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진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쓸모없는 것. 평균 가격이 1200원으로 올라버렸잖아. 이래서야 내가 어떻게 강한서 앞에서 살림을 잘한다는 이미지를 남길 수 있겠어?”“...”강한서가 가볍게 기침하자 한현진이 멈칫 행동을 멈추었다. 그녀는 얼른 찻잔을 등 뒤로 숨겼다. 강한서는 바닥에 떨어진 찻잔의 밑부분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차라리 바닥에 앉는ㅜ게 어때요? 숨기지 못한 것 같은데.”“...”한현진은 자포자기한 듯 뒤에 숨겼던 손을 다시 내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누굴 놀라게 하려려고 소리도 없이 나타나는 거예요?”강한서는 자기로 인해 아직까지도 흔들리는 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다음엔 문을 뜯어버린 뒤에 말할게요.”“...”‘개자식.’한현진은 강한서의 말을 무시한 채 또 새 찻잔을 꺼내 다시 구멍을 뚫으려 했다. 강한서가 다가가 그녀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뭐해요?”“보면 몰라요? 구멍 뚫고 있잖아요.”말하며 한현진은 연필로 찻잔 밑바닥에 표시를 하더니 다시 드릴을 켰다. 강한서가 말했다. “깨질 거예요.”한현진이 이를 악물었다.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말아 줄래요?”그녀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연필로 표시한 곳을 향해 드릴을 가져갔다. 그러나 강한서의 말처럼 찻잔은 또다시 깨지고 말았다. 강한서가 말했다. “거봐요. 깨진다고 했잖아요.”한현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게 다 강한서 씨가 재수 없는 소리를 해서 그런 거예요.”그녀의 말에 어쩐지 강한서가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하지만 빛이 어두워 한현진은 그의 표정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곧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릴 사용이 잘못됐어요. 드릴비트도 잘못 골랐고요. 게다가 날씨도 추워서 자기가 쉽게 깨질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하면 나머지 찻잔의 3분의 1만 살아남아도 다행인 거라고요.”성공 확룰이 30%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에 한현진은 더 이상 구멍을 뚫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분명 하라는 대로 했
강한서는 입술을 앙다물고 겨우 살아남은 잎사귀 3개를 바라보더니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다. “비대칭이네요.”말하며 그가 손가락으로 잎을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세 번째 잎이 떨어졌고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제 좀 낫네요.”‘칼이 어딨지?’한현진은 이를 악물고 자기에겐 보물과도 같은 화분을 빼앗았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방해만 하고 있잖아요.”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하지 마요. 내일 아주머니에게 맡겨요.”“아주머니도 화초 가꿀 줄은 잘 몰라요. 매번 통일적으로 물을 주신다고요. 하지만 어떤 애들은 그렇게 자주 물을 줄 필요가 없어요. 제가 얼마 동안 아름드리에 없었다고 귀한 애들이 많이 죽어버렸어요. 이제라도 제가 살려야 해요.”말하며 한현진은 다육을 손바닥으로 감싸들고 눈웃음 지으며 강한서에게 물었다. “예뻐요?”강한서가 고개를 들자 그녀의 맑은 두 눈과 눈이 마주쳤다. 화장을 하지 않아 생얼인 한현진은 깨끗한 얼굴에 잔머리가 부드럽게 귀 옆으로 흘러내려와 있었다. 산들바람에 잔머리가 가볍게 흩날렸다. 가늘고 긴 속눈썹은 마치 강한서의 마음을 슥 쓸어내리는 듯 살며시 흔들렸다. 강한서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어댔다. 그는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눈을 피했고 한참 만에야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네.”“완전히 뿌리를 내리면 사무실 책상에 두고 화날 때마다 봐요. 그러면 화낼 때의 강한서 씨 모습이 보일 거예요.”“강한서 씨와 닮았잖아요.”강한서는 그제야 한현진이 심은 다육이 식물 대 좀비 게임에 나오는 호박과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강한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굳은 얼굴로 바로 베란다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자 한현진도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휘청였다. 깜짝 놀란 강한서가 얼른 한현진을 부축했다. “왜 그래요?”가만히 서 있던 한현진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괜찮아졌다. 그녀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너무 오래 웅크리고
강민서가 방으로 들어서자 목소리를 잔뜩 낮춘 신미정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신미정이 내뱉은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 늙은이도 알고 있다고?”신미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쩐지 그렇게 쉽게 한현진이 아름드리로 돌아가는 걸 허락한다 했더니.”“진정하라고? 내가 어떻게 진정해. 너야 당연히 급한 것 없겠지. 만약 한서가 기억을 찾으면 걘 제일 먼저 나부터 쫓아내려고 할 거야.”“그렇게 오랫동안 약을 마셨는데,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절대 안 돼!”“그 아이를 절대 살려둬선 안 돼. 아이가 없다면 한서가 왜 한현진은 아름드리에 계속 두겠어? 기억이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내가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강민서는 손에 들린 그릇을 꽉 움켜쥐고 나서야 겨우 떨리는 손을 진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미정은 문이 닫히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얼른 전화를 끊었다. 들어온 사람이 강민서라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신미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넌 애가 왜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거야?”강민서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지막이 말했다. “한참을 노크했는데도 소리가 없어서 들어왔어요. 엄마, 아주머니가 끓이신 연와 가져왔어요.”“왜 네가 가져와? 이런 시중을 드는 일은 아랫사람에게 시키면 돼. 내가 너 이런 일이나 하라고 기른 거 아냐.”신미정은 전에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강민서는 전혀 잘못된 점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말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물이나 나르며 다른 사람 시중을 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정인월이 강민서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저 직업일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자기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이다.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순조로울 수만은 없으니 어느 날엔가 입장이 뒤바뀐다면 상대방이 너를 어떻게 대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었다. 강민서가 시선을 내렸다. “엄마께 볼 일이 있어서 오던 길이라 그냥 제가 가져왔어요.”신미정은
강민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신미정이 손을 내저었다. “돌아가서 일찍 쉬렴.”그러나 강민서는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신미정에게 물었다. “엄마, 한현진 임신했어요?”그 말에 신미정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들었어?”“제대로 들은 건 아니에요. 엄마가 한현진이 임신했다고 하는 것만 들었어요.”강민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 엄마 말이 사실이에요?”강민서는 줄곧 신미정 곁에서 자랐을 뿐만 아니라 전엔 한현진 때문에 강한서가 그녀를 경찰서에 넘겨 유치장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한현진과 강민서 사이에 화해는 있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신미정은 굳이 강민서에게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네 오빠는 분명 먼저 파혼하려고 했어. 그러더니 갑자기 한현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아름드리로 데려갔어. 그리고 네 할머니는 또 영양사를 고용해 아름드리로 보냈고. 어쩐지 이상한 낌새가 있어서 네— 네 삼촌에게 알아보라고 했어. 그랬더니 역시, 네 오빠가 한현진을 아름드리로 데리고 간 건 기억 회복 때문이 아니라 한현진이 임신했기 때문이었어.”강민서는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물었다. “오빠가 아빠가 되는 건 좋은 일 아니에요? 전엔 엄마도 계속 한현진이 임신하길 바라셨잖아요.”“좋은 일은 무슨.”신미정이 버럭 화를 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강민서를 본 신미정은 순간 자신이 한현진에게 약을 먹인 일을 강민서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 일은 강민서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아는 사람도 몇 없었다. 신미정은 감정을 억누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네 오빠는 애초부터 한현진을 위해 날 집에서 내쫓으려고 했어. 한현진이 우리 모녀를 얼마나 원망하는지 너도 알잖니. 만약 한현진이 아이를 낳고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면 이 집에 우리 모녀의 자리 따위가 있기는 할 것 같아?”강민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엄마, 우리는 오빠 가족이에요. 한현진이 멋대로 굴도록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거
재벌 가문이란 영원히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생각한 신미정은 긴장했던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래. 그럼 네가 핑계를 대고 잠시 아름드리에서 지내면서 기회가 있을 때 손을 써. 그리고—”신미정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네 오빠와 한현진 잘 살펴봐. 네 오빠가 정말 소문처럼 한현진을 멀리하는 게 맞는지 확인해.”강민서가 대답했다. “알겠어요.”신미정은 연와가 담긴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연와를 조금 뜨더니 강민서에게 먹으라며 내밀었다. “아름드리에서 좀 지내면서 한현진이 경계를 늦출 때까지 기다려. 최대한 의심 받지 않게 행동해.”강민서는 신미정이 건네는 연와를 조금 먹더니 말했다. “엄마, 강현우는 정말 오빠의 실종과는 연관이 없는 거예요?”신미정이 멈칫하더니 곧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면 경찰이 걔를 풀어줬겠니? 네 오빠 사고는 전부 다 그 한현진 불여시 때문이야. 한현진이 주강운과 그렇고 그런 사이이기 때문에 그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납치범이 네 오빠를 강운이로 착각한 거 아니겠지? 한현진은 정말 재수 없는 X이야. 네 오빠는 걔를 만나고부터 되는 일이 없잖니.”말을 마친 신미정은 또다시 말투를 바꿔 강민서에게 말했다. “그 사건이 정말 현우가 개입되어 있다면 네 둘째 삼촌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네 둘째 삼촌이 널 얼마나 아끼는데. 둘째 삼촌이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네가 제일 잘 알잖니.”강민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천천히 연와가 담긴 그릇을 비웠다. 다음 날 아침, 강한서는 회사로 출근했고 송민준은 전화로 한현진에게 아름드리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전 잘 지내요. 강한서도 절 어쩌지 못해요. 오히려 제가 괴롭히고 있죠.”한현진이 미소 지으며 요즘 있었던 일을 송민준에게 들려주었다.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한현진의 말을 들으며 송민준은 그녀가 사실은 강한서 곁에서 행복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놓였다. “아, 맞다. 전에 네가 나에게 알아봐
황씨 아주머니의 말에 강민서가 멈칫했다. “아주머니, 말씀을 바로 하셔야죠. 이 집의 모든 방은 전부 제 오빠 거예요. 한현진이뭐라고 여기가 저 여자 방이에요?”그러더니는 그녀는 짐을 옮기는 사람에게 지시했다. “이것들 전부 안에 넣어줘요.”“민서 아가씨가 여기서 지내시면 현진 씨는 어디서 지내라고요.”강민서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건 제 알 바가 아니죠. 아무 데서든 지내라고 해요.”황씨 아주머니는 강민서와 한현진을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현진 씨... 이게...”그에 비해 한현진은 오히려 차분한 태도로 덤덤하게 말했다. “아주머니, 제 짐 좀 정리해 주세요. 전 잠시 전화 좀 하고 올게요.”황씨 아주머니가 알겠다고 대답하자 한현진은 휴대폰을 들고 강한서에게 전화했다. 회의실로 향하고 있던 강한서는 한현진의 전화에 걸음을 멈추고 민경하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요. 전화 받고 갈게요.”민경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회의실로 향했다. 강한서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곧 한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 씨가 강민서를 여기로 와서 지내라고 했어요?”그 말에 멍해진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민서가 아름드리에 갔어요?”그의 대답에 한현진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몰랐어요?”“민서가 저에게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걔가 아름드리엔 왜요?”한현진이 입술을 짓이겼다.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지금 제 방을 차지해 버렸어요. 전 이제 어디서 지내요?”강한서가 시간을 확인했다. “일단 아무 방에나 들어가 있어요.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해요. 회의 끝나면 다시 얘기해요.”“아무 방에나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정말 어떤 방이든 상관없어요?”회의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오자 강한서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회의 끝나고 돌아가서 다시 얘기해요.”한현진이 대답했다. “그래요.”전화를 끊은 한현진이 도우미에게 말했다. “제 짐은 안방으로 옮겨주세요.”도우미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한현진과 강민서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강민서가 강한서에게 말했다. “오빠, 왔어?”이상하게도 한현진은 그 말에서 안심하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긴장하는 거야? 설마 강한서가 없으면 내가 자기를 때리기라도 할까 봐?’강한서가 외투를 벗으며 물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할머니가 한현진이 오빠 기억 찾는 걸 도우러 여기 있다고 하던데,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오빠가 한현진을 알고 지낸 지 이제 몇 년이나 됐다고. 우린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잖아. 나랑 더 같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래야 기억이 더 빨리 돌아오지. 그래서 내가 왔어.”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할머니가 오라고 한 거야?”강민서가 입술을 삐죽였다. “아니, 내가 그냥 온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돌아가. 여긴 네가 올 필요가 없는 곳이야.”그러자 강민서가 불퉁하게 말했다. “한현진도 올 수 있는 곳에 왜 나는 오면 안 돼? 아, 몰라. 아무튼 난 안 가. 나도 오빠 돕고 싶어.”“네가 뭘 도와? 이건 오히려—”강한서가 멈칫하며 말을 멈췄다. “오히려 뭐?”강민서가 캐묻자 입을 꾹 강한서가 곧이어 말을 이었다. “이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냐. 너까지 소란 피우지 마.”“내가 무슨 소란을 피웠다고 그래? 오빤 아무 상관도 없는 남에겐 도움받으면서 친동생이 돕는 건 싫다는 거야?”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줄곧 말이 없던 한현진이 갑자기 말했다. “여기서 지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해요. 혹시 강한서 씨가 빨리 기억을 찾게 할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좋죠. 얼른 기억이 돌아와야 저도 얼른 돌아가죠.”“...”‘몰입은 잘하네. 정말 내 기억 회복을 위해 여기서 지내는 거야?’강한서는 한현진의 말에도 강민서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얼른 돌아가.”강민서가 이를 악물었다. “오빠. 전에는 내 부탁은 절대 거절하지 않았잖아. 지금은 왜 그러는 거야? 혹시 두 사
“그럼 여기서 지내게 해줘, 오빠. 내가 언제까지고 오빠 골칫덩이리이지만은 않을 거야.”강민서를 보는 강한서의 눈빛이 그윽해졌다. 그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알겠어. 그러니까 이젠 그만 내려와.”강민서는 부들부들 다리를 떨며 난간 위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강한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알겠다고 했잖아. 뭘 더 어쩌겠다는 거야?”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강민서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못 넘어가겠어...”강한서와 한현진 두 사람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난간에서 강민서를 내려놓고 나서야 강한서는 불같이 화를 냈다. 한현진은 옆에서 그런 강한서를 그저 지켜볼 뿐 전혀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엔 강한서가 너무 오랫동안 강민서를 오냐오냐해준 탓이었다. 진작 어렸을 때 매를 들었다면 강민서는 지금보다는 철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강민서는 아름드리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녀가 방으로 돌아가자 강한서가 한현진에게 다가와 변명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고 내일 돌려보낼 거예요.”“괜찮아요. 민서도 강한서 씨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 여기서 지내고 싶으면 그러라고 해요.”한현진은 의외로 쿨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오히려 강한서가 어리둥절해졌다. ‘민 실장은 두 사람이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했었는데.’사실 한현진은 또 다른 속셈이 있었다. 만약 강민서가 본가로 돌아간다면 한현진은 다시 그 게스트룸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강민서를 아름드리에서 지내게 하면서 그 기회를 틈타 그녀가 아름드리에서 지내야만 하는 목적이 뭔지 지켜볼 수도 있었다. “신경 쓰이지 않아요?”강한서가 물었다. “아뇨?”한현진이 눈이 휘게 웃었다. 그녀는 퍽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강민서는 강한서 씨 동생이잖아요. 제가 얼마나 철이 없는 사람이어야 남매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하겠어요.”“...”‘그렇긴 하지만... 왜 뭔가 비꼬는 것 같은 거지?’“그럼 잠시 동안만 여기서 지내게 해요. 만약 나중에라도 현진 씨가 불편하다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