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은 민이 이모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더 차가워졌다. “이 여자가, 진짜 따라갔어!”민이 이모는 조심스럽게 유효한 정보를 제공했다.“S 시에 간다고 했으니 아마 기차역으로 갔을 거예요. 지금 출발하시면 아마 아가씨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S시요?”성도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싸늘한 눈으로 말했다.“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 다리를 분질러 놓을 거야!”성도윤은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스포츠카를 몰고 해안 기차역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성도윤이 차를 세우고 기차역으로 들어서자마자, 차설아와 바람도 대합실에 들어왔다.“당신이었어요?”성도윤은 차설아의 옆에 있는 바람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의외인 표정이었다.“당신, 왜 왔어?”차설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람을 피우다 현장을 붙잡힌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바람은 침착하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여유롭게 성도윤에게 손을 흔들었다.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출장가는 길인가요?”성도윤은 매우 오만한 태도로 바람을 무시하고, 못마땅한 시선으로 차설아를 응시하고 있었다.“얼마나 훌륭한 남자를 찾아서 급하게 부모님을 뵈러 가나 했더니... 겨우 해커였어?”이 말을 들은 차설아는 화가 치밀어 올라 반격했다.“경고하는데, 날 모욕하는 건 괜찮지만, 해커를 모욕하지 마. 해커가 뭐 어때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훌륭한 일을 하는데? 해커 심기를 건드리면 당신의 모든 사생활이 세상에 알려질지도 몰라!”성도윤은 차설아의 스파크 신분을 모르고 있었다. 차설아가 해커를 위해 이렇게 흥분한 것을 보고, 그녀가 밑도 끝도 없이 바람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아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보아하니,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네. 그럼 이 사람이 당신 몰래 나랑 어떤 거래를 했는지도 알려줬나?”성도윤은 그저 차설아를 단순하기 짝이 없는 미련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에게 쉽게 속을까 봐 걱정되었다.만약 차설아가 말한 ‘훌륭한’일이, 민이 이모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영상을 암호화한
성도윤은 심호흡을 하고 화를 애써 억누르며 차설아에게 물었다.“어떤 사람인지 알고도 가깝게 지내?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어떤 사람인데?”차설아는 성도윤의 매서운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해커로서 돈 받고 일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뭐가 문제야?”“그러는 당신은... 애인 감싸려고 몰래 증거 인멸까지 서슴지 않았잖아. 내가 보기엔 당신이 더 이상해. 당신이야말로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이라고!”“...”성도윤은 입술을 오므리고 말문이 막혔다.차설아의 말이 맞았다. 바람보다 더 비열한 건 성도윤 자신이었다. 무슨 자격으로 바람을 비난할까?바람은 시계를 보더니 웃는 얼굴로 말했다.“대표님, 죄송하지만 기차 시간이 되어서요. 좀 비켜주시겠어요? 처음 부모님을 뵈러 가는데 늦으면 안 좋잖아요.”바람은 치명타를 날렸다!성도윤은 이미 분노가 극에 달했고, 질투도 극에 달해 다른 것은 돌볼 겨를도 없이 차설아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이 여자는 주인이 있어요. 당신이랑 가지 않을 거예요.”“성도윤, 뭐 하는 거야, 이거 놔!”차설아는 난처해서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고 애를 썼다.성도윤은 더욱 힘을 주었고, 여자를 끌어안으며 더욱 강력하게 말했다.“놓아주지 않을 거야. 절대 이 사람이랑 못 가!”“당신이 뭔데?”‘성도윤 미친 거 아니야? 내가 바람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데 왜 뜬금없이 행패를 부려?’차설아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난 이미 당신이랑 이혼했어. 자유의 몸이라고! 당신이 뭔데 간섭이야?”“맞아, 우리는 이혼했어. 하지만 난 당신 할아버지랑 약속했어. 평생 당신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겠다고. 이 사람은 그저 한낱 해커에 불과해. 권세도 힘도 없고, 재력도 부족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으니 당연히 보낼 수 없지.”“뭐라고?”차설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가 언제 성도윤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성도윤은 냉철한 눈빛으로 오만하게 말했다.“당신이 나랑 실력이 맞먹는 남자를
이 장면을 본 현장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성도윤과 차설아도 놀란 얼굴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바람은 눈썹을 찡그려 다소 불쾌하게 자신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아저씨, 제가 시간이 되면 출발한다고 했잖아요. 왜 굳이 나오셨어요?”노인은 머리를 숙이고 공손하지만 강력한 태도로 말했다.“도련님, 어르신께서 오래 기다리셨어요. 도련님이 또 마음을 바꾸실까 봐 직접 호송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헬기를 준비했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호송?”바람은 불만스러운 듯 눈을 흘겼다.“호송이 아니라 거의 압송이네요.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네요. 그러니 제가 집을 나갔죠.”“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엔 손주 며느리를 데리고 갈 테니 절대 도중에 도망가는 일은 없어요!”이 말을 들은 오 아저씨는 눈이 반짝이더니 차설아를 한 번 훑어보았다.“이분이 미래의 작은 사모님이시겠네요. 아주 단아한 모습이 딱 어르신께서 좋아하시는... 아니, 선우 가문 전체가 원하는 미래 사모님의 이미지입니다.”“아!”차설아는 난처해서 바람을 흘겨보았고, 포도알처럼 맑은 눈동자에는 분노가 가득했다.‘바람 이 자식! 일을 크게 키웠어. 온 가문이 나서고 있잖아...”차설아는 지금 가기도 그렇고, 안 가기도 그렇고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선우 가문?”성도윤의 눈동자는 갑자기 날카로워지더니 바람을 자세히 훑어보았다.겉보기에는 소탈하고 별 볼 것 없어 보이는 한낱 해커의 신분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맞아요, 대표님.”바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가의 웃음이 깊어지더니 느릿느릿 말했다.“S 시의 지배자, 선우도환 선생님이 바로 제 친할아버지입니다.”“그럼 당신이...”“저는 선우 가문의 4대 독자이며, 할아버지의 유일한 적손인 선우시원이죠. 바람은 그저 제가 한가할 때 사용하는 해커의 신분일 뿐이에요.”“당신이었다니!”바람의 말을 들은 성도윤은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사람들은 모두 해안 시의 성가와 S 시의 선우 가
그가 말하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차설아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려 했다.“그래요?”성도윤은 당연히 차설아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도도한 얼굴로 건방지게 말했다.“그럼 당신한테 그런 재주가 있는지 한 번 봐야겠네요!”그렇게 차설아는 인형처럼 두 남자에게 한 쪽씩 끌려다니며 고생했다.“그만!”차설아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소리를 지르고는 한 사람씩 발로 걷어차며 겨우 두 사람에게서 벗어났다.“두 사람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내가 인형이야? 막무가내로 막 뺏을 수 있는? 내 의견은 안 물어보냐고?”성도윤과 선우시원은 마침내 힘겨루기를 멈추고는 모두 차설아를 바라봤다.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생각이 있으면 이 남자가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당신에게 접근한 걸 알아챘어야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뻔하잖아.”선우시원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솔직하게 말했다.“불순한 동기가 있었던 건 맞아, 이미 너에게 푹 빠졌어. 네가 선우 가문의 미래 여주인이 되었으면 좋겠고. 선우 가문은 성씨 가문 못지않게 너에게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줄 수 있어.”차설아는 성도윤을 보다가, 또 선우시원을 보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우시원 쪽에 서고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뻔하긴 해. 한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안겨줬고, 다른 한 사람은 곧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건데 내가 누굴 선택하겠어?”말을 마친 그녀는 선우시원의 팔짱을 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탑승구로 향했다.이 순간, 그녀는 전에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성도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는 충분히 빛나 보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성도윤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아팠다. 마치 중요한 뭔가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영혼이 털린 느낌이었다.옆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지만, 막상 잃게 되니 그는 마음이 허전하고 괴로웠다.차설아는 선우시원과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녀는 허리를
차설아가 고개를 돌리자 선우시원의 깊은 눈망울과 눈이 마주치고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그리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너는? 너는 진심이야?”선우시원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고 표정이 매우 부자연스러웠다.‘미치겠네. 그냥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왜 갑자기 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 같지?’그는 눈썹을 치켜들더니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나야 당연히 진심이지. 네가 스파크라는 걸 알게 된 후로 4년 전에 너랑 결혼하지 않은 걸 매일 후회하고 있어...”“그래?”차설아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하지만 난 이혼한 여자야. 선우 가문은 그래도 명망 있는 가문인데 이혼한 여자를 집에 들이겠어?”“이혼한 여자가 뭐 어때서.”선우시원이 바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이혼한 여자야말로 일류 아니야? 미련한 남자들이 보는 눈이 없어 그렇지, 난 오히려 이혼한 여자가 더 좋은데? 완전 땡큐라고!”“네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너희 가문에서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잖아.”“걱정하지 마. 선우 가문에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거야. 오히려 두 팔 벌려 널 환영할 거라고!”선우시원이 말을 이어갔다.“우리 할아버지는 그 누구에게도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분이신데, 유일하게 너희 할아버지만을 진심으로 존경해. 네가 차무진 장군님의 손녀라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우리 둘의 혼사를 정할걸? 성씨 가문에서는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선우 가문은 무조건 널 반기고 아껴줄 거라고. 그러니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때?”선우시원은 계속 차설아에게 어필했다.그런 그의 말에 차설아도 우울했던 마음이 한껏 가벼워지고 유쾌해졌다.“그래, 그럼 잘 생각해 볼게.”그녀의 말에 선우시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좋아, 그럼 동의한 걸로 알고 있을게!”해안에서 S시까지 비행기로 세 시간을 가야 했다.차설아와 선우시원은 한참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고, 그녀가 깨어났을 때 비행기는 이미 착륙했다.“이따가 비행기에서 내릴
‘전쟁이 난 건가? 아니면 내가 뭘 잘못한 건가?’선우시원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만지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이게 우리 선우 가문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관례야. 많이 화려하지?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잖아!”“그런 거야?”차설아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투덜대기 시작했다.“어디 화려한 것뿐이야? 나 너무 놀랐잖아... 난 그저 여자친구인 척하며 너와 함께 부모님을 뵈러 왔을 뿐인데 여기서 목숨을 내놔야 하는 줄 알았어!”“걱정하지 마, 너는 우리 선우 가문의 손님이라서 최고 예우를 해준 것뿐이야. 너를 반겨주고 아껴주느라 바쁠 텐데 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겠어?”선우시원이 말하고는 갑자기 차설아의 손을 잡았다.“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진짜 커플처럼 다정하게 행동해. 할아버지가 워낙 눈치가 빠르셔서 자칫하면 들통날 거야.”차설아는 오히려 선우시원의 손을 꼭 잡으며 의리 있게 말했다.“알겠어, 나한테 맡겨!”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비행기에서 내렸다.차설아는 저 멀리 병사들이 서 있는 끝에서, 훈장이 가득 달린 군복을 입은 노인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인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할아버지! 아빠! 엄마!”선우시원은 뜨거운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손을 저으며 인사했다.그는 집을 떠난 지 오래되어 그를 예뻐하던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많이 그리웠다.그는 차설아의 손을 놓고 두 팔을 벌려 그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싶었지만 포옹은커녕, 할아버지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툭 치며 말했다.“녀석아, 비켜. 길 막지 말고!”선우도환은 귀찮다는 듯이 선우시원을 밀어내고는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를 가득 머금고 선우시원의 뒤에 있던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네가 설아야? 차무진 장군님 친손녀?”차설아는 선우도환의 열정적인 모습에 난감한 얼굴을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차설아입니다. 차무진은 저희 할아버지고요.”
“선물이요?”차설아는 손을 젓더니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할아버님, 마음만 받을게요. 선물은 정말 괜찮아요. 오히려 제가 선물을 준비했어야 하는데요. 이러실 필요 없으세요.”차씨 가문이 몰락하고 성씨 가문에 시집간 뒤로부터 차설아는 그동안 수많은 모욕과 외면을 당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존중과 사랑을 느껴본 지는 너무 오래되었다.그래서 선우 가문의 아낌없는 친절에 차설아는 감동하기도 했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그녀는 지금 선우시원과 함께 연기하고 있을 뿐이었고, 그들을 속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선우도환이 미간을 구기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얘야,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럴 필요가 없다니. 나 선우도환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네가 선우 가문의 미래 여주인이라고 말했던 건 절대 농담 아니라고. 그러니까 절대 선물을 그냥 주는 거 아니야. 예물이라고 생각해도 돼!”“그... 그럴 필요 없지 않을까요?”차설아는 어색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도망가고 싶었다.선우 가문의 사람들이 이렇게 진지할 줄 알았으면 절대 선우시원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차설아는 계속 선우시원에게 눈짓을 했는데 선우시원은 못 본 척했고, 심지어 흥미로운 얼굴로 선우도환을 향해 말했다.“할아버지, 말로만 선물 준다고 하지 마세요. 예물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제가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아야 한다고요!”“전에 성씨 가문에서 설아를 집에 들일 때, 예물로 몇백억짜리 별장을 줬다고 하네요. 할아버지는... 얼마를 줄 셈이세요?”“쳇, 돈 얘기를 하면 속물로 보이잖니. 지금 세상에 돈 부족한 사람 어디 있어? 성씨네 같은 벼락부자나 그런 걸 좋아하지.”선우도환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해안시 8대 가문에서도 서열 1위인 성씨 가문이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선우도환은 턱을 치켜들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줄을 지어 서 있던 총을 메고 있는 병사들을 가리키며 차설아에게 말했다.“설아야, 넌 형님 친손녀야, 장군님의 피를 물려받
이 행동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차설아가 하니 전혀 이상해할 것 없었다. 마치 그녀는 전투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잘됐네, 참 잘됐어!”옆에 서 있던 선우도환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형님, 그곳에서 보고 계십니까? 설아는 형님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나 봅니다. 타고난 장수라고요! 설아의 미래가 아주 기대됩니다!’선우준수와 양보아는 손을 맞잡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멋지네. 우리 못난 아들이 드디어 한 건 했군! 완전 우리가 꿈꾸던 며느리 아니야?”하지만 선우시원은 이 상황이 불편하기만 했다.‘어떡하지? 할아버지 완전 진지해 보이시는데. 군단까지 선물했으니. 이제 거짓말이 들통난다면 난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그들은 고급 군용차를 타고 S시의 가장 럭셔리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양보아는 차설아를 미래 며느리로 결정한 모양인지 아들까지 내팽개치며 차설아 옆에 꼭 붙어 앉았다.“설아라고 불러도 되지? 설아야, 저 쇼핑몰이 보여? 우리 선우 가문 소유야. 저 오피스텔도 우리 선우 가문 소유고... 그리고 멀리 보이는 높은 방송탑이 보이지? 5개의 지역 방송국이 다 저 방송탑을 사용하고 있어, 저것도 우리 선우 가문에서 투자한 거야...”차설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선우 가문의 실력은 성씨 가문과 막상막하일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두 가문은 조금의 차이가 있었다.성씨 가문이 자리 잡고 있는 해안시는 연해와 가깝고 교통이 발달했기 때문에 경제도 고도로 발달했다. 그래서 비즈니스계에서는 그야말로 일인자라고 할 수 있었다.하지만 S시는 달랐다. 내륙 지역이기 때문에 비즈니스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발달한 편이 아니었다. 선우 가문은 높은 권력으로 자원을 독점했기에 발전하고 강대해질 수 있었다.두 가문 모두 실력이 대단했다. 하지만 선우도환과 성주혁이 서로 원한이 있는 관계로 두 집안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은 서로 간섭하지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
배경윤은 윤설이 단둘이 얘기하자는 말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지만 이 일은 차설아 친오빠의 목숨과 연관된 일이었기에 윤설의 의도를 알면서도 함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내 방으로 가서 단둘이 얘기해요.”배경윤은 앞장서서 사도현과 지냈던 방으로 들어갔다. 박지영은 윤설을 방까지 부축한 뒤, 재빨리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윤설은 울퉁불퉁한 방바닥, 구멍이 난 천장과 낡아서 당장이라도 망가질 것 같은 침대를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윤설은 미묘한 감정이 들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현 씨랑 이런 방에서 같이 지낸 거예요?”“네. 침대도 푹신하고 공기가 좋아서 잘 잤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배경윤은 윤설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말을 먼저 꺼낼 줄 몰랐다. 사도현은 배경윤과 같은 침대에서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윤설 곁을 지켰다.‘이런 것까지 질투하는 건가?’“쓰레기 소각장 같은 곳에서 도현 씨가 지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도현 씨는 결벽증 때문에 이런 곳에서 자지 못했을 거라고요.”“쓰레기 소각장이라고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방이 아니면 외양간에서 소랑 같이 자야 하거든요. 이 정도면 꽤 좋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윤설 씨가 결벽증인 것 같아요.”“도현 씨가 배경윤 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맞네요. 배경윤 씨를 위해서 이런 누추한 방에서 자고 더러운 진흙으로 들어가 배경윤 씨를 안아 들다니... 내가 배경윤 씨를 얕잡아 봤네요.”윤설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배경윤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입을 열었다.“본론만 얘기하세요. 배후가 누구기에 성형외과 의사한테 전화하게 된 거죠?”“말해도 배경윤 씨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걸요?”윤설은 차갑게 웃더니 거만한 눈빛을 하고서 배경윤을 훑어보았다. 배경윤이 목을 치려고 하는 배후는 손을 뻗을 수도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하더라도 알 건 알아야겠어요. 더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배후가 누구인
게스트들은 사도현의 표정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불을 피우러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 같은데요?”옆에서 듣고 있던 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네가 불을 피운다고?”그러고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너처럼 귀하게 자란 도련님들은 장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불을 피우다니, 네가 듣기에도 웃기지 않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방에서 나오는 게 도움이 되겠어.”배경윤은 불을 피우고 진찬영이 요리할 때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몹시 당황했다.‘사도현은 왜 자꾸 끼어들려고 하는 거야! 찬영 오빠랑 같이 경운기를 타려고 할 때, 찬영 오빠랑 미꾸라지를 잡을 때, 찬영 오빠랑 같이 요리하려고 할 때 계속 방해만 하잖아. 명색이 엔터테인먼트 대표라는 놈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 거야?’“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불 피우는 건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아니면 여자가 옆에 있어야 요리할 수 있다는 건가? 세상에 그런 바보가 있을 리가 없잖아.”사도현은 팔짱을 낀 채 진찬영을 쳐다보면서 배경윤한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사도현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사도현은 일부러 진찬영을 저격했다.“너 자꾸 함부로 말할 거야?”배경윤은 화가 나서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팬으로서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여우 같은 놈, 여자가 없으면 요리를 못하는 놈이라고 욕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괜찮아요.”진찬영이 피식 웃더니 배경윤의 팔목을 잡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는 배경윤 씨가 옆에서 보고 있어야 안심이 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혼자 하겠다고 설치다가 일을 망치던데요?”진찬영은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도현 씨께서 불을 잘 피울 수 있다고 하셨으니 믿어야죠. 다들 쉬고 계세요. 다 되면 알려드릴게요.”진찬영과 사도현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했다. 마당에 앉아 있던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