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그런 거예요!”차설아가 말을 이어갔다.“제 친구들이 워낙 유행 따라가는 거 좋아해서. 그리고 우리 서로 엄마라고 부르거든요.”“무슨 이상한 친구들을 사귀는 거야... 다 너처럼 이상하네!”소영금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따져 묻진 않았다. 그녀가 이 일로 먼 길을 달려온 건 아니기 때문이다.그녀는 품에 안은 활짝 핀 백합꽃을 살포시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고는 의자를 하나 끌어당겨 앉았다. 차설아의 의견은 묻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말해봐, 4년 전에 그 사고를 치고 어디에 숨었는지? 시집은 갔어? 아이는 낳았어?”소영금이 우아한 귀부인의 자태를 뽐내며 의자에 단정히 앉아 차설아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연애 바보’인 아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절대 이런 걸 물어보지 않을 테니 엄마인 소영금이 어쩔 수 없이 물어야 했다.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여사님, 우리가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제가 이 물음에 대답할 의무는 없잖아요.”‘4년이 지났는데도, 여사님은 여전히 거침없으시네. 그래서 성도윤 같은 거침없는 아들을 낳은 건가?’차설아의 예상 밖으로 소영금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한참 고민 후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그 말을 들어보니, 아직 재혼은 안 한 것 같고. 그렇다면 넌 반드시 우리 도윤이에게 책임을 져야 해!”“네? 도윤 씨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요?”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여사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왜 짐작이 안 가지?’“당연하지!”소영금이 당당하게 말했다.“4년 전에 네가 고의가 맞든 아니든 도윤이 아이는 너 때문에 없어진 거 맞잖아. 네가 돌아왔으니 우리 도윤이에게 아이를 하나 물어줄 준비를 해야지. 네가 도윤이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면 앞으로 돈과 명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네가 싫다면... 성씨 가문에서는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고!”소영금은 자기가 참으로 현명한 제의를 했다고 생각했다.먼저 차설아에게 가스
소영금은 자세를 바로잡더니 차설아에게 이 일을 잘 설명하려던 그때, 어두운 얼굴색의 임채원이 그녀의 말을 끊고는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설아 씨, 저랑 어머님이 설아 씨 찾으러 온 건 설아 씨에게 도윤이의 행방을 묻기 위해서야. 하루 종일 찾았는데 도윤이가 연락이 안 돼. 전화도 안 받고, 혹시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이 돼...”“연락이 안 된다고?”차설아는 미간을 구기더니 의문의 얼굴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을 텐데. 지금 수술을 마쳤으니 가장 먼저 안부 전화를 했을 텐데.”“뭐? 수술?”소영금은 그 말을 듣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는 다급한 표정으로 차설아에게 물었다.“무슨 수술? 어디서 수술했어? 도윤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그게...”소영금을 반응을 보아하니 그녀는 아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차설아는 한참 망설이다가 끝내 솔직하게 말했다.“제가 절벽에 떨어져서 다리를 다쳤어요. 저를 구하려다가 도윤 씨도 다쳤고요. 저보다 더 심하게 다쳐서 수술했다던데. 아마 지금 저처럼 병실에서 쉬고 있을 거예요. 아니면... 병원 쪽에 물어보시는 건 어때요?”“그런 일이 있었어?”소영금의 얼굴색이 확 변하더니 곧이어 새하얗게 질렸다.그녀는 겁에 질린 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안 돼, 도윤이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돼. 절대 안 돼!”성도윤은 그녀의 유일한 자식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다.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 키웠기에 ‘다쳤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성도윤의 손가락이 까졌다고 해도 그녀는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마침 이때, 어떤 간호사가 차설아의 다리에 약을 바꿔주러 들어왔다.소영금은 미친 듯이 간호사의 팔을 확 잡고는 무서운 얼굴로 물었다.“내 아들 어디 있어요? 지금 좀 어때요? 많이 다쳤어요?”간호사는 겁에 질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는 소영금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죄송합니다. 누, 누구시죠? 아드님은 또 누구신데요?”“눈치 없는 것. 나 소영금이잖아. 내 아들은 그 유명한 성대 그룹 대
차설아는 착한 척하는 임채원의 말에 분노가 끓어올라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일어서고 싶었다.‘정말 대단한 여자네. 나를 위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아도 계속 나를 비하하고 있잖아. 내가 정말 말을 하지 말라고 시켰다는 듯이 말이야. 억울해서 미치겠네!’“임채원 씨, 그 말은 내가 일부러 간호사님을 협박했다는 거야? 도윤 씨 상황을 알리지 말라고?”“그런 뜻은 없었는데, 설아 씨는 왜 그렇게 생각해? 설마 정말 찔리는 게 있어?”“내가 뭐 찔릴 게 있어? 나도 도윤 씨 상황을 알고 싶다고. 나를 구하기 위해서 다쳤으니.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설아 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가 알아. 만약 도윤이가 지금 위독한 상황이고, 설아 씨가 그 책임을 지기 싫어서...”두 사람은 갑자기 맞서 싸우기 시작했고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을 했다.“그만해!”소영금이 엄숙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자 병실은 삽시에 조용해졌다.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간호사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물었다.“누구 협박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알고 있는 것 당장 말해. 아니면... 나 소영금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될 거야!”“말... 말할게요!”간호사는 배경수의 보복이 두렵긴 했지만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소영금에게 잡혀 목숨이 위태로워질까 봐 걱정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성... 성도윤 님이 지금 어떤 상태이신지, 어디에 계시는지 배경수 님과 차설아 님빼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어요. 제가 들은 소식은...”간호가 말하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차설아를 보며 말했다.차설아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다급하게 말했다.“왜 계속 나를 보는 거예요,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솔직하게 말해봐요!”임채원도 거들었다.“그래요, 솔직하게 말해요. 우리가 뒤를 봐주고 있는데 누가 감히 당신을 건드리겠어요?”간호사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에 의하면 성도윤 님은 심하게 다쳐 생명이 위독하다고 했고,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도 사지를 절단할 수 있다고 했어
“여사님, 진정하세요!”차설아는 다리에 깁스하고 손에 링거를 맞고 있었기에 거동이 불편했다.소영금은 원래 성격이 불같은 여자이고, 지금은 충격적인 소식에 정신을 놓았다.조금의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당장 차설아의 목을 졸라 죽였을 것이다.“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솔직하게 도윤이가 어디 있는지 말해. 도윤이가 어디 있는지만 말하면 다른 건 다 용서할 수 있어. 다만 도윤이가 무사한지만 알려줘, 제발 부탁할게!”소영금은 눈물을 머금은 채 두 손으로 차설아의 어깨를 잡고는 절망의 얼굴로 말했다.어머니로서 그녀는 아이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었으니 당연히 아이를 위해 체면이나 존엄 따위도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제가 말했잖아요, 도윤 씨가 어디 있는지 저도 모른다고요. 도윤 씨가 저를 구하러 온 것도 저는 너무 의외였어요. 도윤 씨를 해칠 이유도 없고, 숨길 이유는 더더욱 없어요. 아니에요?”차설아도 아이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소영금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래서 자신을 매섭게 대하는 소영금을 탓하지도 않았다.만약 차설아가 이런 일을 당했으면 아마 진작 상대방과 같이 죽을 각오를 하며 소영금보다도 정신을 놓았을 것이다.차설아는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갔지만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성도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정말 사람 걱정하게 만드네!’“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당장 경수한테 전화할게요. 경수라면 최신 상황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차설아가 알고 있는 소식도 모두 배경수에게서 들은 것이었다.그래서 그녀는 배경수가 성도윤의 모든 상황을 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차설아가 배경수에게 전화하려던 그때, 배경수는 마침 일을 마치고 병실로 오고 있었다.“그 사람 놔요!”배경수가 병실의 문을 열자마자 차설아의 어깨를 잡은 소영금을 보고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영금을 멀리 밀어냈다.“경수야, 그러지 마!”차설아가 배경수를 말리며 덤덤하게 말했다.“마침 잘 왔어. 얼른 저 사람들에게 말해봐, 도윤 씨 지금
“당신한테 덤비라고? 알겠어, 이제 후회하지 마.”배경수는 8대 명문가에서도 피하기 급급해하는 ‘대마왕’이었다. 임채원같이 연약한 척하는 여자를 상대하는 걸 제일 쉽게 생각했다.그는 긴 손가락을 맞잡고 손가락 마디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잘생긴 그의 얼굴에는 조롱하는 듯한 미소가 머금고 있었다.“주먹을 휘둘러본 지도 오래되어서 손이 간질간질했는데 말이야. 나 예전에 권투할 때도 나쁜 여자를 모래주머니로 삼는 것을 가장 좋아했어요. 주먹으로 한 방 날리면 속이 후련하거든요. 임채원 씨가 자진해서 맞겠다고 하니 나도 사양하지 않을게요...”“다, 다가오지 마요. 나 성씨 가문 사람이라고요. 감히 나 건드리면 성씨 가문은 절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임채원은 일찍이 배경수의 ‘끔찍한’ 사건들에 대해 들었었다.배경수는 배씨 가문의 예쁨을 듬뿍 받고 자라 두려운 게 전혀 없다고 한다. 워낙 독한 수단을 썼기에 사람들은 웬만하면 멀리 숨어 있으면서 아무도 그를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그런 바람둥이 배경수가 이렇게 차설아를 따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처음 스캔들이 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났지만 배경수는 여전히 차설아 곁에 있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센척해서 소영금 앞에 막아서는 거 아니었는데. 만약 배경수가 정말 내 얼굴을 모래주머니로 생각해 펀치를 날리면 어떻게 해? 그럼 나만 손해잖아!’“내가 말을 똑똑히 안 했나 보죠? 당신이 성씨 가문 사람이든 임씨 가문 사람이든 감히 보스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똑같이 모래주머니로 때릴 거라고요!”배경수가 말하고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테이블에는 바로 구멍이 하나 생겼다.“악, 어머님, 살려주세요!”임채원이 소리를 지르면서 바로 소영금 뒤에 숨었다.“여사님도 모래주머니 신세가 되고 싶으세요?”배경수가 주먹을 꽉 쥐고를 씩 웃으며 물었다.차설아의 기분을 더 상하지 않기 위해 소영금과 임채원이 알아서 물러가도록 협박한 것이었다.만약 차설아가 성도윤이 이미 죽은 걸
“주제넘네!”소영금은 차설아의 말을 끊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너희들도 알다시피 KCL은 하이 테크 기술 분야에서 엄청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 요 몇 년 동안 성대 그룹만 비즈니스를 했거든. 천신 그룹 같은 작은 회사가 비즈니스 하려면 비즈니스 할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하는 거야?”“맞아요!”임채원은 소영금의 뒤에 숨어 따라서 건방을 떨었다.“천신 그룹 같은 규모를 가진 회사는 KCL에서 비즈니스는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겠죠. 당신들도 그래서 비겁한 수단을 쓴 거 아니에요? 도윤이를 해치면 성대 그룹과 KCL의 계약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그 말을 들은 배경수는 화가 나 피식 웃으며 반박했다.“그 말은 동의하지 않아요, KCL이 막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우리가 선뜻 나설 수 없을 만큼은 아니에요. 그리고 나 심지어 KCL 사장과도 사이가 좋다고요!”임채원이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허풍을 떨긴, KCL 사장은 당신은커녕 도윤이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당신이 어떻게 KCL 사장과 사이가 좋을 수 있죠?”“허풍 아닌데요, 나 진짜 KCL 사장과 각별한 사이인데, 보스가 증명할 수 있어요... 그렇지, 보스?”배경수가 말하고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차설아를 향해 눈썹을 들썩였다.차설아가 덤덤하게 말했다.“장난은 그만해. 빨리 병원 사람들에게 물어봐, 성도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걱정돼.”“아직도 연기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설아 씨처럼 뻔뻔한 사람은 처음이네요!”임채원은 흥분된 목소리로 소영금을 부추기며 말했다.“어머님, 저 사람들과 더 말하는 것도 시간 낭비예요. 얼른 경찰에 신고해서 취조를 받게 해야 해요.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하면 도윤이를 찾는 시간만 더 지체된다고요!”소영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말이 맞아. 어차피 저 사람들과는 말이 안 통하니까 차라리 경찰에 맡기는 게 낫겠어.”“경찰에 신고하면 안 돼요!”배경수가 단호하게 말했다.“누가 감히 경찰에 신고한다
“어머님, 왜 그러세요? 도윤이에게서 소식이 온 거 아니에요?”임채원이 다급하게 물었다.“응.”소영금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는 전혀 기쁜 기색이 없었다.“정말 다행이네요. 도윤이 지금 어떤 상황이래요? 어디에 있고요? 혹시 설아 씨가 자기 해쳤다고 말했어요?”임채원이 다급하게 캐물었다.그녀는 차설아와 성도윤 사이에 반드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로 단정 지었다. 아니면 배경수는 그렇게 허술한 반응을 보였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성도윤에게 소식이 온 이상 분명 차설아와 배경수를 가만두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소영금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도윤이... 잘 있대. 우리가 설아를 괜히 탓한 모양이야.”“네?”임채원과 배경수가 동시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괜찮다니 다행이네요.”차설아는 한시름을 놓았다.배경수라면 그녀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데 성도윤에게 정말 무슨 사고라도 생겼다면 소영금처럼 사소한 것까지 따지는 사람은 진작 그녀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차설아는 소영금이 자기에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성도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몸이 회복했을 것이다.“도윤이 괜찮대, 그리고 너도 잘 요양해서 빨리 회복하고 퇴원하길 바란대...”소영금이 차설아를 보며 말했다.분명 따뜻한 말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차설아를 당장 죽여버릴 듯이 차갑고 매서웠다.“그럴 리가 없어요. 어머님, 방금 그 간호사도 말했었잖아요, 도윤이 상황이 심각하다고요. 어떻게 갑자기 괜찮아질 수가 있죠? 게다가 일부러 설아 씨와 무관한 일이라고 강조한 것도 수상하고요...”임채원은 차설아를 모함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부추겼다.“누가 전화를 걸어온 거예요? 설마 속으신 건 아니죠? 빨리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어요!”소영금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째려보고는 말했다.“도윤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길 바라는 거야?”“아니요, 그
하지만 차설아는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 있게 말했다.“우리 갈 길 가야지. 천신 그룹은 전부터 성대 그룹의 영향을 받지 않았어. 지금도 똑같이 영향을 받지 않을 거야. 성대 그룹이 오랫동안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니 이제 한 번쯤 내려올 때도 되지 않겠어?”배경수는 자신 있는 차설아를 두 눈을 반짝이며 바라봤다. 마치 추앙하는 여신을 보는 것처럼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걱정하지 마, 보스. 기자회견은 이미 잘 준비했어. 참석하는 언론이든 같은 업계 사람들이든 모두 쉬운 사람들 아니야. 이제 한때 무한의 영광을 누렸던 성대 그룹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사람들은 생방송으로 똑똑히 지켜보겠지.”배경수는 한껏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그와 차설아는 이날만을 위해 너무나도 오래 기다렸고, 너무나도 큰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이 일은 반드시 실패가 아닌 성공해야만 했다.게다가 성도윤의 ‘사고’는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성대 그룹은 분명 난리가 났을 것이다.그래서 천신 그룹이 그 뒤를 잇는 업계 1위 회사로 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다만 차설아가 만약 성도윤이 죽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 여전히 마음을 굳힐 수 있을지 배경수는 걱정이었다.“보스, 이번에 성도윤이 보스를 구해줬잖아, 의리가 있어. 그럼 보스는... 마음이 약해질 거야?”배경수가 조심스럽게 떠보았다.차설아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무슨 그런 타당치 않은 말을 해. 내가 이렇게 준비를 오랫동안 했는데 난 그저 두 아이 분윳값 벌려고 하는 거야. 무슨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왜 마음이 약해져야 해?”“그게...”배경수는 잠시 말문이 막혔고, 곧이어 농담하며 말했다.“보스, 이번에 분윳값 제대로 벌려는 생각인가 본데? 모든 게 순조롭게 잘 풀리면 앞으로 차씨 가문 수십 대가 분윳값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그러길 바라야지.”차설아가 눈썹을 들썩이고는 고민에 잠겼다.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차설아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
사도현은 배경윤의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가서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그러지 마!”배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도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사도현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배경윤은 진찬영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찬영과 시작해 보지도 않고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뻔뻔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인성은 늘 그렇듯 욕심이 끝도 없었다.“안에 누구 없어요? 없으면 문 열고 들어갈게요.”쾅!소수민은 문을 점점 세게 두드렸고 허술하게 지어진 초가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이 흔들거렸고 먼지가 떨어졌다.배경윤은 사도현을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이 난감한 상황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도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배경윤이 우스웠다.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던 사도현은 일부러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하하하!”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진찬영과 소수민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수민은 큰 소리로 물었다.“계세요?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세요. 저기요!”배경윤은 입을 틀어막고는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사도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을 올렸다.“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봐요. 쉬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진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 찬영 오빠는 참 다정해요.”소수민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진찬영과 같이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배경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사도현을 마구 때리면서 말했다.“사도현, 너 진짜 미친 거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 이러고도 네가 남자야?”“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 쌍의 커플로 보고 있어. 커플이 같은 침대를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사도현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배경윤을 내려다보았다. 배경윤이 진찬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신경이 거슬렸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