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400ml 뽑는 것뿐이잖아. 그것도 못 해주는 거야? 내가 보기에 은주 넌 정신과에 가야 해. 내가 고통받는 모습을 즐기고 있는 거지?”눈을 뜨자마자 울면서 말하고 있는 차은별이 보였다. 오빠 차은하는 성큼성큼 다가와서 나를 발로 차버렸다.“차은주, 별이는 네 친언니야. 친언니를 위해 피 조금 뽑는 것도 못 해줘?”나는 차은별을 위해 수도 없이 헌혈해 왔다. 그래서 몸이 항상 허약했다.차은하에게 맞아서 바닥에 쓰러진 나는 온몸이 다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차은하는 내 머리채를 잡아서 억지로 일으켰다.“연기하지 마. 너 괜찮은 거 다 알아. 당장 일어나서 피 뽑아!”머리카락이 생으로 뜯겨 나갔다. 나는 하도 아파서 눈물이 다 났다.그의 손에서 벗어난 나는 있는 힘껏 외쳤다.“필요하면 오빠가 직접 해! 난 안 할 거니까!”차은별은 더 큰 목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은주는 내가 죽든 말든 상관없어. 아니, 내가 죽기를 바랄 거야. 좋아, 내가 그 소원 이뤄줄게.”그녀는 죽겠다고 하며 스카프를 목에 살짝 둘렀다. 그런데도 차은하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막았다.“잘못한 사람은 차은주야. 죽어도 차은주가 죽어야지, 네가 아니라!”어머니 임지선이 곧장 달려오더니 내 뺨을 때렸다.“당장 별이한테 사과하지 못해? 사과하고 병원에 피 뽑으러 가!”내 얼굴은 금방 붓기 시작했다. 입안에도 피비린내가 맴돌았다. 그런데도 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왜요? 차은별한테는 그럴 자격 없어요.”차은별은 꽤 심각한 선천적 빈혈이 있었다. 부모님이 나를 낳은 이유도 탯줄의 피로 차은별을 살리기 위해서였다.아쉽게도 탯줄의 피는 혈액형이 맞지 않는 관계로 쓸 수 없었다. 어머니도 나를 낳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더 이상 임신할 수 없게 되었다.그래서 모두가 차은별의 병이 낫지 못한 건 내 탓이라고 했다. 차은별을 포함해서 말이다.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차은별을 위해 헌혈했다. 팔에는 사라지지 않는 주사 자국으로 가득했다.헌
나는 집에 남아서 괜히 혼나기 싫었다. 그래서 힘겹게 일어나서 떠나려고 했다.차은별은 거의 아우성을 치며 말했다.“은주는 이제 헌혈 안 해주는 거예요? 내 건강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까지 빼앗아 가놓고, 이제는 내 건강까지 빼앗는 거예요?”차은별의 말을 듣고 분노한 임지선을 나를 쫓아와서 붙잡았다.“넌 별이를 위해 태어났어! 네가 원하든 말든 별이를 위해 헌혈해야 해!”내가 끝까지 반항하려고 하자, 임지선은 진정제까지 꺼내서 나에게 놓으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는 차은별을 감쌌다.차은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동정과 불만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그는 끝내 나를 제압하는 걸 선택했다.“이거 놔! 날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콩밥 먹게 해줄 거야!”나는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절망과 분노가 내 가슴 속에 차올랐다. 금방이라도 나를 갈기갈기 찢을 것만 같았다.진정제가 내 피부를 파고드는 순간, 도우미가 달려왔다.“사모님! 도련님! 출판사 책임자가 둘째 아가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바로 문 앞에 와 있습니다.”우리 집안사람들은 명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남이 나타난 순간 바로 나를 풀어줬다.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밖으로 달려갔다. 차은하가 쫓아와서는 나에게 연고를 건네줬다.“얼굴 부었어. 약이라도 발라.”차은하는 이렇듯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는 데 익숙했다. 차은별이 없을 때는 주로 당근이 주어졌다. 그러나 내가 차은별과 대치하는 순간 그는 주저 없이 차은별의 편에 섰다.임지선은 재혼했다. 차은별은 그녀가 데려온 아이다. 그러므로 차은하와 차은별 사이에는 혈연관계가 없었다. 차은하의 친동생은 다름 아닌 나였다.나는 연고를 받지 않고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별이는 네 친언니야. 둘 다 희귀 혈액형인 게 어디 흔한 일이야?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별이는 살지 못해.”“뭐라고 하든 난 헌혈 안 해. 언니가 죽을지 안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죽고
차은별은 빨개진 눈으로 달려와서 나를 때리려고 했다. 다행히 나는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생 내내 쌓였던 분노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언니가 소설을 썼다고? 증거 있어?”나는 노트북을 열었다.“이건 내가 2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이야. 줄거리부터 설정까지 전부 있어. 문서를 만든 시간까지 다 나와 있고, 이건...”짝!임지선이 걸어와서 내 뺨을 때렸다.“이거 별이 컴퓨터잖아. 별이가 힘들게 쓴 글이 너랑 무슨 상관인데?”임지선이 힘을 얼마나 줬는지 나는 눈앞이 희미해질 정도였다.“내 핸드폰에 컴퓨터 구매기록이 있어요. 이 컴퓨터가 내 거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고요.”차은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생일선물로 컴퓨터를 선물할 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거야?”“이게 미쳤다고 친언니 성과를 가로채? 내가 널 때려죽이고 말 거야!”임지선은 미친 듯이 달려와서 나를 때리려고 했다. 내가 정말 그녀가 주장하는 일을 한 것처럼 말이다.이때 내 약혼남 강서혁도 다가와서 짜증 난다는 듯이 설득했다.“그런 일을 저질렀으면 인정할 줄도 알아야지. 네가 순순히 인정하면 전에 만났던 정을 봐서라도 약혼 취소하지 않을게.”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어 나를 찍기 시작했다. 가족과 약혼남이 나를 모함하고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사과해!”“빨리 사과해!”악의로 가득한 목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차은하는 동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조용히 하세요! 제가 편집장으로서 공식 발표를 할 거예요!”그는 또 나를 바라보며 경고했다.“어차피 다 한 가족이니까 별이도 신고하지는 않을 거야. 팬들 앞에서 사과하고 별이가 작가라는 걸 인정해. 안 그러면 어떻게 될지 나도 보장 못 해.”그의 이런 모습이 나는 역겹기만 했다. 내가 말하려고 할 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주가 한 글자 한 글자 타자하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네요. 근데 오늘 갑자기 나타난 이 사람은 누구죠?”압
임지선은 가족의 정으로 나를 협박하고, 강서혁은 연인의 정으로 나를 협박했다. 그들이 말하는 정이 진작 비수가 되어서 나를 찌르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나는 강서혁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 것이라고는 역겨움 밖에 없었다. 강서혁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들러붙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차에 타버렸다.내 상태가 많이 안 좋았기에, 윤백은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와 그의 부인 이정순은 나에게 아주 잘해줬다. 그들의 아들과 며느리는 유명 감독에 배우였다. 나의 가장 큰 팬이기도 하다.그들은 내 소설을 사서 영화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마침 나에게 작가가 되어 달라고 조르는 중이었다.임지선 등이 구치소에서 풀려난 날, 나는 마침 윤백과 낚시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임지선과 차은하가 내 앞길을 막았다.임지선은 원래 꽤 체면을 차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구치소에 들어간 일로 이성을 잃은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손부터 올렸다.물론,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녀를 바닥으로 밀었다. 그녀를 공격하는 건 나에게도 처음이었다. 그녀도 놀랐는지 바닥에 쓰러진 채 빨개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차은하는 다급한 말투로 말했다.“너 어떻게 어머니한테 손을 댈 수 있어?”“어머니는 어떻게 딸한테 손을 댈 수 있대?”“말장난하지 마.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별이가 인터넷에서 욕먹고 있어. 그리고 구치소에 20일이나 있어서 몸이 아주 안 좋아. 지금 당장 집에 가서 별이한테 사과하고 헌혈 하러 가.”이렇게 말하며 그는 억지로 나를 끌고 가려고 했다. 나는 있는 힘껏 손을 빼내며 말했다.“헌혈? 차은별 빈혈 없어. 그거 다 거짓말이야. 수혈이 필요하다고 한 건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라고... 오빠는 알면서 속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몰라서 속는 거야?”전생에 죽은 다음 나는 영혼 상태로 차은별을 한참 따라다녔다. 덕분에 알게 된 일이 꽤 많았다.그러나 차은하는 한치의 주저도 없이 대답했다.“헛소리하지 마!”임지선은 바닥에서 일어나 소
노인들은 조용한 걸 좋아했다. 나도 내 일 때문에 윤백과 이정순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차은하를 만나러 갔다.차은하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전과 확연히 달랐다. 오늘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후회와 죄책감이었다.“미안해, 은주야. 내가 잘못했어.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그 두 사람한테 속은 바람에... 그래서 그랬어. 내가 이미 그 두 사람을 집안에서 쫓아냈어. 앞으로는 무슨 일이 생겨서 네 편에 설게!”차은하는 책 몇 권을 꺼내서 나에게 건네줬다.“네가 좋아하는 작가들 책이야. 내가 특별히 한정판으로 구해봤어. 그리고 작가들이 직접 너를 위해 한 사인도 있어.”나는 책들을 밀어냈다.“5년 전 생일 선물로 달라고 했던 거잖아. 이제는 안 좋아해.”예전의 차은하는 1년 동안 모은 월급으로 차은별에게 명품 시계를 사줬다. 그러나 내가 직접 2만 원을 주고 산 소설에 작가 사인 받아주는 것도 해주지 않았다.차은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네가 뭘 원하든 다 해줄게, 응? 만회할 기회를 줘.”“그럼 오빠가 받을 유산을 나한테 넘겨줘. 내 정신적인 트라우마, 그리고 신체적인 피해는 6억으로 갚는 게 낫겠어.”차은하는 혹시라도 내 기분이 나빠질까 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럼! 내가 바로 절차를 밟을게!”그는 부리나케 내가 시킨 일을 하러 갔다. 예전과 같은 무시는 전혀 볼 수 없었다.내 기억 속에서 차은하는 한 번도 이런 대접을 해준 적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기쁘기는커녕 역겹기만 했다. 내가 가장 필요할 때는 안 주던 사랑을, 이제 필요하지 않은데도 억지로 주고 있다.어차피 내려온 김에 나는 소화할 겸 산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 재수가 없는 날인지, 몇 걸음 가지도 않고 임지선과 마주쳤다.나는 몸을 홱 돌려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임지선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 와서 나를 붙잡았다.짜증 섞인 표정으로 손을 쳐내자 그녀는 힘없이 바닥에 쓰
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임지선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를 부축해 주지도 달래주지도 않고 차갑게 내려다보기만 했다.“나한테 어떻게 보상할 건데요? 스스로 뺨을 때리고, 스스로 피를 뽑으면서 자학이라도 거예요?”임지선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울면서 같은 발만 반복했다.“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은주야...”내가 원하는 건 사과가 아니었다. 사과한다고 받아 줄 생각도 없고 말이다.나는 더 이상 그녀와 시간 낭비하지 않고 윤백의 집으로 돌아갔다. 차은하와 임지선에 이어서 강서혁도 전화가 왔다. 나는 당연히 사과하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는 사과해야 마땅했다.하지만 수락 버튼을 누른 순간 전화 건너편에서는 분노 서린 그의 목소리부터 들려왔다.“너 가족들이랑 손잡고 별이 씨를 집에서 쫓아냈다며? 이제는 어머님까지 등 돌렸다고 하는 거 다 들었어! 별이 씨가 얼마나 속상해하는지 알아? 지금도 계속 울고 있어!”“너 차은별이 지금껏 꾀병 부리고 우리랑 혈연관계가 하나도 없는 거 몰라? 날 지금까지 괴롭혔으면 쫓겨나도 싸.”“왜 억울한 별이 씨를 저주해? 별이 씨도 모르는 일이야. 금방 태어난 애가 뭘 알겠어. 꾀병도 어머님 생각이라며? 별이 씨는 그냥 피해자야. 이게 다 네 때문...”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끊었다.“피해자? 좋아, 그럼 자기 자식도 목 졸라 죽이는 피를 이어받은 애는 네가 데리고 살아야겠다. 피나 뽑히면서 잘살아 봐.”말을 마친 나는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사과할 줄도 모르는 사람과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는가? 나는 전화를 받은 것만으로도 할 만큼 다 했다. 기회를 차버린 건 강서혁 본인이다.나는 강서혁을 싫어하는 그의 동생 강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서준은 상속자 자리를 빼앗기 위해 노리고 있는 입장이었다.“서준 씨, 저희 친구 추가해요. 강서혁이 저랑 약혼하고 나서 제 언니랑 잔 증거를 보내줄게요. 그리고 요즘 상주시 부동산 쪽 사람이 서준 씨 재개발 프로젝
늘 사이가 좋던 두 사람이 지금은 선을 그은 채 다투고 있었다.“어머니 친딸은 은주예요. 그런데 어떻게 남의 자식 친자 검사까지 조작하면서 은주를 괴롭힐 수 있어요? 당신은 어머니라고 불릴 자격도 없어요!”“차은별이 남의 자식일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적어도 나는 친딸인 줄 알고 그렇게 키웠어. 그런데 너는? 너는 자기 여동생이 은주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남의 편을 들었던 거야? 너같이 멍청한 애는 은주 앞에 있을 자격 없어!”나는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니 불쾌해져서 문을 닫으려고 했다.하지만 차은하가 재빨리 문을 잡아채며 성큼 들어왔다. 임지선도 내가 문을 닫아버릴까 봐 급히 따라 들어왔다.그들을 보자마자 속이 불편해진 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이 사람들이 아까 말한 그 사람들이에요?”윤재연이 다가오며 물었다.그의 압도적인 체구와 존재감에 나는 옆으로 살짝 물러섰다.“네.”윤재연은 순식간에 양손을 뻗어 마치 병아리 잡듯이 그들을 잡아 밖으로 내던졌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헐?”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사람, 힘이 너무 센 거 아냐?’윤재연이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왜요? 부러워요?”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팔짱을 끼며 나를 훑어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은주 씨 작은 몸으로는 꿈도 꾸지 마요.”예상치 못한 놀림에 화를 내기도 전에, 그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대신 이 몸을 무료로 빌려줄게요.”윤백의 가족들은 나를 안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이토록 잘해준다. 하지만 내 가족과 약혼자는 내 고통을 늘 무시해 왔다.이 순간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리면서 꽉 찬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집들이가 끝나고 윤백 일행이 떠났다. 나는 그들을 배웅하던 중, 차은하와 임지선이 문 앞에 이사 선물을 두고 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이사 선물이라 나쁠 건 없었기에 나는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때 강서혁이 나타났다.그 사이에 강서혁은 수염이 덥수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