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여자요?”차설아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그 늙은이들의 뼈를 내가 다 삼킬 수 있길 기도해야죠!”“대단해! 아주 용감해. 난 무조건 설아쨩을 응원해.”사도현은 자신만만한 차설아를 보며 존경하는 마음이 마구 솟구쳐올랐다.차설아는 계속 말을 이었다.“솔직히, 해안 전체에서 제가 유일하게 꺼리는 건 성도윤 한 사람뿐이에요. 그런데 성도윤이 사라졌으니, 그 늙은이들은 결국 내 손바닥 안이죠.”아주 오만한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럴만한 저력이 있었다.“그러고 보니 도윤이 형이 진짜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는 거네? 쯧쯧... 우리 형은 설아쨩에게 진심이었는데, 설아쨩은 죽기를 바라고 있다니.”“진심이었다고요?”차설아는 코웃음을 쳤다.“그런 터무니 없는 말을 하면 양심에 찔리지도 않아요? 그것도 성도윤의 진심이라면, 차라리 도현 씨에게 양보할게요. 어때요?”“도윤이 형에게 화났다는 거 알아. 하지만 형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 두 사람 사이에는 오해가 있다고. 그 오해 때문에 4년 동안 서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그만 해요!”차설아는 귀찮다는 듯 사도현의 말을 자르고 차갑게 말했다.“이미 죽은 사람이에요.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시 지나간 상처를 들출 뿐이죠...”“만약 형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럼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어?”사도현이 또 한 번 물었다.이 대답은 그뿐만 아니라 성도윤도 궁금할 것이다.차설아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딱 잘라 말했다.“아니요!”애초에 성도윤과 화해한 것은 그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만약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바보처럼 놀아난 것이 되니 더 증오하게 될 것이다.“그래. 두 사람 사이 참 복잡해. 옆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도움이 안 돼...”사도현은 연신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왜 계속 저한테만 물어요? 들어보니 도현 씨도 요 몇 년 동안 사랑앓이 좀 했다면서요? 어린 여자에게 사로잡혀 도현 씨답지 않은
현장은 떠들썩해지더니,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상황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차설아와 사도현도 잡담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무대 위를 응시했다.성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더니 허리를 굽혀 성명원을 향해 초청하는 자세를 취했다.“큰아버지 말씀이 일리가 있어요. 지금 큰아버지는 성대 그룹의 지분만 소유하고 실권은 없지만, 성씨 가문에서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지위가 가장 높으신 분이니 이 자리는 제가 내어주는 게 맞죠.”성명원은 체면치레를 부릴 겨를도 없이 언론사들 앞에서 말했다.“내가 그 자리에 앉겠다고 이 난리를 피우는 줄 알아? 성대 그룹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뒤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옛날 같았으면 권력 찬탈을 꾀한 죄로 바로 처형감이야!”“큰아버지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전 단지 도윤이 형에게 일이 생겨 회사에 우두머리가 없으니 해외에서 바로 달려온 것뿐이에요. 뒤숭숭한 회사 분위기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사회에서 다들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저는 상황에 떠밀려 그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성진은 두 손을 내 흔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처럼 말했다.거의 폭발 직전이었던 성명원은 그의 말을 듣고 제대로 폭발해버렸다.“교활한 놈.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인정할 용기는 없나 보지?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 대체 어떤 사람들의 결정이야? 사람들을 매수하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은 거야?”성명원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성대 그룹의 몇몇 이사진들을 바라보았다.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허영생이었다.허영생의 아버지는 당시 차설아의 할아버지와 함께 전쟁에서 싸우던 전우였고, 할아버지를 보좌하여 성대 그룹을 설립했다. 허영생도 함께 성대 그룹에 들어와 이사회의 6대 구성원 중 한 명이 되었고, 늘 성도윤에게 충성하고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하지만 오늘 그는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자네는 이미 물러났으니 성대 그룹이 어떻게 발전하든
“아니에요!”차설아는 차갑게 부정했다.“그저 제 의견을 말했을 뿐이지 그 인간이랑 전혀 상관없어요.”기자 회견은 현장 인원의 조정하에 계속 진행되었다.성대 그룹의 홍보 부서 관계자는 현재 그룹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 그룹의 재력과 조직 구도를 언론에 소개했다.마지막으로 홍보 부서는 언론을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성대 그룹은 곧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성대 그룹 이사회와 각 대주주가 공동으로 선출한 신임 대표 성진 씨를 앞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현장에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전 성도윤의 기자 회견에 절대 뒤지지 않는 분위기였다.성진은 언론을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성대 그룹은 지금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성대 그룹의 미래와 해안 전체를 위해 저는 기꺼이 성대 그룹의 대표 자리를 도맡아...”이때 사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도발했다.“성대 그룹의 대표는 성도윤 아닌가요? 성도윤이 이끄는 그룹은 해가 갈수록 번창하고 있는데 당신이 무슨 근거로 인계한다는 거죠? 성도윤 대표의 의견은 물어본 적 있나요?”성진은 웃으며 말했다.“아주 중요한 부분을 캐치하셨네요. 안 그래도 여러분께 자세히 설명하려고 했습니다.”“우선, 이사회와 각 주주의 투표 결과로 저는 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6명의 이사진들 중, 찬성 3표, 기권 1표, 반대 2표로 주주 과반수가 이사회의 결정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들이 선임한 대표로...”“하하, 웃기네!”사도현은 바로 말을 이었다.“내 기억이 맞는다면 성대 그룹의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사람은 성도윤 대표예요.그 말은 성도윤이 스스로 자신을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는 건가요?”“좋아요,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마 많은 분의 큰 관심사이기도 하겠죠. 왜 도윤이 형이 자신을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렸는지 말이에요.”여기까지 말한 성진은 뜸을 들였고, 모든 사람은 숨죽여 기다렸다.엄밀히 말하면 이건 비밀이 아니라 진작 떠돌고 다니는 소문이었
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쳐다보았고, 차설아도 홱 돌아보았다.성도윤은 도도한 신처럼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모두의 주목을 받던 성진은 성도윤의 출현으로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졌다. 원래도 절정에 달했던 현장의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고 플래시램프가 터졌고 셔터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찔렀다.“어떻게... 성도윤... 분명...”성진은 귀신을 본 듯 창백한 얼굴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방금까지의 의기양양함을 잃은 모습이었다.성도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부사장의 표정을 보니 아주 실망한 모습이네?”옆에 앉아 있던 고위층과 주주들의 표정은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있었다.성진을 지지하던 고위층들은 하나같이 의자 등에 몸을 붙이고 식은땀을 흘리며 감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반면 끝까지 성도윤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였다.“대표님은 절대 지지 않는 태양, 불사의 몸이라 분명 돌아오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너무 조급해, 대표님에게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저 쓸모없는 인간을 지지하면서 대표 자리에 앉혔어요!”성도윤은 웃으며 말했다.“성인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죠. 만약 틀린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를 감수해야죠. 안 그래요? 영생 아저씨?”허영생의 표정은 아주 어두웠다. 이마의 식은땀이 흰 머리카락을 타고 끊임없이 내려와 셔츠를 적셨다.성도윤이 ‘기사회생’한 순간 부터, 그는 이 바둑알을 되돌릴 수 없고 철저하게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맞아요. 반드시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죠. 저를 어떻게 처분하든 마음대로 하세요!”허영생의 표정은 이미 죽을상이었고 자포자기해서 말했다.성진은 여전히 대표 자리에 앉아서 혐오스러운 눈으로 성도윤을 죽을 듯이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역시, 성도윤이야. 기사회생해서 돌아오다니. 대단해!”성도윤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잘생긴 얼굴에는 비아냥거림과 경멸로 가득 찼다.“네 수법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네 뒤에 있
무대 위의 그는 눈부시게 빛나고, 타고난 리더십으로 눈을 뗄 수 없었다.유명 매체의 기자들은 처음부터 빅뉴스만 만들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의 인격적 매력에 푹 빠져 기록하는 걸 잊어버릴 정도였다.차설아는 수백 명의 하객들 사이에 앉아 냉랭한 눈빛으로 무대 위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손가락을 세게 잡자 손톱이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성도윤, 아직 죽지 않았다니!’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의기양양하고 더욱 안하무인이었다.애석하게도 그동안 그녀가 흘린 눈물과 괴로움은 전혀 가치가 없었다. 그녀가 느낀 죄책감들은 더욱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사도현은 다리를 꼬고 진작부터 짐작한 듯 히죽히죽 웃었다.“도윤 형의 이 계획 정말 끝내주는 군. 정말 훌륭해. 성진 그놈 체면이 서지 않겠지? 아주 통쾌하네. 이렇게 오랫동안 외부에서 형에 대해 함부로 썼는데 한 번도 얼굴을 내비추지 않다니... 원수를 갚기 위해 온갖 괴로움을 견뎌 복수에 성공한 것과 비슷해.”차설아가 물었다.“도윤 씨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당신뿐만 아니라 성명원도 알고 있었나요?”“당연하지. 이렇게 중요한 일을 도윤 형은 분명히 우리 형제들에게 넌지시 알려줘. 우리가 도윤 형을 걱정하거나 충동적으로 성진 그 녀석을 암살하지 않도록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성진 뒤에 있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없으니까...”사도현이 여기까지 말하자 조금 의아했다.“설마 너 정말 그런 줄 알았던 거야? 도윤 형이 미리 알려 주지 않았어?”차설아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럴 리가 없겠는데. 이렇게 큰 일을 도윤 형이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 넌데, 너에게 암시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어. 이 바보가 네가 걱정하고 괴로워한다는 걸 모를리 없어.”사도현은 성도윤이 이 일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고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차설아는 자신이 오버했던 것에 대해 씁쓸하게 웃었다.“도윤 씨에게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슨 결정을 내리든 내가 어떻게
“차설아 씨, 최근에 배씨 가문의 배경수 씨를 대신하여 ‘천신 그룹’ 회장직을 맡았다고 들었습니다. 당신과 성 대표님은 특별한 사이이신데 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으신가요? 두 그룹은 경쟁하는 사이가 되실 건가요 아니면 합작하여 윈윈 하는 사이가 될 건가요?”취재진은 관무재경 방송국에서 온 기자로 질문이 아주 날카로웠다.차설아의 정서는 아직 성도윤에 대한 깊은 원망 속에 머물러 있었다. 눈빛도 칼날같이 무대 위의 성도윤을 향해 매섭게 쳐다봤다.하지만 성도윤은 그녀와 다르게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고, 그녀를 보는 눈빛은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큼이나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특별한 관계'는 심지어 일부 잘 아는 비즈니스 파트너와 비교도 안된다.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살상력은 백 퍼센트이며 한 사람의 자존심을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차설아는 손을 꽉 쥐며 냉소했다.“비즈니스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으며 영원한 이익만 존재해요. 만약 성대표님이 저를 이끌어 돈을 벌 수만 있다면 그것이 협력이고 윈윈이에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경쟁하는 사이가 되는 건 시간문제예요.”이 말이 나오자, 현장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옆에 있던 사도현도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쨩, 적당히 해. 고작 천신 그룹의 힘을 가지고 감히 성대 그룹에 도전하다니. 일부러 사람들에게 농담을 해서 분위기를 띄우려는 거야?”다른 사람들이 말을 꺼낸다면 더욱 듣기 거북하겠지만 차설아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개미인 것처럼, 순진한 망상으로 성대 그룹이라는 큰 나무를 흔들려고 했다.성대 그룹의 한 고위층 령도도 웃음을 참으며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차설아 씨, 우리 성 대표님의 전처이셔서 신분이 좀 특별하다는건 알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이고 인정은 인정이에요. 성대 그룹은 아마 천신 그룹과 같은 작은 규모의 회사와 협력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런 작은 회사는 더더욱 성대 그룹의 상대가 될 수 없죠. 그러니 경쟁하는 사이든 합작하는 사이
차설아는 화장실에 앉아 화가 나서 발끝으로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성도윤을 모질게 저주했다.“나쁜 놈, 그렇게 죽기를 바라 무덤도 지어놓다니. 에잇, 물 마시다가 사레들려 죽고, 밥 먹다가 배불러 죽고, 핸드폰 보다가 벼락 맞아 죽고, 걸어가다가 구덩이를 밟아 죽어...”그때 옆칸에서 여자들의 수다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정품은 역시 정품이네,짝퉁보다 훨씬 나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성진에게 잠시 반했지만 성 대표님이 돌아오자마자 성진은 아무것도 아니네. 사람과 사람의 격차는 때때로 사람과 개의 격차보다 커. 성 대표님은 정말 완벽하다니까, 나 정말 성도윤 대표님한테 시집가고 싶어.”“꿈도 꾸지 마, 성 대표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네 차례가 오겠어, 주제넘지 마...”“사랑? 전 둘째 사모님을 말하는 거야?”“아니, 성대 그룹 대표님이 4년 동안 보호해 주신 백련 임채원말이야. 하지만 최근에 들은 소식인데, 임채원이 실종돼서 성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 찾고 있대. 만약 이 백련이 사라지면 너에게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전 둘째 사모님에 대해 말하자면, 방금 성 대표님이 차설아에 대한 냉담한 태도 봤지? 죽을 만큼 싫어하고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차설아는 듣자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녀는 칸막이를 나와 바로 그 두 칸의 가림막 두 발로 걷어차고 차갑게 말했다.“너희들, 말 똑바로 해, 애초에 내가 성도윤을 원하지 않았고 내가 죽을 만큼 싫어했어. 그런데 어떻게 나를 싫어할 차례가 오겠어? 만약 그때가 온다해도 그 인간 같은 냉혈동물은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신발 시중을 들어야 해. 하지만 내가 거치적거리다고 싫어하겠지.”여자 화장실에는 다른 여자들도 있었는데, 유명한 언론인과 다른 종업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모두들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예전의 얌전하고 단정한 며느리가 성도윤을 죽도록 사랑했는데, 어찌 사석에서 이리 건방지고 오만방자한 거지?“뭘 봐, 내 말이 틀렸어? 성도윤 그 사람은 하루 종
남자 화장실 안, 변기 앞에 남자 몇 명이 소변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여자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사레들 뻔했고, 모두 두 손으로 가랑이를 막았다.“너, 너, 너...”차설아는 한창 화가 나서 매우 오만한 태도로 그 무리의 남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뭘 봐, 여자가 남자 화장실에 들어온 걸 처음 봐? 꺼져!”늠름한 남자들은 아마 이렇게 사나운 여자를 본 적이 없어 하나둘씩 지퍼를 올리고 뛰쳐나갔다.다만 가장 안쪽 자리의 성도윤이 꼿꼿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차갑고 완벽한 조각처럼 변기 앞에 서도 기질이 우월하고 비길 데 없이 높아 보였다.남자는 아직 볼일을 보지 못한 채로 차설아를 차갑게 바라보았으며 눈빛은 날카로웠다.“무슨 일 있어?”한 마디에 차설아는 목이 메어 화가 치밀어올라 마치 터질 듯 한 복어처럼 뾰로통한 모습으로 차갑게 질문했다.“허? 무슨 일? 당신 왜 모르는 척 해, 나한테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고?”“할 말이 있으면 빨리 말해. 여기 기자가 많은데 당신은 남자 화장실까지 쫓아왔으니 타당하지 않아.”성도윤은 미적지근하게 말했다.지나치게 담담한 감정이 마치 차설아의 유치함과 광기를 비웃는 듯했다.차설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주먹으로 앞에 있는 남자의 이목구비를 비뚤어지게 때리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다.‘이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야박한 남자가 있을 수 있는 거지? 로봇인가? 그래서 마음이 없나?’“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야 하지 않겠어?”차설아는 성도윤에게 손을 대고 싶은 것을 참고 성도윤과 담담하게 소통을 시도했다.“나는 달리 설명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성도윤은 눈빛이 쌀쌀했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담담했다.“보다시피 성대 그룹의 나쁜 성분들을 제거해야 해. 난 그저 작은 계략을 세워 그것들을 쫓았을 뿐이야. ”“그리고... 끝이야?”차설아는 남자의 냉랭한 모습을 보며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 자기를 비웃었다.“그래서 당신은 나를 구해줬어도 전혀 불행을 당하지 않
박서영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기꺼이 두 눈을 내놓을 생각이 있으신가요?”그녀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제가 성진한테 빚진 걸 갚는 거예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어요.”차설아가 말했다.“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처리하세요.”거짓말할 마음도 없는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항상 성진의 헌신 덕분에 남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처럼 느꼈고, 가끔 즐거울 때도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이 기간에 성진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어떤 어둠 속에 처해있을지, 어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어쩌면 원수의 손에 잡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치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어떤 방법으로 무사하다고 전할 건데요?”박서영은 차설아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SNS에 올리면 되죠.”차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했을 때 SNS를 올릴 마음이 있겠어요? 제가 SNS를 올려버리면 적어도 제가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SNS만 올리게요?”박서영은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SNS면 충분해요.”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차성철도, 배경윤도, 선우 시원도 각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신경쓸 새도 없었다.이럴 때 SNS를 올리면 최소한 무사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좋아요. SNS 올리는 것만은 허락해 줄게요.”박서영이 여러 번 고민
“하하. 성도윤 씨랑 데이트하고, 선우가문의 도련님과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고, 배씨 가문 도련님과 술 마시는 시간은 있으면서 저희 도련님을 찾을 시간은 없었나 보죠? 저희 도련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빴나 봐요.”서영이 흥분한 나머지 차설아의 목을 직접 움켜잡으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신이 성도윤 씨랑 얽히고설켜 있을 때, 저희 도련님은 좌절감에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했어요.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아무리 칼날을 숨겨봤자 어떻게든 찾더라고요.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약해빠져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요. 알아요?”차설아는 저항하지도 않고 박서영이 자기 목을 조르는 대로 놔두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흥. 절대로 당신이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박서영은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이 저택으로 데려온 거예요.”“켁! 켁! 켁!”차설아는 잠깐의 질식 때문에 기침하면서 숨을 헐떡이며 박서영에게 물었다.“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기를 원해요?”“아주 간단해요. 저희 도련님의 시력을 돌려주면 돼요.”박서영은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동안 저는 도련님을 위해 거부반응이 없고 잘 맞는 한 쌍의 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설아 씨의 건강 검진 데이터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두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침 저희 도련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설아 씨의 눈을 저희 도련님의 눈과 바꾸는 거 어렵지 않겠죠?”차설아는 박서영의 최종목적을 듣고 침묵하고 말았다.“제 눈이 정말 성진한테 맞나요?”그때 성도윤이 실명했을 때도 눈을 물색하고 다녔는데 오직 혈연관계가 있는 성진의 눈만 거부반응이 없었다.그때는 성도윤이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성진을 신경 쓰지도 못했다.하지만 마음의 빚 때문에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만약 자기 눈으로 성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 때문이라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
진찬영은 사도현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경윤 씨한테 물어봤어요? 당신과 저 사이에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지.”사도현은 말을 끝내자마자 진찬영의 품에서 배경윤을 뺏어오려고 했다.이때 이미 힘이 풀린 배경윤이 입술이 약간 창백해져서 말했다.“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계속 싸웠다간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빨리... 저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배경윤은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근처 병원의 환자 침대에 누워있었다.병상 앞에는 사도현과 진찬영이 앉아있었고, 분위기는 쓰러지기 전과 같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죽은 목숨이 아니었다.“경윤아, 깼어? 목말라? 물 따라줄까?”배경윤이 눈을 뜨자, 진찬영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이틀 동안 혼수상태였는데, 목마르냐고 묻는 시간에 이미 다 마셨겠어요.”사도현이 이 말을 할 때, 진찬영은 이미 따뜻한 물을 배경윤한테 건넸다.배경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오른손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내... 내 손...”그녀는 침을 삼키면서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손을 절단해야 하는 건가? 이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걸까?’“걱정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마비된 느낌이 들 거예요.”진찬영은 부드럽게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아... 깜짝 놀랐잖아요.”배경윤은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도현은 배경윤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면서 대뜸 말했다.“24시간 이내에 독을 깨끗이 배출하지 못하면 신경이 마비되어 절단해야 할수도 있어.”“푸!”배경윤은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뿜어내고 말았다.“뭐라고?”긴장한 채로 사도현을 쳐다보던 배경윤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만약 손을 정말 절단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직도 이해 못 했어? 독이 말끔히 없어지기 전까진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