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천신 그룹으로 돌아갔다."차 대표님!"무사히 돌아온 차설아의 모습을 본 직원들은 모두 기뻐하며 일제히 그녀를 맞이했다.현재 천신 그룹에 남아있는 직원들은 모두 초심을 잃지 않고 한마음으로 차설아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다.비록 그 수가 많지 않고 능력도 최강은 아니지만 한 명 한 명 대담하고 용감하며 차설아가 부탁한 일이라면 모두 성심성의로 완수할 이들이었다.차설아는 직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음 서윤을 바라보며 말했다."각 부서 직원들에게 알리고 즉시 이번 달 회의를 소집하도록 해요. 모든 직원이 참석하도록 이르고.""네, 대표님!"서윤이 정중하게 답했다.그는 마음속으로 오늘 차설아의 기분이 이리도 좋은 걸 보니 어젯밤 성 대표님과 분명 즐겁게 지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렇게 된다면 천신 그룹과 성대 그룹의 정략결혼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회의실은 월례회의 전에는 꽉 찼지만 오늘은 1/5도 안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머지 좌석은 비어있어 사람들에게 차갑고 가슴 아픈 느낌을 줬다.차설아는 맨 중앙에 앉은 채 띄엄띄엄 앉아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천신 그룹은 4년 넘게 폭풍우를 견디며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배경수가 떠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라졌다.배경림은 이 틈을 타 천신 그룹의 재고를 비웠을 뿐만 아니라 한 무리의 엘리트 집단도 빼앗아갔다.이 엘리트 집단에는 그녀가 마음에 들어 했던 개발원과 디자이너도 있었다.하여튼, 이번에 천신 그룹은 손실이 막심했으며 계속 운영될 수 있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그러나 굴욕을 견디던 시절은 곧 끝나고 천신 그룹의 시대가 열릴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오늘은 회사가 큰 조정을 거친 후 처음으로 제가 조직하는 회의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 차설아를 믿고 있는 분들이라 전 믿습니다, 모두가 불확실하고 혼란하다는 걸 잘 압니다. 또 어쩌면
시장 개발부 책임자인 원 팀장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흥분했다.그는 연구 개발 부서와 제품 부서의 설립을 맡은 임원진이었기 때문에 매일 돈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고 계좌에서 물 흐르듯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불안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좋은 질문이네요."차설아는 여러 직원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계신 많은 분도 원 부장님처럼 이런 혼란을 겪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전에는 여러분에게 너무 많은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여러분 모두가 저를 위해 남아주셨으니 저도 여러분들을 전적으로 믿고 또 여러분 모두 회사의 모든 결정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연구 개발 부서와 생산 부서를 빠르게 구축하고 싶은 이유는 회사가 고속 운영 기간에 접어들기 때문이며, 길면 한 달, 짧으면 보름이면 전체 해안 시, 심지어 아시아 최대 'G6 칩'제조업체가 될 것입니다. 만약 지금 준비해두지 않으면 이제 주문이 들어올 때 우리가 제대로 소화할 수 없고 그거야말로 업계에서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차설아가 망상에 빠진 건 아닌지 궁금해하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원 팀장은 물었다. "대표님, 우리 모두 알다시피 'G6 칩'은 KCL의 에이스 제품이고 KCL은 성대 그룹과 만 협력 해 왔습니다. 그러니 'G6 칩'은 우리가 생산할 차례는 오지 않을 거 같은데요? ""대표님이 KCL 그룹의 회장 아니면 성대 그룹 이사장의 친척이 아니라면요. 하지만 새로 임명된 KCL 그룹의 회장은 매우 신비한 노인이고 또 유대인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면 아무런 관계가 없으신 거 아닌가요? 성대 그룹 이사장이라면 더더욱이요. "원 팀장이 비록 말을 다 끝마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차설아가 KCL 회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성대 그룹의 이사장인 성도윤과는 더욱 말할 수 없는 관계였으므로 'G6 칩'의 생산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차설아는 입술을 깨물고
차설아는 일이 바빴기 때문에 핸드폰을 볼 시간도 없었다. 따라서 연예 뉴스는 더더욱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래서 파파라치가 터뜨린 '폭발적인 뉴스'에 대해 인터넷에서 이미 많은 관심이 쏟아졌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일을 마치니 이미 퇴근 시간이 되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고는 사무실 의자 머리 받침에 머리를 기대고 텅 빈 천장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칠색 유리병’을 쥐도 새도 모르게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계획했다.서윤이 내려준 커피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시려던 순간이었다."어, 대표님! 커피 마시시면 안 돼요."서윤이 빠르게 달려들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며 차설아의 손에 든 커피잔을 빼앗아 버렸다."아니 이 상황에 어떻게 커피를 마실 수 있으세요?"차설아는 "왜 커피를 못 마셔요?"라며 당황해 물었다."커피......"서윤은 차설아의 배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차설아는 가뜩이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데 이런 일은 당연히 입에 올리기 어려울 거였다."커피는 몸에 좋지 않잖아요. 우유 마시세요. 제가 우유 한 잔 데워 드릴게요, 영양도 풍부하고 배도 따뜻하게 해줄게요.""아...."생각 끝에 차설아는 놀랍게도 "그래요 그럼, 요즘 배가 좀 불편해서 우유를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라고 동의했다."불편한 것도 정상이에요. 저희 엄마가 저한테 그러셨는데 여자들이 이런 일을 처음 겪을 때는 다 그렇대요. 엄청나게 조심해야 한다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도 삼가는 게 좋대요.""뭐야, 침대에서 내려갈 수도 없어요?"차설아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혼란스러웠다.서윤은 차설아가 일부러 모르는 척한다고 생각하고는 그도 따라서 모르는 척을 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늦게까지 야근을 하시니 휴식에 주의를 기울이셔야 한다는 거죠. 충분히 자세요. 아니면 건강에 무리가 갈 수도 있으니까요.""뭐야 서윤 씨. 오늘 엄청나게 수상해요.""전 신경 쓰지 마시고 대표님 몸조심이나 하세요."서윤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연예계 유명 파파라치가 한 커뮤니티에 올린 사진 한 장에서 화제가 된 것이었다.사진에는 차설아가 와인과 커피를 성도윤에게 뿌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성대 그룹 회장과 전 부인 다시 만나, 부인 임신 3개월째...”"정말이라면 성 회장님도 너무 남자가 아니고, 우리 대표님도 너무 불쌍해요!”성도윤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와 차설아에 대한 동정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서윤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폭로에는 진실도 거짓도 있을 겁니다. 우선... 우리 대표님은 분명 임신하셨지만 공개하고 싶지 않아 하십니다, 그러니 앞으로 대표님을 잘 보살펴 주되, 대표님 앞에서 이 일을 꺼내지 말도록 하죠.”"하지만 성 회장님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심이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성 회장님이라면 여전히 대표님을 매우 중시합니다, 전 이것이 두 그룹이 조만간 협력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서윤의 분석이 끝나자, 사람들은 즉시 알아차렸다."그렇다면 정말 대단하네요. 우리 대표님께서 성 회장님 아이를 배셨으니 앞으로 이 꼬마는 정말 다이아몬드 수저가 따로 없네요.”천신 그룹의 직원들은 환호성을 참지 못했다.사건 당사자인 차설아는 한편 야행복을 입고 제비처럼 날렵한 모습으로 성도윤의 침실에 잠입했다. 자신이 임신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반드시 일주일 안에 ‘칠색 유리병’을 손에 넣어야 했다. 좋은 말로 의견이 모이지 않으니, 그다지 명예스럽지 못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비록 불명예스럽지만 남자와 이혼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자신을 생각하면, 지금 그녀가 칠색 유리병을 가진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조만간 돌려줄 거니까 더 문제 될 건 없었다.다만, 성도윤의 명의로 된 부동산이 너무 많아서, 그가 칠색 유리병을 어디에 둘지 아직 잘 모른다는 게 흠이었다.그래서 그녀는 운에 맡기고, 하나씩 시도해 볼 수밖에 없었다.차설아가
차설아는 휴대전화의 희미한 불빛을 빌려 놀랍게도 성도윤의 책상 위에 유명 애니메이션의 피규어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는 걸 발견했다.'원피스'의 육비, '명탐정 코난'의 코난, '나루토'의 나루토, '코믹만화데이'의 증량군까지!"하하하, 웃겨 죽겠네. 다중인격이야 뭐야, 평소에는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더니 이렇게 사차원이었어?”차설아는 손에 들고 있는 모양이 정교한 손바닥만 한 '육비'를 보고 또 봤다.그녀는 성도윤이 무표정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 피규어들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도 어렸을 때 실험실에서 병과 캔을 만지는 것 외에 코믹 만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그녀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과 성도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은근 매치도가 높았다.이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인제야 전남편과 취미가 같다는 걸 알게 된 거야?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성도윤의 방에는 커다란 유리 찬장이 놓여있었는데 그 안에는 모두 작은 알갱이 레고 블록이 있었다. 크게는 에펠탑, 무거운 비행선 등, 작게는 단지 2피트 너비의 트랜스포머, 오토바이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그 인간도 블록 맞추는 걸 좋아할 줄 몰랐네. 이렇게 어려운 우주선까지 만들 줄이야!”차설아는 또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둘 다 레고 퍼즐을 즐긴다는 것이었다.그녀는 놀란 얼굴로 남자의 진열장에 있는 그 레고 비행선을 보고 있었다. 족히 1m가 넘는 넓이에 9999개의 크고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졌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차설아는 이 비행선을 너무 좋아했다. 전부터 만들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계속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 비행선은 한정판으로 전 세계적으로 99개 모델만 발매되었다. 그녀는 마침 구매 시간을 놓쳤던 터였다. 지금은 레고의 두 번째 발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꿈에 그리던 비행선이 눈앞에 놓여있으니, 그녀는 흥분된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그녀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유리 찬장을 열려고 할 때,
그는 비록 냉혹하고 인정머리 없지만, 어른들, 특히 어릴 때부터 그를 가장 아끼는 할아버지를 대할 때만큼은 항상 온화하고 인내심이 강했다."형제는 무슨. 남여사이에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정말 결백하다고 해도 밖에서 듣기 거북할 거야, 그래서 허 영감이 이번에는 조급해하면서, 매일 나에게 말을 하라고 재촉하고 있어.”성 어르신도 마음이 급했다. 손주 놈의 자식은 설아를 다시 잡을 생각도 않고 새로운 감정을 시작하지도 않고, 설마 평생 이대로 외톨이가 되겠다는 거야?그러면 성가는 정말 대를 이을 사람이 없었다!"정말 그냥 형제예요. 우리 사이에 다른 감정이 있었다면 진작 만났겠죠. 저는 은아도 저에게 남녀 간의 정은 없다고 믿어요. 함부로 참견하지 마세요.”성도윤은 다소 피곤한 듯 조용히 말하며 목욕을 하고 푹 자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시선이 갑자기 책상 위의 피규어들에게로 가더니 짙은 눈썹을 살짝 틀었다.그는 예리하게 육비의 위치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누군가가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우선 하인을 제외할 수 있었다.그의 방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으며, 하인이 청소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정기적으로 청소했기 때문이다.둘째, 할아버지 또한 제외할 수 있었다.영감은 자기 방이 제일 꼴불견이라며 방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부모님도 배제했다.이 두 사람은 그가 '기사회생'하고 성대 그룹을 다시 통제한 이후로는 그를 완전히 내버려 두고 지금은 유럽에서 휴가를 보내느라 바쁘기에 그의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그러면 누가... 감히 성가의 본가, 그것도 그의 방에 침입할 수 있었을까?성가의 본가는 항상 보안이 철저해서, 보통 재물을 구하는 도둑은 전혀 침입할 수 없고, 감히 침입할 배짱도 없을 것이었다.따라서 성도윤은 침입자가 돈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설마 목숨을 해치려 온 건가?그의 표정이 순간 심각해졌다."할아버지, 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주무세요.”성도윤은 먼
차설아는 각종 레고 블록 장식이 들어 있는 그 유리 진열장은 거울이 특수해서 정면은 반사되지 않지만 옆면은 반사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공교롭게도 성도윤이 서 있는 위치가 바로 옆이라 시선을 조금만 낮춰도 침대 밑의 차설아를 훤히 볼 수 있었다.성도윤은 침대 밑에 엎드려 있는 것이 차설아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갑자기 기운이 솟았다.그의 싸늘한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이 여자,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칠색 유리병'을 훔치러 온 것이겠지, 정말 간단하고 폭력적이군.성도윤은 짙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이 여인을 놀리기로 했다.그는 소파에 앉았다. 늘씬한 다리를 포개어 우아하고 고귀했다.그는 긴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고는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성 어르신을 향해 가여운 척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가 언제 설아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할아버지는 설아를 몰라요,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부드럽고 순한 사람이 아니에요. 제 마음은 이미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고요.”???"그런 일이 있었어?”성 어르신은 엄숙한 표정을 드러냈다."그 아이가 너를 괴롭혀?”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깊은 눈시울은 심지어 약간 붉어졌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말했다."설아에게 속은 거에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나에게 와인을 뿌리지 않으면 커피를 뿌리고, 단지 제가 설아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 않아 혼자 묵묵히 견디고 있었던 거라고요.”"뭐, 와인과 커피를 쏟다니, 진짜야?”성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리고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 앞에서 하얀 토끼처럼 얌전하고 부드러운 말투의 차설아가 와인이나 커피를 사람한테 뿌리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제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아시잖아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 지금 바로 전화해서 물어보세요.”성도윤이 제안했다.전화?!차설아는 얼른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눌렀다.만약 이때, 성 할아버지가 그녀
"어째서 그만둬, 네놈이 나를 속이고 우리 설아를 모독할 줄 알았어!”"그건 아니에요.”성도윤은 계속해서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제야 생각났는데, 설아가 저를 블랙리스트에 넣었어요. 보세요, 저에게 와인 커피를 뿌렸을 뿐만 아니라 제 연락처도 지웠어요... 제가 아무리 마음이 강해도 슬프고 상처받는다고요.”그녀는 진작에 그를 차단했다, 따라서 그는 그녀의 전화를 걸 수 없었다.차설아는 한숨 돌렸지만 그의 말에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었다.빌어먹을 녀석.'나를 냉혈하게 말하고는 자신은 무고한 척. 내가 왜 자기를 괴롭히고, 왜 와인과 커피를 뿌렸는지는 왜 안 말한대?'"노력해봤자...”"할아버지, 저 정말 너무 아프고 피곤해요, 어쩔 수 없어요.”성 어르신은 평생 똑똑하셨지만, 더 똑똑한 손자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속아 넘어갔다.노인은 긴 한숨을 내쉬며 성도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했다."너도 너무 괴로워하지 마, 여자의 마음은 확실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네가 노력했다면 할아버지도 너를 탓하지 않을 거야, 내가 시간을 내서 그 아이를 잘 타이르고, 다시는 이렇게 너를 다치게 할 수 없도록 할게....”차설아는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고 바닥을 두드렸다. 화가 나서 터질 것 같았다.'할아버지, 제가 언제 성도윤을 괴롭혔다고요, 여우처럼 교활하고 빙산처럼 냉혹한 손자를 제가 어떻게 괴롭혀요?'차설아는 몰래 빠져나간 후 반드시 가장 먼저 성 할아버지에게 진실을 알리고 성도윤의 가면을 벗기기로 했다.마침내 성 어르신이 성도윤의 방을 나가셨고, 공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차설아는 숨을 죽이고 꼼짝도 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떨렸다.그녀는 성도윤의 발을 날카롭게 쳐다보며 시시각각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빠져나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성도윤은 마치 일부러 그를 괴롭히는 것처럼, 때때로 침대 곁을 지나다녔고, 매번 그녀가 놀라 심장병이 도지려고 할 때마다 그는 또 적절하게 멀리 갔다.차츰 차설아의 인내심이 바닥났
“차설아 씨, 지금 절 협박하는 건가요?”서은아는 주먹을 꽉 쥐고 분노에 차서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그건 아니에요.”차설아는 다시 한번 태연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은아 씨가 저를 반대하는 건 좋지만 본인이 억울한 것처럼 절 비난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은아 씨가 한 짓을 생각하면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닌 듯싶어서요.”차설아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분명 서은아에게 약속했었다. 성도윤의 세상에서 물러나 두 사람을 이어 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서은아가 성도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를 위한 선택을 할 거라는 믿음이었다.그녀의 사랑이 이 정도로 극단적인 방식일 줄 모르고 말이다. 성도윤의 건강까지 해칠 정도라면 차설아는 더 이상 그를 서은아에게 맡길 이유가 없었다.“만약 언젠가 도윤 씨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전 도윤 씨에게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말했다.이 세상에서 성도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차설아였다.그의 곁을 떠났던 건 서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떠나고 보니 두 사람 모두 행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은 고통에 빠졌다.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장애물도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게 그들에게 맞는 방식이었다.진정한 행복은 서로에게서만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말도 안 돼!”서은아는 눈을 붉히며 집착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도윤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럴 일은 없어! 난 평생 도윤이만 사랑할 거고 도윤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도윤이를 위해서라면 그를 망가뜨리는 일도 할 수 있다고!”“서은아 씨, 진짜 미쳤어요? 그쪽은 사랑이 뭔지도 몰라요. 서은아 씨가 사랑하는 건 서은아 씨 자신 뿐이에요!”차설아는 서은아의 광기 어린 발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사랑이란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이해하는 것
서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설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을 더 확실히 하고 싶었다.“서은아 씨?”차설아는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드디어 절 보셨군요?”서은아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조심스럽게 떠보았다.차설아의 감정이 너무나도 안정적이었기에 방금까지 확신했던 그녀의 생각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당연하죠.”차설아는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옆자리를 가리키며 덤덤히 말했다.“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늦게 올 줄은 몰랐네요. 생각보다 멘탈이 좋은가 봐요?”서은아는 차설아의 반응을 보고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에 겉모습은 눈이 먼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 표정 하나하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서은아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차설아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설아 씨도 멘탈이 대단하시네요.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뻔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원수지간인데도 이렇게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참 고맙네요?”서은아는 살짝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차설아는 아무 말 없이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달이야, 착하지? 엄마가 이 아줌마랑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너는 민이 이모랑 잠깐 놀고 올래?”“싫어요! 이 아줌마 나쁜 사람 같아요. 아줌마가 엄마를 괴롭히면 어떡해요?”달이는 차설아를 꼭 껴안으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서은아를 노려보았다.“게다가 이 아줌마 분명 아빠를 뺏으러 온 거예요. 전 절대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걱정 마, 달아. 아빠는 영원히 네 아빠야. 그 누구도 달이 아빠를 빼앗아 갈 수는 없어. 엄마가 이 아줌마랑 얘기가 있어서 그래. 아빠에 대한 얘기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 말 들어. 가서 민이 이모랑 놀고 있어, 알겠지?”“알겠어요. 위험하면 꼭 소리 질러요! 제가 바로 달려와서 엄마 지켜줄 거예요.”차설아가 여러
성도윤이 떠난 것을 확인한 서은아는 차설아의 집으로 몰래 들어왔다.그녀는 조용히 몸을 숨긴 채, 차설아가 달이와 함께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대낮인데도 차설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움직임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설마...’“엄마, 한번 맞혀봐요! 달이가 뭘 그렸게요?”달이는 차설아 앞에 앉아 물감으로 나비 한 마리를 그렸다. 그리고는 귀여운 목소리로 물었다.“음... 강아지?”“틀렸어요! 달이가 그린 건 나비예요! 틀렸으니까 엄마 간지럼 태울 거예요!”달이는 해맑게 웃으며 차설아 품에 파고들어 그녀를 간질였고 두 사람은 잔디밭 위에서 장난을 치며 한바탕 웃었다.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가운데 그 장면은 무척이나 다정하고 따뜻해 보였다.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은아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차설아, 넌 도대체 무슨 복을 타고난 거야? 성도윤이 온 마음을 다해 너를 사랑해 주는 데다가 너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오빠도 있고, 또 배경수, 배경윤 같은 친구도 곁에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사랑스럽고 똑똑한 아이까지 있다니...’‘근데 나는?’서은아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께서 애지중지 키우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에 따뜻한 기억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가까운 친구나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고 게다가 최근 아버지께서는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며 사생아까지 낳았다. 앞으로 그녀가 받을 사랑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었다.‘그래서일까? 내가 성도윤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 것도.’서은아에게 성도윤은 어둠 속 유일한 한 줄기 빛이었다. 그 빛은 오직 그녀만을 비춰주던 것이었는데 차설아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다.‘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내 모든 걸 빼앗아 간 사람인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냐고!’서은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것을 가로챈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엄마, 한 번 더 할래요! 그림을 그릴
차설아는 약간 비관적인 태도로 말했다.성도윤이 자신과 아이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으며 언제나 그들 곁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약육강식의 세상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만약 성도윤이 이번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앞으로 그 누구든 그들을 함부로 모욕하고 짓밟을 수 있을 터였다. 차설아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굳이 우리 곁을 항상 지키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면 그걸로 충분해요.”차설아는 성도윤의 손을 꼭 잡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성도윤은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힘이 나. 반드시 돌아와서 너랑 아이들한테 편안한 가정을 만들어 줄게.”그렇게 두 사람은 진심을 털어놓으며 서로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그러고 나서 성도윤은 차를 몰고 성대 그룹으로 향했다.차설아는 마당에 남아 그를 기다렸다.하지만 두 아이는 아직 어려서인지 성도윤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상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 아빠는 왜 또 가버렸어요? 또 우리를 버리려는 거예요?”달이는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빠를 많이 좋아하는 달이였기에 반복된 이별은 극도의 불안감을 심어준 듯했다.매번 아빠가 떠날 때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그럴 리가. 아빠는 그냥 일하러 간 것뿐이야. 일만 끝내면 금방 돌아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응?”차설아는 달이를 꼭 안아주며 부드럽게 달랬다.“달이는 아빠가 일 안 했으면 좋겠어요. 주말엔 쉬어야 하는데...”“그렇지만 달이 아빠는 대기업 대표님이시잖아. 많은 직원들을 책임지고 있어. 아빠가 일을 안 하면 그 직원들은 다 굶을 수도 있다는 거야.”“그리고 말이야. 아빠가 일을 안 하면 달이가 좋아하는 예쁜 원피스는 누가 사주고 맛있는 음식과 장난감은 누가 사주겠니?”차설아는 달이가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성도윤이
전화는 진무열이 걸어온 것이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매우 엄중하고 다급했다.“대표님, 지금 어디 계세요? 오늘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인데 꼭 참석하셔야죠! 사람들이 다 기다리고 있습니다.”“오늘?”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제야 이 일을 떠올렸다.성대 그룹의 주주총회는 매년 연말에 열렸는데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행사였다. 그래서 그룹의 운영진들은 이 주주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보름 전부터 철저히 대비했다.성도윤은 성대 그룹의 현직 대표로서 책임지고 연간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총회가 시작된 지 이미 30분이 지났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주주들과 운영진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진무열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는데 성도윤은 이제야 전화를 받았다.“네, 대표님께서 직접 날짜를 오늘로 변경하셨잖아요. 회사 문제에 대해서 의논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주주들도 그렇고 회사 운영진분들도 그렇고 일정을 조정해서 참석해 주셨는데...”“정작 대표님께서 지각을 하신 데다가 전화도 안 받으시니 다들 기분이 많이 상하셨습니다.”진무열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그도 요즘 성도윤이 차설아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 중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따로 전화를 걸어 성도윤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주주총회만큼은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설아가 곁에 있으니 권력과 사업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어진 듯했다.“오늘 바쁘니까 회의 시간을 다른 날로 바꿀 거라고 전해.”성도윤은 단호하게 명령했다.주말인지라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로 약속한 날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 막 차설아와 관계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순간에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다.“아니, 대표님... 바쁘신 건 이해하지만 다른 분들까지 일정 변경을 해야 하는 건 좀 너무 독단적인 결정 아닙니까?”진무열은 용기를 내어 반박했다.
성도윤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누가 많이 먹고 먼저 다 먹으면 그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는 거야. 그런다고 해서 체하면 안 돼. 알겠지?”두 아이는 다시 진지하게 밥을 먹는 것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너희 먼저 먹어. 난 배불러서 잠깐 햇볕 좀 쬐고 올게.”차설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우유 한 잔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당으로 가서 햇볕을 쬐었다.성도윤은 차설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김정민더러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무슨 일이죠, 주인님?”그는 차설아 옆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차설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분명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을 텐데... 내가 한번 맞혀볼까?”성도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혹시 두 아이에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네가 함께 즐겁게 놀아줄 수 없어서?”차설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작은 얼굴에는 마치 어른에게 생각을 간파당했을 때의 아이처럼 놀라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자신이 감정을 꽤 잘 숨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성도윤에게 들키고 말았다.그는 차설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잘 알고 있어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경계해야 할지...’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이해해 버리면 그건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 말이다.“오랜 세월을 함께했잖아. 부부이기도 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고 또 연인이기도 했어. 원수였던 적도 있지만... 내가 어떻게 널 모를 수 있겠어?”성도윤은 차설아 앞에 쭈그려 앉으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그렇게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들이랑 뭘 하는지는 중
“그렇다니까?”서은아는 이를 꽉 깨물며 차갑게 말했다.“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바로 차설아한테로 갔어. 강아지처럼 따라붙더라고. 난 성도윤 얼굴조차 못 봤다니까? 진짜 한심하기도 하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제일 바보인 것 같아. 안 그러면 이렇게 화내면서 극단적인 제안을 할 이유도 없잖아.”“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차설아는 어떤 반응이었어?”성진은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며 계속해서 물었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감정을 감추려 해도 자신이 차설아에 대한 마음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어떤 반응이겠어? 당연히 좋아하겠지.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거잖아.”서은아는 어이없어하며 성진이 뻔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불만을 쏟아내듯 말을 이어갔다.“두 사람은 처음부터 끊어지려야 끊어질 수 없는 사이였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것도 맞긴 하지만 결국 두 사람 사이를 더 깊이 이어준 셈이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바보였던 거야. 어쩌면 우리가 해온 일들도 그들을 돕는 역할밖에 못 했던 거지. 우리는 그저 한낱 도구였을 뿐이라고!”서은아가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단순히 속상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성진의 질투심을 자극해 성도윤과 차설아의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싶었다.“그렇다고?”성진의 눈빛 속에는 점점 더 강한 분노와 불만이 차올랐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럼 본때를 보여줘야지.”“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네가 말한 거잖아.”성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었다.“성도윤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빈털터리로 만들자며?”“그래, 좋아! 또다시 동맹을 맺게 됐네. 솔직히 너라는 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 처리 하나는 잘하니까 말이야. 너랑 손잡는 게 제일 마음이 놓이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서은아는 기분 좋게 말했다.“너도 만만치 않지.”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사랑해서
“눈이 다 나았다고 하길래 특별히 축하해주러 왔지.”서은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진에게 선물을 툭 던져주었다.“이렇게 신경 써주니 참 고맙네.”성진은 선물을 받으며 냉랭하게 말했다.“형이랑 결혼이라도 할 건가?”“성진아, 너 지금 나 가지고 노는 거야? 밖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건 아닐 거고.”서은아는 말하다가 화가 나서 소파를 두 번이나 세게 걷어찼다.“성도윤 그 배은망덕한 놈! 양심이 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내가 서씨 가문의 미래까지 걸고 도왔는데! 그땐 내가 눈이 멀었어.”“그렇게 화낼 것까지야... 나도 한때 그랬었어. 너도 그때 나랑 마찬가지인 거고. 이젠 헛된 꿈에서 깨어나 제대로 앞을 봐야 할 때인 거지.”성진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래. 진작에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근데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이 안 와. 너도 전에 그랬었다며.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어?”서은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녀가 성진을 찾아온 건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다만 성진이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럼 네가 뭘 해줄 수 있는지 말해봐. 원하는 게 뭔데?”“서씨 가문의 모든 걸 이용해서 널 도울 수 있어. 대신 내가 원하는 건 성도윤이 완전히 무너져서 빈털터리가 되는 거야.”“진짜 그렇게 하겠다고? 네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 아니었어?”“내가 독하게 굴지 않으면 성도윤이 깨닫긴 하겠어? 누가 진짜로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하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서은아는 싸늘한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모든 걸 잃어 봐야만 내가 도윤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될 거야.”“재밌는 생각이네...”성진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말해서 만약 차설아가 없었더라면 그는 서은아 같은 여자를 꽤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거침
민이 이모의 말을 들은 성도윤은 계속해서 물었다.“왜 따라 배우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설아의 부모님이 금슬이 좋다고 들어서 무척 부러웠거든요. 저도 설아랑 알콩달콩 지내고 싶어요.”그러자 민이 이모는 미소를 지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금슬이 좋은 부부로 알려진 건 맞지만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부부마다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굳이 따라 배울 필요 없다고 한 거고요. 설아 아가씨랑 지금처럼만 지내시면 돼요.”“그러면 설아 아버지는 예전에 어떤...”“도련님, 죄송하지만 예전의 일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력도 나빠졌거든요.”민이 이모는 성도윤의 말을 잘랐다.“저는 이만 가볼게요. 도련님도 일찍 쉬세요.”문을 열고 나가려던 민이 이모는 뒤돌아서서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혹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해도 밝히지 마세요. 궁금한 게 있더라도 계속 조사하지 마시고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그럴 바에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민이 이모가 나간 뒤, 성도윤은 생각에 잠겼다.‘이모님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비밀에 부친 일을 굳이 조사해 봤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거야. 설아한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몇 분 후, 성도윤은 진무열한테 전화를 걸었다.“저번에 내가 부탁한 건 잠시 멈춰. 아직은 때가 아니야.”한편, 성진의 별장.어두운 불빛과 가라앉은 분위기는 성진의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정말 네가 나한테 두 눈을 기증한 거라고?”성진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기증자의 자료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현청아라는 여자와 사진 속의 여자를 번갈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도련님께 기증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현청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대답했다. 두 눈은 움푹 파였고 성진이 기억하던 그 여자의 목소리와 똑같았다.하지만 성진은 현청아가 수술 전에 얘기를 나누었던 여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