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현?''많이 듣던 이름인데?''그 사람도 감독인데?''설마.'유현진은 설마 하며 머리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규선이 말하는 감독이 바로, 유현진이 예전에 오디션을 보았었던 작품의 감독인 차이현이었다!'보통 감독이 아니잖아?'차이현은 업계에서 알아주는 감독이다. 그가 맡은 작품은 어떠한 앱에서도 별점이 7점 이하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별점이 7점을 넘어가는 작품은 무조건 봐야 할 작품이다. 하지만 차이현의 작품은 최저 별점이 7.8 점이었다!예상치도 못한 차이현 감독과의 사적인 식사에 유현진은 심장이 떨려왔다.차이현은 그녀의 멍한 표정을 보며 자연스럽게 걸어와 규선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두 사람의 대화에서 유현진은 두 사람은 동문이고 사이가 좋다는 것과 규선의 와이프가 차이현의 사촌 여동생이라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은 차이현으로 인해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형, 소개할게요. 이쪽은 내 후배 유현진. 우리 바닥에서 꽤 유명해요. 내가 자주 말했던 선셋 스타가 바로 유현진이예요. 얼굴도 예쁜데 목소리도 좋고 성격까지 좋아요. 현진아, 너한테 얘기했던 내 친구 차이현이야. 인사해."차이현의 반응으로 봤을 땐 아마도 그녀를 알아보았지만, 굳이 이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유현진도 어색했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인사를 청했다. "감독님, 반가워요. 유현진이예요."하지만 차이현은 그녀의 악수에 응하지 않고, 그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유현진은 멈칫하더니 어색하게 손을 서서히 내렸다.규선의 와이프는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깊이 생각지 않고 주문부터 했다. "음식 올려주세요. 다들 배고프니 드시면서 얘기 나눠요.""그래, 음식부터 올려."열정적인 규선 부부와 달리 차이현은 직업 특징상 성격이 무뚝뚝했다. 어쩌면 유현진이라는 어색한 사람이 자리에 있어 더 말을 아꼈을지도 모른다.더군다나 유현진은, 규선이 유현진에 관한 화젯거리만 꺼내면 차이현의 말수가 더 적어지는 것을 발견했다.유현진은 너무 어색했다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차이현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차이현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모였는데 일 얘기는 그만 접고 식사나 해."규선의 와이프는 한마디 하려는 규선에게 그만하라는 신호를 주었다.유현진은 이 식사 자리가 불편했다.식사가 끝난 뒤, 규선은 비용을 계산하고 차이현은 화장실로 갔다.유현진은 화장실에서 나오는 차이현을 막아섰다.차이현은 멈칫하는듯하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비켜주시죠."유현진은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감독님, 아까 하신 말씀 무슨 뜻이죠?"차이현은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묻죠?""제가 뭘 알고 있을까요?"유현진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오디션을 장난으로 본다고요? 왜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감독님은 제가 이런 자리를 만들어 불편하셨어요? 아니면 오디션 봤던 날 제가 한 실수가 맘에 안 드셨나요? 제가 그날 무례하게 쳐들어간 건 인정해요, 제 실수에요. 하지만 오늘, 이 식사 자리는 저도 오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차이현은 그녀의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 비켜주시죠."유현진도 더는 좋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듯 큰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말 똑바로 하시죠! 제가 무슨 장난을 쳤어요?"오디션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유현진도 더는 차이현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었으며, 더군다나 이런 모욕을 당할 필요도 없었다.또 본인으로 인해 규선 부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차이현은 깜짝 놀라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배역의 파트가 적은 게 불만이면 파트가 많은 배역을 찾으시면 되겠네요. 하지만 저는 그런 거 못 봐 드립니다!""제가 언제 파트가 적다고 했죠?"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본은 본 적도 없는 제가, 파트가 적어서 불만이었다고요?"차이현은 깜짝 놀랐다. "대본을 받은 적이 없어요?"유현진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오디션이 끝
유현진은 마음속 실망감을 감출수 없었다."이전 오디션을 볼때, 어째서 자신이 성우였음을 밝히지 않았나요?"차이현은 물었다.유현진은 고개를 흔들고는"왜냐하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우로써 어떠한 성취를 따냈다 하더라도 연기의 세계에선 그저 신인에 불과합니다."더구나 이러한 경험은 무조건 그녀의 앞날에 도움을 주는것은 아니였다. 심지어 성우영역에서의 성취는 그녀의 도전에 방해만 될 뿐이였다.차이현은 그녀를 한동안 주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른뒤 입을 열었다."전화번호 뭐예요? 여기에 연락처 남겨놓으세요."유현진은 어안이 벙벙했다.차이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명색이 규선이 추천한 사람인데 그래도 체면은 지켜줘야 되지 않겠어요?"유현진......그렇게까지 직설적이진 않아도 되는데......차이현은 그녀의 연락처만 물어보고는 자신의 전화번호는 알려주지 않았다. 까놓고 말해서 이러한 일방적인 연락은 규선을 대처하는 것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식사가 끝나고 유현진은 펜션으로 돌아갔다.비록 차이현한테서 그 역할은 이미 다른 사람과 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그녀는 겉으론 무덤덤한척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엄청 괴로워했다.그녀는 전에 이혼후 만약 자신이 사업에서 새로운 성과를 거둔다면 강한서에게 한방 먹일수 있다고 상상했었지만 지금와서 보니 그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배우를 함에 있어서 어떤 경지까지 올라야 성공했다 할수 있을까? 여우주연상? 연기대상? 하지만 지금 그녀는 비중이 작은 조연 역할조차 따내지 못했다.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여자에게, 모든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현실에서의 경쟁은 격렬했고 정당한 방법이든 아니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가 승자였다.강한서의 우리 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그녀는 모든것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이 빼앗기리라곤 생각도 못했다."사모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가정부의 목소리가 유
가정부는 온몸이 떨리도록 화가 났다.유현진은 지금까지 너무 온순하게 사람을 대했던 탓인지 주위사람들은 그녀가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마리의 토끼처럼 여겼다. 하지만 사실상 그녀는 한 마리의 표범, 맹수 그 자체였다!군계일학, 일반인들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던 유현진이 어떻게 한 마리 토끼일수 있겠는가?강한서도 그녀를 어찌할 방법이 없는데 고작 한명의 가정부가 어찌 할수 있을까? 설령 신미정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유현진이 사모님 자리를 이어나가는 한, 그녀야말로 미래의 한주 강씨 가문의 여주인이다.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를 지킬수 있을까?가정부는 비록 화가 잔뜩 났지만 감히 그녀에게 대꾸하진 못했다.가정부를 짜르는건 전적으로 유현진에게 달렸기 때문이였다.가정부는 고개를 숙이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유현진은 저녁을 먹지 않고 일찍히 침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강한서가 언제 돌아왔는지 그녀는 몰랐다. 아무튼 다음날 깨어났을때 침실엔 그녀 혼자뿐이였다, 강한서가 침실에 들어온 흔적도 없었다.가정부에게 묻자 말하기를, 강한서는 전날 저녁 11시쯤에 돌아와서 서재에서 잠을 청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 일찍 외출했다고 했다.현재의 유현진은 강한서에 대해 1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는 돌아오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펜션에 자기 혼자 사는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일뿐, 강한서 그 개자식한테는 애정이란걸 찾아볼수 없어서 애완동물 같은건 하나도 좋아하지 않았다. 만일 애완동물을 그녀가 없는 틈을 타 강한서가 버리기라도 한다면 대판 싸움이 날게 뻔했다.마침 세수를 끝내자 핸드폰이 울렸다.유상수 세글자를 보고는 받지 않기로 했다, 핸드폰을 윗층에 두고는 식사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침에 금방 잠에서 깨어났을때 그녀는 실검을 봤었다.#한 미스테리한 여인이 60억원에 달하는 절세명품의 비취팔찌를 쾌척했다
하지만 유현진의 회신은 답장이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몇시간이 흐르고, 유상수는 사람을 통해 인터넷 상의 루머를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를 지우면 바로 새로운 루머 하나가 생겼다, 실검은 누군가가 계획한듯이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왔다.프로젝트가 무산될 위험에 처하자 유상수는 발을 동동 굴렀다."어때요? 아직도 받는 사람이 없어요?"백혜주는 따뜻한 우유 한잔을 찻상에 올려놓았다.유상수는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계속 누구도 안 받아."백혜주는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지금이면 깨났겠죠, 혹시 일부러 안 받는거 아닐가요?""아무 이유도 없이 내 전화를 안 받지는 않을텐데""도둑이 제발 저려서 안받는거 아닐까요?"백혜주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당신이 어제 전화해서 그 애보고 강한서한테 부탁해서 한성우와 얘기해보라고 하자마자 오늘 바로 이런 일이 터졌어요. 당신은 이 일이 너무 공교롭게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어느 상가가 두 세날 지난후에 선물을 증정하나요? 이건 분명히 뭔가가 있어요."유상수는 눈썹을 찡그렸다. 사실 그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유현진이 이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 현진이는 한주 유씨 가문의 유일한 계승잔데 유씨 가문이 망하면 그 애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하지만 백혜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 했다."당신, 유현진이 누구 딸인지 잊지 말아요, 그 애는 뼛속부터 하현주처럼 지독해요. 전번에 주차장에서 우리랑 만났을때 당신을 쏘아붙이던 일을 잊었어요? 만약 그 애가 사실의 전모를 알게 된다면 그 애 성격에 필히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거예요! 하물며 당신이 말하는 계승자, 지금 그 애는 한주 강씨 가문의 며느리예요, 만약 강한서가 이후 한성의 후계자가 된다면 그 애도 한주 강씨 가문의 집주인이 될텐데 유씨 가문의 작은 이익을 거들떠 보기라도 할까요?"유상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분명히 그도 여기까진 예상을 했다.
그녀의 당당함에 유상수는 자신의 생각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잠시 침묵이 흐른후 그는 입을 열었다."너 오늘 실검 안 봤니?""무슨 실검이요?"유현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물었다."제가 방금 깨어나서 다른걸 볼 겨를도 없이 바로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실검에 뭐가 올라왔나요?"유상수는 침착하게 말했다."안 대표님이 비취를 산 사실이 뉴스에 올랐어.""이렇게 비싼 액세서리는 뉴스에 오르는게 정상 아닌가요?"유현진은 이해 하지 못한다는 듯이 물었다."이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동네방네 소문이 났는데 안 대표님이 어떻게 편하게 지내겠니?"유상수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아니면 네가 다시 한서에게 부탁해서 한성우랑 상의할수 없겠니? 팔찌 문제로 상가가 주동적으로 회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유현진은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녀가 이런 뻔뻔스러운 일을 어떻게 강한서에게 말할수 있을가, 유상수는 딸의 처지를 하나도 헤아려주지 않았다."아버지, 이건 제가 말 못해요. 아버지가 저한테 한성우랑 거래하라던것도 다 성공했고 한성우쪽에서도 동의를 얻었는데 지금 안 대표님께서 고작 실검에 오른것 때문에 환불 하면 자기 체면을 깎을가봐 상가더러 팔찌가 문제가 있어서 회수시키는 것은 말이 안돼요. 아버지가 팔찌를 파는 입장이 돼본다면 흔쾌히 하겠나요?""사정을 헤아려서 환불접수도 했는데 오히려 책임을 전가한다면 한성우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동의하겠어요? 저도 뻔뻔스럽게 강한서한테 얘기하지는 못하겠네요."유상수는 이에 급한듯"가족끼리 못할 말이 뭐가 있니? 이럴때일수록 서로 돕고 사는게 아니겠니? 애당초 네가 강씨 가문에 시집갈수 있었던것도 이 아버지가 뒤에서 힘 쓴 결과가 아니니? 지금 살기 편하다고 이젠 나 몰라라 하는거니?"참 양심도 없지!그가 조종한것이 어디 강씨 가문 한 곳이랴?그녀의 엄마가 사고로 돌아간후 아버지는 회사 내부 대숙청을 진행했고 이로인해 주력들이 대거 퇴사하여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회사는 파산위기에 처했었다.유
유상수는 한숨을 돌리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아버지가 생각이 짧았다, 너한테 미안하구나.""아버지, 저희는 가족이예요. 제가 도울수 있는 일이라면 무조건 발 벗고 나설거예요, 하지만 이 일은 정말 얘기할 방법이 없어요. 아니면 안 대표님하고 얘기 해보는건 어때요? 한성우가 응낙했으니 한 입으로 두 말하진 않을거예요. 체면이 돈이 되나요? 그렇지 않나요?"유상수는 이에"내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마, 아 맞다. 여기에 뉴질랜드 생굴 두상자가 있는데 이따가 내가 너한테 보내마. 네가 한서한테 요리해주면 분명 엄청 좋아할거야.""아버지 감사해요."한서한테 요리해주라고? 개밥으로 주는게 더 낫겠다!전화를 끊을려고 할때 유현진은 문뜩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다시 입을 열었다."아버지, 그날 사실 제가 안 아가씨한테 신중하게 고려해보라고 했는데 안 아가씨가 현아랑 같이 있었어서 허영심 떄문인건지 예쁘다는 한 마디에 충동구매를 하셨었어요, 평범한 친구라면 괜찮지만 안 대표님과 같은 이익관계에 있는 사람과는 신중히 행동하시는게 좋을것 같아요."유상수는 하려던 말을 참고 담담하게 말했다."내 알았다, 끊으마."전화를 끊기자 백혜주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거들었다."정말 그 애의 말을 믿으신건 아니죠?"옆에서 듣고있던 유현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유현진 이 년이! 감히 나한테 뒤집어 씌워?그녀는 황급히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아버지, 그날 유현진이 계속 말로 하윤이를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하윤이가 그 팔찌를 구매하는 일은 없었을거예요, 이건 분명 유현진이 하윤이가 함정에 걸려들줄 알고 계획한 거예요. 제가 언니가 이익을 나눠가지는 현장을 목격했어요......"너는 입 다물어!"유상수는 어두운 얼굴로"내가 이전에 말했었지?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내 말을 귀등으로 들은거니? 걔가 상가안에 있는걸 뻔히 보고도 왜 굳이 하윤이를 데려갔어? 놀려주려고? 내가 너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거라고 생각해?"유현아는 억울한듯 대꾸하려던 찰나 백혜주가 그녀를 한쪽
회사에 도착한후 유현진은 한성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한성우의 사무실에서 강한서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게임을 지고 있었던 한성우는 원망의 눈길을 여유작작한 상대편에 보내고 있었다."퇴근했는데 집도 안가고 나이트클럽도 안간다 하고 일 있다고만 하고, 네 일은 여기 앉아서 한시간동안 차만 마시는거냐?"강한서는 힐끔 쳐다보며"너도 할일 없잖아, 게임이나 해."한성우......그는 살짝 떠보는 듯이 물었다."유현진하고는 아직도 사이가 안좋아?"강한서는 흠칫 놀라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말했다."아무 일도 없어."그가 부인하자 한성우는 맞췄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벌써 며칠이야, 집에 돌아가서 네 와이프랑 화해해, 나한테 화 풀지 말고. 너는 적어도 와이프라도 있지, 나는? 나도 내 영혼의 파트너를 찾아야 될거 아니야."강한서는 째려보며 물었다."나이트클럽에서 사랑을 찾아?""나이트클럽이 어째서? 나이트클럽에도 충분히 좋은 여자는 있어. 너랑 유현진도 첫만남은 나이트클럽 만난거 아니야?"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누가 너한테 첫만남이 나이트클럽이라고 했어?"한성우는 멈칫 하더니"나이트클럽이 아니면 어딘데?"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5년전 강한서의 생일을 맞아 억지로 나이트클럽에 데려가 가면파티를 열었던 사실을.당시 윗층에서는 마피아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두 아가씨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술에 취한 여러명의 희롱을 받고있었을때 상대방 남자랑 싸움이 일어나 하마트면 경찰을 부를뻔 했던 적이 있었다.원래라면 치고박고 싸웠겠지만 필경 남의 파티에 참가했던거라서 만약 경찰을 부른다면 강한서는 생일날에 경찰서에서 조서를 쓰는것을 면치 못했을것이였다.서로 합의를 볼려고 밖에 나간후 한명의 젊고 포니테일을 한 여자애가 핸드폰으로 찍으면서, 분명히 두려워서 떨고 있었지만 큰 목소리로"당신들 한번만 다시 움직여봐, 핸드폰으로 당신들 얼굴 다 찍었어, 성추행에 폭행까지, 법 무서운줄 모르네."비록 그녀는 카리스마가
주현의 생각은 성월과 달랐다. 송가람은 사랑에 눈이 멀어 남자의 사랑을 바랐지만 주현은 아니었다. 그녀의 목표를 애초부터 매우 명확했다. 주현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신분과 지위를 노렸다. 그건 20년, 30년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 주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 눈앞에 놓였는데 그 기회를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주현은 성월의 성격을 잘 알았다. 성월은 반평생을 야심으로 가득 찬 서해금 곁을 지키며 진작 서해금의 충직한 개가 되었다. 성월에게 신분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거였고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기회를 잡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해금 역시 자신의 두 손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송병천과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서민 출신에 남편을 잃고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무슨 수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웃기지 말라 그래.’하지만 그 말을 주현은 감히 성월 앞에선 할 수 없었다. 주현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이모, 도와줘요. 신씨 가문으로 돌아가든 아니든 저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송가람 씨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는 일로 부탁해요. 활동이든 파티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자리로요. 그래야 신씨 가문에 호감을 살 수 있죠.”성월의 학창 시절, 그녀의 집안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주현의 부모님이 빌려주신 돈으로 급한 불을 끈 덕에 성월은 늘 주현의 집안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주현의 애교에 견디지 못한 성월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송가람 씨 비서로 전근 보내볼게. 너, 네 남자친구한테 기본적인 건 잘 가르쳐. 묻는 말에 아무 것도 대답 못하면 안 돼.”주현이 순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성월에게 팔짱을 끼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이모! 역시 이모가 날 제일 예뻐할 줄 알았어. 주말에 집에 와서 식사해요. 안 가신지 꽤 됐잖아요...”한편, 사무실로 돌아온 한현진의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만약 어제 바로 세정제
서해금이 입술을 짓이기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냉정하다니, 한현진 답지 않아.”성월이 말했다. “사실 전 그렇게 냉담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오일을 깨뜨린 것도 주혁 씨였고 몰래 부업을 하다 한 대표님 얼굴에 먹칠한 것도 주혁 씨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원망하는 마음이 있을 거예요.”말이 없던 서해금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인사팀에 잠깐 다녀와요. 일단 주혁을 가람이 운전기사로 전근시켜요.”성월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 가람 아가씨에게 운전기사를 붙일 생각이시면 제가 다른 기사님을 찾을게요. 회사에는 지금 마침 새로 입사한 젊은 신입사원들이 많아요. 어리고 건강하고 운전 경력도 전부 5년이 넘었어요. 주혁 씨는 한현진 곁에서 한동안 일을 하신 분인데, 가람 아가씨 운전기사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아요.”“전근시키라고 하면 시켜요. 제가 이렇게 하는 덴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 성 비서는 나서지 말아요.”성월이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성월이 사무실을 나서자 주현이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모, 어떻게 됐어요? 대표님께 말씀 드렸어요?”성월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대표님께서 이미 송가람 씨에게 다른 운전기사를 붙이셨어. 이미 결정된 일이야.”순간 주현은 조바심이 났다. “왜 갑자기 결정 난 거예요? 회사에서 요즘 새로 신입사원 모집했잖아요. 보안팀은 싫어할 거란 말이에요.”성월이 말했다. “대표님께서 주혁을 송가람 씨 운전기사로 전근시켰어. 지금 인사팀에 가서 그 일부터 처리해야 해.”그 말을 들은 주현이 투덜거렸다. “한현진 밑에 있던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본인 상사를 배신까지 했고요. 대표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람을 딸 운전기사로 쓰시겠다는 거예요?”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린 성월이 주현을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성월은 주변을 확인하고 나서야 주혁의 팔을 내치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너 미쳤어? 여긴 회사야. 여기서 집인 줄 알고 그렇게 큰 소리로 대표님 뒷담화를 하는 거야?
직원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어떤 직원은 회사의 조치가 꽤 인간적이라며 칭찬했고 또 어떤 직원은 아무리 화장실 청소라도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세제를 쓰진 말았어야 했다며 안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회사의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청소 직원이 화상을 입은 것으로 그쳤지만 만약 누군가 범행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부식성이 강한 세정제는 범죄자에게 칼을 준비해준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꼴이었다. 의문을 제기하던 직원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한현진과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실언했다는 것을 인지한 직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대표님, 전 회사에서 조치를 제대로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요. 단지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저도 모르게 제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본 거예요.”한현진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위험 요소요?”그 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못... 못 들으셨어요?”“죄송해요.”한현진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친구 문자에 답장하느라 못 들었어요.”직원이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직원이 얼른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 며칠 동안 청소하시는 직원분들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잖아요. 그 일 때문에 다들 마음이 뒤숭숭해요.”한현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직원이 말을 이었다. “아, 맞다. 대표님. 다치신 분 중에 대표님이 아는 사람도 있어요. 전에 대표님 운전 기사셨던 주혁 기사님이요. 그 분이 제일 심하게 다치셨어요.”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기사님이요? 확실해요? 어제 볼 일 보러 갔다가 기사님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언제 다치신 거예요?”한현진의 말에 직원이 멍해졌다.“그럴 리가요. 며칠 전에 이미 다치셨어요. 대표님과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내셨어요.”한현진이 곰곰이 생각했다. “그날 제가 급한 일 때문에 길게 얘기를 나누진 못했어요. 손에 붕대 같은 건 본 기억도 없고 기사님께서도 저한테 그런 얘기는 없으셨는데... 심하게 다치셨어
막 전화를 끊으려던 그 순간, 박안수가 다시 불렀다.“아, 그리고...”“뭔데?”“오늘 경찰서에서 한현진과 마주쳤어.”서해금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한현진이 경찰서엔 왜?”“나도 자세한 건 안 물어 봐서 잘 몰라. 하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 혼자가 아니라 6, 7살 쯤 되는 어린 아이와 함께 왔었어.”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던 서해금이 또 물었다. “한현진이랑 얘기했어? 무슨 얘기했는데?”“괜히 의심할까봐 내가 경찰서에 간 이유를 사실대로 얘기했어. 한현진도 더 묻지 않았고.”우물 쭈물거리며 숨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당하게 대답하는 편이 오히려 의심을 덜 사는 방법이었다. “그게 다야?”“응.”생각의 잠겼던 해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한테 손에 상처는 뭐라고 얘기했는데?”“회사에서 청소하다가 부식성 제품에 다친 거라고 했어.”서해금이 원망하듯 말했다. “왜 회사에서 다친 거라고 했어. 회사에서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제품을 쓸 리가 없잖아.”“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다친 거라고 할 순 없잖아. 집에는 회사에서 다친 거라고 했는데. 조사 협조 요청을 나한테만 하는 게 아니잖아. 게다가 그 두 사람은 거짓말을 아예 못 해. 만약 경찰이 내 손에 관해 묻기라도 한다면 바로 들켜 버리는 거잖아.”서해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자는 미쳤고 애는 귀가 먹었는데, 그런 병X도 제대로 통제 못 해?”순간 얼굴을 찡그린 박안수가 말했다. “말 그렇게 하지 마. 두 사람 불쌍한 사람들이야.”“뭐가 불쌍해. 도박쟁이 가정폭력범을 성실하고 부지런한데다 박학다식한 남편으로 바꿔줬는데. 우리한테 고마워해도 모자라.”서해금의 말에 박안수는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너는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 않았던 서해금이 당부하며 말했다. “이만 끊어. 가람이한테 당신을 기사로 쓰라고 얘기하러 갈 거야. 소식 기다려.”박안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그래.”전화를 끊은 서해금은 아무리 생
“아니.”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렸다.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경찰에겐 뭐라고 했어?”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대로 얘기했어.”“박안수!”서해금은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끓어올랐다. “지금이 농담할 때야?”“농담 아냐.”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가라앉았다. “그럼 내가 뭐라고 말할까? 네가 준 신분이니 난 당연히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할 수밖에. 그럼 내가 난 박안수라고 얘기했어야 해? 죽은지 27년도 더 된 사람이야. 박안수가 어떻게 돌아와?”그의 목소리엔 고통과 원망으로 가득 했다. 그 순간, 서해금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날 탓하는 거야?”말이 없던 상대방은 잠시 후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적 없어.”“박안수, 지금 날 탓하는 거잖아.”서해금이 공격적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때 빚을 진 사람도 당신이고,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당신이었어. 당신이 가람이를 키울 능력이 없었던 거고, 당신이 가람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길 바랐고, 그래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사정한게 당신이었어.”“내가 당신한테 돈 안 줬어? 지금껏 내가 당신한테 준 돈이 얼만데. 당신은 얼마든지 해외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어. 굳이 한주에 남겠다고 한 건 당신이야. 내가 당신에게 그럴 듯한 신분을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당신이 무슨 명분으로 가람이 앞에 나타날 건데? 당신이 이렇게 당당하게 가람이를 만날 수나 있었을 것 같아?”목이 메인 남자는 한참만에야 눈을 감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 탓한 거 아냐. 난 그저 이렇게 조마조마 마음 졸이는 생활에 지쳤을 뿐이야. 난 집에서도 감히 옷을 못 벗어. 잠도 깊게 잘 수가 없어. 길에서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사람은 날 보면서 반갑게 인사하는데 난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라. 그러면서도 아는 척, 반가운 척 인사를 해야 해. 심지어 아무리 아파도 검사도 못 해. X발, 병원도 가질 못한다고!”남자가 깊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네, 볼 일 봐요. 회사로 복귀하면 다시 얘기하죠.”한현진이 전화를 끊었을 때 차는 이미 회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은 곧바로 로비로 향했다. 회사의 프런트가 한현진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짧게 인사를 받은 엘리베이터에 탄 한현진은 사무실이 아닌 2층을 눌렀다. 회사 건물은 2층부터 화장실이 있었기에 1층엔 화장실이 없었다. 한현진은 아예 2층부터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역시 공교롭게도 2층에 도착한 한현진은 마친 청소 중인 직원과 마주쳤다. 근무 시간이 화장실엔 사람이 없었다. 직원은 바닥을 닦고 있었고 세면대와 멀지 않은 곳에 청소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엔 청소 용품으로 가득 했다. 한현진은 고개를 숙여 청소 용품을 확인했다. 청소차엔 수많은 플라스틱 통과 병이 있었고 그 안엔 전부 액체가 담겨져 있었다. 굳이 뚜껑을 열지 않아도 소독제의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나 그 제품들은 그 어떤 별다른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부식성이 그렇게 강한 용액을 플라스틱 병에 담진 않았을 거 아냐.’“누구세요?”청소차를 관찰하는 한현진의 등 뒤로 사투리 억양이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현진이 몸을 돌리니 청소 중이던 직원이 보였다. 그 직원은 아래층 청소를 도맡아 하는 분이라 한현진을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한현진이 화장실을 사용하려는 것이라 생각한 직원이 말했다. “아직 소독제를 쓰지 않았으니까 볼 일 보려면 얼른 봐요.”한현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청소차의 물건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여쭤볼게 있어요. 화장실 청소를 하실 때 어느 브랜드의 농도가 얼마인 세정제를 사용하세요?”직원이 말했다. “도매 시장에서 파는 회색통이요. 커다란 거. 엄청 싸요.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사려고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이 항상 깨끗해서요. 저도 집에서 써보려고요.”청소 직원이 얼른 한현진을 말렸다. “절대 사지 마요. 변기의 때는 우리가 항상 솔로 조금씩 닦
또 다른 경찰이 물었다. “그래서 지장은 찍을 수 있어요?”“손이 그 지경인데 지장을 어떻게 찍어? 손을 보니까 지장은 무리인 것 같아서 포기했지. 어차피 지문도 완전히 회복하긴 힘들 것 같았어. 그래서 애들한테 홍채와 성문을 따라고 했어.”말을 마친 키 큰 형사가 한현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중에 회사에 가셔서 얘기 좀 하세요.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제품은 얼른 교체하라고요. 만약 누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고 그 제품으로 가해라도 하면 회사에서도 책임지셔야 해요.”생각에 잠겼던 한현진이 그 말에 얼른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경찰서에서 나온 한현진은 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은서가 본 것은 주혁의 태반이나 점이 아니라 청소 용액에 부식되어 생긴 상처였다. 어차피 납치 사건의 범인은 이미 잡혀 경찰서에 있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해서 상처를 치료도 하지 않고 경찰서로 달려온 것일까?한현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회사에선 그런 고농도의 부식성 제품을 구매했을 리가 없었다. 형사의 말처럼 그런 제품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한현진은 이시연의 연락처를 찾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음이 거의 끝나가도록 이시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곧이어 강한서에게 연락했다. 몇 초 후 통화가 연결되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한서가 아닌 민경하였다. 강한서는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어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기에 민경하가 그의 휴대폰을 갖고 있었다. “사모님, 저예요. 대표님께서 지금 중요한 회의 중이시라 전화를 받기 힘든 상황이에요. 급한 일이시면 저에게 얘기하셔도 돼요. 급한 일이 아니면 회의가 끝나면 바로 전화 드리라고 대표님께 말씀 드릴게요.”“급한 건 아녜요. 제가 지금 급히 회사에 가봐야 하는데 아직 은서랑 같이 있어서요. 제가 조금 이따가 회사로 가는 길에 은서를 먼저 한
주혁은 한현진보다 조금 더 먼저 경찰서에 도착한 것 같았다. 한현진이 도착했을 땐 주혁은 입구에서 통화 중이었다. 안색이 어두웠지만 그는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대화하고 있었다. 그를 먼저 발견한 한현진이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주혁이 곧 경계하듯 고개를 돌렸다. 한현진을 본 주혁이 멈칫하더니 곧 전화를 끊고 다가왔다.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한현진이 말했다. “일이 좀 있어서요. 기사님도 일 보러 오셨어요?”짧게 대꾸한 주혁이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8년 전 제 아들을 납치한 마지막 용의자가 잡혔다고 해서요. 조사에 협조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왔어요.”한현진이 놀라운 듯 물었다. “아드님이 납치되었었어요?”주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8, 9년 전 일이죠. 납치된 동안 납치범에게 맞아 치료 시간을 놓쳐 청력도 잃게 된 거예요. 그 사건을 맡은 형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사건이 종결되면 배상금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얘기하는 동안 주혁은 아래쪽에서 자신의 손을 지긋이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는 입술을 짓이기며 조용히 손바닥을 다리에 대고 말을 이었다. “곧 아이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주혁의 이야기가 한현진의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그녀는 예의상 더는 그 일에 관해 묻지 않았다. 한현진은 대화주제를 돌리며 주혁에게 물었다. “제가 전에 추천해준 의사 분께 가 보셨어요?”주혁이 멈칫하며 대답했다. “아직이요.”한현진에게는 꽤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주혁이 최대한 빨리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가 인공 달팽이관을 제작할 것이라 여겼다. 아무래도 주혁은 규정을 어기고 부업을 할 만큼 누구보다 간절하게 수술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현진이 그에게 일반 병원보다 더 싼 가격에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의사를 추천해주었음에도 지금까지 검사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요즘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요. 전근된 곳이 전처럼
하온이는 적합한 골수를 기다리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골수를 의식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처음으로 하은이에게 기회가 찾아 왔을 때는 골수 의식의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하온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의 집안은 이미 빚더미에 앉은 상황이라 아무리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도 수술비를 모을 수 없었다. 그러니 하온의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수술을 포기한 채 아득바득 돈을 모으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하지만 곧 있을 줄 알았던 두 번째 기회는 그리 빨리 오지 않았다. 너무 오랜 기다림을 견뎌냈지만 하온의 몸은 이미 수술을 진행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하온은 하루하루 날이 다르게 시들어 가는 꽃 같았다. 은서는 낮엔 하온이와 놀다가도 저녁엔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하온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은서는 강한서 품에 안겨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은서가 말했다. “삼촌, 저도 죽어요?”“삼촌, 우린 왜 이런 병에 걸린 거예요?”“삼촌 부자잖아요. 하온이 오빠가 수술할 수 있게 돈 빌려주시면 안 돼요? 제가 커서 돈 벌면서 갚을게요. 하온이 오빠 죽는거 싫어요.”강한서는 은서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은서는 아직 너무 어려서, 인생은 가끔 이렇게 운명의 장난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목숨으로 돈을 맞바꾸기는 쉬운 일이었지만 돈으로 목숨을 살 수는 없었다. 강한서는 은서가 아직까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때의 은서는 고작 5살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한현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세상에는 가여운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니 혼자의 힘으로는 고작 얼마의 힘이나 보탤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는 아이의 기대를 깨트릴 수도 없었다. 한현진은 정중하게 물었다. “정말 이거 전부 기부할 거야? 기부하면 은서에겐 아무 것도 없는 거야.”고개를 끄덕이던 은서가 곧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