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흥분해서 택이를 옹호했다.차설아는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택이가 몸을 흔드는 것을 보고, 그는 이 업계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탱탱한 엉덩이, 얇고 붉은 입술, 마이크를 잡은 긴 손가락... 여자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했다.“멋져! 택이! 택이! 택이!”차설아는 알코올의 작용으로 평소와는 전혀 다른 인격을 방출했다. 주변 여자들을 따라서 무대 위의 남자들을 향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어쩌면 이것이 여자들이 진정 긴장을 푸는 순간일지도 모른다.완전히 자신을 놓아버린 차설아의 모습에 배경윤은 조금 놀랐다.‘언니도 이런 스타일을 좋아했구나... 진작 좀 말하지! 기다려봐!’공연이 끝난 후, 택이는 무대에서 내려왔고 모두 앵콜을 외쳤다.차설아는 너무 열정적으로 뛰어서 이미 숨이 차고 땀이 피어올랐다.그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차설아는 갈증을 풀기 위해 술 한 병을 비웠다. 이미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소파에 주저앉았다.“언니, 저 택이라는 남자 어때?”“죽이지. 완전 매력 있어. 보는데 심장이 뜨거워지더라니까?”“그래? 그럼 기다려!”배경윤은 차설아가 모처럼 성도윤을 제외한 남자에게 이렇게 관심을 보이자, 차설아가 빨리 지나간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백스테이지로 가서 택이를 찾았다.“거기, 우리 언니가 너한테 관심이 좀 있어. 이 카드에 1억이 들어 있어. 오늘 밤 언니를 잘 위로해주고, 기쁘게 해주되, 절대 몸에 손대면 안 돼. 어때, 해볼래?”배경윤은 카드를 듬직한 남자의 가슴에 갖다 붙이며 패기 있게 물었다.택이는 여전히 가면을 쓰고 섹시한 입술로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사실 방금 공연할 때 그는 이 두 여자를 주의 깊게 봤었다. 특히 매우 활기차게 뛰어노는 얼음공주 미녀는 왠지 모르게 그를 설레게 했고,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택이는 카드를 손에 쥐고 물었다.“만약 그분이 저를 만진다면요?”“그것도 안 돼!”배경윤은 조금 취하기는 했지만, 머리는 또렷했다.“난 언니한테
차설아는 남자의 품에 안겨 가녀린 두 팔로 남자의 목을 껴안으며 흐리멍덩하게 말했다.“아, 역시 프로야. 꽤 야성미가 있는걸? 이렇게 날 안아주다니! 역시 여자의 맘을 잘 알아!”여자는 여세를 몰아 남자의 얼굴을 한 번 더 만졌다.그의 강인한 턱은 아주 멋있었다. 그 위에 푸르스름한 턱수염은 좀 뜨거웠지만, 남성호르몬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차설아는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눈빛을 받으며 남자에게 안겨 바의 고급스러운 개인 룸으로 들어갔다.이 룸의 인테리어와 조명은 모두 야릇하고 한가운데에 큰 원형의 물침대가 놓여 있었다. 부자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곳이었다. 룸에 들어온 차설아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거야? 너 혹시 몸까지 파는 애였어? 누나가 오늘 돈을 안 챙겨왔어. 이만 내려줘.”차설아는 취한 듯 안 취한 듯 남자의 품에서 허우적대며, 자신의 강직한 이미지도 챙겼다.“누나는 정도가 있는 사람이야. 네가 아무리 내 스타일이긴 하지만, 절대 공짜를 탐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누나는 보통 함부로 행동하지 않아. 만약 함부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으면... 넌 당해내지 못할걸?”여자는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남자의 완벽한 얼굴을 꼬집고, 바보처럼 웃었다.“너처럼 얼굴이 희고 예쁜 남자는 밖에서 여자를 조심하라고 엄마가 안 알려줬어?”“작작 하세요.”남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딱딱했지만, 부드러움을 띠고 있었다. 차설아를 소파 위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물었다.“목 안 말라요? 물 따라 줄까요?”남자가 일어서자마자, 차설아는 코알라처럼 남자의 기다란 팔을 껴안고 칭얼댔다.“엄마, 가지 마. 나 목 안 말라. 나 술 마시고 싶어.”‘엄마?’남자의 얇고 차가운 입술이 눈에 띄게 경련을 일으켰다.‘이 여자가... 대체 술을 얼마나 마셨기에 이 지경이 된 거야?’그는 차갑게 물었다.“날 당신 엄마로 착각한 거예요?”“뭐야? 왜 갑자기 무섭게 말을 해. 떽! 착하지.”남자는 어이가 없었다.차설아는 흐리멍덩한 눈
남자의 가면 아래, 눈동자는 깊고 밝았다. 선을 넘는 말이었지만, 경박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이 묻어있었다.순간, 차설아는 마음이 흔들렸다. 남자와 눈을 마주치니 몸에 전류가 흘렀고 취기가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휴, 쯧쯧. 역시 프로는 남달라. 말을 예쁘게 하면서 사람 마음을 제대로 홀리네. 하지만... 가짜는 결국 가짜야. 내 전남편은 이미 죽었어. 네가 아무리 그 사람을 닮았다고 해도, 그저 죽은 사람을 닮은 것뿐이야.”남자의 차갑던 입꼬리는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변했다.“이렇게 슬퍼하는 걸 보니 전남편을 많이 사랑하나 봐요? 그 사람의 죽음 때문에 많이 힘든가요?”“그럴 정도는 아니야!”차설아는 술 트림을 하고 머리가 어지러워 소파에 가서 눕더니,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보았다.“그냥... 너무 갑작스러워. 마치 아주 재밌는 책을 읽고 있는데, 한창 재미있을 때 작가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내 전남편은 쓰레기가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결말을 맞을 정도는 아니었어.”“단지 그뿐이에요?”남자는 차설아의 대답이 못마땅한 듯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그 사람에게 한 톨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아요? 조금의 안타까움도 없어요?”차설아는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더니 눈에 미세먼지가 들어갔는지 시선이 흐려졌다.남자는 위에서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고인 영롱한 눈물을 보고 미간을 살짝 구겼다.“우는 거예요?”“천만에!”차설아는 코를 훌쩍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눈에 먼지가 들어갔어.”“그래요?”남자는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취하고도 여전히 소고집을 부리다니. 전혀 귀엽지 않네요.”남자의 커다란 체구는 소파에 엎드렸고, 어느새 그녀에게 다가와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요. 어차피 전 당신 친구가 돈을 주고 산 해어화예요. 모든 안 좋
다음날.잠에서 깨어난 차설아는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젠장, 숙취가 진짜 사람을 죽이네. 이 늙은 몸으로 앞으로 다시는 함부로 마시면 안 되겠어.’그녀는 기지개를 켜고 이불을 젖히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그녀의 눈길은 갑자기 침대 머리맡으로 쏠렸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해바라기 꽃이 있었고, 꽃 밑에는 카드 한 장이 깔려 있었다.“굿모닝, 나의 여신님. 어젯밤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해드렸기를 바라요. 다음에 또 찾아오세요. -- 당신의 해어화.”해어화?어젯밤의 일들이 갑자기 차설아의 머릿속에 번쩍였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어제 술을 많이 마셨어, 경윤이와 미치게 뛰어놀다가 술집의 에이스 택이에게 끌려 이곳에 들어왔어. 키스까지 했고 심지어...’차설아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더니 감히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그녀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몸을 살폈다. 옷을 멀쩡하게 잘 입고 있었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진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그 사람이 차설아에게 준 느낌은 아주 특별했다.아주 익숙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이 마치... 성도윤이 그녀에게 준 느낌과 똑같았다.‘설마 택이가 성도윤?’이때 룸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배경윤은 걸어들어와 방안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그 에이스 녀석 어디 갔어? 설마 벌써 간 거야?”그리고 차설아를 잡더니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물었다.“어때? 그 녀석이 어제 잘 위로해줬어? 기분 좀 풀렸어?”차설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네가 보낸 녀석이었어? 어쩐지 친절하고 다정하더라니.”“당연하지, 언니가 어제 그 녀석을 얼마나 좋아했어. 비명을 지르고 미친 듯이 뛰어놀고, 완전 자신을 놓아버렸잖아. 이런 보기 드문 남자는 당연히 언니에게 바쳐야지... 새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어떻게 지나간 사람을 잊겠어. 안 그래?”배경윤은 오늘 차설아의 컨디션을 보고 어젯밤의 1억 원이 아주 가치가
배경윤은 차설아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언니가 그 남자를 덮치지 않는 한, 언니가 걱정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사실대로 말해 봐. 어젯밤에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택이를 덮친 거 아니야? 만약 사실이라면 1억으로 모자라지. 돈을 더 줘야 한다고!”차설아는 얼굴이 또 붉어지더니 말을 더듬었다.“아... 아닐 거야.”사실, 어젯밤의 일에 대해 차설아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키스를 나눈 것은 분명했다.그 남자의 입술, 그리고 키스하는 느낌이 성도윤과 똑같았기 때문이다!차설아는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성도윤 한 사람과 키스를 했고 관계를 가졌다. 그래서 차설아는 원래 키스가 다 이렇게 친숙한 느낌인지 의문이었다.“아닐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배경윤은 순간 일이 커졌다는 생각에 꼬치꼬치 캐물었다.“진짜 참지 못하고 술김에 남자를 덮친 거야? 만약 사실이라면 언니는 이미 성도윤 그 쓰레기를 잊은 거야!”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사실, 어제 술김에 키스한 것 같아. 그런데 그 느낌이 성도윤과 하는 것처럼 매우 익숙했어...”“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 방면에는 경험이 별로 없잖아. 혹시 누구랑 키스하든 다 똑같은 느낌이야?”“아, 그건...”차설아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며 배경윤은 난처해서 말했다.“아마 다르겠지. 사실 나도 별로 경험이 없어. 이론적으론 언니보다 아는 게 많을지 몰라도, 실제 경험으론 우리 비슷한 상황이야. 나도 키스한 상대가 단 한 명이었어!”끼리끼리 논다는 것이 이 두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매일 잘생긴 남자가 춤추는 것을 보며 선수인 척하는 배경윤도 알고 보면 초짜였다.차설아는 얼굴을 찡그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그 택이라는 녀석이 성도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느낌이 진짜 너무 비슷했어...”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더니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였다.“역시, 그 인간을 못 잊었을 줄 알았어. 이젠 환각까지 나타난 거야? 그 녀석 몸매가
차설아는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본 순간,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남자는 매우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깊은 눈동자에 오똑한 콧날, 섹시한 입술, 강인한 턱... 완벽하지 않은 곳이 없었고, 성도윤과 닮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는 성도윤이 아니었다.역시나, 차설아의 환각이었다!차설아는 갑자기 자신이 좀 우습게 느껴졌다.그 남자는 이미 죽었고, 덕분에 그녀는 많은 번거로움을 덜었고, 두 아이를 빼앗길 걱정은 더더욱 없었다. 아마 술에 취해서 그 남자가 다시 살아 돌아올 것을 기대한 모양이다!“어젯밤엔 고마웠어. 그쪽 위로가 큰 도움이 됐어.”차설아는 남자에게 인사치레로 웃어 보이고는 배경윤에게 말했다.“가자.”“뭐? 그냥 간다고?”배경윤은 멍한 표정이었다. ‘이 언니 기분이 너무 오락가락하는 거 아니야? 방금까지 성도윤이랑 똑같은 느낌이라고 단언하더니 얼굴을 보고 바로 포기하고 간다고?’무엇보다 택이의 얼굴도 나쁘지 않았다. 1등 남자친구감의 외모였고, 정교함이나 멋짐을 따지자면 쓰레기 성도윤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배경윤은 택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눈을 반짝였다.“뭐가 문제인지 알았어!”“무슨 문제?”차설아는 의혹스러운 표정이었다.“왜 그냥 가려는지 알겠다고!”배경윤을 지체없이 설명했다.“너무 완벽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잖아. 하지만 눈썹이 너무 부드러워서 남성미가 부족해. 가면을 쓰면 그 부드러움이 가려지니 언니가 설렌 기분이 드는 게 아니겠어?”배경윤은 택이에게 가면을 쓰라고 재촉했다.택이는 배경윤의 요구에 적극 협조했고, 순순히 그의 전용 가면을 썼다.가면을 쓰자마자 전체적인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도도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주었고, 특히 가면 아래 드러난 절반 얼굴은 성도윤과 아주 비슷했다.“언니, 봐봐. 이러니까 똑 닮았지? 익숙한 느낌이 돌아오지 않았어?”차설아는 남자를 쳐다보았지만,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가면을 쓴 택이는 확실히 성도윤과 아주 닮아 가면을
문을 열고 들어온 차설아는 일찍이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져 허리를 굽혀 안으려 했다.원이는 뒤로 물러서더니 두 손을 허리에 짚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엄마, 어젯밤 외박했죠? 사실대로 말해요, 어디 갔어요?”“아, 그게...”차설아는 난처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어젯밤 술집에서 술에 잔뜩 취해 남색에 빠졌다고 하면 원이 마음속의 빛나는 차설아의 이미지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엄마가 어제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그냥 회사에서 잤어. 미안해, 원아. 걱정했지?”차설아는 원이를 끌어안고 아무 핑계나 대니 마음이 좀 찔렸다.이 녀석은 결코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다.역시나 원이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차설아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더니 단박에 알아챘다.“엄마, 거짓말이에요. 몸에서 술 냄새가 이렇게 나는데, 분명 또 술 마시러 간 거죠?”옆에 있던 배경윤은 오히려 당당하게 모두 자백했다.“맞아, 어젯밤 이모가 너희 엄마랑 술 마시러 갔어. 요즘 엄마가 기분도 별로 안 좋고 일도 바쁘고 해서 같이 스트레스 좀 풀고 왔어.”“내가 정말 미쳐요!”녀석은 입을 삐죽 내밀었고 동그란 얼굴은 잔뜩 구겨졌다.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다.“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게다가 엄마는 아주 예쁘잖아요. 술을 마신 것도 모자라 외박까지 하다니. 만약 나쁜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떡해요?”원이는 흥분해서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어린아이고,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구원병을 부르려 했다.“보아하니, 경수 아저씨에게 전화해서 미래 마누라를 좀 단속하라고 말해야겠어요!”원이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조금 슬펐다.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녀석의 머리를 만지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원아, 사실 계속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경수 아저씨랑 엄마는 진작에 헤어졌어. 하지만 너희 사이는 변함없어. 경수 아저씨는 여전히 예전처럼 우리 원이를 사랑하고 지켜줄 거야.”“헤어졌어요?”녀석은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그럼 경수 아저씨가 앞으로
원이는 진지하게 말했다.“결심했어요. 지금부터 엄마에게 좋은 남자를 찾아줘야겠어요. 엄마의 일을 분담하고, 엄마를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요!”차설아는 원이의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참지 못하고 원이를 안고 뽀뽀 세례를 하고는 말했다.“원아, 엄마 걱정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엄마 일 그리 힘들지 않아. 원이가 엄마를 사랑해주고 지켜주면 그걸로 충분해. 엄마를 위해 남자를 찾아줄 필요는 없어!”“그건 다르죠!”원이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논리정연하게 차설아를 설득했다.“전 엄마의 아들이지 남편이 될 수 없어요. 엄마는 지금 남편이 부족하지, 아들이 부족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엄마의 남편을 대신할 수 없어요.”“아...”차설아는 순간 반박할 수 없었다.배경윤은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부추겼다.“그냥 원이한테 남편감 찾아달라고 해. 혹시 알아? 원이가 백마 탄 왕자님을 데려와서 자기 아빠로 삼을지? 그러면 두 사람 다 좋은 거 아니야?”“난 원이의 안목을 믿어. 분명 언니보다 좋을 거야. 아무리 못해도 그 쓰레기만 하겠어? 안 그래?”차설아는 원이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원아. 엄마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은 너에게 맡길게. 잘 찾아봐. 엄마는 얼굴 많이 본다? 키 크고 잘생긴 남자를 제일 좋아해. 화이팅!”“걱정 마세요, 엄마. 원이도 얼굴 많이 봐요. 꼭 엄마에게 멋진 남편을 찾아줄게요!”두 모자는 주먹을 부딪쳤다.차설아는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가 좀 아팠다.원이에게 거실에서 애니메이션을 계속 보라 하고, 자신은 해장국을 끓이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배를 잘게 썰고 목이버섯을 불린 후 함께 뚝배기에 넣고 물을 부어 1시간 정도 천천히 끓이면 된다.배경윤도 따라서 부엌으로 들어가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는 싱크대에 기대어 차설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언니, 사실 우리 오빠랑 헤어진 거, 맞는 선택인 것 같아.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없잖아. 꼭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