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굳은 얼굴로 성주혁의 앞에 다가가 진지하게 물었다.“동참하다니? 난 계속 신문을 보고 있었어. 난 아무것도 몰라.”“네, 계속 모르는 척하세요. 방금 전기가 그렇게 오래 끊겼는데 어떻게 신문을 보셨죠? 그리고... 좀 그럴듯하게 연기하시죠? 신문을 거꾸로 들고 계시잖아요.”차설아는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차마 까발릴 수 없었다.“음. 그건... 말이야...”성주혁은 그제야 자신이 신문을 거꾸로 들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억지를 부렸다.“늙어서 눈이 침침해서 말이야, 글을 거꾸로 봐야 더 잘 보여!”“그래요? 그 말씀을 제가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차설아는 원래 화가 났지만 성주혁의 이런 모습을 보니 또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성주혁은 그제서야 신문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말했다.“설아야, 우리 수단이 파렴치하다고 생각하지 마. 네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작은 사고를 만들었어...”“하지만 너희들 연기는 나처럼 서투르더구나. 얼렁뚱땅 도윤이 어미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난 절대 못 속여!”성주혁은 비록 나이가 들었고 눈 주위는 주름투성이지만, 웬만한 젊고 건장한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고 예리했다.연기가 들통난 차설아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말했다.“할아버지도 결혼하신 적이 있으니 결혼 생활에 필수 요소가 무엇인지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전에 제가 도윤 씨를 사랑한 건 맞지만,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고, 제 마음은 이미 태양 아래 눈송이처럼 진작 증발해버렸어요. 도윤 씨도 아마 저랑 같은 마음일 거로 생각해요. 저에 대한 감정이 별로 없을 거예요. 서로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두 사람이 어떻게 다시 부부가 되겠어요?”“아니, 넌 도윤이를 몰라. 너 자신은 더더욱 모르고. 너희는 아직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어. 다만...”“할아버지, 그만 하세요. 제 입장은 이미 분명히 말씀드렸고요. 수고스럽겠지만 여사님께 전해주세요. 만약 오늘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저 가만 있지 않아요.”차설아는 차갑게 말하고는
차설아가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두 아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민이 이모는 인기척을 듣고 잠옷을 입고 외투를 걸치고 나왔다.“아가씨, 어디 가셨어요? 아이들이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잠들었어요.”“아, 성씨 저택에 사람을 찾으러 갔더니 오해였더라고요. 성도윤은 물론 성씨 가문 사람들은 원이와 달이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저희가 괜히 오버했어요.”차설아는 어색해서 웃었다.오늘 밤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볼이 저절로 빨개졌다.“확실히 오해였어요. 들어보니 데려간 사람은 아가씨도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바로 며칠 전에 아가씨가 해바라기 섬에 데려간 가면 쓴 미스터 Q라는 사람이었어요. 달이를 수양딸로 인정한 분 말이에요. 그래서 달이가 기뻐하며 따라갔대요.”민이 이모는 아이들에게 들은 모든 것을 차설아에게 말하고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미스터 Q는 아주 좋은 분 같아요. 두 아이 모두 그분을 좋아하고, 그분도 어느 친아버지 못지않게 잘하잖아요.”“그 사람이었군요!”차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제 딸을 유괴해 간 것도 모자라 아들에게까지 손을 뻗다니.저를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안 되겠어요... 더 나대기 전에 시간 내서 제대로 한 번 손 봐야겠어요.”“아가씨, 그럴 필요 없어요. 미스터 Q는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원이가 그러는데 그분이 바로 해안의 유명 셰프라고 하더군요. 케이크를 좋아하는 걸 알고, 이번에 특별히 아이들을 데려가 케이크를 배우러 갔어요. 기다려봐요... 세 사람이 힘을 합쳐 아가씨에게 만들어준 케이크가 아직 냉장고에 있어요. 제가 보여줄게요.”민이 이모는 말하면서 냉장고에서 6인치 정도의 케이크를 가져왔다.무스 케이크로 모양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해바라기 섬이었다. 케이크 중앙에는 세 사람이 크림으로 장식한 글자가 차례로 있었다. ‘선녀 엄마, 항상 행복하세요!”차설아는 그제야 며칠 후면 그녀의 생일이라는 것이 생각났다.두 아이의 따뜻한 마음에 차
원이는 작은 물병을 들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더니 말을 이어갔다.“만약 달이가 다른 남자를 아빠로 여긴다면 전 제일 먼저 나서서 반대할 거예요. 하지만 미스터 Q는 달라요. 진짜 대단한 분이고 우리에게도 인내심 있게 잘한단 말이에요.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라고 했더니 계속 요리를 연습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뭔지 아세요?”“난 몰라. 그냥 좋은 사람이 아니란 것만 알아. 대체 너희들한테 얼마나 많은 세뇌를 시킨 거야!”차설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스터 Q는 평판이 나쁜 악당인데 어떻게 두 아이에게 살갑게 대할 수 있을까?게다가 두 아이는 바보가 아니었다. 모두 똑똑해서 보통 사람들은 그들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가장 중요한 건 나쁜 아빠의 원수라고 들었어요. 만약 미스터 Q와 손잡고 나쁜 아빠를 혼내준다면 엄마는 안전하다고요.”“너...”차설아는 입을 살짝 벌렸고, 차오르던 분노가 복잡한 기분으로 바뀌었다.아직 어린 원이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그리고 원이가 성도윤을 이 정도로 원망할 줄은 더 몰랐다. 차설아 자신보다 성도윤을 싫어하는 듯했다.‘요 녀석 몰래 가십 뉴스들을 챙겨봤나 보네. 아니면 자기 친아빠를 이렇게 미워할 리가 없잖아!’차설아는 원이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원아, 엄마 말 잘 들어. 사실 네 아버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엄마, 마음 약해지신 거예요? 이러시면 곤란해요.”원이는 턱을 움켜쥐고 엄숙한 표정으로 타일렀다.“나쁜 사람이라면 용감하게 싸워서 물리쳐야죠. 아니면 언젠가 우리를 찾아와 해칠 거예요. 엄마가 지금 마음이 약해진다면 앞으로 또 나쁜 아빠에게 괴롭힘당할 거예요. 원이는 절대 그런 꼴 못 봐요.”“음...”차설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원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쯧쯧, 원이가 나보다 더 앞일을 내다볼 줄 아네. 더 똑똑해.’“원이 말이 맞아. 엄마는 반성해야 해. 확실히 나쁜 사람에게 너무 인자해서
차설아는 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는 핸들을 돌려 천신 그룹 본사로 직행했다.천신 그룹은 해안 CBD의 핵심 지역에 있으며 성대 그룹과 한 블록 떨어져 있었다.다만 성대 그룹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고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가장 선명한 차이는 두 그룹의 사무공간이었다.천신 그룹은 단지 두 층만 있었지만, 성대 그룹은 건물 전체가 사무실이었다.차설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8층에 있는 천신 그룹으로 향했다.건물은 개발업자들이 임대하기 때문에 건물 전체에 천신 그룹과 비슷한 규모의 회사가 많았다.차설아는 전에는 회사 배후의 인물로, 원격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 빌딩에 오는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오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침 출근 시간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그녀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낀 채 줄을 섰고, 몸매가 너무 도드라져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앞에서 줄을 서고 있던 평범한 옷차림에 생얼의 두 어린 여자가 도시락을 들고 한창 수군거리고 있었다.“휴, 들었어? 26층 천신 그룹의 배경수 대표님이 자리에서 물러나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는대...”“뭐? 진짜? 경수 도련님이 가셨다고?”어린 여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나는 경수 도련님을 오랫동안 짝사랑했어. 매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려고 30분 전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단 말이야. 만약 경수 대표님이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면 나도 일 그만두고 싶어!”“작작 해. 대표님은 마음에 품고 계신 분이 있단 말이야. 듣자 하니 천신 그룹도 그 여자를 위해 설립한 회사라고 했어. 자신의 주식뿐만 아니라 누나의 주식까지 모두 그 여자에게 넘겨서 지금 천신 그룹은 사실상 그 여자의 천하래. 같은 여자로서... 그 재주가 부럽단 말이야. 아주 대단해!”뒤에서 듣고 있던 차설아는 어리둥절했다.‘경수가 자기 주식뿐만 아니라 누나의 주식까지 나에게 넘겼다고? 제대로 미쳤네. 배경림의 성격에 경수를 때려죽이고도 남았을 텐데? 쯧쯧, 처리해야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네.’그 어
차설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두 여자를 향해 말했다.“이혼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이혼했다고 해서 당신들보다 레벨이 낮은 건 아니죠.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요. 게다가... 여기 있는 모든 여자들은 앞으로 이혼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죠. 저를 비하하면서 언젠가 당신들도 똑같은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 안 하셨나요? 아마 저보다 더 비참할지도 모르죠.”“당... 당신.”두 어린 여자는 목까지 빨개져서 할 말을 잃었다.주위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특히 차설아의 말에 공감하는 기혼 여성들은 손바닥이 저릴 정도였다.“그래요. 아주 맞는 말이에요. 여자들끼리 똘똘 뭉쳐서 교활한 남자들을 상대해야지, 여기서 암투를 버리면 안 되죠!”검은 볼테 안경을 쓰고 포니테일을 높이 올린 한 여자가 허를 찌르는 발언을 했다.차설아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지금 세대에 이런 여자가 많아져야 직장에서 여자의 지위가 높아지는 법이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차설아는 턱을 들고 등을 곧게 펴고는 여왕의 자태로 도도하게 들어갔다.주위에는 아무도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유독 검은 볼테 안경 여자만 용감하게 따라 들어갔다.“몇 층 가세요?”차설아가 먼저 그 여자에게 물었다.“28층이요. 감사합니다.”여자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차설아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어머, 동료네요.”차설아는 미간을 치겨올리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여자는 머리를 정리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아직은 아니에요. 최종 면접 보러 왔어요. 하지만 꼭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자신감 있는 여자가 제일 멋져요. 화이팅!”차설아는 여자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두 사람은 선후로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왔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차설아는 마침 소란을 피우러 온 배경림과 마주쳤다.차설아를 본 배경림은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만난 듯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이 으르렁거렸다.“차설아 씨, 드디어
대표 사무실 안.차설아는 사무용 가죽 의자에 앉아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맞은 편에 앉은 배경림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말해보세요. 절 며칠 동안이나 기다리셨다고 했는데, 원하는 게 뭐죠?”“당연히 내 지분을 돌려받는 거죠!”배경림은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다.차설아는 어깨를 으쓱했다.“좋아요. 부대표님의 지분은 다시 돌려드리죠...”“아니, 아니, 아니. 내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배경림은 안경을 밀더니 예리한 눈으로 말했다.“지금 천신 그룹 처지를 우리 모두 모르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원하는 건 제 명의로 변경할 필요 없이 현금으로 달라는 거예요.”차설아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아주 재밌네요. 하지만 천신 그룹이 지금 어떤 처지이기에 부대표님이 도망갈 준비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꼭 말해야 알아요?”배경림은 진작 불만이 쌓였던지라 하찮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적자가 났던 건 그렇다 치고, 당신이 계속 연구 개발 센터를 건설하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그룹은 점점 부담이 커지고 있어요. 게다가,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이 당신과 성대 그룹 성도윤 대표가 원수지간이라는 걸 아는데, 성대 그룹에 밉보인 당신과 누가 감히 손을 잡겠어요?”“가장 짜증 나는 부분은, 어리석은 내 동생 놈까지 도망친 마당에 내가 계속 천신 그룹의 주식을 갖고있는 건 바보 아니에요?”여자의 불만을 들은 차설아는 화를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모두 맞는 말씀이시네요. 확실히 천신 그룹이 회피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요.”배경림은 입을 삐죽거리고 등을 곧게 세우더니 당당하게 말했다.“요즘 돈 좀 마련했다면서요? 어리석은 동생 놈이 은행에 빚진 돈까지 다 갚아줬다고 하던데, 꽤 능력은 있나 보죠. 그럼 좋은 일 끝까지 한다 치고, 내 구멍도 함께 메꿔줘요. 몇조도 마련하는 설아 씨에게 그 정도 잔돈은 아주 쉬울 거 아니에요?”차설아는 차갑게 말했다.“부대
배경림은 거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600억을 가져야죠. 천신 그룹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내가 미쳤다고 계속 남겠어요?”“연말 주식 배당금이라니, 이 회사가 연말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연말에 파산이라도 하면 저만 손해죠!”배경림은 천신 그룹을 하찮게 여기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4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는 반면, 업계 경쟁사들은 해마다 규모가 커지고 있으니, 회사가 번창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좋아요.”차설아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말을 이었다.“이 주식 양도서에 서명하면, 잠시 후 재무팀에서 돈을 보내드릴 겁니다.”차설아는 주식 양도서를 그녀에게 넘겼다. 마치 이 순간을 예상했던 것 같았다.“설아 씨 이렇게 시원시원한 사람인 줄 몰랐네요!”배경림은 주식 양도서에 재빨리 서명하고는 도도하게 일어섰다.“나 갈게요. 하지만... 우리 곧 만나게 될 거예요.”배경림이 사무실을 나오자, 인사팀 직원이 우물쭈물 밖에 서 있었다.“대... 대표님.”차설아는 문서를 챙기고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그게. 말씀드리기 곤란해서요. 잠깐 나와보시겠어요?”인사팀 직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차설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공공 사무구역에서 한 무리의 직원들이 모여 외치고 있었다.“보상해! 보상해! 보상해!”차설아는 그 소리에 관자놀이가 뛰기 시작했고, 크게 소리쳤다.“다들 그만 해요! 웬 소란이에요!”“대표님이 드디어 나오셨어!”맨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구호를 외치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대표님, 저희는 전에 경수 대표님과 경림 부대표님을 따랐지만, 두 분 모두 가셨으니 저희도 남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전에 우리에게 주식과 배당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왜 저희는 한 푼도 받지 못했죠?”“지금 회사 책임자로 부임하셨으니, 저희가 가기 전에 계약 조항을 이행하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저희는 소송을 걸 수밖에 없습니
여자는 검은 볼테 안경을 밀더니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전 천신 그룹의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생각해요. 비록 지금은 규모가 크지 않고 수익도 나지 않지만 전체적인 사업 구도가 아주 전위적이라고 생각해요. 자체 연구 개발 센터까지 설립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해안 전체에서 감히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동종 회사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고, 성대 그룹이 그중 하나죠...”“그래서 앞으로 천신 그룹은 성대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큰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기에 제가 들어오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여자의 말은 고참직원들의 비웃음을 샀다.홍보팀 책임자는 심지어 대놓고 차설아의 체면을 구겼다.“아가씨, 아직 어려서 대표님을 잘못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모르나 봐요. 우리 대표님은 기댈 수 있는 덕목이 못 돼요. 그저 비참한 운명을 가진 재벌가에서 쫓겨난 이혼녀일 뿐이죠. 지금은 계속 밀어주던 경수 대표님과 경림 부대표님도 돈을 빼돌리고 도망쳤는데, 이것이 무슨 신호인지 모르겠어요?”“여러분들이 떠나는 건 안목이 없어서죠. 전 제 안목을 믿고 설아 대표님의 능력을 더더욱 믿어요!”볼테 안경 여자는 고참 직원의 말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확고한 말투였다.퇴직 절차를 마친 직원들은 차설아가 보는 앞에서 짐을 싸고 바로 떠났다.원래 백여 명의 직원이 있었던 천신 그룹은 지금 십여 명만 남아 있어 보기에 조금 초라했다.“대표님,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저희는 꼭 대표님 곁에 남을 거예요. 저희를 해고하지 않는 이상, 평생 대표님을 위해 일할게요!”마케팅 부서 책임자 장기용은 주먹을 들어 야심 차게 선서했다.그의 행동에 차설아는 아주 감동적이었다.“네, 고마워요 여러분,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그리고, 시선을 검은 볼테 안경 여자에게 돌려 부드럽게 물었다.“이름이 뭐예요?”“제 이름은 서윤입니다. 윤이라고 부르시면 돼요.”“어느 부서에 지원했죠?”“저는 대표님 비서직에 지원했
게스트들은 사도현의 표정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불을 피우러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 같은데요?”옆에서 듣고 있던 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네가 불을 피운다고?”그러고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너처럼 귀하게 자란 도련님들은 장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불을 피우다니, 네가 듣기에도 웃기지 않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방에서 나오는 게 도움이 되겠어.”배경윤은 불을 피우고 진찬영이 요리할 때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몹시 당황했다.‘사도현은 왜 자꾸 끼어들려고 하는 거야! 찬영 오빠랑 같이 경운기를 타려고 할 때, 찬영 오빠랑 미꾸라지를 잡을 때, 찬영 오빠랑 같이 요리하려고 할 때 계속 방해만 하잖아. 명색이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 놈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 거야?’“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불 피우는 건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아니면 여자가 옆에 있어야 요리할 수 있다는 건가? 세상에 그런 바보가 있을 리가 없잖아.”사도현은 팔짱을 낀 채 진찬영을 쳐다보면서 배경윤한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사도현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사도현은 일부러 진찬영을 저격했다.“너 자꾸 함부로 말할 거야?”배경윤은 화가 나서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팬으로서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여우 같은 놈, 여자가 없으면 요리를 못하는 놈이라고 욕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괜찮아요.”진찬영이 피식 웃더니 배경윤의 팔목을 잡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는 배경윤 씨가 옆에서 보고 있어야 안심이 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혼자 하겠다고 설치다가 일을 망치던데요?”진찬영은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도현 씨께서 불을 잘 피울 수 있다고 하셨으니 믿어야죠. 다들 쉬고 계세요. 다 되면 알려드릴게요.”진찬영과 사도현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했다. 마당에 앉아 있던 배
‘윤설만 졸졸 따라다니니까 나 같은 건 우스워 보이는 거겠지.’배경윤이 방에서 나오자 미꾸라지를 한가득 들고 걸어오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진찬영은 모두 가고 나서야 천천히 연못에서 걸어 나왔다. 배경윤이 없는 곳에서는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았고 굳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얼음 왕자 같았다.“찬영 오빠, 얼마나 잡은 거예요? 제 손 잡아요!”배경윤은 환하게 웃으면서 연못가로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굳어있던 진찬영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진찬영은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눈은 괜찮아요?”“그럼요! 흙이 들어갔을 뿐이에요.”“아까는 정말 미안해요. 내가 배경윤 씨를...”진찬영은 말하다가 생각에 잠겼다. 배경윤의 눈에 묻은 흙을 닦아주려고 했지만 갑자기 사도현이 나타나서 배경윤을 안아 올리고는 집으로 달려갔다. 사도현의 눈빛은 진찬영을 향한 도발이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게스트들은 귓속말하면서 구경했다.진찬영은 사도현에게서 배경윤을 빼앗고 싶었지만 결국 꾹 참아야만 했다. 진찬영은 나약하게 물러섰던 자신이 미웠고 마음에 담아둔 여자가 나쁜 남자의 품에 안기게 내버려두었다는 것에 자책했다.‘나의 행복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수는 없어.’생각에 잠긴 진찬영은 3년 전, 배경윤과 처음 만나게 된 날을 떠올렸다.“찬영 오빠!”배경윤은 진찬영 눈앞으로 손을 내저었다. 진찬영이 배경윤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도현과 다름없이 어딘가 애틋했다.“미안해요.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진찬영은 애써 미소를 짓고는 배경윤의 손을 잡고 연못을 빠져나왔다.‘3년 전, 내가 겁쟁이라서 배경윤을 얻지 못했지만 돌고 돌아서 결국 또 만나게 되었어. 배경윤과 나는 운명이었던 거야. 다시는 배경윤을 놓쳐서는 안 돼. 배경윤, 넌 내 여자야.’“미꾸라지를 많이 잡았어요. 배경윤 씨를 위해 추어탕을 할 생각인데, 매운 걸 좋아해요?”진찬영이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저, 저를 위해서요?”배경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진찬영은 다른 사람도
배경윤을 안은 사람은 연못을 빠져나와 마당을 들어섰고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서 천천히 의자에 내려놓았다.“찬영 오빠, 혹시 방으로 들어온 거예요? 우리를 오해하고 누군가가 소문을 내면 어떡해요? 그럼 오빠한테 민폐 끼치는 것 같아서 미안해질 것 같아요.”배경윤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의자에 앉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간신히 웃음을 참는 듯싶더니 입을 틀어막으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주여, 찬영 오빠를 사랑하게 된 지 몇 년 만에 결국 만나게 되었어요. 게다가 지금 단둘이 한 방에 있다니,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요! 찬영 오빠는 역시 얼음 왕자가 맞나봐요. 날 안고 한참을 걸었는데도 힘들다고 투덜거리지도 않았어요. 눈을 감고 있어도 차가운 기운은 잘 느껴지더라고요.’몇 분 후,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배경윤 앞에서 멈추었다. 누군가가 젖은 수건으로 배경윤의 눈과 이마를 세심하게 닦아주었다. 배경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찬영 오빠,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괜찮아요. 우리 둘이 한 방에 있었다는 걸 팬들이 알게 되면 난리 날 거라고요.”“하, 이 와중에 할 말은 다 하면서 그놈한테 안기고 싶어서 쓰러진 척한 거야?”익숙한 목소리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깜짝 놀란 배경윤은 눈을 떴고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저절로 나는 진찬영이 아닌 사도현이 눈앞에 서 있었다.배경윤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눈에 살기가 돌았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내가 여기에 있으면 안 돼?”사도현이 코웃음치고는 말을 이었다.“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널 여기까지 안고 올 것 같아? 도와줘도 욕만 먹는데 나 말고 누가 너를 이렇게 보살펴주겠어!”“찬영 오빠는 어디에 있어? 오빠한테 수작질한 건 아니지?”배경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묵었던 방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문은 굳게 닫혔고 이 방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미꾸라지를 신나게 잡는 사람한테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진찬영은 여우 같은 놈이라고!”
사도현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연못 안에서 재밌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표정이 점점 굳어졌고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다들 재밌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배경윤 씨랑 진찬영 씨는 분명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 했지만 오래 사귄 커플처럼 죽이 척척 맞네요. 진찬영 씨가 생각보다 털털하고 친절해서 신기해요. 남자들이 배경윤 씨만 유독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네요.”윤설은 사도현이 노려보는 쪽을 쳐다보면서 일부러 부채질했다.“경윤이가 매력 있는 여자라서 그래.”침묵하던 사도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윤설을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네가 이렇게 주시하고 있지 않았겠지.”윤설은 당황하더니 말을 버벅거렸다.“그, 그게 무슨...”“내 말이 틀렸어? 입만 열면 배경윤이 누구랑 어울리고 누구랑 친하게 지낸다는 말뿐이었잖아. 결국 네 입으로 네가 배경윤을 감시한다는 것을 밝힌 셈이지. 아니면 너도 배경윤한테 반해서 관심받고 싶은 거야? 이제는 여자랑 만날 생각인가 봐?”“도현 씨, 설마 방금 제가 장난 좀 친 것 갖고 이러는 건가요?”윤설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저는 사실만 말했을 뿐이에요. 배경윤 씨랑 진찬영 씨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요. 두 사람이 커플 같다는 말에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는데 저한테 화풀이하지 마세요. 계속 저를 따라올 필요도 없고요.”“내가 언제 너를 따라왔다고 그래?”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난 처음부터 널 따라온 게 아니야. 진흙이 싫어서 들어가지 않은 거니까 네 멋대로 생각하지 마.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너랑 상관없거든.”“도현 씨!”윤설은 사도현이 쌀쌀맞게 대답하자 화가 솟구쳐 올랐지만 곧바로 무기력해졌다. 아무리 속이고 유혹해도 사도현은 예전처럼 윤설을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았다.연못 안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게스트들은 사도현과 윤설을 쳐다보면서 수군거렸다.“사 대표님은 어쩜 이렇게 다정할까요? 윤설 씨를 지켜주는 수호
배경윤은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들어 진찬영을 바라보았다. 진찬영과 시선이 마주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찬영 오빠가 그걸 어떻게...”배경윤은 처음 만난 진찬영이 어떻게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는지 궁금했다.“내가 어떻게 배경윤 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냐고 묻고 싶은 거죠?”진찬영이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이래 봬도 배우인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배경윤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찬영 오빠한테 계속 못난 모습만 보이는 것 같네요. 오빠가 보기에도 제가 참 바보 같죠?”“그렇지 않아요.”진찬영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배경윤 씨는 내가 여태껏 봐왔던 연예인들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착하고 배려심 깊은 배경윤 씨가 연예인들보다 더 멋져요. 그러니까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세요.”배경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한테 위로받자 기분이 순식간에 좋아졌고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찬영 오빠, 정말 고마워요. 집구경을 시켜줄 테니 잘 따라와요.”배경윤은 이 집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앞장서서 진찬영에게 집구경을 시켜주었다. “여기가 주방이에요. 주로 이곳에서 요리하거든요. 그리고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외양간인데 이 암소 콩순이가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가까이 가면 안 돼요. 아, 이곳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인데 심심하면 해먹에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어요. 맞은 편에 있는 연못 안에 미꾸라지가 많다고 들었어요. 다음에 제가 가득 잡아서 맛있는 요리를 해드릴게요.”진찬영은 배경윤의 뒤를 따라가면서 두리번거렸다. 그저 은인인 장윤태한테 보답하기 위해 출연하려고 했지만 정작 촬영 장소에 와보니 흥미가 생겼다.“미꾸라지를 잡는다고요?”진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지금 잡을래요?”“지금요?”“네!”“찬영 오빠, 미꾸라지 잡을 줄 알아요? 진흙이 오빠의 옷이거나 머리에 묻을 수도 있거든요. 정말 괜찮겠어요?”“여기까지 온 마당에 못할 게 뭐 있겠어요. 추어탕을 만들어 먹어도 좋겠네요. 그래요! 오
“진찬영이 온다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같이 녹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이참에 진찬영한테 잘 보여서...”“잘 보여도 소용없어요. 진찬영이 얼마나 차갑게 구는지 몰라서 그래요? 가까이 다가갔다가 기세에 눌려서 말도 못 꺼낸다니까요.”게스트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진찬영과 장윤태가 경운기에서 내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역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람이라 그런지 정말 멋지네요. 어떻게 경운기에서 내리는 모습까지 멋있을 수 있죠? 너무 완벽하잖아요.”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걸그룹 리더 민지가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진찬영 씨, 이곳에 온 걸 환영해요! 먼 길 오시느라 수고했어요. 제가 짐을 들어드릴게요!”민지가 진찬영의 가방을 들어주려고 하자 진찬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차갑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저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게 싫어서요.”“아, 죄송해요...”민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얼음 왕자 같은 사람이라더니,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거절하는 모습도 멋져!’배경윤은 경운기를 주차하고는 차에서 내렸고 진찬영이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달려갔다.“찬영 오빠, 손님으로 오셨는데 가방까지 들게 할 수는 없죠. 이리 줘요! 저 보기보다 힘세거든요.”“고마워요. 가방이 무거워서 괜히 미안하네요.”진찬영이 부드럽게 말하면서 배경윤에게 가방을 건넸다. 그러고는 미소를 짓더니 배경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여자 연예인들은 질투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게 싫다면서 왜 저 여자한테는 가방을 주는 거야!”민지는 씩씩거리면서 배경윤을 노려보았다. 이때 사도현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저런 컨셉인 걸 어떡해요?”“아, 사 대표님. 안녕하세요.”민지는 사도현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환하게 웃었다.‘진찬영은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사 대표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으니
차에 오른 배경윤은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뒷좌석에는 두 사람이 앉을만한 자리가 남아있었고 운전석에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배경윤은 조심스럽게 진찬영한테 말을 걸었다.“찬영 오빠, 혹시 괜찮다면 제 옆에 앉을래요? 저 운전 잘해서 차가 뒤집어질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 오늘 아침에 씻어서 머리에서 냄새도 안 나요!”진찬영은 배경윤의 말에 웃더니 배경윤이 사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햇볕 아래 진찬영은 더욱 빛났고 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차가 뒤집어져도 괜찮으니 편하게 운전해요.”“차가 뒤집어지면 안 되죠!”사도현은 진찬영을 뒤로 하고 운전석에 앉으면서 말했다.“진찬영 씨는 얼굴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인데 위험한 자리에 앉으면 안 되지. 난 얼굴이 아니어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여기 앉아도 돼.”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내 옆에 앉았다는 건 각오했다는 뜻이지?”진찬영은 배경윤과 사도현을 번갈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사도현 씨가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뒤에 앉을게요.”“진찬영 씨는 눈치도 빠르네요.”사도현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진찬영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사도현을 쳐다보더니 도발했다.“어차피 앞으로 배경윤 씨랑 계속 같이 앉을 텐데요.”장윤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눈치를 보았다.“경, 경운기 조수석에 제가 타도 될 것 같은데요. 바람도 쐬고 좋죠!”한 사람은 연예계를 주름잡고 있는 회사 대표이고 한 사람은 연예계 톱스타였기에 일개 예능 감독인 장윤태는 두 사람한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난 허락한 적 없는데요?”사도현은 장윤태를 째려보면서 조수석이 아닌 황위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예민하게 굴었다. 진찬영은 장윤태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윤태 형, 왜 사서 고생이에요?”“그러게 말이야. 괜히 나섰다가 눈치만 보게 되었네.”장윤태는 뒷좌석에 올라타고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배경윤은 고개를 돌려 사도현을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비가 와서 바닥에 물이 고였던데 그거나 핥아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사도현은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강아지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았다. 화가 난 사도현은 경운기에서 뛰어내렸고 배경윤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두 사람은 함께 매점으로 들어갔고 배경윤은 진찬영을 위해 비싼 생수를 찾고 있었다.“제일 좋고 비싼 물로 주세요. 제일 좋은 걸로요!”배경윤은 진찬영이 평소에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기름과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적게 먹고 깨끗하고 고급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물만 마셨다. 하지만 마을 매점에는 일반 생수밖에 없었기에 비싼 생수를 살 수 없었다.배경윤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5만 원짜리를 여러 장 꺼내면서 말했다.“이 돈으로 비싼 생수를 주문해 주세요. 저의 오빠가 그런 생수만 마시거든요.”사도현은 매점의 진열대에 기대고는 팔짱을 낀 채 차갑게 말했다.“입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비싸고 말고 할 게 뭐 있다고 그래? 다 같은 거 아니야?”“네가 뭘 안다고 그래!”배경윤은 사도현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생수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야. 어떤 생수는 살짝 단맛이 맴돌아서 마실 때마다 기분이 좋지만 어떤 생수는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악취만 나서 입도 대기 싫거든.”배경윤은 분명 생수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만 얼핏 들으면 나쁜 남자를 악취 나는 생수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사도현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넌 아직도 참 순진하구나? 물도 겉면만 보면 안 되지만 사람은 더더욱 그래. 아까 그 진춘영인지 진찬영인지 하는 놈도 말이야! 겸손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따뜻한 사람이라고? 내가 보기에는 돈을 벌기 위해 너처럼 재벌가에서 자란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를 유혹해서 사기 치려는 거야. 넌 또 바보처럼 웃으면서 좋아하더라. 그럴 거면 차라리 네 재산을 아예 다 주지 그래?”“사도현, 찬영 오빠는 내가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이야. 그러니까 함부로 찬영
진찬영은 배경윤 앞으로 걸어가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혹시 장 감독님이 얘기하신 배경윤 씨인가요? 독특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아, 네! 저 맞아요.”배경윤은 고개를 들고 맑은 호숫가를 담은 듯한 진찬영의 두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멍하니 바라보면서 넋을 잃었다.‘역시 찬영 오빠는 잘생겼어. 어떻게 사람이 조각보다 더 각진 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 더 잘생겼다고! 신이 공을 들여 만든 사람이 바로 찬영 오빠일까?’배경윤이 진찬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진찬영은 먼저 손을 내밀면서 입을 열었다.“그럼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겨우 진찬영의 손을 잡았다. 진찬영의 손은 차가웠지만 배경윤의 손에 땀이 흥건해서 어쩐지 낯부끄러웠다. 손을 잡는 순간, 배경윤은 이곳이 천국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앞으로 일주일 동안 손을 씻지 말아야겠어!’“잘, 잘 부탁드려요!”배경윤은 잔뜩 긴장한 채 말하더니 들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조심스럽게 건넸다.“이건 제가 길가에서 꺾은 들꽃인데 찬영 오빠한테 드릴게요. 들꽃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저의 마음을 담았어요.”“들꽃이라고요?”진찬영은 꽃다발을 건네받고 천천히 냄새를 맡아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주인공을 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빛이 났다.“많은 꽃다발을 선물 받았었지만 이런 들꽃은 처음이라 기뻐요. 이렇게 예쁜 들꽃을 선물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 마음 소중히 간직할게요.”“괜, 괜찮아요! 마음에 든다면 매일 산에 올라가서 들꽃을 따다 줄게요!”배경윤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헤프게 웃었다. 경운기 뒤에 앉은 사도현은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째려보더니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화가 난 사도현은 곁에 앉아 있는 장윤태를 향해 말했다.“진찬영인지 진천영인지 겸손하다면서요? 그런 놈이 나처럼 여자를 많이 만나본 사람보다 더 능숙하게 여자를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