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눈을 확 뜬 서정원의 시야엔 기내 조명이 들어왔고 비행기는 안정적으로 비행하고 있었다.서정원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달랬다. ‘악몽이었구나...'“정원 씨, 왜 그래요?”걱정 서린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서정원은 가슴을 부여잡고 깊은 여운이 남은 듯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악몽을 꾸었을 뿐이에요.”방금 그녀가 꾼 꿈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졌다.너무나도 생생했던 나머지, 마치 진짜로 있었던 일 같았다.그녀는 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설마 최근 며
“줄곧 깨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모든 수치는 정상이세요. 강 박사님, 얼른 어르신 상태 좀 봐주세요.”강석일은 앞으로 한 발 나서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모두 나가서 밖에서 기다리세요.”최성운은 미간을 찌푸렸다.비록 사람들은 강석일 박사의 의술을 신이 내린 의술이라며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고 했지만 여하간에 그저 소문일 뿐이었다.그는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었다.만약 병실에 정말로 그와 할아버지만 남겼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바로 이때, 이진숙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모두 나가라니요? 그러면 안
강석일은 절묘한 손놀림과 깔끔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그 일련의 움직임은 마치 물이 흘러가듯 막힘없이 자연스러워 서정원은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정원아, 똑똑히 보았니?”강석일은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고개를 들어 서정원을 힐긋 보았다.“네.”서정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강석일의 손놀림을 기억해 뒀다.그렇게 삼십 분이 흘렀고 강석일은 최승철의 가슴에서 은침들을 하나하나 뽑아내어 다시 약상자에 넣었다.“아저씨, 다 되었나요?”서정원은 여전히 조금 전 강석일이 보여줬던 엄청난 침구술을 골몰하고 있었다.“그래.”강석일
강석일은 눈살을 찌푸렸다.“정원아, 난 먼저 가볼게.”최씨 가문 사람들은 엉망진창이었고 강석일은 그곳에서 괜히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강석일은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나섰다.“아저씨, 제가 배웅해 드릴게요.”서정원이 다급히 따라갔다.강석일은 우뚝 멈춰서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정원을 보았다.“정원아, 날 바래다줄 필요는 없어. 여기서 몸 잘 챙겨.”말을 마친 뒤 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떠났다.서정원은 두말하지 않는 강석일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강석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작게
심준호는 차를 운전해서 서정원을 청담 빌리지로 바래다주었다.서정원은 무척 피곤했기에 가는 길 내내 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고 쉬었고 그러다가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차를 멈춰 세운 뒤 심준호는 고개를 돌려 조용히 김은 잠에 빠져든 서정원을 주시했다.어두운 조명이 서정원의 얼굴을 비췄다. 그녀는 피부가 유난히 하얬고, 긴 속눈썹은 뺨 위에 부채꼴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었다.그녀의 얼굴에서 약간의 피로와 고단함이 보였지만 그런데도 서정원은 빛나고 매력적이었으며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그는 서정원을 넋 놓고 몇 분간 바라보았다. 심
“네가 아직 최성운을 사랑하니까?”심준호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서정원은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이랑은 상관없어요.”말을 마친 뒤 서정원은 슬퍼하는 심준호를 내버려 두고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문 앞에 도착한 서정원은 가방 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그가 문을 열고 들어간 뒤 문을 닫으려던 순간, 갑자기 어두운 비상 출구 쪽에 크고 건장한 검은 형체가 보였다.그는 큰 손을 뻗어 닫히려던 문을 잡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서정원은 깜짝 놀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누구시죠?”남자는 차
갑작스러운 키스는 서정원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그녀는 몸이 굳고 머릿속이 하얘졌다.몇 초 뒤에야 서정원은 뒤늦게 반응했다.‘이게 뭐 하는 짓이야?’그들은 이미 파혼했고 두 사람은 이제 아무 사이 아니었다.‘그런데 최성운이 무슨 자격으로 날 침범하는 거야?’서정원은 마음을 굳게 먹고 최성운의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입술에서 통증이 느껴지자 최성운은 본능적으로 서정원을 놓아주었다.서정원은 가슴팍이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녀는 수치스럽고 또 화가 난 표정으로 헐떡이면서 입을 열었다.“최성
‘문자?’서정원은 당황했다.‘최성운이 언제 나한테 문자를 보냈다는 거지?’“난 문자를 받은 적이 없어요.”서정원이 비아냥대며 말했다.최성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날 그는 휴대폰이 배터리가 없어서 시아에게 대신 문자를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그런데 서정원이 문자를 받지 못했다니, 중간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최성운이 침묵하자 서정원은 차갑게 물었다.“최성운 씨, 당신은 시아 씨를 오랫동안 사랑했잖아요, 아닌가요? 당신이 지금까지 그리워하던 사람은 시아 씨 아니었나요?”“서정원 씨, 시아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