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는 거야!”이사라는 상대를 주먹으로 콩콩 치면서 발버둥을 쳤다.“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진상현은 그녀를 침대 위로 내려놓고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그가 입을 맞추려고 하자 이사라는 그를 밀어내면서 머리핀에 관해 물었다.“너 이거 아직 나한테 대답 안 했어. 이거 뭐야? 이거 어디서 난 거야?”진상현은 나직하게 웃으면서 머리핀을 가져와 그녀의 머리에 꽂아주었다.“담배 사러 갔을 때 사장님이 잔돈이 없다고 하셔서 내가 대충 아무거나 집은 거야.”말을 마친 그는 이사라의 턱을 잡아 올리더니 그녀의 모습을 훑어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잘 어울리네.”이사라는 머리핀을 빼고 한참이나 보았다. 그녀는 이내 입술을 한자리에 모은 채로 삐죽거리며 옆으로 휙 던졌다.“촌스럽고 하나도 안 예뻐.”그녀는 이내 진상현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비자가 곧 발급될 거야. 너한테 가려면 아마 반년쯤 걸리게 될 거야. 반년만 지나면 내가 바로 비행기 타고 너한테 갈게.”“반년이라고...”진상현은 시선을 떨구고 그녀를 보았다.“너무 길지 않아?”“한 학기잖아. 금방 지나갈 거야.”이사라는 뜸을 들이며 느릿하게 말했다.“보니까 그 나라 여자애들은 예쁘고, 피부도 하얗고, 키도 크다던데.”“그래?”진상현은 그녀의 말투를 따라 하며 말했다.“그럼 그때 가서 자세히 구경해 봐야겠네.”이사라는 그의 어깨를 살짝 내리치면서 그를 째려보았다.“보기만 해봐!”진상현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안 그럴게.”그리고 그는 그녀의 턱을 잡더니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 했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반사판이 침대 위로 떨어졌고 하마터면 한열의 손을 다치게 할 뻔했다.순조롭게 촬영을 이어가던 도중에 갑자기 흐름이 끊기게 되었으니 안창수는 바로 화를 냈다.“어떻게 된 거야? 반사판 하나도 제대로 못 들어?”반사판을 들고 있던 스태프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의
한성우는 그럴듯한 말을 했지만, 안창수가 믿을지 아닐지는 몰랐다. 어차피 그는 안창수에게 묻지도 않았으니까.한열은 아직도 감정이 잡혀있던 상태였다. 그는 유현진만 보면 귀가 빨갛게 물들었고 이내 나직하게 말했다.“혹시 아까 제가 너무 세게 내려놓은 건 아니죠?”한열은 그녀를 침대 위로 휙 내려놓은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가 침대 위로 유현진을 내려놓을 때 그녀는 침대맡에 머리를 살짝 부딪친 것 같았고 그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한열은 부딪치는 소리를 얼핏 들었던 것 같았다. 다만 유현진은 아프다고 소리를 내지 않았기에 그는 계속 연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아, 괜찮아요. 별로 안 아파요.”유현진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정말로 아팠으면 아까 제가 소리를 냈을 거예요.”한열은 연극배우 출신이 아니었지만 마치 배우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그와 진상현이라는 캐릭터는 아주 찰떡이었고 방금 촬영에서도 그에게서 전혀 아이돌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머리를 내리고 뿔테안경을 쓴 그는 마치 지적인 대학생 같아 보였고 성격도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였다.그의 대사와 신경은 온통 진상현이라는 캐릭터에 몰두해 있었기에 그녀의 연기를 받아칠 수 있었다.유현진은 비록 천생 배우감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봐온 재능있는 배우들은 기본 연기에 대한 이론적인 수업을 받지 않고 감정 표현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아도 이내 빨리 극 중의 캐릭터의 특징을 캐치하고 바로 연기에 몰입하였다. 물론 살짝 어색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만약 정말로 좋은 연기 선생님과 감독님을 만나 지적과 배움을 얻게 된다면 아주 훌륭한 배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었다.유현진은 항상 스스로 노력을 95%까지 끌어올리는 사람이었고 부족한 나머지 5%는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타고난 재능이었다.그러나 한열은 바로 그녀의 95%의 노력을 5%의 타고난 재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솔직히 말해 아주 살짝 부러웠다.한열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손에든 키위주스를 유현진에게 건넸다.
유현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녀가 얼른 입을 열었다.“안 감독님, 그래도 전문적인 스태프가 들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안창수가 말을 하기도 전에 한성우가 끼어들었다.“반사판 하나 들고 있는데 어떤 전문적인 행동이 필요해요? 그냥 힘만 세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제 운전기사도 다른 재주는 없고 힘만 세거든요.”원래 반사판을 책임지던 스태프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자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안창수가 입을 열었다.“그럼 일단 그렇게 하세요. 이 작가, 얼른 저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단하게 알려주고 촬영 시작하지.”“...”유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들 각자가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유현진만은 표정이 굳어있었다.애매한 침대 위치 때문에 반사판은 무조건 사람이 들고 있어야 했고 마침 그녀가 침대에 누우면 바로 반사판을 들고 있는 강한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속으로 강한서를 벽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그리고 강한서를 무시한 채 한열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시 연기에 집중했다.“거기 여자들이 다들 예쁘고, 피부도 하얗고, 키도 크다던데.”한열은 유현진을 내려다보면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그래? 그럼 이제 잘 관찰해야겠네.”유현진은 그를 째려보았다.“하기만 해봐!”한열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안 해.”대사를 마친 유현진은 원래 연기에 몰입한 상태였지만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의 시야에 강한서가 들어왔다.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어 그의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상처 입은 눈빛만 봐도 유현진은 순간 무언가가 켕기는 것 같았다.그래서 한열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고 하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런 그녀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한열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유현진은 황급히 사과를 했다.“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감독님, 한 번만 다시 찍어도 될까요? 제가 방금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제대로 못 했네요.”안창수는 아주 의외라는
이사라는 기독교를 믿지 않았지만, 그녀의 집안이 대대로 기독교를 믿고 있었다. 그녀가 집안에서의 이미지는 착하고, 공부 잘하고, 어른들의 말씀도 잘 듣는 이미지였다.그러나 이사라의 실제 성격은 반항적인 사람이었다. 그녀가 로사리오를 벗어 던지고 진상현과 뜨거운 키스를 나눈 것은 이미 기독교의 혼전순결 사항을 어긴 셈이었고 마침 이사라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맞물렸다.그랬기에 안창수는 이런 디테일한 애드리브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고 심지어 그녀를 칭찬했다.“애드리브가 좋네요. 아주 좋았어요. 전에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게 로사리오일 줄은 몰랐네요. 현진 씨, 정말 너무 디테일까지 완벽했어요.”“...”유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전남편이 보고 있는 앞에서 절대 키스를 할 수가 없어 이런 애드리브를 생각해 냈다고는 절대 말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하하, 저도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옆에 앉아 있던 한열은 다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사실 촬영 시작할 때부터 그의 머릿속엔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유현진의 완벽한 연기와 완벽한 대사에 그는 바로 진상현에 몰입할 수 있었고 연기를 하면 할수록 그는 유현진이 바로 진상현의 죽마고우이자 연인인 이사라로 느껴졌다.그러나 연기가 끝나면 바로 그가 2, 3년 동안이나 덕질한 여신 선셋 스타로 보였고 그녀의 배우 생활 첫 키스 상대 또한 그였기에 팬으로서 기대 안 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키스신은 결국 찍지 못했고 그는 팬으로서 당연히 다소 실망감이 느껴졌다.한성우는 “쯧” 소리를 냈다. 한열과 유현진이 키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강한서를 촬영장으로 부른 것도 사실 두 사람의 키스신을 보며 질투에 휩싸여 화를 내는 강한서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그는 유현진이 강한서의 눈빛에 쫄아 키스를 못 하게 될 줄은 몰랐다.그 후로 촬영이 계속 이어지고 강한서도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키스신이 없었기에
“...”유현진은 비록 그의 말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너 입에 발린 소리 그만해. 네가 일부러 방해하고 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강한서가 되물었다.“만약 내가 다른 여자한테 키스했으면, 넌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거야?”유현진의 미간이 저절로 구겨 들어갔다. 상상만 해도 그녀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고 여전히 강한서를 설득하려고 했다.“그거랑 이건 다르잖아! 난 직업상 어쩔 수 없는 거고 모두 다 연기잖아.”“나도 알아.”강한서는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를 지그시 보았다.“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건 사실이야.”유현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강한서는 그녀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촬영하는데 무조건 키스신 찍어야 해? 안 찍으면 안 돼?”유현진은 쉽게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이었고 잔뜩 풀이 죽은 강한서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누그러졌다.“그건... 아마 대본에 따라 다를 거야. 하지만 감독님들은 이것저것 안 된다고 하는 배우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을 거야.”“그건 그 감독이 실력이 안 되는 거야. 실력이 안 되니까 괜히 선정적인 장면을 넣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는 거잖아.”“...”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허, 바로 감독님을 실력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네.'“모든 감독님이 다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장르가 로맨스인데 어떻게 그런 신이 없겠어?”“로맨스라고 해서 무조건 그런 신을 찍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전에 유하나라는 작가가 쓴 로맨스 소설에도 그런 선정적인 내용은 없다고 했잖아. 그것처럼 네가 찍는 드라마에도 똑같이 없애면 안 돼?”유현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그거랑 같아? 게다가 그 작가가 안 쓰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그런 내용을 쓰면 바로 윗분들에게 불려 가니까 그런 거 아니야.”강한서가 나직하게 말했다.“이치가 같아. 솔직히 내가 이기적인 건 인정해. 하지만 그래도 사회에서는 여성 직장인에 대한 엄격
그녀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에 휴대폰 알림이 떴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유상수가 그녀에게 1000만 원을 입금한 것이었다. 그리고 문자도 함께 보내왔다.「좋은 거 먹고 다녀, 필요한 거 있으면 아빠한테 말하고.」‘??? 유상수가 뭘 잘못 먹었나?'그녀가 결혼한 후에 유상수는 더는 그녀에게 용돈을 준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돈을 썼던 기억은 주얼리 전시회에서 사람들의 분위기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가치가 2억이나 하는 팔찌를 사주게 된 것이었다.“왜 그래?”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에 강한서가 물었다.정신을 차린 유현진이 말했다.“유상수가 나한테 1000만 원을 입금했어.”강한서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그 사람이 너한테 돈을 줬다고?”“응, 전에도 나한테 전화 온 적이 있었거든. 날 수양딸로 받아들이고 싶다고.”유상수의 위선적인 말에 유현진은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돈으로 지금 끊어졌던 연줄을 이으려고 하네. 정말 ‘통도 크셔라'.”강한서는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그래서 넌 하겠다고 했어?”“그럴 리가 있겠어?”유현진은 바로 눈을 번뜩이었다.“난 바보가 아니야. 그 사람이 나한테 돈을 쓴다는 건 우리 둘이 다시 재혼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리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계속 한성 그룹의 이득을 보려는 속셈이고. 그 사람은 내가 지금 사생아 신분이니까 다시 너랑 결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그럴싸한 신분을 나한테 만들어 주려고 나보고 수양딸 하라는 거고. 나에게 유씨 가문의 아가씨 신분을 주면 내가 분명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웃기지 않아? 지금도 내가 얼른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고 있을걸. 그런 엿 같은 신분 그냥 줘도 안 가져. 결혼 못 하면 안 하면 되잖아. 누가 그런 신분이 필요하대?!”강한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입술을 말아 물고 말했다.“그래도 결혼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법적으로 보장도 받을 수 있잖아.”“... 난 지금 진지해
도석문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자신의 스폰서를 발견한 방이진은 바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이 사람이 멍청하게 뜨거운 물을 가져다주잖아요.”“넌 왜 이 더운 여름날에 얘한테 뜨거운 물을 가져다줘?”방이진은 당연히 자신이 일부러 매니저에게 뜨거운 물을 가져다 달라고 시켰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제가 생리 왔거든요. 그래서 차가운 거 먹으면 이상하게 생리통이 느껴지거든요.”도석문이 그녀를 찾아온 이유는 당연히 그런 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생리한다는 말에 순간 흥미가 싹 사라지고 말았다.“그럼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까 푹 쉬어. 내가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올게.”방이진은 당연히 그를 못 가게 막았다. 그가 그녀에게서 떠나자마자 바로 다른 여자를 찾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금 먹고 있는 것, 입고 있는 것, 쓰고 있는 것은 모두 눈앞에 있는 뚱뚱한 남자가 준 것이었기에 그녀는 당연히 그를 잘 대접해 줘야 했고 다른 여자에게 넘겨줄 생각도 없었다.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스르륵 안겼다. 손으로 그의 허리를 쓸면서 야릇하게 말했다.“비록 제가 지금 몸이 안 좋은 상태지만 오빠까지 몸이 안 좋으면 안 되잖아요.”도석문의 호흡이 살짝 거칠어지고 눈빛도 야릇해졌다.매니저는 바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방에서 나가 문까지 꼭 닫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는 낯 뜨거운 소리가 들려왔다.드디어 소리가 멈추고 남자는 잔뜩 기분 좋은 얼굴로 손가락으로 그녀의 어깨를 쓸면서 물었다.“누가 또 널 화나게 했어? 누구 때문에 매니저한테 화풀이하고 있었던 거야?”“이건 다 유현진 그년 때문이에요!”유현진을 떠올린 방이진은 순간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과장하여 그에게 들려주었다.“걔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피를 토하는 데 내가 때려서 그런 거라고 말하잖아요. 만약 정말 제가 때려서 피가 난 거라면 저도 인정했을 거예요. 하
여자는 어안이 벙벙하였다.“네, 맞는데요. 누구시죠?”민경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희 대표님께서 최연서 씨를 찾으십니다. 혹시 시간 됩니까?”최연서는 다소 경계하는 듯했다.“그쪽 대표님이 누군데요?”민경하가 답했다.“오늘 점심, 유 대표님이 메일을 보낸 상대가 바로 우리 회사 대표님이십니다. 들어는 보셨겠죠?”최연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전 그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말을 마친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민경하는 운전을 천천히 하며 그녀를 따라잡았다.“최연서 씨, 23세 맞으시죠? 인하공업대학교 나오셨고 지난해에 명성대 대학원에 합격하셨네요. 하지만 입학 신청을 하지 않고 바로 취업을 선택하셨죠. 최연서 씨 동생 최연지 씨가 여름 방학에 누군가에게 성추행을 당하던 도중에 실수로 상대를 찔러서 다치게 했다면서요? 듣자 하니 상대가 합의금 6억을 내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하던데, 당신은 동생을 감방에 보내지 않기 위해 유상수에게 본인을 파셨죠. 그래서 대학원 가는 것도 포기한 거 아닌가요?”최연서는 걸음을 멈추고 창백해진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민경하를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도대체 뭘 원하시는 거죠?”민경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타세요. 최연서 씨. 어쩌면 우리 회사 대표님께서 최연서 씨의 상황을 해결해 주고 다시 학교로 갈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이미 상대에게 모든 걸 들킨 최연서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는 듬직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얼굴도 아주 잘생겼다. 그러나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보니 다소 차가운 오로라가 느껴졌다.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타세요.”얼른 차에 탄 최연서는 문 쪽으로 바짝 기대어 앉았다.민경하는 차를 돌려 다시 출발하였다. 강한서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훑어보았다. 그는 그녀의 얼굴이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녀는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해 황급히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