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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Author: 아울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30 13:49:48
그 말이 나오자 모두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박현우는 기가 막혀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는 강유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놀라워. 며칠 만에 내 라이벌과 붙어먹다니?”

“너랑 무슨 상관인데!”

화가 난 강유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그의 손을 홱 뿌리쳤다.

하지만 너무 세게 뿌리친 탓에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잃고 뒤로 휘청거렸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받쳐주었다.

진시훈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그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강유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허리를 펴고 그의 옆에 섰다.

진시훈은 그녀의 작은 행동에 기분이 좋아진 듯 눈빛을 부드럽게 하고 미소를 지었다.

박현우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눈꼴사나웠다.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심민준이 그를 막아섰다.

“현우야, 유나는 퇴사했잖아. 이렇게 전 직원을 붙잡고 있으면 네 여자친구가 좋아하겠어?”

박현우는 그제야 안수지가 생각났다.

고개를 돌리자, 예상대로 안수지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안쓰럽게 아랫입술을 깨문 그녀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정태호도 앞으로 나섰다.

“현우야, 유나는 이제 네 직원이 아니야. 그러니 넌 그녀의 일에 간섭할 권리가 없어.”

박현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강유나를 쏘아보았다.

그리고는 진시훈에게 시선을 옮겼다.

“뭐야. 진시훈, 얘한테 관심 있는 거야?”

진시훈은 담뱃재를 털며 말했다.

“네 알 바는 아니지.”

“너...”

박현우의 팔에 핏줄이 불거지자 심민준이 그를 막아섰다.

“현우야. 유나는 지금 진화 그룹 대표의 수석비서야.”

박현우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는 너무 화가 나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강유나, 너 정말 대단해!”

그를 골탕 먹이려고 라이벌 회사의 수석비서가 되다니?

강유나의 이 전략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는 제대로 열 받았다.

지금 그는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았다.

박현우는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기며 심민준을 밀쳐냈다.

“심민준, 너도 대단해. 이 몇 년간 왜 코빼기도 안 보였나 했더니 진씨 가문에 빌붙었던 거야!”

심민준도 원래는 그들과 함께 자란 사이였지만 심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은 이후로는 그들과의 만남을 점차 멀리했다.

오늘에서야 그는 심민준이 진시훈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와 친구에게 동시에 배신당한 듯한 분노에 휩싸인 박현우는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안수지도 입술을 깨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악!”

갑자기 옆에서 정민호의 비명이 들려왔다.

하주희가 그의 아랫도리를 무릎으로 강하게 가격한 것이었다.

“다음에 또 감히 나서서 나불거리면, 그땐 아예 작살을 내버릴 줄 알아!”

하주희는 재떨이를 탁자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

정민호는 분노에 몸을 떨었지만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특히나 진시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마치 저승사자라도 마주친 듯 혼비백산하여 정태호의 뒤로 숨어버렸다.

진시훈은 남은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여 옆에 서 있는 강유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그럼 이제 집에 갈래 아니면 남자 모델들과 더 놀래?”

강유나: “... 집에 갈래요.”

진시훈은 직접 그녀를 문까지 바래다주려고 했다.

떠나기 전, 그는 심민준을 보고 말했다.

“뒷일은 네가 처리해.”

남자의 크고 훤칠한 뒷모습은 어둑한 조명 아래 점점 멀어져 갔다.

박서윤은 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밤중, 거리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강유나는 가방을 들고 택시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진시훈은 자기 차로 그녀들을 집까지 데려다주도록 지시했다.

강유나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진시훈이 불쑥 말했다.

“유나야, 너 보는 눈이 정말 없어.”

“?”

강유나는 그가 박현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예전에는 자신에게 엄청 잘해 주었다.

진시훈: “배은망덕한 계집애가 커서도 똑같네. 아직도 그 자식 편을 드는 거야.”

“내가 언제요.”

강유나는 다급하게 변명했다.

그녀는 박현우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을 든 것이었다.

자신의 안목이 그렇게 형편없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양지성이 차를 몰고 도착했다.

강유나와 하주희는 차에 올라탔다.

진시훈은 길가에 서 있었다. 바람에 이마의 짧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그의 모습은 마치 만화 속 차갑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 같았다.

강유나는 차창을 내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 대표님.”

“어?”

“오늘 밤, 고마웠어요.”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였다.

진시훈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차가 떠난 후에야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심민준이 다가와 그에게 담배를 건넸다.

“무슨 얘기를 했길래 입이 귀에 걸렸대?”

“배은망덕한 계집애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내가 기특해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

진시훈은 가늘고 긴 눈매를 치켜뜨며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갔어, 태호는 눈치 빠른 사람이니까. 현우와는 달라.”

진시훈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박현우처럼 눈이 먼 자가 몇이나 되겠어.”

...

“자기야, 내 제안 진짜로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래? 너 진시훈 같은 금수저를 놓치면 진짜 후회한다. 너 지금 완전 기회잖아. 먼저 선수 쳐서 잡아야지!”

오아시스에서 돌아온 후, 하주희의 입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주로 ‘박현우는 죽어 마땅하다’와 ‘진시훈을 잡아라’라는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강유나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오늘은 좀 봐주라.”

“그럼 너 진시훈 잡을 자신 있냐?”

“됐어, 나 좀 더 오래 살고 싶거든.”

하주희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바깥에서 평판은 안 좋지만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나쁘면 얼마나 나쁘겠어? 혹시 박현우가 언론을 매수해서 험담을 퍼뜨린 건 아닐까...”

강유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주희는 전형적인 외모지상주의자였다.

강유나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주희도 따라 들어와 몇 마디 쫑알거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강유나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자기야, 무슨 고민 있어?”

“어.”

강유나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알 수 없는 감정이 눈동자에 어렸다.

“뭔가 생각났어.”

전에 진시훈은 그녀를 배은망덕하다며 어렸을 때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정민호가 그렇게 그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들은 정말 오래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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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4-12-30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19화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니 잠에서 덜 깬 얼굴이 떡하니 보였다.“자기야, 깼어?”강유나: “...”“어떻게 네가 여기 있어?”“내가 아니면 누구겠어?”하주희는 당당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자기야, 설마 진시훈인 줄 알았어?”“아니야.”“그럼 왜 그렇게 당황해? 그럴 줄 알았어! 입으로는 진시훈을 쳐다도 안 본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그의 몸이 탐났지?”하주희는 그녀를 껴안고 깔깔 웃었다.“자기가 드디어 남자 생각을 하는구나! 내일 바로 태국으로 날아가서 멋진 남자를 데려와 너를 즐겁게 해줄게!”“너 출근을 어떻게 하길래 갈수록 변태 같아.”강유나는 그녀에게서 벗어나 침대에서 내려왔다.“그만 좀 해. 회사에 가야 해.”“오늘은 회사에 안 나가도 돼. 진시훈이 어제 사람을 시켜 나에게 연락했을 때 이미 오늘 하루 너에게 휴가를 준다고 했어. 푹 쉬어. 야, 그 진시훈 씨 정말 세심하지 않냐? 그 사람에 비하면 박현우는 정말 쓰레기야!”강유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그 사람이 어떻게 네 연락처를 알고 있지?”“나도 몰라. 높으신 분들은 다 그런 거 아니겠어?”“뭐가?”하주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3분 안에 이 여자의 모든 정보를 가져오도록.”“...”“그런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진시훈의 비서가 너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만 하던데.”“별거 아니야. 식중독이었어.”강유나는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혹시라도 사실대로 말하면 하주희는 하루 종일 캐물을 것이 뻔했다.강유나는 땀으로 흠뻑 젖어 샤워하러 욕실로 향했다. 그녀가 나왔을 때, 하주희는 이미 준비를 마치고 외출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자기야, 나 출근해야 돼. 개 같은 사장이 또 왜 이렇게 늦었냐고 난리야. 이번 달에는 더 이상 지각하면 안 돼.”“사실 너희 사장님,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진 않은데. 맨날 욕하지 마.”“치! 얼굴 빼곤 다 별로거든!”강유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오? 잘생겼다고 인정하는

    Last Updated : 20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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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40화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옆에 있던 안수지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그 익숙한 불안감이 다시 밀려왔다.그녀는 박현우에게 몸을 기대며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그 사람 유나 언니 아니야? 역시 예쁜 사람은 어디서든 인기가 많네. 진화의 대표님이 감싸주더니 이젠 또 새로운 구애자인가 봐.”박현우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안수지는 그의 손을 잡았다.“현우야, 왜 그래?”“아니야, 내리자.”안수지는 순순히 차에서 내려 그와 함께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모니카가 다가왔다.“박 대표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여자친구에게 드레스를 골라주려고요.”그는 안수지를 앞으로 살짝 밀었다.모니카는 안수지에게 시선을 두고 몇 마디 칭찬한 후 그녀를 데리고 전용 피팅룸으로 안내했다.이곳의 피팅룸은 모두 넓은 공간에 전담 직원이 서비스를 제공했다.박현우는 따라가지 않고 강서욱에게 시선을 고정했다.강서욱은 섹시한 모델을 데리고 쇼핑백 여러 개를 들고 매장을 나서려던 참이었다.“박 대표님, 정말 우연이네요.”그는 건성으로 인사했다.박현우는 손을 뻗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강유나랑 무슨 사이지?”강서욱은 코웃음 쳤다.“무슨 사이냐고? 예쁘니까 좀 알아가고 싶어서요. 안돼요?”박현우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경고가 서려 있었다.“그녀에게서 떨어져.”“참 이상하네요. 박 대표님은 무슨 자격으로 저한테 이러시는 거죠? 설마 강유나가 대표님 소유물이라도 되는 건가요? 이젠 해성도 다 떠났는데 다른 사람이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시겠다?”“감히 그녀를 건드리면 죽을 줄 알아!”“그럼 한번 해 보시죠.”강서욱의 눈빛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과연 누가 누굴 죽이는지 보자고요!”“현우야...”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수지는 흰색 드레스를 들고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강서욱은 코웃음 쳤다.“박 대표님, 여자친구가 저기 계시네요. 주제 파악 잘하시고 오지랖 부리지 마세요.”그는 모델을 껴안고 의기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39화

    강유나는 돌아서서 가려고 했다.하지만 강서욱은 따라왔다.“강유나 씨는 어차피 닳고 닳은 여자잖아. 박현우랑 그렇게 오래 자고도 아무것도 얻은 게 없지? 그냥 나랑 만나. 한 달에 6천만 원 줄게.”“꺼져!”“1억? 하아, 설마 자신이 2억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그는 입술을 핥으며 강유나에게 다가왔다.“2억도 좋아. 하지만 좀 더 자극적인 걸 해야겠지. 네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네...”짝!강서욱의 뺨에 강력한 따귀가 작렬했다.“내 앞에서 꺼지라고 했어! 여긴 CCTV도 있으니까 당장 꺼지지 않으면 성희롱으로 신고할 거야!”강서욱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칫, 성깔 하나는 대단하네. 내가 겁먹을 줄 알아?”그가 강유나의 손목을 꽉 움켜쥐고 다음 행동을 취하려는 순간,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들렸다.“뭐 하는 짓이야!”하주희가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빠르게 달려왔다.모니카도 뒤따라와서 바로 말했다.“강서욱 씨, 그만 손 놓으시는 게 좋겠어요. 강유나 씨는 진 대표님께서 직접 드레스 피팅을 위해 저에게 맡기신 분입니다.”진시훈의 이름이 나오자 강서욱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그는 천천히 강유나의 손목을 놓고는 비웃듯 말했다.“대단해. 박현우와 헤어지자마자 바로 다른 남자를 찾다니. 인기가 대단하셔~”강유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걱정 마. 어떻게든 네 차례는 안 올 테니까.”“말은 그렇게 일찍 하는 게 아니야.”강서욱은 목소리를 낮추고 비꼬는 투로 말했다.“강서윤 씨, 그 행운이 영원하길 빌어. 내 손에 걸리지 않도록.”말을 마치자 그는 음흉하게 웃고는 떠났다.그가 가자 하주희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자기야, 방금 그 변태가 가면서 너한테 뭐라고 했어? 너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분해서 하는 말이었어.”“강제로 안 되니까 분풀이하는 거야?”하주희는 모니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방금 그 인간 말종은 도대체 누구예요?”모니카가 말했다.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38화

    다음 날은 마침 주말이었다.강유나는 원래 진시훈과 함께 드레스를 보러 갈 예정이었지만 진시훈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아침 일찍 해외로 출국하게 되었다.그는 전화로 담당자를 이미 연결해 놓았으니 혼자 가면 된다고 말했다.마침 하주희가 쇼핑하자며 찾아왔기에 강유나는 그녀와 함께 드레스를 보러 갔다.담당자인 모니카는 혼혈이었는데, S 시 브랜드 대리인일 뿐만 아니라 패션 잡지 회사 사장이기도 했다.많은 연예인이 그녀의 잡지에 실린 적이 있었다.강유나를 보자마자 모니카는 칭찬했다.“강유나 씨는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제가 본 많은 여자 연예인들보다 훨씬 빛이 나요!”강유나는 겸손하게 미소 지었다.이때 옆에 하주희는 어깨를 으쓱했다.“어쩔 수 없죠. 우리 유나는 원래 이렇게 예쁘답니다. 유나의 절친으로서 정말 자랑스러워요.”강유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하주희는 장난스럽게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자기야, 진심이야. 아, 내가 왜 남자가 아닐까?”“네가 남자였으면 감방에 넣어줬을 거야.”“차마 그러진 못 하겠지~”하주희는 강유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자기야, 얼른 들어가서 입어 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모습 기대할게!”맞춤 제작된 몇 벌의 드레스는 명품 C 브랜드의 예약 판매 상품이었다.진시훈도 어떻게 구했는지 특별히 그녀를 위해 공수해 온 것이었다.모니카는 커튼을 치고 직접 강운희가 드레스를 입는 것을 도왔다.드레스를 다 입은 강유나는 커튼을 걷으며 물었다.“어때?”하주희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유나야, 너무 예뻐! 자선 만찬회가 시작되면 넌 분명 모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거야!”말을 마친 하주희는 턱을 쓰다듬으며 음흉하게 웃었다.“그 자리엔 재계, 정계 거물들이 다 모일 테니 그 쓰레기 박현우도 분명 있겠지...”그녀는 마치 박현우가 후회하며 벽에 머리를 박는 모습을 상상하는 듯했다.생각만 해도 통쾌했다.강유나는 거울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어 본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37화

    박 씨 저택에서.박현우는 막 욕실에서 나왔다.샤워를 하고 나니 화가 좀 누그러졌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그가 무심코 전화를 받자 안수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현우야, 아까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좀 일이 있어서 못 받았어.”“할머니는 좀 어때?”안수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내일 뭐 좀 사서 할머니 보러 갈까?”박현우는 옆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고개를 숙여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필요 없어. 할머니는 유나를 보고 싶어 하셨는데, 오늘 만났으니 많이 좋아지셨어.”안수지는 침묵했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그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현우야, 할머니도 나를 싫어하시는 거야? 어머니랑 여동생도 싫어하는데 이제 할머니까지... 왜,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그녀는 박현우의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었다. “그들이 싫어하면 싫어하는 거지. 너랑 만나는 건 나잖아.”“그래서... 현우야, 넌 나를 좋아하는 거지?”박현우는 “좋아해”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그저 짧게 대답했다.“어.”안수지의 목소리는 금세 밝아졌다.“현우야, 너만 나 좋아해 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바로 그때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정민호의 문자였다.그가 보낸 사진을 열어보는 순간, 박현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사진에는 강유나와 진시훈이 있었다.두 사람은 로맨틱한 프랑스 레스토랑 안에서 마주 앉아 있었는데 정민호의 사진 촬영 각도 때문인지 레스토랑의 조명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매우 다정해 보였다.안수지는 계속해서 재잘거렸지만 박현우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건성으로 몇 마디 대꾸한 후 전화를 끊었다.그가 초조하게 담배를 비벼 끄며 장소를 물어보려던 참에 정민호의 문자가 다시 도착했다.[형, 올래? 유나가 진짜 진시훈한테 넘어갈 것 같아!]박현우는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그는 문자를 보냈다.[나랑 무슨 상관이야.]강유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36화

    박현우는 옆에 있는 마이바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손이 아팠다.벤틀리 안에서 강유나는 조수석에 앉아 티슈로 빗물을 닦고 있었다.차가 얼마쯤 달린 후, 진시훈은 갑자기 차를 세우고 뒷좌석에서 부드러운 담요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걸로 닦아.”“고마워요.”강유나는 작은 담요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았다.그러다가 담요를 내려놓을 때에야 차가 아직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고개를 돌리니 진시훈이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몸을 돌려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강유나는 손을 멈췄다.“대표님?”“유나야, 너 소문과 좀 다른데.”진시훈의 눈에 장난기가 어렸다.“박현우를 끔찍이 사랑한다더니 아주 깔끔하게 정리한 것 같아.”그녀는 눈을 내리깔았다.“저도 사람이에요.”그녀에게도 최소한의 기준, 자존심, 마음이 있었으니 박현우가 계속 짓밟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진시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맞아. 넌 사람이지만 박현우는 아니지.”“...”그는 욕하는 데 능숙해서 강유나도 어떤 면에서는 익숙해져 있었다.그녀가 물었다.“대표님은 왜 아직 여기에 계셨어요?”“할머니 뵙고 바로 간다고 했잖아. 나도 오늘 별일 없어서 기다렸는데 이렇게 재밌는 구경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그녀는 잠시 멍해졌다.‘진시훈은... 일부러 나를 기다렸다고?’강유나는 미안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속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대표님, 저녁 식사할 생각 있으세요? 만약 있다면, 우리...”“있어.”진시훈은 고개를 돌렸다. 깊은 눈동자가 유난히 아름다웠다.“뭘 먹으러 갈까?”강유나: “오늘은 대표님 생일이니까 대표님이 골라요.”...30분 후, 벤틀리는 프랑스 레스토랑 앞에 멈춰 섰다.강유나는 진시훈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실내 조명은 은은했고 중앙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우아한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테이블에는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다.명백히 연인들이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였다.그녀는 무심코 진시훈을 바라보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35화

    할머니가 주무시고 나서야 둘은 방을 나왔다.문을 닫자마자 강유나는 박현우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 박현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왜 그래? 내가 뭐 더러운 거라도 되는 것처럼?”“할머니 앞에서만 그런 척한 거였어. 이제 할머니께서 주무시니 굳이 그럴 필요 없잖아.”강유나는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박현우도 따라갔다.“어디 가?”“돌아갈 거야.”“이렇게 늦었는데?”“내 일이니까 신경 꺼.”강유나는 단호하게 걸어갔다. 아래층에 도착하자 이 씨 아주머니가 기장 떡과 탕수육을 들고나오는 것이 보였다.유미진은 소파에 앉아 포메라니안 한 마리를 안고 비꼬듯 말했다.“어머님께서 시키신 거니까 먹어.”강유나: “괜찮아요. 저녁은 이미 먹었어요.”“안 먹겠다면 말고. 내가 정말 네 같은 배은망덕한 계집애를 붙잡고 싶은 줄 아냐?”“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저도 오지 않았을 거예요.”“뭐라고?!”유미진은 눈을 부릅떴다.“유나야, 이젠 기가 붙었구나? 감히 나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다니. 당장 나가!”강유나는 돌아서 나갔다.밖에는 언제부터인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고 빗방울이 얼굴에 닿는 감촉은 차갑고 따가웠다.그녀는 별장 입구까지 걸어갔는데 뒤에서 갑자기 두 개의 자동차 전조등이 밝게 비추었다.박현우의 차가 그녀 옆에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가고 그의 짜증스러운 얼굴이 드러났다.“타!”강유나가 차갑게 말했다.“됐어. 택시 타고 갈 거야.”“여기서 무슨 택시를 타? 유나야,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 타!”강유나는 무시하고 계속 걸어갔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박현우는 주먹을 쥐었다.그는 강유나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다.한번 마음먹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그런 황소고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고칠 줄도 모르는지.박현우는 쫓아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강유나가 돌아보며 말했다.“뭐 하는 거야?”빗물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얼굴로 흘러내려 그러잖아도 아름다운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34화

    “할머니, 아줌마.”유미진은 그녀를 흘끗 보고 차갑게 응수했지만 할머니는 너무 반가워했다.“유나 왔구나! 어서 와, 얼굴 좀 보자!"강유나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침대 옆에 앉았다.“거의 일 년 만이네. 유나야, 살 빠졌어.”할머니는 유미진에게 분부했다.“아주머니에게 유나가 좋아하는 기장떡하고 탕수육 좀 만들어 놓으라고 해. 많이 먹고 살 좀 찌워야겠어.”유미진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뭔가 말하려는 순간, 할머니가 심하게 기침을 했다. 결국 유미진은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강유나는 할머니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할머니, 어쩌다 또 편찮으세요?”“아이고, 나이가 들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괜찮아. 너를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병도 다 나은 것 같구나.”“그래도 몸조심하세요.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먹고 싶은 건 없고 그냥 네가 걱정돼서 그래.”할머니는 강유나의 손을 잡았다.“유나야, 할머니에게 솔직하게 말해보렴. 왜 해성에서 나왔니? 혹시 현우 그 녀석이 널 괴롭혔어?”강유나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아니요, 제가 스스로 해성을 나온 거예요.”“왜? 너는 항상 현우를 좋아했잖니?”“저...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요. 어렸을 때 저에게 잘해줘서 저도 계속 잘해준 것뿐이에요. 단지 일 때문에 의견 차이가 있어서 해성을 나온 거고요.”“그러니까 너희 둘 사이에는 가능성이 없다는 거니?”할머니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할머니...”강유나가 할머니의 등을 토닥여 드리며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박현우가 할머니에게 물 한 잔을 건넸다.“할머니, 연세도 많으신데 이렇게 걱정하시면 안 돼요. 나와 유나 사이에는 아무 문제 없어요.”할머니의 눈빛이 다시 밝아졌다.“정말이냐?”“네. 젊은 연인들끼리 다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할머니도 저희 싸우는 거 많이 보셨잖아요. 다 금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33화

    박씨 가문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지만 강유나를 챙겨준 어른은 박현우 할머니뿐이었다.그런데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랫동안 바깥출입을 삼가다가 결국에는 경치 좋은 요양원으로 가셨다.비록 곁에 계시진 않지만 강유나의 생일 때마다 할머니는 선물을 보내주곤 했다.강유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진시훈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무슨 일이야?”강유나는 다소 어색하게 말했다.“대표님, 저녁 식사는... 나중에 다시 할 수 있을까요? 급한 일이 생겼어요.”할머니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왔기에, 강유나는 이번에 가지 않으면 다시는 뵙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그랬다간 평생 자책하며 살 것 같았다.하지만 오늘은 진시훈의 생일이었다. 일 년에 단 한 번뿐인...진시훈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 어디 가는 건데? 데려다줄게.”강유나는 다소 놀랐다.“화 안 나세요?”“아니.”진시훈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고귀한 얼굴에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비록 나와 생일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했고 또 바람을 맞혔지만 난 성격 좋으니까 화 안 나.”강유나: “...”분명히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진시훈은 강유나가 알려준 길을 따라 박씨 가문의 오래된 저택에 그녀를 데려다주었다.그는 눈앞의 저택을 바라보며 깊은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감정을 드리웠다.“어쩐지 길이 점점 익숙하다 했더니 박 씨 저택이잖아. 그럼 아까 그 전화는 박현우였어?”강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진시훈은 별다른 말 없이 차 문 잠금장치를 풀었다.“내려.”강유나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돌아와 차창을 두드렸다.진시훈은 담배를 꺼내려다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어둑한 불빛에 반쯤 가려진 옆얼굴은 더욱 또렷한 윤곽을 드러냈다.그는 차창을 내렸다.“왜 그래?”“내가 여기에 온 건 현우 때문이 아니라 할머니가 아프셔서 왔어요. 할머니는 나한테 잘해주셨는데 걱정돼서요. 할머니를 뵙고 바로 갈 거예요.”강유나는 진시훈에게 잘 보

  • 빌어도 용서치 않아   제32화

    두 개의 손목시계였다.정교하고 독특한 디자인에 차가운 금속 광택이 빛나는 것이 보기만 해도 비싸보이는 시계였다.진시훈은 무덤덤하게 말했다.“고맙지만, 왜 시계를 두 개나 줬어? 내가 솔로라고 놀리는 거야?”심민준은 웃었다.“여자 시계는 유나 주면 되잖아.”“안 받을걸.”“그건 네가 알아서 해.”심민준이 웃으며 말했다.“오늘 특별한 날인데, 저녁에 한잔할래?”진시훈은 시계를 챙겨넣으며 말했다.“뭐가 특별한 날인데? 나 생일 안 챙기는 거 알잖아.”“또 그러네.”심민준은 혀를 찼다.하지만 그는 익숙했다. 그 사건 이후로 진시훈은 생일을 챙기지 않았으니까.똑똑--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진시훈의 허락을 받고 강유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심민준을 보고 그녀는 인사했다.“심 대표님.”“왜 이렇게 격식을 차려? 우리 오래 알고 지냈잖아. 예전처럼 불러.”강유나는 다시 호칭을 바꿨다.“민준아.”심민준은 예전에는 박현우의 집에도 자주 왔었기에 그녀와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었다. 다만 언제부턴가 발길이 뜸해졌을 뿐이었다.그녀는 지난번 클럽에서야 그가 진시훈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대표님.”강유나는 다가와 작은 케이크를 진시훈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동안 많이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케이크 맛있는데 한번 드셔 보세요.”말을 마친 후, 그녀는 진시훈이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의아해하는 순간, 옆에서 심민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시훈아, 네 생일 기억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나봐.”강유나는 깜짝 놀랐다.“대표님, 오늘... 생일이세요?”“어.”진시훈은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끄며 눈가에 미소를 띠었다.“그럼 강 비서도 생일 선물 준비했어?”“...”강유나가 말했다.“사실 오늘이 생일인지 몰랐어요. 나중에 따로 챙겨드릴게요.”“농담이야.”진시훈은 케이크를 가져오며 담담하게 말했다.“난 생일 안 챙겨.”강유나는 그 말에서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지만 착각인지 확신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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