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수가 차설아한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성도윤은 술을 잘 못 마실뿐더러 게임도 못하는 정도를 뛰어넘었다고 한다.그래서 그는 가장 독한 보드카를 준비하고 성도윤과 게임을 하려고 했다. 그러면 그는 게임에서 져 계속 술을 마시게 될 것이고 추태를 부려 차설아 대신 복수를 성공할 수 있었다.성도윤처럼 도도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한 번 도발하면 넘어오기 마련이다.하지만 일은 배경수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성도윤은 전혀 배경수의 제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훤칠한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강진우와 사도현에게 말했다.“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그리고 또 옆에 앉은 윤설에게 말했다.“나랑 같이 가죠.”“아, 저... 저요?”윤설은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녀는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처음 클럽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영화 같은 스토리가 현실에서 일어나 꿈만 같았다.성도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더니 차가운 얼굴을 하고는 긴 다리로 클럽 출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기... 기다려요!”윤설은 가방을 들고는 용기를 내어 그를 따라갔다.그녀에게 있어서 성도윤은 백마 탄 왕자보다도 더 완벽한 존재였다. 일말의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그녀는 최선을 다해 꼭 붙잡을 것이다.그렇게 두 사람은 앞뒤로 자리를 떴고,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무조건 성도윤의 편을 들어주던 사도현마저 투덜거렸다.“대박, 도윤 형 오늘 술도 안 마셨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정말 저 여자애한테 마음이 있는 거 아니야?”“게다가 저 여자애가 차설아를 닮은 건 사실이잖아. 왜 차설아를 두고 짝퉁이랑 잘해보려는 거야?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강진우는 성도윤과 윤설이 떠난 방향을 보고는 또 맞은편에 있는 차설아를 보더니 흥미로운 듯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도윤이는 지금 꽤 진지해.”“진지하다고? 저 여자애한테?”사도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리는 없어!”강진우가 입꼬리를 씩
성도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윤설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설도 선 넘은 질문을 한 것 같아 다급히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너무 주제넘었죠? 이런 질문드리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나중에 제가 다시 필요할 때가 생길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전화번호 주시면 안 돼요?”이는 아마 순진하고 보수적인 윤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일 것이다.성도윤은 조심스러운 여자애의 모습을 보더니 예전의 모든 일에 조심스러워하던 차설아가 생각나 마음이 약해졌다.“휴대폰 이리 줘요.”“네, 네. 알겠어요!”윤설은 얼른 휴대폰을 성도윤에게 건넸다.택시가 앞의 두 사람은 아주 가까이 서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연히 연인으로 착각할 것이다.같은 시각, 차설아와 배경수 일행이 걸어 나오자 마침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차설아의 마음은 비수에 꽂힌 듯 아팠다.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하필 이때 성도윤이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남자의 눈빛은 평소처럼 차가웠다. 심지어 어색함이나 부끄럼의 감정 없이 거만하기까지 했는데 이는 차설아의 분노를 일으켰다.그녀는 지기 싫어하는 유치한 초딩처럼 배경수의 팔을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경수, 다음에 어디로 갈까? 저번에 갔던 바다가 보이는 호텔 말이야. 분위기가 좋던데 거기 또 갈래?”“캑캑!”배경수는 당황하더니 꼼짝하지 못했다.‘보스 정말 왜 이러는 거야? 이런 말을 하면 두 사람은 더는 ‘단순한’ 남녀 사이가 아니잖아!’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은 한껏 어두워졌다.그는 보란 듯이 택시 문을 열고는 택시 기사한테 말했다.“성운 호텔이요.”그리고 윤설과 같이 차에 올라탔고, 차는 곧바로 차설아의 앞을 지나갔다.이후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했다...차설아는 제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점점 멀어져 가는 택시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기만 했다.배경수는 차설아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어 조
’소울’은 무명 피아니스트 ‘조’가 곧 꿈을 이루려다 뜻밖의 죽음을 맞이하고 시니컬한 영혼 ‘22’와 만나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고 서로 구원해 주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스크린이 부드러운 빛을 뿜어냈고 화면도 훌륭했고 스토리도 따뜻했다.차설아는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이야기가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성도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그냥 이 순간, 울고 싶었다.책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임산부는 호르몬 때문에 많이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쉽게 화가 나고 쉽게 슬퍼지는데 차설아는 본인이 마침 이 상황을 겪고 있다는 걸 느꼈다.그래서 더는 참지 않고 마음 놓고 울기 시작했다...그녀는 손을 배 위에 살포시 얹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가들, 조금만 더 참아. 조금만 더 참으면 엄마는 너희들을 데리고 떠날 수 있어!”아니나 다를까, 펑펑 울고 나니 차설아는 가슴이 후련했다. 머리도 맑아지고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마침 영화도 끝나 캄캄하던 영화관은 갑자기 환해졌고, 몇 안 되는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차설아는 앞좌석에서 벌떡 일어난 훤칠한 성도윤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귀신이라도 본 줄 알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뭐야? 호텔에서 여대생이랑 즐기고 있는 거 아니었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차설아는 남자가 그녀를 발견했을까 봐 발걸음을 늦추고는 옆으로 돌아섰다.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입구로 나갈 때, 성도윤은 마침 고개를 돌려봤고, 차가운 눈빛은 그렇게 차설아와 마주치게 되었다.일순간 공기가 얼어붙었고 두 사람은 모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치팅을 하다가 선생님에게 들키듯이 말이다.“당신...”성도윤은 애써 도도한 척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차설아에게 물었다.“당신 배경수랑 바다 보러 간 거 아니었어? 왜 여기에 있는 거야?”“아, 그게...”차설아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거짓말을 지어냈다.“밤중에 누가 바다 보러 가? 나중에 가기로 했어.”그러고는 성도윤에게 되물
차설아가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자, 성도윤은 체면이 구겨진 듯 차가운 얼굴로 오만스럽게 말했다.“싫으면 말고, 어차피 나도 다른 일이 있어서 말이야.”“좋아!”차설아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말을 내뱉었다.그리고 자신이 너무 신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어색하게 귀밑머리를 넘겼다.“그게... 엄청 바쁘지만 야식 먹을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야.”성도윤은 차설아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며 몰래 웃었다.그녀의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두 사람은 영화관을 나와 인근의 유명한 맛집 거리에 도착했다.“뭐 먹고 싶어?”성도윤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따르는 차설아에게 물었다.“다 괜찮아. 담백한 거면 돼.”“담백한 거?”성도윤은 눈썹을 찡그렸다.“당신 전에는 입맛이 강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언제부터 바뀌었어?”차설아는 당연히 임신 중이라 담백하게 먹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남편도 바뀌는데 입맛이라고 안 바뀌겠어?”이 말은 분명 성도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있었다.남자는 말을 잇지 않고, 인테리어가 우아한 식당을 가리키며 말했다.“그럼 저기서 버섯 수프 마셔. 담백하고 소화도 잘 돼.”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맛있겠네.”각종 버섯이 자라는 계절이라, 신선한 버섯 수프를 한 모금 마시면 맛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았다.두 사람은 창가 자리를 골라 마주 앉았다.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뭐... 뭐라도 마실래? 밀크티 같은 거?”성도윤은 모처럼 매너 있게 침묵을 깼다.차설아는 손사래를 치며 드물게 예의를 갖추었다.“괜찮아. 수프 마시면 돼. 미리 배부르면 안 되잖아.”“맞네.”그리고, 또 대화가 끊겼다.두 사람은 방금 사귀기 시작한 커플처럼 마음속에는 무한한 애정이 있지만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고 쭈뼛쭈뼛한 모습이었다.차설아는 성도윤과 조용히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 성도윤은 남자친구처럼 여러모로 매너 깊은 모습이었다.부부일 때
성도윤은 차설아를 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이야?”차설아는 버섯 수프를 삼키고 물었다.“무슨 계획을 말하는 거야?”“진짜 비즈니스를 할 생각이야? 복잡하고 험난한 업계야. 당신이 감당하기 어려워.”성도윤은 오랜 세월 동안 비즈니스를 종사하며 업계의 리스크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결코 여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비록 차설아와 이혼을 했지만, 그녀가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누가 그래?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고?”차설아는 고개를 들고 남자를 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나 엄청 잘해내고 있잖아? 천신 그룹은 설립된 지 몇 달 만에 큰 계약도 따냈고, 난 하이 테크 협회 회장 자리까지 얻었어. 다 잘 풀리고 있어. 복잡하거나 험난한 건 별로 없던데?”“순진하긴!”성도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우선 남우 그룹은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야. 남해진이 지금은 통이 커 보일지 모르지만, 당신네 회사를 잡아먹으려 할 때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그리고, 업계 시장은 한정되어 있어. 당신이 갑자기 그렇게 큰 시장을 가져가면, 우리가 따지지 않더라고 꼭 따지는 누군가가 있다고. 처음부터 너무 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수가 있어. 지금이라도 빨리 손 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후회할 기회조차 없어.”성도윤의 말은 모두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진심으로 차설아가 힘든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고 있었다.“돈이 부족하면 나한테 말해. 그래도 한때 부부였으니, 당신 남은 인생은 내가 책임질게.”성도윤의 말에 차설아는 코웃음을 쳤다.“이제 와서 왜 좋은 사람인 척해? 그리고 당신 참 오만하다는 생각 안 해? 내 남은 인생은 당신 없이 살수 없다고 단정 짓고 있잖아. 맞지?”성도윤은 차갑게 대답했다.“그런 뜻 아니야.”“그런 뜻이 아니면? 그럼 무슨 뜻인데?”“난 단지...”성도윤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추더니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당신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
성도윤은 고개를 숙인 채 팔에 놓인 작은 손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왜 그래?”“많아. 사람이 너무 많아!”차설아는 긴장해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후, 성도윤을 차 뒷좌석으로 밀면서 중얼거렸다.“많은 사람들이 날 쫓아오고 있어. 무서워. 빨리 차에 타서 피해야 해.”“많은 사람들?”성도윤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간을 더욱 구겼다.한밤중에, 이 주차장에는 차가 꽉 차 있는 것 외에 두 사람밖에 없었다. 차설아가 말한 ‘많은 사람’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당신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거의 쫓아 오잖아? 빨리 숨으라니까! 죽고 싶어?”차설아는 급해서 얼굴을 붉히더니, 다짜고짜 성도윤을 차 안으로 밀었다.성도윤은 어쩔 수 없이 차설아의 요구대로 허리를 굽혀 차 뒷좌석으로 들어갔다.다행히 고급 세단이라 뒷좌석이 넓고, 가죽 시트로 되어 있어 불편하지 않았다.“우리...”성도윤은 차설아에게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으려 했다.“쉿!”차설아는 성도윤에게 바싹 다가와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막고, 긴장한 눈빛으로 창문 밖을 바라보며 성도윤의 귀에 조용히 말했다.“조용히 해. 밖에서 순찰하고 있어. 들키면 안 돼.”“???”성도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많은 사람’도 보지 못했고, ‘순찰’하는 사람도 전혀 보지 못했다.성도윤은 차설아가 자신을 놀리거나, 유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지금 두 사람의 자세는 충분히 이상했다.성도윤은 긴 다리를 뻗어 자리에 앉았고, 차설아는 그의 입을 가리기 위해 그의 가슴팍에 엎드려, 두 사람 사이에는 얇은 옷감만 존재했다.성도윤의 숨결에 차설아 특유의 담담한 치자꽃 향이 풍겨왔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그의 목덜미와 귓가에 다가와 마치 고양이 발톱처럼, 성도윤의 가슴을 조금씩 긁고 있었다...‘빌어먹을! 죽을 맛이네!’“콜록!”성도윤은 호흡이 가빠졌고, 커다란 몸을 조금 움직였다.큰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덮고 있는 차설아의 손을 약간 거칠게 밀어내고, 뜨거운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
성도윤은 겁에 질린 차설아를 보며 언짢은 듯 말했다.“미친 척하고 놀면 재밌어?”“아니야. 당신 몸에 정말 많은 작은 사람들이 기어 다니고 있어. 머리에도 있고…”차설아는 진지하게 성도윤의 머리를 가리켰고, 예쁜 얼굴은 한껏 구겨져 험상 굳은 표정이었다.“그리고 당신 머리에 수초가 많이 자랐어. 내가 정리해 줄게.”말을 마친 그녀는 성도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겁먹지 마. 내가 다 정리해 줄게. 하나, 둘, 셋…”“그만하라고!”성도윤은 더 이상 분노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성도윤은 차 좌석에 기대어 차설아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마치 철없는 딸의 장난에 맞춰주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그래, 미친 척하고 싶으면 미친 척하게 내버려두지 뭐.’성도윤은 차설아가 도대체 언제까지 미친 척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려 했다.이상한 분위기가 감도는 차 안에서, 차설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성도윤의 머리를 받쳐들고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잡아당기고 있었다.성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기괴한 장면에서 꽤 화목한 모습이 배어 있었다.“휴, 겨우 다 정리했네.”차설아는 긴 숨을 내쉬고, 성도윤의 머리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하마터면 잠이 들 뻔한 성도윤은 자세를 바로잡고 말했다.“다 정리했어? 그럼 이제 뭐 할 건데?”“젤리!”차설아는 남자의 입술을 가리키며 말했다.“핑크 젤리다! 젤리 먹을래!”성도윤이 반응하기도 전에 차설아는 자신의 입술을 남자의 입술에 얹었다.성도윤은 몸이 찌릿하더니,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듯 두 손을 벌리고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음… 젤리 달다. 너무 부드러워!”차설아는 남자의 입술에 키스를 하면서, 마치 절세의 맛을 보는 것 같은 찬사를 보냈다.“콜록!”성도윤은 머리가 텅 비었고,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차설아가 처음으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었다.그녀의 키스는 열정적이지만 기교가 좀 부족했다.성도
차설아의 비명소리에 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깨어났다.성도윤의 상의는 벗겨져 있었다. 구릿빛 피부와 완벽한 근육라인이 어우러진 이기적인 몸매는 남성의 원초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눈앞의 조금은 이상한 장면에 성도윤은 바로 정신이 들었고, 몸을 곧게 세우고 차설아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그걸 지금 나한테 묻는 거야? 변태!”차설아는 재빨리 외투를 집어 들고, 조금은 ‘허전한’ 몸을 가리고, 성도윤을 힘껏 때렸다.“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내 배가 이런데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절대 가만 안 둬!”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 그녀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하지만, 젊은 남녀가 한 방에서 옷가지도 많이 걸치지 않은 채로 함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잠깐!”성도윤은 세차게 내려치는 차설아의 주먹을 힘껏 움켜쥐고 어젯밤의 일을 회억하더니 딱 잘라 말했다.“당신한테 허튼짓하지 않았다고 장담해! 나 그 정도 자제력은 있어!”성도윤은 자신의 몸 상태를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기억은 매우 선명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어젯밤의 차설아는 마치 지력이 떨어진 아이처럼 헛것을 보고, 머리카락을 뽑고, 또 그의 입술을 젤리처럼 빨기도 하고... 참 이상했다.“그러니까 어젯밤에 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는지 알려줄래? 만약 날 유혹하고 싶다면, 그냥 단순하게 직진하면 되잖아. 그런 수작 따위 부릴 필요 없잖아.”성도윤은 큰 손으로 차설아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고, 두 눈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내가 당신을 유혹해?”차설아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고 막말을 내뱉었다.“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내가 정신이 나갔다고 당신을 유혹해?”“품에 안기지 않나. 내 입술을 뜯지 않나. 이게 유혹이 아니라고?”“아니야, 절대 불가능해!”차설아는 ‘X’자 모양을 하며 말했다.“내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해? 차라리 돼지머리를 뜯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