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시선을 스태프한테 옮겼다.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성인리... 성인리 쪽의 절벽에 허청하 님의 신발이 있습니다. 아마 허청하 님이 바다에 빠진 것 같습니다!”성인리는 이 구역의 유명한 곳이었다. C자형 절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세가 높고 험난했다.“바다에 떨어졌다고요?”사도현은 다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청하 누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얼른 사람 구하러 가요.”그는 앞장서서 달려 나갔고, 강진우와 성도윤은 그 뒤를 따랐다.차설아가 흠칫하고는 호기심 많은 하객들과 함께 따라갔다.성인리의 바닷물은 비교적 잔잔했다.해는 이미 뉘엿뉘엿 졌기 때문에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그들은 허청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차설아는 벼랑 끝에 가지런히 놓인 웨딩화를 보고는 추측하기 시작했다.“혹시 허청하 씨가 하이힐 때문에 힘들어해서 일부러 벗어둔 건 아닐까요? 아직 이 주위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조여빈은 작정하고 차설아를 물고 늘어졌다.“모두들 알다시피 허청하 씨는 사리가 밝은 사람입니다. 본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게 말이 돼요? 사람들이 자기를 기다리는 걸 뻔히 알면서도 주위를 돌아볼 마음이 있을까요? 정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오히려 차설아 씨가 도둑이 제 발 저려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게 아닌가요? 우리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린 후에 차마 입밖에 내뱉을 수 없는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닐까요?”“차설아 씨가 허청하 씨를 절벽으로 밀어낸 건 아닌가요? 허청하 씨에게 무슨 사고가 났다면 당신은 가장 혐의가 큰 용의자예요!”조여빈의 말은 일파만파를 일으켰다.“맞아요! 저 사람일 거예요!”허청하의 어머니는 눈이 빨개진 채 차설아에게 달려들고는 그녀를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다.“이 악독한 년, 왜 우리 딸을 해치려는 거야? 우리 딸 돌려내!”차설아는 충분히 그녀의 애타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화를 내지도 않고 반격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쩔 수 없는
“4년 동안 결혼생활을 보냈는데 어떻게 아무 상관이 없겠어?”성도윤의 차가운 눈빛에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그래서 황당하게 들리는 말도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받아들였다.성도윤의 뒤에 선 차설아는 마음이 착잡했다.그녀는 성도윤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편을 들어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나한테 차갑고 매정하게 굴던 사람이 누군데? 4년 동안 결혼생활을 가장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누군데? 이제 와서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야?’강진우가 입을 열었다.“도윤이 말이 맞아요. 지금 설아 씨가 청하를 바다에 밀어 넣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함부로 추측하지 말자고요. 폭력을 쓰면 더더욱 안 되고요. 이럴 시간 있으면 따로 움직여서 바다를 따라 찾아보는 건 어때요?”사람들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저마다 바다를 따라 허청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성도윤도 따라나섰고 차설아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방금 성도윤의 도움에 감동하여 차설아는 기회를 봐서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하지만 성도윤은 허청하를 많이 걱정한 듯했다. 발걸음은 조급했고 애타는 표정으로 찾고 있었다.역시 허청하는 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아무리 결혼식을 망치지 않았다고 해서 허청하를 완전히 내려놓은 건 아닌 듯했다.“그게, 도윤 씨...”차설아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남자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지금의 성도윤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빨리 허청하를 찾고 싶었기에 차설아에게 귀찮은 듯이 차갑게 대답했다.“무슨 일인데?”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차설아는 몸 둘 바를 몰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편을 들어줘 고마워.”“고마워할 것 없어.”성도윤은 바다를 샅샅이 뒤지고 있어 차설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만약 정말 당신이 한 짓이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차설아의 얼굴색은 한껏 어두워졌고, 마음도 씁쓸해졌다.‘
하지만 차설아가 아무리 불러도 성도윤은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성도윤, 그렇게 죽으려고 작정했으면 나도 안 말리겠어. 당신이 죽는다면 절대 당신을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한편으로는 남자가 걱정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충동적인 행동 때문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성도윤, 이 세상에 정말 미련이 안 남는 거야? 첫사랑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해?’차설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알고 있던 차갑던 남자는 사실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만 성도윤의 뜨거운 사랑은 모두 허청하에게 주어졌을 뿐, 그녀는 바랄 수도 없었다.성도윤은 워낙 수영을 잘했기에 곧바로 허청하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그는 길 팔로 허청하를 잡고는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곧 얕은 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갑자기 큰 파도가 치더니 성도윤과 허청하는 또다시 파도에 휩쓸렸다. 어디에서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상황은 매우 위급해졌다.“안돼!”차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는데 본능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강진우와 사도현, 그리고 그들을 뒤따른 사람들까지 거센 파도를 보더니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왜 아직도 멍하니 서 있어요? 얼른 가서 사람 구해야죠. 도윤 씨랑 청하 씨 모두 파도에 휩쓸려 가게 생겼어요!”차설아는 다급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지금처럼 절망적인 순간을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뱃속의 두 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 바다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러 갔을 것이다.사도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려고 했는데 강진우는 그를 말렸다.그는 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맏형으로서 가장 이성적이었다.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사도현에게 말했다.“파도가 너무 거세서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어. 전문 구조대가 이미 출동했으니 우리는 우리 자신부터 보호하자고. 바닷가에서 차분히 기다리자.”“차분히 못 있겠다고!”사도
두 사람은 안전하게 바닷가에 도착했다.강진우가 천천히 그녀를 내려주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는 죄송했어요. 저도 너무 다급한 나머지 실례를 했네요. 제수씨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괜찮아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아까는 제가 너무 흥분했어요.”차설아도 진정을 되찾았다. 방금 자신의 행동이 너무 성급했고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막말로 성도윤과 전남편이 죽든 살든 그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하지만 정신을 차려서도 차설아는 바닷가에 서서 두 손을 가슴에 두른 채 조용히 해면을 바라봤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게 성도윤을 응원하고 있었다.‘돌아와, 성도윤 돌아오라고.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제발 꼭 돌아와.’그리고 텔레파시가 통한 듯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이미 사라진 성도윤은 뛰어난 수영 기술로 파도를 헤치고 헤엄쳐 돌아왔다!“돌아왔어! 돌아왔어요!”사람들은 기쁜 마음에 얼른 앞으로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이때 이미 기진맥진해 있던 성도윤은 허청하를 강진우와 사도현에게 넘기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딸아, 우리 예쁜 딸아. 왜 이렇게 됐어? 엄마 아빠 놀라게 하지 마!”허청하의 어머니는 울부짖으면서 허청하를 구하는 데 모든 신경을 썼다.차설아는 성도윤 앞에 다가가고는 애써 희열의 눈물을 삼키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어머, 성도윤은 역시 다르네. 깊은 구역까지 수영해 갈 수 있다니. 상어가 배고플지 걱정되었어? 상이 먹이로 자진하게? 이런 희생정신이 어디 또 있어? 정말 하늘도 감동하겠어!”“...”성도윤은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차설아와 말할 기운도 없었다.그는 그저 석양에 비친 차설아의 얼굴이 너무 귀여워 보이기만 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듯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도윤 씨 그렇게 사람 돕는 걸 좋아하니 훈남 오빠라고 불러도 되겠어!”차설아는 이러쿵저러쿵 시시콜콜한 말만 하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훈남 오빠, 어때? 더 버틸 수 있겠어? 의사 불러줄까?”성도윤
그에게 인공호흡을 한 사람은 그가 바라던 차설아가 아닌 구릿빛 피부에 건장한 구조대원이었다.“젠장!”성도윤은 바닥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구조대원을 확 밀어버렸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차설아는 기쁜 얼굴로 말했다.“다행이야, 도윤 씨. 이제 살아났네. 정말 다행이야!”“차설아! 일부러 그랬지?”성도윤은 굳은 표정으로 계속 손으로 입을 닦아냈다.‘너무 민망하잖아.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차설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성도윤의 속셈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녀는 그저 성도윤이 정말 인공호흡이 필요할 정도로 허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조대원을 찾은 것이었다.이제 남자가 생기발랄한 모습을 보였으니 생명의 위협에서는 벗어난 것 같아 차설아는 기쁘기만 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남자에게 달려가고는 그를 와락 끌어안으며 울먹였다.“정말 다행이야, 도윤 씨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진우 씨 말대로 당신은 럭키 가이야!’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성도윤은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순간 그의 화는 사그라들었다.품에 안긴 귀여운 여자가 자기 걱정을 해주고 있으니 화가 날래야 날 수가 없었다...성도윤은 자신을 걱정하는 차설아가 낯설어 목을 가다듬고는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난기가 섞인 말투로 말했다.“내가 죽는 걸 그렇게 두려워하면서 내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거라고?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네!”남자의 말을 들은 차설아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며 차갑게 말했다.“당신이야말로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사람이잖아. 그럼 당신이 죽으면 당연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지.”“하지만 당신 지금 울고 있잖아...”“바닷바람이 불어서 그래.”“치마는 왜 젖었어? 설마 나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거야?”“그건... 내가 바다가 좋아서 뛰어든 거야. 당신이랑 상관없어.”차설아는 끝까지 성도윤을 걱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성도윤은 어쩔 수 없다는
허청하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허청하의 손을 꽉 잡았다.“딸, 뭐 찾는 거야? 뭐 찾아? 엄마 한 번 봐봐...”“도윤이는 어디에 있어요?”허약한 얼굴의 허청하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그녀는 방금 생사의 문턱을 넘길 뻔했기에 더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아직 성도윤을 사랑하고 성도윤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오로지 성도윤의 얼굴만 보고 싶었다!“성... 성도윤 씨?”사람들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신부가 어렵게 의식을 되찾았는데 신랑이 아닌 다른 남자를 찾고 있으니 말이다. 강씨 가문 도련님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강진우의 잘생긴 얼굴은 순간 굳어졌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품에 안긴 허청하에게 말했다.“방금은 도윤이가 목숨을 걸고 널 구했어. 도윤이한테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해야지.”“도윤이가 날 구했다고?”새하얗게 질린 허청하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웠다. 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럴 줄 알았어. 도윤이가 아직 나에게 마음이 있을 줄 알았다고. 도윤이가... 지금 어디에 있어? 한 번 얼굴을 봐야겠어!”수많은 사람들이 허청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성도윤과 차설아는 가장 바깥 가장자리에 있었다.성도윤은 허청하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차설아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차설아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서 그를 놀리기 바빴다.“훈남 오빠, 좋은 일을 했으면 널리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그냥 가려고만 해?”성도윤은 차설아를 째려보며 경고했다.“농담 한마디라도 더 하면 당신 바다에 던져버릴 거야.”차설아는 겁먹은 듯 어색하게 웃고는 말했다.“알겠어. 그만할게. 무서워서 어디 농담을 하겠어?”이때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주기 시작했다. 허청하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성도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도윤아...”하지만 기쁨에 찬 그녀의 미소는 꽉 잡고 있는 성도윤과 차설아의 손을 보고 곧바로 굳어졌다.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이 남자는 그
“그게...”허청하는 아직 허약한 기색이었고, 반짝이는 눈으로 사람들을 보며,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조여빈은 계속 부추기며 암시하듯 말했다.“제가 청하 씨와 설아 씨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봤어요. 설아 씨가 마지막으로 본 사람인가요?”조여빈은 자신의 암시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차설아가 당신을 밀었어요’라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연예계에서 오랫동안 발을 담그며 이런 ‘차용 살인’은 조여빈도 가장 많이 사용했고, 가장 능숙한 수법이었다.깨끗하게 남의 손을 빌려서 가장 위협적인 적을 제거하는 것은 정말 완벽한 일이었다!“맞아요!”허청하의 어머니는 허청하의 어깨를 움켜쥐며 말했다.“딸아, 겁내지 말고 솔직히 말해 봐, 이 악독한 여자가 너를 바다에 밀어 넣은 게 아니냐. 만약 이 여자가 한 짓이라면, 엄마, 아빠는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허청하는 턱을 깨물며 겁먹은 모습을 보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엄마, 저 이제 괜찮으니까 그만 따지세요, 저하고 설아 씨는 친한 친구예요. 고의가 아니었어요.”허청하는 원래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 바다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성도윤에게 상처를 받아 잠시 이성을 잃고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성도윤과 차설아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에 질투심이 타올랐고, 독한 마음을 먹고 차설아에게 누명을 씌웠다.성도윤이 아무리 차설아를 사랑해도, 악랄한 살인자를 포용할 만큼 마지노선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과연 성도윤은 차설아의 손을 금세 놓았다.차설아를 차갑게 바라보는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어떻게 된 거야?”사람들도 입을 가리고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진짜... 저 여자가 한 짓이라니. 사람이 어쩜 저렇게 악독해?”차설아는 어쩌다 보니 몰매의 대상이 되어 어이가 없었다. 차설아는 허청하를 가리키며 말했다.“말은 똑바로 해야죠. 그렇게 애매하게 말을 하면 어떡해요? 그만 따져요? 고의가 아니에요? 제가 무슨 행동을 했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허청하의 어머니는 또 강진우에게 말했다.“진우야, 어서 청하를 병원으로 보내.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산 채로 맞아 죽게 생겼어!”강진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네, 어머님. 하지만 저도 오늘 사람들 앞에서 공표할 사안이 있어요. 오늘 저랑 청하의 결혼식은 취소되었고, 우리의 연인 관계도 오늘로 끝났음을 밝힙니다.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대단히 죄송하고, 앞으로 저희 가문에서는 여러분의 손실을 전부 보상해 드릴 겁니다.”현장은 떠들썩해졌다.“형, 그게 무슨 헛소리야? 이 상황에 결혼식을 취소하고, 청하 누나랑 헤어진다니?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농담으로 분위기 띄우려고 하는 거 맞지?”사도현은 흥분한 채로 상황을 모면하려 애썼다.강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청하를 안고 자리를 떠났다.일행은 그들의 뒤를 따라 함께 자리를 떠났다.모래사장에는 성도윤, 차설아 그리고 스타 조여빈만 남았다.조여빈은 가식적으로 말했다.“설아 씨, 방금 저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설마 저를 원망하는 건 아니죠?”차설아는 냉소를 지었다.“아주 좋은 ‘차용 살인’이네요. 여빈 씨는 제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봐요. 어때요? 지금은 기쁘세요?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네요. 저랑 여빈 씨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왜 저를 계속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거죠?”조여빈은 가슴을 움켜쥔 채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설아 씨, 오해예요. 사람 목숨이 달린 일에 제가 사실을 말한 것도 잘못인가요?”차설아는 조여빈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고 단박에 그녀의 가식을 폭로했다.“여빈 씨는 그래도 잘나가는 스타잖아요. 제 전남편에게 관심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직진하세요. 이런 음흉한 수법을 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저를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당신의 우세를 이용해서 저를 이기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차설아는 조여빈은 위아래로 훑어본 후 피식 웃었다.“비주얼이랑 몸매가 아주 훌륭하네요. 특히 그 작은 허리는 아주 가늘어요. 우리 성대표님은 그런 개미
“위치 추적 장치?”성도윤은 깜짝 놀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대단한데? 내 몸에 추적 장치를 달아놓고도 내가 전혀 몰랐다니. 영화 속 첩보 요원도 너만큼은 못 하겠다.”차설아는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하죠! 난 영화 속 첩보 요원보다 훨씬 대단하거든요. 그러니까 나 잘 모셔야 해요. 괜히 나한테 못되게 굴었다간 아주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걸요?”그녀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살짝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어찌 감히 여왕님께 잘못하겠습니까? 남은 생애,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흠, 그거면 됐어요. 아주 착하네!”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성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졸리고 추워 죽겠어요! 빨리 이불 속으로 안내해요.”이렇게 지내다 보니, 그녀는 어느새 그와 함께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오늘 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가 곁에 없어서일 것이다.그래서 결국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어서 와. 이불 속은 이미 따뜻하게 데워놨지.”성도윤은 능청스럽게 ‘충실한 침대 보좌관’처럼 행동하며 그녀를 이불 속으로 이끌었다.차가운 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서로를 감싸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차설아는 옆으로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린 채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성도윤은 뒤에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그 온기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막 같았고 덕분에 차설아는 금세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성도윤은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여보, 우리 오늘 밤에 그 두 유치한 녀석들 갈라놓은 거... 혹시 너무한 거 아닐까?”그가 말한 ‘두 유치한 녀석’이란 당연히 사도현과 배경윤을 뜻했다.솔직히, 그 둘은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였고 아마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오늘 밤 자신들이 개입하면서 상황은 좀 더 심각해져 이러다가 정말 절교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성도윤의 머리가 아파졌다.“혹시 사도현이 끝
“그게 뭔데?”“두 사람 서로의 감정을 확실히 깨닫고 흔들림 없이 서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줄 그 한 가지.”차설아는 이번만큼은 저 두 사람이 깨닫기를 바랐다.그녀와 성도윤도 그 기나긴 길을 돌아왔기 때문에 그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사람은 함께 많은 일들을 겪어야만 ‘이 사람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차설아와 배경윤의 긴 대화가 이어질수록, 밤은 더욱 깊어졌다.배경윤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다 지쳐 잠들었고 그녀의 뺨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하지만 차설아는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지금의 이 고요함이 너무 불안했다. 이렇게 평온할 때일수록 더 큰 위기가 다가오는 법이었다.같은 시각, 성진의 차가 그녀의 집 아래에 멈춰 서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차 위로 희미하게 드리웠고 차 안의 남자는 어둠과 빛 속에서 조각 같은 얼굴을 드러냈다.그 역시 때로는 빛 속에 머물고 때로는 어둠 속에 숨어 지내면서 가끔은 스스로조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사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저택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 소리도 들었고 차설아가 실명한 게 사실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그녀의 눈을 누구에게 줬을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성진은 차를 몰고 오는 동안 머릿속에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그는 여자의 어깨를 붙잡고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었다.“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왜 네 소중한 눈을 나 같은 인간한테 줬냐고!”하지만 정작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해 그렇게 따져 묻고 눈을 돌려주려 했던 순간, 그는 망설였다.그는 한때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었다.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 절망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얼마나 처참한지 아직도 잊지 않았다.그리고 한 남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속옷 하나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챙길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층에서도 차설아와 배경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숨죽여 통곡하던 배경윤이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쳤다.“나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말할 수 있다고! 드디어 목소리가 돌아왔어!”배경윤이 눈물을 닦고 기쁨에 겨워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나도 목소리 되찾았으니까, 너도 분명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꼭 방법을 찾아볼게!”“잘 됐어! 네 목소리가 돌아온 건 정말 다행이야. 아니면 우리 전투력이 너무 약해질 뻔했잖아. 팬들 상대로 밀려서 너무 힘들었어.”차설아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었다.오늘 오전, 그녀와 배경윤이 무기력하게 몰려다니며 반격조차 못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배경윤이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었다.대학교 시절, 차설아, 배경수, 그리고 배경윤은 유명한 삼총사였다.셋이 무적이었던 이유는 각자의 역할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차설아는 ‘물리적 공격’을 담당했고, 배경수는 ‘두뇌 플레이’를 맡았다. 그리고 배경윤은 ‘언어 공격’을 담당했다.하지만 지금 차설아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물리적 공격’ 능력이 반감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배경윤마저 목소리를 잃었으니, ‘언어 공격'도 무용지물이 된 셈이었다.그렇다 보니 팬들이 둘을 조롱하며 몰아붙이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맞아! 만약 내가 오늘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저 미친 팬들 제대로 박살 냈을 거야! 아까, 정말 속이 터지는 줄 알았어. 내가 제대로 반격도 못 했잖아! 안 되겠어, 사도현 찾아가서 다시 따질 거야!”배경윤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사도현과 한바탕 말싸움을 벌일 기세였다.차설아는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이기고 싶다면 지금은 절대 그를 찾아가면 안 돼. 그리고 당분간 연락도 하지 마. 만약 그가 진짜 너에게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너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줄 거야.”“그 답을 내가 받을 수나 있을까? 그냥 당장 그랑 싸우는 게 속이 더 후련할 것 같은데.”“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왜 네
성도윤이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사도현은 남자의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형, 이게 정말 형 입에서 나온 말이야?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그럼 그게 완전 ‘호구’랑 뭐가 달라? 그렇게 냉정하고 도도하던 형이 어쩌다... 이제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이건 형답지 않아...”사도현은 여자를 쫓아다니긴 하지만 성도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여자에게 돈을 쓰고 달콤한 말을 하긴 해도 어떤 여자도 그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의 사고를 지배할 수 없었다.어떤 여자가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순간, 그는 단호하게 다른 여자를 찾았다.배경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원칙이 걸린 문제라면 절대 양보하지 않았기에 오늘도 이렇게 끝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나도 오랜 시간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야.”성도윤이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사도현에게 연애 철학을 설파했다.“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과 일들을 만나게 되지. 그 중요도를 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어. 중요한 건, 네 마음속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거야.”“네가 스스로의 자아를 지키는 것이 그 여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여자를 포기하면 되는 거고.”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네가 여자를 유혹하는 데 능숙한 건 알지만 결국 진정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야.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혹시 네가 그렇게 못하는 건, 단순히 네가 상대방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성도윤은 날카롭게 바라보며 정확한 지적을 했다.“나는...”사도현은 그런 게 아니라고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자 말문이 막혔다.그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도 있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성도윤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성도윤은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자신의 마음속 가장 솔직한 감정을 그가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형은 내가 좀
“내가 왜 경윤이한테 뭐라고 해야 하죠?”차설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사도현에게 물었다.“만약 내가 도현 씨라면 이 일이 윤설과 관련이 있든 없든, 나는 단번에 배경윤을 위해 나섰을 거예요.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큰 모욕을 당했는데 괴롭힌 사람을 찾아서 따지기는커녕 내 여자에게 참으라고 한다면, 그건 도현 씨가 그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겠죠.”“지금 이간질하려는 건 아니지? 사람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무턱대고 화를 내고 일이 커지면 더 큰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사도현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떠받들던 차설아가 자기편을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경윤과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직도 이해를 못 하시네요.”차설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일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도현 씨의 태도예요. 그런 태도라면 어떤 여자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그게 아니라...”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설아야, 역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뿐이구나!]배경윤은 타자한 후, 서러운 마음에 바로 차설아를 껴안았다.[이런 마음은 여자만이 이해할 수 있어! 도현 씨는 그저 내가 징징거린다고만 생각하겠지!]“도현 씨, 3일 안에 경윤이한테 사과할 기회를 줄게요. 하지만 어떻게 사과할지는 도현 씨가 알아서 해야 해요. 경윤아, 우리 오늘 같이 자자. 할 얘기가 정말 많을 것 같아!”차설아의 말에 배경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두 남자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있었다.성도윤은 왜 남의 커플 문제에 자신이 이렇게 끼어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반대로 사도현은 왜 이해심 많던 차설아가 갑자기 이렇게 고집불통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형, 우리 커플 일에 형수가 너무 과하게 간섭하는 거 아니야? 원래 하루이틀이면 해
“그때는 그때고,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잖아.”샤워를 마친 차설아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2층에서 사도현과 배경윤이 성도윤을 둘러싸고 다투는 소리를 듣고 성도윤 대신에 반박하며 나선 것이다.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 목욕 가운을 입고 나온 차설아를 보고 급하게 다가갔다.“설아야, 너 혼자 내려왔어? 움직이지 마, 잠깐만.”성도윤이 제일 먼저 달려가 아기를 돌보듯 세심하게 챙기며 말했다.배경윤과 사도현도 마치 공주를 대하듯 신중하게 행동했다.[괜찮아? 기분 나쁘거나 불편한 거 없어?]성도윤이 차설아를 거실 소파에 앉히자 배경윤이 그녀의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난 괜찮아. 기분도 나쁘지 않고 아픈 곳도 없어. 내가 전에 겪은 일에 비하면 몇 명 애들이 장난친 정도인데 뭐가 대수겠어.”차설아가 배경윤의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안심시키려 했다.“경윤아, 네가 더 걱정이야. 기분 잡치게 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마. 그러면 오히려 너 자신이 힘들어져. 그냥 흘려보내. 신경 쓸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배경윤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맞아, 맞아. 어떤 사람은 정말 마음에 두지 않더라고. 그 사람 때문에 화내는 내가 진짜 등신이지.]그녀는 당연히 차설아가 말한 ‘기분을 잡치는 사람’이 사도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도현은 오히려 차설아가 배경윤에게 작은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더 관대해지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들었어? 역시 형수가 마음이 넓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너도 같이 물려고?”사도현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여자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차설아의 말만큼은 예외라는 걸 알고 있었다.차설아는 배경윤의 정신적 지주이자 인간적 우상이었기 그녀의 말이면 배경윤은 무엇이든 믿었다.[도현 씨가 그 미친개라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배경윤이 분노를 담아 타자기를 두드리며, 마치 사도현을 죽일 듯 차가운 눈빛
사도현은 배경윤이 적은 글을 보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윤설 씨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큰 사이버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어. 난 그냥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어.”[흠, 당연히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이지 않길 바랄 거야. 그 사람들 도현 씨 팬들이잖아. 게다가 윤설 씨까지 얽혀서 그 여자가 곤란해질까 봐 그런 거지?]배경윤은 그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윤설이 첫 번째이자 아마 유일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를 더 용서할 수 없었다.‘이런 바람둥이!’“조금만 머리 쓰면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 텐데.”사도현은 배경윤의 ‘모함’을 듣고 이 오명을 씻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이 사건에 연예인 본인을 끌어들이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아.”그도 어쨌든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CEO였고 연예계의 돌아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때로는 하나의 루머가 칼날처럼 되어 사람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연예계에서 온라인 폭력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진 스타들이 많았고 배경윤과 차설아 같은 일반인은 그 악플의 고통을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헐, 이제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야? 도현 씨가 그렇게 말할수록 난 더 윤설을 찾아갈 거야. 날 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은 분노를 담아 빠르게 타자를 했다. 소리 없이 치는 타자 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성도윤은 그들 옆에서 분위기를 살피며 처음으로 연애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고 피곤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이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망쳐가고 있었다.‘내가 보기엔 차설아와 내 관계가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같아. 내가 정말 운이 좋아.’차설아를 떠올리며 성도윤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지금 2층으로
“오늘 소란을 일으킨 사람 중에 내 팬도 있었던 거 확실해?”사도현은 사실 명성과 노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배경윤 때문이 아니라면 절대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어색한 연애 프로그램 같은 것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이렇게 많은 팬을 얻게 된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조용한 성격이라 팬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팬들이... 오물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믿을 수 없지?”배경윤이 오늘 자신과 차설아가 괴롭힘을 당한 영상 파일을 사도현에게 보여주었다.“봐봐, 그 팬이라는 여자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도현 씨가 잘생기고, 부유하고, 성격도 좋고, 완벽한 남자라며 윤설과 천생연분이라고 하더라. 도현 씨가 윤설의 왕자인데 내가 그 악녀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를 망쳤다고 하면서, 심지어 설아까지 모욕했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뭐, 우리 설아까지 욕했다고?”옆에서 무표정하게 싸움을 구경하던 성도윤은 배경윤의 말을 듣고 나서 차설아에게 더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는 사도현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 분노에 차서 영상을 확인한 뒤 싸늘하게 말했다.“이 사람들, 이런 짓을 할 용기가 있다면 그 자만과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이 성도윤에게 물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거부하는 태도가 없었다.“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이 사람들 다 찾아낸 뒤, 두 사람 앞에서 머리 조아려 사과하게 해야지.”성도윤이 이를 갈며 한 글자씩 뱉어냈다.이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추궁할 수 있는 말이었다.“그나마 다행이네...”배경윤이 사도현을 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저것 봐,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했으면 정상적인 반응은 저런 건데, 도현 씨는... 아니지. 도현 씨한테는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팬이 그냥 길 가던 사람을 괴롭힌 정도잖아. 이제야 왜 이렇게 무관심한지 알
[무슨 소리야, 그건 옛날얘기지. 지금은 완전히 아니라고! 나도 한때 도현 씨를 내 ‘남신’이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 결과가 어땠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형편없더라!]배경윤이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두 사람, 완전 끼리끼리야. 나랑 설아는 이제 두 사람이랑 거리를 둬야 해. 안 그러면 우리도 불행해질 거야. 봐, 오늘 내가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을 겪은 것도 다 네 탓이야.]“아니, 이게 왜 또 내 탓이야?”사도현은 어이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죄인처럼 배경윤의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당연히 도현 씨 탓이지! 오늘 나랑 설아에게 똥물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 줄 알아?]배경윤이 팔짱을 끼고 사도현을 노려봤다.“누군데?”사도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아무리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해도 앞을 못 보는 여자랑 말을 못 하는 여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정도면 정말 제정신 아닌 인간들 아니야?’[한쪽은 도현 씨 팬들이고, 다른 한쪽은 윤설의 광적인 팬들이야.]“뭐?”사도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내가 도현 씨를 알지 않았으면 윤설이랑 엮일 일도 없었을 거고, 그 여자의 팬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당신 팬들도 마찬가지야. 윤설 팬들이랑 다를 게 뭐야? 둘 다 극성맞고 정신 나간 사람들뿐이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도현 씨 탓이라고!]배경윤은 흥분해서 글을 계속해서 쳐냈다. 사도현은 그녀가 쓴 긴 글을 읽고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글에는 온통 그에 대한 비난이 가득했다.사도현은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근데 말이야, 팬들이 한 행동을 내가 어떻게 책임져?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고 수천, 수만 명의 팬을 내가 어떻게 다 통제해?”[핑계 대지 마!]배경윤은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팬들의 행동은 결국 본인이 책임지는 거야. 팬덤 문화 몰라? ‘팬들의 행동은 본인이 책임진다.’ 이게 기본 원칙이야! 팬들이 왜 그렇게 극성인지 알아? 그건 본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