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아빠, 저희 엄마랑 같이 왔어요!”달이는 천사처럼 환하게 웃으며 남자에게 달려갔다.미스터 Q는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가 눈을 치켜뜨는 순간, 고혹적인 시선이 차설아와 딱 마주쳤다.두 사람 모두 흠칫 놀랐고, 마치 알 수 없는 전류가 공기 중에 뒤엉키는 것 같았다.“두 녀석이 그러는데, 설아 씨가 물고기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특히 우럭찜을 좋아한다고 해서 특별히 당신을 위해 만들었어요.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미스터 Q는 자연스럽게 말했다.마치 결혼한 지 여러 해 된 남편이 아내를 위해 만든 것처럼 말이다.두 녀석은 모두 차설아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큰 눈을 껌벅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봐요, 엄마. 우리가 Q 아빠는 좋은 사람이라고 했죠?”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이 남자 대체 뭐야? 친하지도 않은데 말끝마다 날 위해 만들었다고? 이건 두 아이를 매수하려고 쇼하는 거잖아!’“아, 하하하. 감사하네요. 귀하신 분께서 제가 좋아하는 우럭찜을 만들려고 특별히 시간을 내주셨다니 부끄럽네요. 제가 무슨 낯짝으로 먹겠어요!”차설아는 남자의 앞에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당신, 대체 무슨 속셈이에요? 이렇게까지 연기할 필요 없잖아요?”미스터 Q는 계속 우럭을 손질하며 다정하게 차설아의 귓가에 말했다.“오해하지 말아요. 그저 애들 기쁘게 해주려는 거예요.”“정도껏 하세요. 애들 즐겁게 해주는데 저는 왜 끌어들여요?”“두 녀석이 굳이 저를 설아 씨 남편으로 만들겠다는데 어떡해요? 우리가 함께하면 두 녀석이 행복하다니, 아빠가 되기로 한 이상, 그 소원을 이뤄줘야죠.”“대체 목적이 뭐예요? 애들 건드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세요.”차설아는 좀 급해졌다.미스터 Q 같은 악인이 왜 혈연관계도 없는 두 아이를 위해 이렇게까지 희생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어쩌면... 남에게 알릴 수 없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미스터 Q는 차설아에게 귓속말을 하는 대신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두 아이를 보
차설아는 부엌을 떠나 성심 전당포를 둘러보았다.장재혁은 그녀에게 열정적으로 전시관 하나하나를 소개했다.“설아 씨, 여기는 동방문완관입니다. 안에는 모두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보물들이 있죠. 예를 들면 십이지지 동물 머리, 금옥새, 상고청옥...”“여기는 서방보물관입니다. 안에는 순금 파라오 권장, 오색 다이아몬드 왕관, 비너스 조각...”“이곳은 진귀관으로,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칠색 영롱새 표본과 수천 년 된 영지, 만 년 된 펜던트 등...”차설아는 입을 살짝 벌리고 보는 내내 탄성도 지르지 못했다. 성심 전당포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전당포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 이 정도 보물은 아무거나 내다 팔아도 중견 회사 1년 이윤에 필적할 텐데.’경제력만 본다면 미스터 Q는 확실히 괜찮은 돈줄이었다. 잘만 잡으면 평생 옆에서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그녀는 돈이라면 충분히 자기 힘으로 벌 수 있었으니, 돈이라는 요소는 그녀에게 아무런 우세도 없어 절대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재혁 씨 일 보세요. 저 혼자 천천히 볼게요.”차설아는 성심 전당포의 어두운 면을 더 쉽게 파헤치려고 일부러 장재혁을 떼놓으려 했다.장재혁도 그녀를 경계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전 방해하지 않을 테니 천천히 참관하세요.”그는 몇 발자국 걷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는 신비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설아 씨, 우리 성심 전당포에는 금지구역이 있습니다. 만약 전시관 앞에 진입 금지 표시를 본다면, 부디 호기심을 억누르고 함부로 침입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아주 엄중하니까요!”이 말을 들은 차설아는 속으로 한껏 기뻐했다.‘좋아, 바로 이거야!’“걱정하지 마세요. 그 정도 머리는 저도 있어요.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보통 사람은 절대 들어가지 않겠죠!”“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장재혁이 떠나고 차설아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나 차설아는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 기어코 들어가야겠어! 당신네 사장
이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방안엔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마치 조금 전의 울음소리와 살려달라는 소리가 환각인 것 같았다.“그래요, 당신이 두렵다는 거 알아요. 그러니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당장 이 문을 열어 당신을 구할 테니, 그냥 내 아이 앞에서 그 자식 추악한 얼굴을 까발리기만 하면 돼요.”차설아는 이렇게 말하면서 힘을 쓰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내리치려고 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꽉 쥐었다.“성심 전당포 금지구역에서 뭘 하려는 겁니까?”남자의 묵직한 목소리가 서늘한 한기를 지니며 그녀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미스터 Q가 차가운 기운을 뿜으며 서 있었다.칠흑 같은 어둠과 그의 검은 색 가면을 보니 정말 “자정 살인마”가 자신을 훑어보는 것만 같았다.설아는 비록 겁이 많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긴 다른 사람의 공간이었고, 심지어 그 사람이 널리 악명을 떨친 악당이었다. 그러니 설아는 상황을 파악한 후 적당히 자세를 낮추며 머쓱한 웃음을 지어냈다.“아하하, 미스터 Q, 생선 만들고 계시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여기에 온 건가요? 아휴, 깜짝 놀랐잖아요.”“이미 다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겸사겸사 그쪽 보러...”미스터Q는 입술을 꾹 다물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는데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심지어 아주 강한 압박감도 들 정도였다.그는 천천히 설아에게 다가갔다.“켕기는 게 있나 봅니다?”“그럴 리가 있어요. 농담도 참. 전 단지 이 전시관을 참관하러 왔을 뿐이에요. 겸사겸사 당신의 엄청난 재력에 감탄도 하면서요. 그런 제가 켕기는 게 뭐가 있어요...”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설아.“장재혁이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함부로 성심 전당포에 들어오는 대가가 뭔지 말이에요.”미스터 Q는 설아의 손목을 잡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악마의 속삭임 같은 공포가 배어있었다.“무... 무슨 대가요?”설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함부로 금지구역에 들어온 사람은 평생 여기에
설아는 순간 오한이 났다. 그녀는 앞의 남자를 힘껏 밀치고는 차갑게 말했다.“돌았어요? 이런 농담도 막 하고 말이에요. 내가 확 베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요.”재력은 그를 초과한다고 말하지 못하겠으나 무력으로 그를 제압하기엔 너무 쉬운 일이었다. 만약 정말 지나치게 몰아붙인다면 그녀는 사정없이 대처할 것이다.미스터 Q는 다시 설아에게 다가갔다. 가면 밖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엄숙했다.“난 농담 같은 거 안 해요. 차설아 씨가 그 귀여운 아이들을 낳은 걸 보면 유전자가 나쁘지 않다는 걸 설명하죠. 그러면 저랑 꽤 어울릴 겁니다. 만약 우리가 협조한다면 아마 저 아이들보다 더 완벽한 아이를 낳을 수도 있어요. 정말 나랑 한번 해보지 않을래요?”“우웩!”설아는 그의 말에 구토하는 몸짓을 하면서 차갑게 쏘아붙였다.“제발 상황 파악 좀 해요. 아이는 한 사람만의 산물이 아니에요. 그리고 내 아이들이 그렇게 귀여운 건 내 유전자가 완벽한 외 아이 아버지 유전자도 대단할 수 있어요. 당신은 아이 아버지보다 거리가 되게 먼 거 알아요? 그러니까 제발 헛된 자신감을 가지지 마요!”“하하.”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뜨렸다.“차설아 씨도 아네요. 아이는 한 사람만의 산물이 아닌 거.”“그럼요? 당신 혼자, 아니면 나 혼자 어떻게 아이를 낳아요?”설아는 이 남자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쓸데없는 소리만 하니까 말이다.“그렇다면 왜 아이 아버지와 만나지 못하게 해요? 아이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그들의 부성애를 앗아가는 건 이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미스터 Q의 말투엔 조금의 분노와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담겨 있었다.“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요?”설아는 경계하는 얼굴로 그를 보며 빈틈없이 말했다.“말했잖아요. 아이 아버지는 쓰레기라고요. 그리고 이미 죽었어요. 그래서 알려줄 필요가 없었던 거예요. 아이에겐 나처럼 완벽한 엄마만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아이들의 아버지는 누구예요? 그 사람 유전자 좀 저랑 비교해 보게요. 누가
그때 성도윤에게 첫눈에 반한 건 다 그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다.만약 그 얼굴만 아니었다면 어떻게 사 년 동안 멍청하게 그의 곁에서 버텨왔을까. 아마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얼굴만 보다간 정말 평생 망할 수도 있었다. 근데 그녀는 하필 잘생긴 얼굴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그래요...”미스터 Q는 한숨을 내쉬더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정말 그것 때문이라면 난 확실히 그와 비교할 수 없죠. 예전엔 그래도 꽤 볼만 했는데 안타깝게도 얼굴이 망가지는 바람에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남들은 말해서 뭐 해, 나 자신도 구역질 날 지경이에요.”설아는 늘 교만하던 이 남자가 갑자기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을 보자 살짝 안쓰러웠다. 아까 너무했나 싶기도 했다.그녀는 머쓱하게 웃으며 위로했다.“아유 그게 무슨 큰 영향이 있겠어요. 남자는 얼굴로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 돈 되게 많잖아요. 당신이 수장해 놓은 보물중 하나만이라도 예쁜 아내 한 열 명 정도는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아이도 마음껏 낳고 말이에요.”“안 돼요!”미스터 Q는 진지하게 말했다.“난 당신이 엄청 흥미로워요. 그래서 당신과 결혼해 귀여운 아이들을 낳고 싶어요. 다른 여자는 모두 당신을 대신할 수 없어요. 만약 차설아 씨가 나랑 결혼만 해준다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섬도 줄게요. 그리고 성심 전당포 안의 모든 보물도 당신 소유로 해줄게요. 어때요?”“아니, 왜 이렇게 똥고집에요? 말했잖아요. 난 얼굴 본다고. 그러니까 얼굴 신경 쓰지 않는 여자 만나면 안 돼요?”설아는 진짜 못 말린다는 말투로 다시 거절했다.사실 이 남자가 건넨 조건은 아주 성의 있고 유혹적이었다. 아이들도 친 아버지처럼 좋아했다.만약 그와의 결혼에 동의한다면 정말 좋은 선택일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엔 아직도 경계선이 존재했다. 남편이란 자리에 성도윤 외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는 아직 어려웠다. 자신을 설득하지 못했다.“얼굴을 본다...”미스터 Q는 갑
원이와 달이는 두 눈을 깜박거리며 순진하고 무고한 모습으로 미스터 Q의 편을 들어주었다.“엄마, 분명 저희 아저씨를 오해했어요. 아저씨는 경수 아빠 외 달이가 본 제일 다정하고 착한 남자예요! 그런데 어떻게 나쁜 사람일 수 있어요?”“달이 말이 맞아요!”원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 턱을 만지며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Q아저씨는 제가 여러 번 시험한 후에야 엄마에게 소개해 드렸는걸요. 남편감으로 말이에요. 달이 안목을 믿기 어려우시면 제 IQ를 믿어주세요.”“어...그게...”설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다른 건 몰라도 원이 IQ는 확실히 높았다. 그 아이가 낸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IQ가 더 높지 않으면 정말 좋은 사람일 것이다.이렇게 봤을 때 이 남자는 전혀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 그러니 매우 뛰어난 지능으로 두 아이의 환심을 샀을 가능성이 컸다.“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 여기 이 문만 열면 엄마가 왜 이러는지 알게 될 거야.”쓸데없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 싶지 않은 설아는 사실로 설명하려 했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는 다리를 쭉 뻗었다. 온몸의 힘을 다해 문을 찼다.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말했다.“원아, 달아. 저기 일 미터 뒤로 물러서. 이 나쁜 놈이 어느 정도로 변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 뒤에 아마 끔찍한 게 있을 수도 있어. 너희들에게 트라우마라도 남겨주면 안 되니까 얼른 뒤로 물러서.”두 아이는 설아의 말에 조금 두려워졌다. 그들은 얼른 미스터 Q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문을 보고 있었다.하지만 어색한 것은 한참을 찼음에도 문은 꿈쩍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설아만 지친 숨을 헐떡거렸다.이런 작은 나무문을 그녀의 힘으로 밀치지 못한다는 게 이상했다.“힘들어요? 쉬었다가 할래요?”미스터 Q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자신과는 연관이 없는 듯 설아의 안부를 물었다.“허위적인 관심 필요 없어요. 내가 이 문 반드시 열어버릴 거예요!”설아는 땀을 쓱쓱 닦고는 계속 힘을 주었다.이때 미스
설아는 재혁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여겼다.그녀는 재빨리 두 아이를 자신의 앞으로 데려오고는 그들의 눈을 손으로 막아주면서 경고했다.“먼저 눈 감고 있어. 엄마가 안에 상황이 어떤지 확인한 다음에 다시 눈 떠.”동시에 미스터 Q에게 말했다.“문 열지 않아도 돼요. 난 당신이 한 변태 짓에 관심 없어요. 그냥 내 아이 앞에서 나쁜 놈이라고 인정만 해주면 돼요.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애들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해요.”설아는 깊이 생각했다. 이 변태가 자신의 범죄를 들킨 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게 두려워 아이를 먼저 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시 때를 노려 이 안에 갇힌 사람도 구할 것이다.미스터 Q는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고 다시 재혁에게 명령했다.“문 열라고 했다. 못 들었나?”“그게...”재혁은 비록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미스터 Q의 명령을 어길 수 없어 평소 갖고 다니던 열쇠로 문을 열었다.“조심해!”설아는 두 아이를 꼭 끌어안고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방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이때 재혁이 입을 열었다.“숨지 말고 얼른 나와요. 계속 나오겠다고 소리 질렀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나와 차설아 씨에게 똑똑히 보여줘요. 저희 보스가 어느 정도로 ‘나쁜’ 지 말이에요.”방안이 꽤 어두운지라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저 아무 기척도 없었다.미스터 Q가 차가운 목소리로 협박하듯 말했다.“나와요!”이때 어떤 여자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그녀는 소박한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졌으며 얼굴은 수척하게 야위었는데 눈언저리는 해골처럼 깊게 들어갔다.하지만 이 모습은 설아가 상상한 것보다 괜찮았다.“당... 당신은?”설아는 이 여자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가고 싶다면 지금 가도 돼요. 하지만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울면서 우리더러 살려달라고 하지만 마요!”재혁은 그 여자를 노려보았는데 마치 딱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또 이 모습에 화를 내는 것 같았다.“어어! 생각났어요.
“그건...”여자는 말하다가 말았는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듯했다.“사정이 있으면 직접 말해요. 어떤 결과든 내가 감당해 줄게요. 만약 계속 이 나쁜 인간 감싸려 한다면 나도 이젠 더는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설아는 조금 화 난 표정을 지었다. 가여운 사람에겐 반드시 고약한 점이 있는 법이다.그들이 나약하므로 나쁜 사람들이 멋대로 날뛴다. 못된 짓을 저질러도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여길 테니까.“아니요, 아가씨께서 오해한 것 같아요. 전 나쁜 사람을 감싸려는 게 아니라...”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용기를 내어 말했다.“좋은 분을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알려드릴게요. 사실 전 싱글 맘이에요.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어렵게 생활하다가 밥 한 끼도 먹기 어려운 지경이 됐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클럽에서 일했는데, 너무 혼란한 와중에 실수로 약을 먹게 됐어요.”“어느 한번, 손님에게 희롱당할 때 미스터 Q님과 재혁 님께서 절 구해주셨어요. 그리고 저에게 일자리도 마련해 주셔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요, 전 이미 인이 박였거든요. 번 돈은 아들을 키우는 데 쓰지 않고 그걸 사는 바람에 늘 부족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정신이 어떻게 돼서 여기 보물을 훔쳐 팔다가 아가씬데 걸린 거고요...”“그건 알아요. 나중에 벌 받지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여기 갇힌 거예요?”설아는 이 여자의 말을 듣자 놀람을 금치 못했다.정말 가여운 여자였다. 혼자 아이 키우는 것도 힘든데, 약에 인이 박이다니... 정말 괴로웠을 것이다.“아니요!”여자는 단칼에 부정했다.“미스터 Q님께선 제가 정말 벌 받는다면 제 아들이 혼자 남을 걸 배려해 주셔서 절 풀어주셨어요. 선심을 베푸신 거죠. 그리고 여기 갇혀 있는 건 제가 직접 원한 거예요.”“직접 원한 거라고요?”“네!”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붉어진 눈시울로 고통스럽게 말했다.“저는 약을 끊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곳에 갇히기로 결심했어요. 오랫동안 견지했는데 조금만 더 노
“차설아 씨, 지금 절 협박하는 건가요?”서은아는 주먹을 꽉 쥐고 분노에 차서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그건 아니에요.”차설아는 다시 한번 태연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은아 씨가 저를 반대하는 건 좋지만 본인이 억울한 것처럼 절 비난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은아 씨가 한 짓을 생각하면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닌 듯싶어서요.”차설아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분명 서은아에게 약속했었다. 성도윤의 세상에서 물러나 두 사람을 이어 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서은아가 성도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를 위한 선택을 할 거라는 믿음이었다.그녀의 사랑이 이 정도로 극단적인 방식일 줄 모르고 말이다. 성도윤의 건강까지 해칠 정도라면 차설아는 더 이상 그를 서은아에게 맡길 이유가 없었다.“만약 언젠가 도윤 씨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전 도윤 씨에게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말했다.이 세상에서 성도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차설아였다.그의 곁을 떠났던 건 서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떠나고 보니 두 사람 모두 행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은 고통에 빠졌다.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장애물도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게 그들에게 맞는 방식이었다.진정한 행복은 서로에게서만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말도 안 돼!”서은아는 눈을 붉히며 집착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도윤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럴 일은 없어! 난 평생 도윤이만 사랑할 거고 도윤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도윤이를 위해서라면 그를 망가뜨리는 일도 할 수 있다고!”“서은아 씨, 진짜 미쳤어요? 그쪽은 사랑이 뭔지도 몰라요. 서은아 씨가 사랑하는 건 서은아 씨 자신 뿐이에요!”차설아는 서은아의 광기 어린 발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사랑이란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이해하는 것
서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설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을 더 확실히 하고 싶었다.“서은아 씨?”차설아는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드디어 절 보셨군요?”서은아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조심스럽게 떠보았다.차설아의 감정이 너무나도 안정적이었기에 방금까지 확신했던 그녀의 생각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당연하죠.”차설아는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옆자리를 가리키며 덤덤히 말했다.“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늦게 올 줄은 몰랐네요. 생각보다 멘탈이 좋은가 봐요?”서은아는 차설아의 반응을 보고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에 겉모습은 눈이 먼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 표정 하나하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서은아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차설아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설아 씨도 멘탈이 대단하시네요.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뻔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원수지간인데도 이렇게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참 고맙네요?”서은아는 살짝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차설아는 아무 말 없이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달이야, 착하지? 엄마가 이 아줌마랑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너는 민이 이모랑 잠깐 놀고 올래?”“싫어요! 이 아줌마 나쁜 사람 같아요. 아줌마가 엄마를 괴롭히면 어떡해요?”달이는 차설아를 꼭 껴안으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서은아를 노려보았다.“게다가 이 아줌마 분명 아빠를 뺏으러 온 거예요. 전 절대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걱정 마, 달아. 아빠는 영원히 네 아빠야. 그 누구도 달이 아빠를 빼앗아 갈 수는 없어. 엄마가 이 아줌마랑 얘기가 있어서 그래. 아빠에 대한 얘기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 말 들어. 가서 민이 이모랑 놀고 있어, 알겠지?”“알겠어요. 위험하면 꼭 소리 질러요! 제가 바로 달려와서 엄마 지켜줄 거예요.”차설아가 여러
성도윤이 떠난 것을 확인한 서은아는 차설아의 집으로 몰래 들어왔다.그녀는 조용히 몸을 숨긴 채, 차설아가 달이와 함께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대낮인데도 차설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움직임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설마...’“엄마, 한번 맞혀봐요! 달이가 뭘 그렸게요?”달이는 차설아 앞에 앉아 물감으로 나비 한 마리를 그렸다. 그리고는 귀여운 목소리로 물었다.“음... 강아지?”“틀렸어요! 달이가 그린 건 나비예요! 틀렸으니까 엄마 간지럼 태울 거예요!”달이는 해맑게 웃으며 차설아 품에 파고들어 그녀를 간질였고 두 사람은 잔디밭 위에서 장난을 치며 한바탕 웃었다.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가운데 그 장면은 무척이나 다정하고 따뜻해 보였다.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은아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차설아, 넌 도대체 무슨 복을 타고난 거야? 성도윤이 온 마음을 다해 너를 사랑해 주는 데다가 너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오빠도 있고, 또 배경수, 배경윤 같은 친구도 곁에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사랑스럽고 똑똑한 아이까지 있다니...’‘근데 나는?’서은아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께서 애지중지 키우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에 따뜻한 기억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가까운 친구나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고 게다가 최근 아버지께서는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며 사생아까지 낳았다. 앞으로 그녀가 받을 사랑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었다.‘그래서일까? 내가 성도윤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 것도.’서은아에게 성도윤은 어둠 속 유일한 한 줄기 빛이었다. 그 빛은 오직 그녀만을 비춰주던 것이었는데 차설아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다.‘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내 모든 걸 빼앗아 간 사람인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냐고!’서은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것을 가로챈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엄마, 한 번 더 할래요! 그림을 그릴
차설아는 약간 비관적인 태도로 말했다.성도윤이 자신과 아이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으며 언제나 그들 곁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약육강식의 세상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만약 성도윤이 이번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앞으로 그 누구든 그들을 함부로 모욕하고 짓밟을 수 있을 터였다. 차설아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굳이 우리 곁을 항상 지키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면 그걸로 충분해요.”차설아는 성도윤의 손을 꼭 잡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성도윤은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힘이 나. 반드시 돌아와서 너랑 아이들한테 편안한 가정을 만들어 줄게.”그렇게 두 사람은 진심을 털어놓으며 서로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그러고 나서 성도윤은 차를 몰고 성대 그룹으로 향했다.차설아는 마당에 남아 그를 기다렸다.하지만 두 아이는 아직 어려서인지 성도윤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상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 아빠는 왜 또 가버렸어요? 또 우리를 버리려는 거예요?”달이는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빠를 많이 좋아하는 달이였기에 반복된 이별은 극도의 불안감을 심어준 듯했다.매번 아빠가 떠날 때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그럴 리가. 아빠는 그냥 일하러 간 것뿐이야. 일만 끝내면 금방 돌아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응?”차설아는 달이를 꼭 안아주며 부드럽게 달랬다.“달이는 아빠가 일 안 했으면 좋겠어요. 주말엔 쉬어야 하는데...”“그렇지만 달이 아빠는 대기업 대표님이시잖아. 많은 직원들을 책임지고 있어. 아빠가 일을 안 하면 그 직원들은 다 굶을 수도 있다는 거야.”“그리고 말이야. 아빠가 일을 안 하면 달이가 좋아하는 예쁜 원피스는 누가 사주고 맛있는 음식과 장난감은 누가 사주겠니?”차설아는 달이가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성도윤이
전화는 진무열이 걸어온 것이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매우 엄중하고 다급했다.“대표님, 지금 어디 계세요? 오늘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인데 꼭 참석하셔야죠! 사람들이 다 기다리고 있습니다.”“오늘?”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제야 이 일을 떠올렸다.성대 그룹의 주주총회는 매년 연말에 열렸는데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행사였다. 그래서 그룹의 운영진들은 이 주주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보름 전부터 철저히 대비했다.성도윤은 성대 그룹의 현직 대표로서 책임지고 연간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총회가 시작된 지 이미 30분이 지났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주주들과 운영진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진무열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는데 성도윤은 이제야 전화를 받았다.“네, 대표님께서 직접 날짜를 오늘로 변경하셨잖아요. 회사 문제에 대해서 의논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주주들도 그렇고 회사 운영진분들도 그렇고 일정을 조정해서 참석해 주셨는데...”“정작 대표님께서 지각을 하신 데다가 전화도 안 받으시니 다들 기분이 많이 상하셨습니다.”진무열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그도 요즘 성도윤이 차설아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 중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따로 전화를 걸어 성도윤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주주총회만큼은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설아가 곁에 있으니 권력과 사업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어진 듯했다.“오늘 바쁘니까 회의 시간을 다른 날로 바꿀 거라고 전해.”성도윤은 단호하게 명령했다.주말인지라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로 약속한 날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 막 차설아와 관계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순간에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다.“아니, 대표님... 바쁘신 건 이해하지만 다른 분들까지 일정 변경을 해야 하는 건 좀 너무 독단적인 결정 아닙니까?”진무열은 용기를 내어 반박했다.
성도윤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누가 많이 먹고 먼저 다 먹으면 그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는 거야. 그런다고 해서 체하면 안 돼. 알겠지?”두 아이는 다시 진지하게 밥을 먹는 것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너희 먼저 먹어. 난 배불러서 잠깐 햇볕 좀 쬐고 올게.”차설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우유 한 잔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당으로 가서 햇볕을 쬐었다.성도윤은 차설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김정민더러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무슨 일이죠, 주인님?”그는 차설아 옆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차설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분명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을 텐데... 내가 한번 맞혀볼까?”성도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혹시 두 아이에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네가 함께 즐겁게 놀아줄 수 없어서?”차설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작은 얼굴에는 마치 어른에게 생각을 간파당했을 때의 아이처럼 놀라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자신이 감정을 꽤 잘 숨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성도윤에게 들키고 말았다.그는 차설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잘 알고 있어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경계해야 할지...’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이해해 버리면 그건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 말이다.“오랜 세월을 함께했잖아. 부부이기도 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고 또 연인이기도 했어. 원수였던 적도 있지만... 내가 어떻게 널 모를 수 있겠어?”성도윤은 차설아 앞에 쭈그려 앉으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그렇게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들이랑 뭘 하는지는 중
“그렇다니까?”서은아는 이를 꽉 깨물며 차갑게 말했다.“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바로 차설아한테로 갔어. 강아지처럼 따라붙더라고. 난 성도윤 얼굴조차 못 봤다니까? 진짜 한심하기도 하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제일 바보인 것 같아. 안 그러면 이렇게 화내면서 극단적인 제안을 할 이유도 없잖아.”“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차설아는 어떤 반응이었어?”성진은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며 계속해서 물었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감정을 감추려 해도 자신이 차설아에 대한 마음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어떤 반응이겠어? 당연히 좋아하겠지.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거잖아.”서은아는 어이없어하며 성진이 뻔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불만을 쏟아내듯 말을 이어갔다.“두 사람은 처음부터 끊어지려야 끊어질 수 없는 사이였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것도 맞긴 하지만 결국 두 사람 사이를 더 깊이 이어준 셈이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바보였던 거야. 어쩌면 우리가 해온 일들도 그들을 돕는 역할밖에 못 했던 거지. 우리는 그저 한낱 도구였을 뿐이라고!”서은아가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단순히 속상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성진의 질투심을 자극해 성도윤과 차설아의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싶었다.“그렇다고?”성진의 눈빛 속에는 점점 더 강한 분노와 불만이 차올랐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럼 본때를 보여줘야지.”“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네가 말한 거잖아.”성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었다.“성도윤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빈털터리로 만들자며?”“그래, 좋아! 또다시 동맹을 맺게 됐네. 솔직히 너라는 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 처리 하나는 잘하니까 말이야. 너랑 손잡는 게 제일 마음이 놓이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서은아는 기분 좋게 말했다.“너도 만만치 않지.”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사랑해서
“눈이 다 나았다고 하길래 특별히 축하해주러 왔지.”서은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진에게 선물을 툭 던져주었다.“이렇게 신경 써주니 참 고맙네.”성진은 선물을 받으며 냉랭하게 말했다.“형이랑 결혼이라도 할 건가?”“성진아, 너 지금 나 가지고 노는 거야? 밖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건 아닐 거고.”서은아는 말하다가 화가 나서 소파를 두 번이나 세게 걷어찼다.“성도윤 그 배은망덕한 놈! 양심이 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내가 서씨 가문의 미래까지 걸고 도왔는데! 그땐 내가 눈이 멀었어.”“그렇게 화낼 것까지야... 나도 한때 그랬었어. 너도 그때 나랑 마찬가지인 거고. 이젠 헛된 꿈에서 깨어나 제대로 앞을 봐야 할 때인 거지.”성진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래. 진작에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근데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이 안 와. 너도 전에 그랬었다며.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어?”서은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녀가 성진을 찾아온 건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다만 성진이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럼 네가 뭘 해줄 수 있는지 말해봐. 원하는 게 뭔데?”“서씨 가문의 모든 걸 이용해서 널 도울 수 있어. 대신 내가 원하는 건 성도윤이 완전히 무너져서 빈털터리가 되는 거야.”“진짜 그렇게 하겠다고? 네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 아니었어?”“내가 독하게 굴지 않으면 성도윤이 깨닫긴 하겠어? 누가 진짜로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하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서은아는 싸늘한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모든 걸 잃어 봐야만 내가 도윤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될 거야.”“재밌는 생각이네...”성진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말해서 만약 차설아가 없었더라면 그는 서은아 같은 여자를 꽤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거침
민이 이모의 말을 들은 성도윤은 계속해서 물었다.“왜 따라 배우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설아의 부모님이 금슬이 좋다고 들어서 무척 부러웠거든요. 저도 설아랑 알콩달콩 지내고 싶어요.”그러자 민이 이모는 미소를 지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금슬이 좋은 부부로 알려진 건 맞지만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부부마다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굳이 따라 배울 필요 없다고 한 거고요. 설아 아가씨랑 지금처럼만 지내시면 돼요.”“그러면 설아 아버지는 예전에 어떤...”“도련님, 죄송하지만 예전의 일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력도 나빠졌거든요.”민이 이모는 성도윤의 말을 잘랐다.“저는 이만 가볼게요. 도련님도 일찍 쉬세요.”문을 열고 나가려던 민이 이모는 뒤돌아서서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혹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해도 밝히지 마세요. 궁금한 게 있더라도 계속 조사하지 마시고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그럴 바에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민이 이모가 나간 뒤, 성도윤은 생각에 잠겼다.‘이모님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비밀에 부친 일을 굳이 조사해 봤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거야. 설아한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몇 분 후, 성도윤은 진무열한테 전화를 걸었다.“저번에 내가 부탁한 건 잠시 멈춰. 아직은 때가 아니야.”한편, 성진의 별장.어두운 불빛과 가라앉은 분위기는 성진의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정말 네가 나한테 두 눈을 기증한 거라고?”성진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기증자의 자료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현청아라는 여자와 사진 속의 여자를 번갈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도련님께 기증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현청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대답했다. 두 눈은 움푹 파였고 성진이 기억하던 그 여자의 목소리와 똑같았다.하지만 성진은 현청아가 수술 전에 얘기를 나누었던 여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