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떠돌아다니면서 겪은 온갖 별난 경험은 밤새도록 말해도 다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는 태연하게 차설아를 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순간, 그는 자기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통제 불능이 되었다고 느꼈다.“이 자식, 난 그렇게 많이 말했는데 넌 오랜만이란 말뿐이야?차설아는 너무도 격동되어 눈시울까지 촉촉해 났고 배경수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배경수는 차갑고 담담한 반응을 보이며 그녀와 더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보여서 차설아는 서운함을 느꼈다.필경 배경수는 몇 안 되는 그녀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미안해 보스, 너의 사정은 경윤이한테 얘기 들었어. 내가 많이 늦었지? 그동안 고생했어.”배경수의 눈꼬리도 살짝 붉어졌다.사실, 그도 격동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그냥 자책할 뿐이다.특히 차설아가 성도윤이랑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그녀가 겪었을 감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났다.“나는 내가 떠나면 네가 부담 없이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역시 난 너무 이상적이었어. ”배경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역시 많은 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이번 유랑은 그의 시야를 넓히고, 성격도 단련시켰다. 그는 이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차분하며, 더욱 지혜로운 사람 같았다.“맞아, 모든 것은 운명이고, 우리는 모두 운명의 굴레에 묶여 헤어나올 수 없어.”차설아는 일련의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더 꽉 껴안았다.역시 배경수만은 그녀를 이해할 줄 알았다.옆에 있던 차성철은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지 않아 얼굴을 찡그리며 걸어가더니 손이 남자의 어깨에 내려앉았다.“이봐, 내 여동생이야, 충분히 끌어안지 않았나?”배경수는 여유롭게 가면을 쓴 차설아를 찬찬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성철 형님, 유일하게 성가네를 뿌리째로 뒤흔든 그분이시군요, 존함은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하하, 네놈이 입은 살아있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난
불과 1년 만에 만난 것뿐인데, 그녀가 줄곧 “무술 폐물”이라고 불렀던 배경수가 실력이 이렇게 좋아질 줄 몰랐다.오라버니의 세 번의 공격을 쉽게 받아낼 뿐만 아니라, 한 번은 심지어 오라버니의 급소를 습격할 뻔했다.차성철은 스트레이트로 배경수의 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배경수는 옆으로 가볍게 몸을 피한 뒤 허리를 약간 숙여 바로 차성철의 다리를 걸었다.차성철은 민첩하고 가볍게 뛰어올라 재빨리 배경수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잡아당겼다.하지만 배경수는 하반신이 매우 안정되어 꿈쩍도 하지 않았고 새로운 공격을 개시하였다.싸움은 상당히 긴장되고 자극적이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고, 이는 모든 하객의 주의를 끌었다.“좋았어!”프로페셔널한 격투기를 보는 듯 하객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차설아도 전 과정을 지켜보더니 놀람에 처해 끊임없이 감개무량함을 내뿜었다.“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배경수 몰래 수련이라도 한 거야? 어떻게 단기간에 실력이 이렇게도 늘 수 있는 거지?”“쯧, 그래도 허풍 떤 거는 아니네. 정말 제대로 된 사부를 만났나 봐, 오늘은 그나마 창피하지 않네.”배경윤은 도리어 덤덤해 하더니 앙증맞은 턱을 치켜들었다. 처음으로 오빠가 멋있다고 생각했다.“사부?”차설아는 고개를 돌리더니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응, 오빠가 8개월 전 캄보디아 여행 중에 어떤 사람한테 찍혔는데 당지에서 세력이 대단한 사람이어서 오빠를 납치하려 했대. 근데 우연의 일치로 우리 오빠가 그 세력 밑에 있는 불법조직을 때려 부수면서 그 조직에 속아서 유괴당한 소년소녀들을 많이 구해냈대. 그래서 그 세력은 반드시 오빠의 목을 자르겠다고 이를 갈았고...”“이런 일도 있었어? 왜 나한테는 안 말했지?”“네가 걱정할까 봐 말하지 말라고 나한테 신신당부했어.” “나중에는 어떻게 됐는데?”“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보답이 있는 거지, 우리 오빠가 구한 그 무리 중 한 여자아이의 양아버지가 대단한 사람이었어. 줄곧 그의 실종된 양녀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우
배경수는 차성철 발에 차인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미안해요, 형님 얼굴이...”확실한 것은 배경수는 그의 가면 아래 얼굴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정말 몰랐다.당시 성도윤이 얼마나 모질게 손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깊은 원한을 갖고 있는데, 차설아는 아마 영원히 성도윤이랑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차설아가 오빠랑 연을 끊지 않는 이상.“이 자식 실력이 좋구나.차성철은 곧 평정을 되찾고,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무시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거만한 태도로 배경수하고 말했다.“나랑 이 정도로 붙을 수 있는 사람 몇 안 되는데 보아하니 연약한 화초는 아닌 것 같군. 하지만 내 동생 곁에 있고 싶으면 용기만 있어서 안 돼, 책략도 반드시 있어야지.”배경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것은 제가 제일 잘하는 겁니다.”“너무 일찍 기뻐하지 마, 넌 내가 너에게 준 임무를 완수해야 해.”차성철은 의미심장하게 차설아를 보더니 배경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가까이 와봐, 자세히 알려줄게.”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차설아는 입을 열었다“오빠 그만해, 경수 이제 금방 돌아왔어. 오늘은 경수를 위해 차린 환영회인데 애를 때리지 않나, 발로 차지 않나, 이제는 임무까지 주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차성철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배경수가 오히려 먼저 흥분해서 말했다.“보스, 너희가 날 막 대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어색한걸? 형님이 날 시험해 보고 싶다는데 해드려야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너한테 보여주고 싶어.”“음...”차설아는 이마를 짚으면서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배경윤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우리 오빠보다 사랑에 눈먼 사람은 없을 거야.”차성철은 배경수의 귓가에 대고 소곤소곤 말했다.배경수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님이 시키지 않아도 하려고 했어요.”차설아는 그들의 옆에 있는데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 조바심이 날 수
차설아는 실시간검색어를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빌어먹을, 도대체 어떤 품위 없는 사람이 누설한 거야? 내 손에 잡히면 옷을 발가벗겨서 3일 내내 인터넷에 떠돌게 할 거야.”게시물 제목 아래에는 차성철의 흉악하고 무서운 얼굴이 담긴 고화질 사진들과 동영상도 있었다.영상에서 오빠가 황급히 가면을 주우러 가는 모습에 차설아는 마음이 아파 났다.더욱 끔찍한 것은 네티즌들의 토론이 매우 듣기 거북했다. 각종 '못생김', '악귀', '기형'과 유사한 문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차설아는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눈썹을 찌푸리더니 다급하고도 절박하게 말했다.“이 검색어 당장 내려가야 해, 그리고 절대 오빠가 보아서는 안 돼!”옆자리에 앉은 배경윤도 검색어를 봤다.설아가 차성철의 처지를 동정하고, 일찍이 차성철을 오빠로 여겼으니,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네티즌들 너무 한 거 아니야? 뭘 잘못 먹었나, 입만 열면 악취야 아주!”유출된 사진과 동영상을 자세히 살펴보던 배경윤은 모든 것이 같은 각도에서 나온 사진임을 깨달았다.“설아야, 이 사진들 다 같은 각도여서 한 사람이 찍었을 가능성이 커, 연회장 CCTV만 확보하면 누가 유출됐는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그러네! 난 왜 생각 못 했을까? 너랑 너희 오빠 둘 다 단점인 부분에서 진보한 것 같아, 훌륭해!”차설아의 근심은 금세 풀려서 배경윤을 끌어안고 연신 볼에 뽀뽀했다.“단점인 부분에서 진보했다고?”배경윤은 그가 어쩐지 자신을 돌려서 흉보는 것 같았다.그래도 어쨌든 간에 설아가 칭찬한 것은 칭찬한 거니까 훌륭한 것은 분명하다!차설아는 소파에서 일어나 호텔 담당자를 불러 로비 모니터링을 하려 했다.차성철과 배경수는 즐겁게 술을 마시고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 들어왔다.“너희 둘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경수 환영회라서 다들 해변에서 술 마시고 춤추고 있는데 너희도 가서 놀지 그래?”차성철은 술을 마셔서 알딸딸하게 기분 좋은 상태였다.“어...”차설아는 얼
차설아는 배경윤의 손가락이 향한 방향을 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현식 아저씨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천신그룹 제일 이른 고객중 한분이시고 오래 알고 지낸 분이니까 연회에 초대했단 말이야.”천신그룹은 창업 초기에는 그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작은 회사였기에 함께 해주겠다고 하는 고객도 없었고 매 한 명의 비즈니스 파트너는 모두 차설아와 배경수의 노력으로 쟁취한 것이다.조현식은 사람이 괜찮았고 일도 차근차근 절차대로 잘했다. 실력이 그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 중에서 제일 강력한 건 아니었지만 제일 믿음직스러운 사람 중 한 명이었다.차설아는 조현식이 배신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내 생각엔 무슨 오해가 있는게...”“하지만 이 각도가 현식 아저씨가 올린게 아니라고 해도 찍은 사람은 맞다는걸 봐낼수 있다고. 나쁜 맘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해.”“먼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은 인터넷에 올라간 영상하고 악플이랑 댓글부터 지워야 해. 오빠가 알기 전에 빨리 실시간 검색 순위에서 내려야 해.”차설아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고 그저 이 일의 여론을 낮추려고 했다.호텔의 다른 한쪽에 있는 방에서 차설아와 배경윤은 문을 꼭 닫고 여러곳에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게시물을 삭제하고 계정을 없애고 심지어 악플을 다는 네티즌하고 다투고 있었다.네티즌: [우엑, 이렇게 못생긴 사람이랑 밥 먹으면 토 나오겠는데.]차설아: [그렇게 쉽게 토하면 병원 가서 검사해 보시길. 똥이 입에서 안 나오게.]네티즌: [저 얼굴 딱 봐도 날라리잖아. 좋은 사람도 아닐 텐데 쌤통이다.]차설아: [그렇게 면상을 잘 보면서 왜 자기 얼굴은 거울로 안 보는지.]네티즌: [못난이를 위해서 말을 해주는 사람도 있네. 못생긴 거 좋아하는 이상한 취미라도 있으신지.]차설아: [난 그냥 멍청한 걸 싫어하는데. 특히 얼굴로 사람 평가하는 그런 머저리들.]차설아의 댓글에 많은 사람들은 다른 소견을 가지기 시작했다.네티즌 1: [이 남자 이목구비는 좋은데 안됐네.
차설아가 눈을 비비며 흐리멍덩한 목소리로 말했다.“또 누가 우리 오빠 욕해? 지금 당장 볼게.”“아니, 아니, 이번에는 너 전남편 욕하는 건데 빨리 봐봐. 지금 완전 심하게 욕하는데 내 속이 다 시원해 난다니까.”배경윤의 목소리에서는 참을 수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뭐? 성도윤?”차설아는 순간 정신이 말짱해졌다. 얼른 실시간 검색을 보니 앞 세 개는 모두 성도윤과 관련되어 있었다. [성도윤 학살!][성도윤 감방 들어가라!][성도윤 인성 쓰레기!]차설아는 실시간 검색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관련 기사를 눌러봤다.닉네임이 “낱낱이파헤쳐버림” 이라는 네티즌이 글자 수가 만자에 달하는 긴 글을 올렸는데 안에 차성철이 어떻게 버림을 받았고 작은 어촌에서 어떤 학대를 받았고 어떻게 성도윤에 의해 얼굴에 흉터가 생기게 됐는지 자세히 쓰여있었다.글의 마지막에는 차성철의 얼굴에 흉터가 생기기 전의 사진이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아주 잘생긴 도련님의 얼굴이었다.긴 글에 사진까지 올라가니 많은 네티즌들의 동정심을 유발했다. 모두 차성철을 위해 말을 했고 성도윤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네티즌 1: [성도윤같은 재벌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으니까 나쁜 새끼가 틀림없다고 내가 그랬지. 이런 잔혹한 짓을 한 게 놀랍지도 않아.]네티즌 2: [이렇게 폭로가 된 거도 이 정돈데 폭로가 되지 않은 일들은 더 어마어마하겠지. 이 세상 참 무섭네.]네티즌 3: [성도윤 이 가식적인 새끼. 한때는 차성커플 팬이었는데 지금 보니까 차설아가 이혼을 한 게 맞는 선택이었어.]네티즌 4: [다 됐고 앞으로 절대로 성대그룹 제품은 절대로 안 사. ]여론은 순식간에 바람처럼 변했다.네티즌들의 정서는 원래 휩쓸리기 쉽고 상대편에서 슬쩍 끼는 것도 많아 성도윤은 지금 천하의 나쁜 놈으로 욕먹고 있다.“도대체 누가 폭로한 거야?”차설아의 심정은 복잡했다.차설아가 성도윤에 대한 감정은 아주 복잡했다. 비록 이미 선을 그었으나 성도윤에 관한 일에 대해 보고 가만히
하지만 배경수가 떠난 이후로 그 누구도 차설아에게 사다 주는 사람이 없었다. 여러 가게에서 사봤지만 배경수가 사다 주던 그 블루베리 치즈케이크의 맛이 아니었고 이 맛이 너무나도 그리웠다.이 케이크를 먹으니 마음이 덜 무거워 나는거 같았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먹기 시작했다. 케익을 먹으며 그 네티즌의 위치를 추적했다.배경수는 차설아의 컴퓨터를 쳐다 보고 웃었다.‘어느 분이 우리 보스를 직접 나서게 한 거지?”차설아는 배경수와 말할 틈이 없다며 손을 저었다.“넌 몰라도 돼. 말해도 모를 텐데 뭐. 저기 가서 놀고 있어.”배경수는 두 팔을 껴안고 말했다.“보스, 찾지 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잖아.”“무슨 뜻이야?”차설아는 드디어 주의력을 배경수에게로 돌렸다.배경수가 턱을 올리들며 웃을 듯 말 듯 하며 말했다.“말한 그대로 그 뜻이지.”“설마 그 네티즌이 너라는 거야?”“바로 나야.”배경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보스 점점 더 똑똑해진다니까.”차설아는 머릿속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경수를 보며 말했다.“너, 너 이 자식.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해. 우리 오빠 일은 어떻게 알았고?”“형이 준 임무를 완성하려고 그랬지. 뭐 제일 중요한 건 그 자식이 맘에 안 들었던 거고. 내가 물러나 줬는데 기회를 아끼지 않고 다른 여자랑 결혼했으니 반 죽이지 않으면 내가 속이 편하겠어?”배경수의 대답에 차설아는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차설아는 궁금했다.“오빠가 준 임무가 뭔데?”“성대그룹 주가를 10퍼센트까지 떨어뜨리라고...”배경수는 핸드폰을 꺼내 성대그룹의 주가가 폭락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형이 준 임무는 곧 완성할 거 같으니까 계속 보스한테 붙어 다녀도 되겠다.”“두 사람 많이 심심했지?”차설아는 어이가 없어 뭐라고 욕을 해야 할지도 몰라 했다.“이렇게 말하면 모든 일이 다 너가 짠 거고 오빠 얼굴 사진 터뜨린 거도 네가 시킨 거야?”“엄밀히 말하
차설아의 말은 배경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결정적 인물이라니?”배경수가 턱을 들고 차설아의 곁에 다가갔다.“자세히 말해봐.”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수를 째려보고는 손가락으로 웹 페이지를 내리며 말했다.“우리 오빠가 성도윤을 그토록 미워하는 건 사실 얼굴에 흉터를 낸 것뿐만아니라 오빠가 제일 믿던 사람을 꾀었기 때문이야. 그 사람은 한때 우리 오빠 생명에서 한 줄기의 빛이었지. 근데 마지막에 성도윤을 위해서 오빠를 찔렀고 그래서 지금 뭐라고 할까... 사람이 극단적이지.”“극단적인 건 인정.”배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첫눈에 보는 순간 나처럼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니까.”차설아가 어이없어했다.“네가 뭔 상처를 받았다고 그래.”“10년을 쫓아다녀도 대답 하나 못 들었는데, 안 불쌍해? 보스는 몰라.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눈빛이 매서워. 형이 딱 그 스타일이라니까.”차설아는 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이 자식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배경수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차성철이 사람에게 주는 인상이 바로 독하고 날카로워 마음속이 시커 만 것 같은 사람이다.차성철의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한을 내려놓지 못하면 큰 일이 일어날 거 같은 예감이 든다.차설아는 실시간 검색을 보다가 갑자기 한 사진을 보게 됐다. 그 사진에는 예쁜 여자애가 맨발로 해변에 앉아 있었는데 머리카락은 아주 광택이 났고 온몸에는 깨끗하고 청순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마치 성안에 있는 공주님 같았다.이 사진을 올린 사람은 자정 살인마의 영원한 사랑이라는 글과 함께 올렸다.“이 사람이 바로 송지아야?”차설아는 숨을 참은 채로 그 사진을 확대하고 또 확대해 봤다.만약 이 사람이 송지아라면 차성철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이렇게 아름다운 공주님이 마지막에 다른 남자 때문에 자신을 배신했다는 건 너무나도 아픈 일이다.만일 차설아였다면 성도윤만 미운 게 아니라 온 세상을 피바다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배경수가 커피를 들
“정말 예상도 못 했어. 분명히 조치를 다 했는데 말이야.”차설아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하지만 이미 찾아온 생명이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키울 생각이었다.“이건 운명이야! 아무리 막아도 올 아이는 오게 돼 있다니까! 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성 대표, 또 아빠가 된다는 걸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배경윤이 진심으로 차설아를 축하하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좋아할 게 뭐가 있어... 사실, 지금 우리 상황은 아이를 가질 때가 아니야.”차설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지금은 그녀와 성도윤에게 가장 큰 압박이 몰려오는 시기였다.정확히 말하면, 성도윤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밖으로는 성대그룹 대표 자리를 확고히 다져야 했고 안으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를 돌봐야 했다.그런 상황에서 아이까지 생긴다면 그는 혼자서 네 사람의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이 부담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었으며 감정적인 부담이 더 컸다.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적들에게 잡힐 약점도 많아지는 법이었고 지금의 그들에게는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이미 온 생명인데, 어쩌겠어? 애초에 달이랑 원이 가졌을 때도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잖아? 그런데 지금 얼마나 사랑스럽니? 후회해?”“당연히 후회 안 해.”“그럼 됐잖아!”배경윤이 단호하게 말했다.“게다가 이번에 태어날 아기가 달이랑 원이 장점만 쏙 빼닮았다고 생각해 봐! 완벽하지 않겠어?”“그러게... 그러면 정말 좋겠다.”차설아는 두 아이를 떠올리며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이제야 이 갑작스러운 생명이 조금씩 기대되기 시작했다.“임신 초기에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칼슘 보충해야 하나? 엽산도 챙겨야 하고, DHA도 먹어야 하지?”배경윤이 이미 휴대폰을 꺼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폭풍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마치 자신의 아이처럼 뱃속 아이를 챙기며 태어나기도 전에 애지중지하는 모습이었다.“근데 이번 아기는 아들일까, 딸일까? 아니면 또 쌍둥이일 수도 있
“임신이라고...?”차설아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더니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말했다.“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 없어.”“정말 그런지 아닌지, 테스트해 보면 알겠지.”배경윤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내가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 올게. 잠깐만 기다려!”그녀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곧바로 근처 약국으로 달려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 왔다.배경윤이 다시 돌아왔을 때, 가정부 현이가 커피에 무언가를 섞고 있었다.“현이 씨, 그게 뭐예요?”배경윤이 커피잔을 흘끗 보며 물었다.“어... 아무것도 아니에요!”현이는 당황한 듯 허둥지둥 커피를 쏟으며 말했다.“설아 씨가 커피가 많이 쓰다면서 설탕을 좀 많이 넣으라고 해서요.”“그래요?”배경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설아가 단 커피를 좋아한다고? 입맛이 바뀌었나?’분명 차설아는 블랙커피만 선호했었다. 하지만 배경윤은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차설아를 찾으러 갔다.차설아는 처음엔 테스트하기를 꺼렸다.어차피 임신일 리가 없는데 뭐 하러 하냐고 거절했지만 배경윤이 끈질기게 떠들어대는 바람에 결국 마지못해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그리고 얼마 후,“꺅!”배경윤의 날카로운 비명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진짜 임신이잖아! 내가 뭐랬어! 네가 원래 그렇게 활기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축 처지고 졸린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라니까!”차설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배경윤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한편으로는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지난번에 네가 달이랑 원이 가졌을 때 내가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잖아. 이번엔 달라! 내가 반드시 널 전적으로 돌볼 거야. 꼭 좋은 대모가 되고 말겠어!”배경윤은 차설아의 팔을 붙잡고는 벌써 세 아이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설레했다.마치 자신이 임신한 것처럼 들떠서는 말을 이었다.“근데 성도윤 그놈, 이번엔 진심일까? 진심이라면, 우리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해야지. 아이
만약 할아버지마저 성진의 꾀에 넘어갔다면 앞으로 가문에서 그의 발언권은 크게 줄어들 것이고 지위도 그보다 아래로 내려가게 될 터였다.이런 일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지만 차설아까지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성도윤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나에겐 당신과 아이들만 있으면 돼.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자, 이제 자자.”성도윤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차설아를 안은 채 조용히 말했다.“...”예민한 차설아는 그의 말투에서 나는 실망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도 덩달아 걱정이 되어 어떻게 되던 그를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다음 날 아침성도윤은 또다시 성대그룹으로 향했고 배경윤은 집에 머물며 차설아를 돌보기로 했다.“다시는 설아를 데리고 밖에 나가지 마. 또 어제 같은 일이 생기면 이번엔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성도윤은 떠나기 전에 배경윤에게 여러 번 신신당부했다.“알았어, 알았다고! 절대 안 데리고 나갈게. 설령 데리고 나가더라도 걱정 마, 이제 내 목소리도 돌아왔잖아. 누가 감히 어제처럼 날 괴롭히면 정말 지 엄마도 못 알아볼 정도로 만들어 줄 거야.”배경윤이 우유를 마시면서 신나서 떠들어댔다.성도윤은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시끄러운 여자야. 차라리 말 못 하는 게 나았을지도... 대체 사도현은 어떻게 견디는 거야?’성정엽이 떠난 후, 배경윤은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고는 차설아가 어젯밤 몰래 방문한 오두막으로 향했다.차설아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도 없었다.“아직도 안 일어났어? 요즘 너 왜 이렇게 게을러졌어? 예전 같지 않네.”배경윤이 침대 옆에 앉아 축 늘어진 차설아를 보며 감탄했다.“으음... 몰라. 요즘 너무 졸려. 너무 여유롭게 지내서 그런가 봐. 자꾸 나태해지네.”차설아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도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꼈다. 평소에는 활력이 넘치던 그녀였는데 요즘은 마치 기운이 쭉 빠진 것처럼 앉아 있는 것조
“위치 추적 장치?”성도윤은 깜짝 놀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대단한데? 내 몸에 추적 장치를 달아놓고도 내가 전혀 몰랐다니. 영화 속 첩보 요원도 너만큼은 못 하겠다.”차설아는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하죠! 난 영화 속 첩보 요원보다 훨씬 대단하거든요. 그러니까 나 잘 모셔야 해요. 괜히 나한테 못되게 굴었다간 아주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걸요?”그녀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살짝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어찌 감히 여왕님께 잘못하겠습니까? 남은 생애,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흠, 그거면 됐어요. 아주 착하네!”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성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러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졸리고 추워 죽겠어요! 빨리 이불 속으로 안내해요.”이렇게 지내다 보니, 그녀는 어느새 그와 함께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오늘 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가 곁에 없어서일 것이다.그래서 결국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어서 와. 이불 속은 이미 따뜻하게 데워놨지.”성도윤은 능청스럽게 ‘충실한 침대 보좌관’처럼 행동하며 그녀를 이불 속으로 이끌었다.차가운 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서로를 감싸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차설아는 옆으로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린 채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성도윤은 뒤에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그 온기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막 같았고 덕분에 차설아는 금세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성도윤은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여보, 우리 오늘 밤에 그 두 유치한 녀석들 갈라놓은 거... 혹시 너무한 거 아닐까?”그가 말한 ‘두 유치한 녀석’이란 당연히 사도현과 배경윤을 뜻했다.솔직히, 그 둘은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였고 아마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오늘 밤 자신들이 개입하면서 상황은 좀 더 심각해져 이러다가 정말 절교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성도윤의 머리가 아파졌다.“혹시 사도현이 끝
“그게 뭔데?”“두 사람 서로의 감정을 확실히 깨닫고 흔들림 없이 서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줄 그 한 가지.”차설아는 이번만큼은 저 두 사람이 깨닫기를 바랐다.그녀와 성도윤도 그 기나긴 길을 돌아왔기 때문에 그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사람은 함께 많은 일들을 겪어야만 ‘이 사람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차설아와 배경윤의 긴 대화가 이어질수록, 밤은 더욱 깊어졌다.배경윤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다 지쳐 잠들었고 그녀의 뺨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하지만 차설아는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지금의 이 고요함이 너무 불안했다. 이렇게 평온할 때일수록 더 큰 위기가 다가오는 법이었다.같은 시각, 성진의 차가 그녀의 집 아래에 멈춰 서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차 위로 희미하게 드리웠고 차 안의 남자는 어둠과 빛 속에서 조각 같은 얼굴을 드러냈다.그 역시 때로는 빛 속에 머물고 때로는 어둠 속에 숨어 지내면서 가끔은 스스로조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사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저택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 소리도 들었고 차설아가 실명한 게 사실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그녀의 눈을 누구에게 줬을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성진은 차를 몰고 오는 동안 머릿속에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그는 여자의 어깨를 붙잡고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었다.“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왜 네 소중한 눈을 나 같은 인간한테 줬냐고!”하지만 정작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해 그렇게 따져 묻고 눈을 돌려주려 했던 순간, 그는 망설였다.그는 한때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었다.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 절망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얼마나 처참한지 아직도 잊지 않았다.그리고 한 남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속옷 하나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챙길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층에서도 차설아와 배경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숨죽여 통곡하던 배경윤이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쳤다.“나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말할 수 있다고! 드디어 목소리가 돌아왔어!”배경윤이 눈물을 닦고 기쁨에 겨워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나도 목소리 되찾았으니까, 너도 분명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꼭 방법을 찾아볼게!”“잘 됐어! 네 목소리가 돌아온 건 정말 다행이야. 아니면 우리 전투력이 너무 약해질 뻔했잖아. 팬들 상대로 밀려서 너무 힘들었어.”차설아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었다.오늘 오전, 그녀와 배경윤이 무기력하게 몰려다니며 반격조차 못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배경윤이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이었다.대학교 시절, 차설아, 배경수, 그리고 배경윤은 유명한 삼총사였다.셋이 무적이었던 이유는 각자의 역할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차설아는 ‘물리적 공격’을 담당했고, 배경수는 ‘두뇌 플레이’를 맡았다. 그리고 배경윤은 ‘언어 공격’을 담당했다.하지만 지금 차설아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물리적 공격’ 능력이 반감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배경윤마저 목소리를 잃었으니, ‘언어 공격'도 무용지물이 된 셈이었다.그렇다 보니 팬들이 둘을 조롱하며 몰아붙이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맞아! 만약 내가 오늘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저 미친 팬들 제대로 박살 냈을 거야! 아까, 정말 속이 터지는 줄 알았어. 내가 제대로 반격도 못 했잖아! 안 되겠어, 사도현 찾아가서 다시 따질 거야!”배경윤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사도현과 한바탕 말싸움을 벌일 기세였다.차설아는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이기고 싶다면 지금은 절대 그를 찾아가면 안 돼. 그리고 당분간 연락도 하지 마. 만약 그가 진짜 너에게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너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줄 거야.”“그 답을 내가 받을 수나 있을까? 그냥 당장 그랑 싸우는 게 속이 더 후련할 것 같은데.”“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왜 네
성도윤이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사도현은 남자의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형, 이게 정말 형 입에서 나온 말이야?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그럼 그게 완전 ‘호구’랑 뭐가 달라? 그렇게 냉정하고 도도하던 형이 어쩌다... 이제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이건 형답지 않아...”사도현은 여자를 쫓아다니긴 하지만 성도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여자에게 돈을 쓰고 달콤한 말을 하긴 해도 어떤 여자도 그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그의 사고를 지배할 수 없었다.어떤 여자가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순간, 그는 단호하게 다른 여자를 찾았다.배경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원칙이 걸린 문제라면 절대 양보하지 않았기에 오늘도 이렇게 끝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나도 오랜 시간 고민해서 얻은 결론이야.”성도윤이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사도현에게 연애 철학을 설파했다.“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과 일들을 만나게 되지. 그 중요도를 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어. 중요한 건, 네 마음속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거야.”“네가 스스로의 자아를 지키는 것이 그 여자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여자를 포기하면 되는 거고.”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네가 여자를 유혹하는 데 능숙한 건 알지만 결국 진정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야.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혹시 네가 그렇게 못하는 건, 단순히 네가 상대방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성도윤은 날카롭게 바라보며 정확한 지적을 했다.“나는...”사도현은 그런 게 아니라고 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자 말문이 막혔다.그는 다른 사람을 속일 수도 있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성도윤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성도윤은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자신의 마음속 가장 솔직한 감정을 그가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형은 내가 좀
“내가 왜 경윤이한테 뭐라고 해야 하죠?”차설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사도현에게 물었다.“만약 내가 도현 씨라면 이 일이 윤설과 관련이 있든 없든, 나는 단번에 배경윤을 위해 나섰을 거예요.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큰 모욕을 당했는데 괴롭힌 사람을 찾아서 따지기는커녕 내 여자에게 참으라고 한다면, 그건 도현 씨가 그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겠죠.”“지금 이간질하려는 건 아니지? 사람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무턱대고 화를 내고 일이 커지면 더 큰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사도현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떠받들던 차설아가 자기편을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경윤과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직도 이해를 못 하시네요.”차설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일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도현 씨의 태도예요. 그런 태도라면 어떤 여자라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그게 아니라...”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설아야, 역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뿐이구나!]배경윤은 타자한 후, 서러운 마음에 바로 차설아를 껴안았다.[이런 마음은 여자만이 이해할 수 있어! 도현 씨는 그저 내가 징징거린다고만 생각하겠지!]“도현 씨, 3일 안에 경윤이한테 사과할 기회를 줄게요. 하지만 어떻게 사과할지는 도현 씨가 알아서 해야 해요. 경윤아, 우리 오늘 같이 자자. 할 얘기가 정말 많을 것 같아!”차설아의 말에 배경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두 남자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있었다.성도윤은 왜 남의 커플 문제에 자신이 이렇게 끼어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반대로 사도현은 왜 이해심 많던 차설아가 갑자기 이렇게 고집불통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형, 우리 커플 일에 형수가 너무 과하게 간섭하는 거 아니야? 원래 하루이틀이면 해
“그때는 그때고,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잖아.”샤워를 마친 차설아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2층에서 사도현과 배경윤이 성도윤을 둘러싸고 다투는 소리를 듣고 성도윤 대신에 반박하며 나선 것이다.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 목욕 가운을 입고 나온 차설아를 보고 급하게 다가갔다.“설아야, 너 혼자 내려왔어? 움직이지 마, 잠깐만.”성도윤이 제일 먼저 달려가 아기를 돌보듯 세심하게 챙기며 말했다.배경윤과 사도현도 마치 공주를 대하듯 신중하게 행동했다.[괜찮아? 기분 나쁘거나 불편한 거 없어?]성도윤이 차설아를 거실 소파에 앉히자 배경윤이 그녀의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난 괜찮아. 기분도 나쁘지 않고 아픈 곳도 없어. 내가 전에 겪은 일에 비하면 몇 명 애들이 장난친 정도인데 뭐가 대수겠어.”차설아가 배경윤의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안심시키려 했다.“경윤아, 네가 더 걱정이야. 기분 잡치게 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마. 그러면 오히려 너 자신이 힘들어져. 그냥 흘려보내. 신경 쓸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배경윤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했다.[맞아, 맞아. 어떤 사람은 정말 마음에 두지 않더라고. 그 사람 때문에 화내는 내가 진짜 등신이지.]그녀는 당연히 차설아가 말한 ‘기분을 잡치는 사람’이 사도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도현은 오히려 차설아가 배경윤에게 작은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더 관대해지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들었어? 역시 형수가 마음이 넓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너도 같이 물려고?”사도현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여자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차설아의 말만큼은 예외라는 걸 알고 있었다.차설아는 배경윤의 정신적 지주이자 인간적 우상이었기 그녀의 말이면 배경윤은 무엇이든 믿었다.[도현 씨가 그 미친개라는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배경윤이 분노를 담아 타자기를 두드리며, 마치 사도현을 죽일 듯 차가운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