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과 불’ 콘셉트는 여성의 고상하고 우아함과 불같은 열정을 보여줘야 해요. 안나 씨가 방금 표현하신 건 ‘불’의 이미지밖에 없었고 ‘얼음’의 이미지가 부족했어요.”서정원은 아주 담담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요.”표정을 구긴 안나는 서정원의 말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서정원 씨가 광고에 대해 아세요?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서정원이 많은 사람이 앞에서 자신을 지적했다는 것에 안나는 불쾌해졌다.그녀는 서정원이 그저 일개 비서일 뿐이라면 그녀는 브루스의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면서
“그만 하세요. 최성운 씨. 그냥 오늘의 주인공인 심준호 씨와 안나 씨에게 맡기죠.”서정원은 잔뜩 화가 난 안나와 표정이 어두워진 심준호를 보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서정원이 무대에서 내려가려고 할 때 갑자기 천장에 있던 조명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올려다보니 천장에 있던 유리로 된 조명이 흔들리더니 아무런 조짐도 없이 그대로 머리 위로 떨어졌다.“위험해!”세 남자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최성운과 심준호, 그리고 브루스가 동시에 외쳤고 결국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최성운이 얼른
눈을 가늘게 뜬 서정원이 입을 열었다.그녀는 오늘 그 일이 절대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운성 그룹의 장비는 해마다 안전 점검을 진행했고 촬영장에 있던 유리 조명도 당연히 전문가가 와서 점검한 상태였기에 그녀는 절대 유리 조명이 쉽게 떨어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주 우연히, 하필이면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거지?’서정원은 처음에 손윤서가 한 짓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촬영장에서 연기 시범을 보인 건 안나의 연기력 때문에 차마 참지 못한
“무슨 일이시죠?”안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안나 씨의 명성은 익히 들었어요. 오늘 이렇게 만나 뵈니 아주 반갑네요.”손윤서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말했다.“혹시 시간 되세요? 안나 씨랑 커피 한잔하고 싶은데 안 될까요?”손씨 가문이 해성시에서 명망 높은 가문이었고 게다가 많은 사람이 어떻게든 손씨 가문과 연을 맺으려고 했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다른 의도를 보이며 접근하는 손윤서에 안나는 속으로 은근히 좋아했다.손윤서에게 서정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었던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두 사람은 그렇게 운성 그룹
잠옷을 입은 최성운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아침 햇살이 주방 유리창을 통해 그의 몸에 비치니 한층 더 따듯해 보였다.준수한 외모에 오뚝한 코, 그리고 얇고 섹시한 입술을 보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평소에 회사에서 보이는 차갑고 시크한 느낌과 달리 지금의 모습은 유난히 더 친근감이 있어 보였고 앞치마를 두르고 있어도 그는 여전히 잘생겨 보였다.서정원은 자신도 모르게 황홀한 눈길로 쳐다봤다.“일어났어요?”들려오는 인기척에 최성운은 고개를 돌려 서정원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성을 되찾은 서정원이 의아한
최성운은 긴 손가락 위에 연고를 쭉 짜더니 조심스럽게 서정원의 다리 위에 살살 발랐다.연고의 시원한 느낌과 그의 긴 손가락이 그녀의 살에 닿으니 그녀는 뭔가 찌릿찌릿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서정원의 얼굴로 어느새 붉게 물들어버렸다.“다 됐네요.”최성운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약을 제때 잘 발라야 해요. 안 그러면 흉 질 겁니다.”“네.”약을 바를 때 너무 긴장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갑자기 저리는 다리에 서정원도 몸을 일으켰다.서정원은 순간 휘청거리더니 이내 최성운이 있는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다.“조심해
서정원은 집에서 며칠 쉬다 보니 상처가 거의 다 아물었다.그날은 얼음과 불 시리즈 광고 촬영이 정식으로 시작되는 날이었다.서정원은 일부러 촬영 장소에 30분 일찍 도착해 준비가 끝났는지 직원들과 일일이 체크했다.잠시 뒤, 안나와 브루스, 심준호가 제시간에 도착했다.“다 준비됐나요?”점검을 마친 서정원은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뒤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물었다.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메이크업 받으러 오셔도 됩니다.”“전 먼저 옷 갈아입으러 갈게요.”안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정원을 힐끔 본 뒤 물었다.
잠시 뒤 매니저가 탈의실에서 나왔다.“단추는 없어요. 밖에 떨어진 건 아닐까 찾아볼게요.”“찾을 필요 없어요!”서정원은 안나 앞으로 걸어가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안나 씨, 단추 내놓으세요!”안나의 안색이 삽시에 달라졌다.“서정원 씨, 무슨 뜻이에요?”서정원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또박또박 말했다.“제 말뜻은 안나 씨가 일부러 이 단추를 뜯었다는 거예요!”“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안나의 눈빛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갔다.그 단추는 그녀가 일부러 뜯은 것이 맞았다. 서정원을 모함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