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렇게 겁도 없이 쳐들어 와? 참으로 건방지구먼!”선우도환이 식탁을 내리치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종업원을 향해 말했다.“들어오라고 해. S시에서 감히 선우 가문 지역에 쳐들어오려고 한 사람은 오랜만이니까.”차설아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구를 바라봤다.선우 가문은 S시에서 워낙 큰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런 선우 가문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상대도 분명 예사롭지 않을 것 같았다.연회장 두 문이 열렸다.고급 비단의 옷을 입고, 값비싼 명품 가방을 든 우아하고 화려한 여인이 여유롭게 걸어 들어왔다.“오랜만이네요, 큰아버지. 조카가 너무 보고 싶어서 특별히 해안에서 찾아왔어요. 큰아버지, 혹시 저도 같이 식사를 해도 될까요?”여인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20억짜리 에르메스 가방을 식탁에 올려두고는 자연스럽게 착석했다.우아하고 건방진 여인은 다름 아닌 차설아의 전 시어머니, 소영금이었다!“어머님!”차설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입을 열고는 다급하게 호칭을 바꿨다.“여사님,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여긴 S시라고요!”‘여긴 해안이 아니라 선우 가문의 지역이라고. 선우 가문과 성씨 가문 사이에 원한이 있는 걸 모르고 왔나? 엄청난 수모를 당할 건데.’“어머나!”소영금은 곧바로 옆에 있던 차설아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짓고는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설아야, 우리 착한 며느리. 오랜만이네. 이게 무슨 우연이야.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방금 나 뭐라고 불렀어? 한 번 더 불러볼래?”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어제 금방 봤는데 호들갑이긴. 그리고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했다고. 연기를 참으로 잘하네!’이 자리에서 가장 흥분하고 화가 난 사람은 선우시원의 어머니인 양보아였다.그녀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대문을 가리키며 말했다.“소영금, 며느리란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당신 아들과 설아가 이혼한 건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야. 설아는 지금 나 양보아의 미래 며느리라고. 어디서 친한 척이야. 여기
차설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예전에 그녀는 소영금이 건방지고 매정하다고만 생각했지, 그녀에게 이렇게 무모하고 당돌한 면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혼자 선우 가문의 지역을 찾아와서 도발하다니, 정말 겁도 없어!“건방지구나!”아니나 다를까, 선우준수는 험악한 표정을 짓더니 식탁을 세게 내리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아직도 해안시에 있는 줄 알고 있어? 여긴 선우 가문 지역이야. 허튼소리를 더 하고, 내 아내를 도발한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소영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어머, 무서워라. 오빠, 그래도 우린 어려서부터 같이 자랐는데요. 어릴 때 소꿉장난할 때 나 오빠 아내 역할도 했었잖아요, 왜 지금 나 공격하려고 그래요?”“너!”선우준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손을 쓰려고 했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차설아는 얼른 나서더니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말리며 말했다.“아버님, 화 푸세요. 여사님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요. 꼭 듣기 거북한 말을 해요. 아직 세상을 모르는 어린애라고 생각하세요. 아이랑 따질 필요가 없잖아요!”차설아도 그동안 이런 마음가짐으로 겨우 참았었다.하지만 소영금은 말을 고약하게 하고, 성격이 화끈한 것 빼고는 본성이 나쁘다고 할 수 없었다.나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여러 명문 가문 사모님 중에서 그녀는 자선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또 많은 돈을 기부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그래서 차설아는 그동안 소영금에게 괴롭힘을 당했었어도, 그녀를 미워한 적은 없었다.“그래, 설아 말을 들어야지. 이런 지능이 딸린 미친년과 말을 섞지 않는 게 좋겠어.”선우준수와 양보아는 겨우 화를 가라앉히며 소영금에게 손을 쓰려던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차설아가 소영금을 향해 말했다.“여사님, 별일 없으면 인제 그만 돌아가시죠. 선우 가족이 식사하는 자리에 외부인이 함부로 끼어드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이 말은 듣기 거슬렸지만, 사실 차설아가 그녀
그 말을 들은 소영금은 눈썹을 치켜들더니 술잔을 내려놓고는 조리 정연하게 말했다.“그럼 저도 솔직해질게요. S시로 온 이유는 바로 내 며느리인 설아를 안전하게 데려가기 위해서예요.”그녀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소영금은 전혀 겁먹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우리 설아는 어려서부터 해안에서 자랐어요. 해안시는 공기가 쾌적하고 경제가 발달한 지역이에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최고만 고집한다고요. 하지만 S시는 다르죠. 내륙 지역이고 위치가 편벽해 교통도 편리하지 않고. 뭐 하나 편한 것 없네요. 여기에 있으면 고생밖에 더 하겠어요? 젊은 나이에 고생을 찾아가려고 하니 제가 두고만 볼 수 있겠어요?”“...”선우 가문 사람들은 모두 싸늘한 눈빛을 보이면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공기 중에는 위험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차설아는 눈치를 보며 소영금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다.“여사님, 그만 말해요. 왜 지역 차별까지 해요.”‘정말 겁도 없이 말하네. 이 사람들이 무섭지 않은가 봐?’“내가 뭘 지역 차별을 했다고 그래? 사실이잖아. 매년 전 세계 부자 순위를 한 번 봐봐. 거기에 해안시 사람 몇 명 들었고, S시 사람 몇 명 들었어? 원래도 하늘과 땅 차이야. 내가 사실도 말하지 못해?”소영금은 여세를 몰아 차설아의 손을 꽉 잡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설아야, 과거의 원한은 이만 청산하자. 네가 도윤이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보여. 나랑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고!”“여사님, 이러지 마세요!”차설아는 거절하며 차갑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도윤 씨가 말하지 않던가요? 제가 공항에서 똑똑히 말한 것 같은데요. 도윤 씨랑 시원이 사이에서 저는 당연히 시원이 선택하죠. 아니면 시원이랑 S시에 오지도 않았을 거고요. 도윤 씨랑은 이미 끝난 인연이니 각자 삶을 살아가죠. 더 귀찮게 굴면 저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요.”“그럴 리가 없어. 네 말을 믿지 않아.”소영금은 인형을 쟁탈하는 어린아이처
레스토랑에서 선우 가문으로 돌아갈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선우 가문 저택에는 동서남북 네 개의 방향에 각자 정원 달린 건물이 있었다.네 건물은 인테리어는 다 저만의 스타일이 있었고 정교했기에 분위기가 남달랐다.차설아가 머무를 방은 동쪽에 있는 건물에 있었고, 선우시원의 방 바로 옆이었다.“녀석, 너 설아한테 잘해줘. 소개도 잘하란 말이야. 설아가 이곳을 빨리 익혀야지, 그래야 여길 집이라고 생각할 거 아니야?”양보아는 방에 들어가기 전에 엄숙한 얼굴로 선우시원에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제 여자친구는 제가 알아서 잘 챙길 테니 걱정할 것도 없어요.”“흥, 여자친구니까 같은 방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각 방을 쓰고 그래? 선을 지키며.”“엄마, 제가 말했었잖아요, 설아가 부끄러워한다니까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왜 한방을 쓰겠어요? 나머지 일은 결혼 후에 다시 얘기해요...”선우시원은 방에서 양보아를 밀어내며 말했다.“얼른 가서 주무세요, 우리 두 사람 방해하지 말고요.”양보아 그 말을 듣더니 드디어 눈치껏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참, 그렇지? 두 사람의 시간을 즐겨. 그리고 너, 잘하란 말이야.”드디어 모든 사람은 떠났고, 방에는 차설아와 선우시원 두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바람, 솔직히 말해봐. 나 속인 거지?”차설아가 진지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왜 그런 말을 해?”바람은 그저 덤덤하게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나보고 여자친구인 척 연기하고 부모님만 만나면 된다고 했잖아. 그런데 일이 왜 이렇게 커지게 된 거야? 군단까지 선물하시고. 이러다가 내가 너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하면 미안해서 어떻게 너희 부모님과 할아버님 얼굴을 봐? 날 너무 난감하게 만드는 거 아니야?”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며 캐물었다.그녀는 정말 마음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만 갔다.한편으로는, 선우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너무 잘해줬지만, 그녀는 그들을 속인 것 같아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우
솔직히 이런 모습의 선우시원은 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차설아는 그런 그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남자의 팔을 확 잡아당기더니 오히려 그를 벽에 밀어붙였다.차설아를 벽에 가두었던 선우시원은 순간 그녀에게 제압당했다.“녀석, 이런 농담을 하지 말라고. 어디서 드라마를 찍고 있어. 한 번만 이런 농담을 더 하면 팔을 확 잘라버린다?”“아악! 아파!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놔줘!”선우시원은 차설아가 이렇게 대단한 실력의 솜씨를 가지고 있는 걸 몰라 바로 항복했다.그의 비명은 건물을 울렸다.아직 멀리 가지 않은 양보아 그 소리를 듣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됐네, 시원이가 지금까지 잘한 일이 없는데 드디어 한 건 했네.”방 안에서.차설아는 선우시원을 제대로 혼내주고야 그를 놓아줬다.“스파크, 넌 여자면서 해커 일도 해, 주짓수도 해, 이렇게 무서워서 누가 감히 너랑 결혼하겠어?”선우시원은 거의 부러질 뻔한 팔을 잡으며 차설아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조롱하기 시작했다.“아직 더 혼나고 싶지?”차설아는 팔을 번쩍 들며 차가운 얼굴로 그를 경고했다.“아니...”선우시원은 뒤로 한 발 더 물러서며 말했다.“나 원래 이렇게 말하는 거 버릇이잖아. 처음 알게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잖아.”“그래, 너는 얻어맞을 짓만 골라 하지.”차설아는 그제야 손을 천천히 내려놓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여사님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선우시원은 몸을 풀더니 무심하고도 진지하게 말했다.“뭘 어떻게 하긴. 제대로 당해봐야 앞으로 더 나대지 않지.”“미친 거 아니야?”차설아는 조금 흥분한 목소리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그 사람은 도윤 씨 어머니라고. 만약 정말 그 사람 건드린다면 성씨 가문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아무리 군대가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성씨 가문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그때 가면 두 가문 결국 모두 손해만 볼 거야.”“왜 두
놀랍게도 그 안에는 이미 그녀의 사이즈대로 여러 가지 값비싼 옷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옷과 신발, 가방뿐만 아니라 주얼리도 가득했는데 작은 명품 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만큼 선우 가문 사람들이 정말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게다가 선우도환은 그녀에게 군단까지 선물했으니, 그녀는 자신이 그야말로 석고대죄를 지은 죄인 같았다.차설아는 소영금을 안전하게 내보낸 후, 바로 선우 가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생각을 했다.그녀는 눈에 띄지 않은 검은 옷과 흰색 옷을 챙기고는 가위로 좀 잘라내더니 선우 가문 하인들이 입은 흑백 제복과 비슷한 옷 한 벌을 만들었다.옷을 갈아입은 후, 그녀는 또 거울 앞에 앉아 일부러 노티 나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낮게 묶었다.“나 정말 손재주가 있다니까!”차설아는 거울 앞에 선우 가문 하인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그녀는 완벽 위장을 해낸 자신이 그저 대견스럽기만 했다.밤은 깊어져 갔고.선우 가문의 정원에서.하인들은 일과를 마치고 선우 가문 사람들이 잠든 틈을 타 같이 모여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그거 들었어? 이번에 시원 도련님이 데려온 여자친구가 선우 가문의 미래 여주인이래. 어르신이 엄청 마음에 들어 하셨대. 애지중지 예뻐하신다고 들었어.”“그런데 그 여자, 이혼한 적이 있다면서? 아이를 낳지 못해 버림받았다고 그러던데. 그럼 잘생기고 매너 좋은 시원 도련님이 이혼한 여자랑 결혼하는 거야?”“그러게 말이에요. 다른 사람이 버린 이혼녀랑 결혼한다니. 어르신은 그런 사람을 왜 애지중지 예뻐하는 걸까요?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누구야? 누가 얘기하고 있어?”하인들은 잔뜩 겁을 먹은 채 서로 꼭 껴안았다.차설아가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녀와 비슷한 또래인 하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보기엔 시원 도련님은 당신들이랑 결혼했어야 해요. 하나 같이 예쁘고 젊은이 아이를 쑥쑥 잘 낳겠어요. 게다가 이혼한
차설아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침착하게 말했다.“그래요? 어디가 다른데요? 분명 똑같아 보이는데요?”“디자인은 똑같은데, 원단이 조금 다르잖아...”그녀가 말하고는 손가락으로 차설아의 옷을 만지며 물었다.“이건 실크 원단이야. 왜 이런 고급스러운 원단으로 하인 옷을 만들어? 그래서 말인데, 너 좀 수상한데?”‘눈썰미가 대단한데!’차설아는 남몰래 감탄을 금치 못했다.역시 선우 가문은 남달랐다. 아무리 하인이라고 해도 눈썰미가 남달랐으니.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당황해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리폼했을 수도 있죠. 선우 가문은 워낙 재산이 어마어마하니 하인들에게 조금 더 좋은 옷을 입힐 수도 있잖아요. 설마 선우 가문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죠?”“그, 그게 아니라!”그녀는 황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선우 가문은 천하제일이야. 난 선우 가문에 충심을 다하고 있다고. 다만 모든 일에 항상 신중할 뿐이야.”“그럼 사모님 찾아가서 한 번 확인할까요? 제복을 리폼한 게 맞는지요.”“그럴 필요 없어!”그녀는 이까짓 일로 양보아를 귀찮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그만 얘기하고 이제 가지!”두 사람은 달빛 아래에서 굽이굽이 한참 가고서야 선우 가문의 대나무 숲속에 있는 초가집에 도착했다.초가집 문패에는 ‘반성실’ 세 글자 쓰여 있었다.“바로 여기야. 조용히 문밖을 지키면 돼. 안에서 무슨 말을 하든, 어떤 난리를 치든 절대 문을 열어주면 안 돼. 위에서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물건도 들여보내면 안 되고.”하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당부했다.“이게 다예요?”차설아는 초라한 초가집을 보더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선우 가문의 ‘반성실’이 정말 네모나고 심플한 작은 집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너무 초라한 나머지 차설아는 조선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럼?”하녀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어르신이 그러셨어, 한 사람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벌은 육체적인 것이
하인은 차설아가 얌전하고 무슨 사고를 칠 것 같지도 않아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차설아는 재빨리 초가집으로 달려가 상황을 살폈다.외관은 초가집이었지만, 사실 안에는 모두 고급 재료를 사용했다. 특히 불투명 유리로 만든 벽이 인상적이었다.그녀는 초가집 안의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화가 잔뜩 난 소영금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주먹을 불끈 쥐고 문을 부수더니, 또 바닥에 누워 발을 동동 굴렀다. 심지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코를 파는 등 체통을 잃는 행동을 했다.하지만 초가집 안에 있는 소영금은 외부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벽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절망에 빠졌다.“하하하, 여사님. 이제 정신을 차렸겠죠? 그러게 왜 남의 구역까지 찾아와서 도발을 해요? 아주 자업자득이에요!”차설아가 벽에 엎드려 소영금을 한참 바라봤다. 그녀가 불쌍하기는커녕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물론 소영금이 허세를 부리다가 오히려 망신을 당한 모습도 봤었지만, 이번이야말로 가장 초라한 모습을 보였고, 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차설아는 느긋하게 소영금의 미친 짓을 동영상으로 남겨두고서야 도어락을 여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최첨단 기술을 사용한 도어락이었기 때문에 도난 방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복잡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잠금 해지할 수 있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고, 또 무선 연결 장치를 꺼냈다. 뭔가를 조작하더니 바닥에 미러링으로 키보드가 나타났다.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키보드에 뭔가를 입력하자, 휴대폰에서 ‘찌찍’ 소리와 함께 파일이 잠금 해지 되었다.그리고 ‘띵’ 시스템 소리와 함께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해제하는 데 성공했다.차설아가 무표정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두께가 몇 미터나 되는 문이 열렸다.난리를 부리며 울부짖고, 옷과 바지를 거의 모두 벗어버린 소영금은 갑자기 소리가 들리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렸다.차설아를 보자마자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울음
“정말 예상도 못 했어. 분명히 조치를 다 했는데 말이야.”차설아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하지만 이미 찾아온 생명이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키울 생각이었다.“이건 운명이야! 아무리 막아도 올 아이는 오게 돼 있다니까! 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성 대표, 또 아빠가 된다는 걸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배경윤이 진심으로 차설아를 축하하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좋아할 게 뭐가 있어... 사실, 지금 우리 상황은 아이를 가질 때가 아니야.”차설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지금은 그녀와 성도윤에게 가장 큰 압박이 몰려오는 시기였다.정확히 말하면, 성도윤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밖으로는 성대그룹 대표 자리를 확고히 다져야 했고 안으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를 돌봐야 했다.그런 상황에서 아이까지 생긴다면 그는 혼자서 네 사람의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이 부담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었으며 감정적인 부담이 더 컸다.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적들에게 잡힐 약점도 많아지는 법이었고 지금의 그들에게는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이미 온 생명인데, 어쩌겠어? 애초에 달이랑 원이 가졌을 때도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잖아? 그런데 지금 얼마나 사랑스럽니? 후회해?”“당연히 후회 안 해.”“그럼 됐잖아!”배경윤이 단호하게 말했다.“게다가 이번에 태어날 아기가 달이랑 원이 장점만 쏙 빼닮았다고 생각해 봐! 완벽하지 않겠어?”“그러게... 그러면 정말 좋겠다.”차설아는 두 아이를 떠올리며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이제야 이 갑작스러운 생명이 조금씩 기대되기 시작했다.“임신 초기에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칼슘 보충해야 하나? 엽산도 챙겨야 하고, DHA도 먹어야 하지?”배경윤이 이미 휴대폰을 꺼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폭풍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마치 자신의 아이처럼 뱃속 아이를 챙기며 태어나기도 전에 애지중지하는 모습이었다.“근데 이번 아기는 아들일까, 딸일까? 아니면 또 쌍둥이일 수도 있
“임신이라고...?”차설아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더니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말했다.“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 없어.”“정말 그런지 아닌지, 테스트해 보면 알겠지.”배경윤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내가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 올게. 잠깐만 기다려!”그녀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곧바로 근처 약국으로 달려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 왔다.배경윤이 다시 돌아왔을 때, 가정부 현이가 커피에 무언가를 섞고 있었다.“현이 씨, 그게 뭐예요?”배경윤이 커피잔을 흘끗 보며 물었다.“어... 아무것도 아니에요!”현이는 당황한 듯 허둥지둥 커피를 쏟으며 말했다.“설아 씨가 커피가 많이 쓰다면서 설탕을 좀 많이 넣으라고 해서요.”“그래요?”배경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설아가 단 커피를 좋아한다고? 입맛이 바뀌었나?’분명 차설아는 블랙커피만 선호했었다. 하지만 배경윤은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차설아를 찾으러 갔다.차설아는 처음엔 테스트하기를 꺼렸다.어차피 임신일 리가 없는데 뭐 하러 하냐고 거절했지만 배경윤이 끈질기게 떠들어대는 바람에 결국 마지못해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그리고 얼마 후,“꺅!”배경윤의 날카로운 비명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진짜 임신이잖아! 내가 뭐랬어! 네가 원래 그렇게 활기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축 처지고 졸린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라니까!”차설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배경윤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한편으로는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지난번에 네가 달이랑 원이 가졌을 때 내가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잖아. 이번엔 달라! 내가 반드시 널 전적으로 돌볼 거야. 꼭 좋은 대모가 되고 말겠어!”배경윤은 차설아의 팔을 붙잡고는 벌써 세 아이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설레했다.마치 자신이 임신한 것처럼 들떠서는 말을 이었다.“근데 성도윤 그놈, 이번엔 진심일까? 진심이라면, 우리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해야지. 아이
만약 할아버지마저 성진의 꾀에 넘어갔다면 앞으로 가문에서 그의 발언권은 크게 줄어들 것이고 지위도 그보다 아래로 내려가게 될 터였다.이런 일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지만 차설아까지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성도윤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나에겐 당신과 아이들만 있으면 돼.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자, 이제 자자.”성도윤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차설아를 안은 채 조용히 말했다.“...”예민한 차설아는 그의 말투에서 나는 실망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도 덩달아 걱정이 되어 어떻게 되던 그를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다음 날 아침성도윤은 또다시 성대그룹으로 향했고 배경윤은 집에 머물며 차설아를 돌보기로 했다.“다시는 설아를 데리고 밖에 나가지 마. 또 어제 같은 일이 생기면 이번엔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성도윤은 떠나기 전에 배경윤에게 여러 번 신신당부했다.“알았어, 알았다고! 절대 안 데리고 나갈게. 설령 데리고 나가더라도 걱정 마, 이제 내 목소리도 돌아왔잖아. 누가 감히 어제처럼 날 괴롭히면 정말 지 엄마도 못 알아볼 정도로 만들어 줄 거야.”배경윤이 우유를 마시면서 신나서 떠들어댔다.성도윤은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시끄러운 여자야. 차라리 말 못 하는 게 나았을지도... 대체 사도현은 어떻게 견디는 거야?’성정엽이 떠난 후, 배경윤은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고는 차설아가 어젯밤 몰래 방문한 오두막으로 향했다.차설아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도 없었다.“아직도 안 일어났어? 요즘 너 왜 이렇게 게을러졌어? 예전 같지 않네.”배경윤이 침대 옆에 앉아 축 늘어진 차설아를 보며 감탄했다.“으음... 몰라. 요즘 너무 졸려. 너무 여유롭게 지내서 그런가 봐. 자꾸 나태해지네.”차설아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도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꼈다. 평소에는 활력이 넘치던 그녀였는데 요즘은 마치 기운이 쭉 빠진 것처럼 앉아 있는 것조
“위치 추적 장치?”성도윤은 깜짝 놀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대단한데? 내 몸에 추적 장치를 달아놓고도 내가 전혀 몰랐다니. 영화 속 첩보 요원도 너만큼은 못 하겠다.”차설아는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하죠! 난 영화 속 첩보 요원보다 훨씬 대단하거든요. 그러니까 나 잘 모셔야 해요. 괜히 나한테 못되게 굴었다간 아주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걸요?”그녀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살짝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어찌 감히 여왕님께 잘못하겠습니까? 남은 생애,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흠, 그거면 됐어요. 아주 착하네!”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성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졸리고 추워 죽겠어요! 빨리 이불 속으로 안내해요.”이렇게 지내다 보니, 그녀는 어느새 그와 함께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오늘 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가 곁에 없어서일 것이다.그래서 결국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어서 와. 이불 속은 이미 따뜻하게 데워놨지.”성도윤은 능청스럽게 ‘충실한 침대 보좌관’처럼 행동하며 그녀를 이불 속으로 이끌었다.차가운 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서로를 감싸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차설아는 옆으로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린 채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성도윤은 뒤에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그 온기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막 같았고 덕분에 차설아는 금세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성도윤은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여보, 우리 오늘 밤에 그 두 유치한 녀석들 갈라놓은 거... 혹시 너무한 거 아닐까?”그가 말한 ‘두 유치한 녀석’이란 당연히 사도현과 배경윤을 뜻했다.솔직히, 그 둘은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였고 아마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오늘 밤 자신들이 개입하면서 상황은 좀 더 심각해져 이러다가 정말 절교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성도윤의 머리가 아파졌다.“혹시 사도현이 끝
“그게 뭔데?”“두 사람 서로의 감정을 확실히 깨닫고 흔들림 없이 서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줄 그 한 가지.”차설아는 이번만큼은 저 두 사람이 깨닫기를 바랐다.그녀와 성도윤도 그 기나긴 길을 돌아왔기 때문에 그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사람은 함께 많은 일들을 겪어야만 ‘이 사람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차설아와 배경윤의 긴 대화가 이어질수록, 밤은 더욱 깊어졌다.배경윤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다 지쳐 잠들었고 그녀의 뺨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하지만 차설아는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지금의 이 고요함이 너무 불안했다. 이렇게 평온할 때일수록 더 큰 위기가 다가오는 법이었다.같은 시각, 성진의 차가 그녀의 집 아래에 멈춰 서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차 위로 희미하게 드리웠고 차 안의 남자는 어둠과 빛 속에서 조각 같은 얼굴을 드러냈다.그 역시 때로는 빛 속에 머물고 때로는 어둠 속에 숨어 지내면서 가끔은 스스로조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사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저택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 소리도 들었고 차설아가 실명한 게 사실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그녀의 눈을 누구에게 줬을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성진은 차를 몰고 오는 동안 머릿속에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그는 여자의 어깨를 붙잡고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었다.“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왜 네 소중한 눈을 나 같은 인간한테 줬냐고!”하지만 정작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해 그렇게 따져 묻고 눈을 돌려주려 했던 순간, 그는 망설였다.그는 한때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었다.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 절망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얼마나 처참한지 아직도 잊지 않았다.그리고 한 남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속옷 하나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챙길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층에서도 차설아와 배경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숨죽여 통곡하던 배경윤이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쳤다.“나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말할 수 있다고! 드디어 목소리가 돌아왔어!”배경윤이 눈물을 닦고 기쁨에 겨워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나도 목소리 되찾았으니까, 너도 분명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꼭 방법을 찾아볼게!”“잘 됐어! 네 목소리가 돌아온 건 정말 다행이야. 아니면 우리 전투력이 너무 약해질 뻔했잖아. 팬들 상대로 밀려서 너무 힘들었어.”차설아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었다.오늘 오전, 그녀와 배경윤이 무기력하게 몰려다니며 반격조차 못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배경윤이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었다.대학교 시절, 차설아, 배경수, 그리고 배경윤은 유명한 삼총사였다.셋이 무적이었던 이유는 각자의 역할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차설아는 ‘물리적 공격’을 담당했고, 배경수는 ‘두뇌 플레이’를 맡았다. 그리고 배경윤은 ‘언어 공격’을 담당했다.하지만 지금 차설아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물리적 공격’ 능력이 반감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배경윤마저 목소리를 잃었으니, ‘언어 공격'도 무용지물이 된 셈이었다.그렇다 보니 팬들이 둘을 조롱하며 몰아붙이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맞아! 만약 내가 오늘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저 미친 팬들 제대로 박살 냈을 거야! 아까, 정말 속이 터지는 줄 알았어. 내가 제대로 반격도 못 했잖아! 안 되겠어, 사도현 찾아가서 다시 따질 거야!”배경윤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사도현과 한바탕 말싸움을 벌일 기세였다.차설아는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이기고 싶다면 지금은 절대 그를 찾아가면 안 돼. 그리고 당분간 연락도 하지 마. 만약 그가 진짜 너에게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너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줄 거야.”“그 답을 내가 받을 수나 있을까? 그냥 당장 그랑 싸우는 게 속이 더 후련할 것 같은데.”“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왜 네
성도윤이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사도현은 남자의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형, 이게 정말 형 입에서 나온 말이야?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그럼 그게 완전 ‘호구’랑 뭐가 달라? 그렇게 냉정하고 도도하던 형이 어쩌다... 이제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이건 형답지 않아...”사도현은 여자를 쫓아다니긴 하지만 성도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여자에게 돈을 쓰고 달콤한 말을 하긴 해도 어떤 여자도 그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의 사고를 지배할 수 없었다.어떤 여자가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순간, 그는 단호하게 다른 여자를 찾았다.배경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원칙이 걸린 문제라면 절대 양보하지 않았기에 오늘도 이렇게 끝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나도 오랜 시간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야.”성도윤이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사도현에게 연애 철학을 설파했다.“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과 일들을 만나게 되지. 그 중요도를 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어. 중요한 건, 네 마음속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거야.”“네가 스스로의 자아를 지키는 것이 그 여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여자를 포기하면 되는 거고.”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네가 여자를 유혹하는 데 능숙한 건 알지만 결국 진정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야.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혹시 네가 그렇게 못하는 건, 단순히 네가 상대방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성도윤은 날카롭게 바라보며 정확한 지적을 했다.“나는...”사도현은 그런 게 아니라고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자 말문이 막혔다.그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도 있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성도윤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성도윤은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자신의 마음속 가장 솔직한 감정을 그가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형은 내가 좀
“내가 왜 경윤이한테 뭐라고 해야 하죠?”차설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사도현에게 물었다.“만약 내가 도현 씨라면 이 일이 윤설과 관련이 있든 없든, 나는 단번에 배경윤을 위해 나섰을 거예요.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큰 모욕을 당했는데 괴롭힌 사람을 찾아서 따지기는커녕 내 여자에게 참으라고 한다면, 그건 도현 씨가 그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겠죠.”“지금 이간질하려는 건 아니지? 사람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무턱대고 화를 내고 일이 커지면 더 큰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사도현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떠받들던 차설아가 자기편을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경윤과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직도 이해를 못 하시네요.”차설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일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도현 씨의 태도예요. 그런 태도라면 어떤 여자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그게 아니라...”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설아야, 역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뿐이구나!]배경윤은 타자한 후, 서러운 마음에 바로 차설아를 껴안았다.[이런 마음은 여자만이 이해할 수 있어! 도현 씨는 그저 내가 징징거린다고만 생각하겠지!]“도현 씨, 3일 안에 경윤이한테 사과할 기회를 줄게요. 하지만 어떻게 사과할지는 도현 씨가 알아서 해야 해요. 경윤아, 우리 오늘 같이 자자. 할 얘기가 정말 많을 것 같아!”차설아의 말에 배경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두 남자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있었다.성도윤은 왜 남의 커플 문제에 자신이 이렇게 끼어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반대로 사도현은 왜 이해심 많던 차설아가 갑자기 이렇게 고집불통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형, 우리 커플 일에 형수가 너무 과하게 간섭하는 거 아니야? 원래 하루이틀이면 해
“그때는 그때고,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잖아.”샤워를 마친 차설아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2층에서 사도현과 배경윤이 성도윤을 둘러싸고 다투는 소리를 듣고 성도윤 대신에 반박하며 나선 것이다.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 목욕 가운을 입고 나온 차설아를 보고 급하게 다가갔다.“설아야, 너 혼자 내려왔어? 움직이지 마, 잠깐만.”성도윤이 제일 먼저 달려가 아기를 돌보듯 세심하게 챙기며 말했다.배경윤과 사도현도 마치 공주를 대하듯 신중하게 행동했다.[괜찮아? 기분 나쁘거나 불편한 거 없어?]성도윤이 차설아를 거실 소파에 앉히자 배경윤이 그녀의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난 괜찮아. 기분도 나쁘지 않고 아픈 곳도 없어. 내가 전에 겪은 일에 비하면 몇 명 애들이 장난친 정도인데 뭐가 대수겠어.”차설아가 배경윤의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안심시키려 했다.“경윤아, 네가 더 걱정이야. 기분 잡치게 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마. 그러면 오히려 너 자신이 힘들어져. 그냥 흘려보내. 신경 쓸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배경윤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맞아, 맞아. 어떤 사람은 정말 마음에 두지 않더라고. 그 사람 때문에 화내는 내가 진짜 등신이지.]그녀는 당연히 차설아가 말한 ‘기분을 잡치는 사람’이 사도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도현은 오히려 차설아가 배경윤에게 작은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더 관대해지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들었어? 역시 형수가 마음이 넓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너도 같이 물려고?”사도현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여자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차설아의 말만큼은 예외라는 걸 알고 있었다.차설아는 배경윤의 정신적 지주이자 인간적 우상이었기 그녀의 말이면 배경윤은 무엇이든 믿었다.[도현 씨가 그 미친개라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배경윤이 분노를 담아 타자기를 두드리며, 마치 사도현을 죽일 듯 차가운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