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퉁퉁 부은 얼굴

아침에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심도윤은 주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송서희는 그가 어젯밤에 돌아왔다는 걸 몰랐다. 다가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아침 식사를 했다.

이런 침묵은 예전에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심도윤의 앞에서 수다쟁이였고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공유했었다.

이번에는 심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니한테서 들었는데 요즘 매일 병원에 가서 네 선배를 돌본다며?”

“네. 선배 어머니가 몇 년 동안 몸이 좋지 않아서 걱정하실까 봐 투병 사실을 아직 가족한테 말하지 못했어요.”

“환자 간호는 간병인한테 맡겨. 너무 힘들게 하지 마.”

심도윤은 그녀의 인간관계를 간섭하진 않았지만 귀하게 키운 여동생이 다른 사람을 시중드는 건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네, 알았어요.”

송서희가 대답했다.

“국내 최고의 혈액 전문가가 진료하고 결정한 치료 방안이니까 문제없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심도윤이 서수현의 병을 걱정하는 건 모두 송서희를 위해서였다. 송서희는 그릇에 있는 죽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네.”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심도윤이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

“기분이 안 좋아?”

“아니에요.”

송서희는 화제를 돌렸다.

“오빠, 아는 변호사 있어요?”

“귀국한 지 얼마 됐다고 벌써 사고 쳤어?”

심도윤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가볍게 웃었다.

“말해봐. 무슨 사고 쳤어?”

아침 햇살이 심도윤의 눈을 비췄다. 송서희는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내가 아니라 선배가 동업자랑 경제적인 분쟁이 있는데 내가 찾은 변호사가 좀 서툴러서요.”

심도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알아봐 줄게.”

“고마워요.”

심도윤이 알아봐 준 변호사는 그날 오후 바로 송서희에게 연락했다. 경제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였는데 이런 작은 분쟁을 처리하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송서희는 주말에 변호사를 만나느라 송씨 가문에 갈 시간이 없었다. 최해경의 명령은 그냥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저녁에 심씨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박혜은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거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혜은은 송서희를 보자마자 이미숙에게 데워놓은 우유를 가져오라고 했다.

“요즘 뭐 때문에 바쁘길래 매일 이렇게 늦게 들어와?”

“선배 회사 일을 도와주고 있었어요.”

송서희는 사실 우유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냥 불만 없이 받았다.

“귀국한 다음에 아직 집에 가보지 않았지?”

박혜은이 말했다.

“시간 내서 집에 한번 가봐.”

최해경이 그녀를 찾은 게 분명했다.

심씨 가문과 송씨 가문은 친분이 꽤 깊었다. 박혜은은 종종 최해경의 체면을 고려해야 했고 불화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요즘 너무 바빠서요.”

송서희는 우유를 단숨에 마시고 하품을 했다.

“너무 졸려요. 먼저 올라가서 잘게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재빨리 위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다. 박혜은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달리 방법이 없다는 듯 말했다.

“이 얘기만 하면 도망간다니까.”

“서희 아가씨는 그 사람들과 별로 친하지 않아요. 그리고 송씨 가문에서 아가씨를 하루도 키우지 않았잖아요. 그때 송 장관님이 뺨을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얼굴이 퉁퉁 부었다니까요. 송씨 가문 사모님은 아가씨를 외국으로 보낸 후 몇 년 동안 아무 관심도 없다가 귀국하니까 조급해하는 거 봐요. 설마 서희 아가씨가 평생 외국에서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건 아니겠죠?”

이미숙은 어릴 적부터 봐온 송서희의 편을 들었다.

“저라도 가지 않겠어요. 굳이 가서 욕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불난 집에 부채질하지 마.”

박혜은이 말했다.

“어쨌거나 서희 가족이잖아. 나중에 서희 결혼할 때도 송씨 가문의 결정을 따라야 할 텐데 최해경을 화나게 해서 서희한테 좋을 게 없어.”

이미숙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씨 가문 사모님 같은 분이 서희 아가씨한테 무슨 좋은 혼사를 알아봐 주겠어요.”

박혜은은 최해경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일에 대해 말했다.

“서희가 일부러 안 간 게 아니라 바빠서 까먹은 것 같아요. 서희 선배가 지금 많이 아픈데 회사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서희가 외국에 있을 때 그 선배가 많이 챙겨줬대요. 둘 사이가 엄청 끈끈해요. 요즘 그 선배 일 때문에 사방으로 뛰어다니느라 저도 서희 얼굴을 보기 힘들어요.”

그럴듯한 변명이었지만 여전히 최해경을 설득하지 못했다. 최해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혜은 씨는 보기 힘들어도 심도윤은 자주 보는 것 같던데요?”

그러자 박혜은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도윤이는 어릴 때부터 서희를 아꼈고 친여동생처럼 생각했어요. 평소 만나는 게 뭐 어때서요?”

최해경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영상을 하나 보냈다.

심도윤의 생일 파티 날에 찍은 영상이었다. 현장 분위기는 시끌벅적했고 송서희와 심도윤이 함께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심도윤이 칼로 케이크를 자르고 있었는데 각도 때문에 송서희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상은 십여 초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끄러운 소리가 끝나자 박혜은의 안색이 급변했다. 최해경은 여전히 차갑게 말했다.

“그때 왜 서희를 외국에 보냈었는지 잊은 건 아니죠? 만약 5년 전에 당한 망신이 부족하면 우리 송씨 가문의 체면이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들을 망신당하게 할 수 있어요.”

송서희는 사실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는 송씨 가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송씨 가문에 정이 없는 건 둘째치고 5년 전 일이 중요한 이유를 차지했다.

송서희의 출생은 이 바닥에서 비밀이 아니었다. 송씨 가문의 딸이 최해경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친어머니는 송병식의 직속 부하였다. 당시 송병식은 막 외교부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점잖고 잘생긴 상사였기 때문에 송서희의 어머니가 그를 사랑하게 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일하면서 서서히 감정을 쌓게 되었다. 당시 두 사람이 만날 때 송병식은 아직 솔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분과 지위의 차이가 너무 컸다. 송서희의 할아버지 송중섭은 차관급 공무원이었고 또 송병식도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단계였기 때문에 통역관 출신인 어머니는 그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송중섭은 두 사람을 강제로 갈라놓았다. 하지만 송서희는 그의 방해가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송병식은 자신과 자신의 사업을 가장 사랑했다.

송서희의 어머니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도 강했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나중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도 송병식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아이를 낳았다. 송서희는 8살까지 친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나중에 버림받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송서희는 버려지는 것에 대해 깊은 트라우마가 생겼다. 5년 전 송씨 가문에서 그녀를 외국으로 보내려고 했을 때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었다. 심도윤에게 전화하려 하자 휴대폰을 빼앗고 그녀를 방에 가둔 다음 며칠 뒤 비행기에 태워 보냈다.

그때의 기분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송서희가 아침 일찍 일어나 나와보니 박혜은이 주방에서 무언가를 분주하게 끓이고 있었다.

구운 대추와 배를 넣고 끓인 생강차였다. 설탕도 넣어서 맛이 달콤했다.

그녀는 생강을 싫어했기에 생강차도 싫어했다. 하여 어릴 때 감기에 걸리면 박혜은은 달콤한 맛으로 끓여주었다.

오랜만에 맡은 익숙한 냄새라 그런지 무척이나 그립기도 했다.

배는 이미 반투명해져 있었다. 송서희는 다가가서 포크로 한 조각을 몰래 먹었다.

“집에 누가 감기 걸렸어요?”

집에 요리사만 세 명이라 박혜은은 직접 요리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녀가 직접 생강차를 끓여줄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송서희는 아주 멀쩡했고 심정원은 며칠 전에 출장을 갔으니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도윤이 지금 열이 나.”

박혜은은 뜨거운 차를 보온병에 담았다.

“요즘 기온 변화도 심한데 네 오빠는 몸을 잘 챙기지 않잖아. 너 있다가 나갈 때 가는 길에 가져다줘.”

송서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생강 맛이 나는 배를 삼키고는 보온병을 들고 급히 심도윤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