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묘지는 외진 곳에 있고, 나무가 울창하고, 굽이치는 갈림길이 많아 일 년 내내 짙은 안개로 가득 차서 자기장도 영향을 받는다.일단 길을 잘못 들어서면 마치 미궁에 들어간 것과 같아 동서남북을 전혀 판별할 수 없어 아주 위험했다.차설아는 케빈이 보낸 자료에 푹 빠져, 강우혁이 임채원 때문에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을 배경윤에게 알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갑자기 발을 헛디뎠다.꽈당 소리와 함께 그녀는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져 머리를 바위에 부딪혀 정신을 잃었다.한편, 성도윤과 임채원은 아이를 묻은 곳에 도착했다.작은 무덤에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 생일과 성씨가 새겨져 있었다.“아가, 엄마랑 도윤이 삼촌이 또 널 보러 왔어. 잘 지내? 날이 추워져서 엄마가 옷을 많이 사 왔어. 어때? 이뻐?”임채원은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아동복 가게에서 산 옷을 불붙였고, 귀신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성도윤은 처음에 자책했지만, 지금은 평온해졌고, 오히려 진저리가 나기도 했다.하지만 임채원은 지금 환자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여자를 내버려 두었다.일반적으로 태어난 지 한 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이는 독립적인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현학적 관점에서 비석을 세워 제사를 지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 아이는 특별했다. 죽은 형의 유일한 핏줄이자, 임채원의 유일한 아이였다. 임채원의 간절한 애원 끝에 성도윤은 아이의 시신을 특별 제작한 관에 넣고, 유명한 풍수사를 찾아 이렇게 외지고 음산한 곳에 아이를 안장했다.임채원은 묘비를 향해 쉴 새 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고 성도윤은 이미 심드렁해졌다.그는 묘비 입구를 자꾸 쳐다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렸다.‘쯧쯧, 왜 아직도 안 와. 분명 여기서 2㎞도 안 되는 거리에서 내렸고, 곧은 큰 길이라 보통 20분 정도 걸으면 충분할 텐데?’하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차설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임채원은 드디어 곡소리를
차설아는 손을 더듬거리며 겨우 휴대폰을 찾았지만, 이미 깨져서 전원이 꺼져버렸다.“젠장, 성도윤 이 재수탱이. 난 왜 너만 만나면 이 꼴이야?”차설아는 캄캄하고 황량한 사방을 바라보며 절망했다.“누구 있어요? 살려주세요!”차설아는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지만, 들려오는 건 음산한 기운과 까마귀 울음소리뿐이었다.머리와 다리의 통증으로 그녀는 체력이 점점 떨어졌고, 도움을 요청할 힘조차 없었다.“나 오늘 여기서 죽는 건 아니겠지? 그건 너무 억울하잖아!”성가 저택.성씨 가족은 오랜만에 모여 식사를 했지만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소영금은 계속 성도윤이 차설아에게 연락했는지 궁금해 빙빙 돌려서 말했다.그녀도 성주혁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4년 동안 사라진 차설아가 갑자기 해안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았다.차설아에 대해 소영금은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있었다.처음에는 차설아가 임채원 뱃속의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차설아를 사무치게 미워했고, 심지어 사람을 고용해 차설아를 찾게 하고, 그녀가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했었다.하지만 4년이 지났고, 차설아는 보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아들이 하루 종일 고통 속에서 보내는 모습만 보았다.소영금은 성도윤의 마음속에 아직도 차설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차설아만이 성도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인물이었다.소영금은 더 이상 차설아를 미워하지 않았고, 자기 아들이 진정한 행복을 찾기만을 바라고 있었다.“아들, 너무 많은 것에 연연하지 마.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모두 널 지지할 거야. 지나간 일은 그냥 묻어 둬. 앞으로의 생활도 중요하잖아!”소영금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아서 해요.”성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 성도윤이 거절하자 모두 더 말하지 못하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소영금은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말했다.“아들, 너 요즘 그 애 제사 지내러 자주 가? 내가 그곳은 사악한 곳이라 자주 가지 말라고 진작 말했잖아. 며칠 전 뉴스에서 보니 몇몇 유투버
성도윤은 차를 몰고 최대한 빨리 묘림에 도착했다.방금 식사 자리에서 소영금의 말이 그를 일깨웠다.묘림은 외지고 지형이 복잡하고 난기류가 가득해, 차설아가 탐험 유투버처럼 묘림에서 길을 잃을까 봐 걱정했다.비록 1%도 되지 않는 가능성이지만, 만약을 대비해 직접 찾아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차는 어둠 속을 달렸고, 전조등은 앞길을 밝히고, 성도윤은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예리한 두 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계속 차설아의 이름을 중얼거렸다.“차설아!”음산한 묘림은 밤에 인적이 없으니 새가 푸드덕거리는 소리까지 메아리쳤다. 성도윤은 어느새 차설아와 헤어진 위치에 도착했고, 문을 열고 내렸다.“차설아, 어디 있어? 대답해!”성도윤은 목이 쉬도록 큰 목소리로 외쳤다.애석하게도, 그에게 대답하는 것은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고요함 뿐이었다.이름을 부르던 성도윤은 순간 자신의 모습이 바보처럼 느껴졌다.어쩌면 지금 차설아는 집에 돌아가 따뜻한 이불 속에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성도윤은 그 1%의 가능성 때문에 바보처럼 한밤중에 이 음산하고 외진 곳에서 차설아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가 귀신에 홀린 줄 알 것이다.성도윤은 주먹을 움켜쥐고, 마지막으로 세 번만 더 외치라고 자기 자신에게 명령했다. 만약 대답이 없으면 당장 이 어리석은 행동을 멈추라고.“차설아, 대답하지 않으면 나 갈 거야!”성도윤는 화가 난 듯 소리쳤다.비탈길 아래의 차설아는 반혼수 상태에서 몸이 피곤하고 아팠고, 무엇보다... 배가 고파서 기절할 것 같았다.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귀를 기울여보니 성도윤이었다.처음에는 살았다는 생각에 흥분했지만, 후에는 정말 성도윤의 손에 구원받는다면 그에게 빚을 지게 될 것은 물론, 창피까지 당해야 했다.그래서 차설아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성도윤이 대답하지 않으면 간다는 말에 위기의식을 느껴 나른하게 두 번 기침했다.이 기침 소리는 모기 소리보다 작았기에 차설아는 성도
성도윤은 뼈가 어긋난 왼쪽 다리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아파서 식은땀이 흘렀지만 여전히 도도하고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그럼 됐어.”차설아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역시 남자는 살이 거칠고 두꺼워서 몇 미터 높이의 구덩이에 빠져도 아무렇지도 않네! 든든하기도 하지!’“당신은 어때?”성도윤은 통증을 참으며 어둠 속을 더듬어 차설아가 있는 위치로 향했다.“난 엉망이야. 머리도 까졌고, 다리도 부러졌고, 피곤하고, 춥고, 너무 배고파서 배가 등 가죽에 붙게 생겼어!”차설아는 몇 번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힘없이 웅덩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배가 고파서 정신이 혼미해져, 곧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는 줄 알았다.“길을 걷다가 이 지경이 돼? 정말 머리가 없어. 전화를 해서 구조 요청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야?”성도윤은 너무 걱정되었고, 화가 나 차설아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이 여자는 4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을 돌볼 줄을 몰랐다.“휴대폰이 고장 났는데 어떻게 전화를 해?”차설아는 반박했다.“그러는 당신도 걷다가 넘어진 거 아니야? 단지 운이 좋아서 다치지 않은 것뿐이지!”“내가 넘어진 건...”성도윤은 말을 잇지 않았다.“왜 넘어졌는데?”성도윤이 말을 하지 않자 차설아가 웃으며 놀렸다.“당신도 머리가 없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거지? 내가 일깨워줬는데도 어리석게 달려오더니! 뒤에 귀신이라도 쫓아와?”“그래, 성도윤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아니면 왜 한밤중에 이 미련한 여자를 구하러 왔겠어?”성도윤은 차갑게 말했다.‘이 미련한 여자는 왜 내가 자신을 너무 걱정해서, 급한 마음에 넘어졌다는 걸 몰라!’“당신한테 구해달라고 한 적 없어. 그냥 목이 좀 간지러워서 기침을 두 번 했을 뿐인데, 당신이 황급하게 달려온 거지. 내 탓이라고 하지 마.”차설아는 성도윤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다.두 사람은 가까스로 정리했으니,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휴대폰 좀 빌려줘. 내가 친구한테 전화해서 구해달라고 할게
“뭐?”차설아는 어두운 달빛을 통해 남자의 넓은 뒷모습을 보고 의심했다.“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꾸물거리지 말고 업혀. 아니면 나 혼자 간다?”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재촉했다.사실, 성도윤은 다친 자신의 다리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꾸물거리다가 시간이 지체되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알았어. 당신만 괜찮다면 나도 문제 될 것 없지!”차설아는 말을 마치고, 가느다란 팔로 남자의 목을 와락 끌어안고 그의 등에 엎드렸다.“꽉 잡아.”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당부하고 일어서려고 애썼다. 큰 체구는 그녀의 무게를 견뎌야 했기에 약간 흔들렸다.차설아는 숨을 참고 조용히 물었다.“진짜 괜찮은 거 맞아? 좀 힘들어 보이는데? 곧 쓰러질 것 같아.”“나... 괜찮아!”성도윤은 이를 악물며 힘겹게 말했다.왼쪽 다리의 뼈가 부러진 듯 걸을 때마다 뼈와 살이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통증이 극에 달했다.그의 이마, 등, 손바닥은 온통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흘렀다.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고, 차설아를 알게 해서도 안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처형을 받는 것처럼 도로 방향으로 기어올랐다.“성도윤, 진짜 괜찮아? 왜 당신 몸이 떨리고 있는 것 같지?”차설아는 남자의 등에 엎드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차설아는 남자의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자신이 걱정한다고 오해할까 봐 너무 많은 것을 캐묻지 못했다.“내가 당신처럼 연약한 줄 알아?”성도윤은 온갖 힘을 다 쏟아부으며 평온한 척했다.“아니다. 이렇게 무거우니 연약함은 아니지. 돼지 같은 미련함이지!”“헛소리하지 마. 나 50킬로도 안 된단 말이야. 당신이 너무 허약해서 그래. 여자를 업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큰 키가 부끄럽지도 않아?”차설아는 화가 나서 성도윤을 두 주먹 내리쳤다.‘역시 내가 괜한 걱정을 했어. 성도윤 같은 철저한 이기주의자는 만약 자신이 다쳤으면 나 같은 거 신경 쓰지도 않지. 지금 상황에서 나보고 돼지
“응!”차설아도 순간 숫자들의 특수함을 알아채지 못했고, 자세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곧 연결되었다.“경수야, 난데, 지금 시간 있어? XX묘림으로 좀 와줘.”전화기 너머의 배경수는 차설아를 찾느라 골머리를 앓다가 하마터면 성가로 쳐들어갈 뻔했다. 지금 차설아의 전화를 받고 너무 격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두 사람은 전화로 몇 마디 나누다가 성도윤이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낚아채 소리쳤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오라고! 설아가 다쳤어!”이때서야 차설아는 성도윤의 손이 온통 피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순간 긴장하더니 다가가 물었다.“성도윤... 당신 왜 이렇게 피가 많이 나? 어디 다쳤어?”“나 괜찮아.”성도윤은 얼른 손을 거두었다.“괜찮긴 뭐가 괜찮아? 피가 이렇게 많은데? 대체 어디를 다친 거야? 빨리 말해!”차설아는 휴대폰의 전등을 켜고 남자의 몸 전체를 검사했다. 그의 왼쪽 다리가 이미 피로 젖었고, 뼈도 이미 어긋난 것을 발견했다.“다리가!”차설아는 입을 가리고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너무 충격적이었다. 부러진 다리로 그녀를 업고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지, 그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괜찮다니까, 보지 마!”성도윤은 다시 휴대폰을 낚아챘다.그는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여태까지 참았다. 그런데 지금 차설아가 보게 되었으니... 정말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이 정도 상처면 다리가 부러졌을 수도 있어. 당장 고정해야 해, 아니면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고... 내가 당장 고정해줄게!”차설아는 두말없이 자신의 옷을 벗고, 성도윤의 부러진 다리를 간단히 처리하려고 했다.“악!”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다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당신 다리야말로 처치가 필요해 보이는데?”성도윤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여자의 다친 다리를 손바닥에 받친 다음 그녀의 옷을 가져다가 간단히 고정했다.“난 괜찮아. 지금 당신 상황이 나보
“휴, 그렇게 됐어. 일단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가 줘!”차설아는 심하게 다친 성도윤의 다리를 보며, 배경수에게 더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그래!”배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경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의식을 잃은 성도윤을 업고 차에 태웠다.그는 빠른 속도로 근처의 병원으로 도착했고, 차설아를 차에서 안고 내려 초조한 얼굴로 도움을 요청했다.“선생님, 살려주세요!”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아직 누워 있는 성도윤을 바라보며, 배경수의 팔을 잡고 말했다.“도윤 씨 상태가 더 심각해. 일단 도윤 씨부터 치료해달라고 해!”배경수는 늘 차설아에게 고분고분했지만, 이번만은 그러지 않았고, 거의 백 미터 속도로 응급실에 달려갔다. 그는 고개를 숙여 품속의 여자를 보고 말했다.“보스, 내가 보스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건 맞지만, 나도 남자라는 걸 잊지 말아 줘. 나 보스가 생각하는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야. 저 자식을 병원에 데려온 것만으로 충분히 인정을 베풀었어. 더 이상은 못 해.”결국, 차설아가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 응급처치를 받았다.그녀는 뇌에 손상을 입었고,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었다. 생명에 위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을 대비해 24시간 관찰이 필요했다.24시간 후, 차설아는 관찰실에서 보통 병실로 옮겨졌고, 외부와 연락이 가능했다.그녀의 다리는 깁스를 했고, 병상에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배경수는 맛있는 음식을 들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차설아에게 걸어갔다.“보스, 좀 어때? 배고파? 하루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일단 먹어.”차설아는 이미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먹을 기분이 없었다. 배경수의 팔을 잡고 긴장해서 말했다.“성도윤 어때? 다리는 괜찮아?”배경수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화제를 돌렸다.그는 죽 한 숟가락을 떠서 천천히 식혀 마치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보스, 영양가 좋은 해삼 죽이야. 상처 회복에 좋으니까, 따뜻할 때 먹어!”차설아는 그의 손을 밀치고 성도윤의 상황을 알고 싶어 강력한 태도로 말했다.“
“자기 다리가 다쳤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억지로 참으며 날 구덩이에서 도로까지 업고 나왔어. 만약 그 사람 다리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난 평생 이 빚을 갚을 수가 없어. 난 그 사람과 평생 얽힐까 봐 두려워서 묻고 있는 거야. 알아?”차설아는 배경수에게 자세히 설명했다.“뭐? 그 자식이... 보스를 업었다고?”배경수는 돌아서서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말도 안 돼. 다리를 그렇게 다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텐데, 어떻게 보스를 업어. 난 못 믿어!”“나도 안 믿겨. 그것도 그렇게 냉혈하고 무자비한 이기적인 사람이. 하지만 사실이야.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난 아파서 죽거나 굶어 죽었을 거야...”차설아는 지금도 성도윤이 어둠 속에서 그녀를 업고 한 걸음 한 걸음 언덕을 오르던 모습을 떠올리며 마치 꿈만 같았다.그런 고통은 피를 나눈 형제라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차설아를 목 졸라 죽이고 싶어 하던 성도윤이 그런 행동을 했다니.“말도 안 돼. 그 다리로는 절대 불가능해!”배경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냐하면 성도윤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배경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고통은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러니까, 그 사람 상황이 어떤지, 다리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면 안 돼?”차설아는 다시 한번 다그쳤다.배경수의 반응에 차설아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아직 몰라!”배경수는 심호흡을 하고 끝내 고백했다.“아직 수술 중이야. 상황이 복잡해서 보수적인 치료를 할지, 위험이 있는 치료를 할지, 전문가팀을 꾸려서 연구 중인데 아직 명확한 방안은 없다고 했어.”차설아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니 물었다.“뭐가 보수적인 치료고, 뭐가 위험이 있는 치료야?”“보수적인 치료는 일단 다리부터 보존하고 다음 치료를 진행하는 건데, 그 자식 상황이 너무 심각해. 다리 신경이 여러 군데 끊어지고 일부 조직이 괴사해서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제때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몸 전체에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