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 됐어, 우리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하느님 감사합니다.”소영금은 성도윤을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우리 아들, 네가 그동안 고생한 것은 다 내 탓이야, 간사한 자에게 틈을 주었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성명원도 목이 메어 눈물을 훔쳤다.“걱정시켜 드려서 죄송해요.”성도윤은 가볍게 기침을 했고 잘생긴 얼굴은 어두웠다.그는 겹겹이 쌓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보고 싶은 사람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두 친한 친구들이었고 낯선 얼굴은 없었다.“아들, 누구를 찾는 거야?”소영금은 성도윤의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른 물었다.“그게...”성도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어렵게 입을 뗐다.“'신지 요양병원에 있지 않았어요? 누가 절 데리고 온 거예요?” “그게...”소영금과 성명원은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몰라 서로를 쳐다보았다.서은아는 남자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바보야, 당연히 나랑 당신 부모님이 데리고 왔지. 우리는 오 원장님께 특별히 감사 인사도 했는걸, 그동안 당신을 돌보느라 고생 많으셨잖아.”“오 원장님만?”“그렇지 않으면 또 누가 있겠어.”서은아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당신의 눈도,우리가 오 원장님과 상의해서 신의 한 명을 찾아 치료한 거야. 나는 아직도 믿을 수 없어, 정말 성공했다니...”“하지만 내 기억으로는...”성도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을 느꼈다. “난 또 다른 누군가가 날 돌봐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사람이 계속 내 눈을 치료해주겠다고 했고...”“알아, 설아 씨 말하는 거 맞지?”서은아는 이 사람이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먼저 말을 꺼냈다.“그 사람은 어디 있어?”성도윤은 눈망울을 조금 환하게 빛내며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그의 기억이 맞다면 그는 그 여자와 약속을 했다. 그가 시력을 회복하는 날 그는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꼭 볼 거라고.그런 바람
반년 후.E 주의 어느 작은 마을, 마치 동화에서 그대로 옮겨온 듯 뾰족한 오두막집이 구름 위로 솟은 산속에 널려 있다.가장 아름다운 오두막집은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큰 뜰에는 양지꽃이 가득 심겨 있고 따뜻한 햇볕 아래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꽃밭 한가운데는 잘생긴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들고 빛이 뺨에 떨어지는 것을 만끽하며 꽃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목마르지 않아, 물 좀 마실래?”차설아는 성진의 무릎 위에 담요를 덮어주며 부드럽게 물었다.“당신이 내린 커피를 마시고 싶어.”“그래, 햇볕 좀 쬐고 있어, 내가 커피 내려줄게.”여자가 떠나기 전에 그의 이마에 키스했다.“고마워, 자기야.”여자의 손을 잡은 성진의 목소리에는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애교가 가득했다.어느덧 벌써 반년이 지났다.비록 성진이 '방혈훈골요법'을 마친 후 그의 다리는 이미 몸을 지탱할 수 없었고 눈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호흡조차 예전보다 힘에 부치는 등 세속의 폐인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자신을 희생하고 사랑을 얻었으니 그는 매우 가치 있는 장사라고 생각했다.차설아는 부엌에서 커피를 손으로 갈았는데 예전 성도윤에게 만들어 줄 때와 똑같은 정도로 집중했다.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깊은 자책 속에 있었고 하루도 후회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그녀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성도윤을 낫게 하려고 파렴치하게 성진를 모험하게 했다.그녀가 성진의 인생을 망친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번 생은 평생 성진의 수발을 들어도 만회할 수 없었다.거실의 텔레비전에서는 국제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다.“보도에 따르면 성대 그룹 회장 성도윤 씨는 약혼녀 서은아 씨와 함께 3개월간의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며 첫 방문지는 E 주라고 합니다...”'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잔이 바닥에 떨어졌다.차설아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는데 그전까지 그녀는 너무 억압적이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오랫동안 광란의 느낌을
“유치하긴.”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 두 형제는 입맛이 완전히 달랐는데 성도윤은 쓴맛과 떫은맛을 좋아해 오리지널 라떼를 좋아했지만 성진은 우유와 설탕을 많이 넣은 캐러멜 마키아토를 좋아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햇살 아래 꽃밭에서 별다른 대화 없이 모처럼의 평온을 즐겼다.성진은 커피잔의 가장자리를 어루만지며 따뜻한 열기를 느낀 후 무심코 말했다.“곧 그와 은아가 여기로 신혼여행을 온다고 들었어...”차설아는 멈칫했고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만나러 가고 싶으면 가서 만나. 반년 동안 날 돌보느라 당신 고생한 거 알아. 만약 그를 만나는 것이 당신을 좀 더 기쁘게 한다면 나는 당신이 그를 만나는 것을 지지할 거야.”성진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애초에 그가 기꺼이 성도윤을 도와 요법을 진행했지만 벌을 받은 사람이 어디 그뿐이겠는가?그의 고통은 몸에서 오는 것이니 적어도 풀 수 있는 약이 있다.하지만 차설아의 고통은 정신에서 오는 것이니 오랜 억압은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필요 없어.”차설아는 거절도 시원시원했다. “보면 뭐해, 나랑 그 사람의 인연은 반년 전에 끝났어. 이제 와서 보면 더 고통스럽겠지.”“...내가 당신을 놓아준다면?”성진은 이 말을 할 때 마음이 다 조여졌다.그는 결코 대범한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거짓되고 이기적인 소인배일 뿐이다, 단지 그가 목숨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차설아를 만났기 따름이다.“당신이 날 놓아줄 수 있다 해도 내가 당신을 놓아줄 수 없어.”차설아는 뒤에서 남자를 껴안고 어린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내가 얼마 전에 점을 보러 갔었는데 우리 둘은 궁합이 잘 맞는대. 서로 의지하며 살기에 적합하니 다시는 이렇게 나를 밀어내지 마. 그렇지 않으면 정말 갈 거야. 울고 빌어도 소용없을 거야.”성진은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 “당신이 나를 달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지만 정말 듣기 좋은걸?”그전까지 그는 차설아가 그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기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작은 시장은 크지 않았는데 앞뒤를 합쳐도 겨우 몇백 미터의 길이에 불과했지만 안에는 옷가지부터 수공예품까지 여러 가지가 있었다.차설아는 도자기 노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모양의 컵과 접시가 있었는데 이 컵과 접시는 모두 도자기 재질이어서 무늬가 정교하고 섬세하며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어 매우 보기 좋았다.그러다 그녀는 복잡한 무늬 없이 은은하게 검은색으로 물들여 태극 음양을 이루는 듯한 흰색 잔이 눈에 들어왔다.“사장님, 이 잔 디자인이 재밌는데요.”차설아는 잔을 가리키며 신이 나서 말했다.“아가씨, 안목이 좋으시군요!”노점 주인은 비록 외국인이지만 동양 문화의 팬이었다. 차설아가 물건을 알아보니 사장은 끊임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 컵의 도안은 매우 정교하죠? 머나먼 동방 대국에서는 태극이라고 합니다. 태극은 매우 현묘한 물건인데 세상 만물을 설명할 수 있죠. 흑에는 백이 있고 백에는 흑이 있는데 서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융합된 하나죠. 서로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끌어당기고 있는걸요. 둘 중 누구도 누구를 억압할 수 없고 누구를 떠날 수 없죠...”“태극이라...”차설아는 흑백이 분명한 잔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왠지 모르게 그녀와 성도윤이 생각났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립을 세우면서도 서로에게 끌리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그녀는 노점상에게 컵을 가져다 달라고 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차가운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 컵, 제가 살게요.”차설아는 눈썹을 찡그리며 정색을 하고 돌아섰다. “죄송한데 이 잔은 제가 먼저...”뒤돌아보니 남자의 그윽한 눈동자와 부딪혔고 그녀는 마치 혼이 사라진 것처럼 멍하니 거기에 서서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고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성도윤은 차설아보다 무려 30㎝나 더 컸는데 그는 큰 산처럼 절대적인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뒤에는 따스한 아침 햇살이 그를 빛나게 했고 눈부시게 비현실적이었다.“하지만 돈은 내가 먼저 냈는걸요.”성도윤은 유로 다발을
성도윤은 황급히 도망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왜 분명 낯선 여자인데 그는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걸까?“아는 사이인가요?”노점 주인이 잔을 포장하며 성도윤에게 건네며 궁금한 듯 물었다.“아니요, 모르는 사람입니다.”성도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전 어쩐지 두 사람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고 많은 사연이 있었던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데요?”노점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혹시 저 여자를 아십니까?”성도윤은 노점 주인을 돌아보며 호기심을 느꼈다.“이 마을에서 제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노점 주인은 차설아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고 아직도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그날, 마을에 갑자기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는데 마을의 길은 원래도 기복이 심하고 울퉁불퉁하여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그녀는 한 남자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밀며 빗속에서 사방에 도움을 청했는데 그들의 차가 고장이 났으니 누군가가 그들을 태워주기를 바란다고 했다.거동이 불편하고 실명한 남자를 돌보는 약한 여자, 어찌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래서요?”성도윤은 노점 주인이 계속 말하기를 바라면서 걸음을 멈추었다.그때 서은아가 장터 저편에서 달려왔다.“자기야,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그녀는 성도윤의 품에 안기며 어린 소녀처럼 남자의 팔짱을 끼고 응석을 부렸다.“앞에 아주 유명한 카페가 있대, 거기 가자.”“당신 주려고 잔을 하나 샀어.”“성도윤은 그 흑백의 작은 잔을 서은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당신 결벽증이 있잖아. 마침 이 잔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와, 예쁘다~ 마음에 무척 들어.”서은아는 성도윤을 끌어안고 뽀뽀를 했고 이가 녹아버릴 정도로 달콤했다.지난 반년 동안 너무 행복해 조금은 비현실적이었다. 남자는 단 한 번도 차설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그의 눈에는 그녀밖에 없었다. 마치 그 여자가 그의 인생에 나타난 적이 없는 것 같았다.서은아는 매일 기도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고 그
차설아는 셔틀버스를 타고 산기슭에 있는 오두막집으로 돌아갔다.이웃집 존스 씨는 황망히 뛰어나와 초조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제인, 드디어 돌아왔군요. 빨리 와서 진한테 가봐요. 큰일 났어요.”“네?!”차설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차에서 빨리 내려 오두막집을 향해 다급하게 달려갔다.걸음이 너무 빨라 중간에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과일과 채소가 바닥에 굴러떨어지기도 했다.“제가 방금 돌아서서 주스 한 잔 따르려고 했는데 진씨가 체리나무에 올라갔다가 넘어져서 정신을 잃었어요!”존스는 차설아를 따라 뛰면서 상황을 설명했다.오두막집 마당에는 해바라기 꽃 외에 키가 큰 체리나무가 하나 더 있었는데 지금은 체리가 익을 때였고 나무에 달린 체리는 달고 즙도 많았는데 크기도 엄청나게 커 엄지손가락만 했다.차설아는 줄곧 이 체리 나무를 탐냈는데 어찌나 큰지 따기가 쉽지 않았다. 언젠가 존스의 사다리를 빌려 한 끼 배불리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성진이 그녀보다 한발 앞설 줄 생각지도 못했다...“성진!”차설아는 멀리서 성진이 체리 나무 밑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고 그의 손에는 크고 붉은 체리 몇 개가 꽉 쥐어져 있었다. “뼈를 다쳤는지 몰라 못 건드렸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구급차를 불렀어요.”존스는 차설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나지막하게 위로했다.이 두 남녀는 반년 전에 이 마을로 이사 왔을 때부터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연약한 여자가 눈이 먼 장애인 남자를 데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모두가 기꺼이 그들을 도왔다.“성진...”차설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남자의 손을 잡았다.“다 내 탓이야, 내가 장터까지 데리고 갔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소홀했어.”구급차가 곧 도착했고 그들은 성진의 기초적인 상처를 치료한 후 들것에 실어 읍내 병원으로 향했고 차설아도 자연스럽게 함께 갔다.한바탕 소란 끝에 의사는 성진이 허리를 다쳐 보름간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진단했고 지금은 장기간 빈혈과 허약함으로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생활환경의 변화라 할 수 있다.반년 동안 살았던 오두막은 그의 껍데기였고 그는 껍데기 속에 숨어 있어야만 안전하다고 느꼈다.“환자분, 진정하세요. 허리를 다쳤으니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안심하세요, 저희가 잘 돌봐 드리겠습니다.”간호사가 참을성 있게 그를 달래고 있었다.하지만 성진은 오히려 조울증 환자처럼 갑자기 손을 휘둘렀다. “꺼져, 난 당신들의 보살핌이 필요 없어, 모두 꺼져!”“가족은, 내 가족은 어디 있어? 난 내 가족만 있으면 돼!”남자의 목소리에는 버림받은 어린아이 같았는데 자신이 버림받았을까 봐 초조함과 절망감이 배어 있었다.간호사는 좀 난처했다. “죄송하지만 가족분... 환자분 가족분은 저희도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왔을 때 이 병실에는 환자분 혼자였어요.”성진의 표정은 잿빛으로 변했고 그는 큰소리로 거의 빌듯이 간호사에게 말했다.“내가 돈을 줄게요. 그러니 날 다시 데리고 가줘요. 나는 당신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어요. 내가 집에 없으면 설아가 걱정할 거예요. 내가 부탁할게요.”“정말 안돼요, 가족분의 번호가 있으세요? 제가 그분한테 전화 한 통 해드릴까요? ”“그게, 설아의 번호가...”성진은 차설아의 번호를 말하려다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잠자코 있었다.“가족분의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됐어요, 그럴 필요 없어요.”성진은 갑자기 조급함에서 평온함으로 변했다.만약 그녀가 정말 그를 버리고 싶다면 그녀를 돌아오게 해도 의미가 없었다.반년 동안 보살펴 준 덕분에 그는 이미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했다, 설사 그녀가 정말 가버렸다 해도 그는 그녀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차설아는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성진이 잠에서 깨어있는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깨어났구나, 놀랐잖아.”성진은 축 늘어져 있다가 갑자기 다시 살아났고 잘생긴 얼굴은 즉시 생기로 가득 찼다, “당신, 안
성진은 마침내 잠이 들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는데 안심하고 달콤한 표정이었다.그는 어린아이처럼 차설아를 그의 삶의 전부로 삼았다.차설아가 있을 때는 하늘도 맑고 바람도 부드럽고 공기도 달았다.하지만 차설아가 사라지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그는 살아갈 의욕조차 없었다.그는 자신이 병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점점 중독되어 빠져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차설아는 잠든 남자를 말없이 바라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힘든가?당연히 힘들지, 어떻게 안 힘들 수가 있겠는가.몸만 힘든 게 아니라 마음도 피곤했다.성진은 원래 미치광이여서 일을 하는 것이 매우 극단적이었는데 예전에도 너 죽고 나 죽자는 가치관을 내세워 항상 질서정연한 국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지금은 착한 아이가 되어버렸는데 더 이상 날뛰지 않고 미친 듯이 비판하지도 않고 오직 그녀만을 하늘로 여기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하지만 성진이 그럴수록 차설아의 심리적 압박은 더욱 커졌다.어쩐지 그가 너무 불쌍하고 그런 억압 속에 있는 소심함이 안쓰러웠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초래한 것이다.그러다 낮에 성도윤을 우연히 만난 장면이 떠올라 괜히 짜증이 났다.왜 분명히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 그녀의 평온한 삶에 침입하여 그녀의 평온한 마음을 어지럽히는가 말이다.결국은 그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을 뿐이다... 정말 가증스럽다.차설아는 병실을 나와 어두컴컴한 복도 입구에 이르러 담배에 불을 붙였다.이따금 피어오르는 불은 엷은 연기와 함께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니코틴 냄새가 그녀의 뇌를 좀 풀어주었다.지난 반년 동안 심리적 압박감이 컸는지 그녀는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다.그녀는 이것이 좋은 습관이 아니라 그녀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참을 수 없었다.있어서는 안 되는 감정처럼 일단 생기면 재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그러다 간호사 두 명이 와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잡담을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