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사랑

금지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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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되던 해 텅 빈 집에 홀로 버려진 송서희를 집으로 데려온 심도윤. 하얀 교복 셔츠를 입은 소년이 허리를 굽히고 송서희에게 묻는다. “오빠랑 갈래?” 그날 이후 심도윤은 그녀의 전부가 된다. 심도윤은 송서희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그저 여동생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와 만나는 많은 여자를 보면서 어린 소녀의 마음 한구석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심도윤에게 하정준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송서희의 눈에 비친 그는 아주 악질인 나쁜 놈이고 피하기에 급급한 그런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정준과 송서희는 떳떳하지 못한 관계가 되고 만다. 많은 사람이 모인 술자리, 술기운이 점점 짙어진다. 2층의 불이 꺼진 방, 남자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 안고 문으로 밀어붙이면서 키스를 퍼붓는 바람에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하정준이 송서희의 귀를 깨물며 협박한다. “네 오빠한테 들키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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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유명 인사

송서희는 이번 귀국 스케줄이 급하게 잡힌 거라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비행기가 드디어 착륙했다. 공항에 흘러나오는 모국어와 주변에 오가는 행인들을 보고 나서야 고국 땅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송서희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안에는 평범한 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머릿결 사이로 금지옥엽의 귀티가 흘러넘쳤다.운전기사가 물었다.“어디로 모실까요?”“제원 병원으로 가주세요.”4월의 연성은 만물이 깨어나는 생기로 흘러넘쳤다. 송서희가 5년 동안 돌아오지 않다가 이번에 급하게 귀국한 건 선배인 서수현이 아파서였다.병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삐쩍 마른 서수현이 양반 자세로 침대에 앉아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색즉시공, 공즉시색. 남자한테는 마음을 줘선 안 돼..”송서희는 그제야 걱정을 내려놓았다.“한 번 아프더니 속세의 덧없음을 깨달았어요?”불경을 읽던 서수현은 송서희를 보자마자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서희야, 여긴 어떻게 왔어?”“선배가 아프다는데 당연히 들어와야죠.”송서희가 침대 옆에 앉았다.“의사 선생님이 뭐래요?”얼마 전 서수현은 골수 형성 이상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쉽게 말해 조혈모세포로 인한 악성 종양인데 어떤 사람들은 백혈병의 초기 단계라고도 했다.수년간 만난 남자 친구는 서수현이 입원한 틈에 회사의 모든 현금과 핵심 인원들을 빼돌렸고 서수현이 2년 동안 연구한 기술 자료까지 전부 가져갔다.“좋은 소식 하나랑 나쁜 소식 하나 있어.”서수현이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지금 중위험 두 번째 단계라 백혈병이 될 가능성이 커서 항암 치료를 진행해야 한대.”“그럼 좋은 소식은요?”지금 이런 상황에 송서희는 긍정적인 소식을 듣고 싶었다.“좋은 소식은 항암 치료를 하면 악화되는 걸 막을 수는 있지만 완치는 안 되고 또 난소 기능에도 영향을 줘서 나중에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대.”송서희는 그녀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바꿔서 말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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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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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 Su Kim
너무 재밌게 읽었네요 빠른 업뎃부탁드립니다.
2025-01-03 11:41:33
2
40 챕터
제1화 유명 인사
송서희는 이번 귀국 스케줄이 급하게 잡힌 거라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비행기가 드디어 착륙했다. 공항에 흘러나오는 모국어와 주변에 오가는 행인들을 보고 나서야 고국 땅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송서희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안에는 평범한 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머릿결 사이로 금지옥엽의 귀티가 흘러넘쳤다.운전기사가 물었다.“어디로 모실까요?”“제원 병원으로 가주세요.”4월의 연성은 만물이 깨어나는 생기로 흘러넘쳤다. 송서희가 5년 동안 돌아오지 않다가 이번에 급하게 귀국한 건 선배인 서수현이 아파서였다.병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삐쩍 마른 서수현이 양반 자세로 침대에 앉아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색즉시공, 공즉시색. 남자한테는 마음을 줘선 안 돼..”송서희는 그제야 걱정을 내려놓았다.“한 번 아프더니 속세의 덧없음을 깨달았어요?”불경을 읽던 서수현은 송서희를 보자마자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서희야, 여긴 어떻게 왔어?”“선배가 아프다는데 당연히 들어와야죠.”송서희가 침대 옆에 앉았다.“의사 선생님이 뭐래요?”얼마 전 서수현은 골수 형성 이상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쉽게 말해 조혈모세포로 인한 악성 종양인데 어떤 사람들은 백혈병의 초기 단계라고도 했다.수년간 만난 남자 친구는 서수현이 입원한 틈에 회사의 모든 현금과 핵심 인원들을 빼돌렸고 서수현이 2년 동안 연구한 기술 자료까지 전부 가져갔다.“좋은 소식 하나랑 나쁜 소식 하나 있어.”서수현이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지금 중위험 두 번째 단계라 백혈병이 될 가능성이 커서 항암 치료를 진행해야 한대.”“그럼 좋은 소식은요?”지금 이런 상황에 송서희는 긍정적인 소식을 듣고 싶었다.“좋은 소식은 항암 치료를 하면 악화되는 걸 막을 수는 있지만 완치는 안 되고 또 난소 기능에도 영향을 줘서 나중에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대.”송서희는 그녀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바꿔서 말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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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
심도윤은 회사에서 나온 터라 귀티가 흐르는 옅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세월은 그의 잘생긴 얼굴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눈빛은 여전히 송서희의 기억 속 눈빛 그대로 다정하고 편안했다.심도윤이 매년 송서희를 보러 갔지만 지금 이 순간은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송서희가 한참 동안 차에 타지 않자 심도윤이 그녀를 불렀다.“구아야.”그의 매력적인 중저음이 들린 순간 송서희는 마음이 울컥하면서 코끝이 찡했다. 그녀는 재빨리 허리를 굽혀 차에 올라타고는 심도윤을 불렀다.“오빠.”차가 퇴근 시간 교통체증을 뚫고 천천히 달려갔다. 차 안이 숨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심도윤이 다리를 꼬며 물었다.“몇 시에 도착했어?”“2시 넘어서요.”“왜 마중 나오란 소리를 안 했어?”송서희가 대답했다.“오빠 일하는 데 방해될까 봐요. 공항에서 택시 타기 편해요.”심도윤은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늘어뜨리고 있는 송서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예전에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참 밝고 활발했었다. 심도윤을 가장 좋아하고 많이 의지해서 그의 앞에서는 투정도 마음껏 부렸었다.그런데 지금은 너무도 얌전했다. 하도 얌전해서 예전에 허물없이 지냈던 사이 같지 않았고 앉은 자세마저 불편해 보였다.억지로 해외에 나간 후 송서희는 명절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토라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국내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서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작년이었다. 송서희가 생일날에 홀로 집에서 열이 나 끙끙 앓았을 때 심도윤은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과거 심도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때와 비교하면 송서희는 많이 변했다. 소녀의 풋풋했던 모습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그 대신 성숙한 여성의 아름다움이 자리했다.심도윤은 그녀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오빠랑 서먹해진 것 같은데?”“아니에요. 난 그냥...”‘폐를 끼칠까 봐.’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서먹해졌다는 건데...송서희는 끝까지 잡아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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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하정준
시차 때문인지 송서희는 익숙하고 편안한 침대에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게임기와 옛날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게임을 했다. 오래전에 했던 게임이라 몇 번 해보니 손에 익었다.혹시라도 심도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소리는 켜지 않았다.한참 후 아래층에서 차 소리가 들렸고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보고서야 날이 밝았다는 것을 알았다.송서희는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걷었다. 심도윤의 차가 마당을 나가고 있었다.게임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딩 하는 소리와 함께 카톡 문자가 왔다.오빠:[내려와서 아침 먹고 다시 자.]송서희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박혜은과 심정원이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려오는 걸 보고는 하던 얘기를 멈췄다.“왜 더 안 자고 벌써 일어났어?”박혜은이 계속하여 말했다. “마침 잘 내려왔어. 아저씨가 널 얼마나 예뻐하는지 봐봐. 도우미한테 아침 일찍 나가서 먹을 것을 사 오라고 하지, 뭐야. 새우만두, 고기만두, 샌드위치까지 전부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야.”송서희는 맞은편에서 차를 마시는 심정원을 쳐다보았다. 심도윤이 시키면 시켰지, 심정원은 절대 이런 일을 시킬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송서희는 모르는 척하면서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아저씨.”아침을 다 먹은 후 그녀는 서수현을 보러 병원에 가겠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섰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서수현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을 던지려 했다.그 모습을 보고 송서희가 귀띔했다.“200만 원짜리예요.”서수현은 이를 악물고 다시 휴대폰을 거두었다.“무슨 일인데 그렇게 화가 났어요?”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 서수현이 저렇게 폭발할 정도라면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일 것이다.송서희는 작은 식탁을 펼치고 가져온 영양식과 비타민 보충용 야채 주스를 꺼냈다.야채 주스에 서수현이 제일 싫어하는 당근이 있었지만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맛을 음미할 겨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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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애인 동생
프런트 앞에 있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용해졌고 진동준은 옆에서 송서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수화기를 통해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송서희가 오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력적인 중저음에 경박한 느낌도 있었다.“어느 애인 동생이지?”“...”‘뭐야.’은성 그룹의 전화기가 아니었다면 전화를 잘못 걸진 않았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송서희는 자연스럽게 수화기를 막고 등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본 권하영은 곧바로 눈치껏 진동준을 멀리 끌어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남의 통화를 엿들으시면 안 되죠.”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진동준은 당황해하더니 그녀를 뿌리쳤다.“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송서희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송서희예요.”상대방이 물었다.“송 뭐?”혹시 그가 아는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했었지만 역시나 헛된 기대였다.하정준이 그녀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심도윤의 이름을 꺼냈다.“송서희.”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심도윤의 동생이에요.”“오빠를 찾으려고?”하정준은 여전히 무관심한 태도로 말했다.“심도윤 여기 없어.”송서희가 대답했다.“정준 오빠를 만나러 왔어요.”전화기 너머로 3초 동안 침묵이 흐른 후 하정준이 느긋하게 말했다.“기다려.”5분 후 하정준의 비서 실장이 직접 내려와 송서희를 엘리베이터로 정중하게 안내했다.“송서희 씨, 타세요.”진동준의 안색이 말이 아니게 어두워졌다.권하영은 그녀가 정말로 해낼 줄은 몰랐다. 절망에 빠졌다가 다시 희망이 활활 타올랐다.“정말로 하 대표님과 아는 사이였어요? 그럼 우리 이번에 이긴 거 아니에요?”“아직 좋아하기엔 일러요.”송서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별로 안 친하거든요.”하정준이 송서희만 만나겠다고 한 바람에 권하영은 로비에 남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애타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빛나는 금속 문틀에 진동준의 일그러진 표정이 비쳤다. 조금 전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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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양심 없는 녀석
송서희가 로비로 나왔을 때 진동준은 아직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사무실에 40분 가까이 머물렀는데 진동준도 꼬박 40분을 기다렸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진동준이 고개를 홱 돌렸다.진동준은 연성 토박이가 아니었고 유학도 국비로 간 것이었다. 지방 출신인 그는 연성의 최상위층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가 귀국한 몇 년 동안 송서희는 마침 해외에 있었기에 그녀가 대단한 집안의 출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사실 그녀는 외교부 장관의 딸일 뿐만 아니라 심씨 가문 심도윤의 동생이기도 했다.권하영이 쏜살같이 달려가 물었다.“어떻게 됐어요?”송서희가 고개를 내젓자 권하영은 순식간에 풀이 죽었다. 진동준의 초조했던 마음도 안정을 되찾았다.‘난 또 엄청 대단한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었네, 뭐.’그는 넥타이를 정리하며 거만하게 송서희에게 걸어가 두 사람의 앞을 막았다.“내가 안 된다고 했지? 그러게 왜 망신을 자초하고 그래. 하정준이 아무나인 줄 알아? 네 아버지가 아무리 대단해도 하씨 가문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해.”송서희는 남자가 쫑알거리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남자가 말이 너무 많으면 정력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하던데. 정력이 약하면 심폐 기능에 영향을 미쳐서 말을 많이 하는 거로 호흡을 보충한대. 혹시 병원에 가서 검사해봤어?”그녀는 여전히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 그럴듯한 말에 진동준은 가슴이 철렁했다가 이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성을 냈다.“너랑 말싸움하고 싶지 않아. 돌아가서 네 선배나 잘 설득해. 아프면 치료나 받을 것이지, 왜 나한테 덤벼?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송서희는 다른 방법이 더 없는지 생각해보려고 서수현에게 결과를 나중에 알려주려 했다. 하지만 입이 가벼운 권하영이 그만 말해버리고 말았다.권하영이 진동준의 흉내를 어찌나 잘 내는지 서수현은 너무도 화가 나 젓가락까지 부러뜨렸다.“나중에 퇴원하면 그 자식을 산 채로 발라 회로 만들어 버릴 거야!”서수현은 헤어질 때 항상 좋게 좋게 헤어졌었다. 각자 갈 길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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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먹기 전엔 따귀부터
조금 전까지 비꼬던 빨간 옷 여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뒤에서 남의 험담을 하다가 딱 걸린 것보다 더 난처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그녀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친한 친구처럼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왜 돌아오지 않았어요? 우리가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송서희의 눈매는 부드러웠지만 그들을 볼 때는 차갑고 냉정했다.“그렇게 보고 싶으면 문자라도 보내면 되잖아요. 내 번호가 없었어요?”상대방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서희 씨가 번호를 바꾼 줄 알았죠.”“보내 봤으면 안 바꿨다는 걸 알았을 텐데.”송서희는 그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지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아까 하던 말 왜 하다가 말아요?”빨간 옷 여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저도 그냥 남들이 하는 말을 들은 거라...”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서희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짝하는 소리가 유독 찰지고 맑았다.빨간 옷 여자는 송서희가 손을 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고 곧바로 사과했다.“미안해요. 제가 너무 주제넘었어요. 남들이 뭐라 지껄이든 다시는 듣지 않을게요. 서희 씨, 화내지 말아요...”송서희는 파란 옷 여자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얘가 혼자 얘기한 거라고요.”송서희가 차갑게 말했다.“대화도 서로 맞장구를 쳐야 오가죠. 아까 맞장구를 엄청 잘 치더니 이제 와서 배신하려고요?”그녀가 다시 손을 들자 두 사람은 동시에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 송서희는 옆 테이블에서 2단 크림 케이크를 가져와 그들 앞에 놓았다.“오늘 우리 오빠 생일이라서 기분을 망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안 그러면 절대 뺨 한 대로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막아버려야지 어쩌겠어요.”말투는 가벼웠지만 기세는 참으로 위압적이었다.“이 케이크를 다 먹기 전까지 여기서 나갈 생각 말아요.”송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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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울면 그만할게
송서희는 카드 게임을 꽤 좋아했다. 평소 심도윤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했는데 오빠들이 그녀를 예뻐해서 자꾸만 양보했으니 즐겁지 않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하정준은 이 ‘착한 오빠’ 무리에 속하지 않았다. 그녀가 카드를 가져오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매번 앞길을 막았다.심도윤의 판돈이 거의 다 거덜 나자 송서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정준이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이렇듯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태도로 그녀를 괴롭힌 게 처음이 아니었다.안성훈은 차마 볼 수 없어서 그에게 애원했다.“차라리 날 공격해. 이러다 서희가 화나서 울면 심도윤이 가만두지 않을지도 몰라.”하정준은 맞은편에서 힐끗 보면서 흥미롭다는 듯이 송서희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울었어? 울면 그만할게.”그러자 안성훈이 말했다.“못된 놈.”송서희는 그녀가 정말로 울더라도 하정준이 절대 그만둘 리 없다고 확신했다.그녀가 17살 되던 해에 하정준을 처음 만났다.그때 송서희가 하정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밖에서 떠도는 각종 소문이 전부였다. 오만하고 거만하며 제멋대로 행동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다른 사람을 괴롭히다가 거의 죽일 뻔했다는 등 아무튼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송서희는 하정준을 처음 봤을 때 차가움 속에 위험이 느껴졌다. 하여 하정준이 심씨 저택에 오면 인사를 마친 다음 바로 최대한 멀리 도망갔다.그러다가 아주 가끔 심도윤이 볼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우면 그녀는 손님을 접대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하정준과 단둘이 있어야 했다.그때 송서희는 막 체스를 배우기 시작해서 하정준에게 함께 두자고 권했다.체스는 심도윤이 직접 가르쳐준 것이었는데 그녀는 꽤 잘 배웠다고 생각했다. 심도윤은 매번 그녀에게 양보했고 무르기도 허용했지만 하정준은 달랐다. 그는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였다.송서희는 지는 건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짓밟히는 건 싫어했다. 더 이상 두고 싶지 않아 체스판을 치우려 하자 하정준이 가늘고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비웃었다.“지니까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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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증오
늦봄의 차가운 밤바람이 몸으로 스며들었다. 송서희는 몸을 파르르 떨고서야 외투를 놓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북적거리는 분위기와 따뜻함은 불이 환하게 켜진 저택 안에만 남아 있었고 주차장에는 희미한 별빛만이 흩어져 있었다.송서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하정준의 검은색 코닉세그가 아직 있었는데 차 안에 사람은 없었다.그녀는 나무 아래에 서서 기다렸다. 밤하늘은 쓸쓸해 보였지만 별장 앞마당의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키가 크고 훤칠한 모습의 하정준이 긴 다리를 내디디며 천천히 걸어왔다.하정준은 차 옆으로 걸어가 차 키를 눌렀다. 나무 그림자 아래에 서 있던 송서희가 고개를 내밀었다.“정준 오빠.”하정준은 놀란 나머지 뒷걸음질 치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손으로 차 천장을 짚고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어둠 속의 그녀를 쏘아보았다. 아담한 그녀에게 이 정도로 놀랄 줄은 생각지 못했다.“뭐야. 여기 숨어서 강도질이라도 하려고?”‘내 키가 166cm인데 188cm인 오빠를 강도질한다고? 내가 미친 것도 아니고.’밖에서 기다리느라 추워서 몸이 떨렸던 송서희는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아까 오빠가 먹은 블루베리 무스 케이크 말이에요. 사실 내가 도윤 오빠 주려고 만든 거예요.”하정준이 발뺌할까 봐 사진까지 찍어서 증거를 남겨두었다.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휴대폰 화면을 흘끗 쳐다보았다. 반듯한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뭐야? 네 오빠를 독살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내가 먹은 거야?”송서희는 휴대폰을 다시 가져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내가 왜 도윤 오빠를 독살해요?”하정준은 무심하게 차 문에 기대섰다.“가지지 못해서 사랑이 증오로 변한 건가?”송서희는 무의식적으로 드레스를 꽉 움켜쥐었다.찬바람이 등을 타고 스며들어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내뱉지 못했다.하정준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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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안 주면 울잖아
송서희는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그럼 이 기회를 대진 그룹에 양보하겠단 말이에요?”“그 사람들이 그렇게 원한다면 가져가라고 해.”“선배가 절대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내 새끼는 내가 아껴야지. 남은 내 피땀을 짓밟을 수 있지만 나는 짓밟을 수 없어. 대진 그룹이 가격 전쟁을 한다면 우린 절대 이기지 못해. 은성 그룹이 대진 그룹을 선택하는 건 이상하지 않아. 똑같은 것이라면 나라도 싼 걸 골랐을 거야.”서수현은 이틀 만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설득했다.“괜찮아. 다른 사람은 더러운 수단을 써서 이긴 거잖아. 내가 진 건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하지만 난 부끄러울 게 없어. 네가 준 돈으로 엔젤 소프트의 장부 문제를 해결했고 직원들한테 밀린 월급과 보너스도 다 줬어. 까짓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지, 뭐. 병이 다 나으면 무조건 복수하고 말 거야.”송서희가 갑자기 말했다.“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요?”서수현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너 엄청 차가운 사람이었어. 네가 급성 위장염에 걸려서 내가 병원에 데려다줬잖아. 모든 걸 다 해줬더니 달러 뭉치만 주고 보내버리더라고.”“그땐 난 감사의 인사를 그렇게 했어요.”송서희가 정정했다.“마침 가장 친한 친구한테 배신당한 때라서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았거든요.”“그래서 퇴원한 후에도 나한테 연락하지 않은 거구나.”서수현이 말했다. “얘기하고 보니까 혼혈이었던 전 남자 친구한테 고마워해야겠네.”당시 서수현의 남자 친구는 송서희와 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송서희에게 문자를 보내 집적거린 적이 있었다.이런 일을 당사자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송서희는 고민 끝에 난처해질 위험도 무릅쓰고 서수현에게 문자 내용을 바로 전달했다.“그날 선배가 우리 집으로 달려왔을 때 나를 때리려고 온 줄 알았어요.”송서희가 말했다.“근데 선배는 나를 끌고 그 사람을 찾아가서 뺨을 두 대 후려갈겼죠. 한 대는 선배를 위해 때린 거고 한 대는 나를 대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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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퉁퉁 부은 얼굴
아침에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심도윤은 주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송서희는 그가 어젯밤에 돌아왔다는 걸 몰랐다. 다가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아침 식사를 했다.이런 침묵은 예전에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심도윤의 앞에서 수다쟁이였고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공유했었다.이번에는 심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어머니한테서 들었는데 요즘 매일 병원에 가서 네 선배를 돌본다며?”“네. 선배 어머니가 몇 년 동안 몸이 좋지 않아서 걱정하실까 봐 투병 사실을 아직 가족한테 말하지 못했어요.”“환자 간호는 간병인한테 맡겨. 너무 힘들게 하지 마.”심도윤은 그녀의 인간관계를 간섭하진 않았지만 귀하게 키운 여동생이 다른 사람을 시중드는 건 차마 볼 수가 없었다.“네, 알았어요.”송서희가 대답했다.“국내 최고의 혈액 전문가가 진료하고 결정한 치료 방안이니까 문제없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심도윤이 서수현의 병을 걱정하는 건 모두 송서희를 위해서였다. 송서희는 그릇에 있는 죽을 휘저으며 대답했다.“네.”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심도윤이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기분이 안 좋아?”“아니에요.”송서희는 화제를 돌렸다.“오빠, 아는 변호사 있어요?”“귀국한 지 얼마 됐다고 벌써 사고 쳤어?”심도윤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가볍게 웃었다.“말해봐. 무슨 사고 쳤어?”아침 햇살이 심도윤의 눈을 비췄다. 송서희는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내가 아니라 선배가 동업자랑 경제적인 분쟁이 있는데 내가 찾은 변호사가 좀 서툴러서요.”심도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알아봐 줄게.”“고마워요.”심도윤이 알아봐 준 변호사는 그날 오후 바로 송서희에게 연락했다. 경제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였는데 이런 작은 분쟁을 처리하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송서희는 주말에 변호사를 만나느라 송씨 가문에 갈 시간이 없었다. 최해경의 명령은 그냥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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