먹을 꽉 쥐더니 심호흡을 하고 애써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당신과 이혼할 때 난 당신 명의로 된 성운 법률사무소만 받았어. 자산으로 따진다면 그 사무소는 거의 마이너스 자산이지. 그러니 난 맨몸으로 이혼한 셈이야. 내가 만약 공동재산을 평등하게 나누자고 주장한다면 당신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칠색 유리병보다 훨씬 클 거야. 그러니... 잘 생각해봐.”“이건 협박이야?”성도윤은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 동작을 멈추더니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으로 차설아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는 차갑고 오만한 미소가 번졌다.“돈이라면 전혀 부족하지 않아. 당신이 얼마를 원하든 말만 해.”“...”‘열 받아 죽겠네. 이건 분명 날 난처하게 하려는 수작이잖아!’“당신 말대로라면, 전혀 상의의 여지가 없다는 거네?”차설아는 노기등등해서 물었다.“꼭 그렇지만은 않아.”성도윤의 차가운 눈동자는 갑자기 깊고 복잡해졌다.“방금 결혼생활 동안 내가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당신도 아내의 의무를 다하지
그러나 이 순간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를 알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내가 이해할 수 있게 말을 해줄래, 당신이 원하는 진짜 아내, 당신만의 아내라는 게 무슨 뜻이야?"차설아는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조금은 짜증이 섞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아니면 그냥 직접 물어볼게, 당신이 원하는 게 뭔데, 당신의 '칠색 유리병'을 얻는 대가로 내가 뭘 가져다줘야 하지?""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어. 당신이 아내의 의무를 다했으면 좋겠다고."성도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차설아가 아직 자기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손가락을 까딱이며 차설아한테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차설아는 몸을 반쯤 기울여 성도윤의 입 옆에 귀를 갖다 댔다.그러자 그녀의 귓가에는 성도윤의 진심 반 장난 반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침대에서 남편을 기쁘게 해야 할 의무...""......"차설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붉어졌고, 수치심과 분노에 손 옆에 있던 커피잔을 집어 들고 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을 향해 무자비하게 뿌렸다."성도윤, 이 변태! 역겨워!"욕설을 마친 후 그녀는 가방을 들고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갔다.햇볕 아래서 그녀는 햇볕에 그을려 땀에 흠뻑 젖었고 심장 박동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화나! 화나!'칠색 유리병'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저런 변태에게 농락을 당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어제는 그에게 와인을 부었고 오늘은 커피를 부었다. 보아하니 그녀가 무릎을 꿇고 빌어도 '칠색 유리병'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그녀는 '특별수단'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차설아는 즉시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냈다."흠, 변태 같은 자식, 내가 받은 대로 돌려주마!"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본격 행동에 나섰다.한편 성도윤은 여전히 카페에 앉아 있었고, 어젯밤의 와인 같은 커피가 그
차설아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천신 그룹으로 돌아갔다."차 대표님!"무사히 돌아온 차설아의 모습을 본 직원들은 모두 기뻐하며 일제히 그녀를 맞이했다.현재 천신 그룹에 남아있는 직원들은 모두 초심을 잃지 않고 한마음으로 차설아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다.비록 그 수가 많지 않고 능력도 최강은 아니지만 한 명 한 명 대담하고 용감하며 차설아가 부탁한 일이라면 모두 성심성의로 완수할 이들이었다.차설아는 직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음 서윤을 바라보며 말했다."각 부서 직원들에게 알리고 즉시 이번 달 회의를 소집하도록 해요. 모든 직원이 참석하도록 이르고.""네, 대표님!"서윤이 정중하게 답했다.그는 마음속으로 오늘 차설아의 기분이 이리도 좋은 걸 보니 어젯밤 성 대표님과 분명 즐겁게 지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렇게 된다면 천신 그룹과 성대 그룹의 정략결혼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회의실은 월례회의 전에는 꽉 찼지만 오늘은 1/5도 안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머지 좌석은 비어있어 사람들에게 차갑고 가슴 아픈 느낌을 줬다.차설아는 맨 중앙에 앉은 채 띄엄띄엄 앉아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천신 그룹은 4년 넘게 폭풍우를 견디며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배경수가 떠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라졌다.배경림은 이 틈을 타 천신 그룹의 재고를 비웠을 뿐만 아니라 한 무리의 엘리트 집단도 빼앗아갔다.이 엘리트 집단에는 그녀가 마음에 들어 했던 개발원과 디자이너도 있었다.하여튼, 이번에 천신 그룹은 손실이 막심했으며 계속 운영될 수 있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그러나 굴욕을 견디던 시절은 곧 끝나고 천신 그룹의 시대가 열릴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오늘은 회사가 큰 조정을 거친 후 처음으로 제가 조직하는 회의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 차설아를 믿고 있는 분들이라 전 믿습니다, 모두가 불확실하고 혼란하다는 걸 잘 압니다. 또 어쩌면
시장 개발부 책임자인 원 팀장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흥분했다.그는 연구 개발 부서와 제품 부서의 설립을 맡은 임원진이었기 때문에 매일 돈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고 계좌에서 물 흐르듯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불안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좋은 질문이네요."차설아는 여러 직원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계신 많은 분도 원 부장님처럼 이런 혼란을 겪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전에는 여러분에게 너무 많은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여러분 모두가 저를 위해 남아주셨으니 저도 여러분들을 전적으로 믿고 또 여러분 모두 회사의 모든 결정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연구 개발 부서와 생산 부서를 빠르게 구축하고 싶은 이유는 회사가 고속 운영 기간에 접어들기 때문이며, 길면 한 달, 짧으면 보름이면 전체 해안 시, 심지어 아시아 최대 'G6 칩'제조업체가 될 것입니다. 만약 지금 준비해두지 않으면 이제 주문이 들어올 때 우리가 제대로 소화할 수 없고 그거야말로 업계에서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차설아가 망상에 빠진 건 아닌지 궁금해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원 팀장은 물었다. "대표님, 우리 모두 알다시피 'G6 칩'은 KCL의 에이스 제품이고 KCL은 성대 그룹과 만 협력 해 왔습니다. 그러니 'G6 칩'은 우리가 생산할 차례는 오지 않을 거 같은데요? ""대표님이 KCL 그룹의 회장 아니면 성대 그룹 이사장의 친척이 아니라면요. 하지만 새로 임명된 KCL 그룹의 회장은 매우 신비한 노인이고 또 유대인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면 아무런 관계가 없으신 거 아닌가요? 성대 그룹 이사장이라면 더더욱이요. "원 팀장이 비록 말을 다 끝마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차설아가 KCL 회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성대 그룹의 이사장인 성도윤과는 더욱 말할 수 없는 관계였으므로 'G6 칩'의 생산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차설아는 입술을 깨물고
“차설아 씨, 지금 절 협박하는 건가요?”서은아는 주먹을 꽉 쥐고 분노에 차서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그건 아니에요.”차설아는 다시 한번 태연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은아 씨가 저를 반대하는 건 좋지만 본인이 억울한 것처럼 절 비난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은아 씨가 한 짓을 생각하면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닌 듯싶어서요.”차설아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분명 서은아에게 약속했었다. 성도윤의 세상에서 물러나 두 사람을 이어 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서은아가 성도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를 위한 선택을 할 거라는 믿음이었다.그녀의 사랑이 이 정도로 극단적인 방식일 줄 모르고 말이다. 성도윤의 건강까지 해칠 정도라면 차설아는 더 이상 그를 서은아에게 맡길 이유가 없었다.“만약 언젠가 도윤 씨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전 도윤 씨에게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말했다.이 세상에서 성도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차설아였다.그의 곁을 떠났던 건 서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떠나고 보니 두 사람 모두 행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은 고통에 빠졌다.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장애물도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게 그들에게 맞는 방식이었다.진정한 행복은 서로에게서만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말도 안 돼!”서은아는 눈을 붉히며 집착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도윤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럴 일은 없어! 난 평생 도윤이만 사랑할 거고 도윤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도윤이를 위해서라면 그를 망가뜨리는 일도 할 수 있다고!”“서은아 씨, 진짜 미쳤어요? 그쪽은 사랑이 뭔지도 몰라요. 서은아 씨가 사랑하는 건 서은아 씨 자신 뿐이에요!”차설아는 서은아의 광기 어린 발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사랑이란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이해하는 것
서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설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을 더 확실히 하고 싶었다.“서은아 씨?”차설아는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드디어 절 보셨군요?”서은아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조심스럽게 떠보았다.차설아의 감정이 너무나도 안정적이었기에 방금까지 확신했던 그녀의 생각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당연하죠.”차설아는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옆자리를 가리키며 덤덤히 말했다.“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늦게 올 줄은 몰랐네요. 생각보다 멘탈이 좋은가 봐요?”서은아는 차설아의 반응을 보고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에 겉모습은 눈이 먼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 표정 하나하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서은아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차설아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설아 씨도 멘탈이 대단하시네요.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뻔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원수지간인데도 이렇게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참 고맙네요?”서은아는 살짝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차설아는 아무 말 없이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달이야, 착하지? 엄마가 이 아줌마랑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너는 민이 이모랑 잠깐 놀고 올래?”“싫어요! 이 아줌마 나쁜 사람 같아요. 아줌마가 엄마를 괴롭히면 어떡해요?”달이는 차설아를 꼭 껴안으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서은아를 노려보았다.“게다가 이 아줌마 분명 아빠를 뺏으러 온 거예요. 전 절대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걱정 마, 달아. 아빠는 영원히 네 아빠야. 그 누구도 달이 아빠를 빼앗아 갈 수는 없어. 엄마가 이 아줌마랑 얘기가 있어서 그래. 아빠에 대한 얘기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 말 들어. 가서 민이 이모랑 놀고 있어, 알겠지?”“알겠어요. 위험하면 꼭 소리 질러요! 제가 바로 달려와서 엄마 지켜줄 거예요.”차설아가 여러
성도윤이 떠난 것을 확인한 서은아는 차설아의 집으로 몰래 들어왔다.그녀는 조용히 몸을 숨긴 채, 차설아가 달이와 함께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대낮인데도 차설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움직임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설마...’“엄마, 한번 맞혀봐요! 달이가 뭘 그렸게요?”달이는 차설아 앞에 앉아 물감으로 나비 한 마리를 그렸다. 그리고는 귀여운 목소리로 물었다.“음... 강아지?”“틀렸어요! 달이가 그린 건 나비예요! 틀렸으니까 엄마 간지럼 태울 거예요!”달이는 해맑게 웃으며 차설아 품에 파고들어 그녀를 간질였고 두 사람은 잔디밭 위에서 장난을 치며 한바탕 웃었다.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가운데 그 장면은 무척이나 다정하고 따뜻해 보였다.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은아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차설아, 넌 도대체 무슨 복을 타고난 거야? 성도윤이 온 마음을 다해 너를 사랑해 주는 데다가 너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오빠도 있고, 또 배경수, 배경윤 같은 친구도 곁에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사랑스럽고 똑똑한 아이까지 있다니...’‘근데 나는?’서은아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께서 애지중지 키우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에 따뜻한 기억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가까운 친구나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고 게다가 최근 아버지께서는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며 사생아까지 낳았다. 앞으로 그녀가 받을 사랑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었다.‘그래서일까? 내가 성도윤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 것도.’서은아에게 성도윤은 어둠 속 유일한 한 줄기 빛이었다. 그 빛은 오직 그녀만을 비춰주던 것이었는데 차설아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다.‘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내 모든 걸 빼앗아 간 사람인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냐고!’서은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것을 가로챈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엄마, 한 번 더 할래요! 그림을 그릴
차설아는 약간 비관적인 태도로 말했다.성도윤이 자신과 아이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으며 언제나 그들 곁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약육강식의 세상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만약 성도윤이 이번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앞으로 그 누구든 그들을 함부로 모욕하고 짓밟을 수 있을 터였다. 차설아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굳이 우리 곁을 항상 지키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면 그걸로 충분해요.”차설아는 성도윤의 손을 꼭 잡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성도윤은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힘이 나. 반드시 돌아와서 너랑 아이들한테 편안한 가정을 만들어 줄게.”그렇게 두 사람은 진심을 털어놓으며 서로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그러고 나서 성도윤은 차를 몰고 성대 그룹으로 향했다.차설아는 마당에 남아 그를 기다렸다.하지만 두 아이는 아직 어려서인지 성도윤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상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 아빠는 왜 또 가버렸어요? 또 우리를 버리려는 거예요?”달이는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빠를 많이 좋아하는 달이였기에 반복된 이별은 극도의 불안감을 심어준 듯했다.매번 아빠가 떠날 때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그럴 리가. 아빠는 그냥 일하러 간 것뿐이야. 일만 끝내면 금방 돌아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응?”차설아는 달이를 꼭 안아주며 부드럽게 달랬다.“달이는 아빠가 일 안 했으면 좋겠어요. 주말엔 쉬어야 하는데...”“그렇지만 달이 아빠는 대기업 대표님이시잖아. 많은 직원들을 책임지고 있어. 아빠가 일을 안 하면 그 직원들은 다 굶을 수도 있다는 거야.”“그리고 말이야. 아빠가 일을 안 하면 달이가 좋아하는 예쁜 원피스는 누가 사주고 맛있는 음식과 장난감은 누가 사주겠니?”차설아는 달이가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성도윤이
전화는 진무열이 걸어온 것이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매우 엄중하고 다급했다.“대표님, 지금 어디 계세요? 오늘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인데 꼭 참석하셔야죠! 사람들이 다 기다리고 있습니다.”“오늘?”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제야 이 일을 떠올렸다.성대 그룹의 주주총회는 매년 연말에 열렸는데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행사였다. 그래서 그룹의 운영진들은 이 주주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보름 전부터 철저히 대비했다.성도윤은 성대 그룹의 현직 대표로서 책임지고 연간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총회가 시작된 지 이미 30분이 지났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주주들과 운영진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진무열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는데 성도윤은 이제야 전화를 받았다.“네, 대표님께서 직접 날짜를 오늘로 변경하셨잖아요. 회사 문제에 대해서 의논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주주들도 그렇고 회사 운영진분들도 그렇고 일정을 조정해서 참석해 주셨는데...”“정작 대표님께서 지각을 하신 데다가 전화도 안 받으시니 다들 기분이 많이 상하셨습니다.”진무열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그도 요즘 성도윤이 차설아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 중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따로 전화를 걸어 성도윤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주주총회만큼은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설아가 곁에 있으니 권력과 사업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어진 듯했다.“오늘 바쁘니까 회의 시간을 다른 날로 바꿀 거라고 전해.”성도윤은 단호하게 명령했다.주말인지라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로 약속한 날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 막 차설아와 관계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순간에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다.“아니, 대표님... 바쁘신 건 이해하지만 다른 분들까지 일정 변경을 해야 하는 건 좀 너무 독단적인 결정 아닙니까?”진무열은 용기를 내어 반박했다.
성도윤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누가 많이 먹고 먼저 다 먹으면 그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는 거야. 그런다고 해서 체하면 안 돼. 알겠지?”두 아이는 다시 진지하게 밥을 먹는 것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너희 먼저 먹어. 난 배불러서 잠깐 햇볕 좀 쬐고 올게.”차설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우유 한 잔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당으로 가서 햇볕을 쬐었다.성도윤은 차설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김정민더러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무슨 일이죠, 주인님?”그는 차설아 옆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차설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분명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을 텐데... 내가 한번 맞혀볼까?”성도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혹시 두 아이에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네가 함께 즐겁게 놀아줄 수 없어서?”차설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작은 얼굴에는 마치 어른에게 생각을 간파당했을 때의 아이처럼 놀라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자신이 감정을 꽤 잘 숨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성도윤에게 들키고 말았다.그는 차설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잘 알고 있어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경계해야 할지...’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이해해 버리면 그건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 말이다.“오랜 세월을 함께했잖아. 부부이기도 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고 또 연인이기도 했어. 원수였던 적도 있지만... 내가 어떻게 널 모를 수 있겠어?”성도윤은 차설아 앞에 쭈그려 앉으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그렇게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들이랑 뭘 하는지는 중
“그렇다니까?”서은아는 이를 꽉 깨물며 차갑게 말했다.“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바로 차설아한테로 갔어. 강아지처럼 따라붙더라고. 난 성도윤 얼굴조차 못 봤다니까? 진짜 한심하기도 하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제일 바보인 것 같아. 안 그러면 이렇게 화내면서 극단적인 제안을 할 이유도 없잖아.”“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차설아는 어떤 반응이었어?”성진은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며 계속해서 물었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감정을 감추려 해도 자신이 차설아에 대한 마음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어떤 반응이겠어? 당연히 좋아하겠지.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거잖아.”서은아는 어이없어하며 성진이 뻔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불만을 쏟아내듯 말을 이어갔다.“두 사람은 처음부터 끊어지려야 끊어질 수 없는 사이였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것도 맞긴 하지만 결국 두 사람 사이를 더 깊이 이어준 셈이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바보였던 거야. 어쩌면 우리가 해온 일들도 그들을 돕는 역할밖에 못 했던 거지. 우리는 그저 한낱 도구였을 뿐이라고!”서은아가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단순히 속상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성진의 질투심을 자극해 성도윤과 차설아의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싶었다.“그렇다고?”성진의 눈빛 속에는 점점 더 강한 분노와 불만이 차올랐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럼 본때를 보여줘야지.”“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네가 말한 거잖아.”성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었다.“성도윤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빈털터리로 만들자며?”“그래, 좋아! 또다시 동맹을 맺게 됐네. 솔직히 너라는 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 처리 하나는 잘하니까 말이야. 너랑 손잡는 게 제일 마음이 놓이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서은아는 기분 좋게 말했다.“너도 만만치 않지.”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사랑해서
“눈이 다 나았다고 하길래 특별히 축하해주러 왔지.”서은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진에게 선물을 툭 던져주었다.“이렇게 신경 써주니 참 고맙네.”성진은 선물을 받으며 냉랭하게 말했다.“형이랑 결혼이라도 할 건가?”“성진아, 너 지금 나 가지고 노는 거야? 밖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건 아닐 거고.”서은아는 말하다가 화가 나서 소파를 두 번이나 세게 걷어찼다.“성도윤 그 배은망덕한 놈! 양심이 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내가 서씨 가문의 미래까지 걸고 도왔는데! 그땐 내가 눈이 멀었어.”“그렇게 화낼 것까지야... 나도 한때 그랬었어. 너도 그때 나랑 마찬가지인 거고. 이젠 헛된 꿈에서 깨어나 제대로 앞을 봐야 할 때인 거지.”성진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래. 진작에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근데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이 안 와. 너도 전에 그랬었다며.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어?”서은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녀가 성진을 찾아온 건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다만 성진이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럼 네가 뭘 해줄 수 있는지 말해봐. 원하는 게 뭔데?”“서씨 가문의 모든 걸 이용해서 널 도울 수 있어. 대신 내가 원하는 건 성도윤이 완전히 무너져서 빈털터리가 되는 거야.”“진짜 그렇게 하겠다고? 네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 아니었어?”“내가 독하게 굴지 않으면 성도윤이 깨닫긴 하겠어? 누가 진짜로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하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서은아는 싸늘한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모든 걸 잃어 봐야만 내가 도윤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될 거야.”“재밌는 생각이네...”성진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말해서 만약 차설아가 없었더라면 그는 서은아 같은 여자를 꽤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거침
민이 이모의 말을 들은 성도윤은 계속해서 물었다.“왜 따라 배우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설아의 부모님이 금슬이 좋다고 들어서 무척 부러웠거든요. 저도 설아랑 알콩달콩 지내고 싶어요.”그러자 민이 이모는 미소를 지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금슬이 좋은 부부로 알려진 건 맞지만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부부마다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굳이 따라 배울 필요 없다고 한 거고요. 설아 아가씨랑 지금처럼만 지내시면 돼요.”“그러면 설아 아버지는 예전에 어떤...”“도련님, 죄송하지만 예전의 일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력도 나빠졌거든요.”민이 이모는 성도윤의 말을 잘랐다.“저는 이만 가볼게요. 도련님도 일찍 쉬세요.”문을 열고 나가려던 민이 이모는 뒤돌아서서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혹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해도 밝히지 마세요. 궁금한 게 있더라도 계속 조사하지 마시고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그럴 바에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민이 이모가 나간 뒤, 성도윤은 생각에 잠겼다.‘이모님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비밀에 부친 일을 굳이 조사해 봤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거야. 설아한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몇 분 후, 성도윤은 진무열한테 전화를 걸었다.“저번에 내가 부탁한 건 잠시 멈춰. 아직은 때가 아니야.”한편, 성진의 별장.어두운 불빛과 가라앉은 분위기는 성진의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정말 네가 나한테 두 눈을 기증한 거라고?”성진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기증자의 자료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현청아라는 여자와 사진 속의 여자를 번갈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도련님께 기증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현청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대답했다. 두 눈은 움푹 파였고 성진이 기억하던 그 여자의 목소리와 똑같았다.하지만 성진은 현청아가 수술 전에 얘기를 나누었던 여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