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현은 불끈 쥔 주먹을 결국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지금 만약 주먹을 휘두른다면, 어렵게 다시 만난 삼 형제는 또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됐어. 세 사람 사이의 몇 년 동안 얽히고설킨 인연, 보기만 해도 복잡하고 피곤해. 난 상관 안 해. 하고 싶은 대로 해!”사도현은 말을 마치고 화를 내며 떠났다.사도현은 자기 코가 석 자였다. 아버지가 이미 이번 주가 마지막 자유일이라고 명령했다.만약 형사 소송에서 패소하면, 방에 가두어 처음부터 끝까지 사도현을 다시 개조할 것이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사도현을 도와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변호사를 찾는 것이었다.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역시 성우가 가장 적합했다. 하지만 오늘 차설아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성우는 또 차설아의 사람이니... 사도현은 눈앞이 캄캄했다.“어머님, 아버님. 이 일은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른 방법으로 만회할 테니, 지금은 청하가 편히 쉬면서 마음을 추스르도록 살펴주세요. 다른 일이 없으면 전 먼저 물러가겠습니다.”강진우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듣기에는 성의가 가득한 말이었지만, 극도로 냉담했다.허청하의 어머니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울음을 터뜨리며 강진우의 팔을 잡고 말했다.“진우야, 우리 청하랑 함께 한 시간이 얼만데 이렇게 쉽게 끝을 내? 우리 두 집안도 알고 지낸 세월이 있지. 결혼 적령기인 너희가 작은 에피소드로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필요가 있어? 청하에 대한 감정이 식었다고 해도, 서로 사이는 좋잖아... 결혼은 말이야, 사랑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 잘 맞느냐가 더 중요해. 서로 죽을 만큼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도 잘 살지는 못해.”강진우는 웃어 보였다.“어머님 말씀이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전 더 이상 좋은 아들, 좋은 친구, 좋은 남자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요. 모든 것을 규칙대로 이어가고 싶지 않으니 이해해주세요. 청하도 절 이해해주기를 바라요. 아마... 청하도 이 결과를 원하고 있을 거예요.”강진우는 말을 마치고
모두 어리둥절했다.눈치 빠른 허청하의 어머니는 강진우를 잃게 되니 얼른 성도윤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말했다.“도윤아, 드디어 왔구나. 우리 청하가 네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다고. 너희 둘 사이에는 오해가 너무 많아. 오늘 깨끗이 오해를 풀도록 해.”“사실 그때 우리 청하는 너무 어려서...”“엄마,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허청하는 어쩔 수 없는 얼굴로 말을 끊었고, 몸 둘 바를 몰랐다.한때 두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또 동시에 버림받았다. 이것은 한 여자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허청하의 어머니가 아첨하는 모습은, 허청하의 자존심을 완전히 무너뜨렸다.이에 강진우는 전혀 개의치 않고 성도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농담하듯 말했다.“여긴 너한테 맡길게. 네가 잘 처리할 거라고 믿어.”강진우의 덤덤하고 쿨한 모습은 마치 성도윤이야말로 신부에게 바람맞은 불쌍한 신랑인 것 같았다.성도윤은 바로 허청하에게 말했다.“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괜찮아?”허청하는 입술을 깨물고 대답했다.“너랑 얘기하는데 당연히 괜찮지.”두 사람은 나란히 병실에 들어섰고, 방문은 성도윤에 의해 닫혔다.그들이 거리는 원래 가까웠다.허청하가 자신에게 다가서자 성도윤은 뒤로 크게 물러서며 말했다.“물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누워서 휴식해!”허청하는 조금 어색해하며 고분고분 병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은 뜨겁게 타올랐다.“겉으로만 나한테 차갑게 굴고 있지. 사실은 아직도 날 걱정하고 있는 거지? 맞지?”성도윤은 부인하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너는 내가 사랑했던 여자이고, 또 친한 친구였으니,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사랑했던?”허청하는 씁쓸하게 웃었고, 아름다운 얼굴은 극도로 슬픔에 빠졌다.“네가 나를 애초부터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거야.”사랑받았던 느낌이 너무 행복해서, 버려진 느낌이 더욱 고통스러웠다.그 고통을 지금 또 느끼고 있다!성도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독립적이고 낙
“하하하!”허청하는 계속 웃었고, 한참 만에 숨을 돌리고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네가 너무 웃기잖아!”“내가 너랑 설아 씨 관계를 높이 평가했어. 이제 보니 이 정도 시련도 견뎌내지 못하잖아. 두 사람은 예전의 우리 사이에 비해 아직 멀었어... 나보다 설아 씨를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성도윤은 차가운 얼굴로 더욱 불쾌한 말투로 부인했다.“난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그렇구나!”허청하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순간 기분이 좋아져 옅은 미소를 지었다.“만약 진짜 설아 씨를 사랑한다면, 이 문제는 당연히 물어볼 필요도 없지. 네가 나한테 이 질문을 했다는 건, 아직 설아 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지... 그게 아니라면 아직 그 여자에 대해 잘 모르거나.”“진짜 날 밀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아는 설아 씨는 진짜 날 밀어버릴 수 있는 사람일까?”“...”성도윤은 침묵했다.허청하의 말에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주먹을 꽉 쥐었다.“내가 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아직 기회는 있네.”허청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뒤 그대로 드러누워 두 눈을 감고 말했다.“나 피곤해, 쉬고 싶어. 네가 원하는 답은 주지 않을 테니 알아서 판단해.”성도윤은 결연한 태도로 허청하를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병실을 나갔다.비록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허청하가 그를 일깨워줬다.어쩌면, 성도윤은 차설아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일시적인 소유욕 때문일 것이다.진짜 좋아했다면, 의심의 여지도 없이 무조건 차설아를 믿었을 것이다.‘성도윤, 정신 차려!’이튿날.차설아는 어젯밤 성도윤과의 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꿀잠을 잤다.한때 그녀의 기분을 좌지우지하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던 그 남자는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다른 사람에 의해 감정이 휘둘리지 않는 느낌은 정말 좋았다!“아가씨, 깼어요? 잠은 잘 잤어요?”민이 이모는
차설아와 민이 이모는 전에 자주 갔던 개인 산부인과 병원에 갔다.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손을 잡고 자세히 맥을 짚더니 말했다.“맥박은 정상이에요. 태아는 별문제 없을 거예요. 꿈자리 때문에 괜히 겁먹지 마세요. 나쁜 꿈은 털어놓으면 그만이니.”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저도 두 아이가 괜찮을 거라고 확신해요. 제가 체질 하나는 좋잖아요. 다만, 자꾸 뭔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아요.”“퉤. 말이 씨가 된다고. 자꾸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우리 집안의 의술은 믿어야 해요. 아무리 큰 병이라도 제가 약을 두세 첩 처방하면 돼요. 그러니 안심하세요.”“맞네요. 든든한 신의가 지키고 있는데 제가 걱정할 게 뭐 있겠어요?”차설아는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검사실로 들어갔다.검사 결과,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잘 커가고 있었다.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생명력이 아주 강한 아이들이었다.“설아 씨, 1주일만 있으면 임신 3개월이에요. 임신 중기에 곧 접어들게 되는 거죠. 임신 중기는 임신 기간 중 가장 편안한 단계에요. 입덧 현상도 사라질 것이고 식욕이나 컨디션도 전에 비해 훨씬 나아질 거예요. 태아의 생명력이 강해지면서 몸집도 커지니 헐렁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칼슘 보충과 수면에 주의하세요.”의사는 말을 마치고 차설아에게 칼슘과 영양제를 처방해주고 다음 환자를 불렀다.차설아는 검사지를 들고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민이 이모에게 기쁘게 손을 흔들었다.“이모, 이모 말대로 진짜 괜찮대요. 제가 괜히 생각이 많았어요.”“그럼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민이 이모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무너진 차씨 가문이 점점 생기를 되찾는 모습에 민이 이모는 아주 흐뭇했다. 한을 품고 돌아가신 차설아의 부모님과 할아버지를 위해 진심으로 기뻐했다.두 사람은 병원을 떠나 길가에 서서 차를 기다렸다.예민한 차설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고, 계속 뒤를 바라보았다.
차설아에게 들킨 사도현은 체면이 구겨져 화를 냈다.“젠장. 어떻게 발견했어? 은밀하게 따라오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차설아는 팔짱을 끼고 사도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바보를 보는 눈빛으로 말했다.“대낮에 시커먼 옷을 입고, 은폐물도 제대로 고르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발견하지 못하겠어요?”사도현은 차설아의 예리한 분석에 어색하게 자신의 오똑한 코를 긁적이며 말했다.“임신하면 민감도가 떨어진다더니 왜 이렇게 똑똑해?”차설아는 바짝 긴장했다.하지만 계속 모르는 척하고 말했다.“누가 임신했다는 거죠? 도현 씨가요?”사도현은 차설아를 힐긋 쳐다보았다. 전 같았으면 일찍이 화를 냈지만, 지금은 차설아를 미행한 목적과, 임신 중인 차설아를 고려해 성격을 많이 죽이고 있었다.“시치미 떼지 마. 네가 병원에 와서부터 산부인과까지 계속 따라다녔어. 너 임신했잖아...”“당신!”차설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숨이 가빠졌다.사도현은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 있고, 만약 이 사실을 성도윤에게 알린다면 큰일이다!“안심해. 나 입 그렇게 빠르지 않아. 네가 임신한 사실을 도윤이 형한테 알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사도현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런 사도현의 모습이 차설아는 무척 의외였다.사도현 같은 가십쟁이가 왜 이렇게 얌전해졌을까! 예사롭지 않다!“도윤이 형이랑 이혼하고, 배씨 집안의 아이를 가진 걸 말하면 형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겠어. 난 그런 형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사도현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당시 성도윤이 첫사랑의 실연으로 인해서 했던 일련의 바보짓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였다.당시 허청하에게 차이고, 성도윤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형제인 그들까지 함께 괴롭혔다.지금 성도윤이 전처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데,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면 제대로 폭발할 것이다. 그래서 차설아가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사도현은 이 비밀을 꼭 지킬 것이다.“그렇군요!”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바보
“그건...”사도현은 약간 어색한 듯 코를 긁었고, 평소의 당당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약간 찡그렸다.어쨌든 남에게 부탁하는 입장이고, 게다가 평소에 가장 탐탁지 않게 여기던 여자에게 부탁을 하려니 다소 체면이 서지 않았다.“시간 있으면 나랑 커피 한잔해.”사도현은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차설아는 웃어 보였다.“제가 언제 도현 씨랑 커피를 마실 정도로 친분이 있었죠? 커피에 독이라도 타려는 건 아니죠?”사도현이 평소에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차설아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여태껏 그녀를 똑바로 쳐다본 적도 없고, 사사건건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먼저 커피를 사주겠다고 하니,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금세 무너졌고, 화를 내며 말했다.“내가 그렇게 비열하고 파렴치한 사람으로 보여?”차설아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아닌가요?”“너!”사도현은 화가 머리까지 치밀어 올랐고 마치 포효하는 사자처럼 조급하게 말했다.“나 사도현은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야. 그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이 아니라고! 네가 눈에 거슬렸던 건 맞아. 우리 도윤이 형 옆에서 사라지기를 바랐어. 기껏해야 속으로 몇 마디 저주를 퍼부을 뿐, 약을 타는 악랄한 수법 따위는 쓰지 않아!”사도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참으며,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 모습에 차설아는 웃음을 자아냈다.더 이상 그를 놀리지 않기로 하고 말했다.“좋아요. 그럼 저를 초대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죠.”두 사람은 근처 커피숍에 가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아가씨!”민이 이모는 미간을 구기고, 사도현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이모, 먼저 가세요. 제 친구예요. 괜찮아요.”친구?이 두 글자는 무심코 불어닥친 바람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사도현의 가슴에 박혀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사도현은 좁고 긴 눈으로 차설아를 힐긋 쳐다보았다. 여자의 시선이 돌아옴을 느낀 후, 도둑처럼 얼른 시선을 옮겼고,
‘왜... 왜 갑자기 날 끌어당기는 거지?’‘그리고... 손가락은 또 왜 이렇게 가늘어? 손바닥도 너무 부드럽고 몽글몽글하잖아!’사도현은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그는 서둘러 고개를 흔들고 팔을 힘껏 빼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뭐 하는 거야. 남녀가 유별나거늘, 내가 매력이 넘치는 건 알겠는데, 좀 자제해줄래? 함부로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차설아는 어이가 없었고, 사도현이 장난치는 것으로 알고 급히 말했다.“좋아요, 알겠어요. 자제할게요. 도련님은 그 차고 넘치는 매력을 자제해주세요.”사도현은 그저 독설에만 강한 줄 알았었다. 지금 보니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다.두 사람은 커피숍 창가 자리에 앉았고, 사도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차설아를 카푸치노를 주문했다.차설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감이라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말해봐요. 제가 뭘 도와주면 되죠?”차설아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사도현은 깜짝 놀라 커피를 내뿜을 뻔했다.“어떻게... 내가 부탁하러 왔다는 걸 알고 있어?”“도움을 요청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저한테 이렇게 우호적일 사도현 씨가 아니죠. 저를 비웃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커피를 사주겠어요?”차설아의 분석에 사도현은 혀를 내둘렀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연구하는 눈빛으로 차설아를 한참 보더니 입을 열었다.“전에는 내가 어리석어서 너의 총명함을 몰라봤어. 그저 성가에 빌붙어 살며 자기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어린 여자라고만 생각했어. 역시 우리 까탈스러운 도윤이 형이 빠질 만해.”차설아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저 사도현의 농담이라고만 생각했다.성도윤이 어떻게 차설아에게 빠질 수 있겠는가. 화가 나도 모자랄 판에.“아부는 그만하고 얼른 얘기해보세요. 도와줄지 말지는 내 기분에 달렸으니까요!”차설아는 냉담하게 말했다.사도현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내가 소송에 휘말렸어. 아주 복잡한 소송이라, 이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변호사는 전 해안 시에서 성우밖에 없어.”“
사도현은 차설아의 말에 눈빛이 밝아지더니 급하게 말했다.“조건이 뭔데? 소송에서 이기는 것만 도와줄 수 있다면 뭐든 말해.”차설아는 빙빙 돌리지 않고 말했다.“도현 씨 가문의 명의로 된 남쪽 외곽에 있는 땅을 30년 동안 임대하고 싶어요.”사씨 가문도 8대 가문 중 하나로, 부동산 산업을 주로 하고 있었다. 비록 단일하지만 재력이 탄탄했다.사씨 가문은 남다른 인맥으로 손에 많은 토지를 쥐고 있었고, 수많은 유명한 고급 주택과 상업센터를 개발했다. 하지만 남쪽 교외에 있는 3,000무 이상인 그 땅은 위치가 시내 중심에 많이 떨어져 개발 가치가 크지 않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잡초만 무성하게 자랐다.오랜 세월 동안 사씨 가문에서 이 땅을 남겨둔 것은,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섣불리 개발하면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인수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수하면 밑지는 장사이기에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그런데 차설아가 이런 요구를 제기하다니! 아주 참신했다!“그 땅으로 뭐 하려고? 누구도 감히 인수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땅이야.”사도현은 커피를 홀짝이며 궁금해서 물었다.차설아는 피식 웃었다. ‘솔직하기도 하지. 자기 집 땅을 대놓고 나무라네.”“그건 묻지 말고, 그래서 빌려 줄 거예요? 말 거예요?”차설아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네가 원한다면 난 당연히 땡큐지. 그 땅은 투자하는 순간, 밑지는 땅이야. 다시 잘 생각해봐. 만약 부동산에 손을 대고 싶다면, 우리 집안에는 훨씬 더 좋은 땅도 많아.”사도현은 의리있게 말했다.차설아의 ‘친구’라는 단어에, 사도현은 이미 차설아를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친구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차설아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다른 건 필요 없고, 전 그 땅만 원해요. 만약 동의하시면, 제가 당장 성우 변호사님한테 말해서 도현 씨의 변호사가 되는 계약서를 준비하라고 하죠.”“좋아!”차설아의 시원시원한 모습에 사도현도 통쾌하게 동의했다.“최저가로 임대해 줄게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