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에서는 홍시가 성릉관에서 온 전서를 받자 마자 열어 보지도 않고 왕비에게 전하라며 시만자에게 넘겼다. 시만자는 성릉관에서 온 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전서를 열어 읽었고 깜짝 놀라 곧장 말을 타고 달려 경위부로 달려갔다. 송석석이 경위부에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시만자가 경위부를 드나드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이제 막 특별 초빙된 무술 사범이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그녀의 무예 실력이 뛰어남을 알았고, 또 그녀가 스스로 무관이 되길 원하지 않는 것을 이해했기에 그녀에게 현갑군의 무예 교육을 맡겼다. 비록 어전시위가 독립되었지만 무예 훈련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이들은 여전히 경위부로 와 시만자에게 무예를 배우러 와야 했다.송석석은 전서를 읽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실수였다. 이 내용을 가볍게 본다면 노정 장군이 순간적인 실수로 입을 잘못 놀린 것으로 가벼운 훈계를 내리거나 군봉 스무대를 맞는 선에서 끝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심각하게 본다면 이는 대단히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발언이 마치 성릉관의 장군들이 일제히 녹분성의 죄책이 황제에게 있다고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더욱이 이 사건은 애초에 황제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었다.“어떻게 해야 해…? 염선생과 사형은 지금 부재 중이고 왕야도 대리사에 있어서 너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 시만자 역시 그 발언의 파급력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황제는 물론 상대적으로 관대한 선황제조차도 이와 같은 말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황제가 성릉관에 지원군을 보냈고 지원군은 소 대장군의 지휘를 받았다. 만약 황제가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 모든 전투에서 패할 때마다 그 책임이 황제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전북망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송석석은 손에 든 전서를 등불에 가져가 태워버렸다. 장기문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새어 나가서
단신의가 떠난 후, 장문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장기문을 막아야 합니다.”선평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내가 더 이상 소 대장군이 이런 불의의 재난에 휘말리게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다.”설령 영예와 부귀를 버려야 한다 해도 온 마음을 다해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선평후는 무장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후작의 지위는 전장에서 피땀 흘려 얻은 것이었다. 소 대장군을 위해서라면 작위를 잃더라도 조상이 그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다만 그는 조카 장기문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장기문은 어릴 때부터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사람이었지만, 불행히도 늘 운이 없었다. 중요한 임무가 주어질 때마다 병에 걸리거나 불운이 닥쳐 공을 세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오랫동안 동궁에서 보낸 그이지만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해 여전히 평범한 시위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황제가 즉위하고 나서야 그는 현갑군으로 편입되어 어전 시위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출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성릉관 파견도 척귀가 오월에게 추천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장기문은 항상 성공을 꿈꾸어 왔다. 이제 눈앞에 절호의 기회가 생겼는데, 그가 쉽게 포기할 리가 있겠는가?단신의는 선평후부에서 나와 북명왕부에 소식을 전했다. 사여묵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장기문이 약간의 운이 부족한 인물일 뿐, 비교적 올바른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스스로도 이를 고발할지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선평후와의 대화를 나눈 뒤라면 고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장기문이 정말로 그 말을 출세를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이를 기회로 삼아 황제께 보고하는 대신 제방과 직접 얘기를 나누는 편이 더 유리할 것이다. 제방은 제가의 사람이며 제수찬은 황제의 사위이니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고발로 얻는 것보다 훨씬 클 터이니 말이다.심지어 장기문은 황제 곁에서 오랫동안
하지만 여론이 이렇게나 들끓는 것을 보면 누군가 일부러 의도적으로 부추긴 것이 분명했다. 숙청제는 처음에 북명황실을 의심했는데, 실마리를 따라 진상을 밝히다 보니 뜻밖에도 목 승상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그 기사들과 찻집, 그리고 술집의 이야기꾼들까지도 모두 목 승상이 사람을 보내 마련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목 승상도 이 사실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숙청제는 어서방에서 오랜 시간 침묵하더니 오월에게 말했다. "이번 일은 그냥 못 본 걸로 하게. 입 단단히 다물어야 할 것이네."목 승상은 선황제가 죽기 전부터 사임할 생각이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선제의 죽음으로 인해 새 황제가 즉위하는 상황에서 혼란을 막기 위해 상직을 지키며 힘껏 보좌해왔다.조정 내 모든 문무백관 중에서 숙청제가 가장 믿는 이는 목 승상과 안만수 둘 뿐이었다. 최근에 목 승상과 여러 차례 성릉관 문제를 논의했을 때, 그는 늘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사실 모든 것이 정황상으로 이어져 있었다.목 승상과 소승은 문엄 시절부터 함께 세 황제를 모신 원로이다. 때문에 문관과 무관 사이에는 깊은 신뢰가 있었다. 숙청제는 목 승상이 했었던 말을 떠올렸다. "변방을 지키는 장군들이 없으면 국내의 안정과 번영도 없는 법입니다." 그들은 겉보기엔 깊은 교류가 없는 듯했고 심지어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었으나 서로를 무척 존중하고 있었다.2월 13일 저녁, 제방과 사람들은 소 대장군을 모시고 입성했다. 며칠 전부터 백성들은 그가 황제의 명령에 따라 진성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도착한 것이다!해질녘이 되자, 붉은 석양이 피빛처럼 물들었다.키 큰 노장이 검은 말에 앉아 있었고 좌우에는 어전 시위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의 허리는 조금도 굽지 않았다. 얼굴의 피부는 검붉은 빛을 띄며 마치 광택이 도는 구리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 긴 세월동안 눈보라와 서리를 겪었으나 그의 얼굴은 갈라지지 않았다. 마치 피
사여묵과 송석석은 성문에서 멀지 않은 주점의 2층에 있었다. 이 주점의 2층 귀빈실은 위치가 가장 좋아 창문을 열면 성문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그들의 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사여묵은 송석석이 소 대장군을 볼 수 있게 일찍이 이 귀빈실을 예약했다. 송석석은 소 대장군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달려 내려가 어린 시절 때처럼 외조부의 품에 안겨 한바탕 울고 싶었다. 외조부에게 억울함을 쏟아내면 그는 석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곤 했다.“우리 석석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냐? 외조부가 가서 혼내 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 2층에서 서서 외조부의 말이 백성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귀청이 터질 듯한 지지의 함성을 들으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외조부는 이전보다 많이 늙은 것 같았다. 그가 비록 예전에도 귀밑머리가 희끗했어도 정신이 맑고 의지가 넘쳤다. 진성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몇 세트의 권법을 연습해도 얼굴이 붉어지거나 숨이 차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온통 백발이 되어 검은 머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비록 대장군의 위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며칠간 계속된 여정으로 인해 피로한 기색이 보였다.게다가 그는 전체적으로 많이 수척해 보였다. 예전에는 얼굴이 검게 그을렸지만 살이 통통했는데, 지금은 피부색은 변함없지만 빵빵하던 살이 축 늘어졌다.이는 노쇠의 징후였다. 소 대장군은 인파 속에서 힘겹게 전진하고 있었다. 때로는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하고, 때로는 어전 시위들이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백성들이 다칠까 염려했다.거의 반 시진이 지나서야 행렬이 주점 아래까지 도달했다.원래 순방영과 경위과 와서 길을 열어주려 했지만 백성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완전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었으나 이제는 백성들이 철옹성처럼 모여 소 대장군을 보호했다.어떤 백성은 어전 시위와 실랑이를 벌이려 했다. 그러나 즉시
필명과 오진이 경위와 순방영을 이끌고 인파 속으로 들어가 서서히 길을 만들어내어 마침내 소 대장군과 어전 시위들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어전 시위들은 소 대장군을 이끌고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게 했다.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백성들의 소란과 외침이 숙청제에게 보고되었다.숙청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성들이 자신을 향해 외치는 함성이 마치 그를 옭아매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원래 그는 소승이 돌아오면 먼저 형부의 조건이 비교적 나은 감방에 수감하고 서경 사신에게도 핑계가 될 만한 처분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척귀의 인도로 소 대장군은 어서방으로 들어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죄인 소승,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폐하 만수무강 하옵소서!”숙청제는 소승을 보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이 사건을 처리할 계획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가 눈앞에 무릎 꿇고 예전의 위풍당당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채 마치 쓰러진 산처럼 보이자 마음속에 찡한 감정이 올라왔다.그가 태자였을 때 소승과 송회안은 그를 무척이나 지지해 주었다. 그 또한 자주 진북후부를 찾아 송가의 아들들과 진심으로 교류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황제가 된 그는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고, 마음도 예전처럼 순수하지 않게 되었으며 여러 걱정과 책략이 늘었다.오랜 세월이 지나 눈앞에 서 있는 그를 보니 국경의 매서운 바람이 이 철같은 노장을 산골의 노인처럼 변하게 만든 것이 느껴졌다. 숙청제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져 직접 일어나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소 대장군, 어서 일어나시오.”소승은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죄인 소승, 폐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숙청제가 깊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오.”숙청제는 직접 소 대장군을 부축하여 한쪽에 앉히면서 그가 진정으로 쇠약해졌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강철 같던 그의 어깨와 팔이 이제는 그 단
예전에 송석석이 현갑군의 지휘사로 임명되었을 때 많은 조신들이 반대했었다. 여성이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제 황제의 일련의 조치를 보고 그의 의도를 깨닫게 된 조신들은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현갑군에 결국 순방영만 남게 되어 귀족 자제들이 모이는 집합소로 전락할까 걱정하였다.현갑군은 원래 황성을 지키는 중요한 방패였다. 하지만 해체되고 분해되면서 그 권위를 잃은 듯하여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더군다나 송석석이 지휘사로 임명된 이후 현갑군은 더욱 강력한 위엄과 안전감을 갖추게 되었고, 송석석에게 반감을 가졌던 이들도 이제는 진심으로 그녀를 인정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송석석에 대한 인정이 숙청제로 하여금 더 빠른 개혁을 추진하게 했고, 어전 시위를 현철군으로 개편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앞으로의 개혁도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다.한편 소 대장군은 근용위의 호위를 받아 소부로 돌아왔다. 오랜 세월 비워진 소부는 황폐해져 형편없는 상태였기에 근용위가 직접 들어가 잡초를 뽑고 청소를 했다. 오 대반은 몇몇 궁녀들 골라 들어가 시중을 들도록 조치했다.전북망은 직접 호위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소 대장군이 입주하자마자 스무 명의 근용위를 파견했다. 그 중 열 명은 소부 안에서, 나머지 열 명은 밖에서 세개의 대문을 지켰다. 정문에는 네 명, 후문과 측문에는 각각 세 명씩 배치했다.소 대장군이 소부에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회왕비가 사람들을 이끌고 정문 밖에 찾아와 면회를 요청했으나, 근용위에 의해 막혔다. 그녀는 시끄럽게 굴지 않고 밖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다른 일은 차치하더라도 아버지가 돌아왔는데 보러 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지금 왕야가 진성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왕야가 있었다면 아버지가 죄인의 신분인 만큼 그녀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을 탐탁지 않아 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황제가 그를 집으
선평후는 주변에 시중드는 이 하나 없이 혼자 왔다. 청색의 옷에 검정색의 두꺼운 외투까지 입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어느 집안의 하인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사여묵과 송석석은 먼저 일어나 기쁘게 그를 맞이하였고,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따라 일어났다. 그들 또한 아무 말없이 도와준 선평후에게 마음 속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치레를 나눈 뒤, 선평후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송구스럽습니다. 그 녀석을 조건없이 동의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장기문이 조건 하나를 내세웠는데, 왕비님과 시 소저에게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왔습니다.”선평후가 처음 송구스럽다고 이야기할 때 모두 놀랐지만 뒤에 이어진 말까지 듣자 안심했다. 시만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제 의견을 물어야 하죠? 대체 뭘 하려는 건가요?”선평후도 이 말을 전하면서 다소 의아해하며 답했다.“장기문이 말하길, 시 소자를 사부로 삼고 싶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오진과 필명처럼 친히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네? 저는 그를 가르친 적이 있는걸요?”시만자는 장기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해 잠시 당황했다. 그는 어전 시위에 속해 있어서 이미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사부로 삼고 싶어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제자는 세 명으로 정해 두었다고 말을 했었다.그러자 선평후가 설명했다.“그 녀석이 자기 실력으로 승진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전에서 필요한 것은 무예와 민첩함인데, 민첩함은 충분하지만 무예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모양입니다.”“그런가요?”시만자는 짧게 대답하고는 송석석을 바라보았고 송석석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문제는 시만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지만, 제자를 받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시만자의 성격상 이미 오진 등 세 명의 제자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상당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받아들이겠습니다.”시만자는 오랜 고민 없이 바로 대답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이러한 강압적인 요청은 절대
장기문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재빨리 외쳤다. “아버지, 안심하십시오. 좀처럼 얻기 힘든 좋은 기회인 것을 제가 압니다. 반드시 사부님께 열심히 배우고 절대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장기문은 시만자의 수업을 두 차례 들었었다. 하지만 다른 때는 당직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가 시간이 될 때는 시만자가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아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그의 부모님에게 몇 번이나 말하길, 만약 시 사부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고 했었다.장기문은 성릉관에 갔다가 이렇게 운이 좋은 기회를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의 방법이 좀 비겁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없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전 시위가 독립하게 되면 현갑군의 지휘를 받지 않게 될 것이고, 시 사부님은 송 대인의 체면을 봐서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어전 시위가 독립한 후에도 황제가 계속 가르치도록 허락한다 해도, 수업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들어 예전처럼 여러 번에 한 번 겨우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될 것이 뻔했다.장기문의 아내도 장기문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남편이 사부를 모시는 예를 갖추니 자신도 함께 절을 올린 것이다. 시만자는 제자 부부가 올린 차를 받아 마신 후, 제자의 아내에게 팔찌를 선물로 건넸다. 장기문의 아내는 그 팔찌의 귀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너무 비싸다며 사양했다.시만자는 말했다."받으시오. 내게 싼 물건은 없소."장기문의 아내는 잠시 망설이며 도와 달라는 눈치로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기문의 어머니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니 받도록 하여라. 앞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사부님을 찾아 뵙고 제자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다하도록 해라.""알겠습니다." 장기문의 아내는 그제야 팔찌를 받고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사부님!"사부 예식을 마친 후 장기문은 부모님께 먼저 돌아가시라고 전했다. 장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