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진이 조향에 대해 아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부분을 채워가고 있었다. 책을 몇 페이지 뒤적이던 강한서는 안에 적힌 이름을 보고는 멈칫했다. 그는 책을 다시 덮어 협탁에 올려두고는 휴대폰을 꺼내 민경하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쪽으로 연락 좀 넣어줘요...]강한서가 민경하에게 일을 지시하고 톡을 마무리하자 한현진의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화면은 여전히 게임에 접속 중인 채로 켜져 있었고 누군가 한현진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강한서는 그녀의 휴대폰을 훔쳐볼 생각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힐끔 시선을 돌렸을 때, 화면에 문자 알람이 떴다. [누나, 카톡 친추해요.]멈칫, 행동을 멈춘 강한서가 대화창을 클릭했다. 문자를 보낸 건 “한현진 일반인 남친”이라는 아이디의 사람이었다. 아이디를 확인한 강한서는 곧 방금 한현진과 게임을 하던 소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강한서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문자를 보낸 상대방은 한현진이 답장이 없자 또 곧 자기 연락처를 보내왔다. [누나, 연락처 저장해요. 나중에 또 같이 게임해요. 제가 랭크 티어 올려드릴게요.]강한서는 어쩐지 조금 화가 치밀었다. 그는 자기 휴대폰을 가져와 연락처를 저장했다. 그리고 곧 상대방이 강한서의 친구 추가를 수락하고는 문자를 보냈다. [누나예요?]강한서가 도도한 태도로 답장을 보냈다. [응.]상대방은 부끄러움을 표현한 이모티콘을 보내더니 그에게 물었다. [누나도 현진 누나 팬이에요?]그와 차미주는 한현진의 팬클럽 채팅방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차미주가 한현진의 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차미주가 소개한 사람 역시 한현진의 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뭇거리던 강한서가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응.]소년은 또 강한서 같은 꼰대는 알아보지 못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왔고 강한서는 미소 짓는 이모티콘으로 답장했다. 소년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살의가 곧 상영하잖아요. 요즘 제작사에서는 여
휴대폰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강한서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화면에는 탈색한 머리가 보였다. 상대방은 멋있어 보이려고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든 소년은 눈앞에 나타난 잘생긴 성숙한 남자의 얼굴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입은 연 그는 목소리마저 삑사리가 났다. “누나?”강한서가 차가운 눈빛을 한 채 소년을 빤히 쳐다보았다. “시력이 안 좋은 건가? 남녀 구분도 안 되나 봐?”그의 말에 소년은 말이 없었다. “아니, 아저씨. 방금 게임에서는 음성변조로 저랑 대화한 거예요?”소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연기를 너무 잘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마터면 순수한 제 마음을 뺏길 뻔했다고요.”강한서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저씨?”소년이 멈칫하더니 얼른 말을 바꿨다. “형, 형님.”강한서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소년은 자기가 속았다는 사실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워낙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소년은 누구와도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다. “형님도 현진 누나 팬이에요?”강한서가 말했다. “난 한현진 씨 전남편이야.”예상치 못한 대답에 소년은 당황했다. “형님이 전남편이면 그럼 전 전남친이에요. 전남편 형, 처음 뵙겠습니다.”“...”강한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 자식, 어디 모자란 거 아냐?’소년도 생각했다. ‘나보다 더 한 놈이 있네. 전남편? 꿈도 야무지지. 난 기껏해야 남동생이나 되고 싶은 것뿐인데.’“형, 외모랑 게임 스킬이 너무 안 어울리시는데요. 외모만 봐선 최소한 마스터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실제론 고작 다이아몬드이시잖아요. 혹시 연세가 있으셔서 반응속도가 느리신 거예요?”멈칫한 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너 재밌으라고 놀아준 거야.”그 말에 소년이 순간 흥분하며 말했다. “말싸움엔 지지 않으시네요. 빨리 한 번 붙어봐요. 전남편이 나은지 현남친이 나은지 겨뤄보자고요.”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 “게임 접속이나 해.”강한서가 카톡으
[그러면 바꿔.]소년은 억울함에 입을 삐죽였지만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오늘은 형이 이겼어요. 내일도 해요. 내일은 제가 꼭 이길 거예요.][얼른 바꾸기나 해.]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 강한서의 “한현진 일반인 남편”이던 아이디가 한현진 현남친”으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그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왜 이따위로 바꾼 거야?]소년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형님이 바꾸라고만 하셨지 뭐로 바꾸라는 말씀은 안 하셨잖아요.]강한서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말이 없었다.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까지 덕질을 하세요. 그냥 아무렇게나 닉네임 지은 것도 질투하시는 거예요?]질투라는 두 글자가 강한서의 귀에 꽂혔다. 그리고 그는 순간 오늘 밤 자기가 했던 이상한 짓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소년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바꿀래?]소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한 판만 더 해요. 형님이 이기시면 바꾸라는 대로 바꿀게요.]그리고 때마침 한현진이 욕실에서 나왔다. 강한서는 다급하게 [내일]이라고 답장하고는 휴대폰 화면을 잠갔다. 드라이까지 마친 한현진은 침대 끝에 앉아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 휴대폰 화면이 여전히 켜져 있는 것을 본 한현진은 게임을 끄려고 휴대폰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녀는 “한현진 일반인 남편”이라는 아이디가 자기를 삭제한 것을 발견했다. “...”‘랭크 티어 올려준다며?’‘역시, 남자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나이 많은 놈이고 어린놈이고 똑같아.’게임을 끈 한현진은 휴대폰를 충전해 놓고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몸에선 갓 샤워를 마친 싱그러운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옆에 기대어 앉아 있던 강한서는 조금 긴장되는 것 같았다. 그는 시선을 돌리며 책을 넘기는 척했다. 침대에 몸을 뉜 한현진이 몸을 돌려 강한서를 마주했다. “아직도 안 자요?”피곤한 듯 나른한 목소리였다. 강한서는 도무지
종업원은 예의가 없이 말을 내뱉었고 말투를 들어보니 그 여자와 아는 사이인 듯했다. 송민준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모욕적인인 발언이 담긴 단어 몇 개는 들을 수 있었다. 뻘쭘한 표정을 짓는 여자를 보니 아마도 그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송민준은 몸을 일으켜 앞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손은혜 씨 되시나요?”고개를 돌려 송민준을 쳐다본 여자의 얼굴에 놀라움과 경계가 가득했다. “누구시죠?”송민준인 덤덤한 태도로 말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입니다.”멈칫하던 여자는 그제야 송민준을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했다. “네가 그때 그 남자아이니?”송민준은 그녀의 말에 대답 대신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앉아서 얘기하시죠.”손은혜는 불편한 듯 쭈뼛거리며 송민준을 따라 룸으로 들어갔다. 룸에는 송민준 외에도 백인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건장을 체격에 무표정한 얼굴을 한 남자는 겉보기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다. 손은혜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졌다. “손은혜 씨, 앉으시죠.”송민준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손은혜는 품에 안은 가방을 꼭 끌어안으며 잔뜩 겁먹은 채 송민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송민준이 손은혜에게 뭘 마시겠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난 마실 건 필요 없어. 나에게 약속한 돈, 정말 줄 수 있어?”송민준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손은혜 씨께서 저에게 주실 정보가 그만한 가치가 있냐에 달렸겠죠.”그러나 손은혜는 송민준을 믿지 않았다. 그의 뒤에 서 있는 경호원이 너무 무서웠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용기 내 말했다. “먼저 돈부터 줘. 안 그러면 한마디도 하지 않을 거야.”송민준은 손은혜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리더니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달러가 가득 들어있었다. 송민준은 손을 들어 그중의 절반을 꺼내 손은혜 앞으로 밀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를 내뿜는 송민준의 눈빛에 손은혜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왔다. 주먹을 꽉 움켜쥔 송민준의 손등엔 핏줄이 울끈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지 않았고 손을 들어 돈 한 뭉치를 손은혜 앞으로 밀었다. “그래서 아기는 누구에게 줬나요?”“우리가 사망한 아기를 산모 보호자에게 맡긴 후 조예단은 바로 나왔어. 당시의 난 혹여 보호자에게 그 사실을 들킬까 너무 무서웠던 터라 조예단을 따라가 언제면 돈을 줄 수 있냐고 물으려고 했지. 만약 들켰을 때를 대비해 대책을 세워야 했거든.”“조예단은 혼자 옥상으로 올라갔어. 난 그곳에서 한 남자와 대화를 주고받는 걸 봤지. 내가 조예단을 부르려는 데 그 남자가 조예단에게 묻더라고. 아이가 죽었냐고 말이야. 난 그 말에 깜짝 놀라 몸을 숨겼어.”“그리고 조예단은 아기는 낳았을 때부터 이미 사망했다고 말했어. 그러더니 언제면 돈을 줄 수 있냐고 물었지. 난 그제야 알게 된 거야. 누군가 아기를 산 것이 아니라, 아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걸 말이야.”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불안한 듯 손은혜는 부들부들 손을 떨었다. 그녀는 테이블에 놓인 물을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나에게 돈을 건넨 조예단은 바로 그 여자 아기를 안고 가버렸어. 그 아기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난 몰라. 난 그 돈을 함부로 쓸 수도 없었어. 그래서 매일 마음 졸이며 출근해야 했지. 그리고 어느 날 조예단은 갑자기 나와 그때 같이 분만실에 있었던 다른 간호사 두 명을 찾아와 우리더러 한주를 떠나라고 했어. 최대한 멀리. 누군가 그때의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말이야.”“우리는 겁이 나서 한 명씩 병원을 그만뒀어. 나와 조예단은 한주가 고향이라 혹시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집으로 도망갈 수도 없었어. 조예단은 나에게 해외로 가 있으라고 했고 난 당시 조예단에게 받은 2억을 들고 M 국으로 왔지.”해외에서의 생활은 그다 좋지 못했다. 손은혜는 여행 비자였던 탓에 해외에 오랫동안 머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옥에
손은혜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너... 너 그게 무슨 말이야?”송민준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질문은 내가 해요.”손은혜는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모르는 일이야. 그런 건 조예단을 찾아가는 게 좋을 거야. 그날 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난 아이가 바뀐 사실 밖에 몰라. 난산은, 내가 그런 게 아냐. 난 정말 아무것도 몰라.”“난 그저 돈이 욕심났을 뿐이야. 한 번도 사람 생명을 해치려고 한 적 없어. 당시 분만실에 있던 사람은 모두 4명이야. 다른 두 사람에게 물어봐. 그 사람들이 아기를 받았으니 아마 나보다 더 잘 알—”“죽었어요.”송민준이 손은혜의 말을 자르며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모른다고요?”손은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죽었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송민준은 손은혜의 표정을 살폈다. 공포와 충격은 연기는 아닌 듯싶었다. “그 남자 얼굴 잘 떠올려봐요. 만약 저와 함께 돌아가 증인이 되어주시겠다고 하면, 오늘 준 두 배의 돈을 드리죠.”정신을 차린 손은혜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난 돌아가지 않을 거야.”이미 해외에서 20년이 넘도록 생활했다. 부모님도 진작 돌아가셨고 이미 50이 되어가고 있었다. 몇 년만 더 버티면 사회 보조금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의 생활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귀국한다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감옥과 형제들의 원망일 것이다. 그러니 타국에서의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귀국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형제들은 그녀가 해외에서 출세해 가족마저도 전부 잊어버려 연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녀는 그들 앞에서 머리조차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송민준도 전혀 다그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시간 되실 때, 제 제안 한번 잘 고민해 보시죠.”말하며 그는 명함 하나를 손은혜 앞으로 밀었다. “혹시 생각 바뀌
‘그리고 그 약...’강한서는 매번 자신이 정신이 흐릿할 때마다 들었던, 풍령이 울리는 듯한 소리를 떠올렸다. 시선을 내린 강한서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불규칙하게 두드렸다. 강한서의 생각이 궁금했던 민경하가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제가—”강한서가 머뭇거리더니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어봤었어요.”‘물어봤었다고?’‘대표님은 아무런 심리 질환도 없으신데. 누구 대신 여쭤보신 거지?’강한서는 몸을 일으켜 서류를 파쇄기에 넣었다. 그러자 서류는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리곤 강한서는 또 종이 쪼가리들을 재떨에 넣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펄럭이며 흔들리는 화염을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요.”민경하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사모님께도요?”강한서가 대답했다.“네.”막 알겠다고 대답하려던 민경하가 순간 멈칫했다. ‘내가 방금 사모님이라고 했는데 반박하지 않으셨어.’민경하가 떠보듯 입을 열었다. “대표님, 혹시 기억이 돌아오신 거예요?”강한서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수정하라고 했던 제안서는 다 됐어요?”“...”민경하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사가 먼저라고 제안서는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강한서가 고개를 들어 민경하를 쳐다보았다. “네?”그 눈빛에 민경하가 곧 입을 굳게 닫았다. “지금 수정할게요.”말을 마친 민경하가 막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강한서의 휴대폰이 울렸다. 민경하가 슬쩍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니 송가람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우물쭈물하며 테이블 위의 물건을 정리했다. 강한서는 민경하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전화를 받았다. “한서 오빠, 저예요.”강한서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가람 씨, 어쩐 일이에요?”그의 목소리를 무척이나 다정했다. 하지만 민경하가 본 강한서의 얼굴엔 그 어떤 표정도 걸려있지 않았다. “한서 오빠, 저 친구가 약혼을 하는데 약혼식에 꼭 와달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같이 가주실 수 있어요?”강한서가 피식 웃더니 말
말이 없던 강한서가 어두워진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요?”민경하가 말했다. “무서운 게 아니라 존중하는 거죠.”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그저 약 가지러 가는 것뿐이에요.”민경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께서도 이해하실 거라 기대하지 마세요. 대표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사모님은 누구보다 비논리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사모님과는 논리를 따지면 안 된다고요.”할 말을 잃었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민 실장이 얘기 안 하면 한현진 씨가 어떻게 알아요?”민경하가 실소를 터뜨렸다. “대표님께서는 저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으시네요. 대표님이 모기에게 물리셔도 그 모기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알아보는 사모님이신데, 제가 그런 분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아요?”강한서가 이를 악물었다. “그럼 민 실장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잖아요?”민경하가 똑바로 서서 입술 위로 지퍼를 닫는 액션을 취하더니 물건을 안아 들고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벗어났다. 민경하가 나간 후에야 강한서는 뒤늦게 깨달았다. ‘수컷 모기가 사람을 물어?’——아름드리.한현진은 거실에 앉아 딸기를 먹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강민서가 이곳에서 지낸 지 이젠 이틀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 자식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그럴수록 한현진은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든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강민서는 한현진의 방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다음날 사람을 시켜 많은 가구와 옷들을 가져왔다. 그녀는 나머지 방에도 자기 물건을 가득 채웠다. 강한서는 침대를 구매해 게스트룸에서 지내려고 했지만 나머지 방도 전부 강민서가 차지했다. 강한서가 나가라는 말을 꺼내기만 하면 강민서는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천정에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한현진은 비록 강민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일에서만큼은 강민서가 어쩌다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스트룸이 전부 강민서 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