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연락을 받은 최연서는 바로 다시 유상수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신이 넘어져 그만 피가 흘러나왔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유산의 징조임을 알게 된 유상수는 아들 학교도 뒤로하고 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유상수는 그녀를 데리고 제일 좋은 병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최연서는 한주병원으로 가자며 한주병원의 산부인과가 한주시 제일 좋은 산부인과라고 말했다.유상수는 초조해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녀가 말하는 대로 따랐다.그렇게 20분 정도가 지나고 유상수는 최연서를 부축한 채 한주병원으로 오게 되었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유현진과 강한서는 바로 반대편에 있던 엘리베이터를 탔다.이때의 백혜주는 이미 수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수술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젊은 여자를 부축하고 허둥지둥 달려오는 유상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유상수는 급하게 걸으면서 나직하게 젊은 여자를 달래고 있었다.“괜찮아, 괜찮아. 분명 괜찮을 거야...”백혜주는 멍한 얼굴로 쳐다보았고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왔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까맣게 잊은 채 소리를 질렀다.“유상수 씨,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유상수는 깜짝 놀란 얼굴로 백혜주를 보더니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엄청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혜주야, 네가 여긴 왜 온 거냐?”유상수의 품에 있던 여자는 백혜주가 유상수의 이름을 부르자 바로 몸을 움찔 떨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백혜주는 차가워진 얼굴로 이를 갈면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오빠가 여긴 왜 온 거예요? 이 여자는 또 누구고요?”유상수가 우물쭈물하다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회사 직원이야. 몸이 안 좋다길래 데리고 와 본 거야.”“어디가 안 좋길래 산부인과를 다 찾아와요? 게다가 오빠가 왜 데리고 오는데요?”백혜주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힘들게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만큼 다른 사람이 그녀의 자리를 그녀와 같은 방식으로 탐내는 걸 절대 보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유상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런 이런 곳에서 백
백혜주는 치밀어오르는 화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배가 서서히 아파져 오기 시작했고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더니 마침 진단서를 들고 오던 백현석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곤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누나, 왜 그래요?”백혜주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지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유상수는 백현석의 목소리를 듣곤 바로 고개를 들었다. 백혜주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치맛자락이 서서히 붉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유상수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두 명의 임산부는 곧바로 응급실로 들어가게 되었다.강한서는 한주병원에 아는 지인이 있었기에 미리 지인에게 얘기해 둔 상태였다. 그랬기에 최연서가 가짜 임신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게 된 것이었다. 의사는 그저 최연서의 태아가 불안정하다며 약을 처방해주곤 집에 돌아가 푹 쉬라고 했다.그 말을 들은 유상수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한편 백혜주 쪽은 다행히 유산이 되지 않았고 의사는 그저 나이도 많은 데다가 갑작스럽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출혈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게다가 아이는 무척 건강한 상태라고 했고 태아의 심박수 등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고 했다.유상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간호사가 진단서를 들고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하다며 들어왔다.백현석이 받으려는 순간 유상수가 먼저 가로챘다. 그것이 임신중절수술 확인서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지금 이게 뭐죠? 임신중절수술 확인서라니요? 누가 수술을 한다는 거죠? 잘못 가져오신 게 아니에요?”간호사도 행여나 잘못 가지고 왔을까 봐 얼른 확인해 보았다.“백혜주 님이 아니신가요? 주민등록증 확인해 보니 백혜주 님이 맞는데요?”유상수는 미간을 확 구겼다.“저희는 임신중절수술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간호사가 말했다.“하지만 본인께서 이미 임신중절수술을 하겠다고 이곳에 직접 사인하셨습니다.”간호사가 낮은 소리로 이어서 물었다.“혹시 보호자와 상의가 되지 않은 건가요?”유상수는 백혜주의 사인을 발견하곤 안색이 더욱 안 좋아지게
“나한텐 사찰로 간다고 해놓고 지금 여기 와서 수술받으려고 했던 거냐? 이렇게 큰일을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결정해? 넌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한 거냐?!”백혜주의 머릿속엔 온통 최연서의 얼굴이 떠올랐고 유상수를 보자마자 그녀는 속이 메슥거려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백현석은 얼른 쓰레기통을 들고 와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 백혜주는 한참이나 구역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게워 내지 못했고 그저 안색만 더욱 창백해져만 갔다.안쓰러운 백혜주의 모습에 유상수의 표정도 많이 누그러졌다.그는 침대 끝에 앉아 백혜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우리 낳기로 약속했잖아. 대체 왜 지우려고 하는 거야?”백혜주가 싸늘해진 얼굴로 손을 빼내면서 따져 들었다.“그 여자랑 언제부터 붙어먹은 거예요? 그 여자 배 속에 있는 그 잡종, 몇 개월이나 된 거죠?”자신의 아이를 잡종 취급하는 백혜주에 유상수는 바로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러나 백혜주도 임산부였고 게다가 피까지 흘린 적이 있었기에 그는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설명했다.“걔는 우리 회사 인턴이야. 전에 협력 업체랑 몇 번 미팅 간 적이 있었어. 그러다 우연히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고 다음 날 눈을 떠보니...”그는 뒷말을 삼켰다. 뒷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나도 그땐 죄책감이 들었어. 너한테 말하려고 몇 번이나 다짐했었는데, 도무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걔를 그냥 회사에서 자르려고 했는데 그날의 사고로 임신을 하게 되었대.”추악한 변명에 백혜주는 매 순간이 역겹게 느껴졌지만, 분노를 꾹 참으면서 계속 따져 물었다.“그래서, 그 여자가 아이를 낳게 내버려 두려고요? 그리고 하현주에게 했던 행동 그대로 저를 내쫓으려고요?”“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유상수는 기분이 언짢았다.“나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어. 난 걔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 나라고 뻔뻔하게 다니는 줄 알아? 그 어린애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한테 당황한
유현아를 예뻐하던 그가, 결국엔 한 푼의 유산도 그녀에게 주지 않으려는 모습에 유현진은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는 딸을 아끼면서도 재산을 나눠주기는 싫어했다. 그 말을 들은 유현아의 반응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물었다. “너도 재산은 아들한테만 물려주고 딸에게는 주지 않을 거야?”강한서가 말했다. “너한테 줄 거야. 네가 날 데리고 다니면서 즐겁게 살면 돼. 돈이 필요하면 자기들이 벌어야지.”유현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네 아버지한테서 유산 물려받은 거잖아. 왜 네 자식한테는 그렇게 엄격하게 굴어?”강한서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집안 덕분에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시작한 건 맞아. 하지만 그냥 내 능력으로도 충분히 지금과 같은 것들을 누릴 수 있었어. 다만 시간이 조금 더 걸렸겠지. 아버지 유산은 할머니가 계속 관리하고 계셨고, 난 그 유산을 건드린 적이 없어. 만약 내가 능력 없이 그 자리에 올랐다면, 한성을 나에게 물려줬어도 지켜내지는 못했을 거야.”그는 말이 잠시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은 맥락이야. 나한테서 뭔가를 가지려면, 나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를 먼저 보여줘야 해.”강한서의 이런 교육 이념은 아마 정인월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유현진은 생각했다. 왜냐면 정인월이 바로 이렇게 그를 교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민서는 반대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신미정의 얄팍한 사상과 좁은 시야의 영향을 받았다. 제대로 된 인간이 되지 못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현진 같은 얼빠가 한 눈에 강한서를 찜했으니, 꽤 안목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왜 웃어?”강한서가 그녀의 손을 주물렀다. 유현진이 고개를 들고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재산을 나한테 다 물려주면, 네가 늙고 쇠약해졌을 때, 내가 널 차버리고 네 돈으로 젊은 남자를 데리고 살까 봐 걱정은 안 돼?”강한서: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 여자
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사실, 후원 딱 한 번 했어. 라이브로 추첨하길래 10명, 일 인당 2000만 원, 그냥 한 번 해볼까 하고 몇만 원만 후원한 거야.”결과는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어떤 스트리머가 밑지는 장사를 하겠는가. 2억을 쓸 수 있다는 건, 20억, 심지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한 번 해볼까’하는 그 마음이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써서 만약 추첨에 걸린다면 그거야말로 자전거가 마세라티로 변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스트리머도 계속 참여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추첨이 될 확률이 높다고 부추겼다. 이슈가 되면 될수록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수십, 수백 명에 달하는 시청자가 참여했으니 추첨 될 확률은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뻔했다. 팬들은 돈을 퍼부으며 이슈도 만들어 준 셈이었다. 이런 데 속는 것은 한 번이면 족했다. 유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의 가방 하나도 2000만 원은 훨씬 넘는 가격이었다. 그는 유현진이 늘 공짜로 주어지는 일에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갑자기 알아차렸다. 전에도 매번 놀러 가서 돌아올 때면, 꼭 백화점 부근의 로또 가게에서 로또를 샀다. 도우미가 옷을 씻을 때면 늘 그녀의 주머니에서 로또를 몇 장 발견하곤 했다. 한 번은 6만 원이 당첨되었는데 그녀는 기뻐 춤이라도 출 지경이었고, 그를 끌고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갔다. 6만 원에 당첨이 되고 60만 원이 넘는 돈을 소비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녀는 얼마나 큰 돈이 당첨되는가 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공짜로 무언가를 얻었다는 즐거움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부잣집 딸 같은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쪼잔하고 세속적이었고, 말을 독하게 하면서 마음은 또 여렸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인간적인 모습에 그는 푹 빠져버렸다. 병실에서는 여전히 싸우는 중이었다. 백혜주는 유상수의 남녀 차별적인 발언에 분노를 터뜨렸다. “딸이 어때서요? 딸은 오빠 자식 아니
유상수가 그녀를 또 잡으려고 했지만 백현석이 그의 손을 막으며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매형, 누나가 이런 꼴을 당하고도 매형한테 심한 소리 한 번 한 적 없어요. 대체 누나를 어떤 지경까지 내몰려고 그러시는 거예요?”유상수는 입을 뻐금거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백현석이 덤덤하게 말했다. “제일 좋은 변호사를 모셔서 누나의 소송을 도울 거예요. 현아랑, 서훈이 우리가 꼭 데려갈 겁니다. 매형도 매형 변호사에게 준비하라고 하세요.”그에 유상수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백현석은 이미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주씨 가문의 일원이 되었으니, 어떻게 되든 그에겐 유리했다. 게다가 그와 백혜주의 결혼이 끝나기만 하면, 그때의 비밀을 지켜준다는 약속을 믿을 수 없어졌다. 그건 정말 큰 문제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유상수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백혜주를 막아섰다. 그는 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했어, 혜주야. 화내지 마. 내가 잠시 미쳐서, 정신이 나갔어.”“네가 17살 때부터 나를 만나서 오랜 세월을 명분도 없이 내 옆에 있었는데, 난 너한테 제대로 된 결혼식도 못 해주고, 이런 일까지 겪게 했어.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백혜주는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 “그런 말 하지 마요. 나도 내가 이젠 나이도 먹고 갓 스물이 된 여자애랑은 비교도 안 된다는 걸 알아요. 이게 아마 제가 남의 가정을 파탄 낸 벌이겠죠. 받아들일게요. 그래도 한때는 부부였는데, 좋게 끝내요.”유상수는 비통해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이혼 안 해. 현아, 서훈이랑 너, 그리고 배 속의 아이까지. 누구도 없어서는 안 돼. 넌 걱정하지 말고 태교에만 신경 써. 다시는 지우겠다느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이 애가 우리한테 온 이상, 모두 운명이라고 생각해. 아들이든 딸이든, 난 다 좋아. 그리고 연서는, 돈을 줘서 애를 지우라고 할게. 다신 걔를 만나는 일은 없을 거야.”백혜주가 쉰 소리로 말했다. “날 속이려
최연서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 아이로 대표님을 협박할 생각이 아니에요. 전 그저 이 아이와 제대로 된 인사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비록 처음 아기의 존재를 알았을 땐 많이 당황했지만, 요즘엔, 이 아이로 인해 욕심이 생겼어요. 제 것이 아닌 사람을 원하게 만들었어요…”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점점 울먹거림이 더해졌다. “대표님,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대표님 말씀대로 아이도 지울게요. 하지만, 오늘은 안 하면 안 돼요? 의사 선생님이 방금 저에게 아기 심장 소리를 들려주셨어요. 이미 아이가 듣고 있을지도 몰라요. 제대로 인사하고 싶어요. 아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최연서의 눈물이 유상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은 하현주와 너무 똑같았다. 게다가 그의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도 점점 더 하현주와 비슷해졌다. 그녀가 울면서 자신에게 말할 때면, 그는 마치 농구하다 다친 그가 마음이 아파서 눈시울을 붉히던 이십 대의 하현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유상수는 순간 넋을 잃었고 그의 마음도 약해져 버렸다. 그는 여전히 하현주의 배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늘 하현주와 지긋지긋한 사이가 된 이유가, 하현주가 너무 강압적으로 그를 억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속마음은 자신이 이런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예쁘고, 능력 있고, 게다가 당시 같은 반 남자들의 여신이었던 여자였으니까. 볼품없는 동창들이 가질 수 없는 여신이, 자신을 선택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의 비열한 허영심을 최대한으로 만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하현주는 언제나 강압적인 사람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고, 접대 자리가 아니면 술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제한하려고 했고 10시가 넘으면 계속 전화를 했다. 그랬기에 그는 가끔, 하현주가 자신을 선택한 것이 다루기 좋은 사람을 골라 그녀의 통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장면을 유현진에게 들킨 두 사람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진아, 네가 병원엔 어쩐 일이야?”그래도 유상수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현진에게 물었다. 그러더니 강한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 대표랑 같이 온 거야?”유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문안 온 건데, 아래에서 만나서 같이 올라왔어요.”그녀는 유상수와 백혜주를 번갈아 보더니 유상수가 품에 안아 보호하고 있는 여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분은?”“이 사람은—”유상수가 막 대답하려는데, 백혜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회사 비서.”그러자 유상수는 입을 다물었다. 불륜녀였던 백혜주가 하현주의 자리를 빼앗았다. 그땐 기세가 등등했지만, 혼인신고를 한 지 일년이 채 안 되는 사이, 유상수는 벌써 백혜주에게 질려 더 어린 여자를 찾았다. 그야말로 벌을 받은 셈이었다. 백혜주는 유상수가 밖에서 바람이 나는 것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현진에게 웃음거리가 되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제일 먼저 최연서의 신분을 감추었다. 유현진은 말없이 최연서를 훑어보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비서분, 낯이 익네요.”하현주에 대한 유현진의 마음이 얼마나 큰데, 버젓이 보이는 그 얼굴이 누구를 닮았는지 그녀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백혜주는 부아가 치밀었다. 유상수 이 개자식은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하필 하현주랑 비슷하게 생긴 걸 찾아서는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유현진이 바보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만났는데, 어떻게 그쪽으로 생각하지 않겠는가?“나도 처음 쟤를 봤을 때 낯이 익다고 생각했어요. 눈매 좀 봐요, 현주 언니랑 정말 비슷하죠.”백혜주는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게도 언니가 명이 짧아서 일찍 가버려서 그렇지, 만약 나란히 서 있었으면 모녀 같았을 거예요. 낯이 익지만 않았어도 고용하지 않았을 텐데. 애가 착하고 부지런해서, 평소 심부름하는 것도 사람들 눈치를 잘 살펴요.”낯짝도 두껍게 내뱉는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