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이 이모는 신의님의 딸이고 게다가 수년간 의학을 열심히 공부해 왔기 때문에 의술은 신의의 레벨이 되지 못해도 세계적인 의학 전문가였다.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상처를 자세히 검사한 후 특별히 설아의 체질에 맞게 약 처방을 썼고 한약을 달여서 줬다.차설아는 순순히 모두 마셨다. 원래 보름 정도 지나야 나을 수 있었던 상처는 3일도 안 되어 거의 다 나았다.차설아는 원래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혼자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주치의조차 이건 기적이라고 외쳤다.“민이 이모, 약을 끓여줘서 감사해요. 정말 신기해요. 저 이제 혼자서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어요.”차설아는 3일 동안 푹 쉬었더니 기력이 회복되었고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민이 이모에게 물었다.“우리 오빠 그쪽에는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죠?”민이 이모는 한편으로 차설아의 방을 정리하면서 한편으로 자신 있게 말했다.“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성철 도련님께는 아가씨가 요즘 기분이 안 좋아서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도련님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며 저보고 아가씨를 잘 보살펴 주라고 했어요. 원이와 달이는 도련님께서 잘 돌보겠다고 했어요.”민이 이모가 그렇게 말하자 차설아도 많이 안심되었다.“제가 그런 미련한 짓을 했고 심지어 병원에 입원했으니, 오빠가 알면 저를 죽도록 욕할 거예요. 그래서 절대 오빠가 알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저도 당분간 오빠와 연락 할 수 없어요.”“아가씨, 성철 도련님과 말다툼이 있었어요? 두 남매가 이제야 서로를 알게 되었는데 며칠도 함께 지내지 못했잖아요.”“왜냐하면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 때문에 오빠가 기분이 나쁠 수 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우리 남매가 원수가 될 수도 있어요. 심지어 나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차설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를 말리지도 않고 진지하게 말
차설아는 점점 긴장되어 숨을 죽이고 성도윤의 병실 앞에 한 걸음씩 다가가 방문을 살짝 열어젖혔다.호화로운 병실은 넓고 깔끔하며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성도윤은 병상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길고 빽빽한 속눈썹이 침대 머리맡의 오렌지색 불빛에 비쳐서 빛이 났다.성도윤은 아마 심하게 부딪힌 것 같았다. 머리에는 흰 붕대를 감고 있었고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는 깁스하고 있었다. 마치 산산조각 난 마네킹을 다시 조립한 느낌이 들자 차설아는 마음이 아팠다.“...”차설아의 눈물이 금세 눈시울을 적시고 눈 앞을 가렸다.성도윤은 그녀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오래된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는데 또 이렇게 새로운 상처를 입었으니 마치 무거운 족쇄가 심장을 조여오듯이 아마 숨 쉬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바보야. 그렇게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사람이 왜 날 위해서 이 정도까지 희생해야 해? 내가 너한테 이렇게 많은 빚을 졌으니, 평생 갚아도 부족하겠어.’성도윤은 깊은 잠에 빠졌기에 차설아가 옆에 있는 것도 몰랐다. 그는 아마 별로 좋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냉랭한 얼굴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바보야, 잠들었는 데도 아직 꿈에서 싸우고 있는 거야? 좀 편하게 잘 거지.”차설아는 의자 하나를 끌고 와서 성도윤의 병상 앞에 앉아 그의 잘생긴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손을 내밀어 그의 치켜든 눈썹을 부드럽게 만졌다. 그러자 손끝에는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차설아는 성도윤이 즐겁고 느긋하게 살기를 바랐다. 꿈속에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이게 바로 민이 이모한테 말한 해야 할 일이었다.물론 성도윤을 떠나는 건 이미 정해진 운명이지만 떠나기 전에 그를 치료해 주고 싶었다. 그의 몸이든 마음이든 전부 치료가 필요했다.차설우의 이런 결정은 자기 오빠와 맞서 싸우는 것과 다름없기에 차성철에게 알리면 안 되었다.그리고 이 결정 때문에 자신이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차설아
성도윤은 마치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차설아의 손을 잡아 자신의 윤곽이 뚜렷한 볼에 대고 비볐다.차설아의 손바닥이 그의 두 볼에 난 수염에 닿자, 그녀의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렀다. 차설우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성도윤이 말했다.“약속해 줘. 앞으로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은아야.”“...”차설아는 또 한 번 멍해졌고 굳은 표정으로 성도윤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은 분명히 회복되지 않았고 또 한 번 차설아를 서은아로 여겼다.“내가 강에 빠졌을 때 너무 춥고 피도 많이 흘렸고 깊은 어둠 속에서 난 몇 번이고 견딜 수 없었어. 다행히 네가 나와 함께 있었고 넌 나에게 인공 호흡을 해주었던 기억이 나. 우리는 덩굴같이 꼭 껴안고 있었지. 생사를 함께한다는 그런 느낌을 기억해. 난 이미 눈먼 장님이니 너한테 평생 기대고 싶어. 날 뿌리치려고 하지 마.”성도윤은 껌딱지처럼 차설아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손등에 입을 맞추며 뜨거운 사랑을 속삭였다.성도윤의 이런 다정한 모습은 낯설지 않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였다...이보다 더 상처받을 수는 없었다.차설아는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고 그녀는 자신의 손을 떼고 울먹이며 말했다.“잘못 알고 있어. 난 서은아가 아니야.”“서은아가 아니라고?”부드러운 표정이던 성도윤은 갑자기 차가운 얼굴로 차설아의 손목을 힘껏 잡고 물었다.“그럼 넌 누구야? 왜 몰래 내 병실에 왔어?”“내가 누구라고?”차설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입가로 흘러 들어가자 더욱 씁쓸해졌다.“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거야?”“넌 도대체 누구야?”성도윤의 차가운 시선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그는 바로 차설아의 손을 꺾으면서 소리쳤다.“더 이상 함부로 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으악!손에서 오는 고통보다 마음속의 고통이 더 아팠고 차설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차설아의 실력으로 손쉽게 반항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반항할 의사가 없었
서은아는 성도윤의 옆에 다가가서 한 손으로 그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와 자연스럽게 손깍지를 했다. 보아서는 마치 결혼한 지 수십 년이 되는 노부부 같았다.“왜 미리 말도 없이 들어온 거예요? 제 남자 친구가 놀랐잖아요!”서은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며 건방지게 말했다.사실 이런 오만함은 원래 차설아한테만 있었다. 그녀와 성도윤의 사랑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에서부터 온 거였다.그러나 이제 차설아는 그런 자신감도 없었다. 성도윤과 서은아의 다정한 모습을 본 그녀는 마치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훼방꾼이 된 것처럼 어색했다.하지만 차설아는 절대 지려고 하지 않는 승리욕은 타고났다.비록 가슴이 아파 죽을 것 같고 눈물도 뚝뚝 떨어졌지만 차설아의 표정은 득의양양했고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아가씨가 그렇게 말씀하면 서운하죠. 저와 성도윤의 관계라면 미리 약속을 잡을 필요가 없다고 믿어요.”“뭐라고!”서은아는 화가 나서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다.“간호사인 주제에 자기 신분을 분명히 알아야지요. 여기는 그쪽이 할 일이 없으니 꺼지세요.”“할 일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가씨가 결정할 게 아니라 성도연이 결정할 일이죠.”차설아는 시선을 성도윤의 몸에 돌렸다. 그러자 차갑던 눈빛도 한결 부드러워졌다.“성도윤, 난 네가 아직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아. 일부러 내 목소리를 못 알아듣는 척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난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네가 화를 내도 다 이해해. 하지만 내가 이곳으로 온 건 널 돕기 위해서야. 그러니... 날 내쫓지 마.”“...”성도윤은 입술을 오므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이런 당혹하는 표정은 일부러 화난 척하는 것 같지 않았다.서은아의 안색은 점점 나빠졌고 성도윤의 손을 놓고 힘껏 차설아를 밀쳐내면서 소리쳤다.“이제 그만해. 도윤 씨는 방금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으니 더 이상 자극하지 마. 도윤 씨가 죽어야만 속이 후련한 거야?”차
“차설아, 우리 이혼해.”등 뒤에서 성도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차설아는 스테이크를 굽고 있었다.지글거리는 뜨거운 기름이 얼굴에 튀었지만,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우리는 명의상 부부일 뿐 정은 없잖아. 이제 4년이란 시간도 채웠으니, 이쯤에서 끝내자.”얼음장처럼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소외감이 느껴졌다.차설아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드디어 이날이 왔군.’4년 전 차씨 집안이 파산당하면서 그녀의 부모님은 부담감에 못 이겨 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결국 차설아는 홀로 모든 뒤처리를 감당하게 되었다.차설아의 할아버지와 성도윤의 할아버지는 함께 전쟁을 치른 전우였고, 차설아의 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성도윤의 할아버지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차설아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눈에 밟히던 사람이 바로 어린 손녀딸이기에 성도윤의 할아버지한테 잘 좀 챙겨달라고 신신당부했다.그래서 이런 유명무실한 혼인을 치르게 된 것이다.다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고, 성도윤한테 푹 빠졌다.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라는 역할만 충실히 이행한다면 언젠간 그의 마음을 얻을 거로 믿었다.하지만 이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너한테 보상으로 800억이랑 동탄구 아파트 펜트하우스를 줄게. 이건 이혼 신고서야. 별다른 문제 없다면 사인해.”성도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설아에게 서류 더미를 건넸다. 대수롭지 않은 그의 태도는 마치 이혼마저 하나의 사업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차설아는 서류를 건네받아 일련의 숫자를 내려다보았다.4년에 800억이라...성씨 집안은 역시나 씀씀이가 달랐다.“꼭 해야겠어?”차설아는 서류를 내려놓고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그녀가 4년 동안 사랑한 남자는 조각 같은 외모에 훤칠한 몸매를 가졌는데, 매사에 진지하고 끊고 맺음이 분명했다. 그는 마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닿을 수 없는 그런 존재이다.“응.”성도윤의 싸늘한 음성에는 일말의 망
어쩐지 성도윤이 오늘 밤에 나가라고 하더니, 새로운 애인을 집에 빨리 들이기 위해서일 줄이야!아까 고작 이런 남자 때문에 가슴 아파한 자신을 떠올리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임채원은 도도하게 차설아 앞으로 걸어가 거만한 말투로 쌀쌀맞게 말했다.“당신이 차설아야? 아직도 안 갔어? 도윤이가 가라고 하지 않았나? 여태껏 미적거리며 버티고 있었던 거야? 뻔뻔스럽기도 하네.”차설아는 그녀의 도발 따위 가뿐히 무시하고 계속해서 땅바닥에 널브러진 짐을 챙겼다.“이봐, 당신 귀먹었어? 내 말 안 들려?”“미안, 못 들었어.”차설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개가 멍멍 짖는 소리만 들렸거든.”“감히 나한테 욕한 거야?!”“내가 언제 욕했어? 본인이 직접 인정하는데 나라고 별수 있나?”말을 마친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길을 막는 임채원을 향해 고개를 까닥했다.“비켜줄래? 사람이 지나가면 개도 눈치껏 피해준다고.”“이...!”임채원은 화가 나서 발발 동동 굴렀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전설 속 성씨 집안 둘째 며느리는 동네북으로 소문났을 텐데, 입이 이토록 거침없을 줄이야!이를 본 도우미가 쪼르르 달려가 아첨하기 급급했다.“채원 양, 화 푸세요. 집에서 쫓겨난 여자 때문에 몸이라도 상하면 본인만 손해잖아요. 앞으로 이 별장의 안주인은 채원 양이라고요, 저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죠. 둘째 도련님의 부탁대로 채원 양이 지낼 방을 마련했으니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도우미의 말이 기분이 풀어진 임채원은 차설아를 공기 취급한 채 도우미를 따라 별장으로 들어갔다.매서운 찬바람이 불어닥치는 밖에 또다시 차설아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눈앞의 웅장한 저택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이곳에서 4년이란 시간을 보냈는데 결국엔 이처럼 초라한 결말을 마주하니, 정말 아이러니했다!“안녕!”차설아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그날 밤 도심으로 올라온 그녀는 원룸을 계약했다.비록 방이 크지는
다음날.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차설아는 8시 30분부터 구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일찍 도착한 건 물론 화장까지 정성껏 했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빨간색 롱드레스를 입고 그동안 풀어헤쳤던 머리카락마저 높게 묶어 백조처럼 길고 하얀 목덜미를 훤히 드러냈다.멀리서 보면 여신이 따로 없었고, 우아하면서도 시크하고 기품이 흘러넘쳤다.하지만 그날 밤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열이 살짝 난 탓에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9시 정각이 되자, 은색 부가티 베이런이 지상 주차장으로 천천히 들어섰다.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설아를 발견하자 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몰려왔다.“꽤 적극적이네?”성도윤은 무심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스쳐 지나가 기다란 다리로 접수창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별난 놈이야.’차설아는 듬직하면서도 어딘가 쌀쌀맞아 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몰래 생각했다.‘뒤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줄 알았네! 자기도 급하게 가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이혼 신고는 생각보다 빨리 처리되었다. 사인하고 날인하는 데 10분도 안 걸렸다.“새로 도입된 법에 따르면 이혼하고 나서 한 달 동안 숙려기간이 있는데, 등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혼을 원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둘 중에서 아무나 접수증을 들고 와서 취소해도 돼요.”구청 직원은 말을 마치고 이혼 접수증 2부를 각각 나눠줬다.매일 매일 이혼을 접수하면서 울고불고 심지어 현장에서 싸우기는 별의별 상황을 다 접했지만, 이렇게 무덤덤하게 처리하는 부부는 처음 본다.게다가 남자는 키도 크고 잘생기고, 여자는 날씬하고 예쁘기만 한데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어쩌다 이혼까지 하게 되었단 말인가?차설아는 접수증을 건네받아 빼곡히 적힌 내용을 들여다보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이혼할 때 숙려기간이 있으면서 결혼하기 전에는 왜 없대? 만약 혼인 신고할 때 숙려기간이 있다면...”성도윤의 얼굴이 어두워지더
대체 무슨 낯짝으로 이리 당당하단 말이지?차설아는 모든 게 어이가 없었다.그동안 성도윤은 속세를 벗어난 선비처럼 남녀관계에 관심이 없고, 여자를 돌같이 볼 줄 알았는데 결국 소리소문없이 시한폭탄을 터뜨렸다.애인을 집에 들이는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가지다니?순간 정신이 번쩍 든 차설아는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슬픔마저 말끔히 사라졌다.“그러니까 지금 불륜이란 말이지?”성도윤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임채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차설아 씨, 이게 다 제 탓이에요. 화풀이하고 싶으면 저한테 해요!”이 여자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피해자 코스프레를 제대로 보여주네?“그래?”차설아는 당장이라도 뺨을 때릴 기세로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임채원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깜짝 놀라 성도윤의 등 뒤로 쏙 숨었다.“자기한테 화풀이하라더니 왜 숨는데?”차설아는 그대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작작 좀 해, 난 나름 소양 있는 사람이라 내연녀와 개싸움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둘이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데 방해하기는커녕 그 소원을 이뤄줘야 하지 않겠어?”“뭐... 뭐라고?”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임채원은 어리둥절했다. 몰래 준비한 ‘감성팔이’ 작전도 무용지물이 된 듯싶었다.보아하니 성도윤과 차설아가 아무런 감정이 없는 계약 부부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아니면 내연녀를 마주친 상황에서 대체 어떤 와이프가 이처럼 무심하고 관대할 수 있겠는가?이내 차설아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다만 불륜인 만큼 이혼 합의서에 적힌 재산분할에 관한 내용을 다시 협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임채원은 차설아가 재산을 언급하자 조급한 나머지 가식을 떨기는커녕 한층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도윤이가 당신한테 800억에 동탄구 아파트 펜트하우스까지 넘겨주지 않았어?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해줬다고 보는데? 게다가 그동안 도윤네 집에서 그쪽 집안 뒤처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다고! 사람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못 써.”차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