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난처해서 얼른 두 아이를 노려보았다.“너희 둘 정도껏 해. 아무리 아저씨가 너희들을 이뻐하신다고 해도 어른이야. 버릇없이 이래라저래라하면 어떡해?”원이는 고개를 돌려 진지하게 말했다.“엄마도 참,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정식 부부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남편을 감싸는 거예요? 못 말리는 사랑꾼이라니까요.”“...”차설아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배신자가 다 있나. 이렇게 날 난처하게 만들다니!’“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 애들이에요. 버릇없이 말해도 이해해주세요!”차설아는 남자를 힐끗 쳐다보며 난처함이 극에 달했다.비록 미스터 Q가 낯선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분이 두터운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기 미안했다.하지만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심지어 약간 즐기는 듯, 긴 팔로 다정하게 여자의 어깨를 잡더니 웃었다.“별말씀을요. 남편이 아내를 위해 봉사하는 건 당연한 거죠. 오늘 누구한테 괴롭힘당했어요? 어서 말해봐요, 제가 혼내줄게요.”차설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뭐 하는 짓이에요? 철없는 애들 장단에 맞춰주면 어떡해요?”남자는 여전히 미소를 짓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차피 연기하는 거 더 그럴듯하게 해야죠. 아니면 애들이 어떻게 믿겠어요?”“뭐 먹고 싶어요? 예비 남편인 제가 만들어주죠.”배고팠던 차설아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더는 숨기지 않았다.“혹시 스테이크 할 줄 알아요? 오늘 갑자기 서양식이 먹고 싶네요.”“잘됐네요. 마침 고급 등심을 사 왔어요.”“등심이요?”차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머릿속에는 성도윤이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이 떠올랐다.‘헐,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다고?’하지만, 서은아와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성도윤에 해, 자신은 미스터 Q가 직접 만든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레스토랑의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누군가 직접 만들어준 것보다 귀중할 수 없었다.“참
차설아는 다가가 호기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뭘요?”미스터 Q는 양손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소스로 스테이크를 재우고 있었다.“앞치마 좀 묶어주시겠어요? 보시다시피 손이 없어서...”그는 부엌 궤짝에 걸려 있는 앞치마를 턱으로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말했다.“앞치마를... 둘러달라고요?”차설아는 어색해서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건 보통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하는 애정행각이 아닌가?남자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뭐 문제 있어요? 혹시.. 부끄러워요?”“당연히 아니죠!”차설아는 남자에게 속마음을 들키기 싫어 할 수 없이 앞치마를 챙겨 남자 뒤에 섰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그의 머리에 앞치마를 넣었고 일부러 소탈하게 말했다.“이혼 경험이 있는 제가 고작 이런 행동에 부끄러워하다니요.”여자의 가느다란 팔뚝은 남자의 허리를 둘러, 깔끔하게 리본을 묶고는 자기도 모르게 남자의 등을 툭툭 쳤다.“오, 괜찮네요! 그럴듯한 살림남 같아요!”‘쯧쯧, 얼굴은 망가졌지만 몸매는 일품이라니까. 넓은 어깨, 좁은 허리, 근육도 단단한 것이 성도윤 못지않네!’‘역시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아. 너무 작은 세상에 갇혀 살아서 그동안 성도윤 하나만 보고 살았어!’차설아가 이혼한 후 만난 남자들, 심지어 술집에서 얼굴로 생계를 유지하는 택이도 성도윤과 막상막하였다.미스터 Q는 스테이크를 재운 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다렸다.그는 비닐장갑을 벗고 과일 요구르트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키위를 꺼냈다.“이것 좀 맛봐요, 어때요?”남자는 숟가락으로 과일 요구르트를 저으면서 시리얼을 부었다. 그러고는 한 숟가락을 떠서 차설아의 입 앞에 내밀었다.“음...”차설아는 몸을 뒤로 젖히며 남자와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게 숟가락을 받았다.“제가 직접 먹을게요.”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이혼 경험이 있는 여자라며 왜 이렇게 보수적이에요?”“보수적이라니요? 이건 거리를 두는 거죠. 남녀
“누구 손에 있는데요?”차설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체없이 물었다.“설아 씨도 잘 아는 사람이에요...”미스터 Q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바로 설아 씨 전남편, 성도윤이요.”“...”또 성도윤이라니!‘아주 미치겠네. 왜 어디를 가든 성도윤, 성도윤이냐고!’“거짓말이죠? 제가 조사한 결과, 칠색 유리병은 분명 성심 전당포에 있었어요.”차설아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남자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그녀와 미스터 Q의 사이는 적어도 성도윤보다 나은 것 같았다.성도윤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미스터 Q에게 부탁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외부에서는 그런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사실 칠색 유리병은 아직 성도윤 손에 있어요. 당시 성도윤과 한바탕 싸웠을 때, 칠색 유리병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참패했어요... 그 후로 우리는 휴전하고 서로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않았어요.”미스터 Q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서술하듯 덤덤하게 말했다.전설에 따르면, 모두가 두려워하던 자정 살인마는 그 전쟁 이후, 피비린내 나는 잔학한 본성을 버리고 강호 분쟁에 참여하지 않고, 신비로운 신분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차설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진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더니. 어쩜 칠색 유리병이 그 인간 손에 있죠? 망했네요.”“설아 씨 전남편이잖아요. 이 정도는 당연히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차설아는 차갑게 웃었다.“맞아요, 분명 도와주겠죠. 다른 사람을 도와 저를 짓밟겠죠.”그녀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오늘 밤 성도윤과 그렇게 싸워놓고, 다시 달려가 귀중한 보물을 달라고 요구한다면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미스터 Q는 스테이크를 아주 잘 구웠다. 지글지글 기름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구웠고, 후추를 뿌리고 나니 그 향기는 차설아의 고민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1분만 기다려요.”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그녀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자, 차설아는 마음이 왠지 따뜻해졌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
성도윤은 앞에 놓인 라떼 한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좋아, 5분 남았어.”“...”‘젠장, 진짜 미쳐버리겠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 진짜 한대 패주고 싶네!’“할 말 없어?”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도도하게 말했다.“2분 남았어. 나 그만 가봐도 될 것 같은데?”“성도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차설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화를 분출했다.“당신이 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데, 나한테 커피 한 잔의 시간도 안 줘? 뭐가 그렇게 바빠? 환생이라도 계획하는 거야?”성도윤은 그제서야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더니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좋아. 이래야 차설아지.”카페에는 오고 가는 직장인들이 꽤 많았다.성도윤과 차설아는 모두 알아주는 인물이라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차설아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빙빙 돌려 말했다.“그래도 한 때 부부로 살았잖아. 내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낀 적 없어? 나한테 미안해서, 보상하고 싶었던 적 없어?”성도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러게, 부부로 지내는 동안 난 확실히 좋은 남편이 아니었던 것 같아. 남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도 다하지 못했어. 확실히 미안하고 당신에게 보상하고 싶어. 당신만 원한다면.”“맞아, 맞아. 확실히 보상해줘야지. 난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차설아는 눈을 반짝였다.‘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이 냉혈인간이 왜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거지?’“그래서, 난 말이야...”차설아가 막 자신의 요구를 말하려는데, 성도윤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탁자 위에 놓인 여자의 손을 잡더니 신비롭게 말했다.“그러니까, 우리 지금부터 시작해. 내가 보상해 줄게.”차설아는 몸이 굳어지면서 손을 거둬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뭘 시작해? 뭘 보상해?”“내가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남편의 의무를 다해서 당신 마음속의 한을 풀어줄게.”남자는 짙은 눈으로 차설아의 눈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차
성도윤은 앞에 놓인 라떼 한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좋아, 5분 남았어.”“...”‘젠장, 진짜 미쳐버리겠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 진짜 한대 패주고 싶네!’“할 말 없어?”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도도하게 말했다.“2분 남았어. 나 그만 가봐도 될 것 같은데?”“성도윤, 왜 이렇게 잘난 척이야?”차설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화를 분출했다.“당신이 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데, 나한테 커피 한 잔의 시간도 안 줘? 뭐가 그렇게 바빠? 환생이라도 계획하는 거야?”성도윤은 그제서야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더니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좋아. 이래야 차설아지.”카페에는 오고 가는 직장인들이 꽤 많았다.성도윤과 차설아는 모두 알아주는 인물이라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차설아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빙빙 돌려 말했다.“그래도 한 때 부부로 살았잖아. 내 남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낀 적 없어? 나한테 미안해서, 보상하고 싶었던 적 없어?”성도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러게, 부부로 지내는 동안 난 확실히 좋은 남편이 아니었던 것 같아. 남편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도 다하지 못했어. 확실히 미안하고 당신에게 보상하고 싶어. 당신만 원한다면.”“맞아, 맞아. 확실히 보상해줘야지. 난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차설아는 눈을 반짝였다.‘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이 냉혈인간이 왜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거지?’“그래서, 난 말이야...”차설아가 막 자신의 요구를 말하려는데, 성도윤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탁자 위에 놓인 여자의 손을 잡더니 신비롭게 말했다.“그러니까, 우리 지금부터 시작해. 내가 보상해 줄게.”차설아는 몸이 굳어지면서 손을 거둬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뭘 시작해? 뭘 보상해?”“내가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남편의 의무를 다해서 당신 마음속의 한을 풀어줄게.”남자는 짙은 눈으로 차설아의 눈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차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던 성도윤은 갑자기 엄숙해지더니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칠색 유리병이 나한테 있다고 누가 그래?”“그건 당신이 몰라도 돼.”차설아는 당연히 미스터 Q의 이름을 언급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고, 턱을 치켜들고는 당당하게 말했다.“빌려줄 건지 말 건지, 그것만 말해.”성도윤은 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더니 물었다.“칠색 유리병은 왜 필요해?”“그것도 몰라도 돼!”차설아는 조인성과의 거래를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성도윤과는 최대한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약 칠색 유리병이 하필 그의 손에 있지 않았다면, 죽어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당신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데, 난 왜 당신을 도와야 하지?”성도윤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지고, 말투도 만년 빙산의 이미지에 맞게 차가웠다.어느새 공기 중에는 보이지 않는 얼음이 응결되었고, 주위의 사람들도 얼음창고처럼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차설아는 주먹을 꽉 쥐더니 심호흡을 하고 애써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당신과 이혼할 때 난 당신 명의로 된 성운 법률사무소만 받았어. 자산으로 따진다면 그 사무소는 거의 마이너스 자산이지. 그러니 난 맨몸으로 이혼한 셈이야. 내가 만약 공동재산을 평등하게 나누자고 주장한다면 당신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칠색 유리병보다 훨씬 클 거야. 그러니... 잘 생각해봐.”“이건 협박이야?”성도윤은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 동작을 멈추더니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으로 차설아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는 차갑고 오만한 미소가 번졌다.“돈이라면 전혀 부족하지 않아. 당신이 얼마를 원하든 말만 해.”“...”‘열 받아 죽겠네. 이건 분명 날 난처하게 하려는 수작이잖아!’“당신 말대로라면, 전혀 상의의 여지가 없다는 거네?”차설아는 노기등등해서 물었다.“꼭 그렇지만은 않아.”성도윤의 차가운 눈동자는 갑자기 깊고 복잡해졌다.“방금 결혼생활 동안 내가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당신도 아내의 의무를 다하지
그러나 이 순간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를 알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내가 이해할 수 있게 말을 해줄래, 당신이 원하는 진짜 아내, 당신만의 아내라는 게 무슨 뜻이야?"차설아는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조금은 짜증이 섞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아니면 그냥 직접 물어볼게, 당신이 원하는 게 뭔데, 당신의 '칠색 유리병'을 얻는 대가로 내가 뭘 가져다줘야 하지?""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어. 당신이 아내의 의무를 다했으면 좋겠다고."성도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차설아가 아직 자기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손가락을 까딱이며 차설아한테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차설아는 몸을 반쯤 기울여 성도윤의 입 옆에 귀를 갖다 댔다.그러자 그녀의 귓가에는 성도윤의 진심 반 장난 반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침대에서 남편을 기쁘게 해야 할 의무...""......"차설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붉어졌고, 수치심과 분노에 손 옆에 있던 커피잔을 집어 들고 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을 향해 무자비하게 뿌렸다."성도윤, 이 변태! 역겨워!"욕설을 마친 후 그녀는 가방을 들고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갔다.햇볕 아래서 그녀는 햇볕에 그을려 땀에 흠뻑 젖었고 심장 박동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화나! 화나!'칠색 유리병'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저런 변태에게 농락을 당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어제는 그에게 와인을 부었고 오늘은 커피를 부었다. 보아하니 그녀가 무릎을 꿇고 빌어도 '칠색 유리병'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그녀는 '특별수단'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차설아는 즉시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냈다."흠, 변태 같은 자식, 내가 받은 대로 돌려주마!"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본격 행동에 나섰다.한편 성도윤은 여전히 카페에 앉아 있었고, 어젯밤의 와인 같은 커피가 그
차설아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천신 그룹으로 돌아갔다."차 대표님!"무사히 돌아온 차설아의 모습을 본 직원들은 모두 기뻐하며 일제히 그녀를 맞이했다.현재 천신 그룹에 남아있는 직원들은 모두 초심을 잃지 않고 한마음으로 차설아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다.비록 그 수가 많지 않고 능력도 최강은 아니지만 한 명 한 명 대담하고 용감하며 차설아가 부탁한 일이라면 모두 성심성의로 완수할 이들이었다.차설아는 직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음 서윤을 바라보며 말했다."각 부서 직원들에게 알리고 즉시 이번 달 회의를 소집하도록 해요. 모든 직원이 참석하도록 이르고.""네, 대표님!"서윤이 정중하게 답했다.그는 마음속으로 오늘 차설아의 기분이 이리도 좋은 걸 보니 어젯밤 성 대표님과 분명 즐겁게 지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렇게 된다면 천신 그룹과 성대 그룹의 정략결혼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회의실은 월례회의 전에는 꽉 찼지만 오늘은 1/5도 안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머지 좌석은 비어있어 사람들에게 차갑고 가슴 아픈 느낌을 줬다.차설아는 맨 중앙에 앉은 채 띄엄띄엄 앉아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천신 그룹은 4년 넘게 폭풍우를 견디며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배경수가 떠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라졌다.배경림은 이 틈을 타 천신 그룹의 재고를 비웠을 뿐만 아니라 한 무리의 엘리트 집단도 빼앗아갔다.이 엘리트 집단에는 그녀가 마음에 들어 했던 개발원과 디자이너도 있었다.하여튼, 이번에 천신 그룹은 손실이 막심했으며 계속 운영될 수 있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그러나 굴욕을 견디던 시절은 곧 끝나고 천신 그룹의 시대가 열릴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오늘은 회사가 큰 조정을 거친 후 처음으로 제가 조직하는 회의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 차설아를 믿고 있는 분들이라 전 믿습니다, 모두가 불확실하고 혼란하다는 걸 잘 압니다. 또 어쩌면
박서영의 망설임을 보아낸 성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왜, 불편해?”“아니요, 불편한 게 아니라... 그분을 꼭 만날 필요가 있을까요?”박서영은 원래 대충 아무 핑계나 대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아는 성진이라면 단칼에 거절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겨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 같아 거절 대신 저런 질문을 한 것이다.“당연히 봐야지.”“만약 그 사람이 정말 나한테 눈을 기증해준 사람이라면 나 대신 어두운 여생을 살아가게 될 텐데, 나한테 새로운 삶을 선사해준 그런 은인을 찾아보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자리 마련할게요...”주먹을 꼭 쥐고 말하는 성진의 의지가 강해 보이기도 했고 또 괜히 그에게 의심을 사고 싶지도 않아 박서영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차설아와의 만남은 없을수록 좋겠지만 그래도 수술 전이니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내일 오전 열 시에 별장으로 모셔올 테니까 두 분 얘기 나누세요.”“그래, 수고했어.”처음으로 박서영을 대놓고 칭찬한 성진은 밤바람을 느끼며 내일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달을 향해 고개를 든 그가 깊은숨을 들이마시자 몸속에 갇혀있던 영혼이 움찔거리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 아름다운 별빛도 얼마 안 있으면 보겠네.”성진을 방으로 데려다준 박서영은 곧바로 지하실로 향했다.차설아는 그곳에 놓인 하얀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서도 표정만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장기를 내어주기만을 기다리는 보관창고 같은 모습이었다.“아까 도련님이랑 달구경 좀 했어요. 3일 뒤에 수술하는 거 도련님도 동의하셨어요. 하지만 기증자가 차설아 씨라는 말은 못 했어요.”박서영의 말에 눈을 뜬 차설아가 천장을 보고 웃으며 담담히 답했다.“당연히 말 못 하겠죠. 그 사람이 알면 안 받으려고 할 게 분명하니까요. 그런 사람이니까 그때도 나 위해서 자기 눈을 성도윤한테 내어줬겠죠.”“그러게요.
“하느님도 도련님의 억울함을 느꼈나 보죠.”“기증자는 어떤 사람인데? 남자야? 여자야? 성씨 가문의 사람이야?”성진은 기쁘긴 했지만, 생각은 꽤 신중했다.세상에 공짜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그는 진실부터 파헤쳐 보기로 했다.“그게...”박서영은 성진이 기증자에 이렇게 관심을 가질 줄 예상하지 못했는지 손톱을 뜯으면서 아무렇지않게 말했다.“여대생인데 집안에 돈이 부족해서 저희 모집 정보를 보고 건강 검진 결과를 보내왔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매우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만약 눈을 기증한 사람이 바로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는 차설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조건 수술을 반대할 것이고, 심지어 크게 화를 낼지도 몰랐다.“아, 가난한 여대생이라...”성진은 이에 대해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으니, 누군가는 몸을 팔고, 누군가는 신장을 팔고, 심지어 누군가는 목숨을 팔기도 했다. 한 쌍의 눈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시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만약 그녀가 정말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면, 돈을 섭섭지 않게 챙겨드려. 가능하다면 그녀와 가족의 남은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해.”성진이 매우 의리 있게 말했다.그는 비록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이다.“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잘 진행될 거예요. 도련님, 수술을 받으실 거예요?”박서영은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될 줄 몰랐는지 기쁜 마음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안 받을 이유가 뭐가 있겠어?”성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내 자신을 사랑해. 그리고 누가 괜히 시각장애인이 되고 싶겠어? 만약 정말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복수해서 설아를 내 곁에 단단히 붙잡아 놓을 거야.”“도련님, 시력을 회복하면 첫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 설아 씨를 되찾는 거예요?”“그럼!”성진의 눈빛은 확고해 보였다.“그동안 난 설아에 대한 마음이 더욱 확고해
박서영은 이렇게 슬프고 비관적인 성진을 보며 마음이 아파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도련님은 그 여자 때문에 너무 많이 변했어요. 예전의 도련님은 이렇게 비관적이지 않았어요...”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만이 섞여 있었다.“그 여자 때문에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 거야. 그녀를 만나면서 더욱 나 자신으로 변해버린 거고.”성진은 깊고도 막연한 초점 없는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차설아를 언급할 때마다 표정이 부드러워지면서 행복감을 감출 수 없었다.“아니잖아요!”박서영은 이해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예전에 도련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는 감정은 사람을 얽매이게 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고요. 분명 그때 성도윤 씨는 도련님을 상대로 패배했잖아요. 도련님이 조금만 더 냉정했더라면 지금 성대 그룹은 도련님이 지배하고 있었을 텐데, 결국엔... 그 여자를 위해서 어떻게 성도윤 씨한테 골수와 눈을 내어줄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저희는 구석에서 세월이나 한탄하면서 보름달을 구경하는 것도 사치가 되어버렸잖아요. 너무 억울해요!”박서영의 말을 듣고 있던 성진은 손가락을 움찔하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그렇다. 예전의 그는 사고가 명확하고,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세상의 모든 사랑에 눈이 멀어있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배부른 나머지 할 일이 없어서, 하루 종일 사랑 때문에 죽지 못해 안달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의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그런 사람 중의 한명이 될 줄 몰랐다.“도련님, 시간이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하실 건가요?”박서영은 흔들리는 성진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잘 모르겠어.”아주 진솔한 대답이었다.“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사랑에 미친다고 하잖아. 나는 이미 그래봤으니까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과연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어쩌면... 완전히 나쁜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그래요. 그러면 이따 올릴 거니까 일단 로그인해 주세요.”’박서영이 핸드폰을 건네면서 차설아더러 자기 SNS 계정에 로그인하라고 했다.핸드폰을 받아쥔 차설아는 매우 협조적으로 SNS 계정에 로그인했다.구조를 요청할 기회는 많았지만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박서영도 차설아가 진심으로 속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점차 믿게 되었고, 다소 놀라면서 말했다.“생각보다 자기 눈을 내놓을 만큼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군요. 그래서 저희 도련님이 당신을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했던 거군요.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저에게 주는 칭찬이에요?”차설아가 박서영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단지 남에게 빚지는 것을 싫어할 뿐이에요.”“저희 도련님께서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도련님이 계속 바보 같이 지내는 것을 두고볼수 없어요. 박서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고통은 결국 도련님만 겪는 거잖아요? 이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저는 도련님께서 좀 더 냉정해져서 설아 씨를 곁에 뒀으면 좋겠어요.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요. 연애의 신 같은 건 도련님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박서영은 어릴 적부터 성진 부모의 교육을 받아 성진 한 사람만을 위해 헌신하며, 성진을 위해 무조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 성진은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그중에서 배회하는 사람이었다.이런 사람은 완전히 흑화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착한 모습을 보이면 끝없는 심연에 빠질 뿐이다.이번에는 박서영이 한눈파는 사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박서영은 이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한때 냉혹하고 교활하며 결단력 있는 성진이 반드시 돌아와야만 했다.차설아는 다소 어두워진 표정으로 박서영에게 물었다.“그동안 성진은 어떻게 지냈나요?”“시각장애인이 뭘 어떻게 지냈겠어요.”박서영은 고개를 저으며
박서영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기꺼이 두 눈을 내놓을 생각이 있으신가요?”그녀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제가 성진한테 빚진 걸 갚는 거예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어요.”차설아가 말했다.“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처리하세요.”거짓말할 마음도 없는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항상 성진의 헌신 덕분에 남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처럼 느꼈고, 가끔 즐거울 때도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이 기간에 성진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어떤 어둠 속에 처해있을지, 어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어쩌면 원수의 손에 잡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치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어떤 방법으로 무사하다고 전할 건데요?”박서영은 차설아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SNS에 올리면 되죠.”차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했을 때 SNS를 올릴 마음이 있겠어요? 제가 SNS를 올려버리면 적어도 제가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SNS만 올리게요?”박서영은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SNS면 충분해요.”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차성철도, 배경윤도, 선우 시원도 각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신경쓸 새도 없었다.이럴 때 SNS를 올리면 최소한 무사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좋아요. SNS 올리는 것만은 허락해 줄게요.”박서영이 여러 번 고민
“하하. 성도윤 씨랑 데이트하고, 선우가문의 도련님과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고, 배씨 가문 도련님과 술 마시는 시간은 있으면서 저희 도련님을 찾을 시간은 없었나 보죠? 저희 도련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빴나 봐요.”서영이 흥분한 나머지 차설아의 목을 직접 움켜잡으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신이 성도윤 씨랑 얽히고설켜 있을 때, 저희 도련님은 좌절감에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했어요.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아무리 칼날을 숨겨봤자 어떻게든 찾더라고요.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약해빠져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요. 알아요?”차설아는 저항하지도 않고 박서영이 자기 목을 조르는 대로 놔두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흥. 절대로 당신이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박서영은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이 저택으로 데려온 거예요.”“켁! 켁! 켁!”차설아는 잠깐의 질식 때문에 기침하면서 숨을 헐떡이며 박서영에게 물었다.“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기를 원해요?”“아주 간단해요. 저희 도련님의 시력을 돌려주면 돼요.”박서영은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동안 저는 도련님을 위해 거부반응이 없고 잘 맞는 한 쌍의 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설아 씨의 건강 검진 데이터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두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침 저희 도련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설아 씨의 눈을 저희 도련님의 눈과 바꾸는 거 어렵지 않겠죠?”차설아는 박서영의 최종목적을 듣고 침묵하고 말았다.“제 눈이 정말 성진한테 맞나요?”그때 성도윤이 실명했을 때도 눈을 물색하고 다녔는데 오직 혈연관계가 있는 성진의 눈만 거부반응이 없었다.그때는 성도윤이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성진을 신경 쓰지도 못했다.하지만 마음의 빚 때문에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만약 자기 눈으로 성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 때문이라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