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아 씨가 아주 착하고 티 없이 맑은 사람이라 보스는 살아갈 힘이 생겼어요. 어촌을 나갈 수 있었지만 송지아 씨를 위해서 자신의 재능을 감춘 채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며 연명했어요.”“나중에는 어떻게 되었기에 오빠가 송지아 씨에 관한 말을 안 하는 거야?”장재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그... 보스의 형이 송지아 씨를 때려서 화가 난 보스가 형한테 반격했고 송지아 씨를 데리고 어촌을 빠져나왔어요. 저도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는 성격은 아니라 보스를 따라갔고 우리 세 사람은 아무런 돈도 권력도 없는 채로 길바닥에서 노숙해야 할 신세였어요. 그래서 영흥 부둣가의 잡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성심 전당포를 창립했죠.”“오빠도 대단하지만 송지아 씨와 재혁 씨도 정말 멋져.”세 나라가 교합하는 무법 지대에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버텨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갖은 고난을 이겨낸 뒤의 성취감은 오로지 세 사람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제일 멋진 분은 보스예요. 잘생겼고 분위기 또한 남달라서 가진 것이 없는 와중에도 보스가 나서면 상황이 달라지거든요. 여고객들은 보스의 미모에 빠져서 가게에 들를 때마다 구매했고 그 덕분에 성심 전당포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어요. 보스는 ‘새벽에 나타나는 킬러’라고 불렸는데 아주 유명했거든요.”장재혁은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말했다.“송지아 씨는 공주처럼 험악한 것과는 일체 단절된 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나쁜 놈은 단순한 송지아 씨를 타깃으로 삼았죠.”“나쁜 놈이 누군데?”차설아는 육감적으로 누구인지 알 것 같았지만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물었다.“아가씨는 똑똑하시니까 누구인지 아실 거예요.”장재혁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성심 전당포의 규모가 커지면서 성씨 가문의 산업과 충돌이 생긴 부분이 있었는데 마침 성도윤이 가문의 산업을 이어받은 직후였어요. 성도윤은 실적을 내기 위해 성심 전당포를 타깃으로 삼고 무너뜨리려고 작정했고요. 그때부터 두 사람
장재혁은 콧방귀를 뀌더니 입을 열었다.“흥! 그걸 이제야 아신 거예요? 그놈은 겉과 속이 달라서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방법 수단을 가리지 않고 순진한 여인을 속이기까지 하는 파렴치한 놈이에요! 지금 자선사업이니 뭐니 하면서 이미지 관리해 봤자 그 사람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요.”장재혁은 성도윤과 송지아를 증오하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남아있었다. 장재혁은 성도윤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기에 비열한 인간이 달라 보이는 순간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구원의 빛이 오빠를 찌르는 칼이 되어 돌아온 거네. 송지아 씨의 배신은 오빠한테 큰 상처가 되었으니 성도윤을 그렇게 미워하는 거구나.”차설아는 장재혁이 알려준 이야기를 듣고는 차성철이 왜 차갑고 극단적인 사람으로 변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신념이 깨진 순간, 차성철은 괴물이 되었고 이 모든 것이 송지아와 성도윤과 연관되어 있었다. 차설아는 만약 자신이 금이야 옥이야 하며 보살펴준 사람이 자신의 목을 무는 독뱀으로 변한다면 차성철보다 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송지아 씨가 오빠 마음의 응어리로 남았다면 그 사람을 찾아 원한을 풀면 오빠도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럼 성도윤과의 싸움도 끝내지 않을까?”“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장재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저라고 그런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라고요. 하지만 아무도 송지아 씨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보스를 따라 바다에 뛰어들었다는지, 성도윤이 죽였다는지, 비밀리에 팔려 가서 기형적인 공연을 한다는지... 여러 사람을 통해 알아보았지만 떠도는 소문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어요.”“괜찮아, 나한테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차설아는 차성철이 고통 속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기에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오늘 밤은 어쩐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한편, 배경윤을 부축하며 바에서 나온 사도현은 힘에 부쳐 숨을 고르고 있었다.“이거 놔,
“화난 것이 있으면 날 때리고 욕해도 좋으니까 위험하게 길에서 뛰어다니지 마!”사도현은 여인이 인행도로를 향해 달려가 건너려고 하자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이때 길 맞은편에서 순찰하던 순경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순경님, 저 변태가 저를 만지려고 했어요!”배경윤은 재빨리 순경 곁으로 걸어가 달려오는 사도현을 가리키며 말했다.“배경윤, 장난치지 말고 빨리 와!”사도현은 화가 솟구쳐 올랐고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내밀었다.“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그만하고 이리 오라니까?”“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죠?”순경이 배경윤 앞을 막아서며 목청을 높였다.“순경님, 개인적인 일이라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비켜주세요.”사도현은 화를 억누르며 천천히 말했다.“개인적인 일이라고요?”순경은 덜덜 떨고 있는 배경윤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제가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두 분 아는 사이예요?”“아니요, 처음 본 사람인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저를 납치하려고 했어요! 순경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잡혀갔을 거예요.”배경윤이 울먹이며 말했다.“이분은 그쪽을 모른다고 하는데요? 저와 함께 경찰서로 가시죠.”순경이 사도현의 손목을 붙잡으려고 하자 사도현의 낯빛이 삽시에 어두워졌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왜 이렇게 유치해? 말로 하면 될 문제를 왜 크게 만드냐고!”“순경님, 저를 협박하는 저놈을 얼른 붙잡으세요!”배경윤은 사도현을 괴롭히려고 마음먹었기에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순경은 사도현을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수갑을 채운 뒤 경고했다.“일이 더 커지기 전에 조용히 따라오세요.”“순경님, 경윤이가 취해서 막말하는 거예요. 저랑 만나는 사이인데 모순이 생겨서 술을 마시다가 혼자 위험하게 달리는 바람에 제가 걱정되어서 따라온 거고요.”사도현은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커플이라고요? 여자 친구라고 하기에는 그쪽을 많이 무서워하던걸요.”“제 말을 믿어주세요! 질투 나는 상대가 있다면서 저를 괴롭히려고
사도현이 당당하게 대답했다.“당연히 증명할 수 있죠!”“어떻게 할 건데요?”순경은 혹시나 오해일까 봐 사도현한테 증명할 기회를 주었다.“저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안면 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하세요. 그러면 숨겨진 갤러리가 나오는데 보면 아실 거예요.”사도현은 누명을 벗기 위해 알려주었다.“숨겨진 갤러리?”순경뿐만 아니라 배경윤도 궁금했기에 사도현의 휴대폰을 꺼내 안면 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하고는 물었다.“숨겨진 갤러리 이름이 뭔데?”“그... ‘하루의 끝에 맛보는 디저트’라는 갤러리가 있는데, 넌 보지 말고 순경님한테 보여드려!”사도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말했다. 배경윤은 사도현의 말대로 ‘하루의 끝에 맛보는 디저트’를 찾아 클릭했고 사진을 보자마자 얼굴이 붉어지면서 정신이 들었다.“이 사진들 다 뭐야?”배경윤은 사진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제가 확인해 볼게요.”궁금해진 순경이 배경윤한테서 휴대폰을 건네받고는 갤러리 속 사진들을 보더니 입이 귀에 걸렸다.“잘생겨서 여인의 속을 태운 줄 알았는데 한 여인만 바라보는 순애보였군요. 이런 남자 찾기 쉽지 않거든요. 특급 칭찬이라도 해줘야겠는데요?”사도현은 부끄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순경님, 감사하지만 저를 먼저 풀어주실 수 있을까요?”“오해해서 죄송해요. 수갑을 풀어드릴게요.”순경은 사도현 팔목에 걸친 수갑을 풀더니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여인은 수학보다 더 어려운 존재라 인내심이 필요해요.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아껴주며 애정 표현을 많이 해주세요.”순경은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저도 같은 남자라서 아는데, 아가씨는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났네요. 아가씨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배경윤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사도현은 팔목을 매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살면서 창피한 일이 종종 있었지만 오늘보다 더 창피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그럼 두 분 잘
“이제야 정신이 좀 들어?”사도현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더니 헛기침하며 물었다.“그런 것 같아.”배경윤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늦었으니 집까지 바래다줄게.”“고... 고마워!”배경윤은 평소에 다르게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배경윤은 사도현이 여태껏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고 품에 안고 싶은 생각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휴대폰 속 사진을 본 뒤, 사도현이 배경윤에 대한 욕망을 깨닫게 되었다. 배경윤을 향한 사랑이 묻어나는 ‘하루의 끝에 맛보는 디저트’를 보고 난 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사도현이 택시를 불렀고 두 사람은 배씨 저택으로 향했다. 배경윤은 스스로 마련한 집이 따로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을 배씨 저택에서 보냈다.배성준은 딸을 연거푸 다섯 명이나 낳은 뒤에 쌍둥이를 갖게 되어서 얼마나 예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성인이 된 쌍둥이 오빠 배경수는 여행을 가면 몇 년 후에야 돌아왔기에 배성준 부부는 함께 지내는 배경윤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전화를 몇십 통씩 쳐댔다.오늘 밤도 전화가 몇백 통 들어왔기에 배경윤은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뒷좌석에 앉은 배경윤은 사도현의 어깨에 기댔다.“속 괜찮아?”사도현은 빨갛게 달아오른 배경윤의 볼을 만지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괜찮아. 좀 덥기도 하고 머리가 어지러워.”배경윤은 사도현 곁에 더 가까이 붙었고 몸에 달라붙는 하얀 티 아래로 완벽한 몸매가 드러났다.“그러게 왜 그 술을 다 마셨어?”사도현은 투덜거리면서 배경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졸리면 좀 자.”“고마워.”배경윤은 미소를 지으며 사도현의 팔을 감싸안았다. 가까이 붙어서인지 사도현은 자신의 몸에 닿은 배경윤이 신경 쓰였고 힐끔 쳐다보았다.사도현은 갈증이 나서 마른침을 삼켰고 안절부절못했다.“평소에는 털털하다가 갑자기 얌전하게 있으니까 이상하네.”배경윤은 눈을 감고는 사도현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몰래 찍지 말고 예쁘게 잘 찍어줘.”사도현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일부러 목청을 높였다.“그...
“어...”사도현은 아까까지만 해도 수줍어하던 여자가 갑자기 이렇게 열정적일 줄 몰랐다.사지가 즉시 굳어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배경윤은 남자의 목을 껴안고 자신의 취기를 빌려 눈을 질끈 감은 채 열정적이면서도 서툰 모습으로 애정을 표현했다.예전에는 사도현의 마음을 잘 몰랐는데, 오늘 사진들을 보니 그녀는 드디어 확신이 생겼다.“인정해, 날 좋아한다고, 나한테 감정이 있다고, 왜 시치미를 떼는 건데!” 그녀는 손바닥으로 남자의 뒤통수를 감싸 쥐며 패기 넘치게 말했다. “얼른 대답해!”사도현이 비록 많은 여자를 만나왔고, 품에 안긴 여인도 수없이 많았지만, 배경윤처럼 이렇게 용감하고 진실한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정말이지,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딱따구리야? 키스하는 법을 어디서 배운 거야, 형편없어.”사도현은 이렇게 말하며 몸을 살짝 숙이고, 두 손으로 여자의 앙증맞은 얼굴을 움켜쥐고는 긴 속눈썹을 가늘게 떨며 말했다.“잘 봐, 이것이야말로 키스야.”사도현이라는 고수의 리드로 배경윤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녀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키스는 단지 이빨과 이빨이 닿는 것이 아닌 입술과 입술이 닿는 것이고, 이는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마치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두 사람이 애틋한 키스를 나누는데 “콜록콜록” 하는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누가 한밤중에 기침하는 거야? 키스하는 거 안 보여?”배경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섭섭한 듯 사도현을 놓아주고 나무 그늘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를 향해 다가갔다.그녀는 누구인지 확인을 하자마자 눈이 번쩍 떠져서 달려갔다.“이 양심도 없는 놈, 드디어 돌아왔구나!”그녀는 눈을 붉히며 남자를 덥석 껴안고 남자의 넓은 등을 미친 듯이 두들겼다.“왜 돌아왔어? 그냥 확 죽어버릴 거지. 내가 보고 싶어 할 줄 몰랐어? 내가 걱정할 생각 안 해 봤어? 양심도 없는 놈 같으니라고.”“날 생각할 겨를도 있었어? 난 왜 모르겠지? 아까까지만 해도 키스
공공장소에서 마주치면 반드시 시비가 붙어서 말싸움을 하는 그런 사이였다.배경수는 캐주얼한 차림으로 피부가 까맣게 그을린 채 브라운 컬러의 와이드 데님 모자를 착용해 마치 자유로운 바람처럼 느껴져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를 뿜어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도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심각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바라보았다. “이 계집애야, 너는 안과에 가봐야 해, 어떻게 안목이 이토록 나빠? 이놈은 해안에서 소문난 바람둥이야, 농락한 여자가 부지기수라고. 비록 네가 시집갈 수는 없어도 배고프다고 아무 남자나 만나는 건 아니지 않아?”“무슨 소리야!”배경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화가 나서 반박했다.“바람둥이는 단지 그의 표면일 뿐이고, 실제로는 완전 순애보라고. 전에는 우리가 차설아 때문에 편견을 갖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마.”“쯧쯧, 역시 여자는 크면 종잡을 수 없어, 너희 둘 얼마나 됐다고 너는 벌써 남의 편을 들어주는 거야. 좀 있으면 둘이서 도망이라도 가겠네.”“어이구, 넌 몰라, 나랑 도현이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어쨌든 이 사람 난처하게 해서는 안 돼!”배경윤은 교활한 오라버니가 자신의 낭군을 다치게 할까 봐 사도현 앞을 가로막았다.“진정한 사랑?”배경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그의 시선은 배경윤의 머리 꼭대기를 넘어 사도현을 향했다.“처음부터 끝까지 이 계집애가 앞에 나서는데, 사내대장부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사도현은 고개를 돌렸다.“난 할 말 없어. 네 말대로, 나는 해안의 유명한 바람둥이야. 나랑 진정한 사랑을 한다니, 재밌네.”“뭐라고?”배경수의 눈빛은 위험천만한 신호를 보냈다.그는 항상 배경윤을 괴롭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여동생을 매우 아끼고, 동생이조금이라도 억울함을 당하게 한 적이 없다. 누가 감히 배경윤을 괴롭히면 그의 손에 죽을 것이다.배경윤의 연애에 대해서는 더욱 철통같았다. 어떤 남자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여 그녀더러 20년 넘게 모태솔로 생
결국 배경윤은 사도현을 떠나보냈다.더 있으면, 배경수의 성깔로 보아서 정말 경찰서까지 갈까 봐 무서웠다, 그러면 사도현이랑 영원히 헤어질 것이다.“양심도 없는 것, 이렇게 오랫동안 세계를 여행하면서 뜻깊은 에피소드 없었어? 중요한 건 나한테 줄 선물은 가져왔어?”배경윤은 열정적으로 배경수의 짐을 들어주며 무심히 물었다.“선물은 없고 뺨 한 대는 어때? 내가 정신 차리게 해줄게.”배경수는 화가 나서 그녀의 포동포동한 뺨을 두드리며 말했다.“그동안 그렇게 당했으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전에 강우혁은 그가 너무 봐줬던 탓에 배경윤이 속아 넘어갔다.하지만 지금의 사도현은 아주 능구렁이라 강우혁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다.경윤이가 아니더라도 배경수 자신도 그를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내가 말했잖아, 사도현은 그런 엉망진창인 남자들과는 달라, 그는 나를 엄청 사랑하고 내가 사랑할 가치가 있어. 넌 편견이 너무 심해, 그 사람이 성도윤이랑 한패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적의 친구도 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그렇게 쪼잔하지는 않아.”배경수는 마음에 찔린 듯 어색하게 코를 긁으며 다시 말했다.“걔가 널 사랑한다고? 네가 그러길 원하는 건 아니고? 아까 분명히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 바람둥이라고. 걔는 조금의 진심도 없는데 넌 계속 들이대고, 아주 내 속을 뒤집어 놓지 아주!”“아니야, 넌 몰라, 걔 그거 교만이야, 날 사랑한다고 인정하지 않을 뿐이야. 너만 알려주는 건데 걔 핸드폰에 전부 몰래 날 찍은 사진이야, 매일 밤 자기 전에 본다고 말하는 걸 보면 걔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몰래 찍은 사진?”배경수의 얼굴은 더 찡그려졌다.“방자할 뿐만 아니라 변태기까지 하네, 이런 쓰레기를 만나고 싶은 거야?”“무슨 말을 그렇게 해? 됐어, 너랑 말하고 싶지 않아.”배경윤은 그의 배낭을 땅바닥에 툭 던지고는 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거리며 앞으로 갔다.“나야말로 너랑 말하기 싫거든!”배경수는 다리가 길어서 더 빨리 걷더니 앞에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
사도현은 배경윤의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가서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그러지 마!”배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도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사도현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배경윤은 진찬영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찬영과 시작해 보지도 않고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뻔뻔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인성은 늘 그렇듯 욕심이 끝도 없었다.“안에 누구 없어요? 없으면 문 열고 들어갈게요.”쾅!소수민은 문을 점점 세게 두드렸고 허술하게 지어진 초가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이 흔들거렸고 먼지가 떨어졌다.배경윤은 사도현을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이 난감한 상황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도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배경윤이 우스웠다.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던 사도현은 일부러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하하하!”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진찬영과 소수민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수민은 큰 소리로 물었다.“계세요?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세요. 저기요!”배경윤은 입을 틀어막고는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사도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을 올렸다.“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봐요. 쉬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진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 찬영 오빠는 참 다정해요.”소수민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진찬영과 같이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배경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사도현을 마구 때리면서 말했다.“사도현, 너 진짜 미친 거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 이러고도 네가 남자야?”“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 쌍의 커플로 보고 있어. 커플이 같은 침대를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사도현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배경윤을 내려다보았다. 배경윤이 진찬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신경이 거슬렸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